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하루 종일 강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몸이 정직하게 말한다. 9월28일 토요일. 내적여정 하루 세미나 마치고, 평소 같으면 회식으로 긴장 풀 시간이지만 간단한 식사하고 서초동으로 향했다. 연구소 공식 일정도 아닌데 연구원들이 죄 서초동으로 출동이다. 몸이 안 좋아 집에 계시는 선생님은 아쉬워 어쩔 줄 모르시고.


서초역에서 나갈 수나 있을까 하면서 그저 사람 파도에 밀려서 떠나녔다. 파도에 몸과 마음과 목소리를 맡겨 흘러간다. 하루 종일 강의하느라 목을 썼는데 어디서 새힘이 흘러나와 검찰개혁! 검찰개혁! 외치며 춤추듯 걷고 있었다. 


인파와 구혹 속에서 귀를 의심하게 하는 구호를 들었다. 문재인 개새끼, 문재인 개새끼. 뭐라고? 200만 인파에 둘러싸인 섬같은 맞불(은 무슨!)집회 앞이었다. 우리는 인산인해지만 쌩목인데 빵빵한 스피커에 대고 어떤 여성이 외쳤다. 


법치수호-조국구속-문재인 탄핵


스피커가 선동하면 쌩목의 촛불들이 하하 웃으며 받아쳤다. 


검찰개혁! 조국수.호! 문재인체.


누가 어디서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외치는 소리에는 흥이 넘쳐난다. 번쩍 촛불을 드는 팔도 춤을 추듯 흔들린다. 높다란 무대 위에선 남자는 빵빵한 스피커로도 부족하다는 듯 피를 토한다. 문재인 개새끼 조국 개새끼. 온몸을 뒤틀어 젖먹던 힘까지 짜내는 폭력성이 차라리 가련하다. 촛불 시민들은 힘도 안 들이고 하하 웃으면 문재인, 체고!로 받아친다. 흘러가는 인해, 사람의 파도들, 이 사람들이 진심 체.고! 체고! 최고!


지난 8월, 검찰개혁 정국이 시작되던 시점 조국 장관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어 잠을 잘 자지 못했다. 그 어간에 투병 중이시던 권사님의 병세가 악화되신 일이 겹쳤다. 며칠 인생 최악의 불면의 밤을 보내고, 권사님 장례를 치르고, 연이은 여름 수련회 강의로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한 칸도 남지 않았었다. 남편의 분석만 간간이 들으며 가급적 뉴스를 멀리했다. 내 한 몸 지키기 위한 방어였다. 그래도조국 장관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촛불 광장에 나가면 에로틱 파워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흘러다니는 느낌이다. 에로틱 파워란 다름 아닌 프로이트가 말하는 삶 충동이다. 성 충동 그 이상의 에너지이다. 가장 긍정적으로 발현될 때 생명 에너지라 할 수 있다. 여성신학자 카터 헤이워드는 하나님을 '에로틱 파워'라고 불렀다고 한다. 바로 그 충만한 생명, 생기이다. 서로에게 한없이 너그러지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양보하면 길을 터주고, 가져온 것을 나눠주는. 별다른 말이 없어도 긍정 에너지로 하나 되는 느낌이다.


남편이 기독교인들의 이기적이고 편협한 자아를 설명하며 들려주는 자기 경험이 있다. 어렸을 적 어머니따라 기도원에 가서 겪을 일이다. 앉을 자리가 비좁아 한 번씩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강사 목사가 '할렐루야' 하면 '아멘'을 외치며 방석을 들고 앞으로 한 뼘씩 이동하는 시간이었단다. 상상할 수 있 듯, '아멘'은 크게 외치되 앞으로 나가지 않는 분들이 있고 그분들 앞에 공간이 생겨 편안해지되 바로 뒤에 앉았던 엄마 따라간 어린 아이는 뒤에서 밀리고 앞에서 막히니 숨이 막히는 지경이 되었다고.


촛불 광장에 나가면 딱 그 반대이다. 자기 공간을 내어주는 사람들로 중간에 누가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바로 길이 난다. 나가는 사람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도 그렇게 말랑할 수가 없다. 그 사이에 들리는 욕설은 타나토스 충동이 광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현장이다. 극단의 공격성, 배제와 혐오. 자기로 가득 차 누구도, 무엇도 침투할 수 없는 타나토스의 감옥에 갇힌 자로 보일 뿐이다. 


젊은 시절에 기도가 목말라 어느 대형교회 철야집회 간 적이 있다. 극장식 좌석이었는데 늦게 온 사람들이 안쪽의 빈자리로 들어가려 할 때, 무릎을 틀어 자리를 내주는 분들의 짜증스런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심지어 통성기도를 한 판 하고나서 찬송 부르는 시간이었다.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 나 역시 종교생활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인간이기에 어디서 어떤 본색을 드러낼지 모르니까. 


어쨌든 촛불광장에는 교회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톨레랑스가 있고, 유머와 재치로 받아치는 너그러움이 있고, 에로틱 파워가 사람들 사이에 강처럼 흐른다. 희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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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진정성을 몰라준다! 분통 터트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있을까.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절규가 절절해지는만큼 진정성은 그 진정성에서 멀어지는 것 아닌가. 타자에게 피력할 것이 아니라 차라리 내 안의 진정성을 스스로 묻고 의심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드러나 타자에게 다가가는 것만이 진정한 진성성이지 싶다. '제발 나를 믿어달라'는 사람을 신뢰하게 되지 않는다. 상대에게 가닿지 않는 진정성이란 이미 틀려먹은 진정성이고, 진정성을 우기는 것이 곧 자기방어임을 깨달았을 때, 정말 큰 자유를 느꼈다.  


이 지점에서 늘 떠오르는 청년 시절 일화가 있다. 청년들과 눈만 마주치면 "우리 아내와 상담해라. 밤 12시에 전화해도 된다" 하시던 교회 어른이 계셨다. 결혼 이후엔 젊은 부부에게 그러셨다. "우리 부부는 여태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했다. (당시 아마도 60대). 결혼생활에 어려움이 생길 때 언제든 우리 아내와 상담해라."라고 하셨다. 상담은 커녕 일상적 대화를 위해서도 찾고 싶지 않았다.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 마음을 얻는 일이다. 에로스 사랑을 물론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 어느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 그것은 애써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의 진정성을 내 편에서 설득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께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빌라도가 말했다. "말하지 않을 작정이냐? 나는 너를 풀어 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요 19:9-10)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다 (사 53:7)


진정성의 숙명은 자기변호가 불가한 고결함에 닿아 있음이다. 예수님처럼. 진정성은 결국 오해로 버림받는 것으로 증명되어야 하는 것인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아픈 이유 역시 자기 정당성을 증명할 언어를 스스로 잃기로 작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도, 예수님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도 그러하다. 내 혀 끝에 매달린 수많은 해명과 변명의 말들, 내놓지 못한 그 말을 밀어내지 못한 억울함으로 빨라지는 심장박동. 내가 아직 나의 선생님 예수님의 발끝도 미치지 못함이다. 


