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왜 그래? 안 좋은 일 있어?" 씻고 자러 들어가는 찰나, 쓱 보고도 마음을 읽어내는 현승이가 말했다. "아니이, 일은 무슨 일이 있어? 강의 준비하는 거야." "왜애? 강의 준비가 잘 안 돼?" "아니, 준비 다 했는데... 내일은 강의가 아니라 설교야. 아, 설교가 아니라 늘 하던 강의이긴 한데, 주일 설교 시간에 하려니 좀 다르네. 부담이 많이 돼. (가끔 주일 설교 시간에 초대받아 갈 때가 있는데, 매주 설교 준비로 예민해지는 남편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현승아, 자기 전에 기도해줄래? 기도 안 하던 사람이 하면 잘 들어주시는데.... 하하. 기도해 줘." 다음 날 강의 또는 설교를 하며 정말 현승이가 기도했구나, 싶었다. 알 수 없는 위로와 힘이 느껴졌다. 활활 불태우고 돌아온 나를 맞으며 현승이가 말했다. "잘했어? 엄마? 나 진짜로 기도했는데." 네가 진짜로 기도한 걸 엄마는 벌써 안단다!


"그 강의 언제라고 하셨죠? 몇 시예요?" 마음으로 '루디아'라 부르는 분이 있다. 내적 여정 벗님인데, 다른 얘기하다 흘러 나온 내 일정들을 기억하고 가끔 다시 묻곤 하신다. 기도하기 위해서. 새벽기도, 일정한 시간의 향심기도, 화살기도를 일상으로 사는 분이다. "기도하겠습니다!" 닳고 닳은 영적인 인사치레다. 그래서 기도하겠다는 마음이 들어도, 기도하고 있어도 "기도하겠습니다"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진부한 표현에도 진정성이 담긴다는 것을 그 루디아의 말로 안다. 연구소 하며, 내적 여정 안내하며 비틀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나를 믿는 힘이 없어서 그렇다. "오늘 그 강의하시는 날이죠? 새벽에 나리(연구소에서 쓰는 내 별칭)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나를 믿는다는 격려로 들린다. 나도 못 믿어주는 나를 믿어준다는 뜻으로 들린다. 루디아의 기도는 믿어준다는 말로 들리는데, 가끔은 주님의 말씀으로도 들린다. 다리에 힘 풀려서 스텝 꼬이는 날에 힘이 되는 기도이다.


갑작스런 진단과 수술, 그리고 조바심 속에 검사 결과 기다리기. 주중에 교회 집사님 가정에 있었던 일이다. 딸에게 닥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 어쩔 줄 모르는 부모님과 동일시된 남편이 한 주 내내 초조해 보였다. 목사가 교우를 생각하며 보내는 초조한 시간은 그대로 기도니까. "하나님, 이러시면 안 돼요. 하나님, 정말 이러시면 안 돼요." 내내 그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나도 기도했는데, 나도 집사님 부부와 딸을 위해 기도했는데 남편이 했다는 기도에 눈물이 났다. 남편은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강하게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안 된다고 하는 걸 두 번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남편이 좀처럼 하지 않는 표현이라 낯설고, 낯설어서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주일 대표기도 하시는 집사님은 같은 상황을 놓고 "하나님, 제 베프 000 집사의 고통을 보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기도밖에 할 게 없습니다."라고 하셨다. 한 교회, 같은 공동체라고 하지만 하나라고 느껴지는 일이 많지 않다. 고통 앞에서는 모든 차이가 사라진다. 그저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만 같다. 고통 앞이 아니라, 고통을 마주하고 서서 서로 기도할 때만 그렇다.


연구소의 여러 프로그램을 줌으로 진행한다. 내적 여정 세미나를 제외하곤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이 더 많다. 글쓰기도 꿈작업도. 가만히 듣고 있는데 울렁거리고, 아프고,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상황이 흔하다. 그럴수록 더 몸과 마음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잡는다. 어디서도 내놓지 못했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낭독하고, 갑자기 떠오른 아픈 경험을 내놓는 분들 앞에서 뭔가 반응해야 할 것 유혹이 늘 있다. 그 유혹은 '내가 당신의 아픔에 공감합니다'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 끝은 결국 나는 당신의 말을 잘 들어주는 좋은 사람입니다, 인 경우가 많다. "똑똑한 사람은 알맞게 옳은 말을 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때맞춰 침묵할 줄 안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에 나오는 말인데.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단지 똑똑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그저 텅 빈 시간을 갖는다. 굳이 피드백하지 않으려고. 그러다 보면 말 없음의 여백이 많이 생긴다. 그 아슬아슬한 시간, 언젠가부터 내게는 기도 시간이다. 방금 글을 낭독한 분을 위해, 말씀하신 분을 위해 가만히 기도하게 된다. 하루 그 어떤 기도 시간보다 뱃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간절함으로 기도한다.


C. S. 루이스의 말처럼 최하층 없이 최상층이 설 수 없다. 향심기도를 하고, 관상의 상태를 꿈꾸지만 삶의 구체적 경험 없이 영성의 고매한 경지란 없다. 필요를 구하는 기도,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의 기도가 진실하여 아름답다. 새삼 그 아픈 아름다움을 만나고 있다. 기복적 기도, 기복신앙을 혐오하고 미워하며 마음이 냉랭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돌아보면 그때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의미의 복이든 복을 구하고 있었다. 기복, 祈福, 복을 기원하는 것 말고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지난 주말 어느 교회 청년 리더들에게 '삶과 신앙의 무기력, 기쁨' 같은 것들에 대한 강의를 했다. 강의 마치고 담당 전도사님이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강의에 힘입어 중요한 결정을 했노라고. 기쁘고 충족한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상황이 많지 않다. 아프게 통화를 마치고 메시지를 보냈다. 기도하겠다고. 기도하겠다, 는 문자를 치고 있는 순간 이미 기도는 시작되었다. 기도해주세요, 기도할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기도에 돌입한다.


사진은 우리집 베란다 앞 풍경이다. 집 앞에 저렇듯 교회가 있고, 커어다란 십자가가 치솟아 있다. 앞이 뻥 뚫리고 멀리 산이 보이는 시원한 뷰를 망치는 '옥에 티'라고 생각했다. 전에 명일동 살면서 명성교회 십자가를 얼마나 분열적인 마음으로 바라보았던가. 그때 기억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저렇듯 미학은 고려하지 않은 채 크기와 높이로만 승부하는 십자가일까, 개신교의 민낯 그대로 같다는 생각도 하고. 어느 날 남편이 "늘 옥에 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 침대에 누워 저 십자가를 마주했는데 바로 기도하게 되었다"라고 했다. 그 말 듣고 며칠 후, 새벽 일찍 일어나 베란다 앞에 섰는데 동트는 하늘 배경의 십자가가 조금 달리 보였다. 뻥뚫려 거칠 것 없는 뷰의 걸림돌인 것은 맞지만, 눈에 띌 때마다 나도 기도의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
이 글을 써서 올리고 카카오톡 열었더니, 세상에 이런 음향 편지가 와 있었다. 이건 그냥 아가 목소리를 입고 온 성령님의 피드백이다. 이 글에 달리는 성령님의 댓글이다. 소리만 올릴 수 없어서, 목소리 주인공 모자 사진에 대고 다시 녹화하여 올린다.

 

기도을 계톡하꾸 기도에 감타암으로 깨어 있뜨라. 골롯태서 타장 이즐 말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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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9.01 11:11 신고

    기도하겠습니다..긴장을 풀고 힘을 빼고.. 기도에만 아니라 모든 일에 방해가 되는 것임을 알았으니까요..

  2. BlogIcon 캘리 E. 2021.09.02 07:09 신고

    '아멘' 입니다!

