마트에는 그렇게 많은 야채와 식재료들이 있는데, 장을 볼 때마다 눈에 걸리는 것들은 늘 그게 그거다. 손으로 집어 들기 전에 눈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것 중 하나가 이 즈음엔 냉이이다. 벌써 맛있겠고, 벌써 향기롭지만... 다듬고 씻는 일이 얼마나 귀찮을까 눈길 몇 번 주다 돌아서곤 한다. 그래도 집어 들게 하는 건 "채윤이가 좋아하니까!"이다. 그런데 솔직히 채윤이만 좋아한다면 사지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엄마라면 "신실이가 좋아함"이 어떤 귀찮음을 감수하고라도 음식을 만드는 충분조건이 되겠지만, 채윤이 엄마 신실은 신실이 엄마와 다르다. 채윤이가 좋아하지만 제가 좋아하니까 결국 집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냉이 두 팩을 사서, 초록초록하게 데쳐서 심심하고 상큼하게 무쳐서 잘 먹었다. 채윤이도 신실이도, 무엇이든 무덤덤한 종필까지 맛있게 먹었다. 이 정도 초록이 맛있게 몸에 들어가면 바로 몸과 마음이 푸르게 피어나면 좋으련만... 독감 후유증 종필, 이틀 연속으로 공연하는 채윤, 이유 없이 마음을 시름시름 앓는 신실 모두 맛있게 먹고는 각자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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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볶음밥, 이라고 했으면 큰 호응을 못 얻었을 것이다. 계란볶음밥이라고 했으면 그리 따뜻한 음식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알맘마 해줄까? 하는 순간 "알맘마" 해주겠다는 사람이나, 먹을 사람이나, 저녁을 안 먹겠다고 했던 사람까지 음식 너머의 따스함에 감싸였다. 장을 보러 나갈 수도 없고, 무엇이 꽉 들어찬 냉장고에 실속이 없는 저녁이었다. 실속이란, 오직 계란... 계란을 풀어 익히고 밥을 비벼 양념하는 이 단순한 밥을 아버님께서 "알맘마"라 부르며 해주셨었다. 채윤이 현승이에게 해주셨지만, 알맘마라는 말에 반색하는 것을 보면 JP의 기억에도 "있는" 음식이다. 파를 듬뿍 넣어 파기름을 내고 알맘마를 만드는 동안 우리 아버님의 착한 따스함이 생각났다. 당신의 아들, 손주들, 그리고 둘째 딸이라 하시던 내게 그 따스함을 심어 놓으셨다.
 
계란볶음밥 아닌 우리들의 알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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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기도회나 화요일 책모임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곶감이 들려 있는 때가 있다. 많이도 아니고 네 개 정도. 집 처마에 곶감을 말리고 있는 집사님께서 아마도 익을 때마다 몇 개씩 챙겨 가져오시는 것이다. 앙증맞고 정겹다. 하나하나 익어가는 곶감을 하나하나 챙기는 손길, 아니 그전에 하나하나 일일이 따고 깎고 매다는 손길이 느껴진다. 제 속도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곶감이 되어가는 그 고유한 시간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간과 손길을 느껴지니 마음이 보인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희한하게도 보이는 것이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 차거운 마음은 스쳐 지나면서도 느껴진다. 하물며 곶감이라는 物이 눈앞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게다가 곶감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니 몇 배로 크게 다가온다. (호랑이를 물리친, 무섭도록 맛있는 곶감이 아니냐고!) 집사님은 한결같이 우리 네 식구에게 각각, 곶감을 아니 따뜻한 마음을 건네곤 하셨다.  

 

토요일 여의도 국회 앞으로 가기 위해 원고에 매진 중이다. 매진한다고 진도가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최대한 앉아 있는 중이다. 진득하니 앉아 있는 나를 대접해야겠어서 간식을 좀 정성그럽게 챙겨봤다. 곶감과 함께 커피를 내렸는데. 커피 담은 머그잔은 도자기 공예가인 내 동갑내기 집사님의 작품이다. 지금은 교회를 떠나셨고, 잠깐의 인연이었다. 같은 동네 사는 덕에 컵과 그릇 여럿을 선사받았다. 집사님의 작품에 커피를 내리고 음식을 담을 때마다 떠올린다. 어떤 때는 선명하게 어떤 때는 스치듯 흐릿하게. 이 역시 시간과 손길이 담긴 마음이다. 전문가의 손길이다. 돌아보면 추웠던 날의 작은 온기였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 되게 하는 말과 손길과 몸짓과 물건을 선물이라 부른다. gift, 또는 은혜.

