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이 돌아가셨고, 장례식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혼란 그 자체이다.

짧았던 우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안에서는 더 크고,

훨씬 더 긴 세월, 서로 알 수 없는 시간 속의 서로는 잘 모른다.


무슨 직함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는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

고3 아이의 엄마는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가 속닥속닥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 

괴리가 함께 흘러들어와 자리 잡고 앉는다. 

내 마음 속 고운 추억으로 간직된 착하고 좋은 사촌들.

어쩐지 지금은 낯설기만 한 것은

그들이 나에게 먼 것인지,

내가 그들로부터 이탈해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슬픔에 겨워 우시던 외숙모가 곁에 있던 어느 분에게 나를 소개하며 말씀하셨다.

"얘가 정목사님 딸이에요. 얘가 아주 유명해서, 얘가 웃음치료데, 아주 유명해서 테레비에도 나오고,

미국도 갔다 오고, 책도 쓰고 아주 유명해요."


'웃음치료사'의 힘이 막강하다.

심각했던 나를 웃게 했다. 치료를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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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의 시바타 할머니,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토쿠에 할머니

키키 키린이 영화에서처럼 정말로 돌아가셨다.


<어느 가족>에서 가장 마음 시린 장면이 가족들의 해변 점프샷이었고

그걸 지켜보는 시바타의 시선이었다.

시바타가 마음으로 말했다. 

"다들 고마웠어"

영화 속 시바타 생의 마지막 대사였다.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올해 1월 3일에 돌아가셨다.

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융 심리학을 넘어 

꿈의 영성적 의미을 한층 실제적으로 밝혀내고, '온전함'의 깔대기로 꿈 언어를 해석하고,

안전하고 강력한 치유 그룹인 '집단 꿈 투사(projection)' 안내하신 분이다.


그분의 제자 고혜경 선생이 밝혔다고 하는 얘긴데.

평소 강의 시간에 자주 말했단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기도는 'Thank you!' 하나로 충분하다고.

작년 12월 31일 늦은 밤, 스승인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께 메일을 받았다고 한다.

평소답지 않은 짧은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ank you!   

J.


J는 물론 제레미 테일러이고, 메일 발신 3일 후 돌아가셨다.


실제 암환자로 암투병을 연기하고,

온몸에 암이 퍼진 채로 여전히 작품활동을 하다 떠난 키키 키린의 마지막 인사도


Thank you!


생의 마지막 순간 "고마웠어" 인사할 수 있는 삶.

억울해, 아쉬워, 원통해, 미안해.........가 아니라

고맙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해서 오늘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적어도 이 말을 차곡차곡 쌓는 삶은 아닐 것이다.

 

이것들이 고마운 줄을 몰라. 내가 해준 게 얼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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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있는 공간만 찾아 다니며 견딘 여름이 갔다.

버스라도 타려고 맨몸으로 걸으려면 극기훈련 하는 심정이었지.

바로 저 길이 그 극기훈련 코스였다.

맨몸으로 걸어도 겁나지 않는 길,

정도가 아니라 높고 푸른 하늘과 딱 좋은 바람이라니.


맑은 날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절이다.

학교 다녀온 현승이가 노트북 앞에 앉는 나를 보면 혀를 끌끌 찬다.

엄마, 오늘 한 번도 밖에 안 나갔어?

밖에 날씨 엄청 좋아.




(남자 였음) 수염 덥수룩 했을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았다

벌떡 일어나 아까운 가을을 붙들러 나간다.

책도 안 들고 휴대폰 케이스에 든 카드 하나 덜렁 들고 나간다.

한 달 전만 해도 지옥 훈련장이었던 길을 발길 닫는대로 걷고,

걷다 반찬 가게 앞에서 물김치 한 봉지 하고,

몇 걸음 걷다 옥수수 찌는 냄새가 좋아 한 봉지 산다. 


검은 봉지 손에 들고 덜렁덜렁 걷는데 까치 녀석 옆에서 알짱거린다. 

지금 여기를 살며 자유로운 친구들은 역시 새, 

새는 우리들의 선생님이지.




공원 앞 어린이집 앞에 서서 목을 빼고 한참 기웃거린다.

예쁜 아기 지효네 교실이 저긴데.

날씨 좋은데 아가들 산책 안 나오나?

머리 큰 형님 반 친구들만 공원 저쪽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미세먼지 없는 공간이 아이들 소리를 빨리 흡수해 버린다.


공원 계단 콘크리트 틈의 초록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꾸미지 않은 자신으로 족한 친구는 역시 들풀이지.