줌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날이다. 새 만남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구닥다리라... 어쩌지. 시간이 없어도 산책 한 바퀴 하고 올까,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안 되겠다. 하늘이 어둑어둑, 비가 쏟아질 기세다. 비가 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나갈 텐데... 일기 예보를 보니 비가 곧 온단다. 우산을 들고나갔다. 바로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더, 더, 더... 더 와라, 더 와라 했는데. 오란다고 더 온다. 쏟아붓는다. 우산 버리고 맨몸으로 맞고 싶다. 흠뻑 젖고 수습할 시간이 없으니 조금 옷이 젖는 것으로 만족해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막지 말라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을 격려하는데. 정작 틀어막고 있는 나를 본다. 나중에, 일 다 처리하고, 책임을 다하고 울어야지. 그렇게 나중을 기약하고 집어넣은 눈물이 뭐가 아쉬워 내 말을 듣겠냐고. 이제 옆에 아무도 없고, 망가져도 괜찮은 때가 됐으니 지금이라고. 이제 울자고. 내가 눈물이라도 다시 안 나오겠다. 복수의 칼을 갈겠지. "아~따, 있을 때 잘했어야지"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돌아오겠지. 내가 준비되지 않은 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를 맞고 싶었던 건 틀어막은 눈물을 달래서 꺼내보려는 마음이었는지... 우산 살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 둘이 꼭 주르르 흐르는 눈물 같다.

우산과 풍경이, 아니 우산에 새겨진 '진실을 인양하라'와 풍경이 묘하게 조화롭다. 걸으며 마구 찍어 보았다. 진실을 인양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진실은커녕, 힘도 없는 주제에 뭘 끌어올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말이다. 진실이라고 낑낑거리며 끌어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뭐 해? 미친 사람 같애." 한 마디 들으면 "그러게, 나 뭐 하지? 나 지금 뭐해?" 헛갈리면서 총체적으로 스텝이 꼬이게 되고. 사력을 다해 끌어올리던 것이 진실인지, 버려진 신발 짝인지, 플라스틱 쓰레기인지 분간도 못하게 된다. 꼬여라, 꼬여라, 꼬여서 넘어져라 하던 내 안의 구닥다리 목소리가 승전가를 부르며 웃는다. 인양 따위! 진실 따위! 대충 살아아아아.... 어차피 진실 따윈 없어어어...

 

그래도 한바탕 울고, 아니 한바퀴 돌고 나니 구닥다리 마음이 조금 밀려 나갔다. 목욕재계하고 카메라 각도 맞추고 강의안 한 번 읽으려 앉았는데 창 밖이 환하다. 어느새 구름 걷히고 하늘이 하늘색이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진실을 인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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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7.16 18:11 신고

    선생님의 진실인양 덕분이었군요. 어제의 모임에서 터져나온 저의말들은.
    깜짝놀랐어요.아직 준비되지않은 첫만남의 이들앞에서 터져나온 제말들과 감정에.
    그러면서 다시 생각했습니다.
    에이몰라.터뜨리자.맘껏.

    • BlogIcon larinari 2021.07.17 14:35 신고

      밤의 만남에서 진실을 인양하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지요. ^^ 6주 길지만 짧은 시간이에요. 늘 쓰시지만 더 자유롭게 많이 쓰시어 제게도 치유의 강물이 닿게 해주세요. 함께 하게 되어 정말 좋아요!

쓰고 나면 알게 되는 내 마음이 있다. 써서 내놓고 나면 더 알아지는 마음도 있고. '책'이라는 물성을 입혀 세상에 내보내며 또 새로운 나의 이야기가 된다. 책을 내놓고 보니 '감정'이 보인다. 단지 '슬픔'을 쓴 것이 아니었다. 슬픔과 함께 분노, 그리움, 죄책감, 그리고 무엇보다 수치심. '부끄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느낌이다. 출간 이후 실상 책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블로그에 올린 몇 편의 글에 부끄럽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온다. 마음으로는 달고 살았나 보다.

이번 주 치유 글쓰기 주제는 '수치심'이었다. '수치심'은 성장과 치유에 목말라 연구소로 모여든 이들이 결국 다다르는 지점이다. 인식하든 못 하든, 인정하든 안 하든 많은 것들이 수치심에 걸려있다. 같은 강의를 하더라도 매번 강의안을 수정하는 편이지만, 중요한 책들을 다시 꺼내놓고 읽고 매만지며 시간을 많이 보냈다. 결국 할 얘기는 뻔하지만, 수치심을 말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웬만큼 힘이 있지 않고는, 웬만큼 안전한 자리가 아니라면 수치심은 인식되자마자 자동으로 숨거나 위장하는 독자적 생명체 같은 것이라고 느껴진다. 글로 수치심을 쓰는 일은 내놓는 일이 되는데, 발견 즉시 숨는 녀석을 쓰게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치유력 또한 강력하다. 내놓기만 한다면.

책에 대한 반응이 많지 않은데, 책을 소개하는 짧은 글을 올려주신 분이 있다. 평소 존경하는 분이다. 두어 문장 짧은 글에 '재치'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애도와 재치라니! 내가 잘못 읽었겠지, 설마. 재치 있게 애도할 수 있거나, 애도하며 재치를 부릴 수 있다면 그것이 애도일까. 한 이틀 정도 마음이 쓰렸는데 흘려보냈다. 아마도 책은 읽지 않으시고 평소 가지고 계신 내 글에 대한 인상으로 쓰셨지 싶다. 책을 보낸 출판사의 뜻을 읽고 빠르게 소개글을 올려주시는 의무를 하셨을지도. 심지어 출판사에 내가 요청했는데, 그분께 보내달라고. 그만큼 존경하고 신뢰하는 분이라 기대가 컸던 탓이다.

이 책은 '수치심을 쓰는 일'이었다.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치명적 수치, 그 뿌리가 닿은 엄마의 수치를 쓴 것이다. 수치심이 올라올 때마다 꺼내 쓰는 가면 여럿 있는데 그 하나가 재치였다. 재치와 유머 뒤에 숨었다. 그래서 재치는 내게 수치의 다른 말이다. 물론 재치 있는 나를 좋아한다. 젊을 적에 그랬다. 예쁘다는 말보다, 똑똑하단 말보다 웃기다는 말이 제일 좋다고. 재미없는 사람 될까 두려웠다. 대학에서 '음악치료 개론'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을 웃기지 못한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재치 있는 내가 되려고 했던 건 누추한 나를 지우고 싶어서였다.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지운 게 아니라 감췄을 뿐이란 것도 잘 안다.

재치와 수치 두 말은 한 구멍에서 나온다. 어쩌면 그렇게 치명적인 단어를 고르셨을까? 위에는 흘려보냈다고 썼는데 다시 마음이 아프다. 이런 위안도 있으니 다행이다. 위안의 크기가 훨씬 더 크니 다행이다. 제이언니 김용주 님이 책 후기를 보았다. 정확하게 어디를 겨냥하고 있었다. 재치와 수치가 나오는 그 구멍이다. 평생 써오던 가면 '재치'를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두려웠던가. 재치, 수치, 두려움, 심지어 이번 '재치 책 소개' 글로 상한 마음까지 저격당한 느낌이다. 물론 위로와 격려의 저격이다. 위로, 감동 그 이상의 무엇을 받은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글쓴이가 부담스럽겠지만, 하나님께서 이분을 통해 위로하신다고 느껴졌다.

힘을 낸다. 수치심 치유의 시작은 '드러냄'이다. 그놈의 필살기가 숨고, 고립되는 것이다. 고립되어 어둡고 축축한 동굴 안에서 저만의 세계를 꾸미고, 그럴듯한 가면을 만들어내는 일이 수치심이 하는 일이다. 그 일이 능숙해져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널 때, 약함이 악함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책을 내놓고 다시 내 수치심을 확인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읽히며 하찮게 여겨지거나, 조롱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내 수치심을 들러리 세워 우월감 느끼는 사람은 없겠지? 이렇듯 다시 수치심의 향연이지만 괜찮다. 힘을 낸다. 취약함을 드러냄으로 고립의 동굴로 가는 길에 불 하나는 밝혀졌다. 다행히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진심의 감사로, 감사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힘을 낸다.

 

과거에 정신실 언니와 교류하는 동안 그녀가 쓴 책을 읽으면서는, 책보다는 그녀의 '말'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뭐랄까, '공연'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것 같은데 메시지를 전달하는 목소리와 표정, 말투가 더 정감이 가서인지 같은 내용을 글로 읽을 때는 그런 게 축소되는 느낌이 아쉬울 때가 있었다. 아마도 밝게 보이려는 모습이 매번 글에 투영되어서였던 것 같다. 뉴조 연재를 묶어낸 <신앙 사춘기> 책에서는 약간 스타일이 달라졌다고 느꼈다. 더이상 보이는 모습에 연연하지 않는, 조금 어둡더라도 숨김 없이 내적 음성을 섬세하고 명료하게 쓰게 되었다고 생각했고, 그또한 반갑고도 감사하게 읽었다. _제이언니 김용주 님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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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07.09 14:51 신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방금 언니 글을 읽고 맞물려 떠오르는 생각이...저에게도 촛불이 밝혀지네요..

