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언 고닉의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를 읽자니 뉴욕의 거리가 살아온다. 체험이 이런 것이다. 뉴욕의 38번 가, 33번 가... 이것이 더는 숫자가 아닌 것이다. 그 길에 서봤기 때문에 더는 머릿속 이미지, 관념일 수 없다. 지난여름에 걸었던 뉴욕의 길들을 떠올린다.

뉴욕의 마지막 밤이다. 재즈바 Village Vanguard에서 나와서 그냥 걸어보는 길이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큰 아쉬움도 없었다. 나는 그저 어서 내 집 내 침대에 돌아가 편안한 잠을 자고픈 소원 외에는 없었고. 그래도 돌아보면, 참으로 좋았던 순간이었다. 한적한 길을 느리고 가볍게 걸으며 사진 여러 장을 찍던 순간이 뉴욕 여행 "최고의 순간"까지는 아니어도 참 좋았다.

채윤이에겐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미국 얼굴과 한국 얼굴. 무슨 일이 있어도 유학을 보내야겠다 싶은 건, 그 어떤 이유도 아니다. 미국 얼굴로 살게 하고 싶어서이다. 미국 얼굴은, '자기'가 된 얼굴이다. 최상급의 한국 얼굴은 예중 다닐 때 얼굴이고, 아빠가 목회하는 교회의 청년부에 가 앉아 있을 때의 얼굴이다. 미국 얼굴에는 생기가 있고, 사랑이 있다. 자발성이 있고 기쁨이 있다.

이런 사람이 어쩌다 내 인생에 들어왔는가. 타고난 영적 지능이 있어야 영성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어느 신부님이 말씀하셨는데.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나이와 경험 너머의 어떤 귀를 가진 것 같다. 정말 잘 알아듣는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올 여름 미국행에 다슬 샘이 함께 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분이 둔 한 수였다.

극적인 체험이 담긴 사진이다. 여행 내내 제대로 잠을 못 잤지만, 그야말로 한잠도 못 잔 날이었다. 시차 적응 실패로 몸의 균형이 완전히 깨진 탓이기도, 거기에 마음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서였다. 그리고 일어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그렇게 바닥이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생기가 주입되어 살아난 것이다. 미술관 들어갈 때 얼굴 다르고 나올 때 얼굴 달랐는데, 달라도 너무 달랐는데 저렇게 행복하고 평온한 표정이라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세 여인 모두 그러했다. 참으로 행복하고, 뉴욕에 오길 잘했다! 정말 잘했다! 싶은 순간이었다.

루이즈 부르주아 특별전을 만난 것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미술 전공 다슬샘은 "저는 아무 계획 필요 없어요. 미술관만 가면 돼요." 했었다. 나 역시 시카고 미술관은 다시 가고 싶었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기대가 되었었다. 하지만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은 아니었다. "루이즈 부르주아 기획 전시회 한다! 눈물 날 것 같아요!" 먼저 도착해 있던 다슬 샘의 톡으로 극적 반전은 시작되었다.

다슬 샘이 하는 미술치료 그룹에 참석해서 큰 도움받았던 채윤이는 루이즈 부르주와를 닮았다. 어떤 조각품들은 채윤이를 형상화한 것 같다며 같이 웃었다. 마치 제가 그린 그림이라는 듯, 턱턱 그림을 읽어냈다. 뭉클하게 심장 깊은 곳을 찌르는 감상평을 쉽게 쉽게 내놓았다.

루이즈 부르주와는 페미니스트 작가라고 하는데, '마망(maman)'이라 이름하는 거대한 거미 작품으로 유명하다. 거미가 '엄마(마망)'라니. 엄마가 거미라니! 거미는 전통적으로 모성의 상징이다. 아, 모성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 엄마로 딸로, 인습으로, 죄책감으로, 그리움으로 혐오로 얽히고 얽힌... 딸 채윤이와 루이즈 그림 앞에 사람대 사람으로 서서 그림에 비춘 마음을 나누었다.

다슬샘과 나란히 서서 치료자의 눈으로 루이즈 부르주와의 무의식을 들여다보았다. 말 한마디가 건너오면 내 안에서 다른 것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다시 건네면 또 따른 것이 되어 돌아온다.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티키타카이다. 영적 지능으로 이해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소장님과 연구원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여자와 여자로 말한다.

루이즈 부르주와 그림 앞에서 나는 그냥 한 여자였다. 애증의 모성 거미줄에 얽힌 엄마이거나 딸로 분열적 자리에서 고군분투 하는 여자였고, 앤 윌슨 섀프가 말하는 '백인 남성 시스템'에 맨몸으로 던져졌던 여자였다. 그리고 내 앞에 강한 두 여자가 있었다. 딸도 아니고 연구원도 아닌 힘과 영적 지능을 가진 여자 사람 친구들이 있었다. 미국 오가는데 비행시간만 60여 시간. 노숙자 행색의 공항 셀카가 몇 장인지 모른다. 경유 비행기를 기다리는 기나긴 시간에, 꿈작업도 할 수 있는 우리 셋이었다. 꿈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담겼다. 친구라는 뜻, 영혼의 친구라는 뜻이다.

저러고 뉴욕 거리를 활보하는 다슬샘은 여행 중 만난 사고 때마다 가장 위험한 곳에 배치되곤 하였다. 내적인 사고든 외적인 사고든. 돌아오기 전날, 저녁 재즈클럽 일정 전 공원에서는 말 그대로 대형사고를 만났다. 제대로 깔렸으면 이후가 상상이 되지 않는 커다란 나무통이 떨어졌던 것. 제대로 아니고 살짝 각도가 비켜가 찰과상을 입는 것으로 끝났으니 다행이었고. 나 대신 그 나무를 맞아주었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세 사람 모두에게 두고두고 잊지 못한 대형 사고의 기억을 남긴 지난여름 시카고와 뉴욕이다. '미쿡 원정대' 공식 해단식을 하자, 하자 하면서 몇 번 셋이 만났는데 해단식은 계속하기로 했다. 해단식으로 모일 때마다 새로운 마음의 후기가 나오니 어쩔 수 없다. 뉴욕의 거리를 함께 걸었고, 길 위의 시간을 함께 겪어냈다. '체험'이란 그런 것이다. 함께 체험했으니, 끝나지 않는 해단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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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란다. 나와서 놀잔다. 바람이 말했다.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 바람이 말했다. 오늘의 고생은 오늘로 족하니 함께 걸으며 무엇이든 흘려보내자고. 낮의 일로 마음의 온도가 아직 뜨겁냐 묻는다. 그런 것 같다 하니 시원하게 선선하게 불어준다. 명절이 다가오고, 어머니의 명절 증후군 증상이 부드럽고 소소한 화살이 되어 날아와 꽂힌 것을 바람도 알고 있었다. 이제 맞고만 있지 않는, 정확하게 말하고 상처드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어 금세 열이 떨어진다. 분노의 열기가 떨어지니 냉랭한 마음이다.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 밤하늘 달이 좋고 바람이 이렇게 좋으니. 되돌려드린 말의 화살이 생각난다. 취약하신 어머니가 그 화살 붙들고 외로우실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바람이 말했다. 언제 어디서나 두려움 대신 사랑을 선택할 수 있다고. 어머니께 전화했다. 그, 그래... 에미야. 낮의 그 말씀을 그대로 반복하시지만 느슨하고 힘 없이 당겨진 활시위라 화살이 멀리 날아오질 못한다. 전화선 어디서 툭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나는 활을 들지 않았다. 사실을 따지는 마음 없이, 모든 말을 믿어 드(리겠다 결심)렸다. 그러니까 어머니 금요일에 시간 비우시고 바람 쐬고 맛있는 것 먹고 그러기로 해요. 기억하세요. 금요일이요. 그래, 그래. 9일, 9일 금요일, 알았어. 마음에 찬 바람이 분다. 슬픈 바람이다. 어머니의 외로운 노년이, 연결되어 도울 수도 없는 노년이 슬프다. 내 마음 아는 바람이 함께 걸어주었다. 좋은 분에게, 선함을 불러 일으키는 분에게 카톡을 하라고 바람이 알려주었다. 몇 줄 메시지와 돌아온 짧은 답신으로 마음에 기쁨이 가득찬다.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바람이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고개를 드니 먼저 물든 나뭇잎이다. 손이 없는 바람이 단풍 든 나뭇잎을 흔들어 따뜻한 안녕 인사를 건네준다. 들어가 편히 쉬라고, 오늘 고생은 오늘로 족하다고. 잘 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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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9.05 10:53 신고

    바람에게 고맙네요...

