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귀에 꽂히는 경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결혼을 앞둔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언니들의 조언이다. 경험을 우려낸 진국,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듬뿍 담긴 가르침이다. "시부모에게 처음부터 잘하지 마라. 잘하는 며느리에게는 계속 더 기대한다. 아예 처음부터 잘할 생각을 하지 마라"


영양가 높은 말인 건 알겠으나 동의가 되지 않았다. 결혼한 언니들 백이면 백 '시'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고 시켸(식혜 켸켸)고 일단 뱉어내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다 싶었지만서도. 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도 있고, 남들 하는대로 하는 건 무조건 안 하고픈 반골 기질도 있는지라. 무엇보다 관계 시작하기도 선부터 그어 놓는 것이 불편했다.


잘하고 말고 생각하지 않고 시부모님과 관계를 맺었다. 미리 규정하지 않으려 했고, 할 수 있다면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려 하다보니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못하)는 관계가 되었다. 착한 며느리 소리 듣고, '너는 며느리가 아니라 나의 상담자이며 치유자다'라는 극찬도 들었지만 어느 시점 정신을 차렸다. 아, 잘하는 며느리를 향한 기대는 끝이 없구나! 언니들 말이 맞았네!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자만심의 결과였다. (불평등한 결혼 구조 안에서 며느리로 사는 문제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시점 뒤늦게 경계를 설정하고 그럭저럭 편안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부터 잘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게 아니었어, 대충 말 안 듣고 살살해야 했어' 시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런 마음이 들면 복잡해진다.  내가 고분고분하니까 나를 너무 막 다루시는 거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 이만큼 했으면 저만큼은 해주셔야지 갈수록 더 팍팍하게 구시나.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인 줄, 보자보자 하니 보자기인 줄 아시나 본데. 확 절교를 할 수도 없고!


때때로 살아야 할 이유가 흐릿해질 때가 있다. 일상의 부조리를 담기에 내 마음이 작거나, 마음의 그릇 크기에 비해 부조리의 크기가 크거나. 오늘의 부조리를 견딜 힘은 '의미'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흐릿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때때로 무의미의 숲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데, 그때 내가 화살을 돌릴 유일하고 만만한 분이 하늘 아버지. '착한 사람들 뒤를 더 잘 봐주셔야지 갈수록 험지로 내모십니꽈? 이래도 되는 겁니꽈?; 삿대질 하고 원망해본다. 강상중이라는 뜬금없는 귀인을 만났다. <마음> <고민하는 힘> <어머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차례로 읽으면서 마음이 마음이 조금 풀렸다. "살아야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충만하지"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Yes라고 말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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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hiker 2017.11.07 07:21

    이 분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어볼까 고민하는 중인데 사모님의 추천이 결정에 한 몫하네요..^^ 위의 책들중에서 한 권 추천하신다면? ^^

    • BlogIcon larinari 2017.11.08 10:16 신고

      이분 책을 한 권도 안 읽을 수는 있겠지만 한 권만 읽을 수는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제 상황과 취향에 딱 들어맞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
      저는 유일한 소설 <마음>을 우연히 읽으면서 사귀게 되었는데요. 저자의 사유를 순차적으로 따르자면 <고민의 힘>으로 시작하셔야 할 것 같아요. 동지 만난 것 같이 기분이 좋네요. ㅎㅎ

  2. Shiker 2017.11.08 15:47

    고맙습니다.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분갈이 시점은 어떤 변곡점이다.

무성한 잎을 보아하니 보이지 않는 뿌리가 숨 쉴 공간이 부족하겠네,

생각하며 화분을 갈아줘야지 싶어도 쉽게 되질 않는다.

분갈이 할 시간이 없거나, 갈아줄 더 큰 화분이 없거나.


2000원 짜리 두 개(어쩌면 세 개)를 사서 주먹만 한 화분에 심어 키운 스파트필름이다.

몇 차례 분갈이 하며 몇 년을 지났다.

뭔가 꽉 찬 느낌이라 갑갑해 보여 신경 쓰이고 미안했지만 마땅한 화분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개국 이래 최장 휴일이라는 2017년 추석이라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 모시고 율동공원 나들이 다녀 오는데 집앞 나무 사이에 멀쩡한 키다리 화분이 서 있다.

'제 아이를 부탁합니다.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누군가 놓고간 아기 같이 말이다.

냉큼 주워 와 분갈이 작업을 했다.

언니가 더는 못 입는 옷을 동생이 물려받고, 도미노처럼 그 다음 동생도 득템하는 형국이다.

빈 화분을 그 다음 큰 아이가 차지하고, 그래서 생긴 자리에는 또 다른 녀석이 심겨진다. 

아침에 걸레질까지 해놓은 거실은 흙대밭(?)이 되고....... 

그리하여 작은 옷을 입고 숨도 못 쉬던 스파트필름은 화분 서열 2위로 등극하였다.

1위인 벤자민이 사춘기 지나 키 다 큰 성인으로 입양된 놈이니,

실질적으로 1위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비좁은 거실에 어디 둘 데도 없지만 없는 공간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난 엄마 덕에 좋은 자리까지 잡았다.

해질녘이면 붉은 저녁 햇살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길, 

노트북 앞에 앉은 엄마의 눈길이 가장 많이 닿는 명당자리이다.

한 잎 한 잎 물로 닦아주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눈을 뗄 수가 없다.

에고 이뻐라, 에고 이뻐라. 주먹만 한 화분에서 어찌 이렇게 자랐는가, 기특하기도 하여라.

혼자 간직할 수 없는 감동에 이 녀석 자랄 동안 물 한 번 주지 않았던 김종필 아빠에게 강요한다.

"여보, 얘 좀 봐줘. 큰 박수가 필요합니다! 박수 쳐! 세게 쳐!" 


성.장.

가끔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오는 질문, 나도 내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나에 대해 이 단어를 찾았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 욕구가 지나쳐 집착이 되고 이것은 결국 중독이 아닐까 싶은 열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쓰는 열정, 나답게 강의하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는 열정.

내 마음 그대로 투사가 되어 꾸준히 자라는 식물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사람에게도 투사가 되어 성장하는 사람은 다 예쁘다.

이미 훌륭하여 더 자랄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없다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


감.사.

말 없는 식물에게서 감사의 태도를 느낀다.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비춘 감정이지만 말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많이 불러줬던 노래, 정말 귀여운 노래인데 부르다 자주 울컥했던 노래가 있다.


포도밭에 포도가 땡글땡글 땡글땡글땡글땡글 잘도 열렸네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정말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위에 계신 하나님이 키워주셨죠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는 물론이고 주일학교 찬양 선생님 할 때도 많이 불렀다.

'가사 바꿔 부르기'로 사과, 배추, 호박, 고추, 딸기.......에 의태어까지 바꿔서 참 재밌게도 불렀다.

어떻게 가사를 바꾸든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아니죠'에선 늘 은혜를 받았다.

누워서 빽빽 울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사람 되기까지,

오늘의 내가 이나마 사람 구실 하면서 살기까지,

나 혼자 크질 않았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는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연결해주신 수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자기의 것을 나눠주며

지금 여기의 내가 있다.


공들여 키우는 창가 책꽂이 위의 화분 중에는 그런 놈이 없다.

자라지 않는 놈, 제 혼자 큰 줄 아는 녀석은 없다.

사람은 너나 없이 제 혼자 이룬 줄 알기에 감사치 않는다.

쑥 자라 어른이 된 화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침 저녁으로 보듬은 나의 공을 생각하고,

나 몰래 내게 사랑과 인내를 베푼 수많은 손길과 공로를 상상해본다.

감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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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김현승翁의 어릴 적 일기를 빌자면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이다. 똑같은 일과 비슷비슷한 염려, 여전히 감내해야 할 것들이 반복되는 하루이다. 이런 일상 속에 심장 뛰는 일이 생기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심장 뛰는 놀이가 생겼다. 발품팔이 온라인 중고매장 찾아가 득템하기. 열정 솟아나는 새로운 놀이이다. 절판 도서 한 권을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 취향이 다른 듯 비슷해서 내가 찜한 절판 도서들을 나만큼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사람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오프라인 중고매장을 검색하던 어느 날, 기다리던 책 <남성성과 젠더>가 합정점에 떴다. 채윤이 레슨 가는 날 잡아오라 하기엔 늦을까? 무리해서 돌아돌아 다녀올까? 고민하는 와중에 이미 판매되고 사라짐. 허망. 딱 한 권이 알라딘 중고매장 전주점에 살아 있다. 주일에 전주에서 강의가 계획 되어 있었다. 터미날 투 강대상까지의 픽업 의전을 마다하고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지. 중간에 알라딘 매장에 들러야지,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런 와중, 잠실 신천점에 한 권이 또 떴다. 지하철 타~아고, 버스 아고 달려가서 체포했다. 몇 번 책꽂이 몇 번째 칸 찾아가 눈알 굴리며 더듬다 동공 고정. 떨리는 손으로 책을 뽑는 느낌. 말로 표현 못함. 으아아아.


운동 삼아 서현역의 온라인 중고서점에 다니며 쏠쏠한 재미를 보기 시작. 쏠쏠쏠쏠한 재미를 위해 중고매장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된 것이다. 새로 생긴 동탄점에, 분당 야탑점에도 가 착한 가격으로 위시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낚아왔다. 아주 급한 책이 아니라면 중고가 나올 때까지 검색질을 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하루 한 번 정도 검색창에 제목을 치고 엔터를 누를 때마다 (얼마 만의) 뛰는 가슴 한껏 즐기면서 말이다. 남편과 서로 책 사는 문제로 은근 갈구고 눈치 주고, 갈굼 당하고 눈치 보는 일상이다. 당신 책 또 샀어? 어, 이번 설교에 꼭 필요한 책이야. 정신실, 책 또 주문했어? 아아, 준비하고 있는 강의가 있는데 주제에 딱 맞는 책이 있더라고. 피차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며 책을 사들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고서점에서 엄청 싸게 샀어' 이것은 기분 좋은 면죄부가 된다. 