    알려지는 일에 용기를 내어주신 언니께 감사하는 또 한 사람 여기요!!

    • BlogIcon larinari 2021.07.11 20:51 신고

      오늘 '수치심'에 대한 설교를 하고 다시 수치심에 휩싸여 돌아오는 길. "언니는 언니와 언니의 이웃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수치의 십자가에 언니를 제물로 내어주고 있다." 가당치 않고 과분한 소리가 차 안에 울려서 깜짝 놀랐어. 가당치 않고 과분한 말이지만 일단 받는다. 그 뒤에 나온 땀과 눈물의 자국은 인정할 수 있으니까.
      그대와 함께 수치심 이야기를 새롭게 써보려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2. BlogIcon myjay 2021.07.27 21:53 신고

    오랜만에 들렀는데. 네.. 부담스럽네요.^^ (저도, 감사하고요..)

    • BlogIcon larinari 2021.07.30 07:24 신고

      입장을 바꿔도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요. ㅎㅎ
      당산역 출근 도장 찍으시던 트위터 시절 트친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제 굴곡진 SNS 역사를 거쳐 한 번도 끊어지지 않은 친구세요. 물론 많은 시간 눈팅 친구지만. 마음의 댓글은 수없이 달고 있습니다. '제이언니의 회색지대, 회색의 그러데이션_제이언니의 글쓰기 여정을 분석하고 응원함' 이런 제목으로 글을 써서 올리면.... 진짜 킹왕짱 부담 되시겠죠? ㅎㅎ

세상의 모든 작은 것과 나를 동일시했다. 큰 것 앞에서는 위축되고, 위축되는 것은 모양 빠지니 숙이고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그냥 숙이고 들어가는 것 또한 모양 빠지니 나름대로 필살기가 있다. 큰 것, 큰 사람, 권위자의 마음에 쏙 드는 말과 행동을 한다. 타고난 것 같다. 그냥 된다. 친구나 동료와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어디 가서 권위자에게 사랑받지 않은 기억이 없다. 나는 나를 아주 작은 존재로 생각한다.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내 인생 첫 노래다. 말도 빠르고 노래는 더 빨리 했다니까 제대로 말이 터지기 전부터 저 노래를 불렀는지 모르겠다. 자라면서 교회 어른들이 나를 놀리며 부르는 노래가 저 노래였다. 생애 첫 노래이니 내 인생을 끌고 가는 중요한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늘 울리는 노래이다.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예수님 따라가고 싶은 그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예수님 그분을 따르고 싶다. 그분의 길을 살고 싶다.

 

국민학교 저학년 국어책에 '해바라기와 나팔꽃' 얘기가 나왔다. 비바람이 치는 어느 밤, 바람에 날려 죽을 것 같은 나팔꽃에게 해바라기가 "내 몸을 감고 붙들고 있어." 이렇게 말했나? 비바람의 무서운 밤이 지나고 둘 다 무사하게 해님을 마주했다는 얘기다.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생애 첫 노래만큼이나 마음 깊은 곳에 심긴 이야기이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해바라기 아닌 나팔꽃에 나를 포갰다.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예수님 따라가고 싶은데, 해바라기는 내게 너무 큰 존재가 된 것이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을 좋아했다. 영어 과목을 무지 좋아했는데 영어 선생님이었고, 기타 잘 치고 노래 잘하는 로맨티시스트였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기타 들고 들어와 조광조의 "사랑의 바람"을 불러주셨다. "바람이 불어 눈을 뜨면 텅 빈 내 가슴에 사랑이 솟네.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사랑해 줄 텐데. 사랑이여" 이런 가사. (외워서 쓴 거임) 수험생 가슴에 불을 질러 공부에 집중을 못하게 하셨다. 일기장에 매일 선생님 얘기를 썼다. 어느 날 선생님이 자신의 이상형을 말했는데, "코스모스 같은 여인"이라고 했다. 중학교 단짝 친구에게 말했더니 "너는 포기해. 너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앉은뱅이꽃이야." 제비꽃 말이다. 네이밍에 대한 인권 감각이 없을 때라 그렇게 불렀다. 제비꽃을 앉은뱅이꽃이라 불렀다. 완전 동의! 나팔꽃보다 더 작은 제비꽃이 나였다.

 

평생 작은 꽃과 나를 동일시하며 살아왔다. 작은 화분을 키우는 것에 집착했던 이유도 그것이다. 작고 귀여우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어린아이로 남아 있으면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수년 전 처음 꿈작업을 할 때 '큰 신발' 꿈을 많이 꾸었다. 작은 정수기의 물통이 가득 차서 넘치는 꿈도. 꿈 선생님께서 자신을 믿으라고 하셨다. 270, 280은 돼 보이는 운동화가 등장, 네 신발이니 신어 보라는 꿈을 자꾸 꾸었다. 나는 225 쪼리를 신고 집 근처나 어슬렁거리고 싶었다. 그 쪼리 한 짝을 하수구에 빠트리는 꿈도 있었다. 알아 들었다. 더는 작고 어린 자아로 남을 수 없다는 것을.

 

키우던 작은 화초가 죄 죽고, 엄마도 돌아가시고, 내 이름의 연구소를 차려 책임을 맡고 지내는 시간이다. 그때 그 꿈이 따스하게 해 주던 말을 살 수밖에 없다. 큰 신발을 신어야 한다. 꿈에 나온 신발은 정체성이다. 더는 누구에게 의존할 수 없다. 다시는 화초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지만 결국 큰 나무를 키우는 것에 끌렸다. 어제 '마담 정의 안 비밀 정원'이란 제목이 포스팅을 하고 잤는데, 또 의미심장한 꿈을 꾸었다. '큰 대전역'에 내리는 꿈. 대전. 어린 시절의 여러 기억이 응축된 곳이다. 멀고도 가까운 곳. 그냥 대전역이 아니라 '큰 대전역'에 대책 없이 내리는 꿈을 꾸었다. 

 

더는 작은 화초로 살 수 없다. 식탁 옆에 <큰 나무 아래 장미나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다. '장미나무'이고 싶지만 '큰 나무'여야 함을 알고 있다. 큰 나무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구입한 그림이지만,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큰 나무로 살아야 하는 때가 왔다는 것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모호함과 불확실함을 견디는 것이라고 한다. 동의한다. 모호함, 알 수 없음을 단지 견디는 수동적인 어른에 머무르지 않으려고 한다. 능동적인 어른이 되려고 한다. 능동적 어른은 '기꺼이 져주는 힘'을 가진다. 지는 것이 아니라 져주는 것이다. 져주면서 겪어야 하는 외로움도 기꺼이 견뎌야 한다. 까닭 모를 고통의 실존을 한 가운데서 내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알 수 없음의 안갯속에서 책임 전가와 냉소주의로 도망치지 않음이기도 하다.   

  

큰 나무 아래 장미 나무이고 싶지만 이제 그 반대로 살아야 할 때임을 받아들이려고. 대책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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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딸 채윤이가 전날 밤 11시가 넘어 끓이기 시작했다. 11시 넘어 줌 강의를 마치고 "그럼 엄마 먼저 잘게" 하고 누웠다. 딸이 끓이는 미역국, 참기름 냄새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침으로 먹는 고구마나 현미 떡 대신 심심한 미역국 한 그릇을 먹었다. 아이들은 자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먹었다. 갑자기 울음이 복받쳤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와 국물 마시는 후루룩 소리로도 숨길 수가 없었다. 뜬금없는 울음이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울었다. 

 

1년을 뛰어 넘은 작년 생일의 여운인가. 작년 생일, 응급실에 있던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면회가 안 되던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생일 점심을 먹고, 선물을 사면서도 엄마를 향한 그리움, 슬픔으로 마음이 펴지질 않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김포 갈까? 면회가 안 되면 어머니 병원 앞이라도 갔다 오자." 하고 갔다가, 병원장 면회를 하며 울고불고 한 끝에 엄마를 보고 왔다. 호흡기와 콧줄을 끼고, 팔은 묶인 엄마 귀에 대고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 낳아줘서 고마워." 하면서 또 울었다. "어머니, 채윤아 엄마 잘 키워줘서 감사해요. 제가 잘할게요.” 김서방이 말했다. 엄마도 울었다. 입도 코도 막힌 엄마는 눈물로 말했다. 