    • BlogIcon larinari 2022.09.09 07:57 신고

      바람아, 저어기 히말라야 근처로 날아가라, 가서 내 마음 전해주렴!

 

어서 이 더위가 지나길, 이 여름의 시련이 끝나길 기다렸지만 이렇듯 허무하게 갈 줄 몰랐다. 가을을 기다렸지만 이렇게 빠르게 갑자기 들이닥칠 줄이야. 가을이 아니라 '이상한 여름'일 수도 있겠으나. 이번 주로 학교도 개강하니 가을로 받기로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애써 혼자만의 마침표를 찍어보려 한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도전과 시련의 시간이었다. 잠 못 이룬 밤이 여러 날이었다. 그렇게까지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다 싶지만. 그 모든 시간을 통해 받은 선물 같은 글귀로 행복하게 마침표 찍는다. 과분한 평인 것은 알지만,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 내놓았던 글과 말, 드러냄으로 감수해야 했던 수치심의 시간에 대한 격려와 위로 또는 보상으로 받는다. 아니 선물!

 

어느 밤,

내놓은 말과 글을 회수하고 싶은 충동에 몸부림 치는 어느 밤이 또 온다면 이 글을 찾아 읽을 생각이다. 

 

2022년 여름을 살게 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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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8.31 00:57 신고

    메세지도 좋고 책은 더 좋은 분 만나면 더더 좋은 분 ^^

 

바닷가 동네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휴가를 보냈다. 동네 안에, 동네와 어우러져 지어진 집이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동네 산책을 했다. 로망 중의 로망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골길을 걷는 것. 그래서 놓치지 않는다. 이번에도 3일 내내, 비가 오는 날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른 아침 산책을 했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이 교회이다. 어릴 적 우리 교회 같았다. 첫날 산책에 나서서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발이 끄는 곳이 교회였다. 교회 마당에 하얀 백합이 야생적으로 피어 있었다. 꽃집에서 보는 백합, 꽃다발 안에 든 백합이 아니라 얼마나 반가운지.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발이 이번에는 예배당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는데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사람은 없다. 바로 조금 전까지 새벽기도 마치고 가장 늦도록 기도하신 어느 권사님(또는 권사님 나가시는 걸 기다리며 자리를 지키던 목사님)의 기도 소리가 남아 있는 듯했다. 익숙한 냄새, 눅눅한 나무 냄새가 난다. 이 교회에서야 장의자 냄새일 테고. 익숙해도 너무 익숙하다 싶은 건 어릴 적 교회의 마루에서 나던 그 냄새 아닐까. 감각적 냄새가 아닐지도 모른다. 여하튼 존재에 새겨진 어떤 냄새이다. 기도하는 엄마 옆에서 방석 깔고 자던 그때부터 몸에 배였을 것이다. 애기 때부터. 엄마는 산후조리 마치고부터 온갖 예배들에 갔을 테고. 수요일이나 금요일 또는 새벽 예배 때 엄마 옆 방석 위에 누워 잠들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 시절 나무 냄새와 함께 새겨진 것이 노래들, 찬송들, 어린이 찬송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잠시 교회에 앉아 기도하고 나와 걷는데 흘러나온다. 냄새와 함께 저장된 어릴 적 그 노래들이.

연못가에 자라는 한 송이 백합
천사같은 흰 옷을 입고 싶어서
맑은 샘물 거울에 몸을 비추며
푸른 하늘 우러러 기도합니다

 

담 밑의 봉숭아 어여쁜 봉숭아
그 누가 날마다 키우시나
하늘에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날마다 쉬잖고 키우신다

 

나는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니
은혜 비를 머금고 고이 자라납니다
주의 은혜 감사해 나는 무엇 드리리
사랑하는 예수님 나의 향기 받으소서


어릴 적 불렀던 많은 찬송들이 내 세포 구석구석에 저장되어 있다. 음악치료사나 어린이 성가대 지휘자, 찬양 인도 선생님이 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으로 키워졌는지 모르겠다. 그 많은 찬송 중에서도 '꽃'으로 비유된 어린이에 동일화되었다. 목사관 마당의 풍성한 꽃밭, 그 꽃밭에 정성 들이던 엄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인 것도 같고. 무엇보다 채송화, 봉선화, 사루비아, 분꽃, 나리, 백합, 찔레, 작약.... 같은 꽃들이 사시사철 눈앞에 피어 있었으니 노래 가사로 만나면 익숙할 밖에. 그 모든 기억이 나다. 그 기억들이 나를 형성했다.

신앙 사춘기를 겪어 내며 "주의 화원에 어린 백합꽃"이었던 내가 얼마나 혐오스러웠던가. 엄마의 화원, 아버지의 화원에서 고이 길러진 내가 견딜 수 없었다. '화원'이 아니라 '비닐하우스' 같았다. 온실 속의 화초. 부모의 온실, 하나님 아버지의 온실, 교회의 온실에서 사랑받는 어린 백합꽃에서 야생의 나리꽃이 되기 위해 했던 몸부림이라니. 엄마를 아버지를, 교회를 혐오하며 뿌리 뽑혀 내동댕이쳐진 것 같은 시절이었다. 하나님께는 벌써 버림받았고. 은혜 비를 거부하는 어린 백합꽃을 하나님이 돌아보실 리가 있겠나 싶었었다. 그랬으니 그렇게 찾아도 불러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겠지.


연구소 지도자 과정에서 『치유와 회복의 끈 소속감』이란 책을 방학 동안 함께 읽었다. 마치는 날이다. 마지막 챕터에 "봉인된 명령"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 존재 숨겨진 어떤 씨앗을 일컫는 말이다. 되어야 할 내가 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는데, 그 '나'가 되기 위해서는 봉인을 풀어야 한다. 그 봉인은 고유한 상처이기도, 고유한 육아 환경이기도, 고유한 성격이기도 하다. 나의 총체, 내 기억의 총체이다.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면서, 필요하다면 치유하면서 되어야 할 내가 되어간다. 내 존재의 봉인된 명령에 이름을 붙여보자 싶은데, 책의 공동 저자인 데니스 린이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식으로 "봉인된 명령"에 이름 붙인 것을 코스프레해보자면 "아이의 노래" 정도 될까 싶다. 내 존재의 소중한 부분, 나를 형성한 어떤 좋은 것에 이름을 붙이자면 '아이'와 '노래'를 빼놓을 수 없으니. 아이가 부르는 노래 같은 존재로 세상의 선에 기여하고 싶다.

