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렉시오 디비나를 배우며 읽은 책이 엔조 비앙키의 <말씀에서 샘솟는 기도>이다. 렉시오 디비나를 유난히 사랑하시는 신부님께 수업을 들었는데, '렉시오 디비나'가 얼마나 단순한 '말씀 기도'인지. 개신교 안에서 조용히 붐을 일으키는 렉시오 디비나는 얼마나 복잡하고, 군더더기가 많은지 생각했다. 가톨릭 학교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하며 결국 " Sola Scriptura, 오직 말씀으로" 회귀하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한 일이다. 더 신기한 것은 내 책상에 놓인 이 책을 보고 JP가 "어, 당신이 이 책을 왜 봐?" 하더니 자신의 말씀 묵상에 가장 좋은 텍스트가 되고 있다니 말이다. 이 일이 먼저였는지, 교회 말씀 묵상 밴드 참여가 먼저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연구소 카페에서 하는 영적 독서와 교회 말씀 묵상 밴드에서 나누는 말씀 묵상이 그야말로 '일용한 양식'이 되고 있다. 작년 한 해를 돌아보는 Big Family Day에서 JP의 감사제목 중 하나가 "정신실이 교회의 딸로 돌아온 것"이라고 했는데. 일면 동의가 된다. 언젠가는 긴 고백의 글을 쓰게 될 것 같은데... 매일 아침 성실하게 말씀 묵상하시는 교우들이 내게 큰 은인이다. 카를 융의 말처럼 나 자신이 되는 것이 인류를 위한 가장 큰 사랑이라는 말을 다시 실감한다. 나도 내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일을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것으로 인류를 사랑해야지, 생각하게 된다. 오늘 마태복음 9:9-17 본문에 이런 묵상 댓글을 달았다. 용기가 필요한 고백이라 올리고 나서 한참 손이 떨렸지만, 말씀에서 솟아난 이 기도로 감사한 하루이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된다."
남편이 전임 목회를 시작한 15년 전쯤, 신앙의 메마름이 시작되었습니다. 메마르고 메마르더니 캄캄해졌습니다. 끝이 없는 어둠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고 어쩌면 저의 신앙 여정에서는 꼭 통과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덕분에 영적 전통 안에 있는 기도를 배웠고 고독 속에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와 "신앙 사춘기"라는 이름을 붙이고 책도 썼습니다. 그렇게 신앙 사춘기를 서서히 빠져나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전과 같은 신앙으로 돌아가기는 힘들었습니다.
신앙 사춘기 때부터 아침 일찍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혼자 일어나 말씀을 묵상하고, 영적 독서를 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저만의 방식으로 주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곳 말씀 밴드에서 묵상 나눔을 하는 것을 알고 있고, 남편이 여기에 정성을 쏟는 것도 알았지만 들어올 생각이 없었습니다. 나대로, 내게 맞는 방식대로 하고 있으니까... (부끄럽게도 제 방식의 말씀 묵상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느 날, 하루도 빠짐없이 밴드에 묵상을 나누는 분들을 보면서 마음에 흔들림이 생겼습니다. 매일 묵상하시며 달라지는 관점, 겸손한 기도...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굳게 마음 먹은 것은 아닌데 스르르 말씀 묵상에 참여하게 되었고, 어릴 적부터 해왔던, 청년 때는 정말 열심히 했던 QT 훈련의 감각이 깨어나면서 몸에 잘 맞는 옷을 다시 찾아 입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다시는 신앙 사춘기 이전의 마음을 되찾을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여기서 뭔가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묵묵히 아침마다 말씀 묵상 나눠주시는 집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신앙 사춘기를 겪으면서 "바리새인 같은 신앙인"들에게 진절머리가 났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쪼개는 글을 써댔는데. 어느새 저는 영적인 우월감에 빠져 더 교묘하게 포장하고 치장한 바리새인이 되어 있습니다. 뼛속까지 새겨진 바리새인 DNA, 아침에 눈만 뜨면 함께 깨어나는 바리새인의 습성입니다. 하루 자고 나면 그만큼 낡아지는 가죽부대 같은 제 영혼입니다. 주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포도주를 부어 주시는데.... 문제는 제 부대가 낡아 찢어지고 터져서 그 포도주를 간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 이 시간 그나마 낡아지는 제 영혼의 가죽부대를 새롭게 하는 시간입니다. 말씀 묵상의 동지 집사님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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