책 읽는 즐거움이 없다면, 책을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이 깊은 공허감과 결핍감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누군가 내 어릴 적에 진로 코칭을 잘 해줬다면' if로 시작하는 상상의 나래를 자주 펼치곤 한다. 중고등 때는 영어가 정말 좋았다. 모두 평등하게 과외를 할 수 없었던 중학교 시절에, 시험 때마다 영어과목은 더 공부하할 것이 없을 정도로 달달 외우고 또 보고 또 보곤 했다. 틀릴래야 틀릴 수 없는 상태로 시험을 치곤 했으니. 영어가 재밌고 좋았다. 영어를 전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 2학년 때는 사회학을 세미나 수업으로 듣고 '아, 내가 사회학이 딱 내 체질에 맞는구나!' 싶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여성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원 준비를 한 적도 있다. 화해 불가능으로 보이는 기독교와 페미니즘 사이에서 길을 찾고 싶었었다. 포부는 컸으나 사소한 일로 포기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쉽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아쉬움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이, (영어, 사회학, 여성학, 심지어 철학까지) 미답의 전공지에 대한 결핍감이 땔감이 되어 오래도록 독서열을 불태우고 있는 지 모르니까. 덕분에 이 나이에 이런 설렘도 누리고 있으니까.


도서 구입비 지출에 대한 부부 상호 갈굼도 독서열을 활활 태우는데 한 부채질 하고 있다. 훔친 사과과 맛있다? 몰래 하는 일이 짜릿하고 더더더 갈증 속에 몰입하게 되는 법. 몇 달에 한 번씩 '우리 이제 당분간 책 사지 말고 있는 책 다 읽고 사자. 읽은 책 또 읽어도 돼. 사실 다 까먹잖아. 맞아, 맞아' 남편과 다짐하곤 한다. 연기하는 듯한 말투며 필요 이상으로 꽉 쥔 손을 보면 '저거 저거 오래 못 가지' 피차에 이미 알고 있다. 그 과장된 약속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맛에 몰래 또 책을 주문하곤 하지. 보고 싶은 책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면 이렇듯 맛있는 책읽기를 누릴 수 없을 테다. 절판 도서를 찾아 헤매면서 '책을 쓰려면 이런 책을 써야지. 내가 낸 책들은 한 번 읽히고 책꽂이 자리나 차지하는 책. 나무야, 미안해. 지구야, 미안해' 자조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도 어쩌랴. 내 수준과 한계가 여기까지인 걸.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젊은 날의 결핍이, 일상 속 결핍이, 결핍감이 독서의 즐거움에 이르게 했으니 부족함과 한계는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남편 쉬는 날에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함께 보았다. 후기 수다를 떨다 '안 되겠다.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싶어 중고매장 검색을 하고, 가장 싼 책이 동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려갔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남편이 붙들더니 이틀 새 읽어 버렸다. 이제 내가 읽을 차례. 책만 보는 바보 부부, 스튜삣! 이렇듯 경제적으로 독서라니, 그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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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7.09.14 14:22

    여긴 누군의 서재? 혹은 책방? 완전 그뤠잇! 책에 빠져사는거 부럽당. 난 요즘 책이 머리에 잘 안들어와 스튜삣!

    • BlogIcon larinari 2017.09.18 19:24 신고

      내년 여름 수련회 답사로 차 대천 해수욕장 근처 선교사 수양관(?)에 갔었는데요. 57년 된 건물, 처음엔 선교사들을 위해 베이커리 하던 공간이었다네요. 운치가 끝내 줬어요. ^^



올봄, 남편은 들꽃과 사랑에 빠졌다.

'갔다 올게' 하고 나가면 한 30분 안에 카톡, 카톡, 카톡, 카카카카..... 카톡.

길가의 흔히 보던 꽃들이 줄줄이 폰으로 들어온다.

입만 열면 새로 발견한 꽃, 그 꽃의 이름을 읊어대며 헤벌쭉 하는 것이

꼭 첫손주를 본 할아버지 같다.


사랑 하라, 에만 골몰하느라 사랑을 그저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사람은 사랑을 제조할 수가 없는 존재이니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받아서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는 사랑에만 골몰하다 보면 말라 비틀어진다.

쥐어 짜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허다한 이유일 지도.

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오는 사랑을 받아 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일이다.


올봄, 남편은 길가의 작은 꽃들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촉촉해졌다.

나도 길 위의 작은 꽃들로부터 사랑을 채운다.

'꽃 중의 꽃은 인꽃이여'

아기 하나를 두고 어른들이 죽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을 해설하는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나처럼 아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기들을 '인꽃'이라고 불렀다.


키 큰 나무가 푸르게 둘러 싼 율동공원 산책길에는 심장 뛰게 하는 인꽃이 흔하다.

유모차에 갇혀 형언불가의 멍멍한 표정으로 팔을 흔드는 인꽃,

어구구구구...... 넘어질라, 넘어질라, 아장아장 인꽃,

일상의 근심 걱정 한껏 지고 묵직하게 걷던 발걸음이 1g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이 작은 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 고여있던 평화가, 사랑이 풀려나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제 산책 마지막 코스에서는 할아버지 품에 안긴 인꽃 한 송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길 오른쪽으로 공원 매점이 있는데 매점 앞에 풍선과 장난감이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시무룩,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가던 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급해서 말도 못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매점이다. 매점 앞 풍선이다.

꽃을 든 할아버지는 당황.

가자, 가자..... 하며 직진이신데 꽃이 뒤틀린다. 뒤틀려 품을 빠져 나오려 한다.

그 뒤를 걷던 더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껄껄 웃으신다.

"볼 일이 있다잖아요. 꼭 가서 볼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 껄껄껄"


급하게 생긴 막중한 볼 일을 피하지 못하고

꽃을 운반하던 할아버지는 발길을 돌려 매점으로 가셨다.

공원을 빠져나올  때까지 올라가서 실룩거리는 입꼬리가 제자리를 못 찾는다.

마음이 간질거리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작은 사람 꽃. 그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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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 2017.06.20 23:41

    글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아요♥

  2. 2017.07.19 15:41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7.20 20:20 신고

      혹 블로그에 올라와 있을까, 건너가 보니 없군요! 언젠가 실물로 한 번 보여주세요. ^^



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2008년 5월에 이 기도문을 블로그에 걸었던 적이 있다. 본격 영성 공부에 발을 들여놓고 어느 강의 시간 시작 기도로 낭송되었던 기도문이다. 꼭 10년이다. 그때는 그 시작이 '본격적' 시작인지 알지 못했고 10년 후인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다. 저 기도문이 예언처럼 나를 이끌어가 '일생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는 길' 접어든 것이다. 에니어그램 연구소에 발을 들여놓은 그 학기부터 이번 학기까지 무엇이가를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책이 그 다음 읽을 책을 끌고 나오듯, 어느 강좌는 그 다음 강좌로 나를 이끌었다. 매 학기 새롭게 열리는 배움의 문은 그분의 이끄심이라 해야 비로소 설명되는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난 10년, 20학기 동안 3학점 짜리 강의를 한 학기도 쉬지 않고 들었다. 총 60 학점을 이수했으니, 아니 한 학기에 두 과목 수강도 했으니 60학점 그 이상. 남편이 '야야, 니네 엄마 박사과정 한다. 박사 공부한다.' 놀리던 것이 장난이 아님이다. 


지난 주에는 4학기 짜리 공부를 하나 마쳤다. 지난 시간 낯선 공간 낯선 문화를 찾아 헤매며 외롭게 배워왔던 것들을 '철학'이라는 실로 한 줄에 꿰는 시간이었다.  2008년 3월, 첫 강의 자기 소개 시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가끔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걸 다 깨달아도 되는 걸까? 나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왔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한 분이 그 말에 빵 터졌던 기억도 난다. 농담이었지만 살짝 진심이었다. (자아팽창, 갑 중의 갑었지)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내 인생 처음으로 이 고백을 하게 되었다. 껌 씹으면서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니었다. 캄캄한 무지의 밤을 여러 날 보내며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던 막막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이 책을 출간하고, 또 출간하고, 여기 저기 얼굴을 알리면서 뭔가 한 방 해보겠다는 남모르는 야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다행히 결코 놓지 않았던 배움의 끈이 나를 잘 붙들어 주었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앎의 한계에 부딪히면 또 책을 읽고, 새로운 저자를 만나고, 또 공부하고, 그러다 글을 쓰고, 새로운 강의를 만들어내며 살아 있다고 느꼈다. 배움과 가르침 사이에서 야망이 꿈틀대고, 타인과 비교하며 조바심 내는 순간도 많았지만 갈수록 내 속도와 한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보는 '배우는 자의 기도'는 한 자 한 자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 누구신지 참 기막힌 커리큘럼으로 10년 학사관리 해주셨다.

# 그분 참! 그동안 퍼부은 시간과 돈을 생각해서라도 박사학위 하나 하사 하실 일이지.

# 야망은 없다. 그렇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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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지니 2017.06.07 01:44

    기도문 꼼꼼하게 여러번 읽어보며 한줄 한줄 의미 새겨보았네요 ..^^




[나를 팝니다]


수년 동안 한 어린이집의 음악수업을 해오고 있다. 음악치료사로서 영유아 음악수업은 같은 요리를 다른 장소에서 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요리를 어느 상에 올리느냐의 문제이다. 음악교육이라고 하지만 치료사의 정체성을 벗어날 수 없다. 뭔가 조금 다른 아이, 어떤 이유든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아이에게 절로 눈길이 간다. 조금 더 마음 써서 기회를 주고 격려하게 된다. 아이의 문제가 순수하게 아이만의 문제인 경우는 없다. 부모에게 관심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오지랖이라면 남부럽지 않은 여자이기에 때로 부모상담도 했다. 게다가 교사교육도 했다. 교사를 다독여 편안한 정서를 가지게 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에 몰입할 때 나는 행복하다.


초, 고정수입의 필요를 절감하며 짧고 깊은 고민을 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당당하게 나를 팔아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일주일에 하루 어린이집에 상주하면서 부모상담, 교사교육, 아이들의 발달체크를 전담할 테니 강사료 말고 월급을 좀 달라. '나를 사달라'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지만 당당하게 내놓았다. 협상이 타결, 아니 제안이 수용되어 '토닥토닥 상담실'이라는 이름으로 비공식적으로 하던 일을 정식으로 하게 되었다. 어린이집에 전문 상담교사가 비치되는 건 대한민국 최초일 것이다. 어린이집 교사의 학대가 한 번씩 검색창을 휩쓰는데 아이, 교사, 부모를 함께 돌보는 일을 전담하여 적극적 방어를 한다는 의미. 기꺼이 나를 비치시키고, 심지어 고상 이미지 지키느라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 '돈'을 요구하였다.


이렇듯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나를 팔아본 경험이 있던가.