김정숙 여사의 파란 브로치를 두고 '멍멍'하는 소릴 들었는데, 저 사진을 뉴스에서 봤다. 해명과 변명의 말대신 몸으로 다가가 눈을 맞추고 손 내미는 문대통령 부부, 두분의 행동으로 감동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진정성이 빛나는 순간들이었다. 이렇듯 비루한 해명을 해야 하는, 진정성을 증명하는 오욕이 안타깝다. 멍멍 소리에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 보유국 국민이라 참 좋은데, 되돌려 드릴 수 있다면 싶었다. 진정성을 해명할 필요 없는 자리, 양산의 '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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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3주기와 함께 다시 돌아온 고난주간이다. 지난 4월 11일, 채윤이는 [세 번째 봄, 열일곱의 노래]라는 이름의 음악회 무대에 섰다. '꽃다운 친구들에게'라는 노래를 부르고 '내 영혼 바람되어'와 '친구'를 콜라보 하여 연주하였다. 뭐가 뭔지 모르고 덥석 하겠다 했는데 쉬운 무대가 아니었다. 채윤이 같은 고딩 아마추어에게는 너무도 큰 무대였고, 공연 며칠 전에는 검정고시가 있어서 연습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리허설 다녀와서 울고, 음악회 시작 한 시간 전에는 손가락이 떨려 피아노를 못 치겠다고 울고..... 채윤이 음악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트라우마가 되겠구나, 각오를 하고 있었다. 막상 무대는 음악이 아니라 열일곱, 열여덟 꽃다운 나이의 존재 자체로 감동을 주었다. 또 다른 꽃친 지인이, 그리고 경이 언니. 세 청소년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3년이면 탈상인데. 3년 정도면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울고 난 후에 기꺼이 떠나 보낼 수 있는 시간이기에 탈상이다. 헌데 아직 슬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부모들이 피멍 든 가슴을 안고 마지막 무대에 섰다. 여기까지 쓰고는 공허한 말을 나열했다 지웠다, 나열했다 지웠다...... 말을 찾지 못하겠다. 채윤이 같은 아이를 잃고 타버린 가슴을 국가권력에 의해 교회라 이름하는 종교집단에 짓밟히고 또 짓밟히는 부모들이 노래한다. 노래가 아니라 피 울음이다. 그 무대에 내 아이를 세워놓고 연주를 잘할까 틀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나에게 쌍욕을 해주고 싶은 마음. 가 닿을 수 없는 저들의 고통 앞에서 내가 밉고, 이 나라가 싫고 교회가 역겹다.  

주님, 언제입니까. 탈상은 언제입니까. 언제쯤 진실을 드러내 저들을 신원하시렵니까. 이미 돌아오지 못할 내 사랑, 뼛조각이라도 품에 안아보자는 엄마의 절규를 외면하지 않으시겠지요

"지금 저의 나이였던 언니 오빠들을 떠나보낸 부모님들이 저의 부모님이기도 합니다." 연주 중 했던 채윤이 짧은 나레이션이다. 물론이다. 나도 같은 말로 받는다. '지금 내 아이 나이였던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님들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평생 이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끝까지 이분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이며 동시에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록 오늘 이 비극적인 음악회에서 내 아이가 노래하다 삑사리 낼까, 피아노 치다 손가락이 미끄덩할까, 온 신경을 집중하는 비루한 엄마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그렇게 '작은' 엄마로만 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큰' 엄마이다. 이땅 모든 아이들의 엄마이다. 내 새끼 귀한 줄 알면 남의 자식도 똑같이 소중하단 것을 잊지 않고 살겠다. 

음악회 마치자마자 전화를 받았다. 음악회에 오신 100주년기념교회 S구역장님이다. 반가움에 얼굴 뵙기로 했다. 채윤이를 격려하시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음악회 마치고 지인들 인사하니 꽤 늦은 밤이었다. 채윤이에게 케이크 하나를 주고 싶은데 기다려줄 수 있겠는지 물으셨다. 평소 같으면 아니라고, 마음만 받겠다고 손사래를 했을 터. 그러시라고 했다. 그 밤에 문 연 케이크 가게를 찾아 뛰어다니실 것이 몹시 죄송하고 불편하면서도 그러시라고 했다. 구역장님이 건네시고 싶은 케이크가 채윤이는 물론이거니와 열일곱 꽃다운 그 친구들을 향한 더 큰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채윤이는 채윤이가 아니다. 채윤이는 꽃다운 친구들이다. 채윤이가 연주하고 부른 노래 '꽃다운 친구들에게'는 작년에 1기 꽃친들과 만든 노래이다. 함께 무대에 선 지인이와 함께 꽃친 1기 모두의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1기 친구 중 희연이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 가 있으니 이것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품는 노래이다. 연습하며 자주 이런 얘길 했다. '아, 이 가사는 유진이 감성에서 나온 건데. 마지막 멜로디는 지우가 만든 건데. 지우가 꼭 와서 들어야 하는데......' 채윤이 안의 1기 꽃친이 함께 부른 노래이다. 채윤이는 채윤이가 아니다. 내 딸 채윤이는 세월호에서 수장된 그 딸들이다.

나도 내가 아니다. 나는 그 구역장님과 함께 심야의 청파동 길을 뛰어다닌 나이다. 열일곱 꽃다운 친구들에게 케이크 하나 주고 싶어서 말이다. 나는 416 합창단의 어머니 단원이다. 채윤이 현승이 아닌 이 땅의 아들과 딸을 품고 낳았던, 그리고 억울하게 그 아이를 잃은 엄마이다. 국가권력과 종교의 폭력에 연거푸 두들겨 맞고 거리에 패대기쳐지는 삭발한 엄마이다. 비록 오늘 이 널따란 무대에서 내 새끼 얼굴 외에 보이지 않는 이기적 엄마라 할지라도. 그렇더라도 나는 세월호의 엄마이다. 객석에 앉아 내 딸만 바라보는 엄마이며 동시에 무대에 노란티 입고 서서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속에 머문 그대여' 노래하는 엄마이다. 이것을 잊는 것은 내 앞에 고통받는 자의 얼굴로 다가오신 고난의 예수님을 잊는 일이다. 그것은 나를 잊는 일이니 나는 세월호 엄마이다.

2017년 고난주간은 음악회 중간에 드린 창현이 엄마 최순화 님의 기도로 족하다.
이 기도에 가슴 치며 절망하다 희망 한 줄기 붙들게 되니
이 기도야말로 십자가의 신비, 고난과 부활의 신비이다.


창조주이시며 전능자라고 불리우는 당신께 기도드리는 건 쉽지 않습니다. 3년 전 우리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마지막 기도를 외면했었으니까요. 당신께 등돌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든 당신이 계시더군요. 더 이상 울 힘조차 없어 그저 멍하니 앉아 바다만 바라보던 팽목항에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청해야 했던 국회에도, 내리쬐는 땡볕을 피할 그늘 하나 찾기 어려웠던 광화문에도, 하수구 냄새에 시달려야 했던 청운동 사무소에도, 침몰지점이 바로 눈 앞에 보이는 동거차도에도, 그리고 병든 몸을 이끌고 세월호가 누워있는 목포신항에도 당신은 계셨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랐던 분들이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다가와서 안아주시며 같이 울어주시는 따뜻함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당신께 기도할 때 그 기도 좀 들어주시지 왜 우리 아이들이 없어진 지금 모르는 사람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나요?

