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다섯이서 스터디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짧으면 세 시간, 길면 여섯 시간 모임인데 대충 3교시로 진행됩니다.
1교시 (성찰)일기 나눔,
2교시 (헨리나우웬 신부님의 책등) 영성관련 독서나눔,
3교시 에니어그램 스터디.



상담심리,
청소년상담,
가족치료,
기독교교육,
음악심리치료를 각각 공부한 사람들인데
아이러니한 공통점은 모두 일로서의 '상담'을 싫어한다는 것.
또 아이러니한 건 사람들이 괜시리 찾아와 이야기 나누고 싶어하는,
힘든 일 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가고 싶은 언니(저보단 다른 언니들이 그렇단 말씀),
이런 식으로 상담을 부르는 캐릭터라는 것.



이 공부의 연장선으로 같이 뭘 해보자고 의견을 모으는 중
각자 하는 강의와 상담영역을 취합하니 다양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와, 이거 너무 다양해서 저렴해 보이는데! 하는 순간
"이름은 다이소로 해야겠네."
다이소, 다이소, 하며 박장대소 했습니다.
조만간 심리와 영성을 아우르는 <내 영혼의 다이소>를 선보이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수강료와 상담비는 균일가, 천 원?



예, 저는 '내 영혼의 다이소' 소장 정신실이구요.

 

 

* 사진은 언젠가 모임에서 점심으로 먹은 건데 다섯 개 접시에 다양한 먹을 것이 꼭 다섯 아줌마 같군요. 제가 차린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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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Joymom 2014.03.15 12:35

    ㅎㅎ 이름이 너무도 훌륭합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3.15 20:39 신고

      이 모임 나~중에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웃긴 이름 함께 웃고 싶어서 본의 아니게 공개했어요. ㅎㅎㅎ

  2. 아우 2014.03.16 22:35

    저 사과 내가 깎은거 같음 ㅋㅋ 참 골고루 먹었다 그날. 사진으루보니 확실하게 보이네.ㅎㅎ

    • BlogIcon larinari 2014.03.17 23:48 신고

      이쁘게도 깎었네.
      그럼 저 사과는 아우라고 하자.
      난..... 식빵!
      대장같이 생겼어. ㅋ

  3. 새실 2014.03.17 20:50

    오호!눈 땡그라짐 ㅋ

    • BlogIcon larinari 2014.03.17 23:50 신고

      이거 진짜로 하게 되면 글발이 필요한 일에 SOS 칠 수도 있음. ㅎㅎㅎ


 

경주는 내게 책받침의 불국사 사진, 석굴암 사진으로 각인된 곳이다. 다시는 오지 않을 단 한 대의 버스를 놓친 느낌이랄까. 내 얼굴만 빠진 불국사 앞 수학여행 사진 한 장 같은 것이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지 못(않)았다. 수학여행 기간 동안 학교에 나가 몇몇 아이들과 텅 빈 교실에 앉아서 자습을 하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수학여행 기간에 주일이 끼었다는 것을 알고는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담임 선생님은 물론 기독교반 지도 선생님까지 그러지 말라고 했고, 뜻을 굽히지 않자 화도 내셨다. 결심이 굳었으나 정작 수학여행 기간은 몹시 힘들었었다. 반에서 제일 웃기고, 제일 잘 노는 축에 드는 편이었다. 비록 내가 선택한 일이고, 자초한 상실감이지만 놀짱 여고생에게는 생각보다 더욱 힘들 일이었다. 친구들에게는 '나의 수학여행 사진'으로 남는 경주 불국사가 내게는 책받침 사진일 뿐이라는 것이 평생을 가는 상실감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대신 이 사건은 내 신앙행전에 엄청난 간증이 되었다. 두고두고 자랑으로 여겼고 자부심 넘어 자만심으로 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젊은 시절에 '주일 성수'로부터 시작하여 신앙적 열심에 관한 한 나를 따를 자 없다는 자뻑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우월감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는 상태로 지냈다.
이래저래 머리가 커지면서 종교적인 행위가 신앙의 전부라고 여기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수학여행 무용담은 입 밖에 내지 않게 되었다. 대신 고등학교 시절의 나처럼 규율에 매여 있는 신앙인들을 저급한 종교인 취급을 하면서 무시하고 비난하며 지냈다. 그러면서 나의 수학여행전(傳)은 아예 까맣게 잊고 지냈다. 나의 그 시절이 부끄럽다 여길수록 더욱 합리적, 지적인 크리스쳔으로 보여지려 애를 썼다. 그 시절 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들 - 주일성수를 비롯해서 신앙적 규율을 목숨처럼 지키려는 사람, 입만 열면 하나님 얘기를 하는 사람들, 순수하게 믿는 바를 표현하는 사람들까지도 - 을 보면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느냐고 비난했다. 그런데 그게 실은 나의 과거, 즉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수용하지 못함이었다.


공교롭게도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던 시기에 가족들과 경주에 있었다. 석굴암 가는 길에 큰 아이와 수학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딸에게 들려준 것이 위에 적은 내용들이다. 그런데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 나이가 되어 생각해보니 고등학생이었던 엄마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드네. 그때 학교에 남아 자습하고 있었던 모습을 생각하니 가엾기도 하고' 생각지 않게 내 입에서 나온 말로 고등학교 1학년의 나를 어른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래도 대견하다. 그 나이에 소신껏 뭔가를 지켜낼 줄도 알고. 그런데 친구들이 부러웠을까. 텅 빈 교실에 앉아 있던 며칠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까. 뭘 안다고 딸이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렇게 토함산 오솔길을 걸었는데.... 고1의 나와 화해를 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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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2



얼마 전 음악수업 나가는 어린이집에서 재롱발표회가 있었다. 나는 거기서 사회를 봤고. 발표회 다음 날 수업이 있었는데 날 보자마자 아이들이 모여들어 떠들어댔다. 으막션샘미 어제 우리 만났쬬오~ 우리 율동할 때 옆에 서 있었쬬. 마이크 들고 얘기했쬬. 그래, 너희 어제 진짜 멋지더라. 너무 멋있어서 선생님이 깜짝 놀랬어. 했더니, 돌아오는 말이. 으막션샘미 어제 늙었어요. 잉? 선생님이 늙어? 네, 으막션샘미 어제 이렇게 치마 입고 얼굴이 늙었어요. ! ㅜㅜㅜㅜㅜㅜ 수업할 때는 거의 맨 얼굴이었고 사회본다고 신경써서 풀메이크업한 거였다. 그리고 며칠 후, 강의가 있어서 오랜만에 다시 화장하는데 그놈 목소리가 귀에 쟁쟁거리며 급 의욕이 떨어지면서 얼굴에 그림이 안 그려졌다. 으막션샘미 얼굴이 늙었어요오오오. 화장할수록 늙어가요오오오. 늙었...... 늙었.....

