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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294

외로우니까 수선화다 탄천을 따라 약속이 있는 보정동 카페거리에 갔다. 어느 카페 앞에 수선화와 수국이 줄을 맞춰 서 있다. 수선화로구나! 봄이로구나!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세 시간 가까운 즐거운 수다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정호승 시인은 가 생각났다. 수선화narcissus니까 외로운 거야... 나르시시스트 외롭지... 물에 비친 내 모습에 빠져서, 자아에 빠져서, 결국 자아에 빠져들어 죽는 건 가장 외로운 일이지... 아까 찍은 수선화 자세히 들여다 보니 수선화답지 않게 서로를 마주 보는 둘이 있다. 뭔가 얘기가 오가는 중인 것도 같고. 아까 만난 내 젊은 친구와 나 같기도 하고. 나만 바라보면 외롭다. 내 모습에 도취되어 빠져 있으면 외롭지 않을 방법이 없다. "아까 만.. 2023. 3. 8.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월18일, 연구소 카페에서 아침마다 나누는 '읽는 기도' 묵상이었다. 『리처드 로어 묵상 선집』을 읽고 아래와 같은 글을 붙였다. 다음 날 주일 예배의 설교 제목은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였다. 전날 넋두리 같은 글에 대한 답처럼 주어진 설교였다. 남편의 설교를 대문에 걸어두는 게 설교자 당사자 만큼이나 민망하지만, 이 민망한 짓을 하고 싶다. 힘을 내보려는, 허무를 극복해 보려는 노력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다, 나는 죽어서 지옥 가지 않을 것이다, 정도를 부활 신앙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묵상처럼 "부활이란 위대한 변형이며, 전혀 새로운 창조이고, 무엇보다 큰 '사랑'의 변형"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은총과 영광, 그 변형은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말.. 2023. 2. 21.
무화과1 무화과를 왜 사? 채윤이랑 장을 보는데 무화과를 사자고 한다. 무화과를 왜 사? 처음 클릭된 내 마음이었다. 그리 비싸지도 않고, 채윤이가 사자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냥 먹고 싶다는 것이다. 먹고 싶다는 것보다 정직한 이유가 있으랴. 그래, 사!라는 반응에 "어, 진짜?" 하는 게 조금 슬프다. 우리 엄마가 그랬듯 아이들이 뭘 사고 싶다거나 욕구를 드러내면 나는 일단 빨간불을 켜 들었다. "왜애? 그게 지금 필요해?" 엄마가 내게 그러는 게 그렇게 싫었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러고 있다. 그걸 인식한 순간부터 그러지 않으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했으나 아이에게 가 닿는 건 몸의 언어이다. 표정과 세포로 말하는 것을 먼저 들었다. 그 행동이 맞고 틀려서가 아니라 엄마가 전적인 지지를 하지 않으니 아이는 불안.. 2022. 11. 6.
친구, Womance 다윗과 요나단, 두 사람의 우정에 관한 설교를 들었다. 그 여운이 길다. 설교는 이런 내용이었다. 우정은 마음결이 같은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면서 싹튼다. 일단 알아본다. "같은 꽈구나!" 그리고 두 사람 사이 약속이 생기고(언어적일 수도 비언어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이 생긴다. 아마 여기서 신뢰가 싹 틀 것이다. 세 번째가 신선한 통찰이었는데,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극복할 것은 '시기심'이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태도와 마음을 드러내는 성경 구절을 찾아볼 수 있다. 번호 붙여 정리하면, 1. 마음 결이 비슷한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다. 2. 서로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그것을 지킨다. 3. 어쩔 수 없이 올라오는 시기심을 알아차리고 극복한다. 나는 애정하는 여성 철학자 마사.. 2022. 10. 22.
지난 여름 뉴욕 비비언 고닉의 를 읽자니 뉴욕의 거리가 살아온다. 체험이 이런 것이다. 뉴욕의 38번 가, 33번 가... 이것이 더는 숫자가 아닌 것이다. 그 길에 서봤기 때문에 더는 머릿속 이미지, 관념일 수 없다. 지난여름에 걸었던 뉴욕의 길들을 떠올린다. 뉴욕의 마지막 밤이다. 재즈바 Village Vanguard에서 나와서 그냥 걸어보는 길이었다. 마지막 밤이라고 큰 아쉬움도 없었다. 나는 그저 어서 내 집 내 침대에 돌아가 편안한 잠을 자고픈 소원 외에는 없었고. 그래도 돌아보면, 참으로 좋았던 순간이었다. 한적한 길을 느리고 가볍게 걸으며 사진 여러 장을 찍던 순간이 뉴욕 여행 "최고의 순간"까지는 아니어도 참 좋았다. 채윤이에겐 두 개의 얼굴이 있다. 미국 얼굴과 한국 얼굴. 무슨 일이 있어도 유학을 보내.. 2022. 10. 2.