생일 아침 미역국에 터진 눈물은 2월 내내 고여있던 것이었다. 2월이 되고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동생과 통화하는데 "내일이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진 날이야." 했다. 2월 첫째 토요일,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갔다. 그날의 기억이 쓸데없이 생생하다. 병원 가는 길 동생 집 엄마 방에 갔다. 동생이 엄마 방 청소 좀 해달라고, 응급실 가느라 경황없이 나왔다고, 조카들끼리 있는데 무서워한다고... 엄마 침대 밑으로 피가 고여 말라붙어 있었다. 아득한 정신으로 그걸 닦아냈다. 2월이 됐는데 그날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내 생일이 다가와서인지, 2월의 그날 때문인지 2월은 그렇게 남모르는 슬픔과 우울로 지냈다.

 

생일이 다가오니 더욱 엄마 몸이 그리워졌다. 엄마의 포궁 안에 있었을 나, 45세 엄마의 늙은 포궁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란 내 처음 몸은 어땠을까? 엄마의 몸이 미치도록 만지고 싶다. 생일 아침 미역국을 끓인 채윤이가 내 몸 속에서 자라다 나왔듯이, 나보다 더 크고 강한 존재가 되었듯이 나 역시 엄마 몸을 찢고 나와 더 큰 존재로 자랐다. 채윤이 출산하고 6주 만에 풀타임 음악치료사 자리가 생겨 어플라이 하고 입사했다. 아침마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와 채윤이를 봐줬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채윤일 업고 골목 어귀에 나와 서있는 날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타나면 뚱한 채윤이보다 더 신이 나서 "하이고, 껍데기 왔네. 우리 채윤이 껍데기 왔다!" 했다.

 

채윤이가 제 껍데기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생일 미역국을 먹는 나는 껍데기를 잃었다. 내 껍데기, 엄마의 몸이 그립고 그립다. 놀란 토끼 같은 엄마의 눈, 함지박만 한 입, 광대뼈,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 어디에도 없는 엄마의 몸이  또렷하게 살아온다.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엄마 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생일인 수요일 밤에 교회 행사로 강의가 있었다. 북유럽 바로크 미술을 전공하신 교회 집사님이 렘브란트 그림을 읽어주시는 강의이다. 전에 한 번 교회에서 문화 강좌로  17세기 네델란드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셨는데 참 좋았었다. "탕자와 시므온으로 그린 렘브란트의 고백"이란 제목의 강의라 연구소 벗들에게도 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다. 생일 선물 같았다. 익히 알던 렘브란트의 생애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새롭게 들렸다. 어쩐지 렘브란트가 그린 노인들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탕자의 귀향>의 아버지, <시므온의 노래>, <야고보>, <기도하는 노인> 등. 강의는 손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아니, 렘브란트가 그렇게 그렸다. 나이 들어 눈이 흐릿해진 아버지는 손, 손으로 그 아들을 맞는다. 시므온 역시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는다. 기도하는 노인의 손엔 대놓고 조명이 비친다. 강의 그 부분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늙은 엄마의 손이 겹쳐져서다. 주책스럽고 부끄럽지만 이제 나는 나의 눈물을 탓하지 않는다. 화면을 끄고 그냥 울었다. 

 

 

 

엄마의 그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볼 수 있다면. 천국에서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알겠는데, 엄마의 몸이 아닌 엄마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기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엄마와의 스킨십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엄마 돌아가신 이후 갈수록 나는 몸에 집착하게 된다. 생일을 지내며 내가 이 땅에 처음 왔던 때가 어땠을까 생각하다 보니 내 처음 집, 엄마의 포궁, 엄마 몸이 절절해진다.

 

 

내 생애 첫 사진이다. 태어난 지 5주. 이젠 기억에서도 흐릿해진 아버지는 이렇듯 나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 자신을 남겼다. 사진을 찍고, 사진 뒤에 메모를 남긴 아버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어쩐지 본 듯이 생생하다. 엄마는 내게 남긴 것이 없다. 휴대폰에는 엄마가 담긴 영상이 많지만 엄마가 남긴 건 아니다. 엄마의 모든 것은 엄마의 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 엄마의 몸이 남긴 것은 나다. 그래서 내 생일이 이렇듯 서럽고 슬픈 것이다. 나는, 사라져 버린 엄마가 남긴 흔적이다. 내가.  

 

여러 차례의 여성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생일 다음 날은 또 한 번의 모임이 끝나는 날이었다. 참가자 한 분의 글 한 문장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굼해 지고 그리워지는 날이거든요."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에게 쓴 편지이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이 문장을 보고 휘청,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의 많은 글에서 나를 본다. 아니 모든 글에서 나를 본다. 그래서 힘겹고, 그래서 좋은 글쓰기 여정이다. 이 문장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나를 흔들었다. 예언같이 느껴졌다. 앞으로 사는 날 동안 나는 내 생일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평생 아버지 부재를 끌어안고 살았지만, 내 생일에 아버지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 글 쓰신 분에게 비춰본다면 더더욱.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관념으로 느끼고 그리워했다. 아버지의 글씨체를, 지성을 선망하며 그리워했다. 무엇보다 신앙으로 승화시켜 숭배하며 그리워했다.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내 껍데기, 내 몸이다. 나다. 

 

아직 생일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 떠난 지 일주일이 모자란 일 년이다. 

 

 

 

 

새벽기도 없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남편이 한 번씩 특별 새벽기도를 도모할 때는 나름 의미가 있어서(또는 받은 은혜가 있어서)이다. 신년 새벽기도를 한다고 했다. 전도사님과 단둘이 나가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주제는 "해피 앤딩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란다. 교인 평균 연령이 나보다 딱 10년이 높은 교회이다. 새로 등록한 젊은 부부들을 제외하고 남자 교우 중 남편은 거의 제일 젊은 축이다. 이력으로나 성향으로나 청년 · 젊은 부부 목회에 최적화된 목사라 생각했는데, 인생이 알 수 없듯 목회자의 길도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지금 여기를 받아들인 남편은 은퇴 이후의 삶, 그리고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삶'에 꽂혀 있었다. 남편이 말하는 해피 앤딩은 단순한 죽음이 아님을 안다.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현재이라는 뜻이다. 실존적 신앙은 실존적 죽음을 온전히 믿는 것이라는 것을 남편과 수도 없이 얘기했었다.

 

'해피 앤딩'이란 단어에 마음 머물러 신년 기도회에 끌렸다.  "J 전도사와 둘이만 나가서 할 거야." 이 말도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수요 기도회 할 때마다 "당신 와서 찬양 인도할래?" 먹히지 않을 말을 한 번씩 던지던 기억도 나서 "내가 새벽기도 찬양인도할까?" 했다. 옆에 있던 현승이는 작년 신년 새벽기도회 때 ppt를 맡아 개근하고, 아침에 먹던 해장국의 맛, 집에 와 2차로 자는 달콤한 잠의 맛을 떠올리며 "아빠, 나도 갈래." 했다. 채윤이는 우리 교회 교인도 아니지만, 엄마가 오랜만에 하는 찬양인도니 반주자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반주자 말고 일당 쳐주는 반주 알바로 섭외했다. 

 

월, 화, 수 3일 기도회 하고 폭설과 함께 한파였다. 이사한 우리 집은 교회와 꽤 멀어졌고,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있다. 걱정하시던 운영위에서 목, 금, 토 새벽기도를 취소하고 한 주 연기하여 다시 월, 화, 수로 진행하기로. 날수로는 일주일이지만 체감은 2주의 새벽기도였다. 얼마만의 찬양인도인가. 텅 빈 교회당에서 방송용도 아니고 오프라인 용도 아닌 청중을 가늠할 수 없는 찬양을 했다. 음정 틀려, 박자 틀려, 선곡 구려. 채윤 현승에게 구박받으며 하루하루 날짜 지우듯 지나며 새벽 기도를 마쳤다. 

 

좋았다!