 

아가서를 묵상하고 있다. 오리게네스와 여러 교부들, 신비가들이 왜들 모두 아가서 주석을 남겼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아가서에 이렇게 풍성히 담겨 있구나! 남편과 함께 하는 묵상이라, 부부만이 아는 길고 깊은 비밀 같은 사랑의 언어가 더 와닿는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사랑을 어쩌면 이렇게도 육체적인 사랑의 묘사로 잘 그려냈을까! 보이지 않는 영혼, 보이지 않는 마음이 보이는 것과 다름 아니다. 보이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 깊이 스며있다. 마음과 몸은, 영혼과 몸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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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식을 좋아하는 거 같아.
나도 그래. 우리는 분식을 참 좋아해.
 

주일 저녁, 남편 혼자 있는 집에 채윤이와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빠 저녁 어떡하지? 하다, 우리가 뭘 주문해 줄까? 하다 배민으로 떡볶이를 시키고 돌아오니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먹고 있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있는 날에는 김밥으로 식사를 하는데. 남은 김밥을 챙겨 올 때가 있다. 냉장고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에 계란물에 적셔 부쳐서 먹으면 좋은 한 끼가 된다. 미니 계란에 푹 담가 프라이팬에 부쳐서 내주었더니 "오, 좋아 좋아! 코리안 오믈렛인가?" 하고 작명을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에 곱창볶음 트럭이 온다. 곱창볶음은 냄새가 조금 나고, 순대볶음은 먹을만하다. 나는 또 순대와 순대볶음을 좀 좋아해야 말이지. 순대볶음 사 오면 집에 있는 깻잎이나 양배추, 양파 같은 걸 더 넣어 한 번 더 볶는다. 마늘이나 파고 더 넣고. 마침 알배기 배추가 있어서 채 썰어서 함께 내놓으니 식감도 좋다. 입맛도 감정도 무딘 남편이 "오, 이렇게 같이 먹으니 씹는 맛이 있고 좋다!" 한다. 남편이 그랬다. "나는 분식을 참 좋아해." "당신 순대는 안 좋아하잖아. 순대는 나만 좋아하지!" "아니야, 순대만 좋아해. 내장이 싫은 거지." 찐은 내장인데... 바부... 아무튼.
 
우리는 분식을 참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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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는 사랑니 발치 후 제 손으로 죽을 사들고 들어오기로 했다. 저녁은 패스하겠다며 빈손으로 들어오더니 "아, 약! 약 먹으려면 뭘 먹어야 하는데..." 한다. 돌발상황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누룽지만 끓여주는 건 그렇고... 누룽지에 계란을 풀어볼까? 이상한가? 생각하다... 채윤이 '최애 죽'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샤브샤브나 전골을 먹고 남은 국물에 끓이는 죽을 우리 채윤이가 엄청나게 좋아하지! 그것 뭐 맛만 비슷하면 되는 거지. 꼭 전골을 먹어야 하나?! 쯔유와 새우분말, 표고버섯 분말 같을 것을 때려 넣고 육수를 만들어서 누룽지 부숴서 끓였다. 그리고 계란을 풀었다. 성공적이다!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아깝다! 마취가 덜 풀려서 맛을 못 느끼는 김채윤이라니... 내 기분만 좋았다. 게다가 사진을 찍고 말고 할 비주얼도 아니어서 어떻게 뭐, 달리 자랑 뿜뿜 할 수가 없네.
 
오이을 봤는데, 며칠 전 어느 릴스에서 본 '지중해식 샐러드' 생각이 나서 두 개를 사왔다. 채윤이가 꾸부정하게 식탁 앞에 앉아 '성공한 실패 죽'을 처묵처묵 하는 사이 막막 만들어 보았다. 그까이 꺼 막 올리브유 대충 넣고 식초 넣고... 오, 맛있다! 숙성시키면 더 맛있다니 내일 아침에 먹어야지, 하고 냉장고에 넣었는데. 성경공부 마치고 늦게 돌아온 JP의 야식으로 다 털었다. 
 
