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주일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에 구역모임을 위해 커피 도구와 기타를 챙겨 일찍 집을 나섰다. 같은 자리를 오래 지키다 보면 '감'이 생긴다. 오늘은 결석과 지각이 많을 예정이야, 라고 감이 말했다. 구역모임 장소가 제대로 지하실, 컴컴한 지하 1층이다. 모임 공간이 부족하여 교회 주변의 여러 공간을 주일마다 대여하는데, 우리들의 둥지는 가톨릭 관련 건물이다. 깜깜한 지하 1층의 벙커 같은, 성모님(상)이 계신 곳이다. 약간 으스스하고 습한​ 기운을 커피 향으로 맞서보려 한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네, 할렐루야 아~아멘. 노래를 불러서 계단 위쪽까지 커피 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다. 요새 예수 향기는 커피 향기 아니던가?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 참 좋았다. 성모님상 때문인지, 성화 때문인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간의 을씨년스러움이 내 안의 충만함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자. 구역원 단톡에 저 사진을 띄우며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썼다. 오는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오지 않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뜻은 없었다. 진심을 담아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 마음으로 이미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주일, 남편은 교회에 사임 인사를 했다. 벌써 5년이다. 먹고 살 일이 아니라, 믿고 살 일이 캄캄했던 5년 전의 나날이 떠오른다. 먹고 살 걱정보다 믿고 살 걱정에 영혼이 바싹 말라서 슬쩍 밟아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목회 하지 마라, 당신도 죽고 나도 죽는다. 이런 말을 했었다. 아무 대책없이 하남시에 집만 떡허니 구해놓은 상태로 20여 년 다닌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 농담처럼 '*** 목사님 교회에 부교역자로 간다면 나는 동의함!' 했던 얘기가 씨가 되었는지 *** 목사님의 교회에 극적으로 오게 되었다. 부임하여 들은 충격적인 몇 마디는 아직도 내 마음에 살아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결혼식, 장례식을 집도하고 목사님이 따로 감사 사례를 받지 않습니다. 받을 경우 바로 사임입니다'라고 신임 교역자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다는 얘기. 또 하나는 목회자 부부 송년회에서 담임 목사님의 말씀. '부인들 수요예배 나오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이들 저녁 챙겨주고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당신들의 역할입니다.' 설교 중 고난주간 특새에 대해 하신 말씀. '교회로부터 20분 이상 걸리는 곳에서 특새 나오려 하지 마십시오. 새벽에 먼 길 운전하며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믿음을 보여주는 척도가 아닙니다. 있는 곳에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 전 한두 해, 죽네 사네 하면서 바싹바싹 말라갔던 내 마음의 숙제를 다 해결해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한 해 두 해가 흘러 다섯 해가 되었다. 그사이 내 주님과 나 사이 오간 수많은 밀어를 공개할 수는 없다. 그분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나를 위로하셨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아픈 길로 이끄셨는지 차마 말할 수 없다. 그 디테일함은 여러분들의 귀에는 유치함일 테니 말이다. 위로도 감동도 배움도, 반면 배움도 '많이 무웃따 아이가' 하는 순간이 왔다. 그 시점, 잠시의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원하고 나서서 구역장을 맡게 되었다.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잔이어서 아버지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을 마시던 올해는 지난 5년, 아니 남편이 사역자가 되면서 패키지로 묶여 살아야했던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상처 받았고 고난 당했다며 괜스레 당당했었다. 그 '근당감(근거 없는 당당한 자신감?)'이 어느 새 근월감(근거 없는 우월감)이 되었다는 것을 직면해야 했다. 아팠고, 부끄러웠지만 1년의 시간을 지내며 알 수 없는 훈기가 마음을 채우고 있다. 상대에게 알아달라고 우기는 진정성이란 이미 진정성이 아님을, 진정한 진정성은 이미 상대에게 가 닿아있는 것임을 배웠다.





소중한 것을 배우는 교실은 주방이었다. 자발적인 시작이 아니었으나 이미 주어진 일, 타발이고 자발이고 할 수 없다. 일단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한 주 한 주 미션 클리어 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열되었던 마음,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내 마음은 그랬다.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만드는 일이기에 말이다. 현학적 사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눈물 흘리며 양파를 썰고,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고기를 볶고, 내 몸집보다 큰 국솥을 씻으면서 서로의 몸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저 풍성하고 아름다운 음식들! 맛있게 먹고 진심으로 서로 감사하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단톡에 올려 낄낄거리고, 많은 짐 진 자에게 특별히 감사하고, 간을 본다는 명목으로 음식을 마구 줏어 먹고, 농담하고 놀리고 낄낄거리고. 이런 시간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꿈꾼다 한들, 운명 같은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한다 한들, 어떤 경우에도 나와 같은 너를 가질 수는 없다. 내 맘 같은 당신은 없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어서 서로에게 고통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 실존인 것 같으나,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 도마 위에서 같은 칼질로 만날 때, 우리 사이 많은 차이가 지워지고 잠시 하나가 된다. 놀라운 발견이고 경험이었다. 주방에서 배웠다. 구역 주방봉사에서 나이가 나보다 많고 적은 사모님들에게 배웠다.  





오늘 마지막 주방봉사를 했다. 지난 주일 남편이 이미 사임인사를 했기 때문에 봉사하러 나가는 게 조금 민망스럽기도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가고 싶었다. 5년의 마무리를 주방에서 하고 싶었다. 남모르는 먹먹함으로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는 오징어볶음과 감자조림 간을 보다 기분이 좋아졌고 맛있게 만들어내고 맛있게 먹고 으쌰으쌰 설거지를 하고 잘 마쳤다. 다시 마음이 먹먹해졌지만.....

5년 전 가을. 스물 여섯 때부터 다녔던, 남편을 만났고 두 아이를 낳았던, 평신도에서 목회자가 되었던, 고향이라는 말도 가벼운 교회를 사임하고 무턱대고 하남 서해 아파트 계약을 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뺨을 스쳤던 가을 바람이 기억날 듯 하다. 그때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시간, 나를 기다리던 5년은 이러하였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상상을 넘어선다. 상상보다 아름답고, 상상치 못한 아픔이 있기에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나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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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15 09:22

    잘했어~~~토닥토닥^^

    • BlogIcon larinari 2016.10.15 21:55 신고

      꽃다발을 왜 그렇게 큰 걸 준비해서 땀을 뻘뻘 흘리고 그랴~ ㅎㅎㅎㅎㅎ 고마워!!!!

  2. mary 2016.10.15 11:44

    음~~~ 핸드드립 커피향.. 지난 5년중에 가장 지난한 마지막 해를 이제 마치는건가요.
    애 많이 쓰셨슴다 모님, 몸도 마음도. 새로운 앞날이 또 어찌 펼쳐질지 맘이 복잡하겠지만 난, 일단 응원의 박수를 보내리다.

    • BlogIcon larinari 2016.10.15 21:59 신고

      마지막 한 해가 없었음 싱거울 뻔 했어요. ㅎㅎㅎ 뜨거운 맛, 짠맛 보면서 사람이 되어가는 가봐요. 10년 전이나 이제나 한결 같이 들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하고 든든해유~^^

  3. 2016.10.16 17:5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10.16 23:04 신고

      뜬금 있어. ㅎㅎㅎ 어느 교회 갈까 하는데 채윤이 아빠가 갑자기 모*교회 가재. ^^ 정말 한 번 갈지도...
      며칠 전에 운전하다 문득 그 찬양이 입에서 나오는 거야. 전에는 거의 모든 찬송가 4절까지 다 외웠는데 이젠 웬만하면 다 가물가물. ㅜㅜ 차가 막히기에 검색해서 막 불렀어. '그 갈릴리 오신 이' 이 부분에 꽂힌 것 같아. 갈릴리, 우리 인생 가운데 들어오신 그분!
      그리고 내 평생 언제 어디서 불러도 너의 노래가 되는 곡이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 주신 것 감사'인 거 알어? ^^




3학기 째 듣고 있는 '영성과 철학상담'이라는 강의 중 있었던 일이다. 강의와 집단상담으로 진행되는데 집단상담 첫날이었다. '한계상황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K.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으로 배우고 나누는데 내게는 정말 흥미진진한 내용이었다. 집단상담에서 어느 분이 자신이 경험한 한계상황을 얘기했다. 믿고 존경했던 성직자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내용. 금액은 본인이 30년을 벌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란다. 그분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희망이 있을 때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는 내용이었다. 그 성직자가 마음을 돌이켜 나타나줄 것이다, 법이 나를 보호해줄 것이다, 이런 희망이 온전히 무너진 순간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는 얘기. 


분위기가 술렁술렁했다. 어머, 어머, 세상에! 내 옆에 옆에 앉은 나이든 여자분이 내 옆에 앉은 분에게 뭐라뭐라 끊임없이 속삭였다. 속삭임인지 투덜거림인지. 내 자리에선 그분의 눈썹이 보였는데 기본적으로 3단 정도 꺾여 있는, 짙고 강한 눈썹이었다. 얼핏 '신부, 목사, 목사, 신부' 하는 것으로 들렸다. 아, 이 그룹의 멤버는 주로 가톨릭 신자들이다. 강사가 철학과 교수이며 예수회 신부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삼단 눈썹이 자꾸 거슬렸다. 자신의 한계 상황을 고백했던 분의 말이 끝나고 '한계상황과 실존'에 대해 한 말씀을 기다리며 인도하는 신부님을 고양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부님 말씀 '아니, 당사자를 찾아가든지, 도망가서 없으면 주교님 찾아가야죠. 가서 신부 못하게 만들어야죠.' 라고 말했다. 한계 상황녀께서 주저주저 말씀하셨다. '아..... 그..... 저는 개신교 신자라..... 신부님이 아니라 모.... 목사님이.....'  그러자 바로 삼단 눈썹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신부님은 그럴 리가 없어. 신부님이 무슨 돈이 필요하다고 사기를 쳐' 짙은 삼단 눈썹이 씰룩씰룩 요동을 쳤다. 건너편에 앉은 남자분은 '나는 딱 듣자마자 목산줄 알았는데요' 한다. 여기저기 그럴 줄 알았다, 그럴 리 없다, 가 릴레이로 터져 나왔다. 


나는 혼자 얼굴이 벌개지고,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부여잡고 소외감도 아닌 분노도 아닌 야릇한 감정에 휩싸였다. 삼단 눈썹녀가 눈썹으로 말하는 그 소리들이 견딜 수 없었다. 엄마, 아니 남편이 보고싶고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이후 시간은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쿵쾅쿵쾅 내 심장이 뛰는 소리만 들렸다. 마지막 발언자는 예수회 수사님이었다. '제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한계상황은 역시 예수회 입회 직전이었지요'라는 말로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단다. 운이 좋게도(라고 표현했다) 관련 전공으로 대학엘 가고, 쉽게 취업을 했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을 돈 받고 하게 되다니, 행복할 줄 알았단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하는데 하나도 행복하지가 않더란다. 오히려 공허함이 차올랐다고 했다. 가장 공허했던 순간은 첫월급을 받던 날이었다고. 이게 뭐지, 이게 뭐지 하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퇴근하려고 일어서다 건너편에 앉아 일하는 부장님인지 팀장님인지의 뒷모습을 주시하게 되었단다. 그 모습이 10년, 20년 뒤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정신이 확들었다고 했다. 


아, 이 공허함을 어디서 채움받을 수 있을까? 하느님께 가면 될까? 피정을 다니곤 했단다. 곡절 끝에 '다행히 아직 결혼도 안했으니 하느님께로 가자' 하고 예수회에 입회를 하고 사제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그런데 이것은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었다며, 여기에도 행복은 없다며, 한계상황은 늘 새로움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이끌어 가신다는 희망 때문에 행복하다고 훈훈하게 마무리 하였다. 몰입해서 듣다가 갑작스레 튀어나온 비약적 희망에 살짝 당혹스러웠다. 그 찰나, 강사 신부님께서 '희망에 대한 회의'라는 말로 뼈 있는 코멘트 하셔서 좋았다.


2주가 다 되어가는 일이다. 내내 이 일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본의 아니게 (몰래 파견된) 개신교 대표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낯이 뜨겁도록 (몰래 혼자서) 모욕감을 느껴다. 내가 목사도 아니고, 사기 친 목사는 더더욱 아닌데 말이다. 동일시 되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목사와 신부,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마지막 발언했던 수사님의 얘기를 들으며 '소명 확인, 실존적 고민' 이런 단어가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다. 기도해보니 확신이 들었다!' 이런 게 아니라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진리는 어디에 있을까, 진리를 찾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구도자의 몸부림 말이다. 