 

내 인생 마지막 특새의 기억이 끔찍하다. 그 특새에서 여러 번 불렀던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이 찬양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그 2,3년의 특새, 수요기도회가 혼재되어 고통으로 남아 있다. 방언 기도를 받기 위한 특별 기도회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평신도에서 갑자기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 강요 당하고 감시 당하는 새벽기도는 고통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에서 깊은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가장 절절할 때였기도 하다. 아마 한국 교회에 대한 소망의 마지막 빛이 꺼져버린 나날이었지 싶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지만, 얼마 안 가서 깨달았다. 내 마음이 캄캄해졌다고, 내 안의 소망이 무너졌다고 그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내 마음이 가장 캄캄할 때 내 하나님은 가장 환하게 다가오신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게 하나님을 보여주던 지도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나의 하나님까지 망하시진 않는다는 것도. 새벽기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심지어 남편이 목회자가 된 탓이 아니라는 것도.

 

한 주, 아니 두 주간, 오전에 줌 강의 있는 날에 새벽기도 마치고 와서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오후 4시까지 달려야 하는 날이 있었다. 몸은 한 없이 피곤했지만 좋았다. 음정 틀려, 박자 놓쳐, 선곡 구린 찬양도 나는 좋았다. 많은 청중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매일 한 분 정도의 교우를 생각했다. 그분이 이 찬양으로 힘내시면 좋겠다, 기도할 용기 내시면 좋겠다, 이 정도의 바람밖에 없었다. 내 마음에 품은 그분이 누군지 그분 자신도 세상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좋았다. '해피 앤딩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로 이어지는 남편의 설교도 좋았다. 죽음을 등에 짊어지는 삶이 아니라 앞으로 끌어 안는 삶을 살겠다는 용기는 삶에의 열정이 되었다. 20여 분의 기도 시간이 좋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한 2021년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 그날, 트라우마로 남은 특새며 새벽기도와 화해하고, 그 시절 사람들과 화해하고, 내 하나님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자발적으로 하는 게 짱이다!

 

 

 

  1. 2021.02.02 10:55

    비밀댓글입니다

  2. 2021.02.03 03:5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2.05 16:26 신고

      뭉클하네요!
      정말 싫고 마음 깊은 곳에서 거부하는데도 그 속으로 사시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요. 그런 울림과 속삭임이 들리신다면 힘을 빼고 이끄심에 따라야 하는 때인가 싶기도 하네요. 맞아요. 들어가보면 알게 될 거예요.

      책은 올 상반기 끝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예상은 그러한데 모든 게 일단 들.어.가.봐.야. 제대로 알게 되는 거니까요!^^

 

 

 

쉰둘에 대박이 난다는 얘길 들었다. 내 사주가 그렇단다. 임상 심리학 교수로 은퇴하신 선생님께서 취미 삼아 배운 역학으로 사주를 봐주셨다. "너는 진즉에 박사를 했어야 하는데..." 하시다가 "이제라도 해볼까 봐요" 하며 이 학교 저 학교 얘기를 하면 "추천할 곳이 없어." 하셨었다. 그런 얘기 끝에 "정 선생, 생년월일시 알아?" 하시더니 백지에 알 수 없는 한자를 쭉 쓰셨다. 다시 남편 생년월일시를 물으시고 또 이 얘기 저 얘기하시다 "남편하고 아주 잘 맞는구먼! 니가 지금 몇 살이야? 쉰둘에 활짝 펴겠다."라고 하셨다.

 

쉰둘의 한 해가 간다. '활짝 펴겠다'(정확하게 이 표현도 아니었던 것 같지만)를 내 방식대로 '대박이 난다'로 들었고, 바로 잊었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 졸업 이후 한동안 4년 단위로 인생이 달라졌다. 직업, 전공, 연애, 실연, 결혼, 출산.... 4년 단위로 인생의 그래프가 꺾였다. 언젠가 한 번 꼽아보니 그랬다. 전공과 직업(본업)이 바뀌고 바뀌는 인생이다. 집도 계속 바뀌어 열두 번째 이사를 했으니 변화무쌍한 인생이다. 가끔 쉰둘에 정말 어떤 내 인생 한 방 터지는 것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쉰둘의 해 2020년, 엄마가 떠났다. 대박 사건이긴 하다. 설마 이걸로 내가 활짝 피어나겠는가.  대박 사건이 터져야 할 쉰둘에 팬더믹 세상을 사느라 '사건'이 일어날 여지가 없어져 버렸다.

 

사람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그가 보인다. 엄마 떠난 자리에서 평생 알았던 엄마가 아닌 사람 '이옥금'이 보였다. 엄마 떠난 자리에서 엄마를 다시 보게 된 쉰둘의 한 해였다. 시간도 그럴 것이다. 도통 이름 붙여지지 않을 2020년의 낯선 시간은 지나고 나면 다시 보일 것이다. 그러니 쉰둘 2020년이 대박인지 한 해 두 해 지나며 두고 볼 일이고 아직 몇 시간이 남았으니 기다려 볼 일이다. 안팎으로 쉽지 않았던 2020년을 살아 냈다는 것, 엄마 따라 죽지 않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12월 31일을 맞았다는 것은 장하고 장한 일이다. 

 

읽고 쓰고 기도하며 살아 남았다. 쓰기의 흔적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엄마 애도 일기는 출간 예정이라 비공개로 전환해 둔 상태) 알라딘 서점 통계를 보니 130여 권의 책을 구매했다. 선물한 책도 있으니 100여 권의 책을 읽었나 보다. 봄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애도'에 관한 책 외에는 읽히지 않았다. 읽기의 정상성을 회복한 후에도 어떤 편향은 사라지지 않았다. 최근 몇 년의 경향이긴 하다. 리처드 로어, 이현주 목사, 앤서니 드 맬로, 이승우, 엔도 슈사쿠, 엘리 위젤 등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 저자들이다. 한 권의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저자의 전작을 읽는 습관이 있다. 올해의 저자는 마사 C. 너스바움과 앤 윌슨 섀프이다. 몇 년 전  『혐오와 수치심』로 만났던 마사 너스바움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만나기 시작했다. 더디게 읽히는 책이지만, 전작 독서가 될 때까지 만남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앤 윌슨 섀프의 『중독 사회』는 여성들의 치유 공동체를 일구며 사는 내 손에 들려진 지침서 같았다.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은 노르위치의 줄리안, 아빌라의 테레사, 시에나의 카타리나 중세 여성 신비가들을 원저로 만난 것이었다. 전에도 한두 번 들어 읽고 밑줄을 긋곤 했지만 만남이라 하긴 어려웠다. 그냥 어려웠다. 뜻은 알아 들었지만 다른 언어로 읽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아침마다 몇 페이지 씩 읽으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딱 하루 분량의 사랑이 한 챕터에 담겨 있었다. 『계시』와 『완덕의 길』은 말라가는 영혼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였다. 무언가 그리워 다시 손에 잡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박완서 선생님과의 새로운 만남이었다. 젊은 날에 좋다고 읽었는데, 쉰둘에 다시 읽으니 책 속에 들어가 앉아 있게 된다. 

 

이렇듯 읽으며 살았고, 또 쓰며 힘을 얻었다. '여자로 말하기 몸으로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치유 글쓰기 모임을 여러 번 가졌다. 쉰둘에 있을 거라던 대박사건이 이것이었을까. 이 시간은 누구보다 나를 치유하는 시간이 되었다. 엄마 떠난 빈자리에 서서 여성들의 글을 읽다 여성들과 함께 글을 썼다. 텅 빈 엄마의 자리가 꽉 채워진 것 같다. 아, 아니다. 엄마의 빈자리는 여전하다.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채워진 거지? 가득 찬 상실, 따스하게 이어진 고립이다. 그 자리에서 '어머니 하나님'을 만났다. 아버지이며 동시에 어머니이신, 어머니이며 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만난 덕에 기도 시간이 얼마나 포근해졌는지. 쓰고 말하는 여성들과의 연결 덕에 내 생애 가장 큰 여자인 엄마 떠난 자리에서 '하나님 어머니'를 만났으니 쉰둘, 2020년은 대박이다. 

 

글쓰기 모임 후기들이다. 읽어도 읽어도 좋다.  