어제 종일 원고 붙들고 있었는데... 딱 두 문장을 썼다. 자괴감이 든다. 창의성이 글로 가야 하는데... 요리로 다 바꿔 먹어 버리니... (요리 책을 내겠다고 작심을 하면, 요리 아닌 다른 창의력이 폭발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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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에 그는 있으나 없는 존재이다. 아빠, 남편, 사람 JP는 껍데기만 남기고 내일로 이미 떠나고 없다. 설교 준비로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의 동굴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집에서 준비하다 점심 먹고 교회에 가겠다고 하면 신경(질)이 많이 쓰인다. 요즘 주방은 시도 때도 없이 휴업 상태인데, 토요일에 이러면 뭔가 좀 해줘야 할 것만 같다. 실은 나도 주일에 강의가 있어서 그리 여유 있는 편이 아닌데. 그와 내가 다른 점은 "해야 할 일"을 앞두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에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은 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면 유난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떠오르고. 결국 그것을 해버리고 만다. 텅 빈 냉장고이지만, 샐러드용 야채 한 팩이 있었다. 거기에 파스타면 대충 비벼서 샐러드 파스타를 하려고 했다. 오전 운동 다녀오는 길에 방울토마토 사고, 냉동실의 새우 한 줌을 꺼내서 준비했더니,  "대충 파스타"가 아니게 되었다. 갑자기 신이 나서 발사믹 드레싱 제조하고. 맛을 보니 간이 또 딱 맞아 맛있고 난리인 것이다. 그러자... 신이 났다. 영감이 차올랐다. 곧 대림절인데, 에라! 크리스마스 리스 파스타다! 

 

노는 것도 일하는 것처럼 하는 JP, 설교 준비 파이팅!

일하는 것도 노는 것처럼 하는 나도 강의 준비 파이팅!

맛있게 먹고 힘내서 제 할 일 하는 가을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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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방이 갑오징어를 좋아허잖여."

그는 ‘김서방’이 되기까지 갑오징어의 존재를 몰랐다. 김서방이 되어 장모님 밥상에서 처음 갑오징어를 먹었고, 그날부터 그는 갑오징어를 좋아하는 김서방이 되었다. 장모님은 늘 갑오징어를 준비했다.

"엄마여~"

장모님은 김서방에게 전화를 하면 늘 ‘엄마여~’라고 말했다. 늦둥이 딸의 엄마인 장모님은 김서방에겐 할머니 뻘이었다. 김서방의 외할머니와 장모님이 동갑이셨으니, 그냥 할머니이다. 그리고 김서방은 ‘엄마’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일찍 철이 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려서부터 엄마를 어머니라 불렀다. 그런 김서방에게 할머니 뻘 장모님은 "엄마여~"하고 전화를 했다.

김서방이 되어 갑자기 갑오징어 좋아하게 된 그에게 갑오징어 숙회를 해주었다. “사람이 참 찬찬혀. 착허고 점잖여." 하며 김서방을 예뻐하던 우리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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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도 피정에 들어간다.
기도 피정 떠나는 마음은 늘 무겁게 가볍다.
설레면서도 벌써 지루하다.
외롭고, 무엇인가 그리워서 조금 슬프다.

오늘은 좀 다르다.
오랜 시간 홀로 가 앉아 기도하던 곳에 벗들을 인솔해서 간다.
덜 외롭고, 덜 무겁고, 덜 슬프다.

며칠 머물 짐을 싸는 일보다
남겨두고 가는 일상을 미리 챙기는 일이 더 분주하다.
이제는 각자 알아서 잘 챙겨 먹는 식구들이지만, 두고 떠나는 내 마음은 또 다르다.
소고기 뭇국을 마음 담아 끓였다.
펄펄 끓는 국은 벌써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하는 엄마, 기도하는 아내의 공석을 기쁘게 감당해주는 가족들에게 남기는 감사의 편지이다.

