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럴까? 각자 집에 유배되어 하는 일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밀린 독서, 밀린 빨래, 밀린 냉장고 정리, 밀린 화분 정리.... 나는 그렇다. 그 어떤 일보다 보람찬 일이 화분들 매만져준 일이다. 시들어 죽은 아이들 퇴출시키고, 훌쩍 자란 아이들 분갈이. 한 놈 한 놈 다 사연 있는 녀석들이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냥 화분인 것이 하나도 없다. 성질머리도 다 다르다. 까칠한 놈, 무던한 놈, 예쁜 놈, 듬직한 놈. 

 

 

생일 선물로 채윤 현승에게 받은 화분이 들어오는 바람에 급 일제정리기간을 맞게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던 날, 처음 집, 엄마 자궁에서 나오던 그 새벽에 많이 울었겠지. 그 첫 생일 이후로 가장 많이 운 생일이 아닌가 싶다. 점심으로 미역국 전문 식당에 가서 근사한 생일상을 받고나서, 엄마 보고싶은 마음이 사무쳤다. 볼 수 없다 생각하니 더 보고싶고, 침대 홀로 얼마나 아프고 외로울까 싶으니 견딜 수 없었다. 엄마가 '나'라는 생명을 세상에 내놓은 날이다. 내 몸에서 나온 두 생명, 채윤이와 현승이가 근사한 초록 생명체를 선사해주었다. 그 어느 생일보다 생명을-나의 생명,내게 잇대어진 생명들을-실존적으로 경험한 날이다.

 

 

병들어 격리되어 치료 중인 녀석이다. 화분 가득 무성한 잎들이 어찌 하나 씩 누렇게 뜨다 말라버리나 했더니 전염병이었다. 안방 베란다에 격리되어 투약 중이다. 수시로 들여다보며 힘을 북둗우고 있다. 서두르지 않을게. 천천히 회복되기만 해.  약한 생명에 더 마음이 더 가는 것은 사랑의 속성 때문인지 모른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말처럼 사랑의 속성은 물과 같아서 낮은 곳으로, 아래로, 약한 곳으로 흐른다. 처음 사랑, 처음 생명이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더듬어보면 딱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생명에, 사랑에, 낮고 약한 존재들 곁에 있으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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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06 08:5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0.03.07 23:19 신고

      이런 선물, 저것들이 알아서 줬겠어? 필요한 거 없어? 갖고 싶은 거 없어? 할 때 내가 딱 정해주고 받아냈지! ㅎㅎㅎ 어떤 선물은 거기 담긴 깊은 마음이 말없이 그대로 전해지기도 하는 것 같아. 그냥 전해진 마음이 있어 ♡

 

 

 

 

상담이든 집단여정을 마치고나면 이미지로 남는 것이 눈빛인 경우가 많다. 눈빛보다 더 동적인 표현이 있으면 좋겠는데. 대화 도중 수시로 변하는 눈의 언어 같은 것이다.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도 이미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미 젖은 눈도 있다. 집단여정에서 내 눈의 초점을 비켜가는 눈도 본다. 부러 초점을 다른 곳에 두어 마주침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실은 나는 입으로 나오는 말보다 눈가에 고인 말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믿는다.

 

복음서를 메시지 성경으로 읽으면 예수님의 눈길, 눈빛이 아주 가까이 느껴진다.

 

어제 마가복음 3장을 읽다 심장 쿵, 그분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인간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팔레스타인의 흔한 남자 얼굴이었겠지만 눈빛만큼은 남달랐으리라. 비슷비슷한 팔레스타인 남자들 중 예수님을 찾기는 쉬울 것 같다. 눈을 보면, 눈을 들여다보면 금방 그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안식일 위반으로 예수를 잡을까하여, 그 사람을 고쳐 주나 보려고 그분을 주시했다. '

 

 

이런 눈을 본 적이 있다. 덫을 놓고 걸리기만 걸려라 번득이며 흠을 찾아내는 눈. 관음하는 눈. 어디 니가 잘 되나 보자, 며 예의주시 하는 눈. 너희끼리 무슨 짓을 하는지 보자며 하루가 멀다 하고 클릭하여 확인하는 눈. 비겁한 눈, 거짓된 눈. 비겁하게 관음하고 안 본 척 하며 악을 도모하기 때문에 사악한 눈.

 

그 다음 예수님의 태도에 감동하고 말았다. 비겁하고 거짓되고 사악한 눈을 대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보라.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여기 서거라."

 

숨어서 보는 자들에게 감추지 않고, 덫을 놓고 책잡으려는 자들의 덫에 공개적으로 걸림으로 맞선다. 거짓에 대면하여 투명함으로 맞선다. 숨어서 보는 자들 앞에 모두 잘 볼 수 있도록 환히 드러내신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종교와 사랑, 선과 악 사이 무엇을 선택하시는지 분명하게 언어화 한 후에 눈으로 말씀하신다. 강력한 진실을 말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

 

예수님의 진실하여 강한, 분노로 발사하는 사랑의 눈빛을 받은 비열한 눈들이 어땠을까? 하나씩 하나씩 눈을 맞출 때 그들의 영혼이 어떠했을까. 심장 멈출 듯 한 눈빛 교환을 통해 어떤 이들은 회개를, 어떤 이들은 더 큰 악을 도모하는 것을 선택한다. 결국 그들은 다른 무리까지 합세 시켜 그분을 파멸시킬 계획에 흥분한다.