 

평생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풀어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수용하고 용납해야 하는 입장에서 늘 살았다. 나도 수용 받고 싶고, 용납받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호칭을 바꾸며 만난 하나님... 그간 만났던 하나님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봤다고 해야 할까? 6주간 글쓰기 역시 그렇다. 나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 처음에 가졌던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이 다 사라진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끝이라는 게 아쉽다. 길을 걷는데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글을 씀으로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든다는 것, 신실 샘이 늘 말했던 글쓰기가 주체적 행동이라는 것에 대해 알아들어졌다.❞.❞
나도 몰랐던 내 상처와 교만으로 정신없이 살았다. 내 안을 박박 긁어오며 살아오다가, 너무 힘들 때 우연처럼 이곳을 만났다. 하나님은 뜻하신 대로 이곳에 불러주신 것 같다. 다른 분들의 글, 용기를 보며 같이 깊이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마중물 같은 시간이었다.
이렇듯 깊게 털어놓은 게 처음이다. 6주 마치면서 나이스 한 끝을 만날 걸로 기대했다. 중년, 노년 가볍게 준비하겠지 싶었다. 오늘 마지막 시간 하나님 어머니에 대해 쓸 때 가슴에 통증이 왔다. 갑자기 부정적인 것들이 나와 마음이 무겁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새롭게 뛰어넘어야 할 벽으로 느껴진다. 갑갑하다. 이 벽을 어떻게 허물까, 숙제를 안고 끝나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울어서 쑥스럽다. 모임 마치고 나가면 눈과 코가 시뻘개서 딸들이 눈치를 본다. 이 시간에 너무 몰입되어 있었고, 전에 하지 못한 경험을 했다.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하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영역에 첫발을 디딘 것 같은 느낌이다.

스물세 살 겨울, 성탄절을 꽉 채웠던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듣는다. 매년 성탄절마다 들었지만 귀와 마음을 온전히 열고 듣지 못했던 것 같다. 사연이 있다. 스물세 살 성탄절에 성가대에서 저 곡을 노래했고, 나는 알토 솔로를 맡았었다. 내가 부르기엔, 당시 몸담고 있던 성가대가 소화하기엔 어려운 곡이었다. 전적으로 지휘자의 열정과 실력으로 가능했던 연주였다. 지휘자님이 얼마나 열정적이었나 하면, 솔리스트에게 각각 파트를 녹음해주었다. 나는 또 얼마나 열심이었나. 길지도 않은 레시타티브를 마르고 닳도록 부르며 연습했다. 마이마이에 끼우고 다니며 수십 번, 어쩌면 수백 번 듣고 또 들었다. 듣고 불렀으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가사들이 입에서 줄줄 나온다. 

 

진정 나는 간직하리라
내게 있었던 축복의 날 축복의 말씀을
결코 나는 간직하리라

 

그해를 마지막으로 아름답고 찬란했던 젊은 날 신앙의 봄날이 갔다. 다음 해 새로운 담임 목사 청빙 문제로 어려움을 겪으며 함께 노래했던, 존경했던, 사랑했던 분들과 마음이 나뉘었고 처절한 실망 끝에 교회를 나왔다. '나온 것'으로 끝이었으면 좋으련만 아픈 기억은 내 마음에 들어 있으니 끌어안고 나온 셈이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 사람 관계는 이후로 더 추락하였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는 어떤 그리움 너머 아픔이 되었다. 그 아름다웠던 시절, 그 노래들은 '합창'이었다. 함께 부르는 노래였다. 노래는 함께 불렀던 사람들과 분리하여 떠올릴 수 없는데, 음악은 영원하건만 내 마음속 사람들의 얼굴은 달라졌다. 존경했던 만큼 실망으로, 사랑했던 만큼 분노로 떠오르니 어쩔 것인가. 참으로 오랜 세월 저 노래를 마주하지 못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어쩔 수 없이 CD에 손이 가곤 했지만, 귀로만 듣지 마음으로 들지는 못했다. 

내 맘 속에 누우소서
좋은 방은 아닙니다.

 

이사 준비와 정리로 분주하여 CD를 고를 여유없이 라디오가 선곡해주는 음악을 들으며 성탄 시즌을 보냈다. 어쩌자고 낮이나 밤이나 틀기만 하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나오는 것이냐. 아니, 그것만 들리는 것인가. 그런데 참 희한한 것이 음악이 마음으로 들어온다. 마음으로 들어와 그립고 아픈데, 그리움 사이사이 낀 분노가 어디로 가고 없다. 어, 어딨지? 어디 갔지? 분노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슬픔과 연민이다. 그 좋은 나날들을 오롯한 그리움과 감사로 떠올릴 수 없는 우리 모두가 슬프고 안쓰럽니다. 심지어 조금 감사한 마음도 든다. 그토록 아름다운 성가대 찬양의 기억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고, 그 기억은 모두 내 것이니. 무엇보다 그때 부른 노래의 가사를 나는 내 영혼에 새겼다. 입으로 부르지 않았고 단지 마음으로 부르지도 않았다. 부르고 또 부르는 동안 내 존재 깊은 곳에 새겨진 것이 분명하다. 

 

주님이 다스린다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온전히 주께 맡긴 마음
주께서 다스린다

 

'마음'에 대한 이 레시타티브들을 나는 얼마나 간절하게 읊조렸는가. 어둡고 비좁은 마음의 방, 그분이 거하시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방이지만 "내 맘 속에 누우소서" 노래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믿었다. "좋은 방은 아니지만" 반드시 찾아오시고 살아주실 것을 믿었다. 그럴수록 부끄러웠지만 그럴수록 더욱 믿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으니까. "주님이 다스린다 / 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 온전히 주께 맡긴 마음 / 주께서 다스린다" 그때 그 오라토리오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마음'을 생각했다. 비좁은 내 마음 때문에 힘겨웠고, 이 부끄러운 공간이지만 어쩐지 그분이 기꺼이 찾아와 주실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로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를 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촉촉한 성탄절이다. 자꾸 눈물이 난다. 한껏 성장했으면서 자신이 성장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 '이만 하면 됐다, 나만큼만 하라고 해' 같은 자만심을 가질 수 없는 가난한 마음들에 고마워 눈물이 난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니 눈물이 난다. 지독히도 나를 혐오하며 확신 없이 사는 나를 구원해준 눈길들이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사람과 세상 때문에 눈물이 난다. 연결됨이 기뻐서 눈물이 나고 외로워서 눈물이 난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좋아서 눈물이 나고, 빛이 오셨는데 여전히 어두운 세상에 눈물이 난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좁고 어두운 내 마음이라 눈물 나고, 여전히 그곳으로 오시는 분을 사랑하기에 눈물이 난다. 빛으로 오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눈물이 난다. 

 

성탄절 아침에 블루투스 스피커 볼륨을 높이고, 큰 화면으로 영상을 보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듣는다. 마음으로 듣는다. 

 

이제 참 빛을 보리로다
구원을 나타내리로다
내 구세주는 빛이시라
이방을 밝게 비추시나
허나 그들은 주님을 아직도 알지 못하도다
진정 참빛이시로다
사랑의 예수여

 

 

 

 

이 아름다운 베란다 앞 풍경을 두고 가야 한다니. 봄이 오는 아침, 깊어지는 가을날의 아침을 경탄으로 시작한 2년이었다. 주인이 갑자기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주인 마음을 바꿔주시지 않을까? 허튼 희망도 가져봤었다. 허튼 희망이었구나! 받아들인 다음 날부터 아침에 눈뜨고 바라보는 저 풍경이 그렇게나 슬플 수가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벌써부터 몰려왔다. 얼마나 더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려야 이 슬픈 생이 끝날까?


어느 아침, "이렇게 남은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싶었다. 주어진 시간만큼 최대한 누리고 떠나자! 내 생애 가장 좋았던 집, 집이 아니라 집 앞의 산에게 아침마다 고마움을 표 하겠다 마음먹었다. 그렇게 마음먹고 이틀 지나서 이사할 집이 정해졌다. 하도 귀해서 전셋집이 하나 나오면 몇 사람이 달려들어 줄을 서서 집을 보고, 제비를 뽑아 계약을 한다는데. 집이 구해졌으니 다행이다.


목회자라고 다 이렇듯 자주 이사 다니는 것 아닌데, 남편을 원망해볼까 싶기도 했었다. 마음 고쳐 먹으니 아침 저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 아직은 여기 있지 않은가. 오늘 아침은 저 풍경을 보고, 신선한 산 공기을 마실 수 있지 않은가. 지긋지긋한 이사도 또 어떻게 되겠지.

아침마다 달라지는 빛깔이다. 변하고, 변하고 또 변한다. 마침 연구소에서 아침마다 '읽는 기도'로 나누고 있는 앤서니 드 맬로 신부님의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어 크게 위로받는다.