우리의 참된 선생님이 말씀하셨지.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나리꽃을 보라!




공원 벤치에 앉아 옥수수 두 개를 뚝딱 다 먹었다.

 저 아래 브런치 카페 디쉬가 부럽지 않구만.

음뇽뇽뇽, 맛있다.




집 앞 골목에 서서 하늘 올려다 보다 꽃을 든 빌라를 본다.

그 위에 이불 빨래 머리에 쓰고. 

아무리 셔터를 눌러도 각이 나오질 않아

얼른 집에 올라와 주방 창문에 매달려 허리 꺾고 찍어 얻은 사진.

빨래 널고 걷는 행복, 돗자리 깔고 김밥 먹고, 커피 마시고, 누웠던 

합정동 집 옥상이 떠오른다.

마음이 쎄하다.




사 온 물김치를 통에 옮겨 담는데 

눈대중으로 가늠이 되질 않는다.

이 통? 저 통? 잠시 고민하다 뽑은 통에 담았는데

일부러 맞춘 것처럼 딱 들어간다. 


딱 알맞은 오늘, 지금 이 순간이라고 누군가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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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ktx 광주송정역에서 광주역 가는 무궁화호 안이다.

어릴 적에 서울 갈 때 타던 장항선 열차를 탄 것 같다. 

흔들흔들 앉아 옛 기억 더듬다 소환되어 나온 노래. 

서너 살 때부터 불렀던 내 18번이고 인생 첫 노래다. 

장항선 열차 안 의자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엄마 아버지가, 

또 다른 좌석의 어른들이 연양갱을 사주셨다. 


건너편 빈 좌석에 네 살 짜리 내가 어른거린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던 연양갱도,엄마도 아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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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 낮은 책꽂이 위의 초록이들.

폭염 속 동사(凍死) 위기를 넘긴 기특한 화초들이다.

밤낮 쉬지 않고 돌아가는 에어컨 바로 옆에 줄을 서 있던 친구들.

스치로폼 독자리로 냉기 차단벽을 만들고 애를 썼더니 살아 남을 놈들은 살아 남았다.

장하고 기특하다, 내 새끼들.

아침마다 들여다보고 매만져주었다.


가끔 슬쩍 건드렸는데 툭 떨어지는 잎이 있다.

멀쩡하게 파릇한데도 가지에 붙들고 있던 힘이 다 빠졌단 뜻이다.

아, 이 녀석 아프다는 뜻이다.

누렇거나 메마른 기색 없는데도 툭 떨어지는 잎이 있다는 건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다.

가장 아끼는 두 녀석이 그렇다.


좁디 좁아서 가만히 서 있어도 짜증이 밀려오는 주방이지만

주방 탁자 명당 자리로 옮겨 에어컨과 분리시켜 놓았다.

적당한 볕이 있고, 더 자주 눈을 맞출 수가 있다.

어, 나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냥 지나쳤는데 얘가 뚝 떨어지네.

이제 식구들도 알아차린다.


언뜻 보기에 아직 멀쩡하지만

결국 하나 둘 떨어지고 말 것이다.

나름대로 붙어 있으려 애를 써봤을 텐데, 저도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겠지.


건강한 화초들을 손으로 쓱 훑어본다.

끄떡 없고 쨍쨍하다.

아픈 화초도 그리 해보고 싶지만, 그리 했는데 다들 끄떡 없이 붙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지만

손을 갖다 대지 못한다.

우수수 죄 떨어져 버릴까하여.


속이 상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붙들 수 없다.

제가 붙들고 있지 못하는데 내가 어찌 도와줄 것이 없다.

무력함을 느끼고,

안도감을 느낀다.


애써도 안 되는 것인데, 

내가 하면 될 줄로 알고 나를 볶고 남을 볶았던 때가 있었다.

고장난 의지에 뒤틀린 자기확신을 곁들여 내가 다 하고,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건장하던 녀석이 툭 떨어지는 것 하나도 돕지 못하면서 말이다. 

애초 내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생각하니 안도감이, 심지어 자유로움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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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8.24 11:17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8.09.09 09:53 신고

      그대, 마음의 여정 잘 가고 있습니다! 요즘 특히 더 박수가 나옵니다.