셀프 토닥토닥을 무한으로 해주고 싶은 일이다.



[나를 팔지 않습니다]


선교단체 수련회 같은 곳에서는 강의를 녹화하고 녹음하는 경우가 많다. 녹화하되 내부 공유만을 허락하곤 한다. 온라인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불허이다. 큰 의미를 부여하며 정한 원칙은 아니다. 강의라고 하지만 대체로 적어도 나는 만남, 소통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 공간과 시간 안에서만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 소중한 현재성이 사라진 채로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나와 수강자들의 모습이 상상만 해도 싫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원칙인데 이 부분에 대해 말로 설명 하다보면 '결벽증 삐꾸아냐?' 하는 느낌을 스스로 받는다. 사실 나는 묻지 않아도 속에 있는 말을 하는 편. 노출에 대한 부담이 없다. 헌데 그런 방식으로 강의를 소비하고 싶지 않은 걸 어쩌랴. 


이번 출간된 <연애의 태도> 홍보를 위해 출판사에서 여러 작업을 하신다. 작업을 위해서 온라인을 탈탈 털어도 강의 영상을 찾을 수 없다 하셨다. 당연하다. 없으니까. 또 앞으로 홍보작업을 위해서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에 나가면 안 되겠나 하시는데 딱 잘라 거절할 수는 없어서 너저분한 말을 늘어놓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딱 자르니 못한 것은 단지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고수하는 원칙이 맞나? 싶어서였다. '방송 출연은 하시겠어요? 인터뷰는요?' 출판사 부장님의 디테일한 질문에 답하면서 '나 판매 원칙'이 명확해졌다. 방송 출연, 여타 인터뷰 등은 다 하겠지만 강의 녹화는 안 하게씀미다! 시대적 요구, 독자들의 필요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이 결벽을 내려놓지 못함에 스스로 답답해졌다.   


집단상담 같은 강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결국 강의를 하고 있고, 강사로서 더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굳이 지켜야할 순결일까? 그러고 보면 결코 가지 않겠다고 하는 강의 자리들도 있다. 어떤 (부류의 유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얼씬거리지 않겠다, 이런 은밀한 똥고집도 있다. 이름을 알릴 기회라도! 아니, 이름을 쉽게 알릴 기회일수록! 그렇다고 유명한 사람 되고 싶은 욕망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아니 그 욕망이 너무 커 주체할 수 없어서 이렇게 비틀거리는 것이다. 이게 나다. 나의 현주소이다. (그 욕망에 압도되어 유혹에 빠진 적도 있다. 서지 말아야 할 자리에 서서 떠들어댄 날, 돌아와 잠 못 이룬 부끄러운 밤이여!)


강사로 나를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한 번도 내 직업을 '강사'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강사, 스타 강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는 청년을 만났다. '사모님처럼'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었다. (야, 나는 그런 사람 아니거등!) 그 친구의 꿈을 기꺼이 응원하는 바이지만 내 장래희망 목록에 '강사'는 없었다. 그러나 강의하는 일이 즐겁다. 몹시 즐겁다. 즐거움에 비례하는 부담과 노오오력이 어려울 뿐이지. 즐거운 이유는 그 부담과 노오오력의 고통 때문이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체험한 끝에 나만의 답을 찾았고, 그것들을 버무려 누군가와 나누는 기쁨이기에 그렇다. 아,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 소중해서 상품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더욱 수동적인 강사가 되겠다.

팔리지 않기 위해서 더욱 몸을 낮추고, 하던 공부와 기도에나 열심을 내야겠다.

팔리지 않겠다. 소비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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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뮨지니 2017.06.02 00:54

    모님... 능력자..^^
    토닥토닥 상담실 짱이에요♡
    그 어느곳에도 교사의 마음을 상담해주는곳...
    있을까요? 굿긋굿

    • BlogIcon larinari 2017.06.02 15:04 신고

      교사의 마음을 상담할 뿐 아니라.
      "선생님, 힘든 부모는 다 나한테 넘겨요." 어려운 엄마들 상담을 떠맡아주기도 하지. 대박이지?ㅎㅎㅎㅎ
      주경야독 생활에 적응은 좀 됐어?^^

  2. 삼지니 2017.06.07 01:25

    우와우, '핵'좋음!!
    중간고사 끝나고 주경야독 생활 적응은 됐고요
    배우고 정리하는 과정은 재미있어서 다행이에요!!
    때로는 체력때문에 괴롭지만 궁극은 '재미'에요.
    요즘 대학원 다니면서 대학원 진학을 꿈꿨던 23살 때가 문득문득 생각나요~

    • BlogIcon larinari 2017.06.08 19:20 신고

      어느 결혼식 가는 관광버스 안에서 얘기했던 꿈들을 하나 둘 이뤄가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구나! ^^

  3. 2017.06.15 14:26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6.20 07:37 신고

      글치, 얼굴을 맞대고 직접 듣는 게 제일이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어요. ^^




아이들 다 키워 시집 장가 보낸 중 늙은 부부처럼 등산을 간다.

며칠씩 아이들 데리고 자동차 여행 다니기도 이제 쉽지 않다.

전문 운전꾼이며 짐꾼인 아빠 일정에 맞춰 체험학습 내고(말하자면 학교 째고) 다닐 적이 좋았지.

청소년 백수인 채윤이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현승이가 있는 한 어려운 일이다.

시험도 마치고 단기방학으로 일주일을 내리 쉬지만 '성수기에는 꼼짝하지 않기'가 가훈 수준이니까.


날씨 좋(지만 미세먼지 가득)은 5월, 결혼기념일 이틀 지난 날에 18년 차 중 늙은 부부는 등산을 한다.

산이 가까이 있으니 우리는 오른다.

집 가까이에 있는, 조금 긴 코스의 영장산 도전.

휴일에도 호젓한 등산길이라 더욱 좋았다.


송충이가 자꾸 머리 위로 떨어져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산길이기도 했다.

제비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닌 것 같다) 딱 한 송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피어 있다.

어쩌면 햇살이 딱 이 작은 꽃을 비춘단 말인가.

제비꽃은 나다.


고3 때 담임 선생님이 영어 선생님에 총각 선생님에 낭만적인 선생님이었다.

영어를 좋아하고 낭만을 동경하고 기타 잘 치는 남자를 무조건 좋아했던 내가,

고3 팍팍한 삶에 생기가 필요했던 내가 선생님을 안 좋아할 방법이 없었다.

가끔 기타를 들고 나타나 노래를 불러주셨다.

'바람이 불어 눈을 뜨면 텅 빈 내 가슴에 사랑이 솟네

누구라도 곁에 있으면 사랑해줄 텐데 내 사랑이여'


나는 늘 선생님 곁에 있었는데 왜, 왜 사랑해주지 않으시냐고요?

선생님의 이상형은 코스모스 같은 여자였다.

우리 반에 정말로 하늘하늘한 코스모스 같은 친구가 있었다.

얼굴이 하얗고, 목이 길고, 키가 크고, 하늘하늘했다.

담임 선생님이 그 애를 제일 예뻐하시는 것이 기정사실이었다. 


친한 친구가 내게 그렇게 말해줬다.

너는 안 돼. 너는 코스모스가 될 수 없어.

앉은뱅이 꽃이야. 알지?

'보랏빛 고운 빛 우리 집 문패 꽃, 꽃 중에 작은 꽃 앉은뱅이랍니다.'

유치원 다닐 때 불렀던 노래. 왠지 그때부터 이 이 노래가 내 노래 같았었다. 우쒸.


작고 귀엽고 웃긴 애를 좋아하시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코스모스는 어렵다! 포기!

선생님 흉내 내고, 놀리고, 골탕 먹이기 작당하는 캐릭터로 잡았다.

꽃 중의 작은 꽃 앉은뱅이 꽃이니까.


오늘 만난 제비꽃은 아니지만 제비꽃 같은 보라 꽃은 작지만 고상해 보였다.

결코 코스모스에 밀리지 않을 자태이다.

조명발인가?

홀로 피어나 스포트라이트 받는 자태가 고고하며 심지어 의연해 보이기도.

제 모습대로 피어나 자기답게 서 있으니 말이다.


세 시간 힘겹게 산에 오른 의미가 충분하다.

저 작은 꽃 한 송이를 만난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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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7.05.03 22:58

    각시붓꽃이라 하옵니다. 보통 무리지어 피는데 어찌 저리 홀로 있을까?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중년은 등산과 함께 시작되는군하 ㅎㅎ

    • BlogIcon larinari 2017.05.08 09:30 신고

      맞아요! 식물 까막눈이지만 붓꽃 모양인 건 알았거든요. ㅎㅎㅎ
      중년의 산행,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주중에 에니어그램 세미나 2단계를 마쳤고, 출간될 책의 서문을 쓰고 표지가 확정되었으니 만세! 시험 끝난 현승이와 비슷한 무게의 '날아갈 듯'한 발걸음으로 산책을 나섰다. 율동공원 가는 길에 참새 방앗간이 하나 있어서 말이다. 요한성당의 서점에 쑥 들어갔다. 칼 라너(Karl Rahner)의 소책자가 쉽게 숨겨진 보물처럼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일상, 아니고 日常. 신학단상 아니고 神學斷想. 책 표지작업에 짧고 굵게 끙끙 골몰하고 난 터이다. 책표지 이렇게 쉬운 걸! 아무튼 보물은 보물이다. 오래 들여다 볼 틈도 없이 문 닫을 시간이라 나가라고 하니 사는 수 밖에. (여보, 충동구매 맞는데 소책자라서 싸. 진짜야 ) 표지만 봐도 얼마나 지루할지 가늠이 되는 저 소책자를 들고 걷는데 어울리지 않게 발걸음이 쾌활해졌다. 딱 마음에 드는 벤치를 찾아 자리를 잡고 천천히 끝까지 다 읽고 일어났다. 이렇게 누리고 떠나보내기에 아까운 좋은 날씨, 좋은 시간이다. 요한성당을 지나 율동공원까지의 산책길,  자꾸 다니다보면 합정동의 마포 강변과 절두산 성지에 버금가는 우정이 쌓일 기세이다.

