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련회 시즌이 끝났다. 지난 주 금요일부터 어제 토요일까지 달리고 달렸다. 지난 주 금요일엔 우리 교회 수련회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지리 감각이 통 없는 통에 무리하게 달리며 시즌을 시작했다. 강의 요청이 왔는데 우리 수련회가 겹쳐 거절 했다. 듣고보니 수련회 장소 바로 옆인 것 같아 다시 수락을 했다. 강화도와 영흥도. 서해안이라고 다 바로 옆이 아닌데. 새벽 6시 일어나 강화도에서 강의하고 2시간 운전하여 영흥도 수련회장에 갔다. 힐링캠프라는 이름의 널널한 수련회라 중간중간 방에 처박혀 연재 원고를 썼다. 둘째 날 밤에는 정말 오랜만에 음악치료사 페르소나를 발휘, 노래하고 춤추고 노래 만드는 프로그램을 인도했다. (아직도) 낯설고 많이 부끄럽지만 미친 척하고 분위기 띄우는 거 잘한다. 다음 날 눈을 뜨니 한쪽 눈 혈관이 터져 핏빛이 되었다. 아, 일주일 내내 있을 각종 수련회 강의는 좀비 눈알을 하고 다녀야겠구나. 막막하게 맞은 일주일이었는데 원고도 강의도 미션 클리어 하고 새 아침을 맞았다. 어제 오후부터 자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한 열두 시간 정도 잔 것 같다. 새로운 몸을 입은 아침이다.


+
그렇게 강의를 많이 하다니 돈을 얼마나 많이 벌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청년부 강의 많이 다녀서 돈 벌었다는 사람 못 봤으니 앞으로도 걱정 안 하셔도 된다. 열심히 달린 후에는 푹 자고, 알아서 챙겨 먹기도 하니 몸도 괜찮다. 볼이 폭 패이고 말라 있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자꾸 각인 시켜주지 않으셔도 된다. 이미 충분히 부끄러운 말라 주름진 얼굴이다. 장기하가 부른다. 별일 없이 산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니가 들으면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를 들려주마

오늘밤 절대로 두 다리 쭉 뻗고 잠들진 못할 거다

그게 뭐냐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
사실을 말하자면 강의 마치고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 피곤이 턱까지 내려와 졸음운전 걱정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뭔가 강의 내용이 미흡했던 것 같아 침대에 이르기도 전에 이불킥을 하곤 하지만 말이다. 이른 아침 SRT 타러 가는 길, 식구들 잠든 현관문을 닫고 나설 때 이유 없이 왈칵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원고 써 내놓고 악플까지도 아닌, 부정적인 단어 한 두 마디에 심장이 뛰기도 하지만 말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 장보러 마트에 들르면서 누군가 된장찌개 끓여 놓고 날 기다주면 좋겠다 싶어, 문득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음 원고 생각으로 꽉 찬 머리 속에 이 말 저 말 뒤섞여 돌아버릴 지경이 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
지난 주 가장 멀리 다녀 온 강의가 광주, 수련회 장소는 정확히 전라도 화순이었다. 광주송정역에 내려서 맞으러 나온 청년의 차를 타고 화순으로 가는 중 '주남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보았다. 임철우의 소설 <봄날>이나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자료에서 본, 너무나 익숙하지만 낯선 주남마을이다. 그리고 보이는 이정표는 보성, 화순, 벌교. 그러니까 민주화항쟁 당시 게엄군이 주둔하며 길을 막았다는 바로 그 길인 것이다. 연애 강의 하러 가는 길인데 내 마음은 온통 80년 광주에 가 있었다. 묻고 대답하는 강의 중 청년들 입에서 아무렇지 않게 나온 '충정로' 라는 말에도 멈칫했다. 일주일, 강의 다니는 외적인 삶보다 더 많은 일들이 내 마음에선 일어난다. 수련회서 만나는 청년부 목회자들 한 분 한 분이 내겐 의미이다. 황폐해진 청년부를 맡은 1년차 목사님,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청년부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목사님, 으쌰으쌰 살아 꿈틀거리는 공동체에서 신뢰받고 행복한 목사님, 작은 청년부를 맡아 온몸으로 뛰는 목사님. 강의 일주일이 아니라 만남 일주일이다.


+
일주일의 마지막 강의. 토요일에 덕산으로 운전하며 가는 중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의 찬송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채윤이를 키우면서 자장가로 그렇게 불러주셨던 찬송이 생각나 혼자 불러봤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시냇물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주시니 내게 부족한 전혀 없어라' 찬송 가사가 엄마처럼 따스해서 또 왈칵 눈물. 엄마의 찬송 소리를 많이 녹음해 두어야지 싶었다. 강의 마치고 홀가분하게 돌아오는 길,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찬송 불러봐. 못 부른다. 잠시 침묵 후 '예수 소유 하야서 나는 부자 되고 예수 한 분 잃어서 나는 그지 되네' 신청곡 아닌 다른 곳을 혼자 부른다. '엄마, 그거 말고 주는 나르을 기르시는 목짜아요 이거 불러봐' 내가 선창을 해도 못 부른다. '나 다 잊어버렸어. 끊어'란다. 전화 끊고 울며 운전했다.


+
별일 없는 일주일 보내고, 새로운 날들을 맞는다. 일상이 흘러간다. 별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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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며 

관계를 맺으면 괜한 에너지 소모가 덜할 것 같은데.


이 놈의 SNS 세상은 

보고도 안 본 척, 알고도 모르는 척은 기본이고.

몰래 보고, 못 본 척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게임판 같기도 하고.

뭘 그렇게 사람이 베베 꼬여 있느냐, 쿨하게 보고 넘기고 하면 되지,

라고 말하지 마시지 말고 하고 싶으면 하시라.

나는 태생이 쿨하지 못한데다 마음 바닥이 좁은 편이다.


나의 페북 사용법은 '그것은 알기 싫다'이다.