삶이란 언제나 흐르고 있는 것, 항상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기를 원한다면 영주처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머리 둘 곳이 있어서는 안 돼요. 삶과 더불어 흘러야 합니다. 위대한 공자가 “항상 행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주 변해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흐르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잖아요?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것들에 매여 있습니다. “쟁기를 손에 얹고 뒤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됩니다.” 선율을 즐기고 싶습니까? 교향곡을 즐기고 싶습니까? 곡의 몇 대목에, 한두 음절에 매이지 마십시오. 지나가고 흘러가게 하십시오. 음들을 흘려보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교향곡을 온전히 즐기게 됩니다. 특정한 대목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교향악단에게 “그 대목을 계속 연주해요. 계속, 계속”하고 외친다면 그 연주는 교향곡이 될 수 없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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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떨군 줄도 모르고 걷고 걸었다. 어느새 단지 안에 들어섰다. 평소 같으면 하늘 올려다 보길 여러 번, 주저앉아서 '꽃 검색' 카메라로 들꽃 찍기도 한참 했을 것이다. 한낮에 걷는 것은 오랜만이니까. 그런데 하늘도 안 보고, 들꽃도 안 보고, 바람도 느낄 줄 모르고 땅만 보며 걸었다. 똑똑똑똑, 딱딱딱딱. 무슨 소리지?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는 소리라니! 내 마음에 노크하는 소리였다. 똑똑똑, 거기 사람 있나요? 사람 마음 있나요? 

 

세상에! 저 작은 부리로 저렇듯 우렁찬 소리를 낸다.

 

어이, 여기 좀 봐요. 고개를 들어 여기 좀 보라구요. 뭐 잃어버렸나요? 마음을요? 그렇군요. 어쩐지 발걸음이 헛헛하더라구요.

금세 휘릭 날아올라 푸르름 속으로 사라졌다. 내 시선을 낚아 하늘로, 구름으로, 바람으로 꽂아 놓고서. 덕분에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 다시 장착하고 지금 여기로 돌아오게 되었다. 색의 향연이 눈에 들어온다. 저 예쁜 보랏빛이라니! 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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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우울증 환자 맞나?

 

연구소 카페에 올라온 글의 마지막 문장, "나, 우울증 환자 맞나?" 마음인지 귓가인지 어딘가에서 맴돈다. 그러더니 오늘 저녁엔 "나, 우울증이 아닌 게 맞나?" 하는 이상한 말로 바뀌었다. 잠깐 일어났다 주저앉고, 잠시 힘이 들어갔다 금세 푹 가라앉는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긍정'의 말들이 그렇게 거슬렸다. 잘해요, 좋아요, 훌륭해요, 멋져요. 긍정의 캐치볼이 오가는 걸 유난히 견딜 수 없었다. 잠시 혼자인 저녁 시간, 클래식 FM은 전기현의 세음이다. 무기력하게 앉았는데 들리는 기타 연주의 익숙한, 익숙하게 아픈 멜로디. 정태춘 박은옥의 <봉숭아>라니! 떨며 우는 소리 같은 하모니카 소리다. 하모니카 소리에서 가사가 들린다.

 

초저녁 별빛은 초롱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터인데
그리운 내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 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걷혀 나타나듯
고운 내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대학 1학년 1학기에 과대표를 했는데, 선거를 마치고 그 자리에서 선배들이 노래를 시켰다. 그때 부른 노래가 저 <봉숭아>. 앙코르곡으로 역시 정태춘 박은옥의 <사랑하는 이에게>를 불렀다. 그렇게 시작해서 총학 대의원 엠티에 가서 부르고, 도서관 앞 잔디밭에 앉아 짝사랑으로 힘든 친구가 불러달라면 불러주고, 정태춘 박은옥 노래 플레이어가 되었었다. 그 많은 노래 중 가슴에서 나오던 노래가 <봉숭아>였는데, 왜 그리 저 가사가 절절했을까. 친구들도 선배들도 사연 있는 여자의 노래로 들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실연의 경험도 없던 때였는데. 

 

하모니카 연주가 끝나고 전기현 아저씨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꼼짝 않고 들었다. 그 끝에 "나, 우울증 아닌 게 맞아?"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 좀 우울하구나." 내 마음이 알아졌다. 요 며칠 마음이 한없이 협소해지고, 견딜 수 없는 말들이 많았던 건 우울이었구나. 이왕 플레이 버튼 누른 김에 더 서글픈 <봉숭아>도 들어보자. 송소희 노래보다 박은옥 님의 긴장되어 무표정한 표정, 정태춘 님의 깊은 주름이 더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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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일박 여행 중.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 대나무 숲 산책에 나섰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내 옆구리 쪽 어딘가를 맴돌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참 발길을 붙들었다. 언제부턴가 노랑, 나비, 노랑나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냥 아쉽고 안타깝고 그리운 모든 존재들이다. 한참을 놀다 헤어졌다.


섬진강가에 서서 화장실 간 남편을 기다리는데 다시 나타났다. 작은 노랑나비가 "안녕, 여기 있었네" 하는 것처럼 다가와 팔락거렸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비 따라 옮겨 다니며 한참을 놀았다. 


차밭 사이를 걷는데 또 그 노랑나비다. 이쯤 되니 예사 나비가 아니지 싶다. 자꾸 따라오는 걸 보니 나비 쪽에서도 영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모양. 이렇듯 나를 그리워하는 그대는 누구인가. 엄마? 엄마인가 보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가녀린 양쪽 날개는 하나는 그리움, 하나는 아쉬움. 내 마음에 있던 엄마가 나비 되어 함께 걷고 있다. 습기 가득한 산책 길이, 안개에 싸인 지리산 능선이 더욱 아련해졌다. 엄마가 보고 싶다. 많이 보고 싶다.


짧은 여행 동안 이상하리만큼 '초록 사이 노랑'이 눈에 띄었다. 초록 풀잎 사이 노랑나비는 물론이고, 섬진강변 가로수들은 초록 사이사이 노랗게 변한 잎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동네 텃밭에서는 참깨 꽃을 처음 봤는데 초록잎 사이 노란 꽃이었다. 내내 가는 곳마다 초록과 노랑만 눈에 보인다. 


초록은 (나와) '동색'이다. 에니어그램 유형을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초록이었다. 초록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고, 초록 잔디를 보면 그저 눕고 싶었다. 초록을 보면 살 것 같았다. 특히 봄의 연둣빛을 보면 그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다. 연두 안에 숨은 '노랑'이 아픔과 슬픔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길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게 좋던 한여름의 신록에도 전 같은 환호가 나오질 않았다. 그때가 언제냐 물으면 딱히 답할 수는 없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노랑을 곁들이 초록, 또는 초록 사이의 노랑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엽록소가 빠져나간 헐거워진 느낌의 초록이랄까.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 흔들거리는 내 뱃살과 닮았다. 빛바랜 초록이 추레해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노랑나비가 어른거리니 얼핏 구별이 안된다. 내 노안 탓일 수도 있고. 빛바랜 초록과 연약한 노랑의 조화가 마음 깊은 곳을 툭툭 건드린다.


하동을 출발해서 섬진강변 드라이브가 끝나고 산청에 이르렀는데 차창 밖으로 또 노랑나비! 여기까지 따라왔어? 동영상과 함께 이 얘기를 연구소 단톡에 올렸는데. 안동으로 여행 가신 선생님이 동영상을 보내셨다. "소장님 따라다니던 갸가 여기까지 왔어요." "갸가 아니고요, 저희 엄마예요. 정중하게 인사드리세요." 했다. "어이쿠, 결례를... 용서하세요." 하하. 내겐 엄마고, 선생님에겐 또 누군가이거나 무엇이겠지.  


초록은 나와 동색이다. 초록이 나이고 내가 초록인, 상징색이다. 집착에 가까운 애착물로서의 작은 화분들이 그러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지휘를 그만두었던 때, 의식에선 모든 상황을 쿨하게 받아들였던 그때 꾼 꿈이 아직 생생하다. 다른 사람 눈엔 보잘것없을지 몰라도 내 딴에는 정성을 다해 키우던 화분을 누군가가 싹 치워버렸다. 꿈에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며칠 몸에 두드러기가 나며 앓고 난 후에 그 상실을 받아들였었다. '지휘' 역시 내가 지나치게 동일시하던 나와 동색인 무엇이었다. 