       



분당에는 키 큰 나무들이 정말 많은데 고개를 젖히고 올려다보게 된다.  하늘과 나무를 동시에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혀끝으로 이 가사가 맴돈다. '나는 기도할 때 나무가 된다. 그늘 되어 쉬게 하는 나무가 된다.' 요한 성당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버스정류장쯤에서 되돌아 바라보니 나무와 하늘과 십자가. 심쿵 아니, 심찢하는 묘한 조화이다. 전에는 키 큰 나무를 보면 시인과 촌장의 노래가 떠올랐었다. '저 언덕을 넘어 푸른 강가에 젊은 나무 한 그루 있어. 메마른 날이 오래여도 뿌리가 깊어 아무런 걱정 없는 나무. 해마다 봄이 되면 어여쁜 꽃피워 좋은 나라의 소식처럼 향기를 날려 그 그늘 아래 노는 아이들에게 그 눈물없는 나라 비밀을 말해주는 나무' 이 노래 속 나무는 내게 천상 '김종필 나무'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제 그는 더는 젊은 나무가 아니다. '마음만은 젊다고!' 우겨도 소용없다. 결혼하기 한참 전 연애를 걸 때부터 이 노래는 김종필 노래였건만. 그때 꽂혔던 가사는 '저 언덕 넘어 젊은 나무'였건만. 지금은 어쩌자고 '그 눈물 없는 나라 비밀을 말(해야만)하는' 중 늙은 목사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쩌자고! 




앉은 자리에서 소책자 한 권 뚝딱 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멀리 보이는 요한성당 뾰족지붕이 보여 카메라를 들었다. 그 순간 쏜살같이 새 한 마리가 지나가며 촬영권 안에 들어왔다. 새는 존스토트 목사님께는 선생님일지 모르나-'새 우리들의 선생님'이란 책이 있다.- 내게는 천상의 메시지이다. 언젠가 영혼의 어두운 터널을 헤매고 있을 때 침묵피정에 참석했을 때였다. 며칠 소리 없는 울음을 많이 울었고 집에 오는 날 아침 산책길이었다. 새 한 마리가 아주 가까이서, 자리를 옮겨 앉으며 짹짹 무슨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못 알아들었지만 알아들었다. '나와 동행하시고 모든 염려 아시니 나는 숲의 새와 같이 기쁘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이 정도로 알아들었고 내 마음은 그 새와 같이 기뻤다. 그때 이후로 새는 내게 천상의 멜로디이다. 정색하고 섰는 칼 라너의 '日常'처럼 많은 경우 일상 속 그분의 태도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이렇다 할 설명도 없이 막다른 길로 몰아대셔서 미추어버리겠는 때도 있다. 다행히 가끔 새를 날리신다. 엘리야에게 새를 통해 먹이를 보내신 것처럼 내게도 가끔 뭘 보내신다. 

   



아이들로 인해 고마운 날들이다. 4월 검정고시를 마친 채윤이는 요즘 알바 중이다. 김밥집 하시는 집사님 가게에 낙하산으로 취직이 되었다. 어릴 적에 그~러어케 메뉴판 만들고, 허공에다 대고 주문받고, 서빙을 하고, 영수증을 찍어대곤 하더니. 채윤이를 보내놓고 세 식구가 자꾸 킬킬거리게 된다. 꿈에서 그리던 그 일을 하면서 떠나셨던 그분이 다시 오실지 모른다. 겉으론 어리바리 무덤덤한 알바생이지만 혼잣말로 어떤 상상놀이에 빠져 있을지 모른다. 낄낄. 퇴근하면서 집사님이 만들어주신 삼각김밥과 김밥을 가져오곤 하는데. 현승이랑 둘이 좋아라 하며 먹다 또 킬킬거린다. '채윤 엄마,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김밥 가져와서 고마워. 혹시 오다가 호랑이가 김밥 하나 주면 안 잡아 먹지, 해도 절대 뺏기지 말고 지켜와야 해' 어제는 알바 마치고 바로 교회로 가 금요기도회 반주까지 하고 온 장한 채윤이였다. 하루는 알바하고 와서 이런다. '엄마, 나는 진짜 감동했어. H 집사님은 집사님이 하시는 일을 정말 좋아하셔. 그리고 집사님이 **언니(집사님 딸) 다섯 살 때 처음 도시락 싸시던 그 마음으로 김밥 만드신대. 내가 보니까 정말 그런 것 같애' 재즈 피아니스트, 디즈니 영화 음악감독, 뮤지컬 배우의 꿈을 또 흘러가고 '김밥집 사장님'이 장래희망 될 기세이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시험을 봐 본 현승이. 물론 제대로 된 시험공부도 난생 처음이다. 영어 수학 열심히 공부해서 첫시험부터 100점 맞을까 걱정을 많이 하더니만. 불행히도 걱정대로 되지는 않았다. 열심히 공부한 후에 만족할 결과를 얻는 맛, 잠을 이겨가며 공부한 후에 날아갈 듯한 마음으로 자전가 타는 맛을 알게 되어 세상 사는 다른 맛을 알게 되었다. '나 공부해야 해서 못 놀아'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중딩. 너무 늦지 않게 공부라는 걸 한 번 해주시니 대견하고 고마울 뿐이다. 산책을 마치고 오는 길에 라일락 꽃 잔치를 만났다. 고3 봄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오던 길, 캄캄한 길에서 어디선가 날리는 라일락 향기에 마음이 간질거렸던 기억이 있다. 라일락 꽃향기는 언제 어디서든 나를 고3, 성내동 골목길로 데려간다. 분당에 살지만 마음은 천당에도 갔다가, 지옥에도 내려갔다 오곤 한다. 고3이 신실이가 되기도 했다, 다섯 살 채윤이의 엄마가 되기도 한다. 이사 첫날의 각인이 무섭다. 실내 온도 23인데 나는 자꾸 춥다고 느낀다. 아침마다 한 번씩 손가락 들었다 내렸다 보일러를 켜고픈 유혹에 빠진다. 외출할 때마다 무겁다 싶게 옷을 입게 된다. 건물 현관만 나가도 꽃이 흐드러지고 초록 나무들이 따뜻한 바람에 흔들리는데 말이다.


분당의 일상, 또는 日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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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7.05.01 14:21

    글 죽 읽어내려가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일상이 조금은 느껴지는 듯 해.
    그 두곳을 오고가게 하는 것중 1번타자는 역시 자녀지인거 같아. 어쩔 수 없이..
    분당이 합정보다 먼 건 아니겠지? ㅋ
    사진이 참 좋네. 세번째 퐁경은 거의 동유럽급인걸 ㅎㅎ

    • BlogIcon larinari 2017.05.03 21:58 신고

      합정보다 훨씬 가까워요!
      30분 걸립니다요. ㅎㅎ
      오시면 저 동유럽 뷰로 뫼시겠슴미다.

  2. 2017.05.08 18:3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5.09 09:51 신고

      이 글을 쓴 날, 저도 위로가 필요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위로를 바라며 쓴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그 사실로 다시 글 쓴 사람에게 위로로 돌아오니. 아름다운 순환이네요. 잡을 수 없는 내일의 시간, 어제의 시간은 그대로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생명을 누리시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할게요. ^^



오후 햇살 받으며 책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 글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허공을 헤매고 다니던 시선이 커피장의 빨간색 원두 봉투에 꽂혀 머문다. 폰을 꺼내어 커피봉투를 찍었다. 그 옆엔 빨간색 카플라노가 있다. 그래, 너도 찰칵! 소파 옆 빨간 스탠드, 마주보는 책꽂이의 어스시 전집, 그릇장의 빨간 나비 커피잔. 빨강에 홀려 왔다갔다 찰칵찰칵했다. <자기 결정>, <아니마와 아니무스>, 알랭드보통의 <불안>, 오은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빨간 책들만 골라 뽑아 읽어본다. <신이 된 심리학>의 빨간색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그리고 벽에 걸린 액자 <탕자의 귀향> 속 아버지의 겉옷으로 빨간 색 마침표를 찍는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다. 찬양연습을 위해 교회에 있는데 누군가 나를 찾아왔단다. 아는 얼굴조차도 아직 낯선 이곳에서 나를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이 애매한 시간에, 이 낯선 곳으로? 멍한 표정으로 '찾아온 이'를 맞았다. 하도 멍한 상태라 빨리 알아보지도 못했다. 코스타 K간사님이시다! 아, 맞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 했었다. 그렇다 해도 이 얼마나 상상 밖의 시간과 공간인가. 교회 건물의 약국에 오셨다 혹시나 하고 들르셨단다. 나로서는 주일 아닌 날 낮에 처음으로 교회 있어본 것이었다. 어쩌면 이 시간에 찾아오셨나요! 찰나 같은 만남, 반가움에 감탄사만 연발하다 짧은 몇 마디 나누고 끝났다. [사모님, 올해는 못 오신다고요./네. 간사님은 올해도요?/네, 저는 물론...... 아, 그렇군요.] 이 짧은 만남이 추억의 빨간색을 소환해냈다.


사실과 전혀 다르게, 나는 K간사님 입고 오신 옷이 빨간색 조끼라고 저장했다. 그리고 집에 와 거실 탁자에 앉아 책을 읽지 못하고 집안의 빨강들을 찾아 헤맨 것이다. 작년 코스타 준비를 위해 K간사님께 연락이 왔을 때, 당연히 미국에서 온 메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계시다기에 잠시 다니러 나오셨구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한참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컨퍼런스 기간마다 휴가를 내어 섬기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간사님들이 그러하듯 일 년 내내 코스타에 연루되어 보이지 않는 일들을 하신다는 것. 코스타 다녀올 때마다 한 번 제대로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제대로 소회를 남기지 못한 이야기가 빨간 조끼 간사님들에 관한 것이다. 갈때마다 강렬한 질문으로 안고 돌아오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간 내내 느껴지는 저들의 헌신인데, '헌신' 앞에 붙일 형용사가 마땅치 않다. 열정적인? 수준 높은? 보이지 않는? 전문적인? 어떤 말도 20% 부족하다. 


강사가 자비로 항공료를 부담하고 날아왔다고 하면 학생들이 눈이 휘둥그래진다. 코스타가 비난을 받는 지점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사실 강사의 자비량보다 더 놀라운 것은, 비할 수도 없는 것은 간사의 자비량이다. 솔직히 강사들이야 '코스타 강사'라는 타이틀 하나 얻는 것만으로도 크게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교계에서 청년 상대로 강의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기관이나 교회에 속해 있지도 않는 나같은 강사는 무리데쓰네 하면서, 남편 상에게 아리가또 스미마생 스미마생 하면서 다녀오게 된다. 남모르는 엄청난 희생이라 여기며 참석하곤 했었다. 그러나 실은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내가 굳이 강사 이력에 쓰지 않아도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인지라, 알아서 알아주기도 하며, 일주일 진하게 유학생들과 부대끼고 오면 일 년 울궈먹을 강의 컨텐츠를 득템하는 것이 사실. (영업비밀 다 밝힘) 그런데, 간사님들은 무엇을 얻을까? 도대체 무엇을 얻기에 저렇게 앞뒤 안 가리고 가진 것을 내어놓는 것일까?