나도 사기꾼 목사들이 무지 싫다. 내가 몸담은 개신교, 개신교의 목회자들에 대한 환멸로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런데 사실 나는 목회자의 아내이며, 목회자의 딸이고 목회자의 누나이다. 목회자와 나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목사들을 보며 최전선에 서서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 실은 추락하는 그들은 나의 교회이며 나 자신이다. 돌을 던지는 측이 아니라 돌을 맞는 자리가 내 자리인 것 같아 혼란스럽다. 이것이 나의 고통스런 실존이다.


남의 집 밥이고 김치라 색다르게 보일 뿐, 우리집 밥상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다. 개신교나 가톨릭이나 좋은 목사님은 좋고 이상한 목사님은 이상하고, 신부님들도 그럴 것이다. 다만 그날 그 순간 조용조용 와글와글 '신부님이 그럴 리 없다'는 이견 없는 여론은 참 부러웠다. 그나마 신부님들은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음일까. 구도자로서 두렵고 떨림으로 여전히 찾고 구하는 태도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열심히 전하다 자신이 예수님인 줄 착각하여 '아하,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어! 암만. 암만. 그렇고 말고!' 자아팽창과 어리석은 자기확신에 빠진 목회자와 성도들과 교회가 함께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신부든 목사든 길을 잃은 자가 길을 안내할 수는 없다. 높고 높으신 하나님, God을 찬양하기 전에 god의 이 노래를 함께 불러볼 일이다. 진리를 찾고 따르는 길은 두려움과 떨림, 역설로 가득찬 것 아닌가. 길찾기의 시작은 현위치 설정이니 지오디의 노래 <길>, 이 가사 만큼만이라도 정직하게 우리의 실존을 마주하려 한다면....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오늘도 난 걸어가고 있네


사람들은 길이 다 정해져 있는지 아니면 자기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또 걸어가고 있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무엇이 내게 정말 기쁨을 주는지 돈 명예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오 아직도 답을 내릴 수 없네


자신 있게 나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돌아보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고

우 아직도 나는 자신이 없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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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0.11 16:1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10.12 07:21 신고

      처음으로 댓글 달아주신 글과 내용이 그대로 기억납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조금은 '섬' 같은 느낌으로 쓸쓸해지곤 했는데, 공감해주시는 말씀에 위로 많이 받았구요. ^^
      저 자신 목사도 신부도 아니지만 구도자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길이겠구나 싶거든요. 개독교라 불리는 모욕을 꿀먹은 벙어리로 감내하려는 모든 분들은 함께 이 길 함께 걷는 동반 순례자이지 싶어요. 이 길 끝에서 뵈올 주님을 그리면서요.
      진심으로 감사 드려요!




나는 오늘 아주 많은 일을 했다. 밤 10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려고 종로 5가를 걷다 문득 깨달았다. 불금이구나! 인도를 걷는 사람 중에 제정상(채윤이적 표현. 제정신과 정상을 콜라보하여 의미 그 이상의 의미를 불러일으키는 반지성적 언어표현 말이다. )인 분이 거의 없었고, 동문회를 마쳤는지 인도에 동그랗게 서서 비틀비틀 교가를 불러대는 아저씨들을 보고 확신했다. 불금이야. 불금! 종로와 광화문, 신촌과 홍대를 지나는 동안 막히는 도로, 비틀거리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며 확신은 광신이 되었다. 불금, 불금입니다. 제게도 화끈한 불금을 내려 주~우쒸옵소서! 같은 시간 10시 쯤, 용인에서 차로 출발한 남편이 서강대교를 지날 즈음 나는 합정동에서 하차했다. 도착 시간이 딱 맞아 골목에서 남편 차에 픽업당했다. 오빠, 달려! 이대로 달리자구! 나도 이 남자와 함께 불금을 보내고 싶...... 지만 하루 종일 심방을 하고 들어온 남편은 빨리 자고 내일 새벽기도 나가야 하는 것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은 것 같다. 그래, 더 이상 이런 걸로 삐치진 않기로 했다. 남편도, 꼬치너 채윤이도, 정신줄을 놨다 잡았다 하는 사춘기 현승이도 잠든 밤. 사실 내가 바라던 불금이다. 나는 오늘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방식의 불금을 보낼 것이다.


그러자 나는 오늘 갑자기 풀타임 근무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금요일 밤에는 '앗싸, 내일 늦잠!' 하는 마음으로 자정을 넘기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싸이 클럽에 밀린 글도 쓰고, 댓글 놀이도 하고, 좋은 글도 읽고..... 아, 컴퓨터 책상과 옷걸이 하나로 꽉 찼던, 하남 그 좁은 빌라의 벙커 같았던 방! 그것이 나의 불타는 금요일이었다. (아, 물론 잠탱이 남편은 토요일의 늦잠을 기대하며..... 이미 잠들어 있었다) 채윤이는 아기였고 우리 셋은 행복했고, 행복했던 어느 날 기쁨이라는 현승이가 생겼고, 우리 넷은 행복했다. 풀타임의 직장맘 생활이 어렵지 않았던 것은 초기에는 우리 엄마가, 엄마의 허리가 무너져내린 후에는 (시)아버님께서 채윤이를 돌봐주셨기 때문이었고, 나는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도 생소했던 시절, 풀타임 음악치료사로 일하던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다니! 이게 가능하다니! 그 감동의 회사 식당을 떠올리다..... 나는 오늘 (급기야) 내가 좋아하는 일과 돈에 관한 개인신화적인 고찰을 하기에 이르른다.


이번 한 주는 조금 유난한 일주일이었다. 나는 오늘 이 시간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난 며칠을 돌아본다. 일단 어제 목요일에 구몬 선생님들에게 미취학 아동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한 강의를 했다.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적은 있지만 이렇듯 명확하게 주제를 전달받은 일은 없었다. 말하자면 아이들과 말이 안 통하고, 돌발행동에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겠으니, 또 학부모 상담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으니, 노하우를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강의에 참고하라며 보내온 수업 동영상을 보다가는, 돕고 싶은 오지랖 에너지가 충천했다. 그리하여 몹시 힘들었지만 행복한 힘듦을 통해 강의를 준비했고, 아..... 쫌 (자랑인데) 강의를 잘한 것 같다. 마치고 오후에 담당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수강하신 선생님들의 뜨거운(!!^^) 반응을 전하시며 오히려 본인이 많이 배우고 감동 받았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나 뭐라나. (먼산) 중간에서 나를 소개한 친구에게도 또 전화가 왔다. "신실아, 너 오늘 히트였다며? 바로 전화 왔더라.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한 시간을 너무 알차게 준비했는데 강사료가 적다고 너무 미안하대. 그래서 내가 괜찮다고 했어. 내 친구가 나한테 빚진 것이 있으니 괜찮다고. 너는 이런 일이 맞나봐. 그치? 호호호"


이 친구가 말하는 빚이란 이것이다. 한 2년 쯤 전의 일이다. 대학 동창인 이 친구는 전공을 가장 잘 살린 친구 중 하나이다.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딸 수 있는 어린이집 원장 자격이 난무하는 보육 생태계에서 전공자의 자부심으로 제대로 어린이집을 운영하여 성공했고, 정치력이 아니라 실력을 인정받아 어린이집 연합회 회장을 했고, 나중엔 어린이집 평가인증(이라는 국가 차원의 인증 시스템)을 맡아 평가하는 엄청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이다. 가끔 대학 보육과에서 겸임교수 뽑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내게 연결시켜주고 싶어 했었다. 한 2년 전 쯤에는 정말 괜찮은 시립 어린이집 원장 자리가 났는데 대학 위탁 운영이라서 더 메리트가 있었다. 이 친구가 그 자리에 나를 추천했고, 친구의 덕망 덕에 내가 오케이 하면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알고 보니 그 자리는 그 바닥에선 치열한 자리, 쉽게 얻을 수 없는 왕좌였다. 그런 사정은 몰랐지만 일단 오케이를 했었다. 드디어 경제적 안정이란 걸 누릴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 나 혼자서 찾은 이 시대 교회의 답이라 여겼던 목회자의 자비량 목회, 남편에게 그 기회를 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국 한 여름 밤의 꿈!이 되었다. 밥이 다 된 그 자리에 셀프로 재를 뿌리고 도망쳐 나왔다. '저, 이거 못하겠어요' 하고 나와버린 것이다. 진짜, 아주 많이 부끄러웠다. 바보같은 나를 확인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다른 선택은 없었으나.... 진실을 고백하자면 이렇다. 그 자리로 가야할 명확한 이유가 백 개인데 내키지 않는 이유 서너 개. 그 서너 개조차도 다 허접했다. 그 중 더욱 설득력 없는 이유는 이런 것. 오래 준비했던 에니어그램 2단계 강의를 론칭하는 날과 어린이집 원장이 되는 중요한 절차가 딱 맞물려 있었다. 수강 인원이 몇 명이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폐강이 될 수도 있었던 그 2단계 첫 강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직원이 30여 명인 공립 어린이집 원장 자리를 거절한 이유치고는 허접한 줄 안다. 당시 여기저기서 '미쳤다'는 논평은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 이 얘긴 패쓰.

친구가 말하는 빚이란 이것이다. 결정이 다된 상태에서 갑자기 뒤집어진 탓에 난처해진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중간에 끼인 친구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친구는 그 때문에 내가 (강사료도 적은 이) 강의를 수락한 줄 알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다. 내가 강의를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이유는 단 하나이다. '내가 부끄럼 없이 말할 수 있고, 말하기 좋아하는 주제인가' 이에 부합하는가. 부합한다면 새로이 강의안을 만들어야 하는 지난한 과정도 감수할 수 있다.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강의로 얻어질 유익이 커도 (속으로 피를 흘릴지언정) 단칼에 거절하려고 한다. 헌데 소통, 그것도 유아들과의 소통이라니 내 전공에 부합할 뿐 아니라 (감히)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고, 관심 주제이다. 때문에 강의 준비에 정말 많은 에너지를 쏟았지만, 강사료가 적은 줄도 알고 있었지만, 화상으로 영어수업하는 선생님들이라는 특수한 대상이라 다시 써먹을 곳도 없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많은 시간을 들여 고심하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결과도 크게는 상관없다, 고 생각했는데 좋았다는 피드백에 급 기분이 업되었다. 내가 좋았고, 들은 사람이 좋았다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나다움' 관한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이 강의를 마친 날, 나는 이번 가을 에니어그램 세미나 1단계, 2단계, 심화과정을 모두 폐강하기로 했다. 수강인원 모집이 잘 되지 않았다. 이런 저런 방식으로 더욱 애를 쓸수도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에니어그램 강의는 애써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아하는 강의이지만 평안한 마음으로 폐강을 결정했다. 신청 링크를 막자마자 문의 전화 두 통이 와서 '이건 뭐지?' 싶었지만 그래도 폐강이다. 전 같으면 '페강'은 곧 강사가 '폐인'이라는 뜻이야! 하면서 실패감에 빠졌을텐데. 겉으로는 쿨하게 폐강하되 내 탓은 아니라는 핑계를 백만 개 짜냈을 텐데. 기쁘게 폐강한다. (셀프 토닥토닥) 강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적인 무엇을 이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것이 관건이기까.

라고 간지나게 글을 맺고 싶었지만. 나는 사실 이번 주에 늘 짓는 죄를 반복해서 지었다. 죄목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것'이다. 강의 준비가 힘들지만 깊은 차원에서 즐겁고. 즐겁지만 또 인생 쉽게 살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지점에서 줄타기 하는 중에 채윤이의 어텍이 들어왔다. 청소년 백수 채윤이가 제 방에서 처벅처벅 걸어 나와서는 '엄마, 오늘 뭐해?' 이러면 바로 뚜껑이 열렸다. '엄마 강의 준비 하는 거 안 보여? @%$$&^#@#$!@#%#^$' 그런 몇 번의 질문과 열폭이 반복되다 급기야 '뷀에에엑!!!!!! 엄마가 집에 있다고 노는 걸로 보여? 출근했다고 생각해. 엄마는 집에 있다고 노는 게 아니야. 강의 준비도 해야하고, 써야할 글도 있어. (확인사살의 의미로 다시 한 번) 뷀~~~~~~에에엑!' 청소년 백수생활 9개월에 정말 정말 심심해진 채윤이와 여유있게 수다를 떨거나 놀아줄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 교회 주방봉사를 마치고 저녁 강의 들으러 가기 전에 채윤이와 데이트를 했다. 다음 주 꽃친 제주 여행을 위한 쇼핑을 하고 맛있는 것도 잔뜩, 만천 원어치나 사가지고 집에 와서 수다 떨며 먹었다. 며칠 우울했던 채윤이가 급 '조증' 증상을 보인다. 내 죄다. 내 죄다. 내 죄값이다! 나답게 살기는 개뿔, 엄마 노릇이나 제대로 하시지. 라며 나는 오늘 불금의 기나긴 일기를 쌩뚱맞은 결론으로 맺으려고 했는데.