 

그리하여 결국 그분은 몹쓸 눈빛 발사로 당신의 죽음을 자초하셨으나, 그 몹쓸 아름다운 눈빛 내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막3:1-6 메시지성경)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거기서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안식일 위반으로 예수를 잡을까하여, 그 사람을 고쳐 주나 보려고 그분을 주시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우리가 잘 볼 수 있도록 여기 서거라.” 예수께서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행동이 안식일에 가장 합당하냐? 선을 행하는 것이냐, 악을 행하는 것이냐? 사람을 돕는 것이냐, 무력한 상태로 버려두는 것이냐?” 아무도 말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비정한 종교에 노하여, 그들의 눈을 하나씩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손을 내밀어라.” 그가 손을 내밀자 그 손이 새 손과 같이 되었다. 바리새인들은 서둘러 그곳을 빠져나가, 어떻게 하면 헤롯의 당원들과 합세하여 그분을 파멸시킬 것인지 흥분하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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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arkle 2020.02.03 00:07

    마지막 시간에, 텅빈눈 애써 피한채 앉아있던 한 사람 기억하시나요? 아마, 그분은 사과를 받고싶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더 다가가고 싶었고, 그 방법이 서툴렀고, 아마 서로 그랬을테지요.

    눈빛의 의도 너머의 한사람의 여러감정에는 또 다양한 색이 있었을거에요. 관음하고 덫을 놓은 눈에는 아무런, 힘도 없을거에요. 그것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을거에요.

    힘을 많이 얻었고, 통과했고, 다시 기억합니다.
    사랑합니다.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을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씁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며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텅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새해 선물로 받은 시이다. 지나온 1년, 3년, 10년, 30년 더듬어 걸어온 내 등 뒤의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이었다. 가지 말아야 할 길, 걸어서는 안 될 길을 걸어왔다고 나를 탓하고 남을 탓하는 것이 밥 먹고 하는 일이지만. 알고 보면, 그 높은 시선과 깊은 마음의 눈으로 보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일뿐이었다. 이 시를 보내준 이는 내적 여정 세미나 역사 상 강사인 나를 가장 크게 뒤흔든 수강자였다. 울다, 함께 울다 길을 잃어 강의안 포기하고 속에서 나오는 얘기를 그저 쏟아놓게 한 장본인이다. 그렇게 내적 여정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가족 여행을 떠난 그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더니 '피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는 답이 왔었다. '피'가 상징하는 것들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도울 수 없는 무력감에 마음이 너무 아팠었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연구소의 연구원이다. '치유자'는 타고나는 것 아닐까 싶게 성품에 치유인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피의 크리스마스'를 메시지에서 확인했을 때, 1년 후 이런 동역의 벗이 될 줄 상상이나 했던가. 그도 나도 우리 모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을 더듬어 여기까지 왔다. 또 2020년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을 더듬어 가야 할 것이다. 부조리와 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악을 이기게 하는 좋은 사람을 만날 것이고, 고립과 상처를 유발하는 이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준 것이 없는데 많은 것을 되돌려주는 사람을 만나고, 많이 애를 써서 가꾸었는데 도리어 헤집고 망치는 이도 피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의 길에 꽃 한 송이가 되기도, 누군가 가꾼 정원을 망치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길은 가지 않을 수 없는 길,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선택한 길임을 안다. 기꺼이 걷는 길이다. 2020년, 기꺼이 걷는 길을 다시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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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간이 시작된 날,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정말 이름이 그렇다. 해마다 이 즈음, 핀다고 하여 그리 불린단다. 우리 집에선 '대림 선인장'이라 부른다. 대림절 끝이 성탄절이니 그 말이 그 말이다. 일 년 내내 시들시들 맥아리 없이 보여 꽃 볼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딱 한 송이가 슬쩍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 주님.... 진짜.


오실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신 주님, 

딱 한 송이면 족하다 하시는 거지요?




2년 전 이때, 크리스마스 선인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 화분에서 붉은 꽃이 만발 했는데, 너무 놀라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대림절 기간이었다. 추운 거실, 노트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발견했다. 어머, 어머, 어머, 이게 뭐야! 계절에 맞지 않는 꽃이 만발하니, 영락없이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자칭 신비주의자, 타칭 이성주의자 남편이 검색하고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래!'


오십견으로 팔을 잘 들지 못하던 즈음이다. 다 접었던 음악치료를 다시 시작해야 했고, 시집살이 하듯 삼시세끼 밥을 했다. 4,5년 일에서 놓여 쓰고 싶은 글이나 쓰고, 젊은 사모님들 집에 불러 책모임 하고, 영성모임 하고, 간간이 강의나 하며 좋은 세월을 지내고 난 뒤였다. 편한 맛을 본 후라 몇 배 더 힘들었다. 하나님, 이 양반이 나를 편하게 두실 리 없지! 내가 편히 지내는 꼴은 못 보신다고! 


난생 처음 '페이 좀 올려주세요'란 말도 하고, 다시 내 몸보다 큰 키보드 끌고 여기저기 다니기 시작했다. 삼식이가 된 남편의 삼식을 챙겨야 하는 일이 키보드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신앙 사춘기는 끝난 걸로 스스로 정리한 뒤라 마음대로 침 뱉고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안 나는 힘을 내어 무거운 짐 번쩍번쩍 들고 다녔더니 기어코 오십견이 왔다. 등도 못 긁고, 옷 하나 제대로 입지 못하는 중 대림시기가 되었다.


아니, 자기 몸보다 더 크고 무거운 키보드를? 하면, 괜찮아요! 이래 보여도 힘은 쎄요! 번쩍번쩍 들고 다니며 1년, 어깨는 짖눌렸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도미노로 무너질 것들이 많아서(많다 여겨서) 늘 그랬듯 체중에 넘치는 짐을 지고 다녔다. 짐보다 더 무거웠던 건 바닥에 깔린 자존감이었다. 꼭 짐이 무거워서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위축이어서 굽은 어깨 더 굽히고 다닌 1년. 오십견 증상으로 더 짐을 들 수도 없던 대림 시기였다. 그 어간 어느 날, 죽은 것 같은 선인장에서 꽃이 만발했던 것. 누가 뭐라든 나는 아기 예수님 그 분이 피운 위로의 꽃이라고 믿는다. 사실.