고난주간이면 우리 죄를 대신해서 당신의 아들을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격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묵상하고 죄짓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그 고통에 가 닿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우리 아이들이 없어진 이후엔 그런 노력 하지 않습니다.

매일매일이 고난주간이고 십자가와 세월호는 동일시되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짊어지신 십자가와, 수학여행 가던 단원고 아이들을 태우고 가다가 침몰당한 세월호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 불경스러우신가요?

2천년 전 그날, 낮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세시간 동안 어둠이 덮치고, 성소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졌다는 기록은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아픔을 느끼게 해줍니다.

같은 아픔을 나눌 수 있는 분이 하나님 당신이셔서 다시 당신께로 향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으면서도 자신을 못박은 사람들이 몰라서 저지른 일이라며 저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닮기란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렇게 기도하신 예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가장 잘 섬긴다는 큰 교회들은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보다는 애써 외면하거나 오히려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처럼 모르고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위해 쌓아 올린 바벨탑이 너무 높고 견고해서 밖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는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저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저들을 불쌍히 여기실 분은 하나님 당신 밖에 없습니다. 저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예수님이 짊어지셔야 했던 십자가의 고난이, 십자가의 용서가 저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세요.

낮은 곳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당신의 임재와 사랑을 기다립니다. 팽목항에서,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청운동 사무소에서, 동거차도에서, 목포신항에서 만났던 당신을 닮은 사람들이 오늘 이 곳에 가득합니다. 부디 이들에게 청결한 마음을 주셔서 당신을 보게하시고 세미한 당신의 음성이 들려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2017년 4월 11일
단원고 2-5 이창현 군 어머니 (최순화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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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보내며 고난주간에 있을 특별한 음악회를 소개합니다.

아래 초대의 글과 안내는 황병구 본부장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

'열일곱 꽃다운 친구들' 이름으로 채윤이가 무대에 섭니다.

작년 꽃친을 하면서 친구들과 공동작업으로 만든 노래 '꽃다운 친구들에게'를 연주합니다.

음악회에는 못 오시더라도 위의 영상은 한 번씩 봐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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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우리 아이들을 고통 속에서 구하지 않으셨나요? 우리 죄악을 우리에게 묻지 않고 왜 열일곱 꽃다운 생명들을 거두어 가셨나요? 여러 날이 지나도 눈물 그치지 않았던 그 창백한 봄날을 기억합니다.

눈물과 아픔으로 맞은 첫번째 봄, 눈물은 이 땅의 이웃을 만나 큰 강물이 되었습니다. 또 한 해가 지나 두번째 봄, 무책임한 권력을 향한 분노는 들에 부는 높은 바람이 되었습니다. 또 한 해가 흘러 세번째 봄, 진실을 기다리는 간절한 그리움은 이제 노래가 되고자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보듬고 의롭게 싸웠던 믿음의 벗들을 기다립니다. 더불어 손잡고 진실의 부활을 노래하는 자리로 초대합니다.

고난주간 세월호를 기억하는 그리스도인 음악회 [세번째 봄, 열일곱의 노래]! 고난주간 화요일 4월 11일 저녁 7시 30분 청파동 삼일교회예배당에서 함께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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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꿍이


대학 친구들 모임이 8차 촛불집회가 있는 토요일이었다.

사는 곳이 제각각이라 만남의 장소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서울역 근처 좋은데'하는 한 친구의 말을 내가 덥석 물었다.

빛의 속도로 서울스퀘어 맛집 검색하여 후보 식당을 단톡에 올리고 장소를 확정했다.

친구들 모임에서 내가 그나마 빠릿해서 주로 하는 역할이기도 하지만

모임 마치고 '마실 삼아 광화문 가볼래?' 해볼까 싶은 사심도 있었던 것.


내 친구들


엄마, 어디 가?

응, 친구들 모임.

그런데 왜 그렇게 나가? 좀 예쁘게 하고, 있어 보이게 하고 나가.

털 조끼 입으면 부자 싸몬님 같아 보여.

괜찮아. 엄마 친구들은 다 엄마보다 부잔데 티 내는 사람 없어. 

엄마가 제일 많이 꾸미는 편이야.

아닌 게 아니라 50 바라보는 여자 다섯이 모이는데 얼굴에 주사바늘 하나가 없다.

이런 친구들.




소심


촛불 안 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모임이 있다. 

지난 주 광화문에서 들은 노래, 어느 초딩의 자유발언 같은 것들이 자연스런 대화 주제가 된다.

이 친구들 모임에서 촛불시위는 머나먼 얘기다.

그런 친구들과 함께 잠시라도 광화문에 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에 가면 준비가 됐든 아니든 '더 큰 나, 더 큰 우리'를 만날 거라는 확신 때문이다.

직장, 육아, 아이들의 입시와 입대..... 주어진 삶의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며 사는 친구들이다.

한 발 물러서서, 또는 한 발을 디밀어서 일상을 달리 보는 눈을 가질 수 있거나,

적어도 다른 공기에서 숨을 쉬어보는 신선함을 경험할 수 있었으면 싶어서이다.

농담처럼 몇 번 권유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난 그런 데 무서워. 우리 남편이 근처에 있지 말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해.'

그래, 안녕! 넌 버스? 넌 지하철? 난 광화문 쪽으로 걸어가려고.


나이 값


친구들과 헤어져 터덜터덜 걷다 박사모 행진대와 마주쳤다.

합리적이지 않기로 굳게 마음 먹은 듯한 굵은 주름의 얼굴들.

억장 무너지는 손피켓과 구호를 넋을 놓고 바라보게 된다.

정신 차려보면 멍하니 서서 차도로 걷는 그들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탄핵무효! 탄핵무효! 인원에 비해 힘은 한참 딸리는 소리이다.

그때 인도 쪽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가는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 값! 나이 값!

차도의 행진대열과 비슷한 연배의 남성이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되어 외치며 지나갔다.

차도 쪽 구호 사이사이 기가 막힌 박자로 장단을 맞춘다.

탄핵무효! 나이 값! 탄핵무효! 나이 값! 탄핵무효! 나이 값! ㅋㅋㅋㅋㅋ

'나이 값'을 외치는 젊은 할아버지의 등 뒤에 양손으로 엄지 척을 올려드렸다.

엄치 척과 동시에 내 기분도 업! 되어 힘을 내서 걸었다.


전도


광화문 바로 앞까지 걸어 무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역시나 한 사람, 한 사람, 한 우주, 한 우주가 몰려든 광장.

일행 없이 입 꾹 다물고 있다 구호 외치는 타임에 크게 소리 지르면 내 소리에 내가 놀라게 되지만.

혼자여도 좋은 곳이 촛불광장이다.

자유발언이 지루해질 즈음 휴대폰을 꺼내 들었는데, 마침 전화가 온다.

아까 헤어진 친구 중 하나.

여보세요, 하는데 수화기 넘어 쩌렁쩌렁 울리는 마이크 소리가 이중창이다.