화장실2

♠♠ 
한 두 번 결석 후 오랜만에 수영장에 갔더니 60대 언니(선수끼린 그렇게 부른다.)께서 왜 안 왔냐고, 절대 빠지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신다. 수영을 나보다 훨씬 잘 하시는데 선두에 서는 걸 너무 싫어하신다. 나를 선두에 세워놓으시고 빠지지 말라고 늘 타박이시다. 다음 달부터 월수금 반으로 옮겨갈 것 같다고 했더니 도대체 왜 옮기는냐, 이제 나도 그럼 화목엔 안 나올 거다. 겁나 따라다니며 추궁을 하셨다. 화, 목요일에 일이 있어서 바꾸게 됐다고 했더니 시간을 다시 조정해라. 중요한 것에 먼저 시간을 빼는 것이다. 화, 목 비우고 다른 날에 일을 봐라 하시며.... 그렇게 안 된다며 웃었더니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러냔다. 음악치료를 한다고 했더니.... 조금 당황하신 듯 멈칫! 하시더니. 어디 몸이 안 좋아? 뭐? 어디가 안 좋아서 음악치료를 받어? 하셨다.


OTL 
 


♠♠
 
다섯 살 아이 눈에는 열심히 쳐발라 예뻐졌다고 생각하는 화장발 내 얼굴이 '늙게' 보이는구나. 인생 사실 만큼 사신 60대 어르신께는 내가 음악치료를 하기보단 받게 생긴 여자로 보이고. 아,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이렇게 다르다니. 오늘도 저녁에 강의가 있어서 풀메이크업이다. 음악치료를 하기보단 받게 생긴 나는 풀메이크업으로 얼굴을 늙게 만든 후에  총총 집을 나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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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맘 2014.02.13 14:06

    얼굴을 늙게 만든 후에..ㅋㅋㅋㅋㅋ
    칭구야~오늘 강의도 홧팅해~~^^♥

    • BlogIcon larinari 2014.02.14 00:28 신고

      ktx 타고 대전 가서 강의하고 집에 돌아와 이제 편히 앉았어. 응원 덕분에 오늘 강의 참 좋았는데.... 오늘 하루 제일 보람 돋았던 건 아무래도 반듯한 친구를 웃겨 나뒹굴게 만든 것이다. 얼굴 이빠이 늙게 해가지고 갔다왔어.

    • 민맘 2014.02.14 10:02

      ㅎㅎㅎㅎ예전처럼 가까이 살았다면, 아마 난 웃느라 생기는 주름땜에 얼굴은 아마 10년쯤 앞서 늙어가고, 마음은 늘 20대에 머물러 살아갈 거 같은디~~

 

발달장애 아이들의 비밀 같은 마음에 노래로 노크하는 음악치료사이고,
몸과 마음이 말랑하기 그지없는 아기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선생님이다.
사랑을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마음에 귀 기울이다 연애강사가 되었고,
어긋난 관계의 화해와 회복에 골몰하다 MBTI 강사가 되었다.
사랑을 말하지만 궁극의 자기숭배자로 분열된 삶을 살며 참된 성화의 길을 찾아 헤매다 에니어그램 통한 내적여정 안내자가 되었다.
말에서 마음을 듣는 귀, 일상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눈을 선망하며
커피 마시고
, 사랑하고, 기도하고, 글 쓰며 살고 있다.

저서로는 스토리가 있는 연애 서적
<오우연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연애를 주옵시고>,
남편과 함께 쓴 결혼 이야기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 있다.

 


저자소개를 썼다는 것은 이제 출산이 진통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책 아가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조금만 더 힘 줘. 힘 줘.
이 단계에서 힘은 저자가 아니라 편집자님의 고통이 남은 것이죠.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 출산? 출간? 임박입니다.
이번 저자소개의 컨셉은 '마음'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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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우 2014.01.11 21:40

    말에서 마음을 듣는 언니의 귀와, 일상에서 영원을 발견하는 언니의 눈...
    아주 이뿨~! 진통 후, 에너지 넘치는 생명 덩어리가 하나 나오겠다. 설레임...

 

 

요즘은 '읽을 책 또 읽기'로 쏠쏠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가까이는 몇 년 전, 
가장 오래된 책은 20년 전.
읽을 때마다 무슨 자동녹음 장치처럼 남편의 귀에 대고 반복 play다.
'대체 그때 이걸 이해나 하고 읽었던 거야? 뭘 읽었던 거야? 도대체'


오랜 시간 내 젊은 날에 대해서,
아니 지금 이전의 나에 대해서 속으로 부정하고 지우고 구박하며 살아왔다.
물론 그럴수록 외적으론 더욱 나의 과거를 과대포장하며 과도한 자부심을 놓지 못했다.
한동안은 그런 젊은 시절을 싹 다 지워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싫었던 어제의 내가 조금씩 덜 부끄러워지는 것도 
나이들며 내게 생기는  참 좋은 변화 중 하나다.
제대로 이해도 못하면서 지적인 허영심에 눈으로만 읽은 책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뭐라도 배웠기에 지금 이 모양이라도 되어 있겠지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다시 보려고 꺼내보니 1993년에 읽은 책이다.
20년이 더 넘었다.
책 안쪽에 보니 친구와 카페에 앉아 노닥거리며 끄적인 낙서가 있다.
'내 친구 미애는,
김현의 비평을 재미있는 척,
쉬운 척 읽는 아이.
신통력 있는 척'
이라고 내가 적었고.
'모든 지성은 한미애로부터 나오고....
동시대 식사문화의 시작과 끝에는 정신실의 감성이 꿈틀대고 파도를 쳤다.'
친구가 적었다.