상황이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어쩌면 더 무거운 날들이었다. 그 사이 오십견은 갔고, 최근엔 '테니스 엘보'라는 인대염이 와 있다. 이 역시 키보드 무게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소를 시작했고,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생명의 연대를 맛보며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작년 12월 7일에 이사를 했고, 12월 8일에 연구소 첫 개소식을 했다. 딱 일 년이다. 어느 덧 다시 대림시기이다. 단 한 송이의 대림 꽃이 피었다. 심술쟁이 하늘 영감님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더 불평할 힘도 없어 위로의 붉은 꽃 같은 것은 기대도 안 했는데 말이다. 오십견에 오십 송이라면, 테니스 엘보는 한 송이면 된다는 처방입니꽈? 


오신 주님, 

오시는 주님, 

오실 주님,

딱 한 송이로도 당신 마음 알아 들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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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알지만.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살다살다 내가 후원 요청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이렇듯 떳떳하고 당당하게 요청하게 될 줄이야. 몸에 흐르는 지역감정의 피, 충청도의 피 같다. 굶어 죽어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겠다는 왜곡된 기질 같은 것. 곧 죽어도 수염 쓰다듬으며 팔자걸음 걸으며 내 속의 양반 어디 가고 기쁘고 당당하게 후원 요청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말은 이명박이 쓰던 말이라 왠지 코미디 같지만. 확실히 해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후원자 명단을 보며 매번 새롭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후원하시는 분들이 여러 모로 내 예상을 빗나간다는 것, 더불어 적은 금액의 후원일수록 더욱 감동이 되며, 돈이 자본주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엑셀 시트의 정보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는 것.


말 그대로 후원, 後援, 뒤에서 도와줌이구나 싶다. 한 분 한 분에게 황송하고 송구한 감동이다! 조용히 후원신청 하신 한 분 한 분, 무슨 말씀이라도 드리고 싶어 고심했다. 내담자들의 변화와 집단여정에서의 감동을 미주알고주알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 “저희가 뭐라고, 저희를 믿고 이렇게...” 머리 숙여 인사 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용히 ‘이체’로만 말씀하시는 분들께 어떻게 연결될까? 고민 끝에 마음 품 많이 들여 선물 제작했다. 달랑 책갈피 하나이지만, 다섯 사람의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깊은 애정과 의미 갈아 넣었다. 제가 한 음식 제일 맛있다고 누구보다 많이 먹는 느낌으로, 우리가 만든 걸 보고 보고 또 들여다보며 '예쁘다, 참 잘 만들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셀프 감동이다. 카드까지 따로 제작하여 꾹꾹 눌러 쓴 손편지와 함께 발송했다.


이 과정에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기억 저편으로 쫓아냈던(그렇다, 아마도 쫓아냈을 것이다.) 후원에 대한 기억이다. 중고등 시절 장학금 또는 후원금 명목의 돈을 몇 군데에서 받았었다. 학교에서 선생님 추천을 받기도, 이북 출신 아버지 덕에 이북 5도청의 장학회와 연결되기도 하였다. 선정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을 것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가 공부도 웬만큼 하고 모범생이기도 했으니.


한 달에 한 번 직접 가서 받기도, 일 년에 두어 번 등록금 내는 때 받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성적증명을 내야 하거나 가끔은 후원자게 보낼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사진, 바로 그 사진을 찍힐 때의 감정이다. 저 먼 곳으로 쫓아내고 숨겨뒀던,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수치심의 기억이다. 연구소 후원자들과 어떻게 연결될까 고민하며 생각했다. 


냉장고에 붙은 아프리카 어린이 사진 같은 걸로 연결되지는 말자. 아, 나 정말 그런 것 싫어하는 구나, 알게 되었다. 빈곤 포르노라고 한다. 후원받는 사람들을 선정적으로 다루는 사진 같은 것들. 지인의 집 냉장고에 붙은 아프리카 어린이 사진이나 선교사 가족 사진을 딱히 빈곤 포르노라 할 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참 불편했다. 


생각해보니 이 역시 내가 해봐서 아는 것이다. 후원자에게 보낼 사진 찍히는 심정을, 그 수치심을 안다. 나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안 될 것 같은, 동정심을 이끌어낼 불쌍한 표정에다 감사의 표정까지 담아야 하는, 그리하여 후원자의 후원하는 손에 자부심을 불어 넣어줘야 할 것 같은 부담. 청소년기의 나는 사회복지사의 나는 카메라 앞에 서서 무의식적으로 모든 걸 고려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말 수치스러웠다.


후원의 혜택 드려야 하는 내담자들을 어떻게 존중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다. 혜택의 방식과 모든 것도 우가 아니라 수혜자 자신이 선택하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한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 대상화 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후원의 혜택을 입으시는 분도, 후원하시는 분도 불필요한 수치심과도 우월감도 느끼지 않고 새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연결되어 함께 성장하게 되는 플랫폼이 될 수 없을까. 사람에 관한 일은 시스템화 할 수 없음을 알기에 한 분 한 분 사려 깊게 분별하여 도우려 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숨겨뒀던 수치심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 감정을 다시 경험하며 잠시 휘청했지만 결국 사랑의 뜰채로 건져 올려 마주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중고등 때 학생증 사진을 보면 상상이 된다.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옮겨 후원금 받으러 가던 내 모습, 후원자에게 보낼 사진을 찍고 감사의 편지를 쓰던 표정과 마음이. 치유자로 사는 내가 명확하게 이름 붙여주고 안아주고, 보호하며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게 되었다. 