아,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내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가 1000이 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달 <나자연> 칼럼을 꽃친의 예지 쌤 결혼식을 모티브로 썼는데. 그른데.... 어제 올렸던 그 글을 예지 쌤이 페북으로 공유하자 오늘(그러니까 사실 어제 23일) 블로그 일일 방문자 수가 1000을 넘었다. 블로그 오픈 이후 최다 방문자 수가 아닐까싶다. 숫자의 크기가 대수는 아니지만(아, 1000은 大數구나. 그렇구나) 암튼, 놀라운 일이다. 나는 오늘 이렇듯 참말로 뜨거운 불타는 금요일을 혼자 보내고 있다. 나는 오늘 참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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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호할망 2016.09.24 19:46

    1000인 중 1인 인사 드립니다 하하..
    사모님 블로그 들락거리며 제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는.. 저조차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계속 진행중^^)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아마 저와 같은 족속 많을 거라 감히 확언합니다. 그니 더 힘내세요!!

    • BlogIcon larinari 2016.09.24 21:42 신고

      1000인의 방문자 수보다 더 반갑고 소중한 호호님, 호호님의 댓글입니다! ^^ 건강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댓글을 읽자니 발그레 생기 넘치는 모습이 그려지네요. 이 좋은 가을볕과 바람 풍성히 누리세요!



자타가 공인하는 필기의 여왕이다. 정직하게 돌아보니 '여왕'이 다 뭐야. 여왕 그 이상, 거의 필기 중독에 가깝다. 이번 학기에는 두 개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어디서? 무림에서) 노트북은 머스트해브아이템이다. 강의 한 자도 빼놓지 않고 받아 쳐와서는 제목 달고, 글자 색깔 바꿔서 강조하고, 나중에 글이나 강의에 써먹을 것 따로 카피해서 모으는 게 일이다. 강박적으로 필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여름 초입에 들었던 어느 강의에서는 뒤에 앉아셨던 수녀님이 몇 주를 지켜보다 어렵게 말씀하셨다. '저..... 정말 죄송한데..... 필기하시는 거 이메일로 좀 주실 수 없어요. 나도 너무 너무 좋아서 다 받아적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요' 얼씨구나 좋다고 보내드렸다. (내 중독 아시는 당신께 내 모든 노트 드려요~)


이번 주에는 유아들에게 영어 가르치는 구몬 선생님들에게 강의하는 일이 있다. 강의 주제는 '수업 중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대처하는 방법' 캬캬. 유아들이 수업 중에 하는 돌발행동이 너무 많단다. 문제행동에 대처하는 방법을 강의해달라고 하였다. (유아들의 행동 중 돌발행동이 아닌 것이 어딨어요?그 맛에 유아교사 하는 건데.ㅎㅎㅎㅎ) 아무튼 이 강의 준비하려고 행동주의에 대해 정리하다 대학원 시절 노트를 꺼내 보았다. 완전 셀프감탄! 감동! 이렇게 깔끔하고 정성스러운 노트정리라니. (노출본능 발동. 사진 찍어, 찍어, 찍어. 만방에 알리지 않을 수 없따!) 강의 시간에는 연습장에 거의 속기수준으로 받아 적고 집에 와서 다시 저렇게 노트에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그 자체가 복습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렇게 늘 우수한 성적이었군요) 대학원 시절 응용행동분석, 즉 행동주의에 관한 한 달달 외우고 섭렵했었다. 내가 배운 음악치료가 행동주의를 이론적 바탕으로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내 몸에 착착 붙는 이론이었다.


인간을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 행동주의의 인간관이다. 가장 고전적인 실험이 파블로프의 개 실험 아닌가. (개실험! ㅎㅎ)  쉽게 말하면 원하는 행동을 했을 때 우쭈쭈쭈로 강화시키고, 원치 않는 행동을 감소시키는 전략을 찾는 것이다. 대학원 시절이나 음악치료사 초년병 시절, 회의 없이 잘 활용하였다.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아주 잘 먹히는 상담 전략이기도 하다. 헌데, 임상이 쌓여갈수록 기본적인 철학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자극과 행동, 그 이상의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인식이 마음에 커지면서 행동주의식 접근의 음악치료가 재미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기술로 쓸지언정 철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세 살 어린 아이라도, 중한 장애를 가진 아이라도 나와 다를 것 없는 무엇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경험 자체로 배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학습된 것이고 후속 자극의 체계적인 조작을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게 되었다. 음악치료에 대한 애정이 식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번 강의요청을 받고 시간을 두고 숙고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는 행동주의식 강화, 즉각적인 강화가 필요하고 효과적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대학원 시절 치료 혹독하리만큼  훈련받은 것이 지금 내게 얼마나 큰 자산이 되고 있는가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아이들의 일상 자체인 돌발행동에 즉각적으로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것도 역시 그 시절 실습 때마다 받은 수퍼바이저의 지적질 덕분이다. 강의에서 해야할 얘기가 이것이구나 싶어 그 시절 노트를 꺼냈다가 '추억은 방울방울' 놀이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필기 중독자인 나를 다시 발견하고, 정말 하고싶은 공부를 만나서 난생 처음 공부의 맛을 알았던 순간들, 내 인생 가장 잊지 못할 대학원 합격을 확인해주던 전화 통화. '이것이 사는 것의 전부일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정말 좋아하는 일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그 간절함을 포기하지 않을 때 전에 없던 학과가 생기고, 상상하지 못했던 길에 들어선다는 것을 확인했던 시절.


그러고 보니 버릴 것이 없다. 깨알같이 필기하고 외우고 발표하고 치료에 적용했던 것이지만 이제는 다 지나가버린 것이라 여겼던 것들. 저급한 인간관이라 하찮게 여겼던 행동주의 심리학이 새롭게 다가오고 당장 이번 주 강의의 뼈대를 잡아주니 말이다. 그나저나 추억은 방울방울 놀이에 블로그 놀이까지, 오전을 다 보냈으니 강의 준비는 언제 하나? 에잇, 괜찮다. 노는 시간이 꼭 버리는 시간은 아니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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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혜 2016.09.20 16:47

    이 강의 몇 시간짜리예요? ^^ 저희 유치부에도 부르고싶네요. ㅎㅎㅎ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어린이 성가대 지휘 하던 젊은 날이 있었다. 주일 아침 6시 30분에 집에서 나가곤 했다. 심지어 전날 토요일에는 하루 종일 청년부 주보를 만들고 저녁에 청년부 예배 드리고 귀가 시간은 밤 11시 이후. 현승이 서너 살 즈음엔 1부 성가대 지휘를 했는데 기저귀 가방 챙겨 두 아이 데리고 아침 7시에 출근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 시절에 대한 보상인지, 반대급부인지 한 동안 이보다 여유로울 수 없는 주일 오전을 보냈다. 강의가 있는 주일이 아니라면 바쁠 것 없는, 할 일 없는 안식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대한 반대급부인지, 올해는 주일 아침이 다시 분주해졌다. 7시 전에 일어나 성경공부 교안을 점검을 하고 기타 메고 핸드드립 세트 들고 8시 넘으면 출근 한다. 구역모임이다. 나 구역장이다. 다들 한 믿음, 한 신념, 한 영빨 하시는 목회자 부인들의 구역모임이다.

 

내가 구역장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일단 사모님들 중에 나는 바쁜 축에 드는 사람이었고, 주일에는 다른 교회 청년부 강의 가는 날이 많았으니까. 어쩌다 자원해서 구역장을 하게 되었다. 이냐시오 성인은 마음의 움직임을 황폐함(desolation)/위안(consolation)으로 구별하며 자신의 마음 상태를 깨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다. 황폐함의 상태는 그 자체로 합당할 수 있지만(불의를 보고 분노하거나, 개인적인 실패로 낙담하거나....) 그런 상태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삼가도록 권한다. 구역장을 하겠다고 거의 충동적으로 결정하고 발설했을 때 내 마음은 황폐함이었다. 이냐시오 님의 말씀을 기억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한 결정으로 엄청난 심적 후폭풍을 맞았다. 다행히 폭풍 속에서 살아남았다.

 

폭풍이 지나고 고요해지자 꿈이 말을 걸어왔다. 내 안에 계신 '사랑'이라 이름하는 그분이 꿈으로 톡을 보내오셨다고 하자. 교회 밖에서 강의하고 상담할 때 사모님들을 만나면 일단 손부터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는 이런 저런 그럴 듯한 이유를 (나 자신에게) 대면서 '사모'로 만나는 만남을 피해왔다. 그렇다고 개인적 만남조차 피하지는 않았다. 사모 페르소나가 유연한 사모님들과는 나이 불문하고 마음 통하는 참 좋은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주중에 있는 구역모임에는 시간이 안 되어 나갈 수도 없었지만 일단 마음을 내보내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100개는 있었고, 그 이유는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꿈이 말했다. 시간이 지나며 문제의 핵심은 '나는 당신들과 다르다' 하고 싶었는 나의 높은 마음이었다는 것을. 내 말을 왜곡하고 내 진정성을 몰라주는 '그들'이 아니라 '나'의 진정성 그 자체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올해 한 번 두 번 구역모임을 진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조금씩 믿음이 있고, 조금씩 상처를 받았고, 조금씩 두려워 자기도 모르게 방어벽을 치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부끄러웠다. '나는 타교회 목사님 사모님들 대상으로 강의하는 여자'라는 자의식으로 내 곁의 동료들보다 우월한 존재라 여겼던 것이 많이 부끄럽다. 함께 구역모임을 하고, 주방봉사를 하고, 양파 까며 눈물을 흘리고, 지쳐 소진한 몸으로 마지막 국솥을 닦으며 알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 나도 사람, 당신도 사람! 우리는 다르지 않은 그러나 고유한 어떤 소중한 각각의 존재라는 것을. 

 

미안하다! 줄 수 있는 것은 커피와 음악 밖에 읎다! ^^ 매주일 구역모임에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고 찬양 한 곡을 위해 기타를 싸들고 간다. 초딩 몸매에 주렁주렁 달린 짐이 자연스럽지는 않아서 괜시리 민망하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모임이 거듭되며 마음을 알아주는 이들이 생긴다. '아, 커피향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네' 이런 반응 참 좋아한다. 좋은 내색은 못하고 콧구멍만 벌렁벌렁. 지난 주일 모임에서는 첫 찬양을 부른 후 '아, 나 이 찬양 좋아하는데' 이런 말로 시작해서 떠오르는 찬양이 한 곡 씩 나오고, 악보 검색해서 바로 단톡에 올리고. 한 곡이 두 곡 되고, 복음성가가 어린이 찬양되고, 어린이 찬양이 찬송가 되어 한 시간 내내 찬양을 했다. 구역 성경공부 패스. 즉석 찬양 집회! 나에게는 꿈이 있었다. 내 또래 음악 좋아하는 교회 오빠 언니들 모아서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끝없이 찬양하는 그런 꿈 말이다. 그 꿈이 비슷하게 실현되었다. 한 가지 아쉽운 것이 있다면 기타를 김종필이 잡았어야 하는데 기타 반주가 느무 촌스러웠다는 것.

