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여정294 친구이며 스승 어허, 친구끼리 이러지 맙시다!네, 친구 맞는데요. 친구이기도 스승님이시기도 합니다!스승님이되 평생 스승님이십니다! ‘친구이며 스승'인 아름다운 관계들을 확인하는 '스승의 날'이었다.선물을 드리고, 선물을 받고, 챙기고, 챙김을 받고... 보내드린 꽃이 성당 제대에 봉헌되었다고,이렇듯 조화로운 작품 같은 사진을 보내오셨다.너무나 아름다워 심장이 쿵쿵 뛴다. 떡볶이 해 먹이면서 키운 제자가스승의 날에 손수 점심을 만들어 주었다."너 이런 것도 할 줄 알아?"애기가 밥을 한 것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얘 나이 40인데, 나는 아직 4학년으로 보인다.4학년 짜리가 학부모가 되었으니, 나는 꼭 할머니 선생님이 된 것 같다. 2025. 5. 20. 혼자 사랑, 모든 사랑, RIP 제주에 다녀왔다. 4월 16일에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아이들이 무탈하게 닿았다면 재잘재잘 즐기고 놀았을 기간이다. 여러 일정 중,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게 된 오설록에 수학여행 아이들 무리와 만났다. 4월의 제주는 슬프다. 꽃이 피면 시들고 난 후 떨어지기 마련인데, 활짝 핀 채로 댕강 떨어져 누운 동백이 늘 슬프다. 모든 아까운 생명을 떠올리게 한다. 격주로 연재하는 '신앙 사춘기 너머' 탈고하고 가벼운 제주행을 누리고 싶었는데. 그럴 리가... 정신실이. 원고 싸들고 가서 새벽 시간 밤 시간 짬짬이 붙들고 있었다. 겨우 탈고하고 '됐다, 편히 자자!' 하고 폰을 들고 누웠는데 뉴스 메인이 프란치스코 교황님 선종이었다. 정말 믿기지 않았다. 폐렴으로 위중하다 고비를 넘기셨고, 퇴원했고, 부활절.. 2025. 4. 25. 아주 사적인 선교여행 3박 5일 꽉 채운 캄보디아 일정이었고,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쉴 틈 없는 시간을 보냈는데(하루치 걸음이 2만 보!) 그 사이 보석 같은,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 순간이 영상으로 남아 있다니! 아주 잠깐 쉬는 틈에 아이들 사이에 끼어 놀았다. 요요 같은 장난감으로 아두 그냥 애들이 기술적으로 딱딱딱딱, 잘하는 게 신기해서 영상도 찍어주고 했다. 나도 한 번 해보란다. 어버버버 못하니 얼마나 친절하게들 가르쳐 주는지. 아이들 사이에서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을 포착하여 살짝 영상으로 남겨준 사람은 JP.) 이름은 '리싸'이번 캄보디아에서 만난 내 친구이다. 저러고 시범을 보여준 후에 안 되는 나를 붙들고 여러 번 가르쳐 주었다. 숙소로 돌아오려고 버스를 기다리는 중, 내게 다가와 이.. 2025. 3. 12.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 지난 몇 달 이사야서를 묵상하며 "철저하게 절망하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너희는 망했다! 이미 망했고, 계속 망할 것이다. 오늘 하루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이집트를 의지하며 희망을 말하지 말아라. 너희는 망했다." 온전한 절망에 구원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래서 저 그림을 (언젠가 남편이 설교 제목으로 붙인 이름)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라 부르며 자주 떠올리곤 한다. 무력한 아기의 몸으로 평화를 가져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 대림시기를 계엄 선포와 함께 맞았다. 이 무슨 믿기지 않는 아이러니란 말인가. 무력한 아기의 시간에 실탄 장착한 무력의 국민을 향한 난입이라니... 어제 하루는, 아니 이 며칠, 아니 몇 달 몇 년…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란 이 말을 머금고 산다.. 2024. 12. 8. 수도원순례12_안나와 오틸리아 가톨릭 신자들은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산다. 부모가 준 이름 뒤에 데레사, 마리아, 티모테오... 세례명이 따라붙는다. 가톨릭 신자들과 친분을 맺고, 신부님 수녀님께 배우면서 농담처럼 "저도 세례명 하나 지어야 할까 봐요" 했었다. 김영미 데레사입니다, 박선영 카타리나입니다, 문재인 티모테오입니다.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내 순서만 오면 라임이 딱 끊어져 단절되는 것이다. "정신실입니다. 저는 개신교 신자입니다." 세례명과 함께 신앙생활 하는 유익이 있는 것도 같다. 평생 자기 이름을 따라다니며 하나님을 매개하는 신앙의 선조 한 분을 갖는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기도 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에도 아녜스, 세레나, 안젤라 형님, 베로니카 형님... 하면서 바로 어떤 유대감으로 연결되는 것도 좋아 보인다.. 2024. 7. 19. 수도원순례11_목사에게 임한 '하느님'의 은총 로마를, 이탈리아를 떠나는 날이다. 