+

수련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달리고 달렸다. 지난 주 금요일엔 우리 교회 수련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지리 감각이 통 없는 통에 무리하게 달리며 시즌을 시작했다. 강의 요청이 왔는데 우리 수련회가 겹쳐 거절 했다. 듣고보니 수련회 장소 바로 옆인 것 같아 다시 수락을 했다. 강화도와 영흥도. 서해안이라고 다 바로 옆이 아닌데. 새벽 6시 일어나 강화도에서 강의하고 2시간 운전하여 영흥도 수련회장에 갔다. 힐링캠프라는 이름의 널널한 수련회라 중간중간 방에 처박혀 연재 원고를 썼다. 둘째 날 밤에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치료사 페르소나를 발휘, 노래하고 춤추고 노래 만드는 프로그램을 인도했다. (아직도) 낯설고 많이 부끄럽지만 미친 척하고 분위기 띄우는 거 잘한다. 다음 날 눈을 뜨니 한쪽 눈 혈관이 터져 핏빛이 되었다. 아, 일주일 내내 있을 각종 수련회 강의는 좀비 눈알을 하고 다녀야겠구나. 막막하게 맞은 일주일이었는데 원고도 강의도 미션 클리어 하고 새 아침을 맞았다. 어제 오후부터 자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한 열두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새로운 몸을 입은 아침이다.


+

그렇게 강의를 많이 하다니 돈을 얼마나 많이 벌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청년부 강의 많이 다녀서 돈 벌었다는 사람 못 봤으니 앞으로도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열심히 달린 후에는 푹 자고, 알아서 챙겨 먹기도 하니 몸도 괜찮다. 볼이 폭 패이고 말라 있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자꾸 각인 시켜주지 않으셔도 된다. 이미 충분히 부끄러운 말라 주름진 얼굴이다. 장기하가 부른다. 별일 없이 산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사실을 말하자면 강의 마치고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 피곤이 턱까지 내려와 졸음운전 걱정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뭔가 강의 내용이 미흡했던 것 같아 침대에 이르기도 전에 이불킥을 하곤 하지만 말이다. 이른 아침 SRT 타러 가는 길, 식구들 잠든 현관문을 닫고 나설 때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원고 써 내놓고 악플까지도 아닌, 부정적인 단어 한 두 마디에 심장이 뛰기도 하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장보러 마트에 들르면서 누군가 된장찌개 끓여 놓고 날 기다주면 좋겠다 싶어, 문득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음 원고 생각으로 꽉 찬 머리 속에 이 말 저 말 뒤섞여 돌아버릴 지경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지난 주 가장 멀리 다녀 온 강의가 광주, 수련회 장소는 정확히 전라도 화순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서 맞으러 나온 청년의 차를 타고 화순으로 가는 중 '주남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임철우의 소설 <오월>이나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자료에서 본, 너무나 익숙하지만 낯선 주남마을이다. 그리고 보이는 이정표는 보성, 화순, 벌교. 그러니까 민주화항쟁 당시 게엄군이 주둔하며 길을 막았다는 바로 그 길인 것이다. 연애 강의 하러 가는 길인데 내 마음은 온통 80년 광주에 가 있었다. 묻고 대답하는 강의 중 청년들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 '충정로' 라는 말에도 멈칫했다. 일주일, 강의 다니는 외적인 삶보다 더 많은 일들이 내 마음에선 일어난다. 수련회서 만나는 청년부 목회자들 한 분 한 분이 내겐 의미이다. 황폐해진 청년부를 맡은 1년차 목사님,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청년부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목사님, 으쌰으쌰 살아 꿈틀거리는 공동체에서 신뢰받고 행복한 목사님, 작은 청년부를 맡아 온몸으로 뛰는 목사님. 강의 일주일이 아니라 만남 일주일이다.


+

일주일의 마지막 강의. 토요일에 덕산으로 운전하며 가는 중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의 찬송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채윤이를 키우면서 자장가로 그렇게 불러주셨던 찬송이 생각나 혼자 불러봤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한 전혀 없어라' 찬송 가사가 엄마처럼 따스해서 또 왈칵 눈물. 엄마의 찬송 소리를 많이 녹음해 두어야지 싶었다. 강의 마치고 홀가분하게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찬송 불러봐. 못 부른다. 잠시 침묵 후 '예수 소유 하야서 나는 부자 되고 예수 한 분 잃어서 나는 그지 되네' 신청곡 아닌 다른 곳을 혼자 부른다. '엄마, 그거 말고 주는 나르을 기르시는 목짜아요 이거 불러봐' 내가 선창을 해도 못 부른다. '나 다 잊어버렸어. 끊어'란다. 전화 끊고 울며 운전했다. 