 

그렇게 급조된 찬양집회를 마치고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설교 말씀 중 '신앙인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라 하신다. 르완다 내전의 대학살을 추모하는 어느 성당에 써 있다는 글귀를 읽어주셨다. '네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면 너는 나를 죽일 수 없다'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안다면,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허튼 우월감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는 존재임을 안다면. 우리가 서로 눈에 보이는 그 이상의 존재임을 안다면 나는 너를 죽일 수 없다. 그걸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가 함께 살을 부대껴야 하고, 아프고 두려운 속내를 드러내야 하고, 손을 맞잡아야 한다. 너와 내가 동일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은 마음을 열고 몸을 부대끼며 소통할 때이다. 이번 주에도 주방봉사가 있다. 처음엔 막막하고 피하고 싶었던 일로 다가왔는데 어느 새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게 느껴진다. 똑같은 장화를 신고, 같은 앞치마를 하고 척척 일을 해내는 우.리.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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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효정 2016.06.23 01:04

    전체 밑줄쫙쫙이요 모님
    구역장님 화이팅

    • BlogIcon larinari 2016.06.26 17:34 신고

      구역장님 화이팅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 않으니....
      내가 이제 구역장이 다 됐어요.ㅎㅎㅎ

  2. 2016.06.23 10:5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26 17:35 신고

      쎄게 내치는 거에 동의 한 표!
      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내가 품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해서
      품을 수 없다고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해요. ^^
      7월 중순 이후 어느 주일, 콜!

  3. 2016.06.23 12:0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26 17:37 신고

      빙고! ㅎㅎㅎㅎㅎ 그래서 신났지!
      이미 말로도 해버린 얘기라 크게 용기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실은 써놓고도 부담이 되기는 했어.

      다음 번 여행엔 기타 갖고 가? ^^
      가져가서 '내 평생에 가는 순탄하여....' 불러줄게. ㅎㅎㅎㅎ

  4. 2016.06.28 09:00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28 19:42 신고

      정말 의외예요. ^^
      제가 생각할 때 제가 기타를 맨 모습은 작고 초라하기 짝이 없거든요.
      프리랜서 음악치료사로 일하면 한쪽 어깨에 기타,
      한 손에는 키보드, 또 한 손에 악기 가방, 이렇게 장착하고 다녔어요.
      이런 제 모습을 떠올리면 조금 슬프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엄지척이라니! ㅎㅎㅎ 너무 새로운 격려.
      거의 매주 잠깐씩 선물처럼 얼굴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정말. ^^

  5. 2016.07.01 13:0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7.03 13:24 신고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렇죠.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죠.




나.는 오.늘. 내 생애 가장 늙은 몸을 살았다.

(오늘 내 몸은 내 생애 가장 늙은 몸이라고 꽃친의 J아빠가 알려주셨었다.)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오늘 내 생애 가장 늙은 몸, 노구를 하고 스펙타클한 하루를 보냈다.


한때 존경했을 뿐 아니라 젊은 날의 내게 푯대가 되었던 어느 분, 

그러나 이제 존경 대신 연민이며 푯대 대신 반면교사가 되어가는 분의

짧은 글을 읽고 마음이 헤집어진 날이다.

(그분도 생애 가장 연로하신 날 하루를 사시며 고생이 많으신 것이지)

인천의 어느 교회에서 진행하는 3주간의 부모교육 강의 첫날이기도 하다.

몸과 마음이 살짝 너덜거리는 상태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행사 진행을 맡으신 S(멋지게도 여성) 목사님께서 환하게 맞아주셨다.

내 책을 정말 잘 읽으셨으며, 주변에 많이 소개했노라 하셨다.

진심이 전해져왔고, 짧은 인사를 나누고 앉았는데 속에서 불끈 힘이 솟아났다.

너덜너덜해진 마음 예쁘게 박음질 되는 느낌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중간 잠시 쉬는 시간.

한 분이 앞으로 바람같이 나오셔서 코팅된 하트 하나와 쵸콜릿을 두고 가신다.

'인터넷에서 사진을 보고 그렸는데 실물이 더 예쁘다' 하시며

주황색 하트에 그려진 내 얼굴을 건네 주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미리 이런 준비를 다?

가슴이 콩닥거리도록 고마웠는데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위로라든가 격려 같은 것들은 가끔 이렇듯 기습적으로 몰려온다.


강의 마치고 S 목사님의 전도로 내 책을 읽으신 후 

에니어그램 세미나까지 오셨던 사모님과,

그 사모님의 베프 사모님들과 함께 '사모들의 수다수다'에 점심을 곁들였다.

(여기까지도 하루 일기 분량으로 충분)


(여기서부턴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같은 날 저녁 이야기)

꽃친 부모모임이 있는 날이었고,

참 좋아하던 꽃치너 H네가 미국으로 가게 되어 송별모임이 되는 날이었다.

핸드드립 커피를 준비하겠노라고 큰소리 떵떵 쳐놓았었다.

(딴에는) 능수능란하게 핸드드립 세트를 챙기고 커피도 고이 갈아 준비했다.

보람차게도 대표님을 도와 저녁식사를 테이크아웃하고 모임 장소로 갔다.

자자, 이제 저의 핸드드립 커피를 기대하시라구요!

그렇지, 그래야 정신실이지.

드리퍼, 드립서버, 포트, 예쁘게 간 원두...... 어...... 어....... 여....... 여.......

여과지가 없다. 마지막에 챙긴 여과지는 아직 우리집 식탁에 계신 것인가.

여과지는 두고 온 주제에 오전에 했던 강의안 든 파일은 왜 또 가방에 넣어 왔냐고.

그러길래 정신실이라지. 나가서 구해보자!

을지로 입구역. 일단 편의점을 뒤졌다. 여과지를 파는 곳은 없다.

카페에 가서 구걸을 하자. 구걸할 태세를 갖췄으나 핸드드립 카페가 없다.

가까운 다이소를 검색했다. 명동이다. 다녀올 만 하다.

티맵을 켜고 을지로입구 사거리 한복판에서 입 헤 벌리고 서 있기 15분.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가. 이 감각 설정하는데 최소 15분 소요. 

뉴욕도 아니고 파리도 아닌데. ㅠㅠ 아, 저, 저쪽이다.

중국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명동 거리에서 중국 관광객보다 더 어리바리한 표정으로

스마트폰 지도 들여다보며 헤맨다. 겨우 겨우 도착이다! 없다. 다이소가 없다.

지도에 보니 근처에 하모니 마트. 여기라면 있을 거다. 가 보자.

헐, 영성강의 들으러 뻔질나게 다니던 길의 익숙한 마트이다.

부모모임 장소에서 곧장 왔으면 벌써 와서 사고 돌아가서 커피를 내렸을 시간이다.

샀다. 그래도 샀다. 모임 시작 40분이 지났으나 여과지를손에 넣었다.

성취감에 취해 꼭 끌어안고 밖으로 나왔다.

툭툭 차거운게 볼을 때린다. 기쁨의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와 내 볼을 치는구나,

가 아니라 이것은 비. 한 방울 두 방울 굵어진다.

이 상태로 비까지 쫄딱 맞으면 더 극적이겠으나 드라마에는 취미가 없으니.

뛰자! 명동에서 시청 쪽 모임 장소까지 뛴다. 짧은 치마가 말려 올라간다.

숨이 자꾸 멎는다. 레이레이레이레이.... 으르렁으르렁 으르렁 대. 

지나가던 중국인 1, 중국인 2, 중국인 3과 계속 부딪히고 난리다.

(오전에 정장 쫙 빼입고 강의하던 나는 잊자고, 잊어버리자고)

땀인지, 빈지, 눈물인지. 그러나 도오착! 컴백 꽃친 부모모임.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듯, 명동 거리 중국인들은 본 적도 없다는 듯

의연한 태도로 커피를 내렸다. 


여과지 대신 강의안을 들고 간 나를 탓하지 않는다.

5분 거리를 25분 돌아가며 명동 바닥을 헤맨 거 속상하지도 않다.

이런 일 한 두 번도 아니고. 

게다가 오늘은 내 생애 가장 늙은 몸과 정신으로 산 날 아닌가.

내 생애 가장 늙은 몸과 정신으로 이 정도면 잘 살았다.


그나저나 주황색 내 얼굴, 적당히 낯설고도 친근하여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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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5 23:06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18 09:34 신고

      물론 자랑이쥐!ㅎㅎㅎ
      예쁘게 박음질 되는 그 순간도 실은 아픔인 거 알죠? ^^
      그 아픔은 반드시 견뎌내야 예쁘게 매만져지는 거니까.

  2. BlogIcon hangang17 2016.06.16 12:29

    내 남은 생애 가장 젊은 날 이기도 하지요^^ 치열하게 사시는 모습 뵈면서 저도 그리 살고자 구부정한 등허리를 곧추 세워봅니다^^ 주님께 많은 열매를 드리는 충성된 자로 늘 사시길 기도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18 09:35 신고

      네네, 남은 날 중 가장 젊은 날이기도 하죠. ^^
      말씀 듣고 보니 가장 젊은 날임을 알아 열정을 잃지 않고,
      가장 늙은 날임을 알아 과욕을 부리지 않는
      균형을 살아야겠다 싶어요.
      감사드려요! ^^

  3. 2016.06.16 17:5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18 09:39 신고

      진심 귀하게 존중받는 느낌! 고마워.ㅎㅎㅎ
      이 말 듣고 보니 그간의 느낌이 알아차려진다.
      가끔 많은 양 커피 내렸는데 남으면 싱크대에 주욱 따라 버릴 때 말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했던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그때마다 마음이 조금 그랬어. 영혼을 담아 내리는 커피잖아. ㅎㅎㅎ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요즘 가끔 혈압이 떨어진다. 두통을 잘 모르고 사는데 이유 없이 두통이 오다 속이 메스껍고 어깨부터 목이 뭉치다 시야가 살짝 흐려지기도 한다. 저혈압 증상이다. 얼른 눕는 게 제일이다. 채윤이 데리고 외출하고 돌아와 이런 증상이 와 바로 소파에 누웠다. 무기력하다. 마흔다섯에 나를 낳은 엄마가 나를 설명하는데 가장 많이 쓰는 말이 '몸이 약혀서'이다. 어렸을 적엔 그런 줄 알았는 데 살다 보니 사이즈가 작고 운동은 못 해서 그렇지 약하진 않다. 살면서 몸의 한계를 잘 느껴보지 못한다는 말이다. 요즘 저혈압 증상이 오면 몸의 한계와 바로 따라오는 두려움을 제대로 느낀다. 누워서 살짝 잠이 들었나보다. 골목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여자 목소리에 잠이 깼다. 아이를 혼내는 소리이다. 박박 거리고 악을 쓴다. 당연히 아이는 운다. 갑자기 온 신경이 일어선다. 잠이 확 깬다. 몹시 기분이 나쁘다. 가슴이 답답하다. 막막하다.


2008년쯤일 것이다. '우리 신실이 몸이 약혀서....' 주문에 딱 맞는 시절이었다. 그때도 일하고 돌아오면 바로 침대에 누워야 했다. 오늘처럼 무기력하게 누워야 했다. 당시 남편은 신대원 기숙사 생활 중이었고, 주말부부였다. 까막눈 채윤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지옥의 나날이었다. 몸은 그렇게 남편은 없고, 받아쓰기며 학교에 적응해야 하는 채윤이를 닦달하다 분노폭발 하기 일쑤였다. 골목에 쩌렁쩌렁 울리던 어느 엄마의 목소리에 신경이 곤두선 것은 그때의 내가 살아와서이다. 내 소리도 저렇게 들렸겠다. 윗집에서 뭐라고 했을까? 거의 미친 여자구나. 아이들도 그때를 회상한다. 그리고 그 시절을 치유하는 클릭←이런 대화를 한 적도 있다. 위의 사진은 그 즈음 어느 월요일. 천안에 내려간 남편과 통화하던 나를 채윤이가 찍어놓은 것이다. 디카 가지고 놀다 우연히 셔터를 눌렀을 텐데 우리 집 퓰리쳐상 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즈음 몸과 마음이 그렇듯 총체적으로 무너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신앙적, 영적인 문제였고. 알고 보면 정말 사소한 일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 몇 년 전 다니던 교회에서 영적인 목마름이 극에 달한 우리 부부는 교회를 옮길 생각이었다. 가정교회라는 것을 도입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목말랐던 것은 공동체였으니까. 눌러앉아서 가정교회의 시작을 열렬히 환영하고 신나는 가정교회 생활을 누렸다. (그때 첫 목짠님이 이 블로그 무플방지 위원 중 수석이신 iami 님과 mary 님!) 세월이 흘러 우리도 목자가 되었다. 신혼부부들과 함께.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었다. 평신도였던 남편이 신대원에 들어갔다. 목자를 그만해야할 시점이 되었다. 초등부를 맡아 사역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어쩐 일인지 목자들의 목자이신 목사님이 차일피일 미루며 전도사와 목자를 겸하도록 하였다. 당시 나는 1부 성가대 지휘를 하고 있어서 남편이 천안에서 올라오는 금요일부터 주일 저녁까지 제대로 둘이 눈 한 번 맞춰보지 못한 날도 허다했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이면 짐을 싸서 천안으로 내려가는 남편. 월요일은 온종일 눈물바람이었다.