 

 

오래된 교회 옆에는 오래된 종탑이 있었다. 내 아득한 기억 속에도 종탑이 있다. 예배 시간이 가까워오면 엄마가 종탑에 달린 줄에 매달려 종을 쳤다. 아주아주 어릴 적에 보았기 때문에 흐릿 하달 수도 없는 이미지로 남아 있다. 남편에게 종탑을 보여주며 "우리 엄마가 어렸을 적에 종을 쳤어. 첫종, 재종 알아? 예배 시간 전에 두 번의 종을 쳐. 첫종을 치고, 예배 시간이 임박하면 재종이라고 한 번 더 쳐." 말하고 나니 귓가에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실은 철이 들었을 때는 차임벨로 바뀌었고, 스피커를 타고 댕댕 찬송 멜로디가 울리는 종이었다. 여행 마지막 날 저녁, 일찍 저녁을 먹고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댕댕 종소리가 울렸다. 진짜로 들렸다. 뭐지? 싶었는데 수요일 밤이었고 수요예배를 알리는 교회의 종소리였다. 종탑의 종을 실제로 친 것인지, 스피커로 들리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존 던의 시가 생각나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어느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울린다.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나를 형성한 모든 것들을 생각한다. 나를 최초로 형성한 엄마와 아버지를 생각한다. 엄마와 아버지의 꽃밭을 생각하고 교회를 생각한다. 종소리와 꽃을 생각한다. 엄마와 아버지의 딸이라서 받아 안은 무수한 상처를 생각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잃었던 세상을 생각한다.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엄마와 남겨져 살아야 했던 날들의 좌절들을 생각한다. 아이같이 순수하여 상처였던 엄마의 신앙과 성격을 생각한다. 늙은 나이에 낳은 딸을 애지중지, 걱정에 걱정으로 키웠던 엄마의 사랑을 생각한다. 엄마가 쳤던 종소리를 들어본다. 기억 가장 깊은 곳에 귀 기울이며. 엄마의 죽음이 감소시킨 나를 생각한다. 엄마의 죽음으로 감소된 나로 인해 씻겨 내려간 내 자아를 생각한다. 엄마의 종은 나를 위해 울린다. 나의 봉인된 명령의 이름은 "아이의 노래" 또는 "엄마의 종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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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에서 “사랑하면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다. 요한1서 4:7-21 본문이다. 설교에서 인용된 도종환 님의 시 “배롱나무” 한 구절이 작은 사랑의 불꽃이 되었다. 설교에서 그 시를 마주한 이후로 온 세상이 배롱나무다. 무슨 마법 같다. 배롱나무가 이렇게 흔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략)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사랑의 신비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하셨고, 당신의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드셨으니, 사람 영혼의 재료가 사랑일진대. 내 영혼에는 사랑의 기본값이 있지. 그렇지! 오랜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설교 후에 찬송가 314장을 불렀다. 2절 가사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질 않았다. 이전에도 부를 때마다 늘 조금씩 불편했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괴로운 시절 지나가고 땅 위에 영화 쇠할 때
주 믿지 않던 영혼들은 큰 소리 외쳐 울어도
주 믿는 성도들에게 큰 사랑 베푸사

내 비록 주 믿는 성도 중 하나이지만, 이런 차별적 사랑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 줄편해졌다. 이런 찬송 가사가 얼마나 많은가. 나 아닌 누군가를 ‘죄인’이라 이름 붙이고 타자화하는 이런 식의 찬송 가사며 텍스트가 얼마나 흔한가? 구원받은 나와 구원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 배제와 혐오에 닿는 자칭 선한 뜻 중 하나가 ‘구원받은 자아’ 특권의식이다. 그런 의미로 ‘주 믿는 성도’에게 주시는 ‘큰 사랑’은 거절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 삐뚤어졌다. 설교로 받은 은혜를 찬송으로 다 쏟는 형국이었다.

예배 후 오후에는 젊은 부부들과 ‘육아 세미나’가 있었다. 육아 얘기를 하는데, 대화가 자꾸 자기 부모님과의 관계로 흘러간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의 최선이었겠지만, 부모님께 “미안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한다. 흔히 듣는 말이다. 크고 작은, 물리적이거나 정서적인 부모 폭력으로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다. 그저 “미안하다”는 한 마디만 들으면 살겠다고 한다. 그러면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 할 수 있는태도가 필요한 것 아니냐 하는 데 다다랗다. 한 자매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자각이 아이들에게 온전히 사과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어머니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낸 분이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미안해”라는 말은 끝내 듣지 못했고, 나름의 처절한 기도의 몸부림으로 비신자 어머니를 용서한 체험의 고백임을 알고 있다. 존재를 향한 ‘미안함’이 존재적 죄인에 대한 자기 자각 없이 불가능하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자기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키우지만, 죄인인 자기 현주소를 잊지 않겠다는 말이다.

죄와 죄인을 타자화하지 않고 자기를 돌아보는 기도와 성찰이 사랑으로 향하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314장 2절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이유를 안다. 구원받은 자신, 구원받은 데다가 그 누구보다 구원의 은총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아팽창에 허덕이는 사람을 안다. 그리하여 자기는 ‘큰 사랑’ 받기 합당한 성도라는 자의식이 충만하다. 구원의 강 건너편에 있는 죄인이라 이름하는 이들을 가엾게 여기며 구원자 역할을 자처한다. 가엾게 여기는 것이 겸손에 뿌리내린 연민이면 좋을 텐데, 교만과 자아팽창이니 종착지가 사랑일 리 없다. 그 사람을 잘 안다. 너무 익숙하고 잘 아는 사람이라 모른 척하고 싶을 뿐이다. 모른 척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 비슷한 사람 찾아내어 손가락질하는 것이니 손가락질과 남 탓의 명수이기도 하고. 이런 찬송을 부르며 안도감을 느끼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던(는) 나다.

마침 읽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에서는 이런 구절을 만났다. 기도 여정의 맨 마지막 단계, 일곱 번째 마음의 방에 관해서이다. 죄인에 대한 인식의 방향이 사랑과 혐오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이정표 되는 것임을 알겠다.

“이 불행한 영혼들은 캄캄한 감옥 속에서 수족이 묶인 채 공이 될 선이라고는 아무것도 못할 지경으로... (중략) 정말이지 이런 영혼들은 동정할 만하고, 한때 우리도 그런 처지에 있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서, 주께서는 이들에게도 인자를 베푸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매들이여, 우리는 그들을 위하여 각별히 마음을 써 기도하고 태만하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사랑하면 보인다.
배롱나무가 보이고,
배롱나무 당신이 보이고,
내가 보이고,
죄가 보이고,
사랑이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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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8.17 09:55 신고

    배롱나무를 아시다니...알고 나면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배롱나무..그리고 언니 💗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깨어서 삶을 살고 있다면 이 두 질문에 명료한 답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허다하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담긴 공간은 어디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급급한 것이 인생이다. 중요하고 막중한 일일수록 깨어서 감당해야 하건만,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중요한 일을 존재를 망각한 채로 해치우려 한다. 막중한 일이라며 기도는 하지만, 기도하며 그분의 현존을 구하지만, 정작 내가 현존하지 못하니 그분이 곁에 바짝 붙어 계셔도 알아차려질 리가 있나.

 

이번 코스타가 그랬다. 전체 집회 설교, 그것도 최초 여성 스피커라는 것에 과몰입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집회 설교 이후 겪어내야 할 여파도 있었다. '나는 누구/여긴 어디'를 인식하지 못하고 달렸다는 것을,  다시 말하면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또 다르게 말하면 의미를 묻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설교 다음 날에 깨달았다. 청년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만남을 요청해오는 그룹(조)와 함께 식사를 하고, 세미나를 진행하는 사이 길고 짧은 상담을 했다. 눈을 맞추고 청년들의 얘기를 듣자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인지 깨달아졌다. 코스타지! 처음 참석했던 2013년(벌써 10년 전이었다는 것을 이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부터 코스타는 '사람'이었다. 가기 전까지는 강의 준비로 조바심치지만 결국 가서는 강의는 거들뿐, 목마른 이들과의 만남이었다. 늘 쉴 새 없이 청년들을 만났고, 어느 만남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고, 그것이 의미였다. 얼굴도 상담 내용들도 기억나지 않지만 의미 기억은 그 사람들이었다. 마지막 날 오후, 몇 사람과 눈을 바라보고 얘기를 나누니 비로소 영혼이 살아나는 느낌, 현존의 감각이 살아났다. 내가 이 사람 만나려고 왔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강사님, 마치고 바로 한국 가세요?" 하는 질문에 어디어디 여행한다 답을 하는데, "어머, 저 거기 살아요." 하는 청년들이 있다. 보통 반가움은 거기까진데, "오시면 연락 주세요."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말에 다 연락할 수도 없고 호감을 표하는 인사로 알아듣지만 어쩐지 "그럽시다!" 하게 되기도 하고. 시카고에서 한 사람, 뉴욕에서 한 사람 만났다. 여행도 결국 '사람'이니까. 두 사람 다 앉아서 얘기 나눈 곳이 카페가 아니라 공원이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한가. 인생에서 몇 번이나 갈지 모를, 머나먼 시카고 뉴욕 한복판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이내 포장지 안쪽의 마음을 꺼내 보여준다. 이것이 신비가 아니고 무엇인가.

