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밀도 있게 시간을 썼던 적이 없고, 요즘처럼 주어진 오늘의 일에 집중하며 살아본 적이 없는 듯합니다. 연구소 강의와 연구소 외의 강의, 대학원 공부와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일. 어느 것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살아내고 있습니다. 학기말이라 과제가 몰려 있고, 어느 과제 하나 허투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완벽주의 같은 건 아니고, 과제마다 연구하고 써내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고통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과장하면 죽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데드라인에 맞춰 하나 씩 미션 클리어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7월 코스타 강의만 없다면 “바쁘다" 정도로 이즈음의 나날을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 모든 일을 잘 끝낸다 해도 '자유'가 먼 곳에 있습니다. 코스타 준비에 비하면 하나만으로도 죽겠다고 설레발쳤을 학교 과제는 껌입니다. 껌 씹으며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열리는 미주 코스타에 갈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D-7, D-19, D-22는 코스타 관련 각각 의미 있게 부담되는 카운팅입니다. 아래와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 그대로입니다. 블로그 친구들께 기도 부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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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회자, 여성

 

코스타 간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올해 코스타는 대면으로 시카고에서 열린다고요. 이어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미주 코스타 사상 처음으로 전체집회 강사에 비목회자, 여성이 서게 되었다고요.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감탄사 말고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의 기립박수를 쳤습니다. “잘 하셨네요! 정말 좋은 결정이에요!” 37번째 코스타라니 37년 만의 일이네요. 이게 37년 걸릴 일이었군요! 지구의 반이 여자이고, 목회자와 비목회자의 비율은 헤아려지지도 않는데. 이제야 비목회자, 여성 주강사라니요! 너무 늦은 일이라 더 놀랍고, 용기 있는 아름다운 선택입니다. 기립박수에 엄지 척. 감동이 쉬 가시지 않아 심장박동이 채 정상으로 회귀하기 전

 

'그 자리에 올 수 있겠냐’' 하셨습니다.

"? 누가요?"

 

세미나 강사로 초대를 받을 때마다 '나 같은 무지랭이 강사를' 하는 심정인데 전체집회 강사라니요? 가당치 않은 일이라 마음으로 당장에 거절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 갑니다.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첫 번째 비목회자 여성 주강사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지랭이가 그 자리에 적합한지 확신은 없지만, 코스타 간사님들이 강사 인선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거든요. (또 솔까말, 무지랭이 강사지만 결국 가서 하고 나면 인기 강사 되고 말더라고요오.... 흠, 내가 코스타 간사님들과 페친이던가 아니던가)

 

당연한 거절의 이유 중 중요한 것은 주제였습니다. 주제가 무려 잔치입니다. 벌써 올해 주제를 알고 있었습니다. 잔치라니, 올해는 온라인으로 코스타를 한다 해도 세미나 강의도 할 수 없겠구나! 잔치, 파티, 축제는 나와는 얼마나 동떨어진 일인가 싶거든요. ‘신앙 사춘기를 빌미로 무기력과 냉소를 표방하며 살아왔고, <슬픔을 쓰는 일>의 저자로 죽음, 상실, 슬픔의 페르소나로 글 쓰고 강의하고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제 안에 잔치에 합당한 감정이 있나 싶습니다.

 

시간, 아니 시간 속에서 들리는 어떤 목소리에 스스로 설득되었습니다. 초대장을 들고도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는 마음을 전하면 되지 않겠느냐고요.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힘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갑니다. 알리고 싶었습니다.

 

_202253, 정신실의 페이스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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