그때 우린 KFC에 앉아서 치킨을 뜯으면서
왜 시대가 우리의 천재성을 알아주지 않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다 진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물론 진짜 이유는 그날 직작상사에게서 기분 나쁜 소릴 들었다거나
그지같은 소개팅남과 (나도 별로 맘에 안 드는데)
괜히 지가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전화통화를 하고난 탓이었을 것이다.
나름 귀엽긔. ㅎㅎ
연애강의를 하며 얻은 보석 중 하나가 젊은 날의 나와 화해하기이다.
중년 이후의 삶의 여정은 모든 과거와의 화해의 여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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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07 01:36

    우리 모님의 글씨체는 그대로 이네용~^^

    • BlogIcon larinari 2014.01.07 10:20 신고

      챈한테 이거 보여줬어.
      엄마가 젊을 때 카페에 앉아서 친구랑 이렇게 낙서하며 놀았다.
      그랬더니...
      낙서가 어딨어? 다 그냥 예쁘게 글씨를 썼는데!
      하던데. ㅎㅎㅎㅎㅎㅎㅎ

  2. 기뮨진 2014.01.13 01:52

    저는 1분 전의 나와 화해도 어렵던데 ㅠㅠㅋ
    책보다가 저런 끄적임 발견하면 재밌죵^^

    • BlogIcon larinari 2014.01.13 14:57 신고

      20년 만에 발견한 것이니 어찌 신기한지 말이다.ㅎㅎㅎ

  3. 2014.01.15 00:22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4.01.15 21:05 신고

      아픈 일이지만,
      사랑에 대해서 가장 많이 배우게 되는 건 실패한 사랑 같아.
      자신에 대해서 화를 내도 되고, 비난해도 되고,
      모든 것이 괜찮아.
      다만, 감정의 파도가 지나간 후에 차분해졌을 때
      더 깊은 데서 들리는 소리가 있을거야.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지금 잘 가고 있는 거야.
      토닥토닥.




<International Piano>에 연재하던
'음악치료의 세계' 마지막 글이 실린 12월호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10대 뉴스를 꼽자면 상위 1,2위 안에 드는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내 그릇에 넘치는 일이라고 여기면서도 거절하지 않고 덥석 수락한 것을 자주 후회했지만
이렇게 결국 끝을 보았습니다.
부끄러움으로 아주 개운한 끝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좋습니다.
전문적인 음악잡지에 글을 쓸 깜냥이 아닌데 은총이라 생각합니다.


신찬 기자님, 고맙습니다.
얼굴은 뵙지 못했지만 조용하게 타들어가는 흰색 초와 은은한 향으로 기억되는
소중한 만남입니다. 
덕분에 음악치료사로서 살아온 십수 년을 의미있게 정리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닿는 인연들이 하나 하나 소중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스쳐지나는 인연이라도 귀하여 여겨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한 해였구요.
연재를 시작할 때 페북에 <나의 전공>이라는 글이 있더군요.
막막한 마음으로 쓴 글인데 연재를 마치면서 읽어봤습니다.
확실히 글을 쓰면서 전공에 관련하여 삼류의식, 열등감 같은 것들을 보다 직면하고
아주 조금은 당당해진 것 같네요.



[나의 전공]

 

1.
원하는 대학 원하는 전공이 아니었다. 무슨 '유아교육'을 학문으로 하냐? 는 비아냥거림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사실 내 존재를 향한 비아냥거림과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대학 4년 내내 전공 책은 가방에 손에는 여성학 책을 들고 다녔다.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고 유치원 선생님은 되었다. '자(自)'는 모르겠지만 '타(他)'는 인정하는 천직이었다. 원장선생님, 학부모들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인기짱인 선생님이었다. (깔때기지만 내용은 진짜읨) 천직일는지도 모른다. 왜냐면, 몸매 쥑이는 여자가 하의실종 패션으로 옆을 스쳐갈 때 눈을 뺏기고 마는 남성들처럼 지나가다 아기만 보면, 어린 아이들만 보면 입을 벌리고 눈을 떼지 못한다. 가끔 혼자 있을 때도 수업 중에 만난, 또는 가까이 지내는 이쁜 아가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설레고 입술을 깨물곤 한다. 아이들 눈높이 맞춰 얘기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고, 아이들 웃기는 일이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 천직일 밖에.

 
2.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음악'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내내 '음악영역'에 대한 연구만 했다. 교구를 만들어도 음악교구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음악파트를 맡는 전담교사를 자처했다. 그리고 곡절 끝에 유치원 교사를 접고 돈을 모아 음악치료 대학원 2기로 진학을 했다. 열 명을 뽑는 입시에서 차석으로 입학을 했고, 처음으로 음악치료 실습을 하는 수업에서 교수님께 '음악치료의 귀재'라는 평을 들었다. 명문대 음대 출신의 동기들을 제치고 말이다. 정신병원으로 실습을나갔을 땐 참관하는 의사가 회식 자리에서 그랬다. '환자들 앞에서 저보다 더 편안하시고 능수능란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 음악치료사 역시 '천직'이 아니겠는가. 대학에서 강의도 몇 학기 했다.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에게 몇 년의 임상을 정리하며 나름 음악치료에 대해 잘 이해시키고 가르쳤다. 