 

위의 독사진은 뉴욕에서 만난 자매가 브라이언트 공원에서 찍어준 것이다. 도심 빌딩으로 둘러싸인 작은 공원의 멋진 밤이다. 진로를 고민하던 다른 자매는 그새 딱 일하고 싶은 곳에 취업을 했다는 톡을 보내왔다. 설교하러, 강의하러 코스타에 간 것이 아니고 사람을 만나러 갔다. 나는 누구, 거긴 어디였는가 하면 사람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을 만나러 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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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캘리 E. 2022.07.27 14:10 신고

    어디에서나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진심으로 환대해 주시는 사모님 덕분에 아름다운 만남들이 계속 이어지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22.07.30 10:03 신고

      몇 배로 부풀려 되돌려 받은 환대! 뉴욕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입니다 :)

    • BlogIcon 캘리 E. 2022.08.01 22:57 신고

      제가 사모님의 책을 통해 받은 위로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죠.^^ 다음의 만남 또한 기대합니다~

  2. BlogIcon healed 2022.07.27 22:40 신고

    어디서든 언니 앞에 앉은 사람을 만나 눈을 들여다 보아 주시는 그 곳. 상처입은 치유자~ 그리고 영원을 맛보는 공간입니다.

 

2022년 미주 코스타 참석하고 얼마간 여행 일정을 마친 후에 집에 돌아왔습니다. 전체집회 말씀 전하던 화요일 밤(한국은 수요일 아침)에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 덕분에 사명 완수했습니다. 사명이란,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명' 같은 거창한 단어는 떠올려보지도 못하고, 순간순간 감정의 파도에 떠밀려 다녔을 뿐입니다.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올린 글에 애정하고 존경하는 신소희 수녀님이 남기신 댓글로 관점이 전환된 것입니다.

"신실 샘, 사명 완수 후 NY에 계시다니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마음에 가득하여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것. 그것이 사명의 전부입니다. 그로 인해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감동을 주는 것, 돌아오는 인정과 칭찬, 그 반대의 것들까지 '사명 완수'와 상관없는 것입니다. 블로그로 연결되어 기도해주신 벗님들께 깊은 감사드리고, 기도에 부응하여 사명 완수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그리고 아래는 코람데오닷컴에 실린 기사이고요.

 

2022 미주 코스타, 역사상 처음으로 평신도 여성을 저녁집회 강사로 - 코람데오닷컴

2022 미주 코스타가 \'오늘 여기 함께 Let Us Feast\'라는 주제로 7월 4일(월) - 7일(목) Wheaton College, IL에서 개최되었다. 작년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수련회가 진행되었으나, 올해에는 상황이

www.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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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7.20 19:34 신고

    마음에 가득하여 꼭 전하고 싶었던 말씀을 전하는 것!! 마음에 두겠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감동이었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22.07.22 08:55 신고

      아, 이건 거울요법! ^^
      마음에 가득하여 꼭 전하고 싶었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족해. 사명을 다했어! 고마워, 한마음으로 함께 해줘서.

  2. 씩씩한 🍎 2022.07.21 00:12

    저도 제 마음에 가득한 것이 우리 구주 예수님이 행하신 아름다운 일들이여서 마음 한 자락이 전해질 때 사명을 완수하였습니다 .. 고백하고 싶네요... 사모님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해요. 멀리서 존경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

    • BlogIcon larinari 2022.07.22 08:57 신고

      예, 우리 그러기로 합시다. 내 마음에 가득한 것을 내놓는 것으로 만족하는, 그 이상의 무엇을 바라지 않는 삶을 살기로 해요. 감사해요!

  3. 씩씩한 🍎 2022.07.26 23:42

    우리 그러기로 합시다. ㅎㅎ너무 좋아요. 네에..♡ 마음에 가득한 것이 오직 예수충만에서 오는 그 무엇이기를... 소망합니다. 저 역시 감사해요. 듣는 귀, 듣는 마음이 가득한 신실 사모님♡

코스타 참석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에 갑니다. 탑승하고 휴대폰 끄며 온라인 연결이 끊어진 이후 새벽 2시에 맞춰 포스팅되도록 예약 걸어두겠습니다. 이후 30 시간 쯤 후에는 가장 멀게 지구를 돌아 시카고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살아 있을 게요.

전체집회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출국 한 주를 앞두고 가장 어려운 시간, 남편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앓고 지나왔지만, 재감염 우려 때문에 집에서 격리하지 않고 밖을 돌고 있습니다. 하필 이때 확진이라니! 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설교문을 완성해서 보냈는데. 징징거리고 싶은 입에 자물쇠 채우고 로봇처럼 글을 썼습니다. 몸이 근질거려서 보니 다리부터 발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문을 보내고 난 다음 날에는 발진이 얼굴까지 올라왔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아침 기도 하는 중 누가복음 2장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기도가 영혼 깊은 곳에 들어와 메시지성경 버전의 본문을 써서 책상 옆 창에 붙이고 기도합니다. 인간 이성으로 1도 이해되지 않는 일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수동성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느 신부님께서는 ‘창조적 수동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력하거나 게으른 수동성이 아니라 ‘창조적’ 수동성, 구원을 잉태하는 수동성입니다.

머리는 준비하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계속 도망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믿어주시는데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비천한 나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제 마음에 하나님 외 누구도 '갑'으로 세우지 않겠습니다. 지난 코스타에서 만났던 청년들의 눈만 생각하겠습니다. 저의 이 작고 비천한 존재 안에서 그분이 길어 올리실 것이 있으면 길어 올리시라고. 주의 여종이오니 마음대로 쓰시라고 드리고. 제 영혼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마리아의 찬가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목요일에는 지도자과정 종강이 있었습니다. 포트락 파티로 먹을 것이 풍성하고, 먹을 것만큼이나 한 학기 지나온 선생님들의 나눔이 아프고 기쁘고 고맙고 자랑스럽게 풍성하고요. 마치고는 연구원들이 깔아준 "환송의 수다" 멍석에서 온몸 열꽃이 피었어도 다 빠져나가지 못한 것들을 말로 내놓았습니다. 연구원들, 나음터에 연결된 벗들, 동생들, 교회 집사님들이 보내오는 따스한 격려, "기도하겠다"라고 굳게 다짐해주는 마음들로 힘을 얻습니다. 어제 아침엔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었습니다. 좋은 날씨에 사야 할 것들을 사러 다닐 수 있었습니다. 밤에 채윤이랑 올리브영에 다녀오는데, 하늘 빛깔 하며 눈썹 같은 달이 조화롭습니다. 사진 찍고 나중에 보니 하늘에는 달, 땅에는 그린라이트 이것도 조화롭고요.