일일이 축하 하거나, 찬사를 보내거나, 아픔에 공감하지도 못하면서

타인의 개인사를 알고만 있기가 싫다.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를 이해하려는 태도 없이,

그와 얼굴을 대면하고 물을 수 없는 바를 은밀히 캐기 위해 

훔쳐보고는 불행한 SNS 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면서도, 페북에서 유명한 싸움 구경은 꼭꼭 찾아본다. 큐큐)


친구 요청이 와 수락하고 친구가 된 후에는

진심 존중의 마음을 담아 팔로우를 취소를 누른다.

누군지 모르는 분의 일상을 눈팅 눈팅 눈팅, 하다

혼자 좋고 싫음의 투사 드라마나 쓰며 논평하는 게 예의가 아닌 듯 하여.


블로그의 보이지 않는 독자를 사랑한다.

일등 칸에는 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는 분을 모신다.

댓글을 남기거나 적극적인 표현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오프에서 나누는 한 마디 대화, 눈짓으로도 알 수 있다.


지난 주에 갔던 청년부 수련회의 포스터이다.

처음 뵙는 목사님, 청년부였다.

본 것을 봤다 하고, 아는 것을 안다 하는 디테일이 살아 있다.

숨통이 트인다.


이틀 만나고 온 담당 목사님과 청년부는 살아 있는 만남으로 마음에 심겨진다.

강사를 치켜 세우는 포스터에 으쓱해져서 이러는 건 아니다.

나야 이제 어쩔 수 없이 책으로 블로그로 내 패를 다 보여준, 

상대가 어디까지 봤는지 모른 체 홀랑홀랑 벗어 제끼는 게 주특기인,

그걸 밑천으로 글쓰는 사람이다.

숨어 훔쳐 보는 사람이 몇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저 여기까지 봤어요' 하며 다가오는 만남은 얼마나 고마운가.


강사로 산다는 건, 딱 한 번 보고 말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는 일인데.

딱 한 번 만남을 진정한 만남으로 간직하게 되는 일이 있다.

아는 만큼, 본 만큼 이해하고 표현하는 투명함이 주는 선물일 터.

헛헛함과 슬픈 헤아림만 남기는 에너지 소진의 만남은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하고 싶으나,

살아간다는 것은 이것을 견디는 것일지도. 

100 번의 가면 쓴 만남에 단 한 번의 생기 있는 만남,

홍수 속의 목마름에 생수 한 병 같은 만남이 있으니 살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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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에 찬사를 받을 때 좋아지는 기분에 연연하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으로 살아갈 힘을 얻지만,

나를 자라게 하는 늘 그 반대 지점에 있다.


남편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문득 나간 말이다.


나는 결백하다고 주장할 뜻을 가지면 아프고 화나지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돌아보려 하면 아프지만 자유로워져


남편에게 한 말이 아니라 내가 들어야 할 말이었던가.

되새기고 있다.


아프던 겨드랑이 밑이 간지러워져 날개가 돋아나

아프지만 자유로워지는 시간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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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려 있던 일정을 끝내고 휴우~ 하면 거실 내 자리에 앉았다. 

어쩌다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창가의 다육이 화분.

어머, 저게 뭐야?

떨어진 잎에서 싹과 뿌리나 나고,

흙지 붕 뚫고 새싹이 하나 돋아난 것이다.

두 생명체가 서로를 향하고 있다.

가 닿으려는 듯.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 정성 들여 돌보지도 못했는데.

시들시들 고개를 떨굴 때야 깜짝 놀라 물을 주기도 했는데.

나 모르는 사이 생명이 잉태되고 자라고 있었다니.

뭉클한 감동이다.


전에 [큐티진]에 썼던 글의 일부이다.

보이지 않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한다는 것,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미국의 낭만파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을 노년이 되기까지 열정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 말에 정원 한 구석의 고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고. “죽은 듯 보이는 저 나무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그 이유는 저 나무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살아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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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이나 치유 그룹에서는 흔히 별칭을 쓴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생소하고 오글거리지만 의미 있는 일이다. 내 이름 정신실을 두고 '나리'로 불리는 건 나와 거리를 두는 일이다. 2인칭 또는 3인칭으로 불러 나를 타자화 시키는 방법이다. 새롭게 만난 그룹에서 직업도, 성별도, 나이도 구분 없이 부르는 별칭은 페르소나를 지양하는 뜻이 담기기도 한다. 언젠가 나도 오글거리던 적 있었지만 이젠 별칭 짓기 권하는 자리에 자주 앉는다. 드물게 바뀌지만 나의 별칭은 주로 '나리'이다. 나리꽃의 그 나리. larinari의 nari 역시 바로 '나리'이다. 굵직한 별칭 만남들의 마침표를 찍었다.


5,6월 8회기의 글쓰기 자조모임을 동반했다. 목회자 성폭력 생존자, 라고 쓰기도 싫은, 그러나 분명 그 끔찍한 일을 겪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아니, 잘 살아가지 못하는 '나'들이다. 8주간 함께 쓰고 읽으며 나도 쓰고픈 말이 많이 일렁였다. 아니,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 모임이 있는 금요일엔 늘 새벽까지 깨어 있게 되었다. 매주 생각보다 많이 웃었고, 조용히 울었다. 제가 오히려 배우고 치유 받았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은 8주였는데. 마지막 8주차에는 '네, 저도 치유고 배움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네요' 하고 뛰쳐나와 가해자 목사를 찾아내 단죄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여기서 나는 '나리'였다.


작년 가을부터 준비한 여정 캠프, 그러니까 싱글들을 위한 2박3일 캠프가 있었다. '나를 찾는 길 위에서 너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붙여봤는데 '에로스를 찾다 아가페를 만나다' 이런 사심을 품기도 했다. 하긴 부제로 붙일만 한 사심이 한 둘이 아니다. 소개팅과 결혼 압박에 지친 싱글들의 힐링 캠프. 전에 해보지 않은 재미있는 연속 소개팅. 나는 왜 사랑이 두려울까, 두려움 극복 프로젝트. 매칭 부담 없는 매칭 프로그램. 등등.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하나님이 하셨습니다'라고 해야겠다. 생면부지 15명의 청년들 캐릭터부터 날씨, 장소, 나눔, 상담, 케미, 피날레. 여기서도 나는 나리였다.