바람이 말했다 나오란다. 나와서 놀잔다. 바람이 말했다.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그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어디서 불어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를, 그 바람이 말했다. 오늘의 고생은 오늘로 족하니 함께 걸으며 무엇이든 흘려보내자고. 낮의 일로 마음의 온도가 아직 뜨겁냐 묻는다. 그런 것 같다 하니 시원하게 선선하게 불어준다. 명절이 다가오고, 어머니의 명절 증후군 증상이 부드럽고 소소한 화살이 되어 날아와 꽂힌 것을 바람도 알고 있었다. 이제 맞고만 있지 않는, 정확하게 말하고 상처드리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며느리가 되었다는 것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주어 금세 열이 떨어진다. 분노의 열기가 떨어지니 냉랭한 마음이다. 그래도 나오길 잘했다. 밤하늘 달이 좋고 바람이 이렇게 좋으니. 되돌려드린 말의 화살이 생각난다. 취약.. 2022. 9. 4.
2022년 여름, 마침표 어서 이 더위가 지나길, 이 여름의 시련이 끝나길 기다렸지만 이렇듯 허무하게 갈 줄 몰랐다. 가을을 기다렸지만 이렇게 빠르게 갑자기 들이닥칠 줄이야. 가을이 아니라 '이상한 여름'일 수도 있겠으나. 이번 주로 학교도 개강하니 가을로 받기로 한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애써 혼자만의 마침표를 찍어보려 한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도전과 시련의 시간이었다. 잠 못 이룬 밤이 여러 날이었다. 그렇게까지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할 일이 아니었다 싶지만. 그 모든 시간을 통해 받은 선물 같은 글귀로 행복하게 마침표 찍는다. 과분한 평인 것은 알지만,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다. 부끄러움과 두려움 속에 내놓았던 글과 말, 드러냄으로 감수해야 했던 수치심의 시간에 대한 격려와 위로 또는 보상으로 받는다. 아니 선물! 어느 .. 2022. 8. 28.
아이의 노래, 엄마의 종소리 바닷가 동네 안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휴가를 보냈다. 동네 안에, 동네와 어우러져 지어진 집이었다. 아침마다 일어나 동네 산책을 했다. 로망 중의 로망이다. 아침에 일어나 시골길을 걷는 것. 그래서 놓치지 않는다. 이번에도 3일 내내, 비가 오는 날에도 포기하지 않고 이른 아침 산책을 했다.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이 교회이다. 어릴 적 우리 교회 같았다. 첫날 산책에 나서서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발이 끄는 곳이 교회였다. 교회 마당에 하얀 백합이 야생적으로 피어 있었다. 꽃집에서 보는 백합, 꽃다발 안에 든 백합이 아니라 얼마나 반가운지. 제 가고 싶은 대로 가는 발이 이번에는 예배당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는데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사람은 없다. 바로 조금 전까지 새벽기도 마치고 가장 늦도록 기도.. 2022. 8. 25.
배롱나무 사랑 주일 예배에서 “사랑하면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다. 요한1서 4:7-21 본문이다. 설교에서 인용된 도종환 님의 시 “배롱나무” 한 구절이 작은 사랑의 불꽃이 되었다. 설교에서 그 시를 마주한 이후로 온 세상이 배롱나무다. 무슨 마법 같다. 배롱나무가 이렇게 흔한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중략) 늘 다니던 길에 오래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2022. 8. 16.
사람을 만나러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깨어서 삶을 살고 있다면 이 두 질문에 명료한 답을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허다하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담긴 공간은 어디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데 급급한 것이 인생이다. 중요하고 막중한 일일수록 깨어서 감당해야 하건만, 그 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중요한 일을 존재를 망각한 채로 해치우려 한다. 막중한 일이라며 기도는 하지만, 기도하며 그분의 현존을 구하지만, 정작 내가 현존하지 못하니 그분이 곁에 바짝 붙어 계셔도 알아차려질 리가 있나. 이번 코스타가 그랬다. 전체 집회 설교, 그것도 최초 여성 스피커라는 것에 과몰입했던 것 같기도 하고. 집회 설교 이후 겪어내야 할 여파도 있었다. '나는 누구/여긴 어디'를 인식하지 못하고 달렸다는 것.. 2022.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