'신실아, 나도 여기 있어. 하하하하하'

2차로 다른 약속이 있다던 친구, 그런 데(촛불집회)는 무섭다고 했던 친구이다.

바로 카톡으로 인증샷도 주고 받았다. 이런 느낌들 아실랑가?

'야, 교회 가자. 이번 주일 총동원 주일인데 재밌는 것도 많이 하고 선물도 줘'

어설프게 전도했는데 친구는 말한다. '우리 집은 불교야'

아, 불교.... 그럼..... 헤헤. 지킬 건 지켜줘야지. 깔끔하게 접었는네

주일 아침에 제 발로 교회에 찾아와 나를 찾는단다. 이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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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어떤가 하며 다 된 빨래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햇살이 따사롭고 겨울 찬바람도 없습니다.

겨울이라지만 빨래 말리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시작한 토요일 촛불집회가 어느새 6주가 되었습니다.

10월, 11월, 12월. 날씨가 점점 추워질 텐데 저 거짓투성이 권력은 언제나 국민의 뜻에 굴복하려나.

저 어둠은 언제나 빛 앞에서 제 본색을 드러내고 쫓겨나려나.

토요일마다 날씨 걱정을 했습니다.

차디찬 아스팔트에 자리 깔고 앉은 사람들의 건강이 걱정이고,

날씨 탓에 촛불 수가 줄어들면 저 어둠과의 팽팽한 격전에서 한 발 밀릴까 걱정이고.


비가 온다 안 온다 하던 지난 토요일에 걱정이 제일 컸는데

다행히 비는 살짝 오다 말았고, 저녁에 나갔더니 아스팔트는 젖었지만, 깔개 깔고 앉을 만 했습니다.

누가 그럽디다. '하나님이 날씨로 도우셔'

'오늘도 날씨로 도우시네요. 감사합니다. 주님' 했습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마음 가득 햇살 머금고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설교준비로 골방에 들어간 남편에게 커피 한 잔 내려주고 제 자리에 앉습니다.

문득 나의 주님께 편지 한 장 올리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 이 맑고 따사로운 날씨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이었어요.

빨리 널고 내려와야지, 하면서 외투도 걸치지 않고 올라갔거든요. 추울 각오를 하고요.

당신은 늘 그렇게 예상을 빗나가는 방식으로 감동을 주시죠.

다시 한번 오늘 날씨 감사 드려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겠습니다.

그렇다고 부담 갖지는 마세요. 주님.

신경 쓰실 날씨가 한두 군데가 아니실 텐데 다음 어느 토요일 날씨가 궂고 춥다하여 당신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게요.

실은 전에 많이 의심하고 분노하고 실망한 적이 많았지요. 죄송해요. 늘 버릇 없이 기도해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이 여전한 것을 바라보며, 악이 승승장구를 바라보며 견딜 수 없었어요.

도대체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 왜요? 뭐 하고 계세요? 어디 계세요? 몸부림했어요.


몇 주 광장에 나가서 생각하곤 해요.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이렇게들 몰려들었을까?

문득 작년 어느 뜨거운 날 경복궁 근처에서 세월호 피케팅 했던 날이 생각났어요.

버스 안의 몇몇 할머니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손가락질했지요.

그 눈빛과 손가락질이 내가 아니라 세월호 엄마 아빠들에게 향한다고 생각할 때 견딜 수 없었어요.

점점 한산해지는 광화문, 나조차도 잊어가는 세월호. 저들의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은폐와 무시.

그럴수록 외롭게 피눈물 흘릴 세월호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아, 당신이 이 눈물을 보셨군요. 이 피맺힌 한을 보시고 정유라의 이대 입시로 시작하여

한 대의 태블릿피시가 세상 앞에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울음 삼키며 끝까지 세월호 보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손석희 사장 앞에요.

젊을 때 고통의 극한마다 떠올리던 찬양이 맴돌았어요.


물가로 나오너라 내게 오라 너의 목마른 것 내가 채우리라

어둠에 헤맬 때 흘리던 네 눈물 그 눈물 위하여 내가 죽었노라


주님, 이제 저는 힘없는 이들의 눈물이 적신 땅에 당신의 손길이 머문다는 것을 가슴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어제 낮에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기나긴 통화를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눈물이 전화기를 타고 제 귓불로 흘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밤에는 오랜만에 공동체와 함께 하는 뜨거운 기도를 드렸어요.

그곳에도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아니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제 이미 눈물로 가득찬 제 마음을 보셨지요?

당신 긍휼의 마음이 상실한 이들의 눈물에 얼마나 취약하신지 알아요. 이젠 정말 알아요.

우리에게 향하신 당신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신데, 그 크기가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라 하셨으니까요.

가끔 당신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도 많이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흐리고 비 오는 추운 날이 오더라도 말이에요.

주님, 부디 제 마음에서 눈물 마르는 일 없도록 도와주세요.

언젠가 좋은 나라에서 당신을 뵙는 날, 이 눈물 모두 닦아주시겠지요.

햇볕에 바짝 마른 수건처럼 보송보송한 영혼으로 당신과 더불어 호흡하는 날이 있겠지요.


오늘도 광장에, 우리와 함께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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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한 구석에 드디어 대림절 초 하나가 켜졌습니다.

기다림의 초는 대림절기를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타올랐습니다.

토요일마다 온식구가 광장으로 나가 기다림의 초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올해 밝힌 대림초는 유난히 뜨겁고 유난히 애절합니다.


사복 입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주일예배 드렸던 꿈같은 몇 주, 

그 마지막 주일은 청파감리교회였습니다.

여기서도 대림절 1주 예배를 보라색 초를 밝히며 시작하네요.

보라색 초는 세상의 악에 대한 '심판'을 상징한다 설명하시는 목사님의 차분한 목소리에서 힘이 느껴집니다.

청파교회 예배에서 드린 공동기도문을 우리집 대림 1주 의례에서도 읽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우리가 영원히 바라볼 생명의 빛이 되시는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님, 그리스도 오심을 기다리며 대림절 첫 번째 촛불을 켭니다.

어둠 가득한 이 세상과 우리 마음에도 주님이 주시는 밝은 빛이 찾아들길 원합니다.

그리고 또한 주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어 주셨듯이 우리도 그 누군가의 빛이 되어 살게 해주십시오

주님, 벽을 마주하고 살아가는 듯한 이 나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 겨주십시오.

부패와 거짓으로 찌든 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고 국민들의 마음을 갑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정의와 진리의 오른 팔로 그 벽을 무너뜨려주시고 이 나라와 이 땅을 새롭게 만들어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그리고 요즘 우리의 마음에 뜨겁게 울리는 이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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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모 소개팅녀와 주고받은 톡입니다.

시국이 이렇고, 엄중한 주말이라 하지만 모처럼 잡힌 소개팅을 엎을 수는 없지요.

그래서 말렸습니다.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으니, 다음 주에도 기회가 있다.

소개팅에 집중하라, 광장은 내가 지킬게, 어르고 달래서 나오지 못하게 했습니다.(캬캬)   


모처럼 잡힌 소개팅 약속이 아니라면, 그 정도 중헌 뭣이 아니라면 광장으로!

뉴스 중독자 되어 경악하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나날입니다. 막장 뉴스 폐인입니다.

