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사(史)를 공부하며 수도원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보니 <베네딕토 수도 규칙>은 뼈대 같은 것이었다. 각각 다른 수도원들의 영성을 하나로 묶는 것이기도 하고, 이 수칙을 얼마나 철저하게 지키느냐에 수도회의 고유함이 결정되기고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중요한 문서이지만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인용된 것으로 충분했다.  '규칙' 같은 말에 대한 거부반응이 본능적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잘하던 일도 '너 이거 꼭 해야 해!' 강압으로 주어지면 안 하고 싶어 하는 못된 아이 같은 마음 말이다. 알고 보면 누구보다 규칙을 잘 지키고 성실하면서, 강압하고 통제하는 것에 대해서는 빠르고 지나치게 과민반응 해버리는 면이 있다. 규칙, 규칙서. 이런 것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수도원 순례를 결정하고 꼭 읽어야겠다 싶은 것이 <베네딕토 수도 규칙>이었다. 뒤늦게 순례 참여를 결정한 남편은 수도원 관련 책을 쌓아두고 읽었다. (아니, 결정하기 위해서 이미 쌓아 두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 규칙서만 잘 읽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베네딕토 수도 규칙> 머리말부터 빠져들었다. 2장의 "아빠스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 부분에는 거의 모든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규칙서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빠스에 관한 권고들이다. 아빠스는 대수도원장( Abbas)을 일컫는 말로 아람어로 아버지를 뜻하는 "아빠(Abba)"에서 왔다고 한다.
 

수도원을 돌보기에 적합한 아빠스는 항상 그의 호칭을 기억하여 행동으로써 으뜸이란 명칭을 채워야 한다.(아빠스는) 수도원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믿어지며, 그분께 (바치는) 호칭으로 불리어진다.

 
2장 "아빠스는 어떠한 사람이어야 하는가"를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호칭을 기억하라! 아빠스라 불리는 호칭을 기억하고, 행동으로 명칭을 채워야 한다니. 이보다 분명하고 준엄한 지침이 있을까 싶다. "나는 아빠다!" "나는 엄마다!" 이 말이 담은 책임감의 무게, 그 무게를 견디는 기쁨... 나는 이것을 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좋아한다. '자녀를 위한 어머니 기도회'가 내 아이만 잘 되라는 이기적 욕망을 부추긴다 여겨 불편했던 적이 있었다. 썩 내키지 않았던 어머니 기도회 강의에 가서 본 문구가 마음을 건드렸었다. "주님, 제가 엄마입니다!" 엄마이고 아빠인 정체성을 생각하는 것, 그에 합당한 행동으로 엄마와 아빠로 불리는 그 호칭을 채우는 것의 감미로운 고통이란. 
 
누가 내게 <베네딕토 수도 규칙>을 한 두 문장으로 요약하라 한다면, 이 규칙서는 수도승들을 위한 것이기보다 아빠스를 위한 것이라 말하겠다. 그리고 한 문장을 뽑아 내라 한다면 물론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이겠지만, 내 맘대로 2장의 저 첫 문장을 꼽겠다. 베네딕토는 한 번도 일반 수도승인 적이 없고(은수동굴 3년을 수도승이었겠다) 시작부터 아빠스였다. 사람들을 모은 적이 없으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배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을 위해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했으니 시작부터 아빠스였다. 그래서 아빠스에 관한 규정들이 유독 더욱 준엄했는지 모르겠다. 성 베네딕토든 아빠스의 정체성, 즉 아버지의 마음을 어떻게 갖게 되었을까.
 

 

베네딕토가 로마로부터 물러나 수비아꼬로 가기 전에 유모와 함께 기거했던 '아필레(Affille) 마을에 들렀다. 아필레는 성 베네딕토의 첫 기적 장소라고 한다. 유모가 이웃집의 채를 빌려다 썼는데 잘못해서 그것을 깨트렸다고 한다. 그것을 붙들고 통곡하고 있는 유모를 보고 베네디토 성인이 기도를 하자 그 채가 다시 붙어 원래대로 되었단다. 이 기적이 소문이 나자 베네딕토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길을 떠났고, 그 떠남이 은수처인 수비아꼬에 닿았다. 성인전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기적이 사실인지 아닌지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의미 없는 기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쪼개진 채가 붙고, 물이 포도주가 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났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의미는 제거하고 기적만 바라는 마음이 참된 신앙이 될 리 없다. 아빠스 베네딕토를 향한 씨앗은 이미 이 첫 기적에 담겨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유모는 누구인가. 유모는 엄마 대신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다. 베네딕토의 가정이 부유했다고 알려져 있다. 로마로 유학을 떠나는 베네딕토를 돌보기 위해 유모가 따라갔다. 로마를 떠나 머무를 곳에서도 유모가 함께 한다. 이 기적을 행하고 길을 떠나면서 베네딕토는 유모와 결별한다. 돌봄이 필요한 아이에서 스스로 돌보는 어른으로의 떠남이기도 할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돌보던 베네딕토를 혼자 보내야 하는 유모의 마음은 어머니의 마음일 것이다. "얘는 나 없이 아무 것도 못해요." 엄마가 이렇게 말하며 운다면, 나는 같이 울고 말 것이다. 이웃집에 채를 돌려줄 수 없으면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나 보다. 그러니 통곡을 했겠지. 절박한 유모 한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첫 기적이었다. "어머니, 저는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강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안심하세요." 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속세를 떠나게 된 것은 아닐까. 
 

 
아빠스가 되기 위해서,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돌보는 존재, 그것도 하나님을 찾는 많은 이들을 돌보는 아빠스가 되기 위해서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떠나야 한다. 떠나되 이제는 나보다 약해진 부모를 안심시키고, 그를 축복하고 떠나야 한다. 규칙서에서 아빠스에 관한 부분을 읽으며 엄마인 나를 비추고, 내적 여정을 동반하는 나를 비추고, 연구소를 이끄는 나를 비춘다. 나도 모르게 한 구절 한 구절 자꾸 읽게 된다. 내가 아빠스라는 뜻은 아니다. 사람을 맡은 자이기에 그렇다. 하나님께서 내게 두 아이를 맡겨 주셨고, 그 아이들 앞에서 어른으로 살라고 하셨다. 연구소로 모여든 사람들의 영적인 여정을 동반하는 자로 책임을 맡겨 주시고, 소장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아빠스를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셨으나, 예수님께 부름 받은 우리 모두는 그분의 대리자이다. 그렇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 아닌가.
 

아빠스는 집주인이 양들 가운데서 별로 이익되는 점이 없음을 발견하거든 그것이 목자의 탓인 줄로 알아야 한다. 

 

아빠스는, 자기가 제자들에게 부당하다고 가르친 바든 무엇이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자기의 행동으로 가르칠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이들은 가르치면서도 자기 자신은 버림받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며...

 

아빠스는 수도원 안에서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선행과 순명에 있어 뛰어나지 않은 한 어떤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지 말 것이다.

 

아빠스는 자기의 지위를 늘 기억하고 명칭을 기억하고 있어야 하며, 많이 맡겨진 이에게는 많이 요구됨을 알아야 한다.

 

그는 영혼들을 다스리고 많은 사람들의 기질을 맞추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유순하게 대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책벌해야 한다. 또 각자의 성질과 지능에 따라 모든 이에게 순응하고 알맞게 해줌으로써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에게 손해가 없도록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착한 양들의 수효가 늘어나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빠스는 맡겨진 양떼에 대해 장차 받게 될 목자로서의 심문을 항상 두려워하고, 다른 이들에 대해 바칠 헴을 조심하는 동시에 자신의 헴에 대해서도 염려할 것이며, 자신의 훈계로 다른 이들의 잘못을 고치게 할 때에 자기의 결점도 고칠 것이다.