+

별일 없는 일주일 보내고, 새로운 날들을 맞는다. 일상이 흘러간다. 별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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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며 

관계를 맺으면 괜한 에너지 소모가 덜할 것 같은데.


이 놈의 SNS 세상은 

보고도 안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은 기본이고.

몰래 보고, 못 본 척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게임판 같기도 하고.

뭘 그렇게 사람이 베베 꼬여 있느냐, 쿨하게 보고 넘기고 하면 되지,

라고 말하지 마시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시라.

나는 태생이 쿨하지 못한데다 마음 바닥이 좁은 편이다.


나의 페북 사용법은 '그것은 알기 싫다'이다.

일일이 축하 하거나, 찬사를 보내거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개인사를 알고만 있기가 싫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그와 얼굴을 대면하고 물을 수 없는 바를 은밀히 캐기 위해 

훔쳐보고는 불행한 SNS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페북에서 유명한 싸움 구경은 꼭꼭 찾아본다. 큐큐)


친구 요청이 와 수락하고 친구가 된 후에는

진심 존중의 마음을 담아 팔로우를 취소를 누른다.

누군지 모르는 분의 일상을 눈팅 눈팅 눈팅, 하다

혼자 좋고 싫음의 투사 드라마나 쓰며 논평하는 게 예의가 아닌 듯 하여.


블로그의 보이지 않는 독자를 사랑한다.

일등 칸에는 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는 분을 모신다.

댓글을 남기거나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프에서 나누는 한 마디 대화, 눈짓으로도 알 수 있다.


지난 주에 갔던 청년부 수련회의 포스터이다.

처음 뵙는 목사님, 청년부였다.

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숨통이 트인다.


이틀 만나고 온 담당 목사님과 청년부는 살아 있는 만남으로 마음에 심겨진다.

강사를 치켜 세우는 포스터에 으쓱해져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야 이제 어쩔 수 없이 책으로 블로그로 내 패를 다 보여준, 

상대가 어디까지 봤는지 모른 체 홀랑홀랑 벗어 제끼는 게 주특기인,

그걸 밑천으로 글쓰는 사람이다.

숨어 훔쳐 보는 사람이 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저 여기까지 봤어요' 하며 다가오는 만남은 얼마나 고마운가.


강사로 산다는 건, 딱 한 번 보고 말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일인데.

딱 한 번 만남을 진정한 만남으로 간직하게 되는 일이 있다.

아는 만큼, 본 만큼 이해하고 표현하는 투명함이 주는 선물일 터.

헛헛함과 슬픈 헤아림만 남기는 에너지 소진의 만남은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고 싶으나,

살아간다는 것은 이것을 견디는 것일지도. 

100 번의 가면 쓴 만남에 단 한 번의 생기 있는 만남,

홍수 속의 목마름에 생수 한 병 같은 만남이 있으니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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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찬사를 받을 때 좋아지는 기분에 연연하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얻지만,

나를 자라게 하는 늘 그 반대 지점에 있다.


남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문득 나간 말이다.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할 뜻을 가지면 아프고 화나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돌아보려 하면 아프지만 자유로워져


남편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던가.

되새기고 있다.


아프던 겨드랑이 밑이 간지러워져 날개가 돋아나

아프지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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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 있던 일정을 끝내고 휴우~ 하면 거실 내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창가의 다육이 화분.

어머, 저게 뭐야?

떨어진 잎에서 싹과 뿌리나 나고,

흙지 붕 뚫고 새싹이 하나 돋아난 것이다.

두 생명체가 서로를 향하고 있다.

가 닿으려는 듯.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 정성 들여 돌보지도 못했는데.

시들시들 고개를 떨굴 때야 깜짝 놀라 물을 주기도 했는데.

나 모르는 사이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고 있었다니.

뭉클한 감동이다.


전에 [큐티진]에 썼던 글의 일부이다.

보이지 않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낭만파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을 노년이 되기까지 열정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 말에 정원 한 구석의 고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고. “죽은 듯 보이는 저 나무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그 이유는 저 나무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살아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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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이나 치유 그룹에서는 흔히 별칭을 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생소하고 오글거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내 이름 정신실을 두고 '나리'로 불리는 건 나와 거리를 두는 일이다. 2인칭 또는 3인칭으로 불러 나를 타자화 시키는 방법이다. 새롭게 만난 그룹에서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구분 없이 부르는 별칭은 페르소나를 지양하는 뜻이 담기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오글거리던 적 있었지만 이젠 별칭 짓기 권하는 자리에 자주 앉는다. 드물게 바뀌지만 나의 별칭은 주로 '나리'이다. 나리꽃의 그 나리. larinari의 nari 역시 바로 '나리'이다. 굵직한 별칭 만남들의 마침표를 찍었다.


