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히 읽어낼 수 없는 것, 그것 역시 나를 읽어줄 리 없다고 믿었던 것이 미술작품들이었습니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미술을 못해'라는 관념이 콱 박혀버렸고, 초중고 공교육을 통해서 미술은 미술일 뿐 그것이 거기 있어서  내게 무슨 상관이랴! 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제게 작품이 나를 읽고 나 역시 작품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다는 경험을 하게 해주신 분이 조소희 작가님입니다. 이미지와 상징이 가진 힘에 뒤늦게 눈을 떠 걸음마 배우고 있는 제게 감동과 배움이었습니다. <봉선화 기도>라는 작품과 거기 담긴 작가의 마음을 듣고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던 기억이 납니다.


안산 분양소 앞에 있는 경기도미술관에서는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사월의 동행>이라는 추모 전시회를 연다고 합니다. 조소희 작가님은 <봉선화기도304>라는 작품으로 참여하시는데 304 명의 '기도 손'을 모집합니다. 작품 소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봉선화기도〉는 손가락 전체에 봉선화 물을 들이고 기도하는 손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인간의 염원에 담긴 아픔, 슬픔, 분노 등을 표현한 작업으로 2014년부터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동안의 작업이 한 개인의 기도였다면,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될 304개의 손들은 세월호 참사로 인한 고통과 분노, 그리고 애도가 담긴 공동의 기도가 될 것입니다.


저는 단지 못생겼다고 말하기엔 부족한 특이한 손가락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이런 손으로 오랜 시간 지휘를 했다는 것이 은총이요 치유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손입니다. 이 부끄러운 손을 작품의 한 조각으로 내놓으려고 신청했습니다. 얘길 들은 채윤이도 하겠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치는 손이지만 손가락 전체에 봉숭아물 들이는 것 괜찮답니다.


이번 주 남도 여행을 하면서 팽목항에 들렀습니다. 봄이구나! 싶은 날씨로 입고 간 외투가 무겁다 느끼며 다녔습니다. 진도에 들어서 팽목항이 가까워올수록 날씨가 어두워지더니 설마 저것이 눈일까? 흰 먼지 같은 것들이 떠다닙니다. 팽목항에 다다라 주차하고 나왔는데 이게 왠일입니까. 눈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날리기 시작하는데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뺨을 향해 돌격하는 눈발 어텍에 슬픔보다 당황스러움에 압도되었습니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마저 흐려진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데 제어할 수 없는 분노의 기도가 속에서부터 솟구쳤습니다. 슬픔과 위로의 기도는 끝이 난 것 같습니다. 위로가 아니라 공의를 구하는 탄원하는 기도가 파도와 함께 일렁이며 심장박동이 빨라졌습니다. 네 식구 모두 말을 잃고 각자 이리저리 다녔습니다. 간간이 마주치는 채윤이의 조용한 훌쩍거림이 마음에 사무칩니다.


나 한 사람 피켓을 든다고, 봉선화기도에 참여한다고, 남모르는 기도를 올린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래요.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정말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저 나와 세월호 엄마들이 다른 엄마가 아니라는 것과 그 아이들이 우리 채윤이와 다른 딸내미 아들내미가 아니라는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누군가와 연대하고 잇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라면 이 시대 가장 아프고 억울하고 약한 분들과 동일시하며 살고 싶습니다.


<봉선화기도 304> 얘길 하다 길어졌네요. 함께 하고픈 분들은 아래 노란줄 클릭하시면  자세한 안내가 있고, 참여신청도 하실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 해야 하는데 그렇게 번거롭지 않았습니다.


경기도미술관 세월호 추모전 조소희 작가의 <봉선화기도 304> 참여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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