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메르틴(mamertium) 감옥터 앞

 

갑자기 남편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리 와 봐, 해서 보면 남편은 벌써 저기 멀리 걷고 있다. 빨라진 남편의 발걸음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몸이 정직하다. 때로 몸이 가장 정직하다. 그의 영혼이 뛰고 있는 것이다. 말년의 사도바울이 갇혀 있었던 감옥터, 마메르틴(mamertium)이다. 이 앞에서 남편은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수도원 순례에 오른 후 처음으로 말이다.
 
2015년 남편이 성지 순례단을 이끈 적이 있었다. 남편과 참여자들의 후일담에 비추어 좋은 순례였던 것 같고,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성지순례 모델이기도 하다. 순례 전에 여러 번 만나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고, 여정 중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가는 곳마다 드리는 예배와 기도에 그 이야기를 반영하고. 남편에게 터키 그리스 순례지의 각 스폿은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신앙 이야기로 자리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작은 공동체 안에서 잘 묻고, 잘 듣고, 그것을 말씀과 기도에 반영하는 남편의 장점이 극대화되어 발휘되었을 것이다. 그 기억으로 남편은 성지순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 만난 사도바울로 인해 언젠가 로마에 꼭 가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한다.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몸과 영혼이 기뻐 뛰놀지 않겠는가. 남편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2015년도에 바울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그리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설교했던 아레오바고를 오르고, 그가 세례를 줬던 빌립보 강기테스 강가에 앉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은총이 쏟아져 내렸다. 순례의 참 의미를 알았다. 그때 비로소 로마가 가고 싶어졌다. 다른 이유는 없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것이 제일 큰 이유다. ❞ (남편 JP의 블로그에서 가져옴)

그런데 여기는 우리 순례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앞에서 사진 정도 찍고 지나치게 되어 있는 곳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빠르게 들뜬 남편을 보고 따로 입장료 내고 들어가보자 했지만, 단체 여정 중이니 그리 할 수 없었다. 안타까웠다. 합리적인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더 안타깝고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내일 '사도바울 참수터'와 거기 세워진 '세 분수 수도원(TRE FONTANE)' 일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성 바울 성당이 있으니까. 아쉬움을 기대로 달랬다. 그러나 다음 날 예상치 못한 일로 그 앞까지 가서 버스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끝끝내 여기는 밟아보지 못하고 로마를 떠나왔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남편의 들뜬 모습을 보았는데, 여차저차 사도바울의 흔적과는 결국 교차하지 못한 순례가 되었다. 쉬 달래 지지 않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차곡차곡 쌓인 로마의 시간이었다. 감정은 에너지와 같아서 열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 꾹꾹 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인 감정들은 무질서하고 맥락 없는 것이 되어 엄한 곳에서 터지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사도바울 참수터 입구

 
로마의 첫날인 어제, 카타콤베로 가는 일정을 앞두고 인솔자 신부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신지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신부님은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카타콤베 안에서 미사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당장 그것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카타콤베 안에서의 미사는 로마 일정 중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2000여 년 전 숨어서 기도하던 신앙의 선조들의 호흡이 배어 있을 것만 같은 그 공간에서의 전례라니. 그 자체로 신비 아니겠는가. 예배라면 더 좋겠지만, 미사 형식이어도 얼마든지 좋을 것이기에 기대가 컸다. 기대는 아쉬움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부부를 제외한 가톨릭 신자들의 그것과 비할 수 없을 것이니 내 아쉬움 따위는 넣어 두어야 한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순례 여정 중 특히 '매일 미사'가 중요한 분들에게는 아쉬움 너머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나절 푹 쉬시고 회복되기를 바라며, 신부님을 위한 이심전심 기도의 마음으로 순례단은 모두 입을 닫았다. 그렇게 로마의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이 된 것이다.

 

신부님이 몸은 조금 나아지셨지만 순례여정을 동반할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이 순례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막막한 마음이 되어 인솔자 없이 가이드만 의지한 채로 바울 참수터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니 키 큰 나무들이 도열을 하고 맞이하였다. 순간 마음이 넓어지고 커지며 부풀어 올랐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뛰어 앞으로 나갔고, 그 순간 뒤에서 남편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사도바울 참수터'와 '세 분수 수도원' 순례의 전부가 되고 말 줄이야. 모두 내려 그 길을 걷는데 심각해진 가이드가 다시 버스에 타라고 했다. 숙소에 있던 신부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채,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기다리라면 기다리면서 로마 이튿날 오전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한나절의 순례 일정, 그것도 남편에겐 간절한 것이 이렇게 날아가는 것인가. 마음엔 폭풍이 몰아치려 하는데, "느끼면 안 돼, 느끼지 마!" 꾹꾹 누르게 되었다. 신부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과, 일정이 틀어진 것에의 실망감은 별개의 문제인데. 당장은 두 개의 감정을 함께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텅 빈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나긋나긋하고 매끄러운 가이드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쾅쾅 울렸다. 자신이 어떻게 조치를 잘 취했는지 자분자분 보고했다. 아울러 무척 당황스럽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러니 여러분도 그리하고,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라며 특유의 설교조로 마무리했다.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성 바오로 대성당