가정교회 사역과 관련된 많은 분들이 우리 부부가 목자를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을 하시며 목사님께 제안하고 강력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전임이 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힘들었지만 그때 그 목장 식구들은 내 인생, 내 마음에 가장 깊이 남아있는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그걸 계속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교회는 '가정교회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주목받았고 내부에서는 부작용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파트타임  전도사 따위의 일상을 고려하여 목장을 줄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금요일 오후부터 장을 봐서 10 명 이상의 식구들과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밤 12가 넘어야 정리가 끝나곤 했다. 바로 그 즈음 몸도 최악이어서 결국 성대수술도 하고 그랬다. 바로 그때 목사님이 가장 힘없는 파트타임 사역자의 인권을 말없이 짓밟 듯, 나는 가장 연약한 우리 아이들에게 온갖 분노를 쏟아부었다.


돌이켜보면 상식이 아니라는 것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내게, 자발적으로 무엇이든 하고 싶은 내게 비상식의 굴레를 씌운다는 느낌이었다. 관련하여 다 발설하기도 어려운 무수한 비상식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거룩하고 은혜로운 허울 뒤에 비상식으로 피눈물 흘리는 부교역자 사례야 어디 한둘이겠는가. 전임사역 3년 후에 남편은 목회를 접기로 했다. 접기로 했으나 우연 같은 필연이 위로처럼 들이닥쳐 지금 여기서 또 목사로 살고 있다. 부임하고 첫 새교우 환영회에서 담임 목사님께서 교회 소개를 하시는데 눈물이 났다. 너무 상식적이어서 눈물이 났다. 첫 교역자 부부 모임에서는 '목회자 부인들 수요예배 나오려고 애쓰지 마라. 아이들 저녁 챙기고 잘 돌보는 것이 사역을 돕는 일이다. 목회자의 가정이 쇼윈도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모델링이 되어야 한다.' 라고 하셨다. 이런 상식 말이다. 물론 아쉬운 것도 많다. 아쉬움이 커져 마음이 힘들 때면 '상식이 통하는 게 어디냐'며 상시적인 감사를 연습한다.


지난 3월 목회멘토링 컨퍼런스에서 강의한 이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 온 사모님들이 있다. 블로그나 책이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모님들도 있다. 모두 힘든 삶을 살고 있는데 알고 보면 다 상식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상식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교회, 하나님, 공동체, 복음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좋은 것들을 표방하고 거기에 도취되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을 하는 듯 사는 분들에게 치명적으로 결여된 상식이라니! 사모님들의 고통은 그 분열적인 환경에서 늘 이중적이다. 그 고상한 가치 앞에서 개인의 고통쯤이야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러다 결국 여전히 아픈 자신을 탓하기에 이른다. 그러다 몸이 아파 버리고, 마음이 고장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모님들에게 당장 벗어나라 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는 오늘 여기를 살아야 한다. 살면서, 오늘의 아픔을 다루는 것과 더불어 앞으로 더는 상처받지 않을 마음의 힘을 기르는 연습을 동시에 해야 한다. 


갑자기 찾아온 육신의 연약함에 어디선가 들리는 애기 엄마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몇 년 전 기억을 소환했다. 꺼내서 다시 바라보니 상식보다 못한 신앙의 허울들이 더욱 또렷이 보인다. 한쪽 눈 가리고 온갖 비상식을 저지르면서도 복음에 합당한 듯 착각하며 살기란 얼마나 쉬운지. 어쩌다 우리들의 교회는 고작 상식이라는 그릇에 복음을 담아 감동을 전하는 수준이 되었나. 어찌됐든 나의 내적여정은 거기로부터 제대로 시작되었다. 찾아도 찾아도 답도 길도 보이지 않아 인간의 내면, 마음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실은 그 풍랑인하여 더 빨리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사투였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이들이 더 커서 어른 대 어른으로 얘기할 날이 오면 정식으로 사과할 생각이다. 그때 짐승같이 굴던 엄마를 용서해달라고. 그렇게 너희들 앞에서 짐승인 줄 확인하고 늘 사람이 되길 꿈꾸고 노력하며 살게 되었다고. 이 고백을 할 때는 조금 더 사람에 가까워지고, 더욱 상식인이 되어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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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신의피리 2016.05.28 17:14 신고

    안오면 좋았을 법한 고난이 기어이 유익이 되었구나. 나는 고난을 가중시키는 일만 했으니 평생 사과해야 하고, 유익은 주님이 주셨으니, 모든 게 은혜로구나.
    주말 지나고 월요일 저녁 맛있는 식사 대접 해야겠구나...

  2. iami 2016.05.30 10:48

    무플방지위원으로 호명된 김에.^^
    댁 근처 망원동에 저혈압 치료제 파는 위트위트란 데가 있어요.
    g에게 물어보셔요.^^

    • BlogIcon larinari 2016.06.01 10:54 신고

      망원동 맛집이며 커피집까지 g가 꿰고 있는데...
      저혈압 치료제까지요?ㅎㅎㅎㅎ
      망원합정 주민으로 야심차게 추천하는 제육볶음, 커밍순입니다. ^^

  3. BlogIcon hangang17 2016.06.01 10:36

    저도 "상식이 통하는 교회"라는게 감사하고 가슴에 와 닿아서 섬기고 있습니다..그것만 해도 감사해야할 만큼 신앙의 이름으로, 교회의 이름으로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한 일들이 많은 현실에
    가슴아픕니다ㅠ 저 자신도 돌아보게됩니다..얼
    마나 common sense를 갖고 사는지..주변에 ㅂ위해를 가하지는 않는지를요ㅠ 무플방지위원회를 만드시기로 하셨다는 말씀을 듣고 댓글씁니다~
    ㅎㅎ
    요즘 못왔었는데 앞으론 자주오고 답글도 열띠미 하겠습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6.01 10:56 신고

      어서오세요. ^^
      (마지막 남은 타르트를 조금 전 커피와 함께 먹고 히히...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
      그 무엇도 아닌 신앙의 상식이 짓밟히고,
      그로 인해 짓밟히는 사람들은 늘 약자인 것이 참 슬퍼요.

    • BlogIcon hangang17 2016.06.01 11:04

      셈하시는 분이 계신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살았지만 지나고보니 그 과정 또한 저를 다루시는 손길을 느꼈습니다^^

  4. BlogIcon happyyeji 2016.06.07 22:30 신고

    정말 그런 거 같아요-

    • BlogIcon larinari 2016.06.09 19:01 신고

      짧고 굵은 우리 예지쌤의 쿨한 댓글. 좋아효! ㅎㅎㅎㅎㅎㅎ





몸은 거짓말을 못한다.

괜찮아요, 아 정말 괜찮아요, 하는데 벌개진 얼굴, 떨리는 목소리가 다른 말을 한다.

괜찮지 않아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는데

그 사람을 피해 돌아서 가고 있다면, 그 사람 곁에 앉고자 하지 않는다면

몸이 하는 말을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사람 곁에는 자꾸 가까이 가고 싶은 법이다.


'어디 암자에 들어가서 몇 달 동안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

소파와 책과 셋이 한 덩어리가 되어 겨울을 지냈다.

느느니 번뇌요, 느느니 자의식이다.


오늘 교회 주방봉사가 있었다,

무엇이든 순간에 몰입하는 편이라 열심히, 신나게 주방일을 했다.

그렇다, 신나게 했다.

종이 박스 또는 거대한 파란비닐에 들어 있던 어마무시한 식재료들이

두 시간 반만에 근대국과 고추장 불고기와 숙주나물과 달래 간장을 입은 두부가 되다니!

요리는 정말 엄청난 창작활동이다.


무려 다섯 시간 동안 주방용 장화를 신고 일을 했다는 것이다.

주방용 장화가 중요하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고.

주방용 장화 하나가 내 속에서 끌어낸 식당 아줌마 본능이라니!

100인분 밥솥, 국솥을 닦는 일은 허리가 끊어질 듯 힘에 부치는 일이었지만

힘이 났다. 마법의 장화를 신었으니까.


집에 와선 잠시 쉴 새도 없이 장을 보러 코스트코에 다녀왔다.

주일 저녁에 식사 손님이 있는데 내일은 강의 하나와 어머니 칠순잔치,

주일에는 구역모임(나 구역장 하는 여자!)으로 준비할 시간이 없다.

장을 보고 와서는 바로 새우를 손질하고, 양념장을 끓여서 '간장 새우'를 만들었다.


저녁엔 수영을 다녀왔다. 쉬지 않고 자유형 40개를 돌았다.

아, 수영을 다시 시작했다.

세월호 이후로 밥맛이 아니라 수영맛을 잃었었다. (주부수영 끊은 사연)

지난 2월 말 팽목에 다녀온 이후 세월호 2주기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아야지 싶었다.

일단 잃었던 수영맛을 되찾고 힘을 내기로 했다.

3월부터 시작했는데 열심히 하고 있다.


어푸어푸, 수영을 하며 생각하니 오늘은 책을 한 줄도, 단 한 줄도 읽지 않은 날이다.

오직 몸을 열심히 가동시켜 하루를 살았다.

그러고도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자괴감이 크지 않다는 것에 방점.

앞으로 더욱 많은 날을 몸으로 때우려한다.

내가 가진 가장 정직한 도구는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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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혼자 드리는 주일 예배였는데 나란히 함께 앉을 벗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본당사수를 했습니다. 좁고 옹색한 본당의 벽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나님 그분의 품을 떠올리고 그 근처에 가까이 가면 가슴 한 구석이 늘 띵하게 아픕니다.

예배의 자리에 가면 아픔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나란히 앉은 벗의 고통까지 내게로 와 모양을 바꾸어 냉소가 됩니다.

'하나님, 저 삐졌다구요.' 이렇게 예배가 시작됩니다.

마음이 나긋나긋해지지가 않습니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부르는 찬송.

'다찬양 하여라 전능왕 창조의 주께 내 영아 주찬양 평강과 구원의 주님....'

찬송마저 저와 주님 사이를 우주만큼이나 갈라놓는군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의 하나님, 당신 제겐 너무 먼 거 아시죠?

평강과 구원의 하나님이라니요! 지금 제 옆의 이 아이를 보시면서 하시는 말씀이시죠?


어느 새 나는  2절을 부르고 있습니다.

'성도들아 주님의 뜻 안에서 네 소원 다 이루리라'

소원을 다 이루어주신다고요? 냉소의 클라이막스에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언제요? 언제 성도들의 소원을 다 이루어주실 건데요?

눈물이 터진 이상 본심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고통 중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평화와 구원이 옵니까.


연일 들려오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아픔에

마음이 주저앉고 또 주저앉습니다.

기도했더니 어쩌면 그렇게 딱딱 인도하셨다, 감사하니 감사한 일만 생기더라.

빠르고 강한 기도응답을 간증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아요.

저 자신을 더욱 거지같이 느끼게 할 뿐이에요.

흥하고 잘 되고, 더욱 편해지는 이들의 하나님과 다른 하나님을 느끼는 내 친구들은,

나는, 무엇입니까. 누구입니까.

확신에 차 흔들림 없이 당신을 전하는 이들 앞에서 더욱 작아지는 제 마음은요.

그리고 저는 일렁이는 슬픔과 분노없이 뉴스를 볼 수 없어요. 

제 안팎은 왜 이렇죠? 하나님.  


월요일 아침 [메시지]로 읽는 열왕기하의 마지막은 더욱 캄캄합니다.

유다는 멸망하고 맙니다.

솔로몬 때에 그 찬란했던 영광이 무너지는데 이보다 더 처참할 순 없군요.

그렇군요. 열왕기서의 마지막 장을 읽고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짓밟혀 무너진 성전의 폐허 속에서 희망의 단서 하나라도 찾아볼 요량이었는지

페이지를 앞으로 넘겨 유진 피터슨의 열왕기서 서문을 찬찬히 읽어봅니다.