 
 
 

 

아주 작은 기념 성당이 있고, 성당 주변으로는 무덤이 있었다. 키가 큰 사이프러스가 인상적이다. 무덤가에는 이 나무가 주로 심겨 있다. 하늘을 향해 올곧게 치솟은 나무의 형태가 하늘을 향한 인간 영혼의 본성을 담는다 여기는 것일까. 아필레는 아주 시골 동네이다. 우리나라 시골처럼 빈집도 많다고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가족이 산책을 하는 작은 동네 아필레의 골목을 걷는 시간이 참 좋았다. 유모의 깨어진 채처럼, 작은 것으로 울고 웃는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고 신비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동네였다. 이런 골목을 걷이 참 좋은 것은, 돌아갈 내 일상을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아빠스, 연구소의 아빠스로 사는 일이 무겁고 좋다는 생각에 이르니 말이다.       

SNS 보거나 폰에 빠진 것 같이 보이지만, 수도원 안내인의 설명을 열심히 필기하는 중이다.

 

스콜라티카 수도원, 수도원 순례기 다섯 번째만에 여성의 이름이 등장했다. 스콜라티카는 최초의 베네딕토 수녀원장이다. 스콜라티카 성녀의 이름이 붙여졌고, 성녀에게 봉헌되었을 뿐이지 그녀가 세웠거나 살았던 수도원은 아니다. 이 수도원은  베네딕토에 의해 세워진 12개의 수도원 중 첫 번째 수도원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수도원들이 그러하듯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고 복원되곤 하는데, 여기도 그 마지막 상흔은 세계대전이다.
 
이탈리아 최초의 인쇄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독일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와 일하던 두 명의 독일 수도사가 이곳에 와서 3년간(1465-1467) 머물면서 처음으로 네 권의 책을 인쇄했다고 한다. 안내하는 분은 아주 빠르게 지나치듯 언급했지만, 최초의 인쇄, 수도원에서의 인쇄는 특별한 의미였을 것이다. 중세 수도원과 수도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필사'였기 때문이다. 필사 자체가 영적 수련이며, 필사된 서적을 보관한 수도원 도서관은  중세 시대 지성과 영성을 담고 보존하는 공간이었다.
 
이렇게 수도원 이름으로 등장한 성녀 스콜라티카의 개인 신상을 공개할 차례이다. 스콜라티카는 성 베네딕토의 쌍둥이 여동생이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을 뿐 아니라 많은 동생들이 그러하듯 오빠가 하는 것은 다 좋아 보이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오빠가 로마 유학 중 겪은 실망과 환멸로 거기를 떠나 수비아코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할 때도 스콜라티카 역시 근처 수도원에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오빠를 좋아하는 동생, 오빠와 사이좋은 동생이니 그리했을 것 같지 않은가.

육안으로 볼 때 참 아름다운 회랑인데, 사진을 찍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니다. 빛과 그림자에 주목하여 그림자가 충분히 담길 때 비로소 아름다워진다. 내 교회의 그림자, 그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끌어는 것이 내 교회를 아름답게 하는 일이다.

 

인상 깊은 일화가 하나 있다. 남매는 각각 수도원장과 수녀원장으로 지내면서 일 년에 한 번 어느 농가에서 만나곤 했다고 한다. 동생 스콜라티카 성녀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오빠에게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자고 청했단다. 그러나 수도원 밖에서 잠을 자는 것이 규칙 상 허락되지 않는다며 오빠는 단호하게 떠나려 했다. (자신이 만든 규칙이었기에, 누구보다 엄격하게 지키려 했을 테니까) 오빠와 더 대화하고 싶었던 동생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게 된다. 그러자 날씨가 험악해져 번개가 치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오빠 일행은 수도원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고. 동생의 바람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고 돌아와 며칠 되지 않아 베네딕토는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동생의 죽음을 느낀다. 곧바로 동생의 시신을 모셔와 자신의 무덤으로 준비했던 몬테카시노 수도원 무덤에 안장하였다. 남매는 죽어서 나란히 한 곳에 묻혀 있다.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남매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남매가 서로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나란한 수도자의 삶과 여정 이야기로 남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 봉헌된 오빠를 좋아하고 따르는 동생, 동생을 지극히 사랑하지만 하나님께 부름 받은 소명 안에서의 한계를 살려는 오빠.

 

순례의 시간과 여정이 길어지고 깊어지면서 짧게나마 함께 한 분들의 개인적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전부 가톨릭 신자이고, 난생처음 목사 부부와 가까이서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열심 있는 개신교 신자들의 지나친 열정, 특권 의식으로 상처받는 가족들은 흔하다. 우리로 치면 말없이 착한, 조용히 하나님 사랑하는 권사님 같은 한 분이 계시다. 교회 일이 있다고 가족 모임은 등한시하고 얼굴도 비치지 않는 가족 개신교인 가족 이야기를 하신다. 눈물을 찍어내며 드문드문 이어가는 말씀을 듣자니, 단지 가족 모임에 오지 않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냥 존중해 주면 좋겠어요." 누나의 신앙을 존중하지 않는 정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폭력적인 말들을 할지, 내 주변 어떤 교인들의 말을 떠올리면 금방 상상할 수 있다. 개신교인 가족, 개신교인 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들으며 나라도 엎드려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다. 결국 기습 생일 축하 노래로 축하받은 남편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라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목사라는 가족의 대소사를 다른 형제자매에게 떠넘기고도 당당한 이들로 상처받은 사람 또한 흔하다. 물론 목사라는 '직업'은 결혼식이 있고, 가족 모임이 흔한 주말이 제일 바쁘고, 장례가 나면 휴가 중에도 복귀해야 하는 그런 '직업'이다. 직업으로선 그렇다. 남편은 어릴 적 친구 모임의 걸림돌이 되곤 한다. 모두 일하는 월요일에 쉬니 말이다. 우리 가족 때문에 시가의 가족 모임 시간 잡는 것이 늘 조금씩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직업, 서있는 위치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목사 아니라 누구도 가진 한계이다.
 
봉헌된 삶, 하나님께 드려진 삶은 결국 사람에게 드려진 삶이다. 하나님 일이라 퉁쳐서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성직은 없다.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기에 단호할 수밖에 없었던 베네딕토 오빠였을 것이다. 동생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오빠로서 오빠의 자리에 진정성 있게 충실한 것은, 오빠의 뒤를 따르는 동생을 위한 최선의 사랑일 수 있다. 문제는 사랑이다. 오빠를 조르는 동생 역시도 사랑이었으니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알아주셨을 것이고. 봉헌된 삶은 특혜를 누리는 삶이 아니다. 하나님께 봉헌된 사람은 사랑에 봉헌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차별하고 혐오한다면 그는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을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다. 
 
성 베네딕토와 성 스콜라티카 남매의 사랑 이야기에 마음을 적신다. 편 가르고, 특권의식에 휩싸여 배제하고 혐오하는 부끄러운 내 마음 정화되기를.
 
 

버스 창너머 산 위에 보이는, 호텔 수영장에 비쳐서 보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 찾기!

 
베네딕토 성인이 정착하여 살다가 묻힌 곳, 베네딕토회의 모체이며 서방 수도회의 모델이 되는 수도원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이다. 글로만 보던 베네딕토 성인의 삶과 영성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처음 순례지 카사마리 수도원에서의 감흥이 가시지 않은 채로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향했다. 지도책에서 본 것을 눈앞에서 바로바로 찾아내는 JP가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거기 산꼭대기에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보였다. 와아, 저기로 올라가는 거야! 저기야, 저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식상한 말은 꼭 이렇게 튀어나오곤 한다니까. 글로 보면서 한참 가까워진 베네딕토 성인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에는 없었다.

 

로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은 <베메딕토 수도 규칙>이었다. 비행기 독서는 집중력과 이해력이 덜 필요한 소설 정도가 적당한데 무려 ‘교부 분헌 총서’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이다. 읽힌다는 뜻이다. 술술 읽힌다는 뜻이다. 6세기에 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분명 성인이 이루고자 하는 수도 공동체의 이상은 높은데, 실천할 것들은 구체적이고 섬세하다. 숲과 함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런 식이다.