그리고 이제 떠난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애인 만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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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올리고당 안 섞고 100% 꿀로만 레몬청을 만들었다. 요리에 쓰고 남은 레몬이니 몇 개 되지 않아 양이 적으니 아끼지 않고 꿀을 투하했다. 손바닥 만한 작은 병에 담아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가져다주었다. 참 고마운 젊은이다. 채윤이 나이나 되었을까? 자기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참 예쁘다. 강사로서 열심히 배우는 것 같다. 배운 것을 또 바로 학생들에게 시전 한다. 운동의 의미와 순간 쓰이는 근육과 호흡의 방식을 알려주려 애를 애를 쓴다. 그 열정이 목소리에 담겼다 싶었는데, 성대결절이 와서 수업을 못 한 적도 있다. 성대결절에 결국 성대파열... 그리고 수술, 그리고 한 달 묵언수행. 내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자!" 하며 사는 게 모토인지라. 이 선생님을 좋아하며 감사하고 있다. 신비로운 것이 사람 마음이라, 선생님도 나를 참 좋아해준다. 무슨 선생님이 나이 든 엄마 같은 학생에게 비싼 필라복을 선물하고, 자기 입을 티를 사며 한 장 더 사서 건네기도 한다. 나도 지지 않는다. 무엇이든 주고 싶다. 안 그래도 즐거운 운동이 더 즐겁다. 즐겁게 운동했더니 태생이 몸치이고 운동신경이라고는 100m 21초 수준인데, 학원의 에이스가 되고 있다. (학원으로 방송 출연 섭외 요청 왔는데 뽑혔었음. 당연히 거절함. 마침 CBS에서 녹화하고 방송 기다리고 있던 즈음이었는데, 방금 기독교방송에서 눈물 글썽 간증하던 여자가, 다른 채널에서 레깅스 입고 필라테스 하고 있을 생각 하니... 가관이다... 싶었음)

 

이 선생님이 나에게만 친절하지 않아서 참 좋다. 모든 회원들에게 친절하고 진심이어서 보기 좋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좋은 생존 기술이다. 아침 기도 마치고 어제 놓친 카톡 답신 보내려 창을 열었다가 이 선생님과 주고받은 메시지에 마음이 좋아졌다. 의례적인 인사일 수도 있지만, 곱씹으며 크게 은혜 받았다. 누구에겐 좋은 사람, 누구에겐 찌르고 상처 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한 사람에게도 어떤 때는 좋은 사람, 어떤 때는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 좋은 엄마였다가 나쁜 엄마이기도. 좋은 아내였다가 악처가 되기도. '그래도 어딘가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이지...' 싶어서 은총의 메시지가 되었다.   

 

강사들끼리도 신실님 넘 좋다고 칭찬한답니다.
항상 여유로우시고 밝게 웃으시고 저도 신실님처럼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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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더위에 창작활동을 하였다.
시원하고 간이 딱 맞는 오이미역냉국이다.
냉동 볶음밥과 함께 점심 도시락을 싸주었다.
이 더위에, 이렇게나 정성스러운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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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공연하고 오후 느지막이 들어오신 따님께 좋아하시는 호박전을 해드림. 호박에 밀가루 옷을 입히면서 옆에서 조잘거리심. 남들에게 어떻게 보여도 본인은 외향형인 것 같다고, (요즘 몸이 많이 안 좋은 편)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나가서 에너지를 소비하니 더 에너지가 나온다고 하심. 딸이 에너지 충전 되었다는 말에 엄마도 조금 충전이 됨. 우리 딸은 호박전을 좋아하심. 내 덩치로 (저 덩치 딸에게)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호박전 좋아하는 우리 딸 참 귀여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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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철이구나! 맛있는 감자를 나눠주는 벗과 교우들이 있어서 알게 된다. 비닐봉투에 담겨 건네온 몇 알의 감자에서 사랑을 느낀다. 소소하고 큰 사랑이다. 기도 피정에 가면서 남은 식구들 아침 식사로, 또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 수도원이라 내 먹을 것을 바리바리 싸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해서 감자샐러드를 만들었다. 이 계절에 한 번씩 그러하듯 산더미같은 양의 감자 샐러드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감자샐러드가 나는 그렇게 좋더라고. 아주 만족스러운 요리이다.
 