그런데 광장에 서면 다른 것이 보입니다. 희망의 불씨가 번져 들불이 되고 있습니다.

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함성에 파묻히고,

와아아 촛불 파도타기에 있는 몸을 싣는 것만으로도,

인파에 밀려 발길 닿는대로 행진하는 것만으로도 뜨거운 기도가 됩니다. 

내일 광장에서 만나요!









백만 개의 촛불이 밝혀진 날, 나는 조금 일찍 움직여야했다. 꼭 가보고 싶은 mary 언니님의 합창단 공연이 4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장소는 성균관대였고, 여러 곳에서 사전 집회가 낮부터 시작되었다. 마침 대학로에서는 그리스도교 연합 시국 기도회가 있어서 여기 참석하고, 연주회 갔다가, 광화문으로!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채윤이는 3시에 탑골공원에서 있는 청소년 시국 집회에 가고 싶다고 한다. 현승이는 이랬다저랬다 하더니 외삼촌 식구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가는 것으로. 종필 아빠는 멀리 이스라엘에 있는데 갈릴리 호숫가의 야경이 모도 촛불로 보일 지경이라나.   





지난 번 집회에서 이재명 아저씨에게 반해버린 채윤이는 2시, 대학로 집회에 이재명 시장 뜬다는 소식을 접하고 엄마와 같이 일단 대학로로 가겠단다. 채윤이와 나란히 앉아서 시국 기도회에 참석했다. 늘 그렇듯 기도회 진행은 아쉽다. 시국 기도회는 약간 흥분하고 선동하는 방식의 발언과 기도 일색일 필요는 없는데. 자연스럽게 마음을 담은 기도를 해도 좋을텐데. 그저 몸으로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기도이긴 하다만. '뜻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해 아래 고통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두 팔로 막아 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찬송을 부른다. 87년, 대학 1학년 때 절절한 마음으로 불렀던 찬송. 시위하면서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군화 발로 밟아 주시어....' 개사해서 부르기도 했던. 성인이 다 되는 채윤이와 길바닥에 앉아 이 찬송을 부르노라니 감정이 밀려와 말이 나올 길을 틀어막아 버렸다.

 




촛불집회까지 버티려면 밥심을 충전해야지. 점심 먹고 채윤이는 청소년 집회로, 나는 조금 배회하다 성균관대로 갔다가 저녁에 광화문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채윤이 총총 사라지고 '하야 물결' 가득한 길에서 서성이는데 노란 물결, 세월호 가족들이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연설이 들리기에 까치발 들고 봤더니 함세웅 신부님이다. 곧 광화문을 향해 행진이란다. 카페에 가 앉아 책 보면 좀 쉬다 4시 음악회에 가려는 계획이었는데 어느새 몸이 행진행렬에 파묻혀있다. 아, 이거 거부할 수 없는 걸음이구나. 노란 스카프, 노란 현수막, 노란 엄마들이 가득하니 이탈이 불가하다. 걷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깃발이 나부낀다. 크고 작은 이름 모를 단체들, 삼삼오오 뭉쳐 걷는 사람들, 홀로 터벅터벅 걷는 사람들. 어디에서들 이렇게 몰려든 것이오! 잠깐 행진하다 돌아올 생각도 있었으나 대학로를 빠져나가기도 전, 돌아갈 생각은 잊고 말았다.





'걷기'는 얼마나 좋은 운동, 아니고 기도인지. 더불어, 홀로 걷는 이런 걸음은 온몸으로 드리는 기도이다.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걷는 동안 내 마음에서 심령대부흥성회. 가끔 외친다. 예수천당 불신지옥, 아니고 박.근.혜.는/하.야.하.라. 세.월.호.를/인.양.하.라. 일.곱.시.간/근.혜.퇴.진. 외치고 다시 기도한다. 기도하고 다시 노래한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어느새 종로길, 탑골공원 앞이다. 한가득 파릇한 우리 애기들이 모여있다. 우리 채윤이 저 인파 어딘가에 앉아 있다. 채윤이 좀 찾아보려고 눈알을 굴렸는데 저깄다! 싶어 자세히 보면 다른 딸내미. 또 저놈인가, 싶어서 보면 다른 딸내미. 그래, 너희들 다 내 딸이고, 아들이다! 대견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꼬치너 몇과 함께 집회에 참석한 채윤이는 교회 찬양팀 연습에 갔다가 늦게 다시 광화문으로 달려가 촛불을 밝혔다.




광화문 사거리는 이미 자리 잡고 앉은 사람들도 꽉 차 있었다. 교보빌딩 앞 인도에 걸터앉았다. 사람구경 시작. 여기 모인 사람들이란, 진짜 남녀노소의 자유분방한 조합이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겠다. 헐렁했던 인도의 인구밀도가 몇 분이 다르게 높아지더니 내 얼굴 바로 앞에 사람들 엉덩이가 왔다갔다 한다. 한 시간은 지났나보다. 외삼촌 식구들과 함께 현승이가 충정로역에 내렸단 소식이다. 또 건너편 정동교회 쪽에는 꽃친 가족들이 모여들고 있다. 이제 진짜 촛불잔치, 아니고 촛불시위를 시작할 시간. 지금껏 많은 사람과 함께 홀로였다면 이젠 나의 사람들과 함께 함께이다.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건너가 만날 길이 묘연하다. 이미 길은 촛불로 뒤덮였으니. 어쩌지, 하고 일어서는데 눈앞이 뿌예진다. 혈압이 또 떨어진 게냐. 몸의 기운이 쏙 빠져나간다. 빨리 집으로 가서 눕는 수가 대수지, 싶다. 인파를 거슬러 종각으로 가기로. 무슨 정신으로 걸었는지, 어떻게 지하철을 탔는지 어쩌다 침대까지 왔는지. 필름이 뚝 끊어진 것 같다. 채윤이 현승이 목소리에 눈을 떠보니 밤 10시가 다 됐다. 광화문의 바람을 가득 품은 두 녀석이 집회 상황 브리핑하느라 시끌시끌.


그렇게 우리 셋은 백만 개의 촛불 중 하나가 되었다. 아니 갈릴리 호숫가에서 마음만은 광화문으로 향하는 아빠도 있으니 네 개의 촛불. 백만 분의 일 픽셀을 감당하겠노라는 이름 모를 마음들이 모였다. 백만 개의 촛불이 만들어내는 그림, 파도타기 영상은 정말 짜릿한 감동이다. 그런데 일 픽셀, 저 점 하나의 빛은 각각 하나의 우주라는 것을 아는가? 하나의 빛에 담긴 사연과 분노와 좌절과 기대와 기도는 우와아아아 파도타기 영상을 보며 터지는 탄성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함이라는 것을. 백만 개의 초가 아니라 백만 개의 우주가 모여 박근혜의 인간 도리, 인간의 도리를 위한 마지막 기회를 촉구하고 돕는다는 것을. 이렇게 우주가 나서서 돕고 있다. 박근혜 씨, 제발 좀 알아들으라. 이 기회에 무엇을 얻을까 눈알 굴리고 있는 정치인들, 저 빛이 진실의 빛임을 좀 알아먹으라. 백만 개의 우주가 '길가에 버려져' 있다. 