************

탑승 직전입니다. 오늘 아침 예상치 못한 일로 안팎의 조화가 깨져버렸습니다. 미리 써둔 이 글 다시 읽으니 사람 마음 하룻밤 사이 이렇게 멀리 올 수 있는 건가 싶습니다. 막막함의 끝입니다. 아직도 끝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도망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몫을 하겠습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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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2.07.05 01:43 신고

    기도의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벗들에게 알려드려요. 저는 장장 28시간, 아니 실제로 30시간의 여정으로 시카고 휘턴 대학에 잘 도착하여 하룻 밤을 지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은 100% 연결된 벗들의 기도임을 알고 있습니다. 휘튼에는 제가 처음 코스타에 와서 찍어 놓은 제 나무가 있어요. 여전한 그 나무에게 인사를 했고, 조금 전에는 그 나무 옆에서 함께 온 딸 채윤이와 연구소 다슬샘과 함께 마리아의 찬가를 읽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제 시선을 끌더니 제 나무에 가서 앉대요. 거기 앉아 우리의 기도에 함께 했을 거예요. 고맙고, 고맙습니다.


  2. BlogIcon healed 2022.07.06 14:20 신고

    언니의 여정에 동반자를 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기도했고 기도하고 기도하겠습니다!!

  3. 씩씩한 🍎 2022.07.14 07:15

    강의끝자락에 돌아가며 답하는 시간, 인사도 안하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절 바라보던 사모님의 눈빛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 BlogIcon larinari 2022.07.22 08:53 신고

      씩씩한 애플, 이 아름다운 애플 님은 누구일까요? 기억과 기도, 그리고 이렇게 찾아주심 고맙습니다!

  4. 씩씩한 🍎 2022.07.26 23:39

    저는 경북에 있는 함창영광교회 사모입니다.
    서울 아현성결교회에 있을 때 사모님의 강의를 들은적이 있어요^^ 작은 카페를 통채로 빌리셨을 때인데 아마 저를 만나면 기억하실수도 있어요^^*

    • BlogIcon larinari 2022.07.30 10:06 신고

      아, 동교동 카페바인에서 뵈었군요! 언젠가 다시 뵙고 기쁘게 인사 나눌 때가 있으면 좋겠네요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요즘처럼 밀도 있게 시간을 썼던 적이 없고, 요즘처럼 주어진 오늘의 일에 집중하며 살아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연구소 강의와 연구소 외의 강의, 대학원 공부와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일.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살아내고 있습니다. 학기말이라 과제가 몰려 있고, 어느 과제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완벽주의 같은 건 아니고, 과제마다 연구하고 써내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장하면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드라인에 맞춰 하나 씩 미션 클리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7월 코스타 강의만 없다면 “바쁘다" 정도로 이즈음의 나날을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 모든 일을 잘 끝낸다 해도 '자유'가 먼 곳에 있습니다. 코스타 준비에 비하면 하나만으로도 죽겠다고 설레발쳤을 학교 과제는 껌입니다. 껌 씹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미주 코스타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D-7, D-19, D-22는 코스타 관련 각각 의미 있게 부담되는 카운팅입니다.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그대로입니다. 블로그 친구들께 기도 부탁하고 싶습니다.

--------
 

비목회자, 여성

 

코스타 간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 코스타는 대면으로 시카고에서 열린다고요. 이어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미주 코스타 사상 처음으로 전체집회 강사에 비목회자, 여성이 서게 되었다고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감탄사 말고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잘 하셨네요! 정말 좋은 결정이에요!” 37번째 코스타라니 37년 만의 일이네요. 이게 37년 걸릴 일이었군요! 지구의 반이 여자이고, 목회자와 비목회자의 비율은 헤아려지지도 않는데. 이제야 비목회자, 여성 주강사라니요! 너무 늦은 일이라 더 놀랍고, 용기 있는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기립박수에 엄지 척. 감동이 쉬 가시지 않아 심장박동이 채 정상으로 회귀하기 전

 

'그 자리에 올 수 있겠냐’' 하셨습니다.

"? 누가요?"

 

세미나 강사로 초대를 받을 때마다 '나 같은 무지랭이 강사를' 하는 심정인데 전체집회 강사라니요? 가당치 않은 일이라 마음으로 당장에 거절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 갑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첫 번째 비목회자 여성 주강사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지랭이가 그 자리에 적합한지 확신은 없지만, 코스타 간사님들이 강사 인선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거든요. (또 솔까말, 무지랭이 강사지만 결국 가서 하고 나면 인기 강사 되고 말더라고요오.... 흠, 내가 코스타 간사님들과 페친이던가 아니던가)

 

당연한 거절의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주제였습니다. 주제가 무려 잔치입니다. 벌써 올해 주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잔치라니, 올해는 온라인으로 코스타를 한다 해도 세미나 강의도 할 수 없겠구나! 잔치, 파티, 축제는 나와는 얼마나 동떨어진 일인가 싶거든요. ‘신앙 사춘기를 빌미로 무기력과 냉소를 표방하며 살아왔고, <슬픔을 쓰는 일>의 저자로 죽음, 상실, 슬픔의 페르소나로 글 쓰고 강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제 안에 잔치에 합당한 감정이 있나 싶습니다.

 

시간, 아니 시간 속에서 들리는 어떤 목소리에 스스로 설득되었습니다. 초대장을 들고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마음을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갑니다. 알리고 싶었습니다.

 

_202253, 정신실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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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2.06.23 00:27 신고

    언니가 걸어오신 길들이 결국엔 축제와 잔치로 향하다니...마음이 벅차네요..언니와의 시간을 통해 제가 내던진 많은 짐들도 가벼이 잔치에 참여하기 위함임을...언니의 길을 축복하며 중보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22.06.30 09:52 신고

      그것이 있다면, 함께 하는 여정으로 내던진 짐이 있어서 그대가 가벼워진 체험이 있다면... 내게 가장 큰 힘이야. 그 말에 힘입어 내가 나를 더 믿어주며 갈게. 기도 고마워!

  2. BlogIcon 캘리 E. 2022.06.24 05:29 신고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22.06.30 09:53 신고

      남한산성이 아닌 뉴욕에서 캘리를 만나다니요! 출국 앞두고 부담이 한가득인데, 뉴욕 어느 거리에서 캘리와 함께 있을 생각하면 설레고 두근거려요. 기도 감사해요!

    • BlogIcon 캘리 E. 2022.07.07 11:57 신고

      뉴저지 특파원 계속 기도하고 있습니다~ 힘내시고 뉴욕에서 곧 반갑게 만나요~

애써 짠 계획이 아니라 흐르는 대로 따르다 좋은 하루를 보냈다. 조금 차분히 말하고 싶어서 '좋은 하루'라고 했다. 쉽게 들뜨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평소의 나대로 말한다면, 대박 신기한 사랑의 하루였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점심 약속이 있었다. 초5, 초4의 어린이 성가대로 만난 제자 둘이다. 그때 내 나이는 27세. 그러니까 얘네들은 몇 살이냐. 자축인묘진사... 모르겠다. '울고 웃고'가 가장 적절한 제목이다. 단톡이든, (언제 적) 마이피플이든, 라인이든. 개그 코드가 맞고, 선생님이고 뭐고 격의 없이 서로 놀리는 게 쉬워서 "웃고"이다. 웃다 말고 급하게 진실이 튀어나와 울기도 해서 "울고"다. 갑자기 들어온 전화 한 통으로 대단한 계획 없이 성사된 모임이다. 

 

십수 년 전, 얘네들과 헨리 나우웬의 <영성 수업>을 함께 읽고 기도도 가르치고, 메시지 성경읽기도 했던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까맣게 잊었던 기억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기가 막힌 일이다. 당시 나는 신앙 사춘기 절정이었다.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그 캄캄한 시절에도 할 것은 다 했다고 했는데. 할 것을 다 한 게 아니라 살자고 하는 짓은 했었구나. 마음 잘 맞는 제자들 데리고 <영성 수업>을 했었구나! 집에서 떡볶이 해서 먹이고 커피 내려서 마시고 하면서. 그 시간이 얘네들에게 어떤 씨앗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나를 살게 하는 시간이었던 건 분명하다. 정말 나 포기를 모르는 여자였구나. 그 메마른 시간에도 살아 있는 시간을 찾아냈었다.