5,6월 8회기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동반했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라고 쓰기도 싫은, 그러나 분명 그 끔찍한 일을 겪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니, 잘 살아가지 못하는 '나'들이다. 8주간 함께 쓰고 읽으며 나도 쓰고픈 말이 많이 일렁였다. 아니,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모임이 있는 금요일엔 늘 새벽까지 깨어 있게 되었다. 매주 생각보다 많이 웃었고, 조용히 울었다. 제가 오히려 배우고 치유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8주였는데. 마지막 8주차에는 '네, 저도 치유고 배움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네요' 하고 뛰쳐나와 가해자 목사를 찾아내 단죄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나리'였다.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여정 캠프, 그러니까 싱글들을 위한 2박3일 캠프가 있었다. '나를 찾는 길 위에서 너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붙여봤는데 '에로스를 찾다 아가페를 만나다' 이런 사심을 품기도 했다. 하긴 부제로 붙일만 한 사심이 한 둘이 아니다. 소개팅과 결혼 압박에 지친 싱글들의 힐링 캠프. 전에 해보지 않은 재미있는 연속 소개팅. 나는 왜 사랑이 두려울까, 두려움 극복 프로젝트. 매칭 부담 없는 매칭 프로그램. 등등.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해야겠다. 생면부지 15명의 청년들 캐릭터부터 날씨, 장소, 나눔, 상담, 케미, 피날레. 여기서도 나는 나리였다.

 

캠프 떠나기 하루 전인 수요일엔 에니어그램 심화 세미나가 있었다. 아침 일찍 운전을 하고 가는데 음악을 듣다 툭,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전 주 금요일 글쓰기 자조모임 이후 차분히 감정 돌볼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연이은 묵직한 강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마침 이날 심화과정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예언 같은 울음이었을까. 미처 울지 못한 뒤늦은 울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리'로 살았던 6월은 끝났다. 오늘 주일 예배에선 여정캠프에서 만난 15명, 에니어그램 세미나의 6명, 글쓰기 자조모임의 4명.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흩어져 이어지는 그들의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또 울었다. 울음이 아니라 기도라고 하자.  



'나리'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매주 만나는 꿈과 영성생활이다. 2박3일 여정캠프를 지원하고자 모인 사람들처럼 카톡으로 무한 에너지를 보내왔다. 캠프가 있었던 연천으로 가는 길을 전화 통화로 함께 하며 얘기를 들어주고 깨달음을 주는 벗이 있었다. 연천의 한옥호텔에 도착하여 긴장 속에 자기소개를 마쳤다. 물론 나를 '나리'로 소개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어머나, 정원에 지천으로 핀 꽃이 나리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주님! 신경 많이 써주셨군요! 나리는 마태복음 6장 28절의 '들의 백합화'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 족한 들꽃이다. 




캠프에서 상담하는 중 세 사람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강의하고 상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충전하는가, 조금 걱정된다, 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 되는 것으로 족한 만남에서 끝없이 재충전 한다고 대답할 걸 그랬다. 돌아가 그런 벗들이 있고, 벗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살아있는 숨결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 그 숨결의 근원이신 분을 만나기도 한다고 고백할 걸 그랬다. 나는 나임이 부끄럽지 않다. 나를 나리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온몸으로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각자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그분의 큰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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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보물입니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면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치유 되고, 성장합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느끼고 건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건강한 사람입니다.

감정은 영혼의 외침입니다.


라고 말하고, 독려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내곤 한다.

낮에는 이렇게 강의를 하고, 이런 취지의 별별 상담을 한다.


어느 밤에는 공허감, 슬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외로움이 패키지로 몰려온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라고 나를 토닥여보지만, 

정답을 익히 알고 있는 이 삐딱한 자아가 순순히 말 들을 리 없다.


이런 밤에 읽을 책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글을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게다가 몇 줄 끄적일 수 있으니.


어제의 낮은 지워지고, 내일의 낮은 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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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수 없었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일들이 나를 새로운 자리로 데려가곤 한다.


음악치료사라는 직함, 호칭 또는 정체성이 점점 흐려지고

작가와 강사의 옷이 평상복 같아지는 나날이다.


쓰고 읽은 것들이 자꾸 내가 새옷을 입히는 것이다.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끌게 되었다.


이 쓰기 모임을 설명하는 언어로 '피해자(보다 생존자)', '치유(보다 성장)'를 쓰기가 불편하다.