호텔 창 앞에 서서 바깥 풍경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별다르지 않은, 아무럴 것 없는 풍경이었는데 뭐가 아쉽지? 로마 이틀은 마음의 순례로 치면 일주일이나 보름은 되는 시간이었다. 몬테카시노와 수비아꼬의 설레는 첫 만남 후 찾아온 혼란의 시간이었다. 나는 왜 어쩌다, 왜 이 수도원 순례단원이 되었을까 물어야 했다. 왜 굳이 남편과 함께 왔어야 했나 묻고, 무엇을 기대하고 무슨 꿈을 꾸었는지 점검해야 했다. 포장지 없는 말이 필요했던 것 같다. 배려하느라 눌러두었던 말을 꺼내놓고 보니 미안함, 두려움 같은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그려놓은 수도원 순례의 그림이 있었고, 늘 그렇듯 미리 그린 그림대로 되는 여행은 없으니까. 순례를 기다리던 몇 개월 동안.. 2024. 6. 11. 수도원순례10_Pax Romana, 그 어떤 시작 대학 친구들 중 가장 늦게 결혼했다. 남편과 만나며 결혼을 생각하던 즈음 친구들을 만났다. 육아 전쟁 중인 친구집 거실이 내 연애 얘기로 흥미진진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여러 질문 끝에 "걔가 어디가 좋냐?" 그 흔한 질문이 나왔고. 나는 어째서인지 그런 답을 했다. "가난하게 살고 싶대. 가난하게 사는 게 꿈 이래." 돌아올 반응을 예상치 않았던 건 아닌데, 아직까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표현으로 치면 "결혼은 현실이다... "처럼 우리 엄마나 이모가 하는 걱정과 다르지 않았지만, 뭔가 다른 단절감, 깊은 외로움 같은 것이 남아 있다. 결혼도 모르고 현실도 모르는 순진한 이상주의자로 비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상 너머의 이상이었다. 도달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 2024. 6. 6. 수도원순례9_울분의 로마, 그 어떤 시작 갑자기 남편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리 와 봐, 해서 보면 남편은 벌써 저기 멀리 걷고 있다. 빨라진 남편의 발걸음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몸이 정직하다. 때로 몸이 가장 정직하다. 그의 영혼이 뛰고 있는 것이다. 말년의 사도바울이 갇혀 있었던 감옥터, 마메르틴(mamertium)이다. 이 앞에서 남편은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수도원 순례에 오른 후 처음으로 말이다. 2015년 남편이 성지 순례단을 이끈 적이 있었다. 남편과 참여자들의 후일담에 비추어 좋은 순례였던 것 같고,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성지순례 모델이기도 하다. 순례 전에 여러 번 만나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고, 여정 중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가는 곳마다 드리는 예배와 기도에 그 이야기를 반영하고. 남편에게 .. 2024. 5. 30. 살 자리 쓸 자리 집에 돌아왔다. 공항버스가 익숙한 우리 동네로 들어설 때, 둘이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복잡한 모든 것을 담아 내가 말했다. "긴 꿈을 꾼 것 같다." 상투적이지만 이보다 좋은 표현이 없다. 일상의 풍경에 몸이 담기고 보니 질곡의 12박 13일은 꿈이었나 싶다. 꿈인가 싶지만 꿈이 아니다. 휴대폰 카메라에 수백 장의 사진이 남아 있고, 몸이 감각하고 체험한 것들이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다만 사유와 성찰이 그 체험의 속도를 따르지 못할 뿐이다. 그 속도의 차이 또는 간극으로 인한 고통으로 글이 나오질 않았다. 시차로 인해 일찍 깨어난 새벽마다 글을 쓰곤 했다. 남편과 내가 각자의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아 쓰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로마 이후로 나는 더 나가지 못했다. 고마운 것은 남편이 하루도.. 2024. 5. 28. 수도원순례8_혼란의 로마, 그 어떤 시작 다시 로마로 왔다. 로마에서 이틀을 보내고 한참 지나도록 순례기가 써지질 않는다. 할 말이 없거나 쓰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답답함은 내게 익숙한 고통인데, 대부분은 여러 말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려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데다 잘 쓰고 싶어 힘이 들어가는 경우가 가장 어렵다. 글 변비에 걸린다. 마감일을 코 앞두고 밤낮으로 끙끙거리며 보내는 고통의 시간이라니. "내 다시는 새로운 원고 청탁 수락하지 않겠다." 결심하지만, 지켜질 리 없다. 나를 낚는 글은 늘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잘 쓰고 싶은 욕심은 가득한 주제들이니 말이다. 내 안에서 농익지 않은 주제들 일지 모른다. 말은 늘 무성하다. 무성한 말들이 정제되어야 눈으로 읽을 수 있는 글이 된다. 그러니 글이 써지.. 2024. 5. 24. 이전 1 2 3 4 ···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