 

캠프 떠나기 하루 전인 수요일엔 에니어그램 심화 세미나가 있었다. 아침 일찍 운전을 하고 가는데 음악을 듣다 툭,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전 주 금요일 글쓰기 자조모임 이후 차분히 감정 돌볼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연이은 묵직한 강의 압박 때문이었을까. 마침 이날 심화과정의 주제는 '감정'이었다. 예언 같은 울음이었을까. 미처 울지 못한 뒤늦은 울음이었을까. 그렇게 '나리'로 살았던 6월은 끝났다. 오늘 주일 예배에선 여정캠프에서 만난 15명, 에니어그램 세미나의 6명, 글쓰기 자조모임의 4명.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흩어져 이어지는 그들의 일상을 떠올리며 다시 또 울었다. 울음이 아니라 기도라고 하자.  



'나리'라고 불리는 또 하나의 그룹이 있다. 매주 만나는 꿈과 영성생활이다. 2박3일 여정캠프를 지원하고자 모인 사람들처럼 카톡으로 무한 에너지를 보내왔다. 캠프가 있었던 연천으로 가는 길을 전화 통화로 함께 하며 얘기를 들어주고 깨달음을 주는 벗이 있었다. 연천의 한옥호텔에 도착하여 긴장 속에 자기소개를 마쳤다. 물론 나를 '나리'로 소개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어머나, 정원에 지천으로 핀 꽃이 나리꽃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주님! 신경 많이 써주셨군요! 나리는 마태복음 6장 28절의 '들의 백합화'이다. 꾸미지 않아도 아름다운, 있는 그대로 족한 들꽃이다. 




캠프에서 상담하는 중 세 사람에게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강의하고 상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충전하는가, 조금 걱정된다, 는 뜻도 담긴 것 같다. 나리는 나리가 되고 참나무는 참나무 되는 것으로 족한 만남에서 끝없이 재충전 한다고 대답할 걸 그랬다. 돌아가 그런 벗들이 있고, 벗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살아있는 숨결을 따라가다 보면 때로 그 숨결의 근원이신 분을 만나기도 한다고 고백할 걸 그랬다. 나는 나임이 부끄럽지 않다. 나를 나리로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온몸으로 하고픈 말이기도 하다. 각자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그분의 큰 뜻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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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특히 부정적인 감정은 보물입니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면 떠나보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치유 되고, 성장합니다.

자신의 진짜 감정을 느끼고 건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가장 건강한 사람입니다.

감정은 영혼의 외침입니다.


라고 말하고, 독려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내곤 한다.

낮에는 이렇게 강의를 하고, 이런 취지의 별별 상담을 한다.


어느 밤에는 공허감, 슬픔,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외로움이 패키지로 몰려온다.

직면하고, 이름 붙이고, 충분히 느끼라고 나를 토닥여보지만, 

정답을 익히 알고 있는 이 삐딱한 자아가 순순히 말 들을 리 없다.


이런 밤에 읽을 책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글을 읽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게다가 몇 줄 끄적일 수 있으니.


어제의 낮은 지워지고, 내일의 낮은 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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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을 수 없었고,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일들이 나를 새로운 자리로 데려가곤 한다.


음악치료사라는 직함, 호칭 또는 정체성이 점점 흐려지고

작가와 강사의 옷이 평상복 같아지는 나날이다.


쓰고 읽은 것들이 자꾸 내가 새옷을 입히는 것이다.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끌게 되었다.


이 쓰기 모임을 설명하는 언어로 '피해자(보다 생존자)', '치유(보다 성장)'를 쓰기가 불편하다.

아닌 게 아니라 첫모임에서 한 분이 말했다. 그 말은 불편하다고.


대상화 되기를 불편해 하는 감각을 가졌다는 것은 더는 그 언어가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수도 있다.

'자조모임'이 딱이지 싶다.


건강(health), 치유(Healing)라는 말의 어원이 ‘hal, hale’이라고 한다. 

이것은 whole, 즉 전체성과 온전함의 뜻한다.


치유는 비정상을 정상 만들거나, 아픈 사람 낫게 한다는 뜻보다는

온전성의 회복이라 이해하는 것이 좋다.


칼 융이나 카레 호나이는 자기 치유, 즉 온전성을 향한 의지와 힘이

모든 인간 안에 있다고 한다.


돌아보면 읽고 쓰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나다움을 찾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기울어진 사유의 틀과 신앙을 가지고 불편한 일상에서 균형을 찾고자함이었다.


커리큘럼을 짜기 위해 참고할 책을 한 권씩 빼서 노트북 옆에 쌓다보니 끝이 없다.

마치 '치유하는 글쓰기'를 위해서 읽고 써 온 인생이라는 듯.


자기치유, 또는 가장 나다운 나를 꽃피우기 위한 읽기 쓰기의 50평생이니,

글쓰기 자조모임을 이끄는 일은 또 하나의 필연인가.


새로운 만남, 새로운 일로 긴장과 설렘의 봄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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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중학교 2학년까지 살았던 고향, 충청남도 한산을 찾았다. 남편 제안으로 휴가 중에 일부러 일정 잡아 들렀다. 마침 한산 오일장 서는 날이라 어릴 적 장날을 기억하고 한껏 부풀었으나 한산하기만 한 한산장이었다. 점심을 먹어야 해서 '오라리 집'으로 들어갔다. 내게는 아스라하고도 친근한 '오라리'이다.


혼자 갔으면 조용히 먹고 나왔을 텐데 남편이 주인 할머니께 장사하신지 얼마나 되셨냐, 아내가 어릴 적에 여기 살았다, 말문을 터주었다. 35년 되셨다면서 "오디 사셨슈?" 하셨다. 저 위에 한산제일교회라고, 그 교회 목사님 아시냐고 했더니..... "아, 그 탄 가스로 돌아가신 정 목사님" 하셨다. 그리고는 "내가 그때 당시 잠깐 교회를 댕겼슈" 하시더니 우리 엄마한테 수십 번 들었던 교회 얘기를 들려주셨다. 눈물이 터질락말락 놀랍고 신기했다. 잠시 후에 식사하러 들어오신 어르신에게 "저기, 옛날이 교회 목사님 알쥬? 이 양반이 그 딸이랴" 하...자마자 "정선득 목사님?" 하신다. 당시에는 교회 안 다니셨는데 지금 한산제일교회 장로라고 하시며.