아닌 게 아니라 첫모임에서 한 분이 말했다. 그 말은 불편하다고.


대상화 되기를 불편해 하는 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더는 그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수도 있다.

'자조모임'이 딱이지 싶다.


건강(health), 치유(Healing)라는 말의 어원이 ‘hal, hale’이라고 한다. 

이것은 whole, 즉 전체성과 온전함의 뜻한다.


치유는 비정상을 정상 만들거나, 아픈 사람 낫게 한다는 뜻보다는

온전성의 회복이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칼 융이나 카레 호나이는 자기 치유, 즉 온전성을 향한 의지와 힘이

모든 인간 안에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나다움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기울어진 사유의 틀과 신앙을 가지고 불편한 일상에서 균형을 찾고자함이었다.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참고할 책을 한 권씩 빼서 노트북 옆에 쌓다보니 끝이 없다.

마치 '치유하는 글쓰기'를 위해서 읽고 써 온 인생이라는 듯.


자기치유, 또는 가장 나다운 나를 꽃피우기 위한 읽기 쓰기의 50평생이니,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끄는 일은 또 하나의 필연인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일로 긴장과 설렘의 봄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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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고향, 충청남도 한산을 찾았다. 남편 제안으로 휴가 중에 일부러 일정 잡아 들렀다. 마침 한산 오일장 서는 날이라 어릴 적 장날을 기억하고 한껏 부풀었으나 한산하기만 한 한산장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오라리 집'으로 들어갔다. 내게는 아스라하고도 친근한 '오라리'이다.


혼자 갔으면 조용히 먹고 나왔을 텐데 남편이 주인 할머니께 장사하신지 얼마나 되셨냐, 아내가 어릴 적에 여기 살았다, 말문을 터주었다. 35년 되셨다면서 "오디 사셨슈?" 하셨다. 저 위에 한산제일교회라고, 그 교회 목사님 아시냐고 했더니..... "아, 그 탄 가스로 돌아가신 정 목사님"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때 당시 잠깐 교회를 댕겼슈" 하시더니 우리 엄마한테 수십 번 들었던 교회 얘기를 들려주셨다. 눈물이 터질락말락 놀랍고 신기했다. 잠시 후에 식사하러 들어오신 어르신에게 "저기, 옛날이 교회 목사님 알쥬? 이 양반이 그 딸이랴" 하...자마자 "정선득 목사님?" 하신다. 당시에는 교회 안 다니셨는데 지금 한산제일교회 장로라고 하시며.


동네 구석구석 돌아보고 사진 찍고 하는데. 지나가는 연세 드신 분 아무나 붙잡고 "제가 예전 교회 집 딸입니다" 하면 다 아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에 교인 아닌 분들은 나를 '교회 집 딸'이라 불다. 태어나보니 목사 딸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동네 절에서 사는 어떤 아이에게 '절집 딸'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교회 집 딸'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절집 딸, 되게 이상한 애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이구나. 부모의 딸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집에 사는 사람 중 하나의 아이'


고향 동네를 뒤로 하고 겨울 논 사이 국도를 달리는데 기억의 조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교회 집 딸'이란 말을 조금 다르게 인식한 후에 무의식 중에 '교회 집 딸, 목사 딸'이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 속으로 자꾸 이렇게 말했다. '교회 집에도 엄마 아부지가 있고, 그냥 당신 집하고 똑같습니다. 죽이 잘맞는 동생과 엄마 아부지 놀릴 궁리를 하다 싸우다 혼나다 하면서 사는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목회자 가정이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거룩하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참 어려웠다. "그냥 당신 가정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문제를 가진 가정이라구요." 엄청 홀리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그 사람의 마음에 그린 이미지의 투사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로 남편 직업을 말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냥 낯이 뜨겁고, 한 마디 설명하고 싶은 마음 누르게 된다. "목산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꾼은 아니에요. 그냥 장점도 있고, 장점만큼의 약점도 가진 한 사람이에요."


늦게 목회자 된 남편보다 목회자로 사는 것에 대해 더 복잡하고 민감한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교회 집 딸, 목사의 딸'이라는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이 어릴 적부터 유난했다. 오라리집 아주머니 말씀을 듣다가 확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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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Shalom 2018.10.23 07:43

    고향 한산입니다 '교회 집 딸' . '목사님 딸'.'저 친구는 교회에서 산데! 라고 이야기 했던 사람 중의 하나가 동창인 저 입니다
    하굣길에 저 앞에서 교회로 들어가는 친구의 뒷 모습을 보며 친구와 함께 '제는(저 친구는) 교회에서 산데! 라고 하며 뭔가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이제 제가 '교회집 주인'이 되었고 자녀들이 '교회집 아들' '교회집 딸'들이 되었네요
    태어나보니 교회집 자녀들로 겪었을 일들이 느껴집니다 이 글이야 예전에 읽었지만 갑자기 잠시 글 올립니다 샬롬!

