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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마음의 환대409

아, 행곡해 스벅에서 좋아하던 샌드위치가 있었는데. 루꼴라 치아바타... 이런 재료와 이름이었다. 어느 날 없어졌더라고. 동네에 하나로마트가 생겼는데, 로컬푸드 코너에 가니 루꼴라 한 묶음이 1500원이었다. 양이 적지도 않아. 일단 덥석 사서는 떡볶이 위에 한 번 얹어 먹고도 한 주먹이 남았다. 어느 아침, 냉동실에 있던 치아바타를 꺼내어 바질페스토 발라주고 방토 잘라 올려주고, 냉장고에굴러다니던 치즈에 루꼴라 넣어서 와플기계에 파니니 팬으로 구웠더니... 와, 스벅 루꼴라 치아바타를 무덤에서 불러낸 것이 되었다. 요즘 썩 기분이 좋지 않아 자고 일어나 뚱하고 나온 채윤이 아침으로 해주었다. 맛있다 어떻다 말하지 않지만, 표정만 봐도 안다. 얘 지금 맛있어서 행곡하다! 채윤이 어렸을 적에 내가 불러줬던 노래, 그걸.. 2025. 3. 15.
아주 사적인 캄보디아, 장작불 떡볶이 난생처음 단기선교, 캄보디아 선교여행에 다녀왔다. 그 어떤 요리보다 떡볶이에 진심인 "삶은 요리 정 선생"으로서 레전드를 찍고 왔다. 장작불 피워 450인 분의 떡볶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 것이다!  '난생처음'에다 '선교'인데... 심지어 '캄보디아'이니 할 말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지만, 레전드 떡볶이를 경험한, 사적으로 그 의미가 중차대한 여행이 되었다. 라는 프로그램은 재미있게 보았다. 남편과 닮았다는 탤런트 이선균과 장항준 감독, 그리고 낯선 두 배우까지. 캐릭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적인' 캄보디아 여행인 관찰 예능을 재미있게 보았다. 각기 다른 넷의 캐릭터가 만드는 역동에 끌려서 보다 결국 캄보디아에 꽂혀버렸는데, 방점은 '사적인'이다. 넷의 성격은 사적인 것이고, 나름 관광지 캄보디아가 .. 2025. 3. 5.
초록 충전 마트에는 그렇게 많은 야채와 식재료들이 있는데, 장을 볼 때마다 눈에 걸리는 것들은 늘 그게 그거다. 손으로 집어 들기 전에 눈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것 중 하나가 이 즈음엔 냉이이다. 벌써 맛있겠고, 벌써 향기롭지만... 다듬고 씻는 일이 얼마나 귀찮을까 눈길 몇 번 주다 돌아서곤 한다. 그래도 집어 들게 하는 건 "채윤이가 좋아하니까!"이다. 그런데 솔직히 채윤이만 좋아한다면 사지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엄마라면 "신실이가 좋아함"이 어떤 귀찮음을 감수하고라도 음식을 만드는 충분조건이 되겠지만, 채윤이 엄마 신실은 신실이 엄마와 다르다. 채윤이가 좋아하지만 제가 좋아하니까 결국 집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냉이 두 팩을 사서, 초록초록하게 데쳐서 심심하고 상큼하게 무쳐서 잘 먹었다. 채윤이도 .. 2025. 1. 18.
알맘마 계란볶음밥, 이라고 했으면 큰 호응을 못 얻었을 것이다. 계란볶음밥이라고 했으면 그리 따뜻한 음식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알맘마 해줄까? 하는 순간 "알맘마" 해주겠다는 사람이나, 먹을 사람이나, 저녁을 안 먹겠다고 했던 사람까지 음식 너머의 따스함에 감싸였다. 장을 보러 나갈 수도 없고, 무엇이 꽉 들어찬 냉장고에 실속이 없는 저녁이었다. 실속이란, 오직 계란... 계란을 풀어 익히고 밥을 비벼 양념하는 이 단순한 밥을 아버님께서 "알맘마"라 부르며 해주셨었다. 채윤이 현승이에게 해주셨지만, 알맘마라는 말에 반색하는 것을 보면 JP의 기억에도 "있는" 음식이다. 파를 듬뿍 넣어 파기름을 내고 알맘마를 만드는 동안 우리 아버님의 착한 따스함이 생각났다. 당신의 아들, 손주들, 그리고 둘째 딸이라 하시던 .. 2025. 1. 3.
보이지 않는-보이는 시간과 마음 금요기도회나 화요일 책모임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곶감이 들려 있는 때가 있다. 많이도 아니고 네 개 정도. 집 처마에 곶감을 말리고 있는 집사님께서 아마도 익을 때마다 몇 개씩 챙겨 가져오시는 것이다. 앙증맞고 정겹다. 하나하나 익어가는 곶감을 하나하나 챙기는 손길, 아니 그전에 하나하나 일일이 따고 깎고 매다는 손길이 느껴진다. 제 속도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곶감이 되어가는 그 고유한 시간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간과 손길을 느껴지니 마음이 보인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희한하게도 보이는 것이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 차거운 마음은 스쳐 지나면서도 느껴진다. 하물며 곶감이라는 物이 눈앞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게다가 곶감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니 몇 배로 크.. 2024. 12. 12.