열왕기서를 읽는 유익은 실로 엄청나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는 힘 있고 경건한 사람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구현된다고 생각했던 억측이 무너지면서, 그분의 주권을 한층 깊이 이해하고 경험하게 된다. 온갖 유토피아적 계획이나 망상들의 현혹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아무리 문제 많고 죄 많은 지도자들(왕들)이 우리 사회와 교회를 농단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가 무효화될 수는 없으며, 그 어떤 현실과 상황 속에서도 (은밀히) 행사되는 하나님의 주권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마음껏 즐거워할 수 있다'니! 지금 제게 가당치도 않지만, 단서를 찾았습니다. 단서를 찾았기에 키보드 두드릴 힘이 나서 이 아침, 타닥타닥 몇 자 남기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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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혜 2016.03.07 10:40

    제가 요즘 좋아하는 찬송가가 "예수님은 누구신가" 인데요. ㅎㅎㅎ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 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 되고.
    약한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고 병든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추한자의 정함과 죽을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온교회의 머리와 온 세상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그래도 우리 주님은 저와 우리 이웃들 같은 상한자들의 주님이셔서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저도 요새 "하나님 저 삐졌어요" 모드인데...ㅎㅎㅎ
    은근 그런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서. 다행(?) 또는 위로가 되기도 하네요.

    하나님은 선하시다. 좋으시다. 하면서도.
    그분과 정서적 거리를 두고 있는 저를 절실히 보게 되네요. ^^;

    저의 상황과 감정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시작되어지기에.ㅎㅎㅎ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몸된 교회와, 그의 사랑인 가정들을 위해서. ㅋㅋㅋ
    오늘 대학원 공부도 또 시작합니다.(꾸역꾸역꾸역) ㅎㅎㅎ
    이 시간도, 나중에 잘 해석되어지길 바라며...

    • BlogIcon larinari 2016.03.10 10:55 신고

      나 삐졌어, 라고 말할 수 있고
      나 아파요, 라며 기댈 수 있는 관계가 진짜죠.
      하나님 저 삐졌어요. 당신이 이해되지 않아요.
      라고 정직하게 그분 앞에 앉아 울 수 있는 태도.
      그것이면 되는 것 같아요.
      나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알아주시고,
      달래주시고, 새로운 통찰을 주시고, 일어서게 해주시는 것은
      그분 전공이시죠.
      오늘 그렇게 정직하게 그분 앞에 서고, 기댈 수 있다면 언젠가 오늘의 고통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도 가지게 될 거라 믿어요. ^^

  2. 미파 2018.05.08 23:56

    가식없는 글. 자기 자랑같은 간증보다 100번 낫네요



몇 달에 한 번씩 미용실 가는 일이 고역이다. 책 한 권 떼러 간다는 마음으로 책 두 권을 들고 다녀왔다. 읽은 곳 또 읽고, 밑줄 긋고 또 읽고 해야 하는 신경 많이 쓰이는 책만 아니면 된다.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나간 두 권이 미셸 트루니에의 <외면일기>와 예수회 전경훈 수사의 '영화에 비추인 삶'이란 부제의 <어리우는 당신 얼굴>이다. 우연은 없다. 손에 닿는대로 가방에 집어 넣었으나 뭔가 참 좋은 조합이었다. 외면일기 - 영화에 비추어 마음 깊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내면일기 - 내가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꿈을 적는 꿈일기. 머리를 말고 스팀통을 뒤집어쓰느라 읽을 책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뇌가 뜨듯한 스팀을 흡수하면서 이완이 되는지 뇌주름 사이에 감춰뒀던 일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냈다. 벌떡 일어나 머리 하러 간 것도, 손에 닿는 대로 가방에 넣은 책 두 권도, 열 파마를 선택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나비!  난 점점 '우연은 없다, 결코 없다교(敎)' 광신도가 되어가는 중이다.


외면일기


내 동생은 시시때때로 내게 상담을 요청해 좋은 얘기 다 들어놓고 마지막은 꼭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 하며 허경영의 '내 눈을 바라봐'에 빗대서 나를 놀리곤 한다. 육아와 부부 문제, 일과 관련된 관계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아니라 '이 문제는 나에게 어떤 변화를 요구하는가'로 얘기를 몰아가는 내 일관된 방식을 풍자하는 것이다. 내 얘기가 조금만 지루해질라치면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 노래를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오직 '내적인 변화, 자기 성찰'에 꽂혀 수년을 배우러 다니고 읽고 쓰고 있지 않은가. 동생의 놀림이 은근 나의 치우침에 대해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란 생각에 '중는다!' 하면서도 같이 낄낄거리고 있다.

이런 내게 미셸 투르니에가 내면의 일기(journal intime)와 정반대되는 외면일기(journal extime)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각이 신선하다. ["너 자신을 알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말이 내게는 항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명령으로만 느껴졌다. 나는 나의 창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설 때 비로소 영감을 얻는다. 현실은 나의 상상력의 밑천을 훨씬 상회하는 것이어서 끊임없이 내게 경외와 찬미를 자아낸다] 라고 말한다. 아무렴! 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 내 속으로만 파고들어 얻는 것은 끝없는 자기연민밖에 없다. 작고하신 이윤기 선생님이 번역한 책, 지은 책을 두루 읽다 소개받은 미셸 투르니에, (폴 투르니)에 아니고 미셸 투르니에 스타일에 당분간 빠져들 예정이다.


내면일기


'리뷰 쓰기 전에 새로운 영화 보지 않기' 안 지켜도 좋은데, 그래서 더 부담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보고 싶은 영화가 동시에 상영하고 있어도 연달아 보지 않고 짧더라도 리뷰를 쓸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봐야지 하는 마음이다. 블로그에 쓰다만 비공개 리뷰가 쌓여가고 있다. 마치지 못하고 영화를 보자니 부담도 함께 쌓여가는 중. 리뷰를 쓰는 데 시간이 걸리는 이유는 영화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영화를 빌어 내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영화를 공부해본 적도 없는 내가 영화를 평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저 꿈분석을 하듯 영화를 보며 거기 비친 나를 보고 싶을 뿐이다. 영화가 받은 상이며, 감독의 전작 등에 대한 얘기가  반을 차지하는 리뷰는 적어도 내겐 재미 없음이다. <어리우는 당신 얼굴>은 그런 의미로 딱 내 스탈일이다. 쉽고 정직하고, 글쓴이가 잘 드러나는 영화 리뷰가 술술 읽혀졌다. 술술 읽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술술 읽다 숨을 고르고. 밤에 혼자 옛날 영화를 다운받아 보게되곤 한다. 이것은 영화를 구실삼은 내면일기이다. 서문 중 일부이다.

[글을 쓰는 동안 제게는 생각지 못했던 크고 깊은 일들이 지나갔습니다. 오랫동안 헤어져 살아온 길러 주신 엄마를 미국으로 찾아가 만났습니다. 헤아려 보니 열 일곱 해 반 만의 일이었습니다. 살아온 삶의 반이 넘는 그 시간을 훌쩍 건너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낳아 주신 엄마의 투병생활을 함께하다 하늘 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어릴 적부터 잊고 자란 엄마를 어른이 되어 처음 만난 날로부터 열세 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았습니다. 문득, 제 삶의 밀물과 썰물이 교차되는 그 어느 시간의 즈음에 서 있는 저를 보았습니다여기 스무 편의 글은 마음 저 밑바닥의 침전물마저 헤집어지는 바로 그 시간들 속에서 그렇게 앉지도 못하고 선 채로 쓴 글입니다. 크게 휘어드는 삶의 어느 구비에서 영화를 구실삼아 제 삶을 반추하며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의 기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시 우연은 없다. 결코 없다.


꿈일기


꿈일기장을 따로 마련하여 쓰기 시작한 이후 세 권의 노트가 채워졌다. 얇은 노트들이다. 새로 꿈일기장을 장만했는데 하드커버에 두꺼운 노트라 다 채우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이 시점에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가 끝난 것, 그리고 그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꿈. 새로운 노트에 처음으로 적힌 꿈도 다 뜻이 있을 것이다. 우연은 없다니끼니! 내가 내 자리에 서서 세상을 관찰하고 발견하여 적는 것이 외면일기라면, 또 다른 내가 내 밖으로 나가 나를 관찰하고 발견하여 적는 것이 내면일기일 것. 꿈일기는 내 안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를 받아 적는 것이다. 드라마가 먼저이고 드라마를 보고 대본을 받아적는 것인데 내용인즉슨,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스펙타클한지! 그런데 그게 감독 연출 배역 배경까지 내가 맡아 하는 자작극이라니. 꿈일기를 채워가고 꿈을 나누면서 내가 모르는(실은 알긴 아는데 모르고 싶은) 나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 랄라 쏠쏠미 쏠쏠 미미레이다. 이 자주색 노트가 다 채워지는 어느 날, 나는 어떤 외면일기, 내면일기, 꿈일기를 쓰고 있을까? 쌓이고 쌓일 우연, 아니 안 우연들을 흐릿한 눈으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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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이언니 2016.02.16 21:25

    세권의 꿈일기에서 엄청난 내공의 포스가 느껴졌습니다.^^
    슨스리 언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용.

    • BlogIcon larinari 2016.02.16 22:04 신고

      제이 님도요! ^^

      꿈을 꾸고(잠을 자다 꿈을 꾸는지, 꿈을 꾸기 위해서 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꿈이 생각나지 않으면 '에잇, 헛 잤네' 하거든요.ㅎㅎ),
      꿈을 적고,
      기도하다 꿈을 떠올리고,
      기도와 어우러진 꿈을 다시 적고,
      꿈 친구들과 꿈을 나누고....
      그 기쁨이 커요.

      제가 늘 트위터로 뉴스를 보는데
      제이님 추운 겨울 아침마다 당산역 찍으시던 시절
      트윗에서 같이 농담 따먹기 하던 기억 기분좋게 떠올려요. ^^



조금 놀라실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실은 제가 블로그에서 보시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산답니다.

남편과는 보여드리는 것보다 더 깊은 교감을 통해 하나 됨을 누리고 있고요.

아이들도 마찬가지랍니다.


더욱 놀라실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데.....

블로그에서 보시는 것처럼 저희는 천국 같은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답니다.

농담도 섞였지만, 가끔 남편에게 '그러면 이혼해' 이러기도 해요.

(많이 놀라셨죠?)

또 채윤이 현승이는 생각보다 개성있는 애들이 아니구요

성격들도 약간 씩 개차반이랍니다. 하하.


대놓고 자랑하기엔 모양이 빠지는 것 같아서 참았지만

제가 생각보다 많은 곳에서 다양한 곳에서 각광을 받으며 강의하고 있구요.

했다 하면 꽤 잘하는 강의였답니다.


그런데 청중에 휘둘리고 인기에 영합하느라 얼마나 지질한지 몰라요.

더 잘나가고 싶은데 마음같이 되지 않아 불안할 때는

내가 쫌만 뻐기고 나서면 더 유명한 강사가 될 수 있는데 나 자신을 위해서 자제한다,

면서 분열적 교만과 허위에 허덕이기도 한답니다.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많이 만난답니다.

한 번의 만남으로 저 자신도 놀라는 엄청난 지혜와 사랑을 쏟아내기도 한답니다.

올해에 무수한 소중한 분들을 만났지요.


그런데 막상 저를 만나시면 글로 보시는 것보다 차겁기도 하구요.

어떤 상담 메일은 답을 하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적도,

냉정하리만큼 단호하고 짧게 답을 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디테일하게 사람을 챙기지도 못한답니다.

그런 저의 죄를 알기에 정서적 공감은 물론

기념일이나 이벤트에 젬병인 남편을 용납하며 살아요.


상상하시는 것처럼 주변에 좋은 벗들이 많답니다.

언제든 가면을 벗고 진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언니 동생 많아요.

이게 웬 복인가, 하지요.


때론 생각보다 외롭답니다.

이렇게도 마음을 나눌 이 없는가 싶어서 혼자 쓸쓸하게 강변을 걷는 일이 많아요.

진심을 다해도 알아주지 않는구나, 자기연민에 빠지면 한이 없답니다.


강의, 글, 상담, 찐한 대화.....

그 어떤 것도 커피 한 잔의 무게보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겠다 싶습니다.

이런 저런 모임에 갈 때 핸드드립 도구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닌답니다.

올해는 캐플라노라는 야외용 일체형 핸드드립 세트를 특템하여

(고마워요!! 히히) 재미 많이 봤구요.

정성 들여 내리지만 후루룩 마시고나면 끝인 커피 한 잔.

그런 커피 한 잔의 만남으로 족한 2015년의 우리들입니다.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

올 한 해도 감사했습니다.

때로 행복하지만 행복한만큼 슬프고,

때로 자신감에 넘치지만 때로 위축되고,

때때로 많이 외로운 제게 이곳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랍니다.

보이지 않는 따스한 눈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예요.

