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타 참석하기 위해 미국 시카고에 갑니다. 탑승하고 휴대폰 끄며 온라인 연결이 끊어진 이후 새벽 2시에 맞춰 포스팅되도록 예약 걸어두겠습니다. 이후 30 시간 쯤 후에는 가장 멀게 지구를 돌아 시카고에 도착해 있을 것입니다. 살아 있을 게요.

전체집회에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출국 한 주를 앞두고 가장 어려운 시간, 남편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미 앓고 지나왔지만, 재감염 우려 때문에 집에서 격리하지 않고 밖을 돌고 있습니다. 하필 이때 확진이라니! 좀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설교문을 완성해서 보냈는데. 징징거리고 싶은 입에 자물쇠 채우고 로봇처럼 글을 썼습니다. 몸이 근질거려서 보니 다리부터 발진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설교문을 보내고 난 다음 날에는 발진이 얼굴까지 올라왔습니다.

막막한 마음으로 아침 기도 하는 중 누가복음 2장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기도가 영혼 깊은 곳에 들어와 메시지성경 버전의 본문을 써서 책상 옆 창에 붙이고 기도합니다. 인간 이성으로 1도 이해되지 않는 일에 순종하는 마리아의 수동성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어느 신부님께서는 ‘창조적 수동성'이라고 하셨습니다. 무력하거나 게으른 수동성이 아니라 ‘창조적’ 수동성, 구원을 잉태하는 수동성입니다.

머리는 준비하지만 몸과 마음으로는 계속 도망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믿어주시는데 나는 나를 믿지 못하고 비천한 나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 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제 마음에 하나님 외 누구도 '갑'으로 세우지 않겠습니다. 지난 코스타에서 만났던 청년들의 눈만 생각하겠습니다. 저의 이 작고 비천한 존재 안에서 그분이 길어 올리실 것이 있으면 길어 올리시라고. 주의 여종이오니 마음대로 쓰시라고 드리고. 제 영혼 하나님 앞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

마리아의 찬가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목요일에는 지도자과정 종강이 있었습니다. 포트락 파티로 먹을 것이 풍성하고, 먹을 것만큼이나 한 학기 지나온 선생님들의 나눔이 아프고 기쁘고 고맙고 자랑스럽게 풍성하고요. 마치고는 연구원들이 깔아준 "환송의 수다" 멍석에서 온몸 열꽃이 피었어도 다 빠져나가지 못한 것들을 말로 내놓았습니다. 연구원들, 나음터에 연결된 벗들, 동생들, 교회 집사님들이 보내오는 따스한 격려, "기도하겠다"라고 굳게 다짐해주는 마음들로 힘을 얻습니다. 어제 아침엔 비가 그치고 파란 하늘이었습니다. 좋은 날씨에 사야 할 것들을 사러 다닐 수 있었습니다. 밤에 채윤이랑 올리브영에 다녀오는데, 하늘 빛깔 하며 눈썹 같은 달이 조화롭습니다. 사진 찍고 나중에 보니 하늘에는 달, 땅에는 그린라이트 이것도 조화롭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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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 직전입니다. 오늘 아침 예상치 못한 일로 안팎의 조화가 깨져버렸습니다. 미리 써둔 이 글 다시 읽으니 사람 마음 하룻밤 사이 이렇게 멀리 올 수 있는 건가 싶습니다. 막막함의 끝입니다. 아직도 끝이 아닌지 모르겠지만. 도망가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몫을 하겠습니다. 기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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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2.07.05 01:43 신고

    기도의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벗들에게 알려드려요. 저는 장장 28시간, 아니 실제로 30시간의 여정으로 시카고 휘턴 대학에 잘 도착하여 하룻 밤을 지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컨디션이 좋은 100% 연결된 벗들의 기도임을 알고 있습니다. 휘튼에는 제가 처음 코스타에 와서 찍어 놓은 제 나무가 있어요. 여전한 그 나무에게 인사를 했고, 조금 전에는 그 나무 옆에서 함께 온 딸 채윤이와 연구소 다슬샘과 함께 마리아의 찬가를 읽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제 시선을 끌더니 제 나무에 가서 앉대요. 거기 앉아 우리의 기도에 함께 했을 거예요. 고맙고, 고맙습니다.


  2. BlogIcon healed 2022.07.06 14:20 신고

    언니의 여정에 동반자를 주심에 늘 감사드립니다...기도했고 기도하고 기도하겠습니다!!

  3. 씩씩한 🍎 2022.07.14 07:15

    강의끝자락에 돌아가며 답하는 시간, 인사도 안하고 부리나케 도망가는 절 바라보던 사모님의 눈빛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 BlogIcon larinari 2022.07.22 08:53 신고

      씩씩한 애플, 이 아름다운 애플 님은 누구일까요? 기억과 기도, 그리고 이렇게 찾아주심 고맙습니다!

  4. 씩씩한 🍎 2022.07.26 23:39

    저는 경북에 있는 함창영광교회 사모입니다.
    서울 아현성결교회에 있을 때 사모님의 강의를 들은적이 있어요^^ 작은 카페를 통채로 빌리셨을 때인데 아마 저를 만나면 기억하실수도 있어요^^*

    • BlogIcon larinari 2022.07.30 10:06 신고

      아, 동교동 카페바인에서 뵈었군요! 언젠가 다시 뵙고 기쁘게 인사 나눌 때가 있으면 좋겠네요 :)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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