어릴 적 증명사진 첨부할까 하고, 들여다보다 다시 한참 울었다. 슬퍼서 안되겠다. 그 사진의 아이는 내가 혼자 더 들여다보고 만나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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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ossible Dream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To fight the unbeatable foe
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
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go

To right the unrightable wrong
To love pure and chaste from afar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This is my quest, to follow that star
No matter how hopeless, no matter how far
To fight for the right
Without question or pause
To be willing to march
Into hell for a heavenly cause

And I know if I'll only be true
To this glorious quest
That my heart will lay peaceful and calm
When I'm laid to my rest

And the world will be better for this
That one man scorned and covered with scars
Still strove with his last ounce of courage
To fight the unbeatable foe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휴가의 끝을 다른 시작으로 잇는 노래가 계시처럼 라디오에서 나왔다.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이길 수 없음도 알기에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둘러싸여 있지만 이 꿈과 싸움을 멈추지는 말아야겠다고 노래가 노래하고 내 마음이 따라 부른다.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그 별을 찾은 이상, 몇 억 광년 전부터 그 별을 향해 걸어온 이상. 가자고, 한 발 앞은 캄캄해도 저기 멀리 별빛을 바라보며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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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환 2019.09.02 18:25

    저도 참 좋아라하는 시인데..^^
    가슴이 또 뛰네요.




아침에 눈을 뜨면 창 밖 앞산의 푸르름에 인사를 한다. 그 인사는 짧다. 이내 고개를 숙여 창가의 화분에게 굿모닝! 기나긴 굿모닝 인사다. 한 놈 한 놈 건강을 살핀다. 제 몫의 푸르름을 유지하는지, 잎은 탱탱한지. 그러며 어느 놈이 목이 마른지 알게 된다. 핸드드립 동포트(꼭지 부분 가늘어 천천히 물주기가 딱이다!) 목은 마른 것 같진 않은데 어쩐지 생기를 잃은 것 같은 녀석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원인을 모르니 대응도 할 수 없다. 그저 소성케 되길 기도한다. 앞산 푸르름을 배경으로 잘 자라는 화초들 덕에 아침마다 생명의 기운을 받는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이렇게 화분을 잘 키워요' 집에 오신 분들이 빈말인지 아닌지 칭찬을 하신다. 화분이 울고 보채는 것도 아니고, 등원 하원 시간 챙겨야 하는 애들도 아니고, 세 끼 밥을 먹이거나 목욕시킬 것도 없으니 바쁘다고 돌보지 못할 애들은 아니다. 아침에 잠시 눈을 맞추고 가끔 사진을 찍어주면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집 화초가 잘 되는 것은 인정! 내 마음의 정원이라 여기고 싸구려 화분 몇 개라도 가까이 두고 돌보는 일상이 오래다. 어느 때부턴가 수월하다. 그다지 힘을 쓰지 않는데도 말이다. 나, 힘도 안 들이고 화초 잘 키우는 여자!


신혼 초, 노란 벽지 집에서 처음으로 화초를 들이던 때나 지금이나 죽어 나가는 애들은 비슷하다. 조금 줄었을 수도 있겠다. 잘 돌본다고 돌보지만 어깨를 축 늘어뜨리다 결국 고개를 푹 꺾어버리고 마는, 급기야 시들고 마는 애들은 어쩔 수 없다. 화초 키우기가 수월해졌다 느끼는 지점이 분명하다. 죽어 나가는 화초에 대한 과한 죄책감을 놓으면서부터이다. '에고, 또 죽였네! 난 정말 화초를 못 키워, 다 죽여!'에서 '죽을 놈은 죽고 말더라' 하는 마음이 되니 거짓말처럼 화초 잘 키우는 여자가 되었다.


변화의 방향이 밖에서 안인지, 안에서 밖인지는 모르겠다. 화초가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젊은 날부터 '관계의 실패자다'라는 자의식으로 살았다. 알고 보면 실패한 관계 하나 둘이다. 모든 관계를 다 잘할 수는 없구나! 불가능한 목표였구나, 깨닫게 되면서 과도한 힘이 빠져나간 것 같다. 착한 크리스천 강박에 대한 인식이 생겼다고 말해도 좋다. 가장 확실한 표현은 내 한계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일 수는 없어!


이렇듯 단순한 진리를 알아듣기까지 얼마나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던가. 자기혐오의 시간이었던가. 자아팽창의 시간이었던가. 그 시간을 통과하며 관계에 대해 쓰고 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관계의 실패자가 관계 강사가 되었다니! 관계의 실패자일 때나 관계 강사인 지금이나 실패하는 관계는 비슷할지 모른다. '에고, 또 실패했네, 역시 나는 관계의 실패자야'에서 '내가 애써도 안 되는 관계가 있더라, 잃을 사람은 잃을 수밖에 없더라'하는 마음이 되니 거짓말처럼 사람을 좀 아는 여자가 되었다. 


사람에게서 배워 화초를 잘 키우게 된 것인지, 화초를 키우다 사람을 배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 한 방향이겠는가. 안팎을 오가며 습득하게 되었겠지.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말라죽은 화분을 숨기고 싶었다.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누가 뭐라 하지 않는데 내 안의 내가 마구 비난을 퍼붓는 것이었다. 내가 사람인 줄 모르는 탓이었다. 단번에 예수님처럼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탓이었다. 이제야 사람인 줄 안다.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가진, 희망과 절망 또한 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도 먹고 싶은 사람인 줄 안다.


창밖이 저렇듯 푸른 산인데, 창가의 화초 또한 저렇듯 싱싱한 초록이라니! 

내 눈 앞의 풍경이라니! 토요일 오전, 나의 한가한 일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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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서 공적 마당에 내놓는 것은 꽤 위험한 일입니다. 쓰는 사람은 글에 담은 자기 선의만 생각하거든요. 선의와 함께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뜻을 독자들이 읽어줄 거라 기대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긴 시간 피 흘리며 배웠습니다. 글이 길 때는 끝까지 읽어주는 독자도 많지 않은데, 필자의 뜻까지 헤아리길 바라는 건 과욕이지요. 제목과 저자의 인상만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나만 보기’ 설정의 글이 아닌 다음에야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악플이란 표현도 무게감으로 느껴질 만큼 쉽게 내뱉은 댓글이 가진 폭력성. 글의 맥락과 연관을 찾기 어려운 긴 댓글도 달립니다. 한 번은 기본적 맞춤법도 모르고 공적 글쓰기 하는 사람으로 단정되어 창피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일단 글이 나가면 댓글이나 반응은 안 보는데 꼭 제보해 주시는 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맷집이 약해서 비난의 그림자만 스쳐도 휘청거리곤 하거든요.