 
썩 내켜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여 데려온 순례이다. 사도바울의 흔적 앞에서 생기가 도는 남편을 보고 덩달아 기뻤던 것은 찰나로 지나가고 말았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한 마디를 할까말까 엉덩이 들썩이고 있는데 앞에 앉은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이드에게 갔다. 웬만하면 나서지 않는 남편인데, 가이드에게 가서 식사를 못해도 좋으니 오전에 가지 못했던 곳을 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오후 순례 일정 서두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별다른 설명 없이) 오전 일정 중 성바울 성당만 채택되었고, 결국 참수터와 세 분수 성당은 가지 못했다. 이쯤 되면 그분의 메시지로 알아들어야 할 듯하다. 좋은 뜻을 가지고 바라는 것이라도 연거푸 좌절된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충분하다. 연연하지 말아라" 하시는 그분의 말씀으로 들어야겠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다. "네, 주님! 알겠습니다. 여기까지로 만족하겠습니다." 가슴이 뛰었다는 그것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나를 설득한다. 

 

저녁식사 시간, 옆에 앉은 젊은 순례자 하나가 "저, 신부님 일로 멘붕이에요."라고 했다. "저도요!" 그리고는 꾹꾹 눌러 담았던 몇 마디를 꺼내 놓았다. 충분치는 않았지만 꺼내 놓은 몇 마디의 여백으로 종일 부글거렸던 마음과 꽉 조였던 가슴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멘붕이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쉽고,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지 말자, 느끼자 말자, 하며 억압하니 어떤 울분이 되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순명'이라는 말과 덕에 익숙한 듯하다. "이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셨다"는 표현을 순례 중에 많이 들었다. 순명의 미덕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 미덕의 빛 앞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조차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순례단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베네딕도 수도원이라면 '아빠스' 아닌가)가 갑자기 증발한 상황에서 그분의 상태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무엇하나 명확하게 알려지는 것이 없어도, 예정된 일정이 없어지고, 심지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미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는데도 모두 순순하다. 

성 바오로 대성당


신부님의 건강 상태가 베일에 싸이고, 대번에 남편과 나는 혹시 우리 존재가 불편하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다. 가만 보니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이드도 같은 생각을 했단다. 흔히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것을 제 탓으로 가져간다. 학대 가정의 아이들이 학대의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맞을 이유가 있었다거나, 부모님이 나 잘 되라고 때렸다는 식으로 학대 가해자의 죄를 피해자가 뒤집어쓰게 된다. 힘의 차이가 있을 때, 약자가 자기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선을 가장하여 죄를 숨길 때, 아이들은 부모의 죄를 자기 잘못으로 가져가서 수치심의 존재가 된다. 엄마 아빠의 문제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명확한 표현과 설명이 필요하다.  
 
저녁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남편과 나는 말다툼을 했다. 늘 그렇듯 시작은 사소한 한두 마디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갈수록 창대해져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쌓이고 쌓인 울분이 터져버린 것이다. 서로를 향한 울분인가, 아니다. 참수터를 보지 못한 아쉬움인가, 아니다. 잘못 선택한 순례라는 자괴감인가, 그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 소식이 전해져 온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 상태가 갈수록 악화일로다. 어머니 거취의 중요한 결정을 남편이 해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남편은 막내인데 말이다. 여기도 저기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명확하게 길을 제시할 어른이 없다. 결국 부부 다툼으로 끝난 하루는 아빠스 없이 헤쳐나가야 할 수도원 순례, 아니 일상 순례에의 울분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아빠스가 필요하다.

프랑크슈테텐 수도원 지하 경당 벽에 그려진 성 베네딕도


<베네딕도 수도규칙>의 중요한 특징은 '탁월한 분별력'과 '명쾌한 문체'라고 한다. 과연 읽어보면 그렇다. 그렇다. 탁월한 분별력으로 분별해주는, 그리고 그것을 명쾌하게 제시해 줄 아빠스가 필요하다. 영적 어른이 필요하다. 누가 나의 아빠스가 되어줄 것인가.  "주님, 저의 아빠스는 누구니이까?" 맥락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에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했던 어떤 율법사의 말에 빗대어졌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신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다. "네 생각에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리고 내 질문에도 되물으시는 것 같다. "네 생각에는 누가 아빠스가 되어야 할 것 같으냐, 가서 네가 그와 같이 되어라." 아빠스를 찾지 말고 네가 아빠스가 되어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울분을 거두고 네 발로 서서, 어른이 되어 너의 순례 여정을 가라고 하신다. 분별력과 명쾌한 말을 '어느 아빠스'에게 구하지 말고 네 안에서 찾아라고 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