 

"우리 어제 만난 것 같지 않아요?" 라는 말에 격한 공감. 본 지가 몇 년인데 어제 명일동 LG 아파트나 그 동네 어느 카페에서 만난 느낌이다. 길지도 않은 시간, 별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좋은 느낌이 가득하다.

 

돌아오는 길, 죽전에서 '고봉삼계탕' 간판을 보았다. 바로 핸들을 꺾어 들어가서 삼계탕 포장 주문을 했다. 주일 예배에서 만났는데 안색이 썩 좋지 않은 Y 생각이 났다. 코로나를 앓고 몸이 썩 괜찮아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포장하고 집 앞으로 갔다. 잠깐 내려오라 했더니 괜찮으시면 잠깐 올라오셔도 된다 해서 계획 없는 침입을 했다. 남의 집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이 무례한 행각, 내가 해본 적이 있던가? 내 사랑 일곱 살, 다섯 살 두 남매가 토끼처럼 뛰면서 반기고. "사모님, 이리 와봐요." "사모님, 이거 봐바요." "사모님, 내가 사진기 만들어 줄까요?" "사모님, 국기 퀴즈 내봐요." "사모님 이제부터 나랑 책 파는 집을 만들어요." "사모님, 이제부터 우리 자요. 눈을 뜨면 지는 거예요." 그러다 헷갈려서, 목사님... 목사님... 전도사님... ㅎㅎㅎ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사모 정체성이란 거의 없는데, 사모님, 사모님, 이 말이 왜 이렇게 행복하냐고. 남매의 엄마인 Y는 내가 코로나를 앓을 때 집 앞 현관에 간식을 두고 갔었다. 워킹맘으로 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고 있는지 잘 아는데, 바쁜 퇴근길에 들렀을 생각하니 뭉클했다. 그런 배려를 받았는데, 한참 언니인 나는 이후 Y 가족이 모두 확진받았단 소식을 듣고도 챙기고 돌아보질 못했다. 참 고마운 가족이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뒷부분 가사 "나 피곤치 아니하며"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하고 "메마른 땅, 메마른 땅"을 헤매던 시절, 이 가족이 없었으면 더욱 메마른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 먼지 나는 시간을 걸을 때 "어쩌면 내가, 우리가 좋은 사람인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줬었다. 

 

우리 깨어진 본성이란, 사랑을 향해 가지 않는다. 사랑 받을 곳을 향하기보다는 "누가 날 싫어하나, 누가 날 비난하나" 그 소리를 향해서 귀가 커진다. SNS 어디서 누가 내 욕을 하는가, 거기에 골몰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 백 번 들어도, 그 반대의 메시지 한 번이면 그거 하나만 붙들고 며칠이고 잠을 못 이루는 우리이다. 사랑받을 곳으로 가야 한다.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어떤 때는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랑이 필요하다. 자아 팽창을 유발하는, 고래나 춤추게 하는 허튼 칭찬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좋음'을 확인해주는 곳을 부러 찾을 필요가 있다. 오늘은 애써 찾고자 하지 않았는데, 흐르는 대로 따르다 선물 폭탄을 받은 날이다. 깊이 감사한다. 오늘 이 온기를 오래 간직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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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우리'학교라고 써보니 참으로 낯선 표현이다. 장난스럽게 굴 때 말고는 '우리'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카톡에서 무심코 '우리 00 샘'이라 써놓고 살짝 오글거렸었다. 낯설고 오글거리지만 진심이 담긴 것 같다. 장난스러움만은 아니다. 우리 학교. 대학원 들어가서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으로 캠퍼스를 밟게 되었다. 첫 학기 전면 비대면 수업. 이번 학기에는 그대로 첫 수업은 모두 대면이었는데 마침 그 주에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 수감 생활이었다.

카카오톡과 줌이 학교와 연결되는 유일한 라인인데. 그것만 가지고도 끌리는 사람 끌리고, 이어질 사람 이어지는 것이 희한하다. 내게도 호감이었던 선배 한 분이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약속을 잡았는데 다른 선배 한 분까지 합류하여 셋이서 캠퍼스에서 만나 학식으로 점심을 했다. 학교에 처음이라고 하니 식당, 도서관, 학과 사무실, 자신만의 비밀 공간으로 투어를 시켜주시니 나이 오십 넘어 신입생 실감이 제대로 났다. 신나고 즐겁고 설레서 왼쪽 가슴에 손수건 매달고 싶은 심정.

장례식 조문으로 다니던 곳이었는데. 학식을 먹고, 학생증 찍고 도서관에 들어가니 여기가 늘 다니던 거기였던가 싶다. '같은 장소 다른 느낌'이란 정녕 이런 것이구나! 장례식 육개장 아니고 그 옆 건물에 학식이라니. 공부 시작했다고 하니 여러 사람이 박사과정이냐고 묻는데,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짜릿하다. 박사 석사 아니고 초등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일이다. 건물 이쪽저쪽으로 뷰가 다 좋은데, 야경을 더 끝내준다는데, 내가 꼽은 최고는 화장실이다. 정사각형 유리창에 가득 담긴 숲 풍경이 최고였다. 비대면 수업이라지만, 괜히 학교 가야지. 학식 먹고 어슬렁거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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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거절을 연이어 두 번을 했다. 때늦은 거절이라 민폐에 가까운 것이었다. 아니,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하자. 쓰기로 약속한 글을 기한이 다 되어 포기했다. (거절, 어긴 약속, 포기, 실패... 어떤 표현이든 달게 받겠다.) 하나는 엄마 잃은 딸이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어 돌아가신 엄마를 새롭게 만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어린 딸을 잃은 아빠의 애가이다. 하나는 서평이고 하나는 추천평이었다. <슬픔을 쓰는 일>이 연결시킨 일이 분명하여 거절할 수 없었다. 부담은 됐지만 두 분 저자에게 위로든 무엇이든 건네고 싶었다. 마감이 다 되도록 끙끙거리다 둘을 다 포기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못 쓰겠어요."하는데, 몸이 말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거절한 원고는 있었지만, 약속하고 쓰지 못한 글은 없었던 것 같은데. 

 

**

MBTI로 P가 높지만 강의 약속에 늦는 일은 거의 없다. 30분 전 도착을 목표로 하지만 15분 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경우는 있지만. 1월 초, 강의 시간에 30분을 늦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내가 유발했다.) 지하 서부간선도로에서 밖으로 나갔어야 했는데 그걸 한 번 놓치고. 성산대교까지 가서 돌아와야 하는데, 도통 네비가 해독이 되지 않아 근처 한강공원, 양평동을 몇 바퀴 돌았는지 모른다. 강의하는 교회까지 가서는 건너편에 두고 막히는 길 유턴하러 갔다가 또 몇 바퀴. 딱 무엇에 씐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온갖 감정이 식은땀과 함께 지나가고. "나는 늦었다. 늦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것 외에는 없다." 받아들였다.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온몸으로 견뎠다.

 

***

무의식의 힘이 세다. 정말 가기 싫은 강의였다. 늘 말하던 주제였지만, 입을 떼면 줄줄 할 수 있는 내용이었지만. 마음의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30분 전에 도착하려 했는데 30분 지각을 했으니 1시간을 늦은 셈이다. 마음이 한 일이다. 무의식이 작정하고 뺑뺑이 돌린 것이었다. 무의식을 탓할 일은 아니다. 강의에 지각한 것도, 약속한 원고를 쓰지 못한 것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할 수 없는 것을 빠르게 바르게 분별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분별에 앞서는 것은 '인정'이어야 하겠고. 한계를 가진 나, 한계를 가지고 사는 삶의 구멍들과 구멍에 빠지는 날들의 아픔을.