3.
임상 몇 년 후에 모교에 박사과정이 생겼다. 음악치료의 귀재로서 일착으로 시작해야 했으나 사실 음악치료를 하면서도 역시 유아교육을 했을 때와 같은 부적절감을 느꼈다. 이번에는 학부전공이 음악이 아니라는 열등감 때문이었다.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의 음악적 능력을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쓰는 음악들은 늘 이류나 삼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꾸준히 음악치료사로 일하면서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공부하는 남편을 대신해 빠듯한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은 되었다. 물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천히 자라는 아이들'과 세상 누구와도 부르지 못할 노래를 불렀고 눈빛의 교감을 했던 시간이었다. 단지 그것 하나 좋았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그 순간 아이와 내가 연결되는 깊은 결속의 느낌. 그러나 어느 새 임상(만)을 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졌다. 공부를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내 이름을 걸고 치료센터를 차릴 배짱도 없다. 그러나 주구장창 아이들과 뒹굴기엔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4.
얼마 전 남편과 새해의 계획들을 이야기 하며 '이제 음악치료는 다 접어야 할까봐.' 했다. 그 얘기를 한 다음 날 특수교사 선생님 한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학교 음악치료를 하면서 내가 만난 최고의 특수교사 선생님이었다. 음악치료에 관한 책을 내도록 돕고 싶어 했었는데 그 때 역시 내 음악치료는 삼류라는 열등감 때문에 밍기적거리는 것으로 거절을 했었다. 언제든 다시 그 선생님의 아이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 분도 학교를 옮기고 나도 멀리 이사를 했는데 우연히 서로 멀지 않은 곳이다. 다시 만나 음악치료를 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한 음악잡지로부터 음악치료에 대한 글을 기고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담당 기자분이 내 글들을 알고 있었고 조심스레 추천을 한 것 같았다. 잠시 신비감에 휩싸였다.


5.

천직 같은 전공을 두고 왜 나는 늘 부적절감을 느끼고 맴돌기만 했을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고 치료하면서 왜 난 늘 삼류라는 생각을 했을까? 전공에 관련된 글 한 줄 쓰지 못하고 전혀 다른 이야기를 쓰고 강의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새로운 한 해가 될 것 같다. 전공을 부전공처럼 여기며 살던 20여 년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뭔가 늘 부족하다 여겨지는 지금, 여기를 오롯이 살지 못하고 환상을 좇아 분주한 내 영혼을 제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더불어 이래도 삼류, 저래도 삼류라는 열등감으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6.

하여, 오랜만에 긴 호흡으로 주절거려보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글을 쓰기 위한 발동걸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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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2.04 09:44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3.12.04 18:29 신고

      반갑고 감사합니다.
      사실 이런 글은 써놓고도 썩 마음이 가볍지는 않아요.
      쓰지 않을 수 없으니 결국 쓰여졌을테지만 부끄럽고,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거든요.
      오늘 조금 무거운 아침이었는데 유산님 댓글에 힘이 되었습니다.

  2. 2013.12.23 11:13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3.12.25 23:11 신고

      댓글이 늦어 죄송해요.
      비전공자이기에 어려운 점이 있으실테지만 그로 인한 강점도 많아요. 그건 해보시면 느끼게 되실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잃어야 할 것도 많고, 괜한 도전으로 겪지 않아도 될 실패나 좌절을 경험할 수도 있겠지만요.
      전문가로서의 조언은 드릴 수 있는 것이 없구요. 짧은 글이지만 님의 고민 너머의 열망이 더 크게 느껴져 격려해드리고 싶고 응원해드리고 싶어요. ^^

 

 


글을 쓰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길이 열리고 생각지도 못한 결론을 맺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쓰는 묘미 중 하나이고, 글쓰기가 치유나 자기성장으로 가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글 뿐이 아니다.


무엇인가에 대한 갈망.
갈망을 오래 붙들고 있다보면 생각지 못한 곳에 다다르고,
잠시 목을 축였나 싶으면 금방 또 다른 목마름으로 무언가를 갈망하게 된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 '갈망'하게 되진 않는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지점에서 다른 어떤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것이 내게는 행복, 성장, 통합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이었다.
미성숙하고, 분열되어 있고, 이런 저런 불화로 행복하지 못한 고통이 있었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생각의 길을 찾아 생소한 결론에 다다르는 것처럼,
오랜 갈망을 붙들고 살다보니 생각지 못한 길을 걷다가 낯선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결론을 썼다 할지라도 하더라도 애초 전혀 내게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낯선 곳이라고 하지만 내 영혼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그리웠던 어떤 지점일 수도 있다.
가을 초입부터 듣기 시작한 강의가 끝났다.
소름 끼칠 정도로 내가 찾던 바로 그것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는데,
그 풍성함을 발설할 수가 없다.
그저 목차 정도 적어 놓고 싶다.


. 그리스도교적 인간이해
. 영성과 심리 - 통합적 영성
. 심리발달과 영성
. 자아와 성숙
. 감정 - 영혼의 보물
. 전환기 영성- 중년기와 노년기의 영성

. 자유와 변화 - 고통과 성장
. 회심과 사랑


이 건조한 제목 아래서 적어도 내게는 지난 7년 전,
길게는 새로운 전공을 선택했던 16,7년 전,  
더 길게는 교회 언니랑 밤 늦도록 삶에 대한 궁금증을 나누던 30여 년 전을 
오가며 오래 품었던 질문을 떠올리고 답을 찾는 시간이었다.

그 답은 렘브란트의 저 그림 한 장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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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그것도 남편의 설교를 퍼나르는 일은 조금 오글거리는 일이지만 참 좋아서요.
오늘 남편의 새벽설교 내용인데 교회 홈페이지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2, 3번의 내용, 그리고 기도가 오늘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옵니다.