(삐딱한 눈을 하고 들어와 보시는 분들은 계산에 넣지도 않아요. 메롱)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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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iami 2016.01.01 09:04

    팔색조 ss이셨군요.^^ 커피 얻어 마신 지 제법 됐어요.
    새해에도 숱한 up & down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넉넉하고 유쾌하게 즐기고 버텨내고 이겨나가면 좋겠네요.

    • BlogIcon larinari 2016.01.02 14:29 신고

      '2015년 개인사' 포스팅 하신 것 읽으면서 마음으로만 송년인사 드렸네요. ^^;; 손가락 움직여 인사드렸어야 하는데....
      매일 가면 새롭게 읽을 것이 있는 곳, 하루 한 번씩 들러서 읽고 마음으로만 댓글 남기곤 해요. 감사드려요.
      언제 주일에 세 분 예배 드리시고 들러서 커피 한 잔 하시고 가세요. ^^

  2. 2016.01.01 10:1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01.02 14:31 신고

      감사합니다!
      이리 지내다보면 마주하고 커피 한 잔 할 날이 올 거예요.^^
      이국이지만 마음만은 따스한 고향을 잃지 않고 행복한 2016년 되시길요.

  3. BlogIcon hs 2016.01.08 21:08

    강의.저는 아직 한번도 못 들어 봤지만 정말 잘 하실거라고 100% 믿습니다. ^^
    전에 2000년도에 한영교회 주일학교 여름행사를 동원대학교에서 했었죠.
    그때 제가 사랑부 소속으로 참여 했었는데 첫 시간으로 전체가 모였는데 앞에서 자그마한(지송) 예쁜 선생님이 그 많은 사람들을 집중시키며 진행을 어찌나 잘 하든지, 내가 홀딱 반했었는데 그 주인공이 "정 신실" 선생님이었거든요. ^^

    • BlogIcon larinari 2016.01.12 22:45 신고

      2000년! 와, 년도를 다 기억하시네요. ^^
      그 여름에 아마도 채윤이를 품고 있었을 거예요.
      아이들 모아놓고 찬송 율동하던 그 시절, 그 순간 살아 있다고 느껴졌는데.... 어느 새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제게는 떠올리면 참 행복한 추억, 곱게 기억해주셔서 감사해요.^^

 

 

기나긴 성탄절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헨델의 할렐루야로부터 시작하여 성탄노래 야이기 끝입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성탄 찬양을 올해 한 번도 못 불렀네. 뭐~어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찬양이 뭐게? 아무도 못 맞히네. 이거야! 제가 사랑하는 성탄 찬양으로 들려 드리는 채윤이 엄마의 성탄이야기, 들어보시렵니까?

 

 

1. 그 어린 주예수 눌 자리 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저 하늘 별들이 반짝이는데 그 어린 주예수 꼴 위에 자네

 

 

내적여정에 큰 가르침을 주신 신부님께서 성탄 인사를 보내오셨습니다. 

저 심플한 마굿간 그림과 함께요.

 

" 마굿간같이....

가난하고 누추한 우리 존재 엔에 오늘도 눈부시게 거룩한 한 아기가 탄생하셨습니다.

우리의 본래의 얼굴입니다.

그 사랑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성탄이 주는 위로와 평화를 함께 나눕니다. "

 

더 보탤 것 없는 말씀입니다. 이번 성탄, 그분을 맞아들이기엔 누추하고 어두운 마음을 부여 안고 헤매다 헤매다 맞이한 것 같습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거룩한 아기, 우리 본래의 얼굴도 그러하답니다. 짧은 메시지가 내 본래의 얼굴을 일깨우는 것만 같습니다. 누추한 마굿간에 무력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 감사합니다.

 

 

2. 저 육축 소리에 아기 잠깨나 그 순하신 예수 우시지 않네.

그 귀한 예수를 나 사랑하니 새날이 밝도록 함께 하소서.

 

 

채윤이 현승이 두 청소년과 함께 성탄 예배를 드렸습니다. 참을성도 많고 차분한 현승이가 몸을 베베 꼬고 힘들어합니다. 콱 눈빛 레이저로 기선제압 하고 싶었으나 다음 코스를 위해서 참습니다. 마지막에 전교인이 부르는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르다가 셋이 터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노래 부르는 내내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를 유리 방황하는 교우님이 족히 80%. 피날레에서 두 박자 쉬고 마지막 '할렐루야'를 노래해야 하는데 그 짧은 두 박자 사이에 여기저기 '하, 하, 하아....' 발 디뎌보시는 분들의 목소리에 현승이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예배 마친 후에는 뭣이든 먹어! 어? 그래. 그거 먹어. 두 녀석 비위를 살살 맞추었습니다. 서울광정에서 열리는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성탄예배'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입니다. 선뜻 가겠다고는 했으나 두분 마음 상하지 않게 모시고 다녀오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닙니다. 한 시간은 일찍 시청역에 도착하여 또 일단 멕입니다. 동막골 이장님 말씀이 딱이지요. 사람들 마음을 얻는 건 그저 '뭘 좀 마이 멕여야...' 던킨도넛도 먹고, 광장에 도착하니 어묵과 커피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어묵도 먹고. 마이 먹고 앉아 있으니 컴플레인이 별로 안 나옵니다.

 

자리 잡고 앉아 발 동동 구르며 예배를 기다리고 있는데, 있느은데~ 어, 저기 반가운 얼굴! 아주 많이 애정하는 청년 둘이 나타난 것입니다. 고난으로 따지면 우리 시대 청년들의 고난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두 사람 다 마음적으로 쉽지 않은 날들 보냈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대견하고 고마웠습니다. '너만 아프냐, 나도 아프다' 하는 태도로 예수님의 긍휼에 가닿을 수 없습니다. '나도 아프지만 나보다 더 아픈 당신 때문에 잠시 내 아픔을 잊었네요' 이것이 '그 순하신 예수'의 마음입니다. 반갑고 예뻐서 사진 한 장 찍어 제 마음에 남겼습니다. 예배를 기다리며 두 사람을 이 귀한 사람들을 축복하고 축뽁하고 축축뽂뽁하는 기도를 들렸습니다.

 

 

3.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 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주 품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성탄 이브에 어느 단톡에서 성탄인사를 주고받다 본 메시지 입니다.

 

"루하가 유치원에서 성극을 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길걷는 목자역할이었는데 열심히 개다리춤을 연습하여 갔습니다."

 

개다리춤을 추는 목자라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여 개다리춤을 추며 걷다니! 제 마음에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죠! 어린아이 같이 그분을 맞아야죠. 그 세계 최고의 기쁨은 개다리춤입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왜 그리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두시고 사랑하셨는지 알 것 같지 않나요. 저 찬양 마지막절 가사처럼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노래하며 기도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미간에 힘 딱! 주고, 심각한 표정으로 대림절기를 보낸 제 모습이 들켜버린 것 같았습니다. 춤추자! 그래 춤춰야지!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춤춰야지! ^^ 그분, 늘 언제나 늘 내 곁에 가까이 계시는 분.

 

 

 

 

 

엄마, 나 예배 드릴 때 왔다갔다 해도 돼? 호기심으로 생기 가득한 얼굴로 현승이가 물었습니다. 광장예배의 메리트 아니겠니! 마이 왔다갔다 해. 잠시 앉았다, 살짝 일어나 사라졌다, 다시 돌아와 앉아 발밑으로 꼼지락꼼지락. 한 번 나갔다 돌아올 때마다 대못을 서너 개씩 주워왔습니다. 히히, 엄마. 여기 보이지 않는 재밌는 게 많아. 연실 못을 주우러 다니더니 어느 순간 바닥에 저렇게 못으로 만다라 같은 것을 그려놓았네요. 못으로 그린 만다라! 아, 치유적이다. 2016 년 성탄절, 이렇게 마무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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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대림절 초 넷이 모두 밝혀졌습니다.

기다림의 시절입니다.

그분을 향한 기다림,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는 시절입니다.


대림절기를 시작하며 주일 저녁마다 아이들과 둘러앉아 촛불을 밝혔습니다.

한 주에 하나 씩 초가 늘어납니다.

첫번째 초에 불을 밝히던 날 아빠가 빛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자며, 예수님은 빛으로 오신다면서요.

엄마도 함께 거들었습니다. 오래된 어린이 찬송가를 들려주면서요.

어둠을 몰아내는, 찬 마음 녹여내는, 무서움을 쫓아내는

환하고 따스한 희망의 빛이라고요.


아이들이 없는데 솔직한 말씀 드립죠.

촛불을 밝혀 주위가 환해지는 것은 수도 없이 봤지만

거짓이 참을 이기는 것을 본지가 언제인지요.

그런 적이 있던가요?

빛이 어둠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힘이 모든 걸 이기는 것 아닌가요?

진실하기로 마음 먹은 사람들은 짓밟히고 따돌림 당할 뿐

거짓을 작당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힘과 안전이 보장되는 곳 아닌가요.

그렇던데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


자주 이 노래를 불러보지만 이 노래가 절절한 이유는

안팎의 현실이 자꾸만 이 노래를 뒤집어 놓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승리의 노래는 늘 거짓과 어둠이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상처받아 우는 것은 늘 약한 자의 몫입니다.

노래를 거꾸로 부르게 됩니다.


빛은 어둠을 이길 수 없지.

참은 거짓을 이길 수는 없어.

진실을 날로 침몰해갈 뿐이다.


유난스런 목마름과 그리움으로 대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대로 해를 보내고 해를 맞기가 두려워 며칠 기도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그분을 만나러 간 고독한 자리에서도 노래 가사는 제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제 안의 어둠이 빛을 압도할 뿐.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침묵의 울부짖음을 울었습니다.

빛이신 당신이 이렇게 캄캄하게 다가오실 수 있습니까.

아주 사소한 것부터 큰 일까지.

나의 시시콜콜한 일상에서부터 국가와 민족의 대사까지.

빛은 어디에! 빛은 어디에! 

어린 아이처럼 주저앉아 생떼만 쓰다 돌아왔습니다.


거실 한 구석 대림절 초는 속절 없이 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촛불을 마냥 바라보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일어나 밥을 하고 커피를 내립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가사가 사무친 슬픔, 사무친 희망으로 살아옵니다.

대림은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구원의 빛, 당신을 기다리는 것만은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려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계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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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rest 2015.12.21 14:47

    지긋이 바라본 시선
    그리고 분류없는 카테고리에 의미있을 듯 없을 듯한 제목...

    추운듯 춥지 않은 12월 잘 지내기.

    • BlogIcon larinari 2015.12.21 14:51 신고

      이런! 비공개로 해놓았다고 생각했어요. ㅎㅎ 글 쓰려고 사진만 걸어 놓은 건데. 부끄럽당. 덕분에 조작가님 댓글 유발. 잘 지내고 계신거쥬? ^^ 일단 비공개로 바꿔요.

    • BlogIcon larinari 2015.12.22 17:10 신고

      글까지 완성해서 다시 공개로!
      언니도 이 겨울 잘 지내요.
      엊그제는 문득 장미다방에서 조 마담님이 끓여주신 김치찌개가 생각났어요.
      설연휴 끝이었으니 분명 겨울인데... 왜 마당에 장미가 피어있을 거란
      상상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ㅎㅎㅎ

  2. BlogIcon gershom 2015.12.23 11:44 신고

    예년보다 기온은 높다고 하지만 춥게 느껴지는 겨울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울화가 치밀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글을 읽고 기운 차려야겠다 생각이 드네요.
    성탄절을 축하드리며 감사한 마음을 짧은 댓글로 드립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2.23 17:24 신고

      답답하기도, 울화가 치밀기도, 슬프기도, 두렵기도 한 우리의 나날에
      주님은 오셨고, 오고 계시겠죠?
      공감할 수 있어서 더욱 힘이 되네요.
      저 또한 gershom님께 감사 드려요.
      춥고 낮은 곳으로 오시는 그분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길요!

  3. 김나영 2016.11.20 00:29

    이곡이 무슨 노래인가요?

  4. 처음동참합니다 2016.11.20 00:36

    더는 방관하면 같은 공범이 되는것 같아요 다음주엔 저도 신랑이랑 촛불집회 갈겁니다 눈물이 납니다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정말 저 정도인가 싶어서 ㅠㅠ 슬픕니다

  5. 미치겠다 2016.11.20 00:39

    7시간에대해 물어볼때 비서실장 도 모르고 경호실장은 말할수없다. 새누리당은 어떤나라가 대통령 일거수를 알아내느냐 당당하더라? 상식이 통하지않는 더러운 놈들 지들만 당당하면 정의냐?