하지만 역지사지로 압니다. 저도 좋은 뜻, 좋은 글을 취향 때문에 패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두 좋다는 글, 사람이 왠지 내겐 거북하여 안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린 페친의 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취향을 보는지 모릅니다. 타자에 비친 내 마음을 보는 것이지요. 고혜경 박사의 말처럼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는 투사(projection)의 드라마일지 모릅니다.

이 글은 <신앙 사춘기> 연재 초기에 썼던 글입니다. 초고를 어찌어찌 완성해 놓고 매번 미루고 미루다 결국 탈고하지 못하고 연재를 끝냈습니다. 초안으로 치면 5, 6년 전에 잡았던 글입니다. 그나마 이모로 저모로 가장 괜찮은 (건강한 작은 개혁)교회 사모님을 알게 되었는데. 그의 문드러진 마음, 무너진 몸을 보게 된 것이지요. 어찌된 일인지 그때로부터 ‘그것은 알고 싶지 않다’ 시리즈물이 제게 상영되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만든 좋은 교회라는 자부심에 어깨가 올라간 교인들이 있고, 정작 그 교회 목사님과 가족들은 말 못할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한국교회 희망이 되는 것 같은 진보적이고 훌륭한 분 일상의 자기장 안에서 그분의 그림자에 질식하는 분들이었습니다. SNS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데 그분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분들이 자꾸 제게 연결되는 것입니다.

‘신앙 사춘기’라는 언표로도 설명되지 않는 지점이었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당장 한 영혼이 말라 비틀어져 가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제 눈앞의 현실이었습니다. 이 글에 담긴 마음은 정말 복잡합니다. 연재를 마치고 책 출간을 위해 추가글을 쓰면서도 마지막까지 붙들고 있던 글입니다. 이조차도 너무 힘겨워서 포기할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뉴스앤조이에 <신앙 사춘기> 연재 시작하며 ‘찌르고 싸매는 글’을 쓰겠노라, 쓰고 싶다, 했습니다. 한 편 한 편, 정말 그런 마음으로 썼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분노를 통과한 연민’ 없이 찌르지 않으려고 쓰고 덜어내고, 쓰다 멈추어 울기도 했습니다. 매 글마다 각각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그를 편들기 위해 찔러야 했습니다. 그를 대신해 작정하고 복수의 칼을 휘두르는 뜻도 있었습니다.

이 마지막 글, 탈고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은 복수의 칼날조차 사랑이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순도 100%의 사랑과 연민일 수는 없지만요) 이 글은 맨 처음 글의 초안을 잡게 했던 그분과 그분의 남편 목사님 헌정입니다.



번외 편 <신앙 사춘기> 올린 글을 페이스북에 링크하며 붙인 글이다.

10개월, 아니 5, 6년 묵힌 글인데도 도통 써지질 않았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글이 한 문장도 나오지 않고, 마음에 돌덩이 하나 얹은 느낌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의 다시 쓸 수 있을까』를 집어 들었다.


"평생 쓰던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이 한 문장에 끌렸고 첫 페이지의 제목 또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작은 책을 손에 쥐고 거의 한달음에 다 읽고는 조금 허무해졌다.

알고도 낚이는 법이지만, 예상된 바지만 글빨을 뚫어줄 뾰족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

행간에서 나만의 답을 '자신의 은밀한 결핍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을까.

실은 엉뚱한 통찰이 내게 와 힘이 되었다.


"후지게 쓰는 것보다 아예 쓰지 못하는 것이 나는 가장 두렵다."


세계적인 작가로서는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워 글이 막힐 수 있겠지만,

나는 사실 후진 글이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글의 후짐보다 마음의 후짐이 늘 괴로웠다.

글의 후짐으로 치면 이런 에피소드도 겪는 후진 작가이다.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내놓고 '로서'와 '로써'도 구분 못하는 사람으로 몰린 적이 있다.

더 부담과 상처로 남은, 

<뉴스앤조이>에서 깐깐한 편집자로 소문난 담당 편집 기자님까지 싸잡아 넘겨졌던 것.

(심지어 이분은 내가 처음 보낸 제목을 '로서'로 고쳐 글을 올리셨다.

부러 '로써'로 쓴 것이니 다시 수정해 달라는 요청 드려 '밥벌이 로써'가 된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도 낯이 뜨겁고, 부끄럽다.

(책 출간 때는 제목의 '로써'에 따옴표를 붙여 강조할 예정이다.

지질한 뒤끝 작렬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이 뒤끝은 평생 갈 예정이다.)


문법과 문장의 후짐은 쉽게 드러나 부끄럼 당하고 무시 당할 수 있으니 다행인지 모른다.

소설도 아니고, 내적 성찰을 담은 에세이를 쓰면서 후진 마음으로 쓴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마음의 후짐이란, 글로 나를 속이는 행위를 말한다. 

투명하지 못한 마음이 후진 것이고, 후진 마음은 후진 글이 아니라 악한 글이 된다.

내 글에 내가 속는 것, 이 얼마나 악하고 두려운 일인가.


그렇다고 내 글이 특별히 투명하다는 뜻은 아니다.

글을 쓰며 그 지점이 늘 부끄럽고 고통스럽단 얘기다.


아무튼 결론적으로 저 책이 힘을 주었다.

나같은 무지랭이가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후지가 쓰더라도 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쓰지 않았으면 인생의 어두운 숲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었을까.


글도 사람도 다소 후지지만, 쓸 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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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타칭 일기 쓰다 된 작가이다.