    • BlogIcon larinari 2018.11.02 09:46 신고

      흔적 남겨 주셔서 감사해요. 안 그래도 될 텐데. 저는 왜 그리 목사 딸이라는 정체성을 크게 받아들였을까 싶어요. 목사 딸이라는 무겁고 때로 영예롭기도 했던 이름을 살고, 성찰하는 것이 제 몫의 인생여정인가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러면 샬롬 님께선 한산국민학교, 저랑 동창이란 말씀이신 거죠?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 얼마 전에 건지산 꿈을 꿔서 한산에 한 번 또 가야지 자주 생각해요.




"엄마, 이틀 남았어. 40대를 마지막으로 즐겨. 이틀 후에 50살 되는 거 알지? 50은 반백이야. 백 살의 반이라구" 토요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아들 놈이 기껏 찾아내 떠벌이는 말이다. (굳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 놈아!) 어쩌다 오십이다.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한껏 늙은 얼굴이다. 화장 하려고 거울 앞에 앉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든 민망함이 앞선다. 연세 드신 분들을 만나러 간다면 '어린 것이 버릇 없이 저렇게 주름 자글자글 마음껏 늙어 가지고 다녀!' 하실 것 같고. 젊은이들 만나러 가는 길에는 '어머, 이렇게 연로하신 분이 무슨 연애 강의요?!' 하지 않을까 싶고.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반백의 나이에 부응하여 '오십견' 또한 찾아와 주셨다. 내가 강의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찬양 인도도 잘하는데 딱 하나 등을 못 긁는다. 아, 사실 옷도 잘 못 입고, 머리도 못 묶는다. 오십견 증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와 1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말이 오십견이었다. 일단 무지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운동은 전혀 안 하고, 폐쇄적인 어떤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려니. 어깨 관절 각도가 조금만 커져도 '아야아야아야'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얼마나 엄살 같은지 식구들의 놀림꺼리이다. 


영적 사춘기와 함께 중년 앓이를 남보다 이르게 치룬 덕으로 일찌감치 이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일기장과 블로그를 더듬어 보니 2009년, 2012(click), 2014(click)년 한 번씩 이 말씀을 깊이 품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가대 지휘를 내려 놓으며, 음악치료를 접으며, 무엇보다 삶의 계획의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 묵상한 말씀이다. 오십 고개를 넘어가며 다시 보는 이 말씀에서 '늙음'이 더는 상징이 아니다. 늙음 그 자체이다. 비움, 내려놓음 이런 관념이 아니다. 


10여 년 수영을 하다 그만둔 지 1년이 넘는데, 그 사이 오십견이 왔다. 치료는 운동 밖에 없다는데 그 어떤 운동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재활치료 한다는 마음으로 수영장엘 가자, 싶어 용기를 냈다. 빠르게 왔다갔다 하진 못하겠으니 중급 정도에서 천천히 놀아봐야지, 싶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왼팔 젓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겨우 살살 평영을 할 수 있을 정도. 할머니 한 분이 세월아 네월아 삐뚤삐뚤 자유형을 하다, 걷다 하시는 초급 레인으로 갔다. 나도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한 팔로 되는대로 왔다갔다 했다. 상급 레인에서 접영으로 세차게 물을 가르던, 자유형 40개를 거뜬하게 돌던 내 몸은 없다. 어, 없다.


삼십 고개를 함께 넘었던 친구들이 있다. 삽십 고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나는 함께 가질 못했다. (당시 나의 썸남이었던 종필이 누나들 짐꾼으로 따라갔으니 그의 마음에 ♡담겨♡ 나도 함께 다녀온 걸로 되어 있다. 큭큭) 오십 고개를 넘는데 지리산은 못 가더라도 뭐라도 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밤을 함께 넘었다. 별스럽지도 않게 사는 얘기 살아온 얘기 끝도 없이 나누는데,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 여기까지 잘 왔다! 이다. 20대에 마음이 끝도 없이 요동치던 시절에는 30대가 되면 사는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결혼과 진로가 결정되면 고민이 없을 텐데 고민 없는 삶은 재미라는 게 있을까? 철없는 걱정을 했었다. 허허. 우리의 3,40대를 설명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정황 설명과 억울함에 대한 해명, 견뎌온 자신을 피력할 말이 필요한가. 그저 20년 전 지리산에서 홍천의 리조트로 휙 화살표 하나 그어 '여기까지 잘 왔다'로 해두자.