동네 구석구석 돌아보고 사진 찍고 하는데. 지나가는 연세 드신 분 아무나 붙잡고 "제가 예전 교회 집 딸입니다" 하면 다 아실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렸을 적에 교인 아닌 분들은 나를 '교회 집 딸'이라 불다. 태어나보니 목사 딸이라서 그러려니 했는데, 동네 절에서 사는 어떤 아이에게 '절집 딸'이라고 부르는 소리에 '교회 집 딸'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 절집 딸, 되게 이상한 애처럼 보인다. 이런 느낌이구나. 부모의 딸이 아니라 '특별한 어떤 집에 사는 사람 중 하나의 아이'


고향 동네를 뒤로 하고 겨울 논 사이 국도를 달리는데 기억의 조각들이 마구 떠오른다. '교회 집 딸'이란 말을 조금 다르게 인식한 후에 무의식 중에 '교회 집 딸, 목사 딸'이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 속으로 자꾸 이렇게 말했다. '교회 집에도 엄마 아부지가 있고, 그냥 당신 집하고 똑같습니다. 죽이 잘맞는 동생과 엄마 아부지 놀릴 궁리를 하다 싸우다 혼나다 하면서 사는 그런 일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자라고 어른이 되어서도 목회자 가정이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거룩하지 않다는 걸 설명하기 참 어려웠다. "그냥 당신 가정과 비슷한 정도의 행복과 문제를 가진 가정이라구요." 엄청 홀리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그 사람의 마음에 그린 이미지의 투사라는 것을 알기에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남편이 목사가 된 이후로 남편 직업을 말해야 할 순간이 오면 그냥 낯이 뜨겁고, 한 마디 설명하고 싶은 마음 누르게 된다. "목산데,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사기꾼은 아니에요. 그냥 장점도 있고, 장점만큼의 약점도 가진 한 사람이에요."


늦게 목회자 된 남편보다 목회자로 사는 것에 대해 더 복잡하고 민감한 이유를 문득 깨달았다. '교회 집 딸, 목사의 딸'이라는 페르소나에 대한 고민이 어릴 적부터 유난했다. 오라리집 아주머니 말씀을 듣다가 확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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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하는 이유  (3) 2017.11.04




"엄마, 이틀 남았어. 40대를 마지막으로 즐겨. 이틀 후에 50살 되는 거 알지? 50은 반백이야. 백 살의 반이라구" 토요일 할 일 없이 빈둥거리던 아들 놈이 기껏 찾아내 떠벌이는 말이다. (굳이 일깨워주지 않아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이 놈아!) 어쩌다 오십이다. 나이에 부끄럽지 않게 한껏 늙은 얼굴이다. 화장 하려고 거울 앞에 앉으면 어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이든 민망함이 앞선다. 연세 드신 분들을 만나러 간다면 '어린 것이 버릇 없이 저렇게 주름 자글자글 마음껏 늙어 가지고 다녀!' 하실 것 같고. 젊은이들 만나러 가는 길에는 '어머, 이렇게 연로하신 분이 무슨 연애 강의요?!' 하지 않을까 싶고. 


얼굴이 문제가 아니다. 반백의 나이에 부응하여 '오십견' 또한 찾아와 주셨다. 내가 강의도 잘하고 음식도 잘하고 찬양 인도도 잘하는데 딱 하나 등을 못 긁는다. 아, 사실 옷도 잘 못 입고, 머리도 못 묶는다. 오십견 증상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와 1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말이 오십견이었다. 일단 무지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 운동은 전혀 안 하고, 폐쇄적인 어떤 사람들이 걸리는 것이려니. 어깨 관절 각도가 조금만 커져도 '아야아야아야'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얼마나 엄살 같은지 식구들의 놀림꺼리이다. 


영적 사춘기와 함께 중년 앓이를 남보다 이르게 치룬 덕으로 일찌감치 이 말씀을 알아듣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21:18)


일기장과 블로그를 더듬어 보니 2009년, 2012(click), 2014(click)년 한 번씩 이 말씀을 깊이 품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가대 지휘를 내려 놓으며, 음악치료를 접으며, 무엇보다 삶의 계획의 주도권을 내려놓아야 할 때마다 묵상한 말씀이다. 오십 고개를 넘어가며 다시 보는 이 말씀에서 '늙음'이 더는 상징이 아니다. 늙음 그 자체이다. 비움, 내려놓음 이런 관념이 아니다. 


10여 년 수영을 하다 그만둔 지 1년이 넘는데, 그 사이 오십견이 왔다. 치료는 운동 밖에 없다는데 그 어떤 운동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재활치료 한다는 마음으로 수영장엘 가자, 싶어 용기를 냈다. 빠르게 왔다갔다 하진 못하겠으니 중급 정도에서 천천히 놀아봐야지, 싶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왼팔 젓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겨우 살살 평영을 할 수 있을 정도. 할머니 한 분이 세월아 네월아 삐뚤삐뚤 자유형을 하다, 걷다 하시는 초급 레인으로 갔다. 나도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한 팔로 되는대로 왔다갔다 했다. 상급 레인에서 접영으로 세차게 물을 가르던, 자유형 40개를 거뜬하게 돌던 내 몸은 없다. 어, 없다.


삼십 고개를 함께 넘었던 친구들이 있다. 삽십 고개를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지리산 종주를 했는데, 나는 함께 가질 못했다. (당시 나의 썸남이었던 종필이 누나들 짐꾼으로 따라갔으니 그의 마음에 ♡담겨♡ 나도 함께 다녀온 걸로 되어 있다. 큭큭) 오십 고개를 넘는데 지리산은 못 가더라도 뭐라도 넘어야 한다는 취지로 한 밤을 함께 넘었다. 별스럽지도 않게 사는 얘기 살아온 얘기 끝도 없이 나누는데, 내게도 친구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은 딱 한 마디. 여기까지 잘 왔다! 이다. 20대에 마음이 끝도 없이 요동치던 시절에는 30대가 되면 사는 재미가 있을까, 싶었다. 결혼과 진로가 결정되면 고민이 없을 텐데 고민 없는 삶은 재미라는 게 있을까? 철없는 걱정을 했었다. 허허. 우리의 3,40대를 설명하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정황 설명과 억울함에 대한 해명, 견뎌온 자신을 피력할 말이 필요한가. 그저 20년 전 지리산에서 홍천의 리조트로 휙 화살표 하나 그어 '여기까지 잘 왔다'로 해두자.