   











세월호 2주기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23일 토요일, 팽목항 기도회에 다녀왔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기독인 모임​'이 도모한 긴 하루의 일정이었다.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여 서울역 앞에서 7시에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니 11시 40분. 열 시간 넘게 버스를 탔으니 기도회는 짧고 멀미는 길었다. 사서 고생을 하면서 마음이 편하지도 않았다. 기사를 보는 순간 '어머, 여긴 가야해!' 두 번 생각도 안 하고 신청했지만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툭 올라온다. 가기 전에도 그랬고, 당일도 내내 마음 한 구석 편치 않았다. 내가 나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이거였다. '미안해할 것 없어. 가족 대표로 가는 거잖아. 김종필, 김채윤, 김현승을 대표해서 가는 거야' 그래, 가족 대표다.





# 남편에게 미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이 왠지 늘 미안하다. 남편 두고 혼자 놀러갔다 올때는 덜하다. 이런 일, 팽목에 기도하러 가거나 이런 저런 집회에 혼자 다녀올 때 '그래, 갔다와' 하는 남편 목소리가 참으로 쓸쓸하게 들려 긴 여운으로 마음에 남는다내가 김세윤 교수님의 북토크에 가고, 꿈공부 모임에 가고, 팽목을 다녀온 금토 이틀 남편의 일정은 늘 하는 행정업무 이외에 주례, 심방, 상담, 선교사 묘원 비석 닦기?였던가, 용인 순교자 기념관 청소하기였나? 그러했다. 마음은 거기 있어도 집회 한 번 함께 하지 못하는 물리적인 시간을 산다. 단지 물리적인 시간의 제약만도 아니다. 공인인듯 공인이 아닌듯 공인같은 민간인 목회자로서 경계에 선 긴장이다.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래, 갔다와' 하는 말에서 많은 것이 느껴진다. 금, 토를 내 좋아서 하는 일로 다니다 밤 12시가 다 되어 집에 돌아왔다. 주일 새벽 출근 준비하는 남편이 장롱문 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면서 '엇, 셔츠 다려놓은 것이 있나?' 잠이 확 달아났다. 자는 척 숨죽이고 있다 실눈 떠보니 양복(이라 쓰고 목사의 작업복이라 읽는다)착용 완료상태다.


미안해, 여보. 내가 당신 대신해서, 대표해서 다녀온 거야. 진실로 그래.


# 채윤 현승에게 미안


현승이는 금요일에 친구 집에서 자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에 학교 농구교실을 가야하는 현승이를 위해 프라이팬에 밥을 볶아놓고 나왔다. 카톡으로 일러둔다는 걸 깜빡 잊었더니 냉장고 뒤져서 먹다 남은 충무김밥을 꺼내 먹었는데 오징어 볶음이 매워서 우유 한 통을 다 마셨다며 전화가 왔다. 점심은 어떻게 하냐며, 김밥을 사먹으려 해도 돈이 없다며, 엄마 어떻게 점심 값도 안 놓고 갔냐며, 게다가 자기 돈 오만 원 짜리가 없어졌다며.... 그, 그 돈 엄마가 빌려왔어. 라면을 끓여 먹든 알아서 하겠단다.  채윤이 기상시간은 10시. '일어났는데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외롭다'다고 가족 톡방에 기상을 알렸다. 하루 세 끼를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 해놓고, 뒤져도 먹을 것 변변히 없는 냉장고를 해놓고 나온 게 됐다.


얘들아, 미안! 대충 먹고 엄마 없는 하루 종일을 지내준 너희 덕에 다녀온 거야.

너희 대표로 말이야.



#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함


팽목이란 말만 들어도 슬픔과 억울함과 분노의 통곡이 들리는 듯한데 차거운 그 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리려니 감정의 폭풍이 일어 속이 울렁거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자꾸 식구들에 대한 미안함이라니. 가족의 이름으로! 라는 말이 자꾸 생각났다. 세월호 2주기 어간 가족들 카톡 프로필 사진이 똑같았다. 정작 피켓을 만들고 들었던 현승이는 '이히히히'와 함께 쌩뚱맞은 사진이었지만. '현승아, 너 엄마 아빠 누나 톡에서 피켓 들고 있느라 고생이 많다'하고 농담도 했다.

기도회를 마치고 미수습자 가족 대표인 은화 엄마와 혁규 큰아버님과의 간담회가 있었다. 가족 대표로 간 채윤이 엄마가 미수습자 가족 대표 은화 엄마를 만난다. 얼굴을 마주하고, 육성을 듣고, 손을 맞잡을 수 있는 것이 만남이다. 그렇게 얼굴을 대하면 이념이고 정치고 명분이고 하는 것들이 얼마나 공허한 말인지 느끼게 된다. 몸으로 느끼게 된다. 가족이란 몸을 부대껴 사는 사람들이 아닌가. 더 이상 세월호 가족은 세월호 유가족이나 미수습자 가족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다. 마음이 그렇게 말했다. 


은화 엄마의 말이다. (뉴스앤조이 기사에서 가져옴)


"유가족들이 아이 찾아서 올라갈 때 우리 보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축하한다고 했습니다. 아빠로서 엄마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오갔던 곳이 바로 목항입니다. 저도 정말 유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진실 규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양이 먼저입니다. 세월호가 물속에 있으면 진실을 밝힐 수가 없습니다. 다섯 살 혁규가 지연이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줬습니다. 그냥 오빠니까 그렇게 한 겁니다. 여야·이념, 그런 정치 논리 다 버리고 일단 사람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이 원하는 인양은,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와 아홉 명을 다 찾는 것입니다."




가방과 옷, 자동차의 달린 세월호 리본과 뱃지는 늘 외롭다. 운전하고 가다 노란리본 스티커를 붙인 차를 보면 차선을 바꿔 옆으로 가게 된다. 조금 앞질러 가 내 차 뒤 유리에 붙은 리본을 보여주고 싶다. '나도 같은 마음이에요. 힘내요. 우리 잊지 말아요' 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40인승 버스에 탄 분들의 가방과 옷에는 주렁주렁 노란리본이다. 사실 그것만 봐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함께 한 친구, 우연히 반갑게 만난 장로님 부부, 한 버스에 탄 분들 모두가 가족이다. 존재로 고맙다는 말은 이런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가슴열어 그분이 사랑하는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일, 더 큰 가족을 일구어 가기 위해 나를 넓히는 일인지 모른다. 유가족, 미수습자 가족, 우리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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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화기도 304> 작업에 참여하기 위해 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기도 손을 촬영하는 작업에 다녀왔습니다. 꽃다운 친구 김채윤이 함께 했습니다. 304 개의 기도손으로 참여하며 작은 기도문구 하나를 남기게 됩니다. 채윤이는 '노란 건반 위를 걷는 기도'라고 했습니다. 양손 중지 전체에 붉은 물을 들이고 다니는 일이 피아노 치는 채윤이에게는 더 무게감 있는 일이겠습니다. 붉은 손가락으로 피아노 칠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는지 '건반 위를 걷는 기도'라고 처음에 적었습니다. 꽃다운 언니 오빠들이 잠겨버린 진도 앞바다를 건반 삼아 꽃다운 친구 채윤이의 붉은 손가락이 춤추듯 오가며 연주할 것입니다. 슬픔일지, 분노일지, 두려움의 춤일지 알 수 없습니다. 채윤이의 음악 속에 오래오래 이 언니들과 오빠들이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잘 걷던 공교육의 길에서 멈춰선 이유인지도 모릅니다. 채윤이의 음악 안에는, 삶에는, 우리의 삶에는 많은 '남'들이 '나'로 존재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음악이고 인간다운 삶입니다. 많은 '남'을 '나'로 수용하기에 내 마음이 너무 협소하다면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힘없고, 약하고, 낮은 이들이 늘 가장 가까운 이웃이어야합니다.  봉숭아물이 다 져버린다해도 채윤이 마음에 들인 봉숭아물은 내내 살아있기를 바랍니다.