======================================

<본문> 잠언 21:1-31

잠언은 하나님나라 백성들의 ‘지혜’교과서입니다. 잠언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삶의 준칙으로 삼으면, 하늘백성으로 산다는 것의 묘미를 맛보게 됩니다. 잠언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경구 중에 가장 으뜸이 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경구일 것입니다(잠 9:10). 그것이 하나님나라, 제자학교의 교과서 제1장 제1조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앞에서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는 ‘겸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임의로 인도하신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잠언 21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그 앞의 겸손’이라는 이 두 전제를 바탕으로 해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1절)
고대 근동에서 왕은 힘과 지혜의 상징입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 최강자가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강한 자가 없고, 그보다 더 지혜로운 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잠언은 이 지극히 당연한 상식에 도전을 합니다. 하나님은 왕의 마음도 당신 뜻과 당신 섭리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왕일지라도 때론 막고, 때론 끌고, 때론 높이고, 때론 낮추시는 것이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은 왕도 임의로 인도하신다’는 이 교훈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이겠습니까? 30-31절을 보십시오. “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30-31절)
아무리 높은 지혜도, 아무리 깊은 명철도, 아무리 뛰어난 모략도 하나님과 견줘봐야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들끼리는 하버드대학 나온 사람이 대단하고, 아이큐 150이 천재이고, 5개 국어를 구하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1억’이라는 숫자가 ‘무한’이라는 숫자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듯이, 피조물의 지혜는 창조주의 지혜 앞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의 선한 의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악의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경건이 하나님 앞에서는 영적인 불결함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헛되이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 맞서지도 말고, 이 세상의 마병을 의지하지도 말며, 오로지 지혜와 힘의 최강자 하나님 손에 붙들리기만을 희망해야겠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2.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감찰하신다.


하나님의 크신 지혜 앞에 겸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은 결코 자만하지 않습니다. 항상 자신의 내면세계를 샅샅이 살펴보며, 성찰하는 사람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2절)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합리화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욕망의 정체를 애써 외면하고, 욕망을 그럴듯한 이유로 포장해서 자기 자신을 설득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합리화의 귀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감찰하다’는 말은 ‘저울로 무게를 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의 동기의 무게를 재시며, 우리의 순수성과 진정성이 순도 몇 %인지 정확하게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의 동기를 아신다’는 이 잠언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돈을 버는 목적뿐 아니라, 돈 버는 수단과 방법의 정직성의 무게를 재시는 분입니다(6절). 타인에게 주는 선물이 진심으로 하는 축하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가장한 거래요 뇌물인지도 하나님은 아십니다(14절). 만면의 미소를 띤 얼굴의 표정 또한 영혼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인지 마음을 속이기 위한 더러운 가면인지 우리는 혹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29절). 그러므로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내면을 낱낱이 드러내고, 매일매일 부패한 내면을 영혼의 의사이신 주님께 맡기는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속사람의 동기를 비추고, 성령으로 추악함을 도려내는 자가 진짜 지혜로운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하나님은 삶이 담보된 예배를 기뻐하신다.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잠언이 쓰여 진 시대나, 예수님 당대나, 지금이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망각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아둔함과 어리석음의 비극적인 결과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3절)
하나님의 간택하심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사울 왕의 어리석음이 무엇이었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나음’을 몰랐던 데에 있었습니다(삼상 15:22). 다시 말하면, 삶과 예배의 괴리입니다. 말씀 따로 실천 따로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일과 주중의 이원화된 삶, 교회와 일터의 이율배반적은 우리의 삶을 애통해하지도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잠언 21장, 3절 이후에 등장하는 악인은 뉴스에나 등장할 법한 나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쩌면 삶이 담보되지 않은 채 예배의 형식에만 집착하는 우리를 향한 고발인지도 모릅니다. 거지 나사로와 같은 이웃을 코앞에 두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자가 누구입니까(10절), 가난한 자의 배고픔은 외면한 채, 자신의 삶의 여가비를 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누구입니까(13절), 사회적인 약자들의 탄식과 아우성의 소리에 귀 막고 눈 먼 자가 누구입니까(13절), 타자와의 공감, 이웃과 나누는 공평의 노력에는 단 한 시간도, 단돈 1천원도 나누지 않으면서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탐욕과 탐심에 찌든 사람들이 누구입니까(17절, 26절), 양심의 눈을 감은 채 불법으로 돈 버는 일엔 혼신의 힘을 다하면서, 그 돈으로 하나님께 바치며 일신의 안녕과 무병장수의 복을 비는 파렴치한 싸구려 종교인은 누구입니까(27절).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조국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라보며 미가 선지자가 외친 가슴 절절한 호소는, 단 한자도 버릴 것 없이 2700여 년이 지난 2013년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미가서 6장 6-8절입니다.
“6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7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기도하겠습니다.

한 뼘밖에 되지 않는 우리 마음조차 다스릴 줄 모르면서, 한 주먹밖에 되지 않는 우리 머리조차 통제하지도 못하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지혜도 없으면서, 하나님 없이 만용을 부리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직 하나님 손에만 붙들리게 해주십시오. 오직 우리 속사람의 숨은 마음의 동기를 볼 줄 아는 믿음의 눈을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예배가 생활화 되고 생활이 예배화 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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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rest 2013.11.22 12:52

    가족이라 쫌 오글거리긴 하겠지만...

    한 자 한 자,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을 때리네.
    아멘은 이럴 때 하는거거든. 아멘.^^

    • BlogIcon larinari 2013.11.22 16:43 신고

      진짜 아멘일 때만 아멘하는 분의 아멘이라니!
      언니가 진심으로, 아무 거칠 것 없이 '아멘' 할 수 있는
      교회 만나길 기도해요. ㅜㅜ

  2. 뮨진이 2013.12.28 03:17

    아멘! 아멘!!

 

 

 

 

해마다 천 명씩 교인이 늘고 있는 교회에 다닌다. 총동원 주일이 있는 것도, 축복을 보장하는 설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는다.  교회가 이것을 딱히 반기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저 조용히 예배 공간을 마련할 뿐 이다.


개신교인이 수가 줄고 있다는 통계에 역행하는 이 현상이 무엇인지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새가족 환영회에 가보면 천 명의 사람들의 천 개의 이야기 그
...공통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목회자의 전횡에, 복음에 위배되는 설교에 다칠 만큼 다치고 상처받을 만큼 상처받은 분들이다. 오랜 시간 방황하며 그나마 인터넷 설교로 위로받으며 지내오신 분들. 목사를 대적한다는, 교회를 분열에 빠뜨린다는 오명을 뒤로 하고 오신 분들이 다수이다. 그러니 이분들을 수평이동이란 잣대 하나로 비난해서도, 이들을 아프게 품는 교회를 향해서 대형교회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도매금으로 넘겨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의 아픔과 위로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런 주일 씁쓸한 마음 어쩔 수 없다.