식탐이 있거나 식사량이 많지도 않는 남편인데 나이가 들면서 전 같지 않다. 가만 두면 계속 먹는 아저씨가 되어간다. 남기기 아까우니 먹어 치우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뜻인기 싶고. 아무튼 비행기 안에서 나오는 식사, 간식을 남기지 않아도 탈탈 털어먹는 것이다. 거기 엮여 이건 남겨라, 저것만 먹어라, 잔소리하는 나도 싫고. 그런데 마침 읽고 있던 <수도 규칙>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옆구리 쿡쿡 찔리서 보여주었다. 큭큭거리며 알겠단다. 말이 필요 없는 가르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식을 피해 수도승이 결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식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다.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으로 무뎌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수도 규칙> 39장 '음식의 분량'

성화에서 베네딕토 성인을 찾는 방법은 손에 든 규칙서이다.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써서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3년의 은수생활, 수도원 창설, 기도 생활… 그 모든 것보다, 아니  모든 것을 담은 규칙서를 만들고 문서로 남겼기에 베네딕토 성인이 베네딕토 성인 된 것 아닌가. 왜 굳이 그는 수도승들을 위한 규칙서를 만들었을까?

베네딕도의 명성이 널리 퍼져나갔을 때 비꼬바꼬( Vicovaro) 수도원으로부터 수도원장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못 이겨 수락하게 되었다. 수도생활을 바로잡고자 하는 원장 베네딕토의 엄격함이 지나치다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고, 불만은 불만에 그치지 않았다. 베네딕토를 독살하려는 음모가 꾸며진 것이다. 성인전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암살을 위해 독이 든 포도주가 만들어졌고, 베네딕토 성인이 포도주에 강복하자 그 잔이 깨졌다는 것이다. <수도 규칙>을 번역 주해한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비꼬바로에서의 이 사건은 앞으로 자신의 공동체를 지도하게 될 베네딕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수도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회심의 노력이 없는 한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후에 그의 규칙서 여러 여러 곳에서 개인적인 수덕 노력과 형제들의 상호 교정을 강조하면서 악습을 고치는 일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말이 그렇지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청운의 꿈을 안고 로마로 갔던 일, 거기서 느낀 환멸과 그로 인해 선택한 은수생활, 그로 인한 하나님 체험을 가르치고 나눌 공동체라 여겼을 텐데. 여러 이유로 거절했지만 결국 가야 했던 그 자리에서 이루고 싶은, 이룰 수 있다 여긴 수도 공동체였을 것이다. 배우고 따르기는커녕 뒤에서 독살 계획을 도모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았을 충격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방 수도원 영성의 아버지'가 된 베네딕토는 깨달은 것이다. " 아무리 훌륭한 수도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회심의 노력이 없는 한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덕에 지금 우리 손에 <수도 규칙>이 들려져 있는 것 아닌가. 그로 인해 '서방 수도원 영성'의 아버지로 우뚝 서 있는 것 아닌가. 뼈아픈 체험 속에서 숲과 함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까지 보여주는 <수도 규칙>이 나왔구나 싶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이후 역사 속에서 네 번의 큰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577년 롱고바르도족의 침입으로, 두 번째는 883년 사라센의 침입으로, 세 번째는 1349년 대지진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2차 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2월 18일 연합군의 리더인 미군이 당시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저항하는 독일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1250톤의 폭탄을 투하하여 수도원의 거의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된 상태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어놓은 수도원 건물의 스러짐을 막을 방법이 있겠는가. 세월의 흐름으로 부식되고, 전쟁으로 파괴된다. 마음에 지어진 성전만이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는다. 몬테카시노에서 <수도 규칙>을 쓰던 성 베네딕토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대했는데 없었기에 내 마음에 더욱 농익혀 그분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공동체에 대한 열정을, 좌절을, 물러남을, 나아가고 실패하는 여정을. 그 모든 것이 담겨 지금 내 손에 주어진 <수도 규칙> 한 권이다. 6세기, 여기 몬테카시노에서 규칙서를 만들고, 고치고, 썼을 성 베네딕토를 생각한다.  

 

* 순례 일정 중 순례기 쓰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는 수도원 호텔이라 와이파이도 안 됨) 그럼에도 결국 써서 남겨주신 6세기 성인의 열정을 이어받아 어떻게든 이어가 보기로 한다. (이 연재 재밌는 분? 응원 필요함!)

 


 
 

1203-1217년 사이에 지어졌다고 하는 이탈리아 라치오주 프로시노네 지방에 있는 카사마리 시토회 수도원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인데, 첫 순례지는 시토회 수도원인 카사마리(Abbazia di Casamari)이다. 시토회라니. 내게 수도원은 시토회(트라피스트) 수도원이다. 어째서 그러한지, 내 비밀 같은 이야기를 차차 풀어놓으려고 한다. (오늘 이야기가 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들꽃은 어디나 있다. 개망초를 닮은 이 꽃의 이름은 '봄망초'이다.

 
나를 알고 남편을 아는 지인들은 '수도원 순례 여행' 간다는 말에 끄덕끄덕 하며 부럽다고 한다. 순례단에서는 신기한 일로 여긴다. 개신교인이, 그것도 목사 부부가 어떻게 여기를 함께 하느냐고.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 안면을 트고 대화가 길어지면서 듣고 또 듣는 질문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수도원 영성이 내 마음에 훅 들어온 것은 대학원에서 '영성신학' 과목을 듣던 그때였다. 생 티어리의 기욤<Guillaume de Saint-Thierry 1085-1149) 저작 『황금서간』을 한 학기 묵상 과제로 받았다. 엄밀하게 말하면 과제 앞에 '묵상'은 내가 붙인 것이다. 주욱 읽고 리포트 쓸 책이 아니었다. 한 학기 내내 영적 독서로 정하고 아침마다 한 절씩 읽으며 묵상하게 되었고, 그 책이 내 마음을 적셨다. 
 
이 책으로 쓰신 교수 신부님의 논문은 오늘날의 신학에 대한 성찰로 시작한다. "모든 신학은 하나님이 사람과 어떻게 함께 하시는지 말해야 하고, 또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해야 하는데 오늘의 신학은 자신이 ‘학문’인 점을 강조하고 있을 뿐, 하느님과 사람 사이 가교임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삶과 분리되어 사변적 학문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시대는 바야흐로 영적인 시대가 되었고,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영적 갈망은 커지는데, 삶과 분리된 신학은 신자들의 영적 갈망을 채워주기는커녕 진정한 내적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전해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사변적인 신학들이 진정한 내적 인간 양식을 전해주기는커녕, 내적 인간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한다. 
 
논문을 읽고 공부하면서 영성과 신학 사이에서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을 알고 놀랐다. 12세기 스콜라신학이 등장하면서 수도신학과의 논쟁과 시대적 정황 속에서 어떻게 사변신학이 우위를 점하게 되었는지 공부하며 수도원 영성에 깊이 매료되기 시작한 것이다. 생 티어리의 기욤은 스콜라 신학의 시작점에 있었던 아벨라르두스와의 논쟁했던 (당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논증''을 통해 삼위일체를 증명하고자 했던 아벨라르두스와의 눈쟁에서 결국 이기게 된다. 논쟁에서 이겼고, 결국 아벨라르두스는 패자가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12세기 이후 스콜라신학이 신학의 주류가 되었고,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스콜라신학, 즉 학교신학을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모여들고 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수도자들의 일이 되었다. 수도자들은 학교를 운영해야 했고, 병자를 돌본다거나 다양한 일을 집행해야 했다. 이렇듯 일이 많아지자 수도자들은 독방에 머무르면서 고요히 기도하는 것에 방해를 받게 되었다. 이때, 스콜라신학과 강의로 인기를 얻는 세속 성직자의 도전으로 인해 수도자들은 그동한 해오던 교육 사업으로부터 물러날 뿐 아니라, 교육에 대해 등을 돌리기까지 하는 수도원들이 생겼다. 특히 12세기 수도원 개혁에 앞장섰던 시토회에서는 세상에서 더욱 물러나 광야에 자리를 잡고, 다른 일보다 손으로 하는 노동과 함께 기도하며 살게 된다. 외적인 학교를 배제하고 내적인 학교를 사는 것으로 전향한 것이다. 
 
