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으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날이다. 새 만남을 준비하는데 마음이 구닥다리라... 어쩌지. 시간이 없어도 산책 한 바퀴 하고 올까, 싶은데 시간이 없으니 안 되겠다. 하늘이 어둑어둑, 비가 쏟아질 기세다. 비가 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나갈 텐데... 일기 예보를 보니 비가 곧 온단다. 우산을 들고나갔다. 바로 비가 후드득 떨어진다. 더, 더, 더... 더 와라, 더 와라 했는데. 오란다고 더 온다. 쏟아붓는다. 우산 버리고 맨몸으로 맞고 싶다. 흠뻑 젖고 수습할 시간이 없으니 조금 옷이 젖는 것으로 만족해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을 때 막지 말라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을 격려하는데. 정작 틀어막고 있는 나를 본다. 나중에, 일 다 처리하고, 책임을 다하고 울어야지. 그렇게 나중을 기약하고 집어넣은 눈물이 뭐가 아쉬워 내 말을 듣겠냐고. 이제 옆에 아무도 없고, 망가져도 괜찮은 때가 됐으니 지금이라고. 이제 울자고. 내가 눈물이라도 다시 안 나오겠다. 복수의 칼을 갈겠지. "아~따, 있을 때 잘했어야지"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돌아오겠지. 내가 준비되지 않은 때,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를 맞고 싶었던 건 틀어막은 눈물을 달래서 꺼내보려는 마음이었는지... 우산 살을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 둘이 꼭 주르르 흐르는 눈물 같다.

우산과 풍경이, 아니 우산에 새겨진 '진실을 인양하라'와 풍경이 묘하게 조화롭다. 걸으며 마구 찍어 보았다. 진실을 인양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진실은커녕, 힘도 없는 주제에 뭘 끌어올리는 것이 쉬운 일인가 말이다. 진실이라고 낑낑거리며 끌어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뭐 해? 미친 사람 같애." 한 마디 들으면 "그러게, 나 뭐 하지? 나 지금 뭐해?" 헛갈리면서 총체적으로 스텝이 꼬이게 되고. 사력을 다해 끌어올리던 것이 진실인지, 버려진 신발 짝인지, 플라스틱 쓰레기인지 분간도 못하게 된다. 꼬여라, 꼬여라, 꼬여서 넘어져라 하던 내 안의 구닥다리 목소리가 승전가를 부르며 웃는다. 인양 따위! 진실 따위! 대충 살아아아아.... 어차피 진실 따윈 없어어어...

 

그래도 한바탕 울고, 아니 한바퀴 돌고 나니 구닥다리 마음이 조금 밀려 나갔다. 목욕재계하고 카메라 각도 맞추고 강의안 한 번 읽으려 앉았는데 창 밖이 환하다. 어느새 구름 걷히고 하늘이 하늘색이다. 새로운 시간, 새로운 진실을 인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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