성덕, 성공한 덕질이라고도 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부조리였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맨몸으로 겨울바람을 맞듯 마주한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계였다.

일기 쓰다 작가가 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일기 쓰다 치유가 되는 일이었다.

썼다. 부조리를 느낄 때마다 썼다.

목적 없이 썼다.

쓰지 않으면 달리 고통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썼다.

달리 할 바가 없어서 선택한 그 일이 바로 고통을 치유하는 명약이 되었다.


다시 시작한 치유 글쓰기 모임이 4회기, 벌써 반이 지나간다. 

매력적인 여성을 발견했다.

상상 불가의 폭력 속에서 자란 이가 어쩌면 저렇게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그 어마어마한 폭력 속에서 자기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저 여인은!

한 회기 한 회기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는 썼다. 

자기 고통을, 이름 붙여지지 않는 고통을 썼다. 

세상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을 테니, 쓰는 나를 보는 내가 들어준다는 식으로 썼을 것이다.

생존의 필살기는 '쓰기'였다.


아, 나도 그랬던 거구나!


공선옥 작가도 그랬다.

어린 시절 친구들의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단다. 

그것도 서러운데 선생이 놀리는 아이들 편을 들며 차별하니 가난하고 무력한 아이는 무엇에 기대랴.

기댈 바 없는 아이는 결심했다

너희들 다 글로 써버릴 거야!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여성 중 하나인 록산 게이도 그랬다.


시간이 생기기만 하면 글을 썼다. 아주 많이 썼다. 어린 소녀들이 잔인한 소년과 남자들에게 고문을 당하는 어둡고 폭력적인 이야기들을 썼다. 내게 일어난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어서 똑같은 이야기를 천 가지의 다른 방식으로 썼다. 큰 소리로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목소리를 부여하면 마음이 안정되었다. 목소리는 잃었지만 언어는 남아 있었다.

                                                                                                                                                  - 헝거록산 게이

젊은 시절에 그랬었다.

한낮의 고통이 클수록 밤을 기다리는 위안이 강렬했다.

집에 가서 쓸 수 있어. 집에 가서 쓰면 돼.

그리고 집에 가 식구들이 잠든 밤에 썼다. 쓰고 또 썼었다. 


뉴스앤조이에 연재하던 <신앙 사춘기>를 책으로 엮기 위해 글을 몇 편 더 쓰고 있다.

<신앙 사춘기> 연재는 그냥 연재글이 아니었다.

10여 년의 여정을 그대로 재경험 하는 일이었다. 

오래 농익은 분노에 성찰 한 스푼이 들어가여 화학반응이 일어나고 비로소 써지곤 했다.

분노, 억울함이 어떤 어떤 어떤 어떤 과정을 거쳐 연민이 되었을 때 글이 되었다.

어떤 어떤 어떤 어떤 과정의 지난함을 당신은 모른다.

억울함으로 금이 가고 분노로 타들어간 가슴을 당신은 모른다.

이젠 그 가슴을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다.

내가 쓰고 또 쓰고 연재까지 하면서 충분히 알아줬으니.

<신앙 사춘기> 연재로 생각보다 더 많은 마음의 짐이 사라진 것 같다. 

지난 10여 년 글쓰는 힘은 '복수'였는지 모른다. 복수는 나의 힘. 

이제 더는 복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충분히 했다 아이가! 

이제 더는 복수를 위한 글을 쓰지 않겠다.......고 작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구나.


마지막 글을 남기고 있다.

저격하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활활 타버린 후 연민의 재가 남을 때,

그때까지 기다렸다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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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 3월의 마지막 주일은 봄이다!

개나리가 피었다.

봄이구나! 가볍게 옷을 입고 나갔더니 찬바람이 품을 파고든다.

봄이지만 춥구나!

 


일주일 전인 3월 24일, 3월 셋째 주일에는 확신이 없었다.

봄인가? 아닌가?

예배를 마치고 나와 채윤이가

"봄인데, 날씨가 이런데 집으로 그냥 못 가. 엄마, 어디든 가자."

중앙공원으로 갔다. 

봄이라는 느낌 없이 집을 나왔던 건데, 봄이었고 따뜻했다!

 ​


중앙공원에 온 봄은 미미하고 작았다.

들여다 봐야 보이는 봄이었다.

노란 산수유만이 파란 하늘 배경 삼아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봄이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야. 제비꽃. 어렸을 적엔 '앉은뱅이꽃'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런 말을 안 써."

"엄만 어떻게 이렇게 작은 게 보여?"

"노안이지만 좋아하는 건 다 보여. 엄마가 이 꽃을 작아서 좋아하는 지도 몰라."

"엄마, 그러고 보면 엄마 하는 일은 다 약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네. 

장애인, 그중에도 장애 아이들, 성폭력 생존자들, 여자들......."


채윤이 말에 뭉클, 위로를 받았다.

작고 약하고 낮은 사람들과 연결된 일을 한다니!

과분한 영광이다.


3월 셋째 주일, 들여다 보며 찾은 봄의 흔적과 따스함의 여운이 길다.

3월 마지막 주일, 멀리서도 보이는 개나리가 한창이더니 심지어 눈발이 날렸다.

4월 첫째 주일에는 또 새로운 얼굴의 봄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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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시죠?"

라는 인사 참 듣기 거북한데

안녕하세요?

라는 말 대신 듣는 인사가 되었다.

"바쁘다기보다는....... 미주알고주알 메추리알 타조알......."

설명하고 싶은데 다들 바빠서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늘 조금 억울한 느낌으로

"아, 네...... 그렇죠. 뭐"

라고 얼버무릴 뿐.


바쁘냐고 묻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우리 한 번 놀아야지, 

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

직장 다니는 사람이, 월화수목금 출근하는 사람이 아무 시간이나 약속 잡을 수 없는 정도.

그 정도로만 바쁘다.