생티어리의 기욤은 시토회 개혁을 주도하던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의 친구였다. 윌리엄은 1119년 생티에리 대수도원의 수도원장에 선출되자 행정보다는 명상과 저술에 몰두하고자 했지만, 친구인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권고를 받고서 그 직위를 지켰다. 결국 이후에 베네딕토회를 나와 시토회로 입회하였다. 『황금서간』은 카르투지오 수도회 소속의 수도원을 방문한 뒤 거기 수도사들에게 쓴 편지이다. <몽디외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관상생활에 말 그대로 황금 같이 소중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황금의 편지'로 불렸다. 12세기 쓰인 이 책을 한 학기 동안 읽고 기도하면서 '영적 독서'가 어떻게 기도인지 체험했다. 내적 인간을 위한 거룩한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황금서간』은 아침마다 내게 마음의 '독방'으로 들어가라 가르쳤다. 수도원의 독방은 내적인 독방이라고. 거기는 하나님과의 비밀 같은 사랑을 간직한 곳이다. 내게 그런 독방이 있다. 카사마리 수도원 성당에 들어가 앉아 드리는 짧은 기도가 우리 집 거실에 앉아 드리는 기도와 다르지 않으니 내가 가는 곳이 그 방이다. 


수도원 수사님께 직접 안내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중세 수도원에 관해 책으로 배운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귀로 듣는 흥미진진한 시간이었다. 내게는 흥미진진이었는데, 일행들은 슬슬 자리 이탈을 하기도 했다. 식사하며 들으니 지루한 내용 듣는 것이 힘들었고, 빨리 끝내길 바라면서 "이제 그만!"을 여러 번 외쳤다고 한다. 그러며 열심히 듣고 메모하는 개신교 신자를 보고 반성했다고도. 아, 내가 불안하면 남도 불안한 줄 아는 것처럼 내가 재밌으면 다른 사람도 재밌는 줄 아는 게 '내 중심' 사고라니까! 자신이 살고 있는 집, 그 집의 역사를 들려주는 재미에 아이처럼 신이 난  수사님이 귀여웠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100여 명이 살았는데, 지금은 15명의 수사님들이 살고 있다고. 이 넓은 집에서 15명이 사니, 그 집을 찾은 이들에게 영광스러운 역사를 들려주는데 신이 나지 않겠나. 그리고 내가 가장 가깝게 느끼는 시토회의 저 수도복... 용기 내어 사진 한 장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수사님들이 모여서 <베네딕토 수도규칙>을 읽었다는 방의 스테인드글라스이다. 왼쪽은 베데딕토 성인, 오른쪽은 딱 봐도 시토회의 사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나는 이 두 분을 알고, 내가 이분들을 알기에 이분들도 나를 알 것이다. 내가 수도원에 닿은 이야기, 지금 여기 이탈리아에 있는 이야기는 1500년, 900여 년 전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도하던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바로 그 이야기이다. 

 

로마에 온 걸 환영한다니! 내가 로마에 왔구나! 순례 일정 중 분명 로마가 끼어 있는데 얼마나 안중에 없었는지,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여 "Welcom to Rome"이란 전광판 글씨를 보고 "아, 나 로마에 온 거지... 로마행 비행기였어..." 싶었다. 이탈리아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이다. '수도원'과 '베네딕토'에만 온통 집중하고 있어서 로마 일정은 보고도 본 게 아니었다. 
 
남편의 안식월과 결혼 25주년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는 긴 여행을 잡기 딱 좋은 시기였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온전히 3개월 '홀로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어떤 여행이든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겠는가 싶(은 쿨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 25년 만에)었다. 실은 그 와중에 내겐  '수도원 순례 여행' 씨앗이 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서 주관하는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였으니.
 
남편의 마음을 움직여 '수도원 순례 여행'에 함께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렉시오 디비나'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도원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이다. 단순히 영성사가 아니라 말씀 묵상의 역사를 따라 올라가도 결국 이 수도원 전통과 닿아 있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게 결혼 25주년 기념 여행은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 여행'으로 정해졌고, 나는 지금 로마에 와 있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토는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라 불린다. 물론 베네딕토 수도회의 창설자이다. 무엇보다 오늘 날 많은 수도회들이 따르고 있는 <베네딕토의 규칙서>를 지어 문서로 남긴 것이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 규칙서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6세기에 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동체로 사는 삶과 관계에 대해 주는 지침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긴 여행에는 여러 권의 책을 심혈을 기울여 선택해서 가져오곤 하는데, 이번엔 거의 <베네딕토 규칙서> 한 권, 원 픽이다.
 
3년의 은수생활로 성 베네딕토는 오히려 유명해졌는데(은수, 숨어서 혼자 지내는 데 유명해지다니 말이다.) 은수생활 이전의 로마 유학 생활이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인상적이다.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갔던 베네딕토 성인은 타락한 정치와 교회, 환락과 퇴폐로 물든 로마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그곳을 떠나 수비아코(Subiaco) 계곡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하고, 거기서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된다.
 
베네딕토의 여정에 몰입한 탓일까. 로마에 끌리지 않았다. 어서 몬테카시노(Montecassino) 수도원으로 날아가 그 회랑과 정원을 걸으며, 성당에 오래 앉아 기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로마가 환영한단다. 은수처의 기도 이전에 학업의 꿈을 품고 갔던 로마가 있었고, 화려하고 풍요롭고 타락한 로마를 살았기에 환멸을 느끼기도 하였고, 떠나기도 하여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오늘 내 손에 남겨주신 베네딕토 성인이 되었다.
 
Welcome to Rome!
로마가 환영한단다. 나도 로마를 환영하기로 한다. 7시 30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내려 어두워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어느 호텔에서 순례 여행 첫밤을 맞는다. 하루가 공중에 붕 떠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르겠는 몸으로 로마의 밤을 맞았다. 물론 잠은 오지 않고. 덕분에 1일 차 순례기를 썼고, 두어 시간이라도 잘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당신도 이렇게 멀리 어디를 갈 때 그런 생각 들어?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아니, 전혀! 가는 곳을 생각하느라 그럴 겨를 없는데." 의외였다. 남편이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에 오는 길, 급성 게실염으로 응급실로 가서 바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입원실 침대 밑에 놓인 구두를 보고 "어느 날은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와 다시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지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며 성찰한 내용을 설교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까지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느낌은 있을 줄 알았다. 전혀!란다. 순간 이 며칠, 아니 어디 떠날 때마다 무거워지는 내 마음이 새롭게 알아차려졌다.
 
어제 채윤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당신도 이렇게 멀리 어디를 갈 때 그런 생각들어?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아니, 전혀! 가는 곳을 생각하느라 그럴 겨를 없는데." 의외였다. 남편이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에 오는 길, 급성 게실염으로 응급실로 가서 바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입원실 침대 밑에 놓인 구두를 보고 "어느 날은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와 다시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지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며 성찰한 내용을 설교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까지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느낌은 있을 줄 알았다. 전혀!란다. 이 며칠, 아니 어디 떠날 때마다 무거워지는 내 마음이 새롭게 보인다. 내가 그러면 남도 다 그런 줄 아는 게 인간이구나.
 