빛바랜 초록과 한 마리 나비가 쓸쓸하다. 텅 비어 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텅 빈 곳이 어쩐지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 차는 느낌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상징은 설명할 수 없다. 느끼고 간직할 뿐이다. 선물 같은 천년차밭길 산책 끝에 숙소 앞 기념품 가게에 들렀다. 마음을 뺏는 컵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연두와 초록이 어우러진 꽃 한 송이 핀 컵에 딱 꽂혔다. 너다! 빛바랜 초록을 만난 2020년 휴가는 너로 간직하겠다! 이런 경우 흔쾌히 지갑을 열어주는 남편이 고맙고. 채윤 현승 사다 주려고 보던 팔찌 옆에 머리끈이 또 바짓가랑이를 잡네. "여기도 노랑 초록 있습니다!" 그것까지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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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럴까? 각자 집에 유배되어 하는 일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밀린 독서, 밀린 빨래, 밀린 냉장고 정리, 밀린 화분 정리.... 나는 그렇다. 그 어떤 일보다 보람찬 일이 화분들 매만져준 일이다. 시들어 죽은 아이들 퇴출시키고, 훌쩍 자란 아이들 분갈이. 한 놈 한 놈 다 사연 있는 녀석들이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냥 화분인 것이 하나도 없다. 성질머리도 다 다르다. 까칠한 놈, 무던한 놈, 예쁜 놈, 듬직한 놈. 

 

 

생일 선물로 채윤 현승에게 받은 화분이 들어오는 바람에 급 일제정리기간을 맞게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던 날, 처음 집, 엄마 자궁에서 나오던 그 새벽에 많이 울었겠지. 그 첫 생일 이후로 가장 많이 운 생일이 아닌가 싶다. 점심으로 미역국 전문 식당에 가서 근사한 생일상을 받고나서, 엄마 보고싶은 마음이 사무쳤다.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더 보고싶고, 침대 홀로 얼마나 아프고 외로울까 싶으니 견딜 수 없었다. 엄마가 '나'라는 생명을 세상에 내놓은 날이다. 내 몸에서 나온 두 생명, 채윤이와 현승이가 근사한 초록 생명체를 선사해주었다. 그 어느 생일보다 생명을-나의 생명,내게 잇대어진 생명들을-실존적으로 경험한 날이다.

 

 

병들어 격리되어 치료 중인 녀석이다. 화분 가득 무성한 잎들이 어찌 하나 씩 누렇게 뜨다 말라버리나 했더니 전염병이었다. 안방 베란다에 격리되어 투약 중이다. 수시로 들여다보며 힘을 북둗우고 있다. 서두르지 않을게. 천천히 회복되기만 해.  약한 생명에 더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사랑의 속성 때문인지 모른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말처럼 사랑의 속성은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아래로, 약한 곳으로 흐른다. 처음 사랑, 처음 생명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더듬어보면 딱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생명에, 사랑에, 낮고 약한 존재들 곁에 있으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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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06 08:5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03.07 23:19 신고

      이런 선물, 저것들이 알아서 줬겠어? 필요한 거 없어? 갖고 싶은 거 없어? 할 때 내가 딱 정해주고 받아냈지! ㅎㅎㅎ 어떤 선물은 거기 담긴 깊은 마음이 말없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 그냥 전해진 마음이 있어 ♡

 

 

 

 

상담이든 집단여정을 마치고나면 이미지로 남는 것이 눈빛인 경우가 많다. 눈빛보다 더 동적인 표현이 있으면 좋겠는데. 대화 도중 수시로 변하는 눈의 언어 같은 것이다.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도 이미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미 젖은 눈도 있다. 집단여정에서 내 눈의 초점을 비켜가는 눈도 본다. 부러 초점을 다른 곳에 두어 마주침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실은 나는 입으로 나오는 말보다 눈가에 고인 말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믿는다.

 

복음서를 메시지 성경으로 읽으면 예수님의 눈길, 눈빛이 아주 가까이 느껴진다.

 

어제 마가복음 3장을 읽다 심장 쿵, 그분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인간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팔레스타인의 흔한 남자 얼굴이었겠지만 눈빛만큼은 남달랐으리라. 비슷비슷한 팔레스타인 남자들 중 예수님을 찾기는 쉬울 것 같다. 눈을 보면, 눈을 들여다보면 금방 그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안식일 위반으로 예수를 잡을까하여, 그 사람을 고쳐 주나 보려고 그분을 주시했다. '

 

 

이런 눈을 본 적이 있다. 덫을 놓고 걸리기만 걸려라 번득이며 흠을 찾아내는 눈. 관음하는 눈. 어디 니가 잘 되나 보자, 며 예의주시 하는 눈. 너희끼리 무슨 짓을 하는지 보자며 하루가 멀다 하고 클릭하여 확인하는 눈. 비겁한 눈, 거짓된 눈. 비겁하게 관음하고 안 본 척 하며 악을 도모하기 때문에 사악한 눈.

 

그 다음 예수님의 태도에 감동하고 말았다. 비겁하고 거짓되고 사악한 눈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라.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여기 서거라."

 

숨어서 보는 자들에게 감추지 않고, 덫을 놓고 책잡으려는 자들의 덫에 공개적으로 걸림으로 맞선다. 거짓에 대면하여 투명함으로 맞선다. 숨어서 보는 자들 앞에 모두 잘 볼 수 있도록 환히 드러내신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종교와 사랑, 선과 악 사이 무엇을 선택하시는지 분명하게 언어화 한 후에 눈으로 말씀하신다. 강력한 진실을 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

 

예수님의 진실하여 강한, 분노로 발사하는 사랑의 눈빛을 받은 비열한 눈들이 어땠을까? 하나씩 하나씩 눈을 맞출 때 그들의 영혼이 어떠했을까. 심장 멈출 듯 한 눈빛 교환을 통해 어떤 이들은 회개를, 어떤 이들은 더 큰 악을 도모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그들은 다른 무리까지 합세 시켜 그분을 파멸시킬 계획에 흥분한다.

 

그리하여 결국 그분은 몹쓸 눈빛 발사로 당신의 죽음을 자초하셨으나, 그 몹쓸 아름다운 눈빛 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막3:1-6 메시지성경)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거기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안식일 위반으로 예수를 잡을까하여, 그 사람을 고쳐 주나 보려고 그분을 주시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여기 서거라.” 예수께서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행동이 안식일에 가장 합당하냐? 선을 행하는 것이냐, 악을 행하는 것이냐? 사람을 돕는 것이냐, 무력한 상태로 버려두는 것이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이 새 손과 같이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 어떻게 하면 헤롯의 당원들과 합세하여 그분을 파멸시킬 것인지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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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arkle 2020.02.03 00:07

    마지막 시간에, 텅빈눈 애써 피한채 앉아있던 한 사람 기억하시나요? 아마, 그분은 사과를 받고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더 다가가고 싶었고, 그 방법이 서툴렀고, 아마 서로 그랬을테지요.

    눈빛의 의도 너머의 한사람의 여러감정에는 또 다양한 색이 있었을거에요. 관음하고 덫을 놓은 눈에는 아무런, 힘도 없을거에요. 그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거에요.

    힘을 많이 얻었고, 통과했고, 다시 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을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씁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며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새해 선물로 받은 시이다. 지나온 1년, 3년, 10년, 30년 더듬어 걸어온 내 등 뒤의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길, 걸어서는 안 될 길을 걸어왔다고 나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밥 먹고 하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그 높은 시선과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일뿐이었다. 이 시를 보내준 이는 내적 여정 세미나 역사 상 강사인 나를 가장 크게 뒤흔든 수강자였다. 울다, 함께 울다 길을 잃어 강의안 포기하고 속에서 나오는 얘기를 그저 쏟아놓게 한 장본인이다. 그렇게 내적 여정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가족 여행을 떠난 그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더니 '피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는 답이 왔었다. '피'가 상징하는 것들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도울 수 없는 무력감에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치유자'는 타고나는 것 아닐까 싶게 성품에 치유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피의 크리스마스'를 메시지에서 확인했을 때, 1년 후 이런 동역의 벗이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그도 나도 우리 모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더듬어 여기까지 왔다. 또 2020년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더듬어 가야 할 것이다. 부조리와 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악을 이기게 하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고립과 상처를 유발하는 이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준 것이 없는데 많은 것을 되돌려주는 사람을 만나고, 많이 애를 써서 가꾸었는데 도리어 헤집고 망치는 이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의 길에 꽃 한 송이가 되기도, 누군가 가꾼 정원을 망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길임을 안다. 기꺼이 걷는 길이다. 2020년, 기꺼이 걷는 길을 다시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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