K 간사님은 단지 코스타를 섬기기 위해서 여름마다 휴가를 내어 날아간다니! 엄청난 희생을 감수한다는 내 명분이 부끄러웠다. 코스타의 빨간 조끼는 나의 이런 자기기만을 일깨우는 레드카드이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의 입을 빌어 안도현 시인이 묻는 것처럼 빨간 조끼는 내게 묻는다. '너는 한 번이라도 사심 없이 너를 내어준 적이 있었느냐' 희생이라는 포장지 뒤에 감춘 내 사심을 묻는다. 여기까지가 빨간 조끼에 대해 풀어 놓지 못한 그간의 이야기이다.


헌데 K 간사님이 잠시 교회에 다녀가신 오후, 빨간색과 더불어 '열정'이란 말이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다. 열정이란 말에 애증의 감정이 있다. 강의를 하거나 특히 지휘를 하고나서 '열정적인'이라는 평을 들을 때가 많았다.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알지만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자기비난으로 가져오곤 했다. 사람들을 몰아부친다, 에너지가 과하다..... 이런 평으로 듣기 때문이었다. 내가 열정적인 것을 스스로 잘 안다.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지 않고 빠져들지 않는 방법을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열정이 클수록 그림자가 짙고 크다는 것을 알기에 갈수록 머뭇거리게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러하다. K 간사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빨간 조끼 간사님들을 향해 부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무 것도 돌아오는 것 없지만 그저 나를 내어줄 (사람이든 일이든) 무엇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열정의 강사, 열정의 지휘자가 타인의 열정을 부러워하다니! 이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새로운 열정에 대한 목마름일 것이다. 앞뒤 안 가리던 젋은 날의 열정이 아니라 불을 향해 날개짓 하는 열정이 아니라 말이다.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을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가 가졌을 열정, 메마른 땅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열정. 어제 엄마에게 다녀왔다. 총기는 여전하지만 많은 것이 가물가물해지는 엄마가 '신실이가 나이 몇이여. 니가 마흔 둘이여?' 해서 한참 웃었다. '엄마, 이제 신실이가 오십이여' 하니까 '얼라, 오십이여?' 하신다. 우리 엄마 입으로 듣는 내 나이가 새삼스럽다. 추억의 열정에 머물러 있지 말고 나이에 맞는 오늘의 열정을 매일 새롭게 배우고 일깨워야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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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좋아하지만 맛집을 찾아 줄을 서는 열정은 없고, 뭘 맛있게 먹더라도 또 먹고 싶어 애써 찾아가거나 하지 않는다. 벌써 일주일 전에 먹었던 것들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입맛을 쩍쩍 다시게 되니 내게는 드문 경험이다. 지난 주에 광주로 1박 2일의 에니어그램 강의를 다녀왔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수련회 풍경, 청년부 수련회에 식사팀 권사님들이 함께 하신 것이다. 기대 이상의 맛, 기대 이상의 정성에 더한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1박 2일의 먹강(먹으러 강의 간 것)이었다.  첫 식사, 첫술을 뜨고 바로 무릎을 꿇었다. 끼니 때마다 기본 일식 오찬, 내지는 육찬. 가짓수의 많음보다 감동은 반찬의 다양함이요, 그보다 더한 감동은 모든 반찬이 다 맛있다는 것이었다. 이미  풍성한 밥상인데, 식사 중에 탱탱한 생굴에 갖은 양념으로 만든 초고추장까지 곁들여 내오신다. 강사 특별대접. 옆에 앉은 청년들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을 보셨는지, 권사님께서 "내일 아침 메뉴여. 내일 다 줄 건디 강사님 먼저 드리는 거여." 하신다. (그 굴은 다음 날 아침 굴 떡국으로 변신. 세상에나, 수련회 아침 식사가 반찬 다섯 가지에 굴 떡국이라니!) 마지막 식사에는 "이따 저녁 반찬인디 못 드시고 가싱께" 하시며 피꼬막 한 접시가 추가. (키보드 두드리며 침 고인긴 처음이다)


권사님들께 일부러 찾아가 배꼽 인사를 여러 번 드렸다. "강사 인생 십몇 년 만의 최고의 식사였습니다." 두 번째 식사시간이던가, 식사팀 대장 권사님 옆에 앉게 되었다. 역시나 '권사님, 정말 맛있습니다. 맛있습니다'를 연발했더니 특유의 사투리로 '내 반찬이 맛있는 줄 아시면 강사님 입맛이 보통 수준이 아닌디'하신다. 그리고 짧은 간증을 하셨다.


"내가 중등부 교사를 한 지 30년이 되얐어요. 어떻게 처음 교회에서 밥을 하게 되었냐면. 지금이야 안 그렇지만 그때는 수련회 강사 전도사님, 목사님들에게 강사비가 없었어요. 여름에 땀 흘려 가며 고생하시는데 너무나도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내가 밥을 해야겄다, 식비를 남겨서 강사비를 드려야겄다 했어요. 사 먹는 밥 대신에 직접 장을 봐서 했는디, 좋은 재료 싸게 사서 맛있게 먹고도 돈이 남은 겨. 그렇게 강사비를 드리고, 교회에 뭔일 있으면 또 장 봐서 밥하고......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 30년이 된 거여. 나는 음식하는 게 즐겁고, 잘하는디 아무나 다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 한때 내가 은혜받아서 마음이 뜨거울 때는 집안 살림, 밥하는 거, 이런 거는 다 하찮은 줄 알었어. 그저 교회마~안, 열심히 댕기고 이러는 게 잘하는 것인 줄 알었더니. 나중에 믿음이 조금 자라고 봉게,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솜씨가 있고 음식하는 거 좋아하는디 그거 열심히 혀서 먹이는 것이 중요하더라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수백 페이지 주절거린 일상영성을 3분 토크로 요약해주시는 것 아닌가. 음식만 맛있던 것은 아니다. 청년부 목사님의 극진한 환대, 강의에 집중하는 청년들 태도의 배려와 어우러져 더욱 잊지 못할 1박 2일이었다. 청년부, 특히 대학부나 어린 청년부에서 오는 에니어그램 강의요청은 거절하곤 했었다. MBTI로도 충분하다 설득하여 주제를 바꾸기도 했었고. 헌데 이번엔 어쩐지 거절하질 못했다. 할 수 없지, 어려워해도 할 수 없다. 하며 갔는데 예상 밖이었다. 게다가 광주였고, 게다가 수련회 장소는 무등산 자락이었다. 광주, 내 마음 속 광주 말이다.


같은 주제로 여러 곳에 강의 다니면 보지 않으려 해도 보이는 것들로 큰 배움을 얻게 된다. 이방인으로 공동체 체험하기. 맞이하는 교회들이야 늘 하던 방식이겠지만 내게는 새로움이니 말이다. 맞으시는 무심코, 평소대로 손님을 맞는 태도를 경험하는 나로서는 '비교체험 극과 극' 수준일 때도 있다. 때로 내가 이러려고 강의하러 이 먼 곳까지 왔나, 자괴감으로 하며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는가 그 정반대의 날도 있다. 낯선 자의 눈으로 바라보기, 체험하기의 유익은 얼마나 큰지! 아무튼 이 예기치 않았던 광주 먹강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강사랍시고 특별대접을 받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권의식으로 못된 태도와 마음의 습관이 들까 경계하고 경계한다. 그러나 진심 어린 환대란 누구라도 특별하게 대하는 것 아닌가. 창의적인 배려로 드러나는 환대로서의 특별대우는 강사도, 직장 마치고 파트타음 참석자로 수련회장에 들어온 청년이라도, 누구라도 춤추게 하는 일이다. 추가로 나온 생굴 한 접시의 특별대우는 따뜻한 환대로 다가왔다. 


마음이 추운 날이 오래 간다. 자꾸 어깨를 움츠리게 된다. 움츠리고, 껴입고 그럭저럭 잘 지내다 한 번씩 한기에 휘말릴 때가 있다. 봄의 훈풍은 언제쯤 불어오려나. 1박 2일 광주 일정 마치고 올라와서는 바로 다른 일정이 있었다. 밤까지 대중교통으로 다녀야 해서 여러 겹 옷으로 무장하고 내려갔다. 광주 날씨가 너무 따뜻해서 겹쳐 입은 카디건이 거추장스럽고 무거웠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날이었다. 일기예보를 빗나가는 따뜻한 날이 언제 불쑥 끼어들지 모르는 일이다. 무등산의 아침을 맞으며 후루룩후루룩 먹었던 굴떡국. 아직 마음에 남은 떡국 국물의 온기를 꺼내보며 하늘의 메시지 하나를 읽어낸다. 


봄이 오고 있다.

아직 겨울이라도 어느 날 훅 들어오는 따뜻한 날도 있을 테다.

오늘 추위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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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혜 2017.02.19 08:59

    큭큭큭. 후기 글이로군요.
    읽는 저까지 마음이 따땃해지네요. :)
    "환대"와 "경청"이 어우러진 강의 경험, 정말 좋으셨겠어요~^^

    목사님도 저에게 좋은 강사님 소개해주셔서 고맙다고 하셨는데...^^
    청년부와 사모님의 멋진 케미셨네요 :)

    • BlogIcon larinari 2017.02.22 22:02 신고

      좋은 분이 소개하는 분은
      영락없이 좋은 분!
      고마워요. 전도사님. ^^




친구에게서 가져온 팔뚝만 한 고구마가 있었다.

벌써 한참 전이다.

'보기는 이래도 맛있어. 잘라서 삶아 먹어 봐'

잘라서 삶으라는데....

칼을 집어 넣어야 빼도 박도 못할 것 같아 손도 못 대고 있었다.

그 사이 속이 노란 해남 고구마 한 박스를 선사 받았다.

속이 노란 고구마가 어찌나 맛있는지 아침 식사 단골메뉴가 되었다.

팔뚝만 한 고구마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삶은 고구마 되는 건 진즉에 포기, 삶을 포기한 고구마가 진정한 생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싹을 틔운 것이다!

스케일 있는 이 녀석, 흡사 무슨 분재 같도다.