그 정도가 바쁜 거라면, 내가 바쁜 게 맞다.


여유가 없다, 빡빡하다,

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강의, 음악치료, 상담,

이 없는 시간엔 읽어야 할 것, 써야 할 것들이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 있다.

 

바쁘진 않지만 여유는 없는 시간에서 100시간을 뺐다.

1, 2월 내내 일주일에 이틀, 10시부터 5시까지 앉아 강의를 들었다.

성폭력 전문상담원 교육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이후에는 없었던 스케쥴이었고.

강의에서 듣는 사례를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강사나 같이 듣는 사람들의 태도가 견딜 수 없는 순간도 있었다.

30년 전 고민했던 여성주의 담론을 새로운 얘기처럼 들어야 하는 것도 고역.


성폭력 전문상담원 자격증이 꼭 필요하냐고들 묻는다.

꼭 필요하진 않다.

그래도 왠지 해야 할 것 같았다.

첫날부터 후회했다.

내가 왜? 미쳤지! 이걸 2월 말까지? 죽었다!

결국 100시간 잘 버텨냈다. 

누가 등떠밀었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기에 버틸 수 있었다.


목회자·성폭력·생존자·글쓰기·자조모임이 곧 다시 시작이다.

100시간의 인내는 이 모임을 위한 씨 뿌림이다.

100시간 공들인 나만의 목욕재계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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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J 2019.03.12 11:30

    마음으로 깊이 응원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9.03.19 00:06 신고

      응원 감사히 받을게요. 정말 응원이 필요한 100시간이었어요. ^^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다!”


말, 특히 격려의 말에 관심이 많은 터라. 아니,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다. 말을 들어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하듯 나를 보는 그들도 그러하겠기에 내 말의 돌아봄에 생의 에너지 절반은 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게 말은 또한 글이다. 말이 부드럽고 달달하다 하여 속까지 그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의 없고 날카로운 말이 성숙한 인격와 날카로운 지성의 지표인 것도 아니지만. 


정색하고 농담하고, 진담은 가볍게 해버리는 습관이 있다. 이 분열적인 말로 여러 사람 헛갈리게 한다는 것을 인식해가는 중이다. 농담하다 정색하고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나는 별의별 선을 다 넘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어떤 선을 넘어오면 정색하고 굳어버리는 못된 습관도 있다. 속으로면 정색하고 겉은 말랑하게 응대하곤 이불 뒤집어 쓰고 뒹구는 경우도 있다. 말, 참으로 어렵다. 


세계 3대 판타지 소설 중 하나라 하고 유일하게 완독한 <어스시 전집>을 쓴 어슐러 르 륀이 작년에 88세의 나이로 영면하셨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라는 유작 에세이집을 읽고 있다. 80이 넘어 블로그에 쓴 글들이란다. 나이 80이 되어서도 블로그 할 수 있을까. 이렇듯 날카롭고 따스하여 관조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얄팍한 긍정의 말로 두려움을 가장하지 않고, 문학적 미사려구로 자아팽창을 포장하지 않으며, 무례한 말로 진실을 가장하지 않는. 안팎이 투명한, 정련된 언어는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그 책의 일부이다. 입에 붙은 상투적 격려와 긍정적인 말을 돌아보게 한다. 긍정적인 것만 보고 싶어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는 누군가를 돕거나 성장시킬 수 없다. 말하는 이의 이미지 관리를 위한 피상적인 말잔치일 뿐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게 하는 진실한 말, 그러나 사랑에 기반 한 따뜻한 말. 정말 하고 싶은 ‘말의 수련’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노년의 실체를 전적으로 나쁘게만 보고 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긍정적인 정신을 가진 노인들을 대하고 싶은 나머지 노인들의 현실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어버린다. 선의를 가득 담아서 내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 선생님 늙지 않으셨어요.”
교황더러 가톨릭교가 아니라고 하는 격이다.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 법이래요!”
솔직히 말해 팔십사 년을 사는 일이 그저 생각에 달렸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희 할머니는 혼자 살면서 아흔아홉 연세에도 아직 차 운전을 하신답니다!”
할머니 만세다. 유전자를 잘 타고난 분이다. 아주 귀감이 되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라 할 수 있는 본보기로는 틀렸다.
노년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다. 노년은 존재의 상태다.
“오, 선생님은 불구가 아닙니다! 스스로 불구라고 생각하는 만큼 불구가 되는 법이지요! 제 사촌은 척추가 부러졌었는데 금방 이겨내고 지금은 마라톤 경기에 나가려고 훈련을 받아요!”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다. 두려움은 현명하기 어렵고 결코 친절할 수 없다. 대체 누굴 위한 격려인가? 진심으로 노인들을 위해서 하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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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24 23:40

    비밀댓글입니다

  2. BlogIcon larinari 2019.02.25 11:04 신고

    와, 늘 저를 낚으시는 블로거 님께 낚여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방문 해보고 싶은 댁이었어요! 헌데 지난 토요일 저녁, 기쁘게 마음 먹은 일이 하루 사이 다른 상황이 되어서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ㅜㅜ 언젠가 꼭 방문하길 꿈꿔 보겠습니다. 그 어느 날을 위해서! 메일 주소 i-zowa@hanmail.net 이에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



신앙 사춘기.

서른 여덟 쯤 시작한 그 알 수 없는, 낯선 시간을 한 마디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내가 창작한 용어는 아니지만 뉴스앤조이 연재글로 많은 공감을 얻었으니

정서적, 경험적 저작권은 내게 있는 것으로 하자.


신앙 사춘기 시간 동안 나름대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다.

설교, 예배, 기도. 이런 것들이 죄 의미 없게 느껴져 신앙 사춘기였지만

돌아보면 기특하게도 다른 언어를 찾아 말씀과 기도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었다.

언어를 놓아 버리는 기도, 향심기도를 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개역개정이 아니라 메시지 성경을 읽었다.