좋은 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적이 거의 없다. 꿈에 그리던 수도원 성지 순례이고, 그저 짐만 싸면 되는, 난생처음 해보는 패키지여행이다.. 가서 해야 할 강의도 없고, 마지막까지 붙들고 끙끙거릴 원고도 없었다. 마침 집단여정 네 그룹도 모두 종강을 하고 여행 전 한 주는 헐렁한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떠날 날이 다가오면 마음에 먹구름 한 장이 드리워 일상이 묵직해진다. 오래도록 내 몸에 딱 붙어 있던 느낌이라 새롭지도 않다. 그런데 내 것이었구나. 나만의 것이었구나. 여행 출발은 고사하고 달력의 빨간 날만 봐도 설렌다는 연구소 은경샘의 말이 동화 속 대사처럼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채윤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다툼이랄 것도 없다. 내가 괜히 아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아빠 생일 선물로 아이들이 바지를 하나 사주기로 했는데, 미리 봐둔 바지를 사러 아빠와 딸이 나갔다. 채윤이가 거기 어울리는 남방을 골라 사주고는 둘이 기분 좋게 들어왔다. 내 눈엔 사이즈가 커 보이는데 오버사이즈로 입는 거란다. 내가 볼 때는 아빠 스타일이 아니라는 둥, 불필요한 말을 해댔다. 아이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채윤이 엄마는 늘 이런 식이지!) “엄마 눈이 문제야. 미안해.” 뒤늦은 사과와 수습을 했고, 잠들기 전 채윤이도 “엄마 내가 아까 과했어.”라고도 했지만,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 마음이 썩 개운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모든 수속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러 앉았는데,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채윤이와의 마지막 시간은 이 감정일 텐데, 하는 생각에 미쳐 남편에게 물은 것이다. 지나친 상상이며 비합리적 걱정인 것을 알기에 질문이 나왔겠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흐릿하지만 또렷하다고나 할까. 흐릿한데 마음에서 지워진 적은 없는 느낌이다. 서울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밥을 드시고 나갔던 그 겨울의 밤 같은 새벽. 밖이 아직 캄캄했었다. 나갔던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 모자를 달라고 했다. 현관으로 다시 들어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 멀리 떠나는 아버지나 엄마는,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란 상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버릇이 있(었구나를 이제 다시 알겠)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처럼 흐릿하지만 지워진 적은 없는 상상이다.
 
남편이 말했던 '내 구두를 신고 집에 돌아가지 못할 날이 있겠구나!' 하고 깨달은 것은 어른의 기억이며 의식적 성찰이고, 멀리 갔다 집에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는 존재의 흠처럼 남은 정서적 기억이다. 거기로부터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다.. 무의식적 신념은 힘이 세다. 이름을 붙이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좋은 여행을 앞두고 좋아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준비할 것이 많네, 가기 전에 처리할 일이 수두룩 하네, 징징거리며 투덜대며 두려움의 버튼만 눌러대는 것이다.
 
공항이다. 먹구름에 이름을 붙이고 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슬픔이 다시 밀려온다. 이것 그대로 가지고 떠난다. 이탈리아나 독일 수도원 어느 곳에 두고 집으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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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사람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풍경이라도 사람이 담겨야 내게는 비로소 의미가 된다. 내 평생 뉴질랜드 남섬 여행만큼 멋진 풍경을 몰아서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그 배경의 사람이다. 남편과 둘이 여행하면 좋은 풍경에 내 독사진, 몇 장 안 되는 JP 사진, 각도 참 안 좋은 셀카 정도인데. 이번 여행에선 커플 사진을 많이 건졌다. 그 모든 사진 중 참 좋은 사진은 넷 단체사진인데,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페이스북에 공개했었다. 사진마다 표정이 좋고, 표정보다 더 좋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애는 후커 밸리 트래킹 끝에서 만난 마운틴 쿡 배경의 빙하호수 배경의 네 인물이 담긴 사진이다.

 

고고씽 뉴질, 남섬 원정대 담당 업무 : JS 대장 / YS 회계 및 실세 / JP 총무 / SS 서기 및 유흥
 

남섬 여행을 위한 공식 첫 회의에서 업무분장이 있었다. 참으로 적절한 업무분장이었고, SS를 제외한 나머지 원정대는 정말 감동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주셨다. 벌써 두어 달 전의 기억이 된 이 여행의 제목은 내게 "얹혀간 여행"이다. '기록'에 관한 한 각자의 방식으로 타고난 네 사람이라 내가 담당한 '서기'의 의무는 의미가 없었다. 여행 계획과 여정과 회계에 관한 정확한 기록, 여행 후 디테일한 기억의 기록에 얹혀서 여행을 누리고, 다녀와서는 힘들이지 않고 추억을 복기한다. 이렇게 여행하면 한 번쯤 싸워야 하는데... 우리 왜 안 싸워? 이런 심정. 심지어 돌아와 해단식 같은 지난 주일 모임에서도 한 번쯤 싸웠어야지, 우리 왜 안 싸웠어? 서로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우리 왜 안 싸웠을까요?

 

(다 커서 찾아간 교회를 모교회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모교회에서의 인연이다. 둘 다 이런저런 교회 경험과 환멸 속에 방황하다 찾은 교회였다. 그 청년부에서 만나 결혼했고, 거기서 두 아이를 낳았고, '한영동산'이라 불리던 교회 앞의 동산은 우리 아이들에겐 유년 시절 비밀의 숲이다. 좋았던 교회이다. 어느 순간 교회를 옮길까 고민하던 시점이 있었다. 뭔가 공허하고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고, 교회 문제라기보단 우리 문제가 아닐까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형식적 교회에 만족하지 못했다. 진정한 공동체가 있을 것이고, 우리가 일궈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정말 '공동체'에 목을 매는 커플, 한쌍의 바퀴벌레이다. 공동체를 찾고 싶었다. 그때, 교회를 '가정교회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정교회로의 전환이 급진적이라 판단되었던 것일까. 여성들 위주의 구역모임을  '가정(또는) 부부 중심'의 소그룹으로  실험적으로 운영하는데 우리 구역이 뽑힌 게 신의 한 수(또는 악마의 한 수)였다. 그로부터 시작한 가정교회 시스템이 정말 좋았고, 교회를 옮길 마음이 싹 사라졌다.(아, 그러고보니 남편은 가정교회 주제로 논문을 썼었네!) 그리고 그때가 뉴질 원정대 JS, YS, JP, SS 드림팀 구성의 시작이었다.  

 

실은 이 처음의 이야기들을 잊고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은 '뉴질랜드 펠로우십 교회'를 돕는 일로 시작되었다. JS 대장님의 오랜 Kosta 인연으로 개척부터 도운 교회이다. 개척 후 5년의 세월이 흘렀고, 꾸준히 성장하는 교회의 리더십을 새롭게 하는 일을 돕고자 하는 것이 여행의 주요한 목적이었다. 어... 어... 하다 얼떨결에 합류한 NFC 리더십 수련회를 비롯하여 주일 예배, 무엇보다 수시로 있던 모임에서 나는 적잖이 감동을 받았고, 많이 부러웠다. 인생 가장 치열한 시간을 사는 세대였는데, 교회를 향한 열정으로 그냥 시간과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었다. 아, 나도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지. 내 교회가 내 삶이었던 적이 있었지. 교회가 공동체였고, 공동체가 그냥 교회였지. 그때가 그때였다. 서재석 목짠님, 박영수 목녀님과 함께 했던 드림목장 시절이었다. 
 
수련회도 했고, 주일 예배도 함께 했고, 그리고도 모여서 저녁 먹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월요일 밤에 이들은 또다시 모였다. 소그룹 리더들이 모였다. 바로 그 모임에서 지난 시절 우리의 드림,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꿈이 모두 소환되었던 것 같다. 모임이 좋았다. 와하하하 웃으며 질의응답을 하는 중 소그룹에서는 리더와 함께 리더를 돕는 헬퍼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남편이 "제가 부구역장이고, 대표님이 구역장이셨다니까요."라고 했는데. 아, 그랬었다. 실험적 부부구역에서 구역장과 부구역장이었었지! 그리고 시작된 가정교회인 '드림목장'에서 공동체의 꿈을 살아봤던 것 같다. 우리 부부로서는 청년부 리더로 살아온 세월이 있었지만, 앞선 세대들과 마음을 나누는 교회를 처음 경험해 본 것이다.

 

그땐 그랬지... 그런데 우리를 그렇게 뜨겁게 달구었던 공동체의 경험, '가정교회'는 '모' 교회로부터 떠나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시기도 이유도 조금은 달랐지만 결국 두 분과 우리는 그 행복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거기를 떠나왔다. 그리고 '드림목장'의 경험을 기쁘고 아프게 간직한 채 교회를 향한 '드림'을 일정 정도 접고, 접은 만큼의 실망감과 그만큼의 허허로워진 마음으로 각자 낯선 교회 공동체에 어정쩡하게 몸담고 있다. 그래도 만나면 여전히 대화의 주제는 '교회'이다. 뉴질랜드 펠로우십교회, 갈등과 반목으로 상처받아 피 흘리는 모교회, 그리고 여러 교회, 우리들의 교회 이야기들...
 