이제야 칼을 집어 실랑이 한 끝에 싹이 난 부분을 뚝 잘라냈다.

그리고 나의 성소 싱크대 앞, 영예의 전당에 모시었다.


가을 겨울 지내며 거실 창 앞의 작은 화분들이 초토화 되었다.

한 놈 두 놈 시들해져 가더니 강한 놈 몇이 살아 남았다.

가을, 겨울이 아니라 여름의 에어컨 바람에 든 냉방병을 끝내 이기지 못한 것 같다.

사그라든 생명의 빈 자리를 대림절 초와 성탄 트리로 메꿨는데......

이제 그마저도 을씨년스럽다.

연휴 동안에 박스에 넣어 정리하고 올 대림절을 기약해야 할 것이고,

햇살 드는 거실 창 앞이 텅 비게 될 것이다.

전 같으면 벌써 분갈이를 하고 작은 화분들로 다시 줄을 세웠을 터. 

어쩐지 의욕을 상실하고 손을 놓고 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사 58:11)


이번 달 주일 예배로 초대하는 말씀으로 매주일 듣고 있다.  

전 같으면 '물 댄 동산'만 빼고 다 귓등으로 들어 흘려 보냈을 것이다.

어쩐지 '메마른 곳'에서 턱 막혀서 한 걸음 나가질 못한다. 

먼지 폴폴 날리는 메마른 땅을 걷고 또 걷는 느낌이다.  

갑자기 시니컬해져서가 아니라 이제야 철 든 마음의 눈을 가진 것 아닐까 싶다.


주인 엄마 마음이 이런데, 이런 시국에 분재 코스프레를 하며 싹이 난 고구마순이라니!

어린 생명을 향한 과도한 감수성 탓에 당근이나 무를 자르다가도 손톱만 한 싹을 지나치지 못한다.

자주색의 고구마순은 왠지 더 사랑스러운 것!

이런 매의 눈을 피하여 이토록 무성히 자랐다니. 너 뭐냐?

채윤이의 놀림을 받으며 아침마다 저 녀석을 모델 삼아 사진을 찍어댄다.

무심한 주인 아줌마에 아랑곳 하지 않고 틔워낸 생명.

기특하고 짠하지 아니한가.


풍성한 명절, 행복한 설 보내세요~

(도대체) 어떤 이들에게는 행복하고 풍성한 명절인지 모르겠으나.

외롭던 사람 더 외롭고,

슬프던 사람 더욱 슬프고,

가난한 이들이 더욱 추운 명절의 시작이다.

명절이라 이름한 특별한 날들, 그 며칠 잘 견뎌내자.

특별할 것 없어 비교할 것도 없는 진짜 나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명절 끝이 되면 저 고구마순이 한층 자라고 억세어져 있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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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아버지가 만화책은 허락하질 않았다.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만화는 <소년중앙> <새소년> 같은 것이었다.

교사였던 오빠가 방학마다 집에 오며 서점엘 데리고가 책을 사줬는데

<동물농장> <솔로몬의 동굴> <소공녀> 같은 책에 얹어 나름 교양 만화라고 얻은 것이다.

아, 교회에서 정기구독하던 <새벗> <교사의 벗> 같은 교회용 잡지에 있는 만화도 있다.

그리하여 나는 만화책 수십 권 쌓아 놓고 아랫목에서 뒹구는 낭만을 모른다.

그 결핍은 나의 독서 놀이에 치명적인 악습을, 그 습관은 상상력 결여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시간 죽이기' 식의 독서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소설, 특히 여러 권으로 된 소설 읽는 일이 드물다.

드물게 장편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면 무언가 도피할 현실에 맞닥뜨린 때이다.

남편과 사귀다 헤어졌을 때 방에 틀어박혀 읽었던 임철우의 <봄날> 다섯 권을 잊을 수 없다.

나보다 더 큰 고통, 더 긴 이야기에 빠져 현재의 고통을 회피하고자 함이었다.

실연으로 죽을 것 같지만 <봄날>의 현실로 들어가는 순간 내 고통은 고통 축에도 들지 못했으니.

채윤이를 품고 입덧이 심해서 숨쉬기도 어려웠던 시절의 진통제는 김산의 <아리랑>이었다.


작년 12월부터 판타지 소설 <어스시 전집>을 읽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뜬금없는 링크를 보내면서 추천을 했었고,

읽던 책 한두 권에서 인용된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두 애들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반복해서 읽을 때도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읽을 책이 수두룩한데 판타지 소설 전집 읽을 시간이 어딨냐.

헌데 이 어스시 전집은 왠지 끌렸다. 호기롭게 전집으로 딱 구매 해놓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독서 중독자라서 한 권만 읽지는 못한다.

이 책 읽다 보면 저 책이 신경 쓰이고, 저 책 붙들고 있자니 그 책이 궁금해지고.


성탄절 즈음에 남편이 입원하여 금식 치료를 하였다.

마음으론 안됐지만, 일부러 음식 사진 보여주며 놀리곤 했는데..... 바로 죄 받았다.

엊그제 우리 가족 중요한 행사 'Big Family Day'로 정한 날이었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새해 기도제목을 나누며 기도하는 시간.

물론 맛있는 식사에, 맛있는 케이크 먹는 순서가 먼저이다.

맛있는 해물탕을 먹고, 맛있는 케이크 집에 가 앉았다가 친한 친구 아버님의 부음 소식을 들었다.

순간 마음이 쿵하고, 충격이 됐는데 그 탓인지 어쩐지 얼마 후부터 장이 꼬이기 시작.

최악의 화장실 게이트에 휘말려서 피를 보는 사태까지.

결국, 병원에 가서 금식 처방과 함께 링거를 맞았다.

낭군님 지신 십자가, 와잎은 안 질까. ㅠㅠ 놀렸던 그대로 벌 받고 말았다.

기침 감기 기본으로 깔고 복통을 앓는 통에 기침하면 배가 더 아픈 것까지 똑같이.


허리 아프도록 침대에 누워 조금 정신이 차려지면 어스시 전집을 읽는다.

웬만하면 빠져들어 한 시간 쯤은 금방 죽여버릴 만도 한데,

제길, 체력이 딸리니 눈이 잘 안 보인다. (노안 때문은 아닐 거야. 누워 읽는 자세 문제일 거야)

그 어느 때보다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고 싶은 심정이다.

아무리 머리를 쓰고 걱정을 해봐도 각이 안 나오는 일상으로부터 도피하고픈 마음.

각이 안 나오는 현실에, 나의 일상에는 지금 환각제가 필요하다. 판타지가 필요하다. 


하하, 그런데 리처드 로어 님은 <불멸의 다이아몬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지.

'은유만이 신비에 관해 정직하기 때문에, 은유는 종교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이다.'

'상징은 우리로 하여금 삶의 핵심적 의미를 다시 새로운 틀 속에 넣고 재구성하고 재조정하게 만든다'

라고도 하셨다.


아, 실은 만화 결핍증으로 인해 판타지 소설 울렁증 있는 내가 기꺼이 어스시를 선택한 이유였다.

단지 막막한 현실에의 도피가 아니라 뭔가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나의 이야기를 재구성 하고 싶어서.

판타지에 담긴 '은유(meta-phore)'들은 우리를 저 너머로 인도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러고 보면, 진통제 삼아 책을 먹었던 것은 단지 진통제만은 아니었던 듯.

나의 일상보다 더 큰 이야기를 책 속에서 만나며

나의 지질한 아픔과 걱정이 큰 세상, 더 광활한 이야기와 연결되고,

한 챕터가 종결될 때마다 좁은 나의 경계는 허물어지곤 했던 것이다.

물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면 또 다른 경계가 떡 허니 앞을 막고 서 있을 테지만.



* 예, 이제 몸은 괜찮습니다.

세트로 아파가며 이래저래 가오도 안 서고,

되는 일 없는 부부이지만 그럭저럭 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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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질 것들  (2) 2016.11.23




성탄절을 앞두고 응급실을 경유하여 입원했던 남편이 퇴원했다. 퇴원수속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남편을 차에 남겨 두고 부랴부랴 장을 봤다. 집에 오자마자 죽, 밥, 나물 한 가지를 하는데 진땀이 나면서 주저앉을 듯 힘이 없더니만 바로 침대행이 되었다. 지난주에 응급실에서 함께 밤샘하면서 이미 감기도 오고 몸도 안 좋았었다. 오직 보호자 정신으로 버텼으나 퇴원과 함께 다리 힘이 풀리며 와르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겨우 일어나 나보다 더한 환자의 끼니를 챙기고 나서는 침대로 가 끙끙 앓는 시간을 보냈다. 엄마 아빠 함께 거실에 누워 콜록콜록 골골 하니(남편은 거의 한 달 가까이 감기 중) 식탁에 앉았던 채윤이가 현승에게 말했다. '이러다 우리 고아가 되는 건 아니겠지?' 둘이 알아서 설거지도 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버리고, 청소기도 돌리고 짐을 나누려 하는 흉내라도 내니 기특하고 고맙다.