거실의 선인장이 뜬금없이 봉우리를 맺더니 꽃망울을 터뜨린다. 성탄 장식 옆에 두었더니 저도 대림을 기리겠다는 뜻인지, 주인 엄마의 반백을 축하 하겠다는 뜻인지. 빨간색 꽃망울이 예쁘다. 꽃망울이 예쁘지 막상 꽃을 피우면 신비감도 사라지고 그저 곧 시들어 떨어질 듯한 반백의 오십견 아줌마 같이 보인다. 그래도 이 겨울에 여전히 살아 생명의 숨으로 거실을 채워주니 고맙고 고맙다. 실은 가족들도 몰라주는 오십견 통증으로 외로울 때, 가장 큰 위로를 준 녀석이다. 그리 아까지도 않는 화초였는데. 그래서 더 고맙다. 


이제 하루 남은 거다. 나의 4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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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중앙공원의 단풍이 운전을 방해한다. 운전하며 틈틈이 곁눈질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다.  원두가게에 들러서 원두를 사고 서비스로 주는 커피 한 잔을 얻어서 중앙공원으로 향했다. 벙개로 만난 친구처럼 들뜨고 설레며, 동시에 호젓하며 쓸쓸했다. 분당의 가을은 예쁘다. 봄도 예쁘고 여름도 예쁘지만 가을은 유난하다. 눈을 돌려 마주치는 어디든 예쁘지 않은 곳이 없다.




봄은 가까이 가서 봐야 예쁘고, 가을은 멀리서 봐야 예쁘다.


지난 주 어느 날, 역시나 단풍으로 예쁜 동네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얻어 들은 명언이다. 명언의 발화자 권사님의 부연설명은 '가을 단풍이란 실은 푸석푸석하고 물기 없는 것이 가까이 보면 고울 것이 없다는 말씀이었다. 그렇지! 흙모자를 쓰고(이거, 망원동 사는 어느 시인의 표현이다.) 올라온 새싹과 눈을 맞추기 위해 고개를 들이밀던, 연한 새잎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던 봄날이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은 버석버석하고 스러져가는 아름다움이다. 바람 살짝 불면 후루룩 떨어져 버리는 힘 없는 잎들의 향연이다. 붙들고 싶으나 더는 붙들 힘이 없는, 고갈된 생명의 처연함이다. 가까이서 찍은 내 얼굴이 보기 싫은 느낌은 운전하고 지나치다 본 숲에 들어섰을 때의 쓸쓸함이다. 나좀 봐달라는 듯, 지는 해를 스포트라이트 삼아 존재감을 발하는 벤치가 눈길을 끈다.  




벤치를 주인공 삼아 사진 여러 장을 찍은 뒤에 화단의 낮은 담을 넘어 가서 앉기로 했다. 주름진 얼굴, 오십견이 와서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어깨, 물오르는 생명력 같은 건 많이 잃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가 앉았다. 가서 앉자, 앉다, 앉아 있다, 이런 말을 되뇌이다 구상 시인의 시에 이르렀다 . 이 한 마디 알아듣기 위해 인생의 봄, 여름을 달려온 것일까. 푸석푸석한 생의 가을이어서, 알아들어지는 것이 있는 가을이어서 다행이다.

 


[꽃자리]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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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부터 귀에 꽂히는 경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결혼을 앞둔 후배들에게 들려주는 언니들의 조언이다. 경험을 우려낸 진국,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영양가 듬뿍 담긴 가르침이다. "시부모에게 처음부터 잘하지 마라. 잘하는 며느리에게는 계속 더 기대한다. 아예 처음부터 잘할 생각을 하지 마라"


영양가 높은 말인 건 알겠으나 동의가 되지 않았다. 결혼한 언니들 백이면 백 '시'자 들어가는 건 시금치고 시켸(식혜 켸켸)고 일단 뱉어내는 걸 보니 장난이 아니다 싶었지만서도. 나는 착한 여자 콤플렉스도 있고, 남들 하는대로 하는 건 무조건 안 하고픈 반골 기질도 있는지라. 무엇보다 관계 시작하기도 선부터 그어 놓는 것이 불편했다.


잘하고 말고 생각하지 않고 시부모님과 관계를 맺었다. 미리 규정하지 않으려 했고, 할 수 있다면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려 하다보니 웬만하면 거절하지 않(못하)는 관계가 되었다. 착한 며느리 소리 듣고, '너는 며느리가 아니라 나의 상담자이며 치유자다'라는 극찬도 들었지만 어느 시점 정신을 차렸다. 아, 잘하는 며느리를 향한 기대는 끝이 없구나! 언니들 말이 맞았네!


나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은 자만심의 결과였다. (불평등한 결혼 구조 안에서 며느리로 사는 문제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어느 시점 뒤늦게 경계를 설정하고 그럭저럭 편안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처음부터 잘하면 안 된다!


'처음부터 잘하는 게 아니었어, 대충 말 안 듣고 살살해야 했어' 시어머니가 아니라 하나님께 이런 마음이 들면 복잡해진다.  내가 고분고분하니까 나를 너무 막 다루시는 거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시네. 이만큼 했으면 저만큼은 해주셔야지 갈수록 더 팍팍하게 구시나. 가만히 있으니까 가마니인 줄, 보자보자 하니 보자기인 줄 아시나 본데. 확 절교를 할 수도 없고!