목짠님, 몽년님. 좀 보편적인 호칭으로 바꿔보고 싶은데 여전히 두 분을 이렇게 부르게 된다. 실험적 공동체, '부부구역' 시절의 구역장과 부구역장의 관계로 시작한 드림목장 시절의 호칭이다. 교회와 공동체가 내 안에서 하나였던, NFC 교회 형제자매들의 열정에서 보았던 그 시절의 호칭이구나 싶다. 좋은 경험일수록 카피되지 않는 것이다. 그 시절로 족하고, 오늘까지 이어지는 만남으로 족하고, 한 번쯤 있어줘야 할 싸움도 없이 풍성한 여행으로 족한 이 여행이 교회이고 공동체이다. 뉴질랜드, 펠로우십, 교회는 우리 넷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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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 서천군 한산면 성외리 한산제일교회, 목사관. 내 고향집... 번짓수... 도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나네. 군산은 한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여서 가장 먼 곳이었다.군산은 배를 타야 가는 곳이었다. 장항으로 가서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넜다. 그릇을 새로 산다고 엄마 아버지가 군산에 가야 했었고, 늘 입이 헐곤 했던 아버지가 입에 바르는 약을 사러 군산에 갔다. 그 먼 군산에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 적도 있다.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한산에서 자란 내게 군산은 가깝고도 멀고, 꽤 중요한 곳이었는데... 그저 복성루 짬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중요한 조각이었는데. 

 운전하고 내려오느라 힘드셨겠다는 목사님의 인사에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툭 나온 말이다.  '제가 자가 운전으로 내려올 수 있는 남방 한계선이 군산이에요. 적절한 운전 시간이었어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정말 그렇다. 첫날 집회를 앞두고 식사하면서 목사님께서 "군산이 전라도이지만 충청도 인접이라서요. 충청도 정서와 매우..."라는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알아들었다. 아! 우리 엄마 사투리는 참말로 충청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그 무엇이었지! 순간 많은 기억과 생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충청남도 아래쪽 끝의 한산, 전라북도 위쪽 끝의 군산. 군산은 한산에서 도 경계를 넘어가야 닿는 곳이었구나! 

 실은 작년 여름 교회 전교인 수련회를 거의 한산이라 할 수 있는 '서천'에서 했었다. 수련회에서 맡은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서 꽃을 사러 군산에 갔었다. 차로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정말 가까운 곳이었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갈랐던 금강에 다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군산은 그냥 복성루 짬뽕의 군산이었지 내 어릴 적 군산이 아니었다. 첫날 강단에 올라 교우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어떤 지점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어떤 표정들에서 익숙한 무엇을 느꼈다. 아, 여기 한산과 멀지 않은 곳이야! 그 순간 엄마와 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과 한산의 교회와 목사관이 마음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군산에서 사경회 강사로 며칠을 보내면서 어릴 적 한산에서의 부흥회 생각이 났다. 부흥강사는 늘 우리집에 머물곤 했는데, 끼니때마다 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었다. 부흥회는 엄마와 집사님 권사님에게는 요리실력 부흥회였다. 끼니마다 산해진미였다. 우리 집은 바로 호텔이 되었다.  말썽꾸러기 동생은 부흥회 때마다 외갓집이나 이모집으로 유배되어 갔고. 참으로 극진했었다. 부흥강사, 목사를 향한 극진함이 그리 위험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목사였던 아버지를 향한 극진함이 목사가 늦게 얻은 딸인 내게로 흘러왔고, 생애 초기에 나는 큰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목사의 딸인 것이 부끄러움도 결핍감도 아니었다. 신앙 사춘기로 온갖 반항의 가슴앓이를 했지만 결국, 더욱, 오히려 더욱 교회의 딸인 나를 확인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은 어릴 적 받은 극진한 사랑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경회 강사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극진함은 세심함이었다.  호수 뷰의 호텔 숙소며, 부러 하루 오전 시간을 텅 비워 잡아주신 일정은 세심한 극진함이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느긋하게 호숫가 산책을 하고(주일 아침에도 6시 전에 일어나 느긋하진 않아도 여유는 있는 이른 아침 산책을 했다) 볕 좋은 창가에서 강의 숙지와 독서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은파호수공원 산책길은 다양하기도 했다. 호수 바로 옆으로 걷노라면, 어느새 오솔길, 오솔길을 걷노라면 늪지대를 지나는 듯한 길. 걸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내게 최적의 쉼이었다. 숙소 공간도, 텅 비워진 시간도 목사님의 세심한 배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딜 가든 목회자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내상을 입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분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전하게 된다. 한때 존경의 대상이었으나 어느 순간, 아니 서서히 빌런이 되어간 그 목사들은 원래 그런 존재였을까. 잘 위장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더는 정체를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그런 존재가 된 것일까. 그냥 '고산병'이라고, 높은 산에 올라가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 병과 같다고 진단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권력이 생기고 자리가 높아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황금투사'라고 이름 붙이곤 하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 이야기를 해야 했다. 
 
목회자에 대한 극진한 대접이 고산병을 낳고, 황금투사의 드라마가 된다. 위험하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절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 지도자, 특히나 영적 지도자를 향한 극진함은 배우는 사람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를 추앙해요!"라고 말하는 염미정의 말에 알콜중독자 구씨는 치유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염미정을 추앙하는 일은 염미정이 아니라 구씨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추앙하는 순간 자기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앤 율라노프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더 큰 권위에 연결되어 존중하며 성장하고픈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나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 향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닿는 가교가 된다. 기꺼이 두려움 없이 존경하고 극진하게 대할 대상이 없어 슬픈 시절이다. 그런 대상 따위 필요 없다는 상처 입은 자의식이 더욱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한산과 군산의 사랑을 생각하고,
어느 산 정상 근처에서 혼미한 정신으로 헤매고 있는 고산병 환자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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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SRT 수서역 대합실이다. 넉넉한 시간을 두고 나왔는데 버스와 지하철이 딱딱 맞아서 많이 여유로운 시간이 되었다. 이틀 간 아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늘 주일, 한참 전에 약속된 강의가 있는데 못 가게 되면 어떡하나… 누워서 기도하고 걱정하며 뒹굴었다. 온갖 최악의 상상을 하다 병원에 다녀왔다. 그렇다. 진즉 병원에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러다 말겠지, 푹 자면 괜찮아지겠지,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져야만 해. 이러면서 일주일, 열흘, 보름을 지내는 거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는 정말 아닌 것이다! 몸은 영혼이 보내는 최초 또는 최후의 신호다!”라고 마이크 들고 떠들어대면서 정작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한다. 실은 무시가 아니라 두려워서 못 본 척 하는 것이다. 아프면 무섭다. 머릿속으로 최악을 상상하기에 더 무섭다. 그래서 무서워서 병원에 못 간다. 이틀 침대에 누워 회개했다. 병원에 다녀와 검사받고 일단 처방받은 약을 먹으니 바로 조금씩 나아지는 몸을 느끼며 진심으로 내 몸에 미안했다. 병원을 가라고 답답해 하며 한숨 쉬는 현승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오늘 아침 꽤나 좋아진 몸으로 집을 나섰다. 담당 목사님과 주고받은 문자를 확인하니 기차 도착시간을 잘못 알려드린 것이다. 픽업 나오시는 권사님께 문자를 했더니 답신이 이렇게 왔다. “계단 올라오시면 제가 신앙사춘기 들고 서 있겠습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생기가 들어왔다. 이런 마중은 처음이다.