아픈 건 그저 나 혼자 앓으면 되는데, 어제 목요일엔 강의 약속이 있었었다. 몸 상태로 보면 운전하고 강의 장소인 평택까지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두어 시간 서서 강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끙끙 앓으면서도 머리 한 편에서는 강의 준비가 돌아가고, '나 죽겠으니 강의 같이 가자' 운전 부탁할 친구까지 섭외했다. 평소 같았으면 열 너덧 권의 책을 쌓아 놓고 강의안을 새로 만들고 손 보고 했을 텐지만. 열에 들떠 누워 맥락도 닿지 않는 계획을 세워보다 하루 전날 잠시 약 기운을 빌어 일어나 앉아 짧은 시간 정리를 했다. 다행히 혼자 운전하고 갈 힘 정도는 생겼고 일찍 집에서 나와 강변북로를 달린다. 아침 해가 떠오르며 찬란한 햇빛이 들이닥치는데 지금 내 몸과 마음과 상황과는 동떨어진 느낌이라 '뜬금없는 찬란함이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피아노로 친 찬송가가 듣고 싶어 신상우의 곡들을 검색하여 연주에 걸어 놓았다. 과장 없는 심플한 피아노 연주가 이어지다 역시 뜬금없이 노래하는 목소리가 끼어든다. '창조의 생기'라는 곡. (제목도 참 얼척 없군! 이 상황에 말이지)


눈물 골짜기를 지나 메마른 땅에 거하여도 주가 나를 창조의 생기로 일으키시네


내가 조금만 착한 모드였어도 은혜가 됐을 텐데. 아니 실은 '메마른 땅'에서 살짝 콧등이 시큰했으나 무시했다. 그리고 내달려 IVF 수련회 장소로 갔다. '여성의 성'이라는 주제 강의이다. 요청받은 제목은 그러했지만 내 강의안에는 '여성의 성과 영성'이란 제목이 달려 있다. 힘을 뺀, 아니 힘을 넣을 수 없는 강의였다. 차마 취소할 수는 없으니 쓰러지지만 말자.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잘할래야 잘할 수도 없어.) 강의 하다 보면 촉이라는 게 온다. 뭔가 오가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 오가는 느낌이 내 안의 무엇을 자꾸 건드린다. 여성, 사랑, 여성의 사랑과 성. 오래 공부하고 생각했던 주제이다. 특히 올해,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도록 나를 붙들어 매는 만남들이 있었다. 그냥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사는 것에도 지옥'이라는 말이 붙는데. 기독청년으로 사는 것은 얼마나 더 힘든 일인가. 기독청년의 성생활이란. 하물며 기독청년이며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가. 저쪽의 혐오와 비난을 안고 자기를 지키며 산다는 것은. 강의 전에 불렀던 찬양이 뜨겁게 마음으로 다가왔다. 강의 중간 쉬는 시간을 마치고 다시 한번 부르자고 했다. 가사 한 부분을 바꿔서 부르자고. '여자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반복하여 부르면서 어떤 힘이 여자인 우리를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인 우리가 마음의 손을 잡아 서로 일으키는 생기, 같은 것일까? 적잖이 은혜가 되었고, 아픈 내 몸까지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강의 좋았단 인사가 인사치레가 아님을 안다. 강의 중에 주고받은 눈빛이 이미 말했던 바. 

이렇게 메마른 몸과 영혼임에도 학생들에게 나눠줄 위로와 생기, 생명의 기운, 창조의 생기가 솟아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강의 다녀온 사이 남편은 입원했던 병원에 갔다 왔다. 죽돌이에서 해방되어 '일반식' 허가를 받았다면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신보다 내가 더 좋다! 내가 해방이다!) 강의도 마치고 죽돌이 해방도 되고. 몸은 쇠약하지만 기분은 한결 나아진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택뱁니다~' 주문한 일 없는 택배가 하나 왔다. 잘못 왔나 했더니 남편이 '어, 헌혈....' 하면서 아는 집사님이라 한다. 100주년에 있을 때 80이 넘은 집사님께서 무릎 수술하시는 중에 수혈 문제로 위급한 상황이 있었다고 한다. 병원 측 실수로 충분한 혈액을 구비하지 않고 수술을 시작했고, 혈액을 구하는 빠른 방법이 같은 혈액형의 헌혈자를 찾는 것이었다. 구역 권찰님이 급한 대로 교회로 연락하였는데 마침 남편이 같은 혈액형이어서 바로 헌혈하러 달려갔다고 한다. 사실 이 일은 그렇게 지나간 일이었다. 심지어 나는 남편이 헌혈을 했다는 사실조차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바로 그 수혈받은 집사님께서 택배로 멸치와 김을 보내오신 것이다. 각각의 상자를 하나 하나 포장지로 포장하여 큰 택배 상자에 다시 담으신 정성. 기대에 차서 포장지를 벗겼는데 상자에 가득 멸치떼를 확인하고 실망한 현승. ㅎㅎㅎㅎ


무기력하게 누워 있던 남편이 일어나 상황 설명을 한다. '아, 그때! 전화가 그렇게 왔길래, 제가 O형인데요. 제가 가서 헌혈하겠습니다, 하고 갔는데.... 어르신께는 의미가 크셨나 봐. 아무에게나 피를 주는 게 아닌데, 하시면서 그러시더라고. 어이쿠, 참. 우리가 이사했으면 어쩌실려고....' 남편 목소리와 얼굴에 발그레 생기가 돈다. '멸치가 참 좋다. 멸치 필요했는데' 하며 살짝 오버 하면 반겼더니 더욱 의기양양해져 테일한 설명이 길어진다. (순진한 사람 ㅋㅋ) 많은 양의 멸치를 보자 멸치볶음을 몹시도 애정하는 모 군이 떠올라 바로 덜어 지퍼백에 담았다. 밑반찬은 해는대로 동이 나는, 돼지 세 마리 키우는 동생네 몫도 챙겨 담았다. 넉넉하게 담으며 마음이 풍성해진다. <나의 성소 싱크대 앞>에 사인을 할 때 '보잘것없어 거룩하고 가난하여 부요한 우리의 일상'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그러나 굳이 거룩하기 위해 늘 보잘 것 없거나 항상 가난할 필요가 있겠는가. 넉넉하게 나눌 것이 있는 풍성한 일상의 위안이 이러한데! 무력한 목회자이지만 급하게 나줘 줄 피가 있었고, 그로 인해 이웃과 넉넉히 나눌 멸치 떼가 들이닥치니 이래저래 생기, 생명의 기운이다.


차 안에 들이닥친 찬란한 햇빛과 어쩌다 울려 퍼진 노래는 뜬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생기, 생명의 기운, 창조의 생기는 이미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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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한일 2016.12.30 23:29

    늘 일상의 진솔한 나눔의 글들을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서 가족 모두 건강을 회복하시고
    행복한 2017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7.01.04 15:10 신고

      감사 드립니다. 애써 써서 걸어 놓았다, 다시 주워 담고 싶어 만지작거리기를 수도 없이 갈피 못 잡는 블로그입니다. 늘 얼굴 모르는 모르는 어떤 독자분들을 상상하고 있는데 이렇게 한 번 확인시켜 주실 때마다새로운 도전과 힘을 얻게 돼요. 더욱 샬롬의 일상을 누리시는 2017년 되시길 바라며.

  2. iami 2016.12.31 09:16

    문고리에 걸어 놓았다는 그 멸치에 그런 귀한 사연이 담겨 있었군요.
    숟가락으로 퍼먹듯하는 모 군과 멸치볶음 먹을 때마다 기억할게요.^^
    송박영신,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보내며 새해엔 두루 강건하시길!

    • BlogIcon larinari 2017.01.04 15:14 신고

      얼마 전에 같이 밥을 먹는데 덩달아서 저도 멸치볶음을 얼마나 맛있게 먹었는지요! 아, 그리고 부럽기만 하던 그 연어. 신정에 어머님 댁에 가서 누렸어요. ㅎㅎㅎㅎ
      새해에 언니 님께서 일하시게 된 게 제 일처럼 기뻐요. 두분도 더욱 건강하시고요. ^^



모 기독교 방송사의 라디오 프로그램 게스트로 나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책 관련 프로그램에 저자와의 만남 같은 것이었습니다. 9월 즈음에 약속이 되었고 지난 화요일이었죠. 전날에도 담당 작가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라디오인데다 방송 시간도 짧으니 방송 전에 입을 맞추려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 쪽으로 섭외가 된 것이라 진즉에 받은 공문도 있어서 당일 방송국으로 갔습니다. 주차를 하고 공문에 있는 전화로 연락을 했으나 딱히 방송국 담당자가 아닌 것 같고. 바보 같은 표정으로 헤매다 지나가는 분께 물어서 방송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프로그램은 프리랜서 아나운서 분이 작가 겸 모든 것을 도맡아 하는 방식이었는데 통화를 해보니 지금 부산에 계시다고! 녹음 시간이 확정될 때까지 출판사 본부장님과 충분히 의견을 주고받았고, 일시가 명시된 공문을 받았으니 확실하다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담당 아나운서가 제 번호를 잘못 입력할 탓에 통화를 시도 했으나 안 되었다고 하고요. 친절한 직원 한 분(제 가방에 달린 노란리본으로 바로 공감대 형성이 되었습니다)이 아나운서께 전화 연락도 해주고, 배웅도 나오면서 '다시 연락되어 꼭 나오시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실은 제가 마음이 상해서 다시 올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하고 나왔습니다.


출판사 본부장님께 상황을 알리고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청취자 증정용으로 보낸 책(나의 성소 싱크대 앞) 몇 권을 꼭 회수해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어버버버 하면서 방송국 입구를 헤매던 나처럼 갈 곳 잃은 내 책들이 방송국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을까, 그것이 싫어서요.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 연결자인 출판협회 사무국장님께 전화가 왔습니다. 방송국 담당자인 줄 알고 내가 전화했던 분이었습니다. 미안하다 사과하시고 담당 아나운서 분도 무척 미안해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상황 알겠지만 다시 방송에 나가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마음 푸시고 다시 시간 잡으시라고, 그렇지 않으면 담당 아나운서가 계속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로 확고해졌습니다. 단지 삐져서 안 나가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길게 설명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제게 말했습니다. "단지 그 사람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 너를 함부로 사용하지 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순서에 역행하는 거야" 