메시지 성경으로 읽는 예수님, 바울의 편지는 하나님께로부터 내게로 직접 오는 계시와도 같았다.

당시 교회 수요예배에선 로마서 강해를 했었는데 같은 본문 정반대의 메시지였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는 색색의 밑줄, 눈물 자국으로 아주 볼만 하다.


메시지 성경을 끊고 개역개정으로 돌아왔다.

교회 성경 일독 독려에 힘입어 새 마음을 가져본다.

개역개정으로 읽는 성경. 다시 개역개정인데, 맨 처음 읽는 개역개정 같다.

좋다.

아침 저녁 독서 전에 먼저 마음이 끌리는 책이 성경이다.


큰 글자 성경을 주문했다.

받아보니 생각보다 더 크고, 더 두껍다. 

우리 엄마의 성경책 같다, 라고 생각되는 순간

내 인생 마지막 성경책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읽고 또 읽으며 낡아지는 이 책과 함께 몸도 더욱 낡아질 텐데. 우리 엄마처럼.

눈에 맞는 돋보기가 없어 더는 글을 읽을 수 없을 때 마지막까지 붙드는 책이 이 책이 되었으면.

이젠 읽지도 못하며 폼으로 들고 다니는 엄마의 낡고 낡은 성경과 오버랩 된다.


기나긴 사춘기 끝(일까?)에 다시 붙든 개역개정 성경이 

'아장아장 성경'이니 '우리 아기 첫 성경' 같은 생애 첫 성경 같기도 하고,

인생 마지막 성경책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묘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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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로랭이 2019.02.12 22:06 신고

    잘보고 갑니다^^



# 혼차


"엄마 요즘도 커피 열심히 하시니?"

"어, 차로 갈아타신 것 같은데요. 차를 많이 드세요."

라고 채윤이가 어느 바리스타 님을 만나 얘기 나누었다는데.

사실이다.

낮 하루 지내며 몸과 마음에 쌓인 미세먼지를 저녁마다 차로 씻어내고 있다.

남편은 설교 준비로, 아이들은 주일학교 캠프로(아, 하나는 학생, 하나는 선생님으로 갔다!)

가족을 모두 교회에 바친 토요일엔 심지어 혼차다.


# 혼공


"그만큼 배웠으면 많이 배웠지, 여자가 뭘 더 배운다고!"

엄마의 목소리가 마음의 귀에 늘 쟁쟁함에도, 쟁쟁하기 때문에 참으로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

더는 배우러 다닐 일이 없겠지 싶었는데,

가장 시간이 없는 때, 100시간 짜리로 뭔가 또 배우러 다닌다.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인데, 가 앉아 있지면 조금 한심하다.

연구소 열어놓고 아직 개소식 계속식도 해야 하고,

써야 할, 쓰고 싶은 글도 쌓여 있고,

만나자 하시는 분도 많은데 일주일 이틀을 오롯이 바쳐야 한다니.

대학 1학년 때 고민했던 페미니즘 담론을 듣고 있을 때는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싶다.

하도 한심해서 가방 싸들고 나오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요구하지도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제일 한심하고,

혼공의 나날이 외롭기만 하다.


# 혼감(동)


세 번에 한 번은 좋은 강사가 온다.

열 번에 한 번은 어마어마한게 좋은 강사가 온다.

어제 강의는 근래 몇 년 사이 들었던 설교와 강의 통틀어 최고의 배움이었다.

내가 미쳤지, 이걸 왜 한다고, 이러고 앉아 시간을 버리고!

했던 속말들이 쏙 들어갔다.

오직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이것으로 100시간 낭비가 아깝지 않군!

책으로 만났던 '비온뒤무지개재단'의 한채윤 선생의 강의였다.

집에 와 그의 글을 다시 읽었는데, 전에 봤던 그 글이 아니다. 

삶을 듣고 얼굴을 마주하고 다시 글을 읽으니 한 글자 한 글자 살아 움직이는 글이었다.


# 혼독


강의 들으며 언급되는 사람에 꽂히면 바로 알라딘에 검색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덕분에 매일매일 택배지만.

덕분에 매일 저녁이 설렌다.

오늘처럼 오롯이 혼자인 밤이라면 더욱.

소설로 만났던 캐릴 길리건을 성폭 강의 교재에서 만나고,

바로 검색했더니 표지부터 끌리는 신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초록이 얼마나 예쁘고 마음에 드는지.


이 밤아 끝나지 마라.

혼독의 밤아, 끝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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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쉰의 마지막 전날에 돋보기를 했다.

드디어 돋보기를 끼게 되었다.

이제야 어른이 된 느낌이다.


돋보기를 맞추는데 안경사께서는 '노안이 벌써 왔을 텐데 꽤 오래 버티셨네요'했다.

그리고 '가까이 있는 게 안 보이는 건 보지 말라는 뜻이지요.' 라고 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가 진실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구나, 가까이 있는 것은 그만 보라는 뜻으로 노안이 왔구나.

멀리 보라는 뜻이구나.

고개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생의 종점을 보고,

생의 종점 너머 또 다른 세계를 응시하라는 뜻이구나. 

인정!


하지만 가슴이 턱 막히기도 한다.

마음 먹고 돋보기 하러 간 이유는 책을 보기 위함인데,

책 없는 삶, 책 읽을 수 없는 노년은 상상할 수 없는데.


아무튼 깨끗하게 커진 글자들로 독서의 기쁨이 두 배가 되는 날이다.

2018년 마지막 날은 종일 집에 박혀 책을 보다 차를 마시다,

눈이 피로하면 잠시 누워 졸며 보냈다.


2019년 가방 안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은 

지갑, 휴대폰, 차키와 함께 돋보기도!

쉰 하나.

돋보기를 끼고, 백발을 허용해도 좋을 나이가 되어간다.

책을 가까이 두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지만 

멀리 보라는 뜻으로 온 노안, 원시임을 잊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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