때때로 살아야 할 이유가 흐릿해질 때가 있다. 일상의 부조리를 담기에 내 마음이 작거나, 마음의 그릇 크기에 비해 부조리의 크기가 크거나. 오늘의 부조리를 견딜 힘은 '의미'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흐릿해진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때때로 무의미의 숲에서 길을 잃어 헤매는데, 그때 내가 화살을 돌릴 유일하고 만만한 분이 하늘 아버지. '착한 사람들 뒤를 더 잘 봐주셔야지 갈수록 험지로 내모십니꽈? 이래도 되는 겁니꽈?; 삿대질 하고 원망해본다. 강상중이라는 뜬금없는 귀인을 만났다. <마음> <고민하는 힘> <어머니>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차례로 읽으면서 마음이 마음이 조금 풀렸다. "살아야지, 죽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충만하지"


삶에 대해, 사람에 대해, 사랑에 대해 Yes라고 말하지 않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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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시점은 어떤 변곡점이다.

무성한 잎을 보아하니 보이지 않는 뿌리가 숨 쉴 공간이 부족하겠네,

생각하며 화분을 갈아줘야지 싶어도 쉽게 되질 않는다.

분갈이 할 시간이 없거나, 갈아줄 더 큰 화분이 없거나.


2000원 짜리 두 개(어쩌면 세 개)를 사서 주먹만 한 화분에 심어 키운 스파트필름이다.

몇 차례 분갈이 하며 몇 년을 지났다.

뭔가 꽉 찬 느낌이라 갑갑해 보여 신경 쓰이고 미안했지만 마땅한 화분도 없고, 시간도 없고.

개국 이래 최장 휴일이라는 2017년 추석이라 시간이 많아졌다.

어머니 모시고 율동공원 나들이 다녀 오는데 집앞 나무 사이에 멀쩡한 키다리 화분이 서 있다.

'제 아이를 부탁합니다. 사랑으로 돌봐주세요' 누군가 놓고간 아기 같이 말이다.

냉큼 주워 와 분갈이 작업을 했다.

언니가 더는 못 입는 옷을 동생이 물려받고, 도미노처럼 그 다음 동생도 득템하는 형국이다.

빈 화분을 그 다음 큰 아이가 차지하고, 그래서 생긴 자리에는 또 다른 녀석이 심겨진다. 

아침에 걸레질까지 해놓은 거실은 흙대밭(?)이 되고....... 

그리하여 작은 옷을 입고 숨도 못 쉬던 스파트필름은 화분 서열 2위로 등극하였다.

1위인 벤자민이 사춘기 지나 키 다 큰 성인으로 입양된 놈이니,

실질적으로 1위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비좁은 거실에 어디 둘 데도 없지만 없는 공간 만들어내는 재능을 타고난 엄마 덕에 좋은 자리까지 잡았다.

해질녘이면 붉은 저녁 햇살이 깊숙하게 들어오는 길, 

노트북 앞에 앉은 엄마의 눈길이 가장 많이 닿는 명당자리이다.

한 잎 한 잎 물로 닦아주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눈을 뗄 수가 없다.

에고 이뻐라, 에고 이뻐라. 주먹만 한 화분에서 어찌 이렇게 자랐는가, 기특하기도 하여라.

혼자 간직할 수 없는 감동에 이 녀석 자랄 동안 물 한 번 주지 않았던 김종필 아빠에게 강요한다.

"여보, 얘 좀 봐줘. 큰 박수가 필요합니다! 박수 쳐! 세게 쳐!" 


성.장.

가끔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오는 질문, 나도 내가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나에 대해 이 단어를 찾았다.

성장하고 싶은 욕구, 욕구가 지나쳐 집착이 되고 이것은 결국 중독이 아닐까 싶은 열정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쓰는 열정, 나답게 강의하기 위해 배우고 공부하는 열정.

내 마음 그대로 투사가 되어 꾸준히 자라는 식물이 예뻐도 너무 예쁘다.

사람에게도 투사가 되어 성장하는 사람은 다 예쁘다.

이미 훌륭하여 더 자랄 것도, 배워야 할 것도 없다는 사람과는 친해지고 싶지 않다.


감.사.

말 없는 식물에게서 감사의 태도를 느낀다.

이것도 역시 내 마음을 비춘 감정이지만 말이다.

아이들 어릴 적에 많이 불러줬던 노래, 정말 귀여운 노래인데 부르다 자주 울컥했던 노래가 있다.


포도밭에 포도가 땡글땡글 땡글땡글땡글땡글 잘도 열렸네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정말 혼자 컸을까 아니 아니죠

위에 계신 하나님이 키워주셨죠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는 물론이고 주일학교 찬양 선생님 할 때도 많이 불렀다.

'가사 바꿔 부르기'로 사과, 배추, 호박, 고추, 딸기.......에 의태어까지 바꿔서 참 재밌게도 불렀다.

어떻게 가사를 바꾸든 '자기 혼자 컸을까 아니아니죠'에선 늘 은혜를 받았다.

누워서 빽빽 울던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사람 되기까지,

오늘의 내가 이나마 사람 구실 하면서 살기까지,

나 혼자 크질 않았다. 얼마나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는가.

위에 계신 하나님이 연결해주신 수많은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주고, 자기의 것을 나눠주며

지금 여기의 내가 있다.


공들여 키우는 창가 책꽂이 위의 화분 중에는 그런 놈이 없다.

자라지 않는 놈, 제 혼자 큰 줄 아는 녀석은 없다.

사람은 너나 없이 제 혼자 이룬 줄 알기에 감사치 않는다.

쑥 자라 어른이 된 화초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아침 저녁으로 보듬은 나의 공을 생각하고,

나 몰래 내게 사랑과 인내를 베푼 수많은 손길과 공로를 상상해본다.