남겨진 자로서 살것입니다. 생명과 사랑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질 때마다 저 역시 마음의 손가락에 들인 붉은 봉숭아물을 꺼내보곤 하겠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책꽂이에 있는 여러 권의 세월호 관련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남겨진 자들의 신학 : 세월호의 기억과 분노 그리고 그 이후>라는 책을 봅니다. 세월호 이후 남겨진 자로서 길을 잃고 헤맬 때마다 나침반이 되어주셨던 김기석 목사님의 글이 눈에 들어옵니다. 남겨진 자로서의 삶이 구호나 운동이 아니며, 끝도 없는 슬픔에 젖어있는 감상주의는 더더욱 아닙니다다. 적어도 제게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닿습니다. 목사님의 글이 제 마음을 붉게 물들입니다.


"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 속에 아이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고 싶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유가족들에게 감히 그 아이들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있다는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이 위로의 메시지는 결코 이 시대의 어둠을 향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 부패한 사슬을 묵인하는 거짓 용서와 혼동돼서도 절대로 안 된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우리 곁에 함께 살아 있음을 느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어둠의 세력과 부패한 무리들을 물리치고 이 세상 모든 아이가 구김살 없이 활짝 웃을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다짐이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온 세상에 가득하니 그것은 곧 생명의 영이요, 기운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품에 안긴 아이들의 영혼은 이제 이 세상에 충만한 생명으로 돌아와 풀과 꽃과 나비와 새들의 생명 속에서 다시 살아나니, 이들 뭇 생명 속에서 하나님의 영을 만나고 동시에 아이들의 모습을 발견하자. 그리고 이 뭇 생명을 공경함으로써 이 세상에 남은 우리가 아이들을 못다 산 삶을 살려내고, 하나님의 영을 모시자. 그리고 나아가 이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반생명적인 제대와 탐욕을 악으로 규정하고 맞서 싸워 아이들의 생명을 지켜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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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히 읽어낼 수 없는 것, 그것 역시 나를 읽어줄 리 없다고 믿었던 것이 미술작품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미술을 못해'라는 관념이 콱 박혀버렸고, 초중고 공교육을 통해서 미술은 미술일 뿐 그것이 거기 있어서  내게 무슨 상관이랴! 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제게 작품이 나를 읽고 나 역시 작품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주신 분이 조소희 작가님입니다. 이미지와 상징이 가진 힘에 뒤늦게 눈을 떠 걸음마 배우고 있는 제게 감동과 배움이었습니다. <봉선화 기도>라는 작품과 거기 담긴 작가의 마음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던 기억이 납니다.


안산 분양소 앞에 있는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사월의 동행>이라는 추모 전시회를 연다고 합니다. 조소희 작가님은 <봉선화기도304>라는 작품으로 참여하시는데 304 명의 '기도 손'을 모집합니다. 작품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봉선화기도〉는 손가락 전체에 봉선화 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인간의 염원에 담긴 아픔, 슬픔, 분노 등을 표현한 작업으로 2014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동안의 작업이 한 개인의 기도였다면,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될 304개의 손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애도가 담긴 공동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저는 단지 못생겼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특이한 손가락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이런 손으로 오랜 시간 지휘를 했다는 것이 은총이요 치유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손입니다. 이 부끄러운 손을 작품의 한 조각으로 내놓으려고 신청했습니다. 얘길 들은 채윤이도 하겠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손이지만 손가락 전체에 봉숭아물 들이는 것 괜찮답니다.


이번 주 남도 여행을 하면서 팽목항에 들렀습니다. 봄이구나! 싶은 날씨로 입고 간 외투가 무겁다 느끼며 다녔습니다. 진도에 들어서 팽목항이 가까워올수록 날씨가 어두워지더니 설마 저것이 눈일까? 흰 먼지 같은 것들이 떠다닙니다. 팽목항에 다다라 주차하고 나왔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날리기 시작하는데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뺨을 향해 돌격하는 눈발 어텍에 슬픔보다 당황스러움에 압도되었습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마저 흐려진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제어할 수 없는 분노의 기도가 속에서부터 솟구쳤습니다. 슬픔과 위로의 기도는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위로가 아니라 공의를 구하는 탄원하는 기도가 파도와 함께 일렁이며 심장박동이 빨라졌습니다. 네 식구 모두 말을 잃고 각자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간간이 마주치는 채윤이의 조용한 훌쩍거림이 마음에 사무칩니다.


나 한 사람 피켓을 든다고, 봉선화기도에 참여한다고, 남모르는 기도를 올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요.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정말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나와 세월호 엄마들이 다른 엄마가 아니라는 것과 그 아이들이 우리 채윤이와 다른 딸내미 아들내미가 아니라는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누군가와 연대하고 잇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이 시대 가장 아프고 억울하고 약한 분들과 동일시하며 살고 싶습니다.


<봉선화기도 304> 얘길 하다 길어졌네요. 함께 하고픈 분들은 아래 노란줄 클릭하시면  자세한 안내가 있고, 참여신청도 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 해야 하는데 그렇게 번거롭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미술관 세월호 추모전 조소희 작가의 <봉선화기도 304> 참여자 모집









다시 대림절에

 

이해인

 

때가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밝고 둥근 해님처럼
당신은 그렇게 오시렵니까?
기다림밖엔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에
당신은 조용히
사랑의 태양으로 뜨시렵니까

기다릴 줄 몰라
기쁨을 잃어 버렸던
우리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이제 우리는
기다림의 은혜를 새롭게 고마워합니다.
기다림은 곧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배웁니다

마음이 답답한 이들에겐
문이 되어 주시고
목마른 이들에겐
구원의 샘이 되시는 주님

절망하는 이들에겐 희망으로
슬퍼하는 이들에겐 기쁨으로 오십시오
앓는 이들에겐 치유자로
갇힌 이들에겐 해방자로 오십시오

이제 우리의 기다림은
잘 익은 포도주의 향기를 내고
목관악기의 소리를 냅니다

어서 오십시오, 주님
마지막 기다림이신 주님
어서 오십시오.
촛불을 켜는 설레임으로
당신을 부르는 우리 마음엔
당신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
환한 기쁨이 피어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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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급습당했다.

금요일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마치고

시험 끝난 채윤이를 만나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교복 입은 채윤이와 이대 앞을 헤집고 다녔다.