K 오믈렛 나는 분식을 좋아하는 거 같아.나도 그래. 우리는 분식을 참 좋아해. 주일 저녁, 남편 혼자 있는 집에 채윤이와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빠 저녁 어떡하지? 하다, 우리가 뭘 주문해 줄까? 하다 배민으로 떡볶이를 시키고 돌아오니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먹고 있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있는 날에는 김밥으로 식사를 하는데. 남은 김밥을 챙겨 올 때가 있다. 냉장고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에 계란물에 적셔 부쳐서 먹으면 좋은 한 끼가 된다. 미니 계란에 푹 담가 프라이팬에 부쳐서 내주었더니 "오, 좋아 좋아! 코리안 오믈렛인가?" 하고 작명을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에 곱창볶음 트럭이 온다. 곱창볶음은 냄새가 조금 나고, 순대볶음은 먹을만하다. 나는 또 순대와 순대볶음을 좀 좋아해야 말이지. 순대볶음 사 오.. 2024. 12. 11.
요리 바꿔 먹은 창의성 채윤이는 사랑니 발치 후 제 손으로 죽을 사들고 들어오기로 했다. 저녁은 패스하겠다며 빈손으로 들어오더니 "아, 약! 약 먹으려면 뭘 먹어야 하는데..." 한다. 돌발상황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누룽지만 끓여주는 건 그렇고... 누룽지에 계란을 풀어볼까? 이상한가? 생각하다... 채윤이 '최애 죽'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샤브샤브나 전골을 먹고 남은 국물에 끓이는 죽을 우리 채윤이가 엄청나게 좋아하지! 그것 뭐 맛만 비슷하면 되는 거지. 꼭 전골을 먹어야 하나?! 쯔유와 새우분말, 표고버섯 분말 같을 것을 때려 넣고 육수를 만들어서 누룽지 부숴서 끓였다. 그리고 계란을 풀었다. 성공적이다!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아깝다! 마취가 덜 풀려서 맛을 못 느끼는 김채윤이라니... 내 기분만 좋았다. 게다가 .. 2024. 11. 20.
갑자기 크리스마스 리스 토요일에 그는 있으나 없는 존재이다. 아빠, 남편, 사람 JP는 껍데기만 남기고 내일로 이미 떠나고 없다. 설교 준비로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의 동굴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집에서 준비하다 점심 먹고 교회에 가겠다고 하면 신경(질)이 많이 쓰인다. 요즘 주방은 시도 때도 없이 휴업 상태인데, 토요일에 이러면 뭔가 좀 해줘야 할 것만 같다. 실은 나도 주일에 강의가 있어서 그리 여유 있는 편이 아닌데. 그와 내가 다른 점은 "해야 할 일"을 앞두고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에 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은 하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해야만 하는 일"이 있으면 유난히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떠오르고. 결국 그것을 해버리고 만다. 텅 빈 냉장고이지만, 샐러드용 야채 한 팩이 있었다. 거기에 파스타.. 2024. 11. 17.
김서방의 갑오징어 ”김서방이 갑오징어를 좋아허잖여." 그는 ‘김서방’이 되기까지 갑오징어의 존재를 몰랐다. 김서방이 되어 장모님 밥상에서 처음 갑오징어를 먹었고, 그날부터 그는 갑오징어를 좋아하는 김서방이 되었다. 장모님은 늘 갑오징어를 준비했다. "엄마여~" 장모님은 김서방에게 전화를 하면 늘 ‘엄마여~’라고 말했다. 늦둥이 딸의 엄마인 장모님은 김서방에겐 할머니 뻘이었다. 김서방의 외할머니와 장모님이 동갑이셨으니, 그냥 할머니이다. 그리고 김서방은 ‘엄마’라는 호칭을 쓰지 않는다. 일찍 철이 들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려서부터 엄마를 어머니라 불렀다. 그런 김서방에게 할머니 뻘 장모님은 "엄마여~"하고 전화를 했다. 김서방이 되어 갑자기 갑오징어 좋아하게 된 그에게 갑오징어 숙회를 해주었다. “사람이 참 찬찬혀. .. 2024. 11. 11.
국 기도 짧은 기도 피정에 들어간다. 기도 피정 떠나는 마음은 늘 무겁게 가볍다. 설레면서도 벌써 지루하다. 외롭고, 무엇인가 그리워서 조금 슬프다. 오늘은 좀 다르다. 오랜 시간 홀로 가 앉아 기도하던 곳에 벗들을 인솔해서 간다. 덜 외롭고, 덜 무겁고, 덜 슬프다. 며칠 머물 짐을 싸는 일보다 남겨두고 가는 일상을 미리 챙기는 일이 더 분주하다. 이제는 각자 알아서 잘 챙겨 먹는 식구들이지만, 두고 떠나는 내 마음은 또 다르다. 소고기 뭇국을 마음 담아 끓였다. 펄펄 끓는 국은 벌써 드리는 기도이다. 기도하는 엄마, 기도하는 아내의 공석을 기쁘게 감당해주는 가족들에게 남기는 감사의 편지이다. 그리고 이제 떠난다. 침묵과 고독 속에서 애인 만나러! 2024.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