거실의 선인장이 뜬금없이 봉우리를 맺더니 꽃망울을 터뜨린다. 성탄 장식 옆에 두었더니 저도 대림을 기리겠다는 뜻인지, 주인 엄마의 반백을 축하 하겠다는 뜻인지. 빨간색 꽃망울이 예쁘다. 꽃망울이 예쁘지 막상 꽃을 피우면 신비감도 사라지고 그저 곧 시들어 떨어질 듯한 반백의 오십견 아줌마 같이 보인다. 그래도 이 겨울에 여전히 살아 생명의 숨으로 거실을 채워주니 고맙고 고맙다. 실은 가족들도 몰라주는 오십견 통증으로 외로울 때, 가장 큰 위로를 준 녀석이다. 그리 아까지도 않는 화초였는데. 그래서 더 고맙다. 


이제 하루 남은 거다. 나의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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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1.02 18:04

    다 잘 하는데 딱 하나 등을 못 긁는 신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땜시 이 저녁 실컷 웃고 행복하다♥
    연말연시 머리 무지 복잡 심란했는디~^^

    • BlogIcon larinari 2018.01.05 20:20 신고

      연말연시 복잡한 거 좀 지나갔어?
      내가 널 웃길 수 있다면 뭣이라도 할 것인디. 또 어떻게 웃겨 줄까나? ㅎㅎㅎㅎ

  2. Shiker 2018.01.08 12:17

    사모님, 50대를 같이 맞이한 동년배로 공감합니다. ^^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그리고 저도 오십견 비슷한 증상으로 작년에 좀 고생을 했는데 꾸준히 운동하시면 좀 풀어집니다.

    • BlogIcon larinari 2018.01.09 11:47 신고

      동년배, 목사님! ㅎㅎㅎㅎ 아닌 게 아니라 요 며칠 조금 움직이는 각도가 커졌어요. 운동하며 견디면 지나가리를 믿고!
      감사합니다. ^^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중앙공원의 단풍이 운전을 방해한다. 운전하며 틈틈이 곁눈질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다.  원두가게에 들러서 원두를 사고 서비스로 주는 커피 한 잔을 얻어서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벙개로 만난 친구처럼 들뜨고 설레며, 동시에 호젓하며 쓸쓸했다. 분당의 가을은 예쁘다. 봄도 예쁘고 여름도 예쁘지만 가을은 유난하다. 눈을 돌려 마주치는 어디든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봄은 가까이 가서 봐야 예쁘고, 가을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


지난 주 어느 날, 역시나 단풍으로 예쁜 동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얻어 들은 명언이다. 명언의 발화자 권사님의 부연설명은 '가을 단풍이란 실은 푸석푸석하고 물기 없는 것이 가까이 보면 고울 것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렇지! 흙모자를 쓰고(이거, 망원동 사는 어느 시인의 표현이다.) 올라온 새싹과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던, 연한 새잎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던 봄날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은 버석버석하고 스러져가는 아름다움이다. 바람 살짝 불면 후루룩 떨어져 버리는 힘 없는 잎들의 향연이다. 붙들고 싶으나 더는 붙들 힘이 없는, 고갈된 생명의 처연함이다. 가까이서 찍은 내 얼굴이 보기 싫은 느낌은 운전하고 지나치다 본 숲에 들어섰을 때의 쓸쓸함이다. 나좀 봐달라는 듯, 지는 해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존재감을 발하는 벤치가 눈길을 끈다.  




벤치를 주인공 삼아 사진 여러 장을 찍은 뒤에 화단의 낮은 담을 넘어 가서 앉기로 했다. 주름진 얼굴, 오십견이 와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깨, 물오르는 생명력 같은 건 많이 잃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가 앉았다. 가서 앉자, 앉다, 앉아 있다, 이런 말을 되뇌이다 구상 시인의 시에 이르렀다 . 이 한 마디 알아듣기 위해 인생의 봄, 여름을 달려온 것일까. 푸석푸석한 생의 가을이어서, 알아들어지는 것이 있는 가을이어서 다행이다.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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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지니 2017.11.14 15:56

    사진 우왕굳!! 가을 한 번 진하게 예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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