 

****

지난 학기 내내 붙들고 씨름하던 주제가 '비극'이었다. 그리스 비극부터 오늘 여기 일상의 비극까지. 슬픔은 '애도'를 통해서만 치유된다고 마르고 닳도록 말하고 써왔다. <슬픔을 쓰는 일>이 그 결정판이다.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지혜를 가져와 좌절의 기술을 가르치는 어느 철학자의 책이다. 슬픔과 애도에 대해 쓰고 강의하면서 역시나 마르고 닳도록 인용하는 퀴블로 로스의 애도 단계에 대해서 이런 말을 한다. 

 

❝스토아주의자들에게 퀴블러 로스가 제시한 슬픔의 다섯 단계 목록을 보여준다면 그들은 처음 네 단계, 즉 부정, 분노, 타협, 우울을 건너뛰어서 곧장 다섯 번째 단계인 수용으로 갈 것이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되살려내는 것은 우리 능력 밖의 일이므로 그들의 죽음을 과도하게 슬퍼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덧붙일 것이다. 가능한 한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삶을 계속 살아가야 한다.❞

 

<슬픔을 쓰는 일> 한 권을 통째로 반론으로 들이밀 수 있지만, 어떤 의미로는 인정한다. 삶에 널린 수많은 좌절, 어떤 좌절, 내가 유발한 어떤 위기들은 곧장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건너뛰고 수용! 어떤 날, 어떤 일은. 수용하고 겪어내야 한다. 결국 같은 일인지 모르겠다. 퀴블로 로스 여사의 5단계는 기계적 순서가 아니라 결국 잘 겪어내야 한다는 것이고. 더 나은 날까지는 아니어도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삶 외에 다른 선택은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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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말 과제를 제출하고, 후련함 대신 뭉글한 뭉클함의 하루를 보낸다. 다시 석사를 시작했다. 스물아홉에 학부 전공 버리고 대학원을 시작했을 때, 신생 학과 '음악치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가 떠오른다. 이게 공부구나! 하고 싶은 공부는 이렇게 재미있구나! 했었는데. 쉰셋에 학부 전공, 대학원 전공 버리고 또 새로운 전공에 들어서서 한 학기를 보냈다. 이게 공부구나! 공부는 늙어서 하는 거구나! 하면서 한 학기를 마쳤다. 급하게 진행된 진학의 과정이지만, 실은 10여 년 고민한 결과이기도 하다. 정말 공부하고 싶었는데, 학위 과정을 하고 싶었는데 갈 학교가 없었다.

가을학기 전형에 응시하여 석사과정에 편입했다. 물 흐르듯, 그러나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이루어진 일이다. 입시요강 페이지 열어놓고 고민하는 엄마를 발견한 채윤이 질문에, 저간의 상황을 말했다. "응시해, 응시해, 당장! 내가 해줄까?" 그 말 끝에 온라인으로 응시, 필요한 서류 준비까지 다 해줬다. 편입이 불가하면 안 가야지, 했는데 편입 허락이 되고. 면접을 보면서는 "내가 가서 공부할 만한지 교수들 면접 좀 보고 올게."하고 갔는데 마음이 스르르 녹아서 끌렸고.

네, 저는 그렇게 쉰셋에 다시 대학원생이 되었습니다. 영성 공부합니다. 전통적 영성에 관심이 많아서, 특히 중세 영성에 관심이 많아서 가톨릭 대학입니다.

예상된 결말이란 생각이 든다. 이 결말을 빠르게 끌어낸 것은 엄마 상실이다. 엄마 돌아가시고 뭐랄까 뱃심이 생겼달까. 하고 싶은 거 하고, 하기 싫은 거 안 하는 삶을 사는데 더욱 두려움이 없어졌다. 미움받을 용기는 물론이고, 왕따 당하는 것도 그리 무섭지 않다, 라는 것은 지금 막 쓰면서 알았다. <슬픔을 쓰는 일>에는 '허무의 강'에 떠오르는 것들을 뜰채로 떠서 갖다 버린다는 표현을 썼는데. 오랜만에 책을 들춰 보면서 아, 내가 이런 말도 했구나! 심지어 이것이 책의 결론이었구나! 놀랐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6개월 전 떠나신 엄마가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도 이것 아닐까. 삶을 살아라, 네 삶을 살아라. 내 딸아, 이제 죽음에의 두려움을 벗어나 상복을 벗고 '현재'라는 선물을 살아라. 반드시 죽을 너의 운명을 기억하되 '살아 있는 사람'으로 살아라!


그렇게 알아들었다. 나는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돈은 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접었고, 코 앞의 이익은 주지만 내 영혼을 피폐하게 하는 일들은 피하며 산다. 성장에 도움도 안 되고, 힘만 드는 관계는 애써 붙들지 않는다. 부러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모두 엄마가 떠나고 남긴 선물이다. 그 선물이 나를 다시 공부로 이끌었다. 엄마가 그렇게 싫어하던 공부. "책 그만 읽어. 시집 못 가. 여자가 공부 많이 허믄 마음만 높아져서 안 되는 거여. 아이구, 시집 못 가." 엄마가 진심을 담아 하던 말이다. 엄마의 진심을 보란 듯이 팽개치고 대학원에 갔었지. 오직 결혼에 목숨 걸고 있던 엄마는 하늘이 무너졌었다. 진짜 시집은 다 갔구나!

엄마가 죽음으로 전해준 사랑의 메시지에 힘입어 엄마의 뜻을 거스른다. 천국에 있는 엄마가 잔소리 할까? "니가 지금 니 공부 헐 때여? 현승이가 고3이여. 채윤이도 아직 뒷바라지 헐 일이 많은디... 에미라는 년이 지 공부헌다고 돈을 쓰고 시간을 들여? 너어, 그르케 교만허믄 안 뒤어. 배울 만큼 배운 거 감사허고, 애들 잘 돌보고, 김서방 목회 위혀서 기도허고 그러야지. 예이, 이년아!" 이런 잔소리도 이젠 기분 좋게 듣겠지만. 낡은 정신과 몸을 다 벗은 빛나는 엄마의 영혼이 저리 말할 리가 없다. "잘혔다, 우리 딸! 우리 딸 공부 좋아허는 딸인디, 진즉 그르케 공부혀서 유학도 가고 그렸어야 허는디... 장허다. 평생 포기하지 않고 배우고 또 배우는 거 장혀. 허세로 공부허지 말고, 진실헌 공부를 혀. 우리 신실이 장허다."라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첫 학기 강의들이 의도한 바가 하나도 없는데 고대 철학, 그리스 비극에서 만났다. 한 학기 동안 그리스 철학, 그리스 비극에 머물렀다. 그리고 기말 과제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들이며 '비극'에 머물렀다. 그리스 비극을 읽고 에세이를 쓰며 필멸의 존재로 불멸의 환상을 꿈꾸는 지점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또 마주했다. 마지막 과제는아우구스티누스의 <교사론>을 읽고 쓰는 것이었다. 거기 나오는 '내면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이었다. 이 역시 참 신기한 것이 <슬픔을 쓰는 일> 마지막을 또 이렇게 썼기 때문이다.

삶의 비극성은 내게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다. 희망이 생기면 마음 깊은 곳에서 먼저 절망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버림받을 걱정이 앞섰다. (중략) 엄마 떠나고 시작한 애도 일기는 다시금 '삶의 비극성에 대한 감각'을 있는대로 세우고 머무는 시간이었다. 내 인생 가장 치명적인 두 슬픔, 두 죽음이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새로운 죽음에 이끌린다. 저항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죽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비로소 든다. (중략) 나는 이제 이 신비 앞에서 상복이 필요 없는 죽음을 생각한다. 나의 죽음이다. 언젠가 마주할 나의 죽음을 가슴으로 안으려고 한다. 결국 다다를 비극 또는 신비인 나의 죽음을 부드럽게 사귀어 보겠다.