지하철에 앉아 문자를 주고받고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에 우리 현승이 초딩때 만큼이나 귀여운 남자 아이가 날 쳐다보며 자꾸 웃는다. 오?! 아니다. 내 옆에 앉은 제 엄마다. 자리 바꿔줄까? 하고 일어서니 기다렸다는 듯 폴짝 날아 제 엄마 옆에 앉아 뭐라 조잘거리며 좋아한다. 생기 더욱 충전이다. 눈을 뗄 수 없어서 자꾸 보게 되었는데, 그 옆에 앉은 연배 있으신 남성분의 백팩, 거기 달린 세월호 뱃지다! 감사, 연결감, 사랑… 이런 감정들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연결은 치유이고 치유는 연결이다. 내 몸, 내 마음, 내 영혼, 나와의 연결은 이웃과 연결이다. 나와 이웃과의 연결은 그분의 현존에 머무는 일이다. 내 몸 잘 돌보겠다고, 회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다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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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월을 맞아 공인 목사로서의 짐을 벗은 남편과 좋은 아침을 누리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 티키타카. 공인 목사로서 가장 좋아하는 일이 말씀 묵상을 가르치고 나누는 일이었지만, 자연인 JP로서는 말할 것도 없다. 나 역시 가장 잘하고 싶고, 늘 하고 싶은 것이 기도이고, 그중에 "말씀에서 솟아나는 기도"이다. 남편 블로그에 그날의 묵상이 "티키" 올라오면 댓글로 달아 "타카" 한다. 그분의 이끄심을 느낀다. 감사한 아침들이다. 어제의 묵상이다. 사순시기, 마태복음이 새롭게 읽힌다. "과정으로서의 수난"이다. 예수님을 위한 과정뿐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을 위한 과정인 것이 알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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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마 17:27)
“저들을 공연히 건드릴 것 없으니”(메시지성경)

수난을 향해 한 걸음 씩 나아가시고 예수님이 느껴집니다. 제자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곧 예수님 자신의 준비인가 봅니다. 다시 고난받을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두려워서 근심합니다. 그 와중입니다. 세금 내는 문제로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구비시킵니다. (베드로와 자신을 하나로 묶어서 "우리가"라는 주어를 쓰십니다.) 임금의 아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지만,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성전세를 내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저들을 "(우리가 저들을) 공연히 건드릴 필요가 없으니" 말입니다. 저들이 요구하는 건 내는 것이 낫습니다. 저들이 때리면 맞는 게 낫습니다. 저들이 빼앗아가면 빼앗기는 게 낫습니다.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17:22, 메시지성경) 을 공연히 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베드로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살아야 할 운명의 길에 오른 베드로를 가르치기 위해서, 이제 곧 수난의 때가 오고, 당신의 때가 끝을 향하는 것을 아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구비시키기 위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돈이 없는 베드로에게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 입만 열었는데 꼭 필요한 만큼의 동전을 얻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물고기 잡는 일은 베드로에게 가장 익숙한 일입니다.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당하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베드로를 위해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로 체험을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떠나신 후에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이 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야, 결국 그 사람들이 이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손에 넘겨서 죽게 돼. 그들이 이기는 것처럼 보일 거야. 나와 네가 지고 실패한 것처럼 보일 거야. 세금을 징수하는 그 사람들이 강해 보이지만, 너는 하나님의 자녀야. 세금 따위는 내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과 관계하기 원치 않는 사람을 공연히 건드릴 필요가 없단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야. 저자세도 고자세도 아닌 정자세로 지킬 것을 지키도록 해. 원하는 것을 줘. 싸우지도 말고, 괜한 올무에 걸려들지도 마. 네가 가장 잘하는 고기 잡는 일 정도의 대가를 치르면, 필요한 기적을 볼 수 있을 거야. 나의 죽음을, 나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베드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 권력자라 해도, 강해 보여도,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

 

마태복음 17:22-27

22제자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곧 사람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다.
23 사람들은 그를 죽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날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들은 몹시 슬퍼하였다.
24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여러분의 선생은 성전세를 바치지 않습니까?"
25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바칩니다." 베드로가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을 꺼내셨다.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세상 임금들이 관세나, 주민세를 누구한테서 받아들이느냐? 자기 자녀한테서냐? 아니면, 남들한테서냐?"
26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남들한테서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자녀들은 면제받는다.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니,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서 그 입을 벌려 보아라. 그러면 은전 한 닢이 그 속에 있을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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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돌아가신 엄마의 생신이었다. 우리 나이로 100세 생신이다. 내년은 우리 엄마 탄생 100주년 기념의 해이다. 내일은 엄마의 기일이다. 4년이다. 마침 이때 '그리운 얼굴'을 주제로 기고글을 쓰고 있다. 일주일을 끙끙거리며 눈물을 훔치며 엄마 얘길 또 썼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어려움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빨리 쓰고 털고 싶은데, 빨리 잘 쓰기 위해서 엄마를, 그리운 얼굴을 계속 떠올려 마주해야 한다. 도망치고 싶다. 빨리 탈고를 해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 탈고를 위해서는 이 고통에 머물러야 한다.  마감은 다가오는데 도망갈 수는 없고, 그 마음에 머무르자니 헤집어지고 헤집어져 글을 쓸 수 없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졌다. 그래도 거의 다 썼다. 엄마 생신, 엄마 기일 사이에 낀 오늘 탈상... 아니, 아니 탈고할 것이다. 글을 쓸 수 있어서, 글 쓸 기회가 주어져서 엄마를 자꾸 새롭게 만난다. 엄마를 새롭게 만나는 것은 다름 아닌 나를, 하나님을 새로 만나는 일이다. 

 

노트북 옆 프리지어가 향기로 함께 한다.

밤에는 초도 켠다.

낮으로 밤으로 향기와 빛으로 함께 하는 그분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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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르망 장 드로아스(Germain-Jean Drouais, 1763-1788), 예수님과 가나안 여자, 1784년

 
자녀와 개,
누가 자녀이고, 누가 개인가?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녀와 개를 구분하고 차별하시겠다는 뜻인가? 예수님이 그런 분인가?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라고 말씀하셨던 분 아닌가. 바리새인들 안에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자의식, 자녀라는 특권 의식을 꿰뚫으시고 발에 차이는 돌로 여기셨던 분 아닌가. 발이 차이는 돌에 비하면 개는 더 나은 것 아닌가.
 
차별과 혐오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 대화의 기술을 통해 그 반대를 피력하려는 예수님이 느껴진다. 사려 깊고 따뜻하고 지혜로운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간절히 간청하는 여인을 귀찮아하는 제자이다. 이방 여자 한 사람의 필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예수님이 이 (이방인) 여자를 어떻게 대할까, 꼬투리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눈들이 또한 번득이고 있다. 
 
"자녀"임을 자처하며 우월감과 특권의식에 싸인 이들의 마음에서 울리고 있는 바로 그 말을 예수님께서 육성으로 들려주신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옳거니! 했을 것이다. "이제야 바른말을 하는군! 어디 여자, 그것도 이방인 여자와 말을 섞고 부탁을 들어준단 말인가. 이제야 유대인 남자다운 모습을 보이는구만!"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 예수님이 절실한 사람 가나안 여인의 마음을 예수님은 아신다. 여인 안에 있는 절실함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해서 어두운 배경을 만들어 내시는 예수님의 빅 피처이다. 말로 가르치는 설교가 아니라 체험 자체로 가르치신다. 개가 되든 무엇이 되든 오직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한 사람이 온몸으로 내보이는 간절함을 드러내신다. 이것이 필요하다고. 이 가난한 마음이면 된다고.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몸으로 대면하고도 회개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자녀"임을 자부하는 특권의식의 소유자들이었다. 자기 확신에 매몰되어, 자기가 지키는 율법조항 몇 개를 무기 삼아 꼬투리 잡기에 혈안이 된 바리새인들은 그 어마어마한 성육신, 신의 현현을 눈앞에 두고도 구원에 이르지 못했다. 
 
가난한 마음이 복되다고 하신 산상수훈 첫 말씀을 기억한다. 치유와 성장이 필요하여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일이다. 기적같은 치유와 성장을 내 눈앞에서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하나같이 가난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금이 간 존재, 진창에 빠진 자신을 또렷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결국 치유되고 성장하고 만다. "이만하면 됐지" "나만큼만 하라고 해" "내가 너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한 게 얼만데..." 하는 태도로 치유와 성장에 닿는 것을 보지 못했다. 높은 자만심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함께 병들게 한다.
 