예배를 마치고 쏟아져 나오는 교인들이 지하철을 내려 환승을 위해 움직이는 무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옆 사람 누군지 모른다. 예배 마치고 나온 교우들로 가득 찬 교회 앞 파리바게뜨. 구역원의 생일을 챙기려는 것으로 보이는 청년 구역장이 좁은 구석에서 케잌을 들고 어쩔 줄 모른다. 아이 간식을 사는 젊은 부부 역시 방금 예배를 마치고 나온 교우. 그리고 나. 우리 모
두에게 서로는 모르는 사람이다. 서로의 눈 속에 환대의 빛은 찾을 수 없다. 빨리 비키기나 하라는 듯한 태도와 눈빛. 한없이 쓸쓸해졌다. 교회란 무엇일까.




올해 단풍은 희한하다.
붉은잎과 초록잎이 저러고 공존할 수 있다니.
이 낯설도록 분열적인 나무에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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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HJ 2016.03.08 08:35

    비슷한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의지하고 있는 교회에서 사람이 모였는데 어쩐지 쓸쓸함이 감도는 순간이 그랬습니다. 워낙 많은 교우가 있으니 그렇겠지요. 그 날의 사모님과 며칠 전의 저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네요. 그런데 또 생각보다 빨리 회복되기도 하고요!

    • BlogIcon larinari 2016.03.10 10:58 신고

      두 가지 다인 것 같아요.
      좋은 교회이지만 대형교회가 한계를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우리 안에 있는 외로움이 마지막 자리는 세상에 있는 것을 채워질 수 있지가 않으니까요.
      그 두 한계를 좀 더 겸손히 인정하며 올해 저는 적극적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 투신하게로 했답니다. ^^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다.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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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Tzine>에 연재했던 '모님, 커피 한 잔 주세요_에니어그램과 함께 하는 내적여정'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마지막 관문, 서문쓰기를 마쳤습니다. 열흘 걸려서 썼습니다. A4 6면의 글이지만 논문 한 편을 쓰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에니어그램 공부를 처음 시작한 지난 2007년부터 이전의 전공을 모두 잊고 여기에 미쳐 살았습니다. 심리학과 영성 사이에서, 가톨릭 영성과 개신교 영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헤매면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참 외로웠고, 외로울수록 치열하게 독서했으니 6년 간의 자습식 학위과정이었습니다. 전공은 에니어그램, 부전공은 커피.


긴 서문을 쓰는 동안 테이블 한 켠에는 참고도서가 쌓여 있었고, 몇 년 동안 성찰과 꿈을 기록한 일기장을 수시로 펼쳐보았습니다.  메시지 신약을 옆에 두고 글을 시작할 때마다 요한복음을 펼쳐서 온전한 신이며 온전한 인간이셨던 예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간간이 눈을 들어 탕자의 귀향에 눈을 맞추고 탕자의 맨발, 아버지의 각각 다르게 생긴 두 손을 오래 응시했습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중간에 끼인 자'로서의 6년. 배우고,  읽고, 피정 가고, 상담받고, 쓰고, 기도하며 지낸 그 세월을 돌이켜보니 고독했을 뿐 외롭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 잘 만들어져 저 같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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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맑음 2013.11.05 23:07

    와!추카추카! 시원후련하시겠어요.
    책 리스트를보니 덥석 모셔와 방콕하며 죄다 읽고싶은 욕망이!^^
    저는 이제막 위로회?마치고 집에와서
    다시 정신차리고 대본써야하는데
    몽롱 ...몽롱...ㅠㅠ
    아참.오늘 위로회에서 종필님의 온유함이 빛을 발하셨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혼자 박수를 짝짝짝 쳤답니다. 싱그러운 두분!! 부디 그렇게 든든하게 저희곁에 있어주시옵소서^^

    • BlogIcon larinari 2013.11.06 08:53 신고

      그님의 온유함은 제가 인정하는 바죠. 겉이 아니라 속이 온유한 님이니까요. (막 이런다 ㅋㅋㅋ)
      함께 도와주셔서 많은 힘이 되었을 거예요.
      한 동안 이 사람이 마주보고 앉아 있어도 여기 있는 느낌이 아니더니 이제 서서히 돌아오고 있어요.

      그나저나 댓글에 스티커가 되네요. 으흐흐흐흐흫.
      저는 안 되는데 오또케 하신 거죠?

  2. 2013.11.07 01:38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3.11.09 08:36 신고

      남편 없이 혼자 이사하고 난 후유증 오래 가던데요.
      몇 년 전에 혼자 이사하고나서 피해의식에 한동안 남편 괴롭혔어요.^^
      그 순간 정말 많이 당황하고 힘들었겠어요.
      이제 좀 안정이 되셨을까?

      곧 에니어그램 거실 세미나 한 번 할 거예요.
      블로그에 올릴테니 보시다가 시간되시면 함께 해요.


 

비 오는 날 참 좋아하는데요.
비 오는 날 참 좋아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일하러 나가려면 참 싫은데요.
악기 들고 나면 우산 들 손이 없는데요.
그러다 보면 엉뚱하게 남편한테 불똥이 튀는데요.
나 같이 불쌍한 여자가 어디 있느나며 속으로 소설을 한 편 쓰곤 하는데요. 

비오는 날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은데요.
게다가 애들은 일명 천국이라 불리는 할머니 댁에 가서 집에 없는데요.
깨끗하게 치운 거실에 조용히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좋아 죽겠는데요.
어젯밤 늦게까지 놀다 간 꼬맹이의 흔적이 빨간 자동차로 남아 카펫 위에 있는데요.
자동차를 보니 그 녀석 어른 같은 말투가 생각나 혼자 웃었는데요.