사랑으로 받고 사랑으로 만들었더니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필라테스 선생님에게 빵과 함께 가져다 주었다. 내게 운동하는 시간은 몸으로 드리는 기도 시간인데, 그 시간을 복되게 하는 예쁜 선생님이다. 예쁘기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랑하는 아이들의 오후 간식으로도 전달했고. 수도원에서 처음 만난, 향심기도 20년 내공의 낯설지만 친근한 처음 보는 대학원 후배님에게, 지도해주시는 신부님과도 나누었다. 사랑으로 온 감자를 사랑으로 흘려보냈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 수도원에서 아침기도 마치고 침묵 속에 먹었던, 내가 만든 감자샐러드 가득 채운 모닝빵 하나와 쥬스 한 잔은 세상 맛있는 식사였다. 
 
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가위 가위 보!
사랑이 이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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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멜로가 체질>이 내 머릿속에 '미역국 라면' 칩을 넣었다. 미역국을 보면 꼭 한 번은 거기에 라면을 끓이게 됨. 손감독과 진주작가의 꽁냥꽁냥 장면에 '파 많이 넣은 떡볶이' '평양냉면' '미역국 라면' '사골국' 등 음식이 등장하는데 희한하게 모두 내 취향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이병헌 감독 개그가 진짜 마음에 드는데... 개그 취향과 함께 음식 취향도 나랑 비슷한 것 아닐까 생각하게 됨. (아, 미역국은 내 '최애 국'이다. 현승이 낳고 산후조리원에 갔는데 끼니마다 다른 미역국이 나와서 행복했던 기억이다. 한 달 내내 미역국, 질린다며 억지로 먹는 산모가 대부분이었음. 그래서 식사 때마다 미역국 때문에 설레던 내 마음이 조금 부끄러웠던 기억... 미역국 라면을 끓이며 그 얘기를 현승에게 들려주었다.) 

 

이 더운 날에 양지머리를 덩어리 째로 넣어 미역국을 한솥 끓이고 거기에 다시 라면을 끓였다. 당연히 맛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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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으며 남편이 "현승아, 너는 어떤 때 만족감을 느껴? 만족감을 자주 느껴?"라고 했다. 내게 물은 건 아닌데 답을 찾게 된다. 흠... 나는... 끙끙거리며 쓰던 글을 완성했을 때! 그리고 갑자기 요리의 신이 임해서 전에 해보지 않았던 요리를 뚝딱 만들고 났을 때. 
 
끙끙거리던 글을 마치자마자 냉동실에 있던 갈치 몇 조각과 야채 박스에서 뒹굴던 무 한 토막을 꺼내서 우다다다 갈치조림을 하는데, 마침 고사리 불린 것이 한 줌 남아서 마지막에 넣고 졸였는데,  식구들이 "대애~박!"이라며 어떻게 여기 고사리 넣을 생각을 했냐며, 엄지 척 처묵처묵 해주실 때. 만족감이 열 배였다.   

 
또 뭐 갑자기 닭다리살에 소금 후추 등으로 최소 양념을 해서 파와 함께 구웠는데, 이거 당신이 양념한 거냐, 양념된 걸 산 거냐 하며 믿을 수 없는 맛있는 맛이라는 표정의 JP, 엄마가 한 거지! 그냥 생고기였는데 엄마가 양념한 거야, 엄마 간이 진짜 딱 맞아! 하는 아들, 처묵처묵하는 아빠와 아들을 볼 때. 만족감이란 것이 차오른다.
 
셋이 먹고 입 싹 닦으려고 했는데... 퇴근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 딸이 못내 눈에 밟혀서 퇴근 시간에 맞춰 1인분 용으로 한 번 더 해서 내놓았는데... 아, 이건 무슨 고기이고, 어디서 샀냐며 행복하게 드실 때... 참으로 만족스럽다.

 
나의 만족감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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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처음 안식월을 보낸 남편의 복귀 첫 출근 날이다. 안식 후 첫날(부활하신 예수님...) 점심은 단호박열무국수를 해서 감동적으로 맛있게 먹었다. 안타깝게도 안식 후 첫날을 맞은 남편은 당연히 집에 없으니 채윤이와 둘이서 먹었다. 안식월 마지막 날인 어제 그는 혼자 홀연히 나갔다. 요셉수도원에 가서 낮기도에 참여하고는 수제 소시지를 사 왔다. 단호박열무국수에 소시지를 곁들였다. 그의 복귀 출근을 애도... 아니 응원하며 둘이 맛있게 먹었다.

 

(단호박열무김치, 최곱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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