주님, "자녀"라는 확신이 만든 우월감과 특권의식으로 당신을 알아보지 못한 시간들이 부끄럽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순간순간 분출하는 우월감으로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이쪽 저쪽에 벽을 세우기도합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가난한 마음 하나로 족한 저이고 싶습니다.

 

마태복음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22 마침,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그 지방에서 나와서 외쳐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딸이, 귀신이 들려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 때에 제자들이 다가와서, 예수께 간청하였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외치고 있으니, 그를 안심시켜서 떠나보내 주십시오."
24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나아와서, 예수께 무릎을 꿇고 간청하였다. "주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27 그 여자가 말하였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28 그제서야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참으로 네 믿음이 크다. 네 소원대로 되어라." 바로 그 시각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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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자꾸 읊조리고 다녔더니 예상치 못한 봄 같은 선물이 찾아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봄은 아직 먼 것 같아 답답한  마음으로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이래도 못 믿겠느냐!"면서 코 앞에 봄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움트는 저 생명을 "봄"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탄천으로 내려가자마자 예쁜 새소리가 귀를 잡아 끄는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더듬고 더듬어 찾아보니 한 녀석이 앉아 노래를 해댔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떠하든, 지금 하는 그 생각 그대로 일지라도 사랑하신다!" 새는 늘 그렇게 운다. 한참 서서 듣다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편 경부고속도로 바로 옆길을 선택했다. 아까 그 녀석이 따라왔나? 그런데 조금 더 요란하다. 멈춰서 보니 동네 친구들 죄 불러 모아 합창을 부르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이제 봄이다!"
 

 
종일 하늘이 흐렸다. 돌아오는 길 하늘 저쪽에 요만큼의 노을이 보일락말락 한다. 그렇지, 흐려도 하늘이고, 흐린 하늘 너머에 해는 떠오르고 지는 것이지. 보이지 않아도 저기 해가 떠 있어... 조금 더 걷다 보니 "나, 여깄지!" 가드레일 틈새로 붉은 존재감!

 

연구소 카페의 읽는 기도는 토머스 머튼의 영적 여정에 이정표가 되었던 책과 인물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오늘은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리는 리지외의 테레사의 저작과 이야기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이라 여겼다고 하는 소화 데레사이다. 작고 확실한 절망을 절망으로 마주하고, 작고 확실한 기쁨을 기쁨으로 마주하는 것이 "살아서 사는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것 같다. 마음을 일으켜 나가 걷기 시작하면 금방 알아지는 진리이다.
 
오늘 아침 연구소 카페 "읽는 기도"에 붙인 댓글이다.

 

"리지외의 데레사가 걸어간 영성의 '작은 길'은,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진 영혼은 일상생활에서 신실한 행실로 그 사랑에 부응하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보여주었다."_토머스 머튼

토머스 머튼이 만난 또 하나의 이정표인 리지외의 데레사는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립니다. 24세로 일찍 생을 마감한 19세기의 성인입니다. 스스로를 "작은 꽃"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작은 꽃으로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모래 한 알로 살고자 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유의 끝에는 말 한 마디, 작은 사건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건 별 것 아니라고 하나 씩 외면해버리면  삶은 텅 비어버립니다. 리지외의 데레사는 그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를 사랑으로 응답하는 길. 내 일상의 작은 기쁨과 작은 모욕 하나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작고 미미해서 하나님과는 상관없고 영성의 삶과는 무관하다 여길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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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반스의 "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책과 음악이 위로가 되긴 하지만, 어쩐지 일으켜 세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봄을 믿을 수 있을까?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의 마음이다. 그래서 고른 음악이다.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고, 세상에나...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책을 쓰신 신부님의 메시지이다. 선물 같은 메시지를 받고 그분의 책을 다시 꺼냈다. 서문을 읽었다. 두 번 반복해서 읽고 나서 이대귀의 <내겐 봄과 같아서>를 플레이 리스트에 걸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손짓하시는데... 봄을 믿어야 한다. 나는 봄을 믿어야 한다. 당신도 봄을 믿어야 한다. "내밀리고 밀리고 휘둘려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대신에, 먼저 자유로이 광야를 품을" 결심을 늘 이 자리에서 새롭게 해야 한다.

 

봄을 믿는 사람은 희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희망은 믿고 의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희망과 믿음은 수원(水源)처럼, 소실점처럼
사랑에서 시작하고 사랑으로 향합니다.
봄을 믿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희망이
황량한 대지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사랑의 흔적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이제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말은
하느님이 들려주신 것이라는 것을
 
이 말을 벗들에게,
터널과도 같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이웃들에게,
무엇보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 말을
내게 들려주시기를 청합니다.
당신의 이웃에게 들려주기를 청합니다.
우리가 서로 지치지 않고 이렇게 속삭이기를
하느님은 바라십니다.
"그래요,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혹독한 광야와도 같은 시간이 우리에게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봄을 믿는다면, 광야의 시간은 축복의 때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도시의 광야'를 마음에 품고자 합니다. 내밀리고 휘둘려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대신에, 먼저 자유로이 광야를 품기로 결심한 사람의 내면은 깨끗해지고 풍성해집니다. 그는 이웃을 향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며, 기뻐하는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겨울 풍경을 눈에 담습니다. 두려워하고 움츠러드는 마음을 내려놓고, 흰 눈이 뺨에 닿는 감각에 깜짝 놀라 기뻐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씩씩하게 겨울의 숲을 걸어갑시다. 겨울의 시간이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배웅합니다. 벌써 자라난 초록빛 새싹을 맞이합니다. 봄의 기운을 몸에 담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과 함께 찾아온 사순절의 시간 속으로 자유로이 들어섭니다. 그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듯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과 마음과 삶이 변화하기를 갈망합니다. 마른나무에서 다시 잎이 나고 꽃이 돋는 자연의 기적이 나의 삶에서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최대환, 파람북,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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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다. 엄마 기일보다 내 생일에 엄마 생각이 더 나는 걸 보면 엄마는 생명이다. 내 생명의 시작이 담긴 곳, 담긴 몸, 담긴 존재가 엄마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식구들이 누구도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지 않아서 섭섭했다. 점심으로 나가서 미역국을 먹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사실 나와 채윤이, 연이은 졸업식에 생일 이벤트에 신경 쓸 수도 없는 남편의 상황이라 이렇게 지나가도 좋을 생일이다. 

 

 

오전에 운동 다녀 길에 선물을 받았다. 천국의 엄마가 보낸 선물 같기도 하고, 엄마를 소유하고 계신 그분이 직접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저 소리로 노래하는 새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어느 가지 사이에 숨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나, 뒷목 아프도록 고개 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새가 목청껏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엄마를, 하나님을 느꼈다.

 

 

교회에서 진행한 "달빛학교"라는 여성 영성 세미나의 마지막 날이다. 늘 준비하는 리추얼의 탁자에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을 담았다. 연구소에 있는 "여인들"이라는 상징물인데, 큰 사람, 큰 여인을 내가 강의하는 테이블에 세웠다. 여성의 영적발달을 달의 변화로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따와서 6주간 나눔을 해왔다. 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이어지는 여성의 발달이다. 초승달 시기의 끝에 아버지를 잃었고, 보름달의 시기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 떠난 지 4년이 된 지금은 그믐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딸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 더  큰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라고 초대하시는 그분의 메시지가 삶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것 같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이 민망해서 "내년엔 지워야지" 했었는데. 어쩐지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두었다.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가 소중하여 밤늦게 돌아와 진심의 감사를 드렸다. 독일에 있는 다슬샘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오면서 세상에나! 황금 나리 사진을 보내왔다. "나리"라는 별칭을 쓰는 덕에 나리꽃 사진을 보내오는 벗이 많다. 별별 나리꽃 사진을 보다보다 황금 나리 사진을 보다니! 베를린 어느 성당에서 계단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황금 나리라고 한다. 야생의 들꽃 나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강하고 빛나는 황금 나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달빛학교 세미나 하러 가는 길에 뱃속에 힘이 빡 들어왔다. 황금 같은 55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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