감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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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 김현승翁의 어릴 적 일기를 빌자면 '매일 매일 똑같은 하루'이다. 똑같은 일과 비슷비슷한 염려, 여전히 감내해야 할 것들이 반복되는 하루이다. 이런 일상 속에 심장 뛰는 일이 생기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심장 뛰는 놀이가 생겼다. 발품팔이 온라인 중고매장 찾아가 득템하기. 열정 솟아나는 새로운 놀이이다. 절판 도서 한 권을 노리고 있었다. 사람들 취향이 다른 듯 비슷해서 내가 찜한 절판 도서들을 나만큼 눈에 불을 켜고 찾는 사람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오프라인 중고매장을 검색하던 어느 날, 기다리던 책 <남성성과 젠더>가 합정점에 떴다. 채윤이 레슨 가는 날 잡아오라 하기엔 늦을까? 무리해서 돌아돌아 다녀올까? 고민하는 와중에 이미 판매되고 사라짐. 허망. 딱 한 권이 알라딘 중고매장 전주점에 살아 있다. 주일에 전주에서 강의가 계획 되어 있었다. 터미날 투 강대상까지의 픽업 의전을 마다하고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지. 중간에 알라딘 매장에 들러야지, 야심찬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런 와중, 잠실 신천점에 한 권이 또 떴다. 지하철 타~아고, 버스 아고 달려가서 체포했다. 몇 번 책꽂이 몇 번째 칸 찾아가 눈알 굴리며 더듬다 동공 고정. 떨리는 손으로 책을 뽑는 느낌. 말로 표현 못함. 으아아아.


운동 삼아 서현역의 온라인 중고서점에 다니며 쏠쏠한 재미를 보기 시작. 쏠쏠쏠쏠한 재미를 위해 중고매장 활동 범위를 넓히게 된 것이다. 새로 생긴 동탄점에, 분당 야탑점에도 가 착한 가격으로 위시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낚아왔다. 아주 급한 책이 아니라면 중고가 나올 때까지 검색질을 하며 기다리기로 한다. 하루 한 번 정도 검색창에 제목을 치고 엔터를 누를 때마다 (얼마 만의) 뛰는 가슴 한껏 즐기면서 말이다. 남편과 서로 책 사는 문제로 은근 갈구고 눈치 주고, 갈굼 당하고 눈치 보는 일상이다. 당신 책 또 샀어? 어, 이번 설교에 꼭 필요한 책이야. 정신실, 책 또 주문했어? 아아, 준비하고 있는 강의가 있는데 주제에 딱 맞는 책이 있더라고. 피차에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으며 책을 사들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중고서점에서 엄청 싸게 샀어' 이것은 기분 좋은 면죄부가 된다. 


책 읽는 즐거움이 없다면, 책을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이 깊은 공허감과 결핍감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누군가 내 어릴 적에 진로 코칭을 잘 해줬다면' if로 시작하는 상상의 나래를 자주 펼치곤 한다. 중고등 때는 영어가 정말 좋았다. 모두 평등하게 과외를 할 수 없었던 중학교 시절에, 시험 때마다 영어과목은 더 공부하할 것이 없을 정도로 달달 외우고 또 보고 또 보곤 했다. 틀릴래야 틀릴 수 없는 상태로 시험을 치곤 했으니. 영어가 재밌고 좋았다. 영어를 전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학 2학년 때는 사회학을 세미나 수업으로 듣고 '아, 내가 사회학이 딱 내 체질에 맞는구나!' 싶었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다 여성학을 공부하겠다고 대학원 준비를 한 적도 있다. 화해 불가능으로 보이는 기독교와 페미니즘 사이에서 길을 찾고 싶었었다. 포부는 컸으나 사소한 일로 포기하고 말았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아쉽지만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다. 아쉬움이 꼭 나쁜 것은 아닌 것이, (영어, 사회학, 여성학, 심지어 철학까지) 미답의 전공지에 대한 결핍감이 땔감이 되어 오래도록 독서열을 불태우고 있는 지 모르니까. 덕분에 이 나이에 이런 설렘도 누리고 있으니까.


도서 구입비 지출에 대한 부부 상호 갈굼도 독서열을 활활 태우는데 한 부채질 하고 있다. 훔친 사과과 맛있다? 몰래 하는 일이 짜릿하고 더더더 갈증 속에 몰입하게 되는 법. 몇 달에 한 번씩 '우리 이제 당분간 책 사지 말고 있는 책 다 읽고 사자. 읽은 책 또 읽어도 돼. 사실 다 까먹잖아. 맞아, 맞아' 남편과 다짐하곤 한다. 연기하는 듯한 말투며 필요 이상으로 꽉 쥔 손을 보면 '저거 저거 오래 못 가지' 피차에 이미 알고 있다. 그 과장된 약속이 그어놓은 선을 넘는 맛에 몰래 또 책을 주문하곤 하지. 보고 싶은 책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환경이면 이렇듯 맛있는 책읽기를 누릴 수 없을 테다. 절판 도서를 찾아 헤매면서 '책을 쓰려면 이런 책을 써야지. 내가 낸 책들은 한 번 읽히고 책꽂이 자리나 차지하는 책. 나무야, 미안해. 지구야, 미안해' 자조의 심정이 되기도 한다. 그것도 어쩌랴. 내 수준과 한계가 여기까지인 걸.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이, 젊은 날의 결핍이, 일상 속 결핍이, 결핍감이 독서의 즐거움에 이르게 했으니 부족함과 한계는 나쁜 것만도 아니다. 


남편 쉬는 날에 영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함께 보았다. 후기 수다를 떨다 '안 되겠다.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싶어 중고매장 검색을 하고, 가장 싼 책이 동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려갔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남편이 붙들더니 이틀 새 읽어 버렸다. 이제 내가 읽을 차례. 책만 보는 바보 부부, 스튜삣! 이렇듯 경제적으로 독서라니, 그뤠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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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남편은 들꽃과 사랑에 빠졌다.

'갔다 올게' 하고 나가면 한 30분 안에 카톡, 카톡, 카톡, 카카카카..... 카톡.

길가의 흔히 보던 꽃들이 줄줄이 폰으로 들어온다.

입만 열면 새로 발견한 꽃, 그 꽃의 이름을 읊어대며 헤벌쭉 하는 것이

꼭 첫손주를 본 할아버지 같다.


사랑 하라, 에만 골몰하느라 사랑을 그저 '하면' 되는 줄 알지만.

사람은 사랑을 제조할 수가 없는 존재이니 사랑을 한다는 것은 받아서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주는 사랑에만 골몰하다 보면 말라 비틀어진다.

쥐어 짜내어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닌 것이 허다한 이유일 지도.

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오는 사랑을 받아 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일이다.


올봄, 남편은 길가의 작은 꽃들로부터 오는 사랑으로 촉촉해졌다.

나도 길 위의 작은 꽃들로부터 사랑을 채운다.