그 오후, 믿어지지 않는 갑작스런 더위가 습격해왔다.

올해 첫 열대야를 보냈다.

다음 날 토요일 최고 기온은 36도라는 예보로 떠들썩하니.

적어도 작전은 세우고 맞설 수 있겠구나.

작전이란 최대한 버티다 가장 더운 시간에는 카페로 피신하기 정도였다.

설거지, 청소, 빨래로 일단 정면돌파 하여 무한대로 땀을 흘렸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늘어져 있기.

늘어져 있다 책 한 줄 보다, 책 한 줄 보고 늘어져 있다, 톡 놀이하는데

홍제동 수진 여사가 이 더위에 피케팅을 나가다는 소식을 접수했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 설치 1주년 단체 피케팅이란다.

우와, 이 더위에? 아스팔트가 그대로 불이겠네!

나도 불 받으러 가야겠다.

늘어진 몸을 벌떡 일으켜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는데 이미 얼굴이 불이다.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은 그나마 피서 타임.

경복궁역에 도착하여 서촌 큰 길가에서 4시 16분부터 한 시간여 서 있었다.

나무 그늘에 서보려 했는데 나무 그늘 밑에는 영락없이 차들이 차지하고 있어 가려지니

뙤약볕에 설 수밖에 없다.

그래, 사실 그렇게 불구덩이 같은 곳에 서서 기도 드리고 싶었다.

세월호 이후 전 국민이 집단적으로 우울증이네 뭐네 하더니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누가 대체?) 떠들어댔다.

그런 건 누가 하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다.

모두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고(왔고) 나 역시 그러하다.

다만 이렇게나 빠르게 회복한 나의 일상이 늘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머리만큼은 진도 팽목항, 광화문의 노란 리본 아래를 서성거리고 있다.

머리와 입으로만 함께 우는 척하는 것이 미안해서

말 그대로 자학적 고행을 하러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죄책감이 덜어지려나.

작년 4월 16일 이후 한동안 교복 입고 등교하는 채윤이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길에서 교복 차림의 중고생을 보아도 마음이 아득했었다.

이제 덤덤해졌다.

어젠 교복 입은 채윤이와 시시덕거리며 이대 앞을 누비고 다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아스팔트와 함께 녹아내리면

이렇듯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사는 죄가 씻어지려나.

그런 속셈도 있었던 것 같다.

일상복귀는 꿈도 못 꾸는 유가족과,

그들과 동일화 되어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봉사자들을 알고 있다.

폭염이 급습하던 금요일 오전에는 그 아픔을 직접 듣고 아득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폭염 속에서 몸을 달구어 한두 시간의 불 기도로 죄책감을 씻고 싶었으나....

피케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무거워졌고 심지어 바람까지 불었다.

실패다.

한 두 시간 내 몸을 혹사하는 것으로 모든 걸 퉁쳐버리려 했던 계획은 실패다.

 

블로그에 '리멤버 0416'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일상 깊숙이 가져와 잊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통곡하는 엄마 아빠들이

맘 놓고 슬픔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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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일 듯 말 듯한 돌멩이 하나가 마음 우물에 가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돌멩이인가? 아닌가? 내가 잘못 봤나? 기분 탓인가?

아, 그래도 뭔가 묵직하고 불편한 게 있어.

 

손으로는 청소기를 돌리고 머리는 머리대로 돌아가고 있는 아침이었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뭐지? 아, 수영장 접수한 거 취소하기!'

몇 달 수영을 쉬다가 현승이 수영 재접수 하러 간 김에 충동적으로 접수했다.

(운동하라는 내 말은 죽어도 안 들으면서) '당신 수영 다시 해, 수영 다시 해'하는 

남편의 잔소리도 있고, 정말 수영이 좋고, 운동을 안 하니 허리며 목이 삐그덕 대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6월에 오전 강의들이 잡히고 있는데 모두 확정되면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갈 수도 있겠다 싶다.

어머, 안 되겠네. 취소해야겠다.

이리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확 가벼워지는 것이 돌멩이가 있긴 있었나 보다.

 

100 미터 21초 기록을 가진 내가,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수영을 그렇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신대륙 발견에 견줄 일이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전환한 이후 10여 년 가까이 꾸준히 아침 수영을 해왔다.

그간에 이사가 다섯 번이었으니 수영장 다섯 군데를 옮기면서도 용케 지속해왔다.

그런데 작년 여름 이후부터 아침 주부수영교실 가기가 점점 싫어지는 것.

수영은 좋은데 언니와 형님들이 계시는 주부 수영교실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저녁 시간으로 바꿔봤더니 주부수영 10 년 차 몸으로 직장인 마스터 반에 적응이 안 됐다.

이래저래 하다가 끊어버렸다.

 

가끔 현승이 데리러 가서 수영장을 내려다보노라면 발목이 힘이 발끈 들어가면서 접영 발차기가 하고 싶어지고, 어깨도 근질거렸다.

그런데도 왠지 아침 주부수영에 나가기는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많이 싫었다.

수영장을 그리워하는 몸이 마음의 거부감을 이겨서 갑자기 접수하게 만든 것 같다.

 

접수취소 하고 가벼워진 마음을 들여다보니 이제야 알아차려 졌다.

작년 4월 16일 이후로 아줌마들의 탈의실 토크가 진저리나도록 싫어졌다.

사실 그전에도 형님들의 탈의실 토크(아, 그 다양한 주제들!!) 듣기가 편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10여 년 견딘 노하우가 있다.

입 꾹 다물고 내 할 일을 하다, 형님들이 동의를 요구하시면 한 번 웃어 드리면 되는 것.

 

세월호 침몰 뉴스를 처음 들은 건 수영장 형님의 입을 통해서이다.

그런데 다 구출했대! 라고 했다.

그날 이후 한동안 수영을 마치고 나와 샤워실이며 탈의실에서는

선장 그 XX를  때려 XX야 한다, 로 시작해서 뉴스 보다 우느라고 시간 다 보낸다.

형님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선장의 팬티 차림 화면보다 

속옷 입고 입에 거품 무는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탈의실 토크의 주제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들 학원 얘기, 매실 담그는 얘기, 미친 동서 얘기, 바람난 친구 남편 얘기 등.

전에는 그럭저럭 참아졌던 형님들의 일상 토크가 듣기 싫어서 드라이도 안 하고 나오기 일쑤.

그리고 얼마 후,

보상금이 한 애 당 얼마라며? 거 단원고 애들 대학 그냥 보내준다며? 

그때 그 언니들의 야릇한 표정.....

탈의실 민심은 확실히 그즈음을 기점으로 세월호에 대해 냉담해졌다. 

 

조금만 늦거나 핑계가 생겨도 수영장 가는 걸 빼 먹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고 끊어 버리기.

이제야 몇 달 전의 마음이 정리되어 보인다.

돌멩이의 정체는 그거였구나.

더 가벼운 마음으로 취소하기로 했다.

수영을 다시 해야 하는데.... 운동 해야 하는데....괜한 부담감도 내려놓기로 했다.

나, 다시 주부 수영교실 가기 싫어. 아무튼 지금은 싫어. 안 할 거야!

라고 내가 나한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나에게 그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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