비 오는 날 집에 혼자 이러고 있으니 참 좋은데요.
며칠 조용히 '영혼의 사경 헤매기'를 경험한 터라 더욱 고요한 마음인데요.
오늘 하루 종일 원고 써야 하는데요.

이 생각을 하니 갑자기 무서워지는데요.
그래도 비오는 날이니까 왠지 잘 써질 것 같은데요.

비 오는 날 무척 좋아해요.
열심히 쓰다가 쉬는 시간에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한 번 들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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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02 12:2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3.11.02 12:50 신고

      그거 좋다!
      잘 조정해서 거기서 만나서 늦은 점심이라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잠시라도 여유있는 수다를 떨자.
      오전에 하남에서 일하니까 나도 딱 좋아. ^^

  2. 아우 2013.11.02 15:37

    영혼의 사경은 헤맬만해?ㅋㅋ 헤매다가 스탠드다운되는 비법 좀 알려줘~

    • BlogIcon larinari 2013.11.02 15:52 신고

      죽음이야.
      일단 한 번 죽고나면 서서히 스탠드 다운 돼.
      (다음 번 만나서 어디까지 나눌 수 있을까 모르겠네.)

  3. 아우2 2013.11.06 21:00

    언니에게 없을 것 같은 슬픔, 넘쳐나는 기쁨이 어디로부터 오늘 것일까 예전에 가끔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에서야 문득 언니에게 자리잡은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어!!!!! 아버지 잃어버린 소녀의 슬픔이 이제서야 보이네 .....

    • BlogIcon larinari 2013.11.06 22:41 신고

      아까 얘기하며 속에서부터 울컥해서 조금 당황했어. 그게 내 슬픔은 잘 못 느끼고 민맘이나 내 동생의 슬픔에 투사하는 거였나봐. 채윤이 현승이 이 나이 되니까, 글고 생각해보니 아버지 추도식이 다가오는구나.... 속에서 많이 울고 있었나봐.


 

 


 

 

 

 

 

 

 

 

 

 

 

 

 

 





"여보, 바닥이 버석버석해."
"그치? 청소기 돌려야 하는데... 여유가 없어. 내일 아침에 청소할거야."

이렇게 대답을 해놓고
기분 좋게 깜짝 놀랐습니다.
'어, 비난으로 들리지 않네. 어!'

신혼 초에는 웬만한 말은 다 비난으로 듣는,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많이 뒤틀린 여자였습니다.

그때 이 말을 들었다면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그랬을 것입니다.
'이런, 들켜버렸어. 깔끔한 여자가 아니라는 걸. 못 들은 척하고 내일 청소해야지. , 깨끗할 때는 칭찬 한 마디 할 줄 모르면서 흠을 찾아내는 데는 빨라요.'

한두
해 지난 후에는 대번에 이렇게 말하게 되었죠.
'청소하려고 했어. 바닥이 버석거리면 좀 먼저 청소기 돌리면 안 돼? 누구는 청소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바쁘니까 그렇지.'
그러면 으레 돌아오는 반응.
'당신한테 뭐라고 한 거 아냐. 진짜야. 왜 삐지고 그래. 왜 이래~~ 왜 이래~~~'

내 안에 비난의 목소리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에 대한 비판을 줄이고 싶어도 되지 않아서 몸부림이었는데 타인에 대한 비난은 결국 내 안에 가득한 자기비난의 투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잔소리쟁이, 간섭꾼 우리 엄마는 뭘 해도 잔소리를 했고 한 번에 '잘 했다'하는 적이 없었죠.
엄마의 잔소리가 그대로 내 마음에 자기비판의 목소리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바닥이 지저분하다는 남편의 말에

'이건 비난이 아니야. 감정반응을 할 필요가 없어. 남편의 말이 비난이 아닌데 내가 나를 비난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런 소리 들어도 괜찮아. 바쁘면 청소 좀 안 할 수 있는 거지.'
라고 애써 다독였습니다. 애.써.서. 습관처럼 올라오는 자기비판을 어르고 달랬지요.
최근 몇 년은 이런 노력을 하면서 지낸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남편의 말에는 진심으로 거침없이 '내가 요즘 원고 때문에 내 정신이 아니야.
맞어. 바닥이 그런 거 나도 느끼고 있었는데....' 사실(fact) 그 이상으로 확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기도하며 가꾼 마음의 나무에서 작은 열매 하나를 따는 느낌입니다. 


<비판의 기술>이라는 책의 서평을 쓰고 있는데 마음의 여정이 함께 진도를 나가 주네요. 자기비판, 자기처벌은 외부로 투사되어 타인에 대한 비난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비판이 많은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고 가혹하게 대하는,  가엾은 사람입니다. (저처럼 말이죠.ㅠㅠ)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이 책을 정독만 세 번, 틈틈이 꺼내 읽기는 무수히 했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신학적으로 분별이 필요한 책이지만 자기 정죄에 대한 귀한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 역시 이 부분에 관해 잘 설명하고 있지요. 귀한 가르침을 준 두 책의 저자, 존 제콥 라웁 수사님과 안셀름 그륀 신부님께 감사의 꽃 선물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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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피리 2013.10.18 14:00

    이건 뭘까? 성숙을 향한 이 미친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네. ^^
    당신의 약한 마음의 그릇이 깨지면 안되는데... 조마조마하며 내내 눈치를 살피던 시절이 언제인고! ㅎㅎㅎ
    갑작스럽게 성도에서 사모의 자리로 변신한 후, 정신없이 섬겨야만 했던 고된 시절을 하나님께서 귀히 여겨주시고, 비본질적인 것들로 마음 상할 일 없이, 쉬면서, 그러나 깊이 성찰하면서, 반추하되, 또 글로 다듬으면서, 당신의 영적 성장을 두드러지게 꽃 피우고 열매 맺게 하시는 것 같애.