'꽃 중의 꽃은 인꽃이여'

아기 하나를 두고 어른들이 죽 둘러 앉아 웃음꽃을 피우는 장면을 해설하는

우리 엄마의 말이다. 나처럼 아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기들을 '인꽃'이라고 불렀다.


키 큰 나무가 푸르게 둘러 싼 율동공원 산책길에는 심장 뛰게 하는 인꽃이 흔하다.

유모차에 갇혀 형언불가의 멍멍한 표정으로 팔을 흔드는 인꽃,

어구구구구...... 넘어질라, 넘어질라, 아장아장 인꽃,

일상의 근심 걱정 한껏 지고 묵직하게 걷던 발걸음이 1g으로 가벼워지는 순간이다.

이 작은 인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 깊은 곳에 고여있던 평화가, 사랑이 풀려나니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제 산책 마지막 코스에서는 할아버지 품에 안긴 인꽃 한 송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길 오른쪽으로 공원 매점이 있는데 매점 앞에 풍선과 장난감이 있다는 걸 어제 처음 알았다.

시무룩, 할아버지 품에 안겨 가던 아이가 눈이 커지면서 급해서 말도 못하고 손가락질을 한다.

매점이다. 매점 앞 풍선이다.

꽃을 든 할아버지는 당황.

가자, 가자..... 하며 직진이신데 꽃이 뒤틀린다. 뒤틀려 품을 빠져 나오려 한다.

그 뒤를 걷던 더 연세 드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껄껄 웃으신다.

"볼 일이 있다잖아요. 꼭 가서 볼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쳐. 껄껄껄"


급하게 생긴 막중한 볼 일을 피하지 못하고

꽃을 운반하던 할아버지는 발길을 돌려 매점으로 가셨다.

공원을 빠져나올  때까지 올라가서 실룩거리는 입꼬리가 제자리를 못 찾는다.

마음이 간질거리는데 웃음을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작은 사람 꽃. 그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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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의 기도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깨우치게 되는 것은
지식이라는 나무의 가지들이 그리도 무성하고
그리도 오묘하게 뻗어 있다는 것이며
일생을 통해 배운다 해도 여전히 초보자라는 것입니다.

지혜롭게 깨우치고 배워야 하는 분야들을 잘 터득할 수 있도록,
결코 실망하거나 싫증내어 배움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게 가르쳐주십시오.
제가 배울 수 있다는 것,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배움을 소중히 하고 제가 얼마나 무지한가를 깨우치도록 지혜를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주어진 일들의 바른 순서를 찾으며,
주어진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제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배우는 것보다 무한한 것을 볼 수 있는,
제 개인적인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볼 수 있는
넓은 안목을 주십시오.

일생을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무리 많이 배울지라도
항상 발견해야 하는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제가 삶 그 자체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당신이 비추시는 빛을 외면하지 않도록
저를 지혜롭고 강하게 해 주십시오.



2008년 5월에 이 기도문을 블로그에 걸었던 적이 있다. 본격 영성 공부에 발을 들여놓고 어느 강의 시간 시작 기도로 낭송되었던 기도문이다. 꼭 10년이다. 그때는 그 시작이 '본격적' 시작인지 알지 못했고 10년 후인 오늘을 상상하지 못했다. 저 기도문이 예언처럼 나를 이끌어가 '일생 통해 배움을 멈추지 않는 길' 접어든 것이다. 에니어그램 연구소에 발을 들여놓은 그 학기부터 이번 학기까지 무엇이가를 배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책이 그 다음 읽을 책을 끌고 나오듯, 어느 강좌는 그 다음 강좌로 나를 이끌었다. 매 학기 새롭게 열리는 배움의 문은 그분의 이끄심이라 해야 비로소 설명되는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난 10년, 20학기 동안 3학점 짜리 강의를 한 학기도 쉬지 않고 들었다. 총 60 학점을 이수했으니, 아니 한 학기에 두 과목 수강도 했으니 60학점 그 이상. 남편이 '야야, 니네 엄마 박사과정 한다. 박사 공부한다.' 놀리던 것이 장난이 아님이다. 


지난 주에는 4학기 짜리 공부를 하나 마쳤다. 지난 시간 낯선 공간 낯선 문화를 찾아 헤매며 외롭게 배워왔던 것들을 '철학'이라는 실로 한 줄에 꿰는 시간이었다.  2008년 3월, 첫 강의 자기 소개 시간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저는 가끔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걸 다 깨달아도 되는 걸까? 나는 너무 훌륭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왔습니다.'라고 했다. 선생님 한 분이 그 말에 빵 터졌던 기억도 난다. 농담이었지만 살짝 진심이었다. (자아팽창, 갑 중의 갑었지) 배움을 더해 갈수록 느끼는 것은  제가 무지하다는 것, 제가 배울 수 있는 영역들이 얼마나 무한한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내 인생 처음으로 이 고백을 하게 되었다. 껌 씹으면서 할 수 있는 고백은 아니었다. 캄캄한 무지의 밤을 여러 날 보내며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하던 막막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 사이 책을 출간하고, 또 출간하고, 여기 저기 얼굴을 알리면서 뭔가 한 방 해보겠다는 남모르는 야망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다행히 결코 놓지 않았던 배움의 끈이 나를 잘 붙들어 주었다. '터무니없는 야망을 지니지 않고 다만 근면할 수 있도록, 성공이라는 물신을 숭배하지 아니하고, 다만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서두르지 않을 수 있었다. 앎의 한계에 부딪히면 또 책을 읽고, 새로운 저자를 만나고, 또 공부하고, 그러다 글을 쓰고, 새로운 강의를 만들어내며 살아 있다고 느꼈다. 배움과 가르침 사이에서 야망이 꿈틀대고, 타인과 비교하며 조바심 내는 순간도 많았지만 갈수록 내 속도와 한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시점에 다시 읽어보는 '배우는 자의 기도'는 한 자 한 자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온다. 


# 누구신지 참 기막힌 커리큘럼으로 10년 학사관리 해주셨다.

# 그분 참! 그동안 퍼부은 시간과 돈을 생각해서라도 박사학위 하나 하사 하실 일이지.

# 야망은 없다. 그렇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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