 

 

어서 나오라고,

가을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나오라고

강이 목놓아 부른다. 못 이기는 척 나갔다.

망원초록길을 타고 강가에 서면 강이 묻는다.

"좌 할 것이냐? 우 할 것이냐?"

나는 좌 할란다.

오른쪽 성산대교 방향으로 잘 조성된 너른 잔디밭이 있고,

참 잘 해놨으니....

나는 왼쪽, 서강대교 쪽으로 가겠다.

 

 

 

 

좌 하길 잘했지.

잘했고 말고.

 

 

 

 

양화대교 아래를 통과하고

2호선 지하철 아래를 지나니 다시 강이 묻는다.

"쭉 갈래? 계단 타고 오를래?"

계단을 오르겠다.

계단을 올라 양화진 공원 앞에 서면 다시 갈림길이다.

왼쪽은 양화진 선교사 묘원, 오른쪽은 절두산 성지.

여기선 묻지 않아도 늘 오른쪽이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은 번듯하고 세련되어 흠 잡을 곳이 잘 꾸며져 있으니

절두산 성지로 발길이 간다.

절두산 성지엔 뜬금없이 장독대가 있고,

나무와 화초에 촌스러운 이름표가 붙어 있고,

촌스러워 성스러운,

늘 발길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양화진 선교사 묘원 vs 절두산 순교성지

절두산 성지 쪽으로 기우는 발걸음은

매사 세련되지 못한 내게 편하고 자연스런 선택이란 생각. 

그런데 그것만이 아닐지 모르겠다.

선교 vs 순교 

내가 믿는 바를 세상에 널리 알리겠노라는 다짐은 내게 가당치 않다.

내가 믿는 바를 목숨을 다해 믿는 그 믿음으로 착하게 잘 살고 싶다.

정말 그러고 싶다.

 

 

 

 

지난 여름 자주 가서 앉아 있던 큰 나무 아래 벤치이다.

기도초를 두는 곳 바로 옆인데

한 여름 대낮에도 활활 타고 있는 기도초가 늘 생경스러웠다.

굳이 기도초를 올리지 않아도 저 벤치에 앉으면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저기 앉아 소설책을 읽어도 기도의 마음이 되었다.

가끔 누군가와 앉아 커피 마시며 조용조용 기도하듯 수다를 떨기도 했었다.

 

 

 

 

입시철이라서인지 초를 밝히고 기도하는 분들이 많았다.

웅성웅성 기도하는 분들 앞을 지나는데

아이 엄마들의 절절하고, 안타깝고, 세속적인 기도제목들이 느껴진다.

가슴이 뭉클하다.

아무 제목이든 그들의 기도에 내 영혼의 힘도 한 스푼 얹습니다. 주님.

외딴 구석에서

순례길을 걷는 복장으로 고개 숙인 분의 뒷모습 또한 뭉클하다.

 

 

주님, 당신의 뜻이 뭔지 모르지만

당신의 뜻이 모든 고통받는 자들을 향해 있다면

가난하고 촌스럽고 그러면서도 아는 것이라곤 세속적 욕망 밖에 없는,

그것이 다시 죄스러움으로 다가와 고개를 들 수 없는

무지한 우리의 기도를 돌아보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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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s 2015.11.01 21:39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잘 사시는 거 같아요.
    행복하게~~^^
    목사님도 평안하시고..채윤.현승이도 몰라보게 컸겠어요.
    가끔 들르겠습니다. ^^

    • BlogIcon larinari 2015.11.03 09:24 신고

      장로님!!!
      댓글 보고 반가워서 눈물이 왈칵할 뻔 했어요. ^^
      평안하시죠?
      저흰 잘 지내고 있어요.
      벌써 채윤이는 중학교 졸업, 현승이는 초등학교 졸업이네요.
      그러고 보면 현지랑 귀여운 아이들도 많이 컸겠어요.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 드려요.

    • BlogIcon 해송 2015.11.05 21:39 신고

      그래요?
      몇달 후면 고등학생과 중학생?
      아이들 크는 것을 보면 어른들은 더디 늙는 것 같지요?
      키도 많이 컸겠어요.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네.
      채윤이 어릴 때~목사님 한테 제가 기타 배울 때 드레스 준다니까 아빠 따라와서 그것 주기만을 기다리던 모습이 떠 오릅니다. ^^
      사춘기겠네요?
      엄마 힘들게 안 하는지 모르겠네.

    • BlogIcon larinari 2015.11.07 21:25 신고

      얼추 사춘기가 끝나가요.^^
      많이 힘들게 하진 않았지만 채윤이를 보면서 엄마가 함께 철이 들었어요. ㅎㅎㅎㅎ

      그때 주신 드레스, 그 드레스 입고 찍은 사진은 정말 채윤이 어릴 적의 대박대박대박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에고,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흘러요. 장로님.

  2. 신의피리 2015.11.03 18:50

    절두산 큰 나무 아래 벤치에 나도 점심 먹고 가서 종종 앉곤 했는데, 설마 당신도 거기에 앉을 줄이야... 여태 몰랐네! 우리 이렇게 대화가 없었던 것인가?!

    • BlogIcon larinari 2015.11.04 20:27 신고

      당신이 말하는 큰 나무는 건물 바로 앞에 있는 그 나무 아닌감?
      나는 바로 저기, 강변북로 바로 옆 큰 나무.

      여보, 우리 부부 대화 없는 부부야.
      청년들과 만나서 얘기하다보면
      '어, 목사님께 말씀 드렸는데... 모르세요? 목사님이 말씀 안 하셨어요?' 하는 적 많아.

      대화가 필요해. -.,-

  3. 2015.11.05 11:1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5.11.07 21:24 신고

      그럴 줄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놀랍고 신기해요. ^^
      제가 꿈에 관한 공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예요.
      하긴 누구나 같은 유익을 누리지는 않을 거예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셨어 그래요.
      그 만남이 제게도 힘과 위로가 되고 있는 거 모르죠?^^
      따뜻한 차 한 잔, 콜!

 

 

 

#1 Mansplain

 

약간 활자중독에 유행에 뒤쳐지기 싫어하는 성향도 있어서 SNS를 완전히 끊지 못한다. 걸어다니는 언론사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신문에서 볼 수 없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좋은 필자의 글을 바로 바로 읽을 수 있는, 바로 튀겨낸 아삭한 튀김 같은 맛 때문이다. 책과는 다른 정보와 배움과 통찰을 주는 글을 싱싱할 때 읽는 즐거움이 있다. 어느 날 깨달았는데 내가 결코 클릭하지 않는 글들이 있더라. 대체로 같은 필자의 글이고, 내가 좋아하는 지인들이 열광을 함에도도(나 은근 덩달이) 도통 클릭조차 되지 않는 글이 있었다. 왜 그럴까? 이유는 별 거 없음. 지루해. 안 읽혀! 맘놓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면 지겨워서 토나올 것 같애. 이 정도. 어려워도 잘 읽히는 글이 있고, 잘 안 읽혀도 읽어 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발동하는 글이 있지 않은가. 아무튼 내 부족한 지성과  재밌는 것만 찾아 헤매는 경박함을 탓하지 않고 단칼에 안 읽어버리는 글이 있다는 것이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책 제목과 첫 글에서 그간의 '거부감 유발하는 글'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Mansplain. 가르치려드는 글과 말을 오래 참기란 힘든데, 게다가 진지한 남자가 그러는 건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이었구나. 암만. 

 

 

#2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를 먼저 배워야겠지만 <정희진처럼 쓰기>가 참으로 부럽다. 맨스플레인 반대쪽 어딘가에 정희진의 글이 있을 것이다. '글 잘쓰고 싶다'는 생각은 하루에 한 번쯤은 하게 되는 것 같다. 잘 쓴 글을 보면 감탄과 함께 패키지로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내 글에 대한 자부심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허접한 글'이라는 부끄러움을 지울 수도 없다. 그러면서 나로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스타일의 글을 선망하곤 했는데 그 실체가 프로이드식 남근선망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Mansplain과 더불어 정희진 선생의 글을 곱씹으면서 얻은 통찰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제껏 이런 글을 선망해 왔었다. 약간 싸우려드는 태도는 기본(음메, 이것이 기선제압!). 그리고 그 호전성은 2막에서 지적 편력을 두루 보여주는 패션쇼로 이어져야 한다.(지...지금 인용된 이 책을 다...다 읽었다는 거야?) 명쾌한 결론으로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마지막 칼부림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짝짝짝, 브라보. 이건 뭐 탄탄하구만. 반론의 여지가 없어!) 이런 글을 멋진 글이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해서 언젠가는 나도! 하는 생각을 했었다. 싸우려는 태도와 지적인 패션쇼가 없어서 잔잔하고 밋밋하여 멋진 글이 정희진 선생님의 글이다. 짧은 칼럼 하나를 읽고도 감동을 받게 되는데 그 어떤 전의를 불태우게 되는 그런 감동이 아니다. 지성의 땅을 개척하고 싶은 의지가 아니라 그저 대지에 안기고 싶은, 지혜의 어머니 품에 귀의하고픈 욕구랄까. 내겐 그렇다. 여자 정희진 선생의 글이.

 

 

#3 카렌 호나이

 

에니어그램 공부를 하며 오래도록 이름만 들었던 정신분석학자이다. 원저를 읽어보겠단 생각을 하지 못하고 몇 년 동안 통성명만 한 채로 지냈다. 작년에 원저 한 권을 읽고 빠져들어 버렸다. 그래봐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이 한 권이었는데 웬일인지 올해 몇 권의 책이 한꺼번에 번역되어 나왔다. (흠, 나란 여자 유행을 선도하는 여자) 프로이트의 남성중심적 이론을 여성적 입잡에서 반박하는 대표적인 여성 정신분석가이다. <나는 내가 분석한다> <내가 나를 치유한다:신경즉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책 제목을 보시라. 나는 궁극적으로 사람에겐 자신과 타인을 치유할 치유인자가 있다고 믿는다. 에니어그램 강의에 매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에 대해 던지는 (아프지만) 정직한 질문은 어떤 방식으로든 치유의 길로 안내한다고 믿는다. 전문상담가의 분석과 상담, 목사님의 치유기도보다 더 능력있는 도움은 성장하겠다는 자신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치유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카렌호나이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우리의 성격유형은 성격장애와 건강한 성격발달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다. 여전히 융(Carl Jung)빠이긴 하지만 호나이만의 접근은 다시 한 번 컴다운 시킨다. 빨리 읽어치우고 싶은 조바심 워워~ 마인드와 마인드로 접속하고픈 심정이 된다. 다시 한 번 지성의 대지에 안겨 머무르고 싶은 마음. 10월 10일자 '정희진의 어떤 메모'는 무려 호나이의 <내가 나를 치유한다>와 영화 <사도>의 콜라보였다. 깜짝 놀랐다.

 

 

#4 정띤띨

 

여자라서 햄볶아요.

 

 

=====

 

덧)

이 글을 쓰고 제이언니 님이 블로그에 놀러 갔는데요.

여성 글쟁이2 이런 글이 있는 겁니다.

그 글을 읽다다 1년 전에 쓰셨다는 글까지 읽었는데,

(1년 전에 그 글을 읽은 기억이 나거든요>)

제가 무의식적인 표절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겁니다.

제이님 블로그에서 짧게 정리되었지만 늘 잘 제 생각과 마음을 살피도록 해야겠습니다.

내가 안다고 하는 것, 심지어 나의 통찰이라고 하는 것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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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yjay 2015.10.27 21:42

    저는 카렌 호나이라는 이름을 알게된 것만으로도 슨스리언니에게 많이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 저도 놀러와서 댓글 남기네요. 언니 화이팅!

    • BlogIcon larinari 2015.10.28 11:49 신고

      (이번엔 제가) 꺅, 제인언니다!^^
      이글에 고해성사의 댓을을 붙였는데요.
      그리고 제이님 글 링크를 하려 했는데 몇 번 하다 안 되어
      포기했어요. ㅎㅎㅎㅎ
      제가 제이님께 소개할 저자도 있다는 것에 어깨가 으쓱해져요.

    • BlogIcon larinari 2015.10.28 11:51 신고

      라고 쓰고 위에 보니 본글에 시험 삼아 붙여본 링크는 열리네요.
      제대로 고해성사의 글을 붙이라는 뜻인가봉가.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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