    • BlogIcon larinari 2013.10.18 15:07 신고

      노노.
      미친 속도 아님 : 위 글의 세 번째 단락에서 일곱 번째 단락까지 15년 걸렸음. 이래도 미친 속도임? 아, 미치도록 느린 속도. 맞네.
      사모의 자리 아님 : 성도의 자리에서나 사모의 자리에서나 나는 항상 비본질적인 것으로 마음이 상했음. 비본질적이라 여기던 것이 영적인 것과 닿아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기는 했음. 괜히 '사모'를 끌어다 붙여서 나를 사모 만들어 놓은 자신을 은근히 공신 만들지 말기 바람. 내의 영적성장의 최고의 양분은 사모이기 전이나 사모인 지금이나 그것임. 김종필씨의 사랑과 인내와 관용!ㅎㅎㅎㅎ

  2. 수진 2013.10.18 20:28

    부부의 대화가 훈훈합니다~
    안팎으로 바쁘신 와중에도 온라인, 오프라인 대화가 그치질 않으시넹^^

    • BlogIcon larinari 2013.10.19 00:20 신고

      이렇게 반응하는 남자로 만드는데 15년 걸렸어. 지난한 세월이었지.ㅡ.,ㅡ

 

1.
어머님 이사한 집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님은 언젠가부터 작은 화초를 키우고 계십니다. 널따란 베란다 한 귀퉁이에 몇 개, 탁자 위에 몇 개, 아예 보이지 않는 베란다 안 쪽 창고 근처에도 한 두 개 흩어놓으셨길래 한데 모아 정리를 해드렸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 바라보시더니 '화분이 벙글벙글 웃는다.'하셨습니다.


2.
아버님 돌아가신 지 2년 반이 되어갑니다. 아버님이 암선고를 받으시고 40여일 투병하시는 동안 정성들여 키우시던 화분이 시들어갔습니다. 돌아가시고 난 후에 시든 잎들을 정리하고 버리고나니 엉성해진 품새들이 그 자체만으로도 슬펐습니다. 한 개 두 개 없어지기도 하고 아침 저녁으로 칙칙이로 물을 뿌리며 돌보시던 그 화분은 아버님과 함께 다 거의 사라졌습니다.


3.
크나 큰 슬픔 속의 어머님은 작은 일에도 상처받으시며, 받은 상처를 어머니만의 방식으로 쏟아내시며 질곡의 시간들을 보내셨습니다. 어머니도 힘드셨고 그 곁을 지키는(아니, 사실 곁을 지켜드리진 못했습니다.) 이들이 다들 힘들었습니다. 막내 며느리에게 기대가 가장 많으셨고, 마음을 기댈 언덕으로 생각하시는데 그 누구보다 막내 며느리가 어머니께 가까이 가지 (못했)않았습니다.


4.
막내 아들 가정의 삶을 늘 자라스러워하시고 부러워하십니다. 작은 화분을 하나 둘 모으기 시작하신 것도 오실 때마다 '화분이 참 잘 자란다.' 하시며 유난히 눈길을 주시던 우리집 작은 초록이들에 끌리신 탓인지 모르겠습니다. 채윤이 에미랑 얘기할 때 말이 제일 잘 통하는데 채윤이 에미가 전같이 않아서 많이 섭섭하셨을 것입니다. 채윤이 에미가 병원도, 피정도, 상담도 모시고 다니던 때가 그립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작은 화분을 모으며 그리움, 상실감 같은 것들을 달래셨겠지요.


5.
2주 연속 어머님이 혼자 지하철을 타시고 주일마다 우리 교회에 오셨습니다. 많이 칭찬해 드리고 점심도 사드리며 무한 격려를 했습니다.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낯선 곳을 가 보기'를 너무 귀찮아(두려워) 하셨고, 이 지점은 어머님의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중요한 결단의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난공불락처럼 움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 주 연속 스스로 하셨습니다.


6.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로 누구보다 강한 사람으로 살겠다고 결심하신 어머니. 결심하신대로 누구보다 강한 사람, 완벽한 신앙인으로 살아오신 세월인데 그렇게 살기 위해 잃은 것이 많으십니다. 그렇게 잃으신 것들이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에 쓰나미 같은 고통으로 어머니를 덮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혼하고 어머니의 외로움과 아픔이 눈에 들어왔던 나는 어머니의 상담자, 치료자를 자처했습니다. 언감생심이었지요.


7.
내가 어머니의 치료자는 커녕 상담자? 아니 상담자는 커녕 말벗도 될 수 없다고 느낀 지짐이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나를 과신했는지, 내가 스스로를 얼마나 혹사시켰는지를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아버님이 떠나시고 아버님의 화분이 하나 씩 사라져가면서 어머니와 쌓았던 진한 관계들이 다 끊어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8.
좋은 징조들이 보입니다. 어머니가 혼자 지하철을 타고 움직이셨고, 채윤이 현승이의 어여쁜 마음이 할머니께 사랑으로 다가갑니다. 오늘 어머님 댁에서 화분을 정리하다보니 여기 저기 흩어져있는 화분이 꽤 되고, 모아 놓으니 그럴듯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것이 참 예뻤습니다. 줄을 지어 세워놓으니 몇 년 전 암사동 홈타운 살 때의 우리집 베란다와 싱크로율 90%였습니다. 어머니가 슬픔 속에서 키우신 생명들입니다. 탈상, 죽음의 옷을 벗는 순간이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만 생각하면 막막한 절망감으로 기도조차 이어지지 않았는데, 어머니와 어머니의 하나님은 탈상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9.
요즘 어머니를 뵈면서 자꾸 입에서 '탈상, 탈상' 이 말이 맴돕니다. 오늘 매만져드린 어머니의 초록이들이 심증에 확증을 주었습니다. 햇볕을 쏟아 부어주시는 어머니의 베란다. 그와 달리 아침에 잠시 드는 볕으로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는 우리집 초록이들. 이 녀석들도 멀리 있는 어머님 댁 초록이들에 공명하며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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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진 2013.10.16 18:07

    마지막 문장 예술! 특히 '공명'에 공명되어 정신이 혼미해짐...^^;;

    • BlogIcon