실은 방송국에서 나와 주차장까지 걸으며, 운전하고 나오면서 화가 난다기 보다는 슬펐습니다. 슬픔을 가장한 분노일 수도 있습니다. 존중받지 못했다는 느낌이 가장 컸을 것입니다. 존중받지 못한 사람은 있는데 존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나운서는 일처리에 실수했을 지언정 나라는 존재를 함부로 대했던 것은 아니니까요. 어중간하게 알려진 작가로서 괜한 피해의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고, 다 밝히기 어렵지만 더 고질적인 쓴뿌리도 있습니다. 물론 맡은 일을 꼼꼼히, 정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이미 이웃에 대한 존중인 것도 사실입니다. 사랑해, 고마워 백 마디 말보다 약속을 지켜 일을 챙기는 동료가 진짜 배려심의 사람일 수 있고요. 가족적인 분위기로 기분 내키는대로 비싼 밥 사주는 사장보다  합리적인 월급을 제때 챙겨주는 사장이 직원의 자존감에 더 기여할 거구요. 저도 남부럽지 않은 헐랭이로서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반성하곤 합니다. 내 작은 실수가 누군가의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 생각이 여기 미치면 더욱 슬퍼집니다. 실수를 실수로 받지 못하는 우리들의 상처난 마음. 아니, 제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가사처럼요.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딪히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든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운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그러게요. 그저 늘 부는 바람이 지나갔을 뿐인데, 그 바람에 내 마음의 가시들이 흔들려 서로 찌르고 울어댑니다. '나를 해하려 하는 거야, 나를 무시하는 거야, 나를 싫어하는 거야'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이 집에 와 채윤이에게 터져버렸습니다. 농담 한 마디 던졌을 뿐인데 분노 폭발하는 엄마에 당황한 채윤이. 채윤이를 희생양 삼아 감정의 에너지가 한 김 빠져나갔습니다. 조금 평상심을 찾고는 희생양 채윤이에게 사과하고,  희생양을 신부님 삼아 고해성사 했습니다. '엄마가 다시 나가지 않겠다고 한 거 잘한 것 같은데..... 그러지 않고 허허 하고 이해하는 척 할 수도 있었거든. 그러면 좋은 사람 같아 보이잖아. 처음엔 좋은 사람, 나이스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했던 것 같아. 그래도 작가라 불리며 조금은 알려진 사람인데.... 그렇게 마음이 복잡했었던 거야.' 채윤이도 '착한 애 코스프레'에 지쳐서 요즘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얘길 했습니다. 모녀 함께 훈훈, 지질한 결론을 냅니다. '어쩌겠어. 착하지 않은데..... 그래도 착하지 않은 나를 내가 편들어 줘야지.' 저녁에 아나운서 분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시고 다음에 꼭 다시 나오시면 좋겠다, 했습니다.  방송에 나가진 않겠지만 마음이 안 풀린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어디서 만나든 좋은 마음으로 볼 수 있다고요. 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농담으로 '갑질 했네'라고 했지만 진심 갑질은 아니었습니다. 실은 다시 출연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마음이 편해졌지만 지질한 나의 곁을 내가 끝까지 지키줘야지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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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지혜 2016.12.17 14:57

    사모님. 오랜만에 와서 힐링힐링 글 보고 갑니다.
    솔직함이 주는 "무장해제"와 "공감"이 주는 어마어마한 위로와 힘.
    감사해요. 늘 :)

    • BlogIcon larinari 2016.12.17 21:50 신고

      솔직함에 대한 저의 기여는 인정,
      공감은 전도사님의 준비된 마음!
      마음 열고 읽어주셔서 늘 고마워요. ^^

  2. 오준규 2016.12.17 22:08

    사모님... 반갑습니다. 이 곳에 오면 사모님의 따뜻하고 정감있는 글을 읽을 수 있군요.
    너무 좋습니다. 지난 번 하남 스타필드에서 '스타'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
    늘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12.20 10:55 신고

      목사님, 반갑습니다. ^^
      여기까지 찾아주셨네요.
      스타필드에서는 알아봄 당하는 사람이 '스타'인 걸로 지금 정하죠. 제가 먼저 알아 뵀습니다. ㅎㅎ
      낮은 곳을 향한 목사님의 사랑과 낮은마음교회의 사역에 오시는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3. 임승혜 2016.12.24 10:58

    사모님 오랜만에 찾아와봣네요 저도 요즘 슬픈일이 많아서인지 콕 와닿네요 ㅜ

    • BlogIcon larinari 2016.12.26 23:41 신고

      정말 오랜만에! ^^ 결국 얼굴은 못 뵙고 다른 곳으로 떠나왔지만요. 슬픈 일 가운데 슬픔보다 더 큰 그분의 위로의 손길이 함께 하시면 좋겠습니다. ㅜㅜ

  4. 2016.12.27 15:3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6.12.29 21:10 신고

      사려 깊게 조심조심 하는 거 요즘 많이 많이 느끼고 있음. ㅎㅎㅎㅎ 진심 농담인 거 알아.

  5. 2016.12.27 15:40

    비밀댓글입니다




레슨 다녀온 채윤이가 코가 빨개가지고 '엄마, 디게 추워. 살을 에이는 추위야!' 하기에 차를 타고 나갈까 싶었지만 유혹에 걸려들지 않았다. 대신 옷을 든든히 입고 모자와 장갑까지 챙겼다. 약속 장소를 화력발전소 앞 B카페로 잡았다. 강변 길을 통해 절두산 성지로 가 기도의 길을 걸은 다음 대림절 초를 사야지. 내처 걸어서 상수동 M 커피 로스팅 가게에 들러 원두를 사야겠다. 그러고나면 걷는 거리, 시간을 계산하여 B카페가 딱이다. 강변을 걷다보니 이곳에 이사 와 처음 강변에 나갔던 그날이 생각난다. 오늘과 똑같은 복장이었지. 몹시 추운 날이었다. 이삿짐이 대충 정리되었고, 동네는 낯설고, 날씨는 추웠다. 심심해 심심달, 하면서 빈둥거리는 현승이를 꼬여서 나갔었다. 이 을씨년스러운 동네가 아주 조금 예뻐 보인 첫날이기도 했다. 한강과 강변 길이 있어서 지난 5년의 삶이 얼마나 윤택했던가! 최고의 코스, 나만의 걷기 코스는 강변을 통해 절두산 성지 찍고, 상수동까지 걸어가 M 로스팅 가게에 들르는 것이다.



마음이 뻥 뚫려서 오갈 곳을 알지 못하는 날에 절두산 성지를 향한다. 가끔은 언어를 잃은 기도를, 소리없는 분노의 외침을 담고 걷는다. 가라앉거나 폭풍 치는 마음이 제자리를 찾곤 하는 곳은 기도초가 있는 곳이다. 값싼 양초가 활활 타오르고, 그 앞 긴 나무 의자에 앉거나 서서 묵주를 돌리며 기도 드리는 여인들을 보면 속에서부터 싸한 아픔이 올라온다. 기도제목도 알 수 없는 그들의 기도에 내 마음을 합하고, 흔들리는 수많은 기도초 앞에 나를 세운다. 바람에 흔들리며 타오르는 저 기도들이 결코 쉽게 응답되지는 않을 것을 알기에 오히려 겸허해진다. 나오는 길엔 성지 입구에 있는 서점에 들러 책이나 액자 같은 것을 만지작거린다. 오늘은 오랜만에 어머니께 드릴 책을 샀다. 그리고 대림초를 샀다. 그 다음 코스가 상수동 M 가게. 최고로 맛있는 로스팅은 아니지만 넉넉하게 주는 마음, 얼굴을 기억해주는 것이 좋아서 아끼는 집이다. 커피 공장 같은 곳이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로스팅 기계, 초콜릿 만드는 기계로 사람을 부르려면 유리창을 두드리고, 저기요! 여기요!를 여러 번 외쳐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사하면 제일 아쉬울 곳이 절두산과 M 가게이지 싶다.



B카페를 처음 알았을 때는 인생 카페가 될 줄 알았다. 하도 많아 책꽂이에 다 꽂히지도 못하고 쌓인 시집이며 소설을 보면 주인의 독서 내공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출입문에 붙은 노란리본이며, 카페 트위터에 올라오는 사색적인 글은 정말이지 있어 보인다. 합정 시절 초기에는 주로 여기서 원두를 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아무리 다녀도 정이 붙질 않았다. 주인 아저씨가 문학을 애정하시느라 사람에 별 관심이 없나 싶었다(이런 건 사실 좀 매력적인 것). 언젠가 블로그에서 뒷담화 한 기억이 있는데. 원두 사러 갔는데 저울에 원두 달면서 조금 넘쳤는지 몇 알을 다시 꺼내는 걸 보고는 정이 뚝 떨어져버렸다. 낯가림이 심한 건 오히려 매력이라 여겨서 먼저 인사하는 법도 없고, 자주 커피를 사러 가도 아는 척 해주는 법 없는 것도 괜찮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괜찮지가 않았었다. (커피 몇 알에 빈정 상해서 ㅋㅋ) 부침개 부쳐 지인과 막걸리 마시다 커피 내려주던 것도 생각났다. 그러고보니 커피 로스팅은 늘 조금씩 과했던 것도 같고. 그냥 아웃시키는 걸로! 아무튼 문학이든 신앙이든 개혁이든 무엇이든 맹목이 되고, 충천한 자의식이 되는 건 치명적이다. 그런 B카페인데 오늘 약속 장소를 여기로 했다. 순전히 동선 때문이다.


양화진이 아니라 절두산 성지를 성스럽게 여기든, B카페가 아니라 M가게를 애정하든 내 취향이다. 아무도 모르는 내 취향이다. 누군가 안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내 취향이다. '존중입니다. 취향 부탁이요' 이런 강렬한 부탁의 말이 있지만 세상 그 누구가 타인의 (것이기에 사소한) 취향 따위를 존중할 것인가. 모두 자신의 존중을 취향할 뿐이다. 시집을 모으고, 멋진 인용문을 날리며, 블로그에 글을 쓰고 카톡 프사에 촛불집회 사진을 올리며 남모르게 어깨를 으쓱인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B카페 아저씨는 내 취향에 맞지 않아 아웃당한 걸 알면 꽤나 억울할 것이다. 각오는 되어 있다. 내가 주어가 되어 아웃시켰지만 어딘가에선 나도 목적어가 되었었고, 되고 있을 것이다. 어쩌겠나. 각자 자기 취향의 세계에서 자뻑하며 허덕이며 사는 것이 사람일진대. 그래도 가끔 B카페에 간다. 오늘같은 동선에선 B카페가 딱이니까. 취향은 취향일 뿐이니까. 문득 이사 후에 M 가게보다 B 카페가 더 그리워지는 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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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y 2016.11.24 10:55

    새로운 거처가 정해진 모양. 나처럼 한곳에 짱박혀 있는 사람에겐 한편 부러운 부분이기도 하지.
    근데 성수까지 죽 걸어닸다는 건 좀 놀라운데. 그리 가깝지는 않은 거리일텐데.
    내 취향을 귀히 여기며 즐기면서도 남의 취향을 인정하고 역시 귀히 여기며 살게요 ^^

    • BlogIcon larinari 2016.11.25 10:58 신고

      저..... 서, 성수동 아니고 상수동요. ㅎㅎ
      아직 거처가 정해지지 않았어요. 어쩐 일인지 벌써 나갔어야 할 집이 나가질 않고 있네요.
      '내 하나님 취향 참 특이하십니다. 그 많았던 이사, 걱정 없이 한 번에 되게 하신 일이 없죠. 이번엔 좀 다를까. 예예, 아니나 다를까. 역시 하나님 취향 특이하세요. 늘 새로운 스타일로 어렵게 하시죠. 독특하시고 까칠하신 취향, 딱 제 스타일이세요. 예예, 입 다물고 기다리겠습니다.ㅜㅜ' 저절로 기도가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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