내 개인사의 비극을 넘어 실존적 비극에 머물고, 거기서 내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만나는 한 학기 공부였다. 이런 공부를 하는데... 예수님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시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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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ealed 2021.12.24 00:15 신고

    공부는 늙어서 하는 거구나!! 완전 공감이요!! 기말과제 내고 글 쓰시는 언니는 정말 👍

박미라 선생님이 이끄는 송년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한 해를 돌아보며 2021년에 이름을 붙여보니 "사선(死線)을 넘어"였다. 죽을 고생 했다는 뜻은 아니다. 돌아보니 올해의 키워드도 '엄마'였다. 은근하게, 더 진득하게 엄마였다. "아직도 더 울고 싶구나!" 알게 되었다. 1월부터 차근차근 돌아보는데, 6월 말 <슬픔을 쓰는 일> 출간을 기점으로 희한하게 눈물이 잦아들었다. '사선을 넘었다'는 표현은 어떤 경계를 넘어 죽음에 한 발 다가갔다는 뜻일 수도 있고, 비로소 한 발 떨어져 죽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출간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지만, 그 모든 과정, 그리고 출간 이후의 시간은 엄마의 죽음, 아니 죽음 자체를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였다. 과도한 두려움으로 차마 정신 똑바로 차리고는 마주하지 못할 것이 죽음이었다. 다시 '죽음을 짊어진 삶'이란 언표를 꺼내야 하나보다. 등 뒤에 죽음의 흔적을 딱 붙이고 평생 살면서, 심지어 잘도 살아내면서 죽을 만큼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살았다. 엄마를 보내 드리고, 흑백의 나날을 살며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면서 이제 조금 죽음과 친숙해졌다.

내가 준비되자 부르는 곳이 생겨났다. 가을에는 죽음에 대한 의미있는 강의도 했다. 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들려주는 치유와 소망의 말이 되었다. '진실한 나'에게서 나오는 말이라, 그저 전한 것으로 족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들리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는 느낌의 강의는 흔치 않다. 쓸 수 있어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말하고 나니 다시 내 안에 새로운 것이 일렁이고, 그것들을 다시 써 내려갔다. 그러면서 사선을 넘었다.

오늘은 아버지 추도식이다. 30주기야, 30주기야. 했는데 동생과 통화하다 40주기라는 것을 알았다. 30 년이 아니고 40년이라고? 어떻게 난 아직도 40년 된 죽음에 매여 있을까? 라고 말했더니 동생도 그렇단다. "나도 그래" 내 현재 생각과 감정의 습관의 많은 것들이 아버지 죽음에 가 닿는다.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며(극복일까?) 사느라 생긴 어떤 것들이다. 상처는 존재의 무늬다,라고 한다면. 내 존재의 가장 선명한 무늬니까.

엄마의 죽음이 아버지 죽음까지 치유하고 있다. 모든 죽음을 치유하고 있다. 겨울(아버지 돌아가신 12월 16일이 있는 겨울)이 다가오면 괜히 두렵고, 더 슬펐던 그런 느낌도 흐릿해졌다. 슬프고 아파서 가지만 앙상한 겨울 나무를 쳐다보지도 못했던 때가 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텅 빈 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그 여백의 아름다움에 충분히 머무를 수 있다. 40년이다. 죽을 때까지 아버지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안다. 내 존재의 가장 큰 무늬니까. 이제는 조금 그 무늬가 사랑스럽다. 아버지 있는 아이인 척, 아무리 잘 연기를 해내더라고 나는 아버지 없는 아이였는 걸... <슬픔을 쓰는 일> 후반부에서 '고아 의식'이라 이름 붙이고 충분히 머무르며 할 만큼 했더니 생긴 힘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이제는 아이도 아니지!)로 산 40년. 괜찮았다. 이렇게 말하면 그리움과 슬픔이 바짝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건 또 다른 마음의 길인 듯한데. 슬프고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괜찮았다. 엄마 아버지가 슬프고 그리울수록 죽음이 친밀하게 다가오고, 삶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박미라 선생님의 송년 글쓰기에 참여한 것은 내 나름의 12월 리추얼이다. 해마다 12월이 다가오면 "피정 갈 때가 됐네"하는 소리가 마음에서 들렸다. 일상에서 물러나 침묵으로 들어가야 할 때가 왔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 역시 12월, 아버지 떠난 자리의 흔적이었다. 알 수 없는 슬픔, 외로움이 밀려와 기도하러 떠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했던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있는 피정이 없었다. 영혼은 메말라 울부짖는데 물러날 곳이 없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송년 글쓰기'이다. 피정 대신 선택했다. 좋은 선택이었다.

사선을 넘어 온 1년이다. 40년 전의 죽음, 1년 몇 개월 된 치명적인 죽음을 마주하고 어떻게 이렇게 잘 살아왔는지 내가 대견하다. 잘 살아오느라 참은 눈물이 많아서 아직도 한참 더 울어야 한다는 것도 알겠다. 평생 울어야 할지도. 아버지 추도식에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 사진에서 눈만 편집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니 "엄마야?" 했다. "그래, 엄마야. 우리 엄마야." 내가 봐도 내 눈 같으니... 내 눈 같은 엄마 눈과 눈을 맞추고...

엄마, 아버지 추도식인데... 엄마가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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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고3은 고등학교 3학년이란 뜻인데, 고등학교보다는 대학에 딱 달라붙은 시간이다. 현승이가 이제 고3이 된다. 일반학교에서는 진학상담, 현승이 학교에서는 '연합 멘토링'이란 이름으로 상담을 했다. 연합 멘토링이 있던 날, 일찍 학교 앞으로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지상에서 가장 맛없는 돈가스를 먹고 울렁거려서, 지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찾아 카페에 들어갔다. 돈가스가 맛이 없었던 것인지, 마음에 음식 받아낼 공간이 없었던 것인지... 돈가스는 맛이 없고, 마음엔 여백이 없었나 보다.

 

현승이 진로가 갑자기 걱정 덩어리로 다가온다. 대학은 안 가도 좋다. 가고 싶다면 어디든 가도 좋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는 차차 정해도 된다. 장래희망을 정하고 거기 맞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고 '꿈이 없는 아이'로 볼 일도 아니다. 제 속도대로 자기 길을 찾아가면 된다...

 

라고 진심 생각하지만. 생각과 감정이 나란히 어깨동무하고 걷는 일이 드물어서 말이다. 고3을 코 앞에 두고, 대학을 가야겠다는 현승이를 보자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 파도를 친다. 카페에 앉아 체한 돈가스를, 아니 감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은 무척 걱정이 되고 마음이 자꾸만 어두워진다고 말했다. 바로 '걱정근심주식회사'가 차려졌다. 걱정 하나가 걱정 둘을 끌어내고, 둘은 넷이 되고, 넷은 여덟이 되면서 현승이, 나, 남편, 내년... 이 회사의 경영방식이 문어발 식이라. 여기저기 숨어 있던 걱정이 다 커밍아웃이다. 

 

그때! 바로 그때!

 

감정 추스르고 맛있는 커피 한 모금 하려고 잔을 드는데... 이게 무엇인가! 천장 조명이 커피잔에 비쳤고, 요리조리 각도를 바꾸다 보니 노란 리본이 딱 뜬다. 메시지구나! 이건 메시지야! 기억하라고 한다.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그때 그 시간을 지내며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하며 했던 결심들을 떠올리라고 한다. 어떻게 살기로 했는지, 진도 앞바다에서 잃어버린 생명들이 살지 못한 삶과 세상을 어떻게 감당하기로 했는지 기억하라고 한다.

 

바로 멈추었다. 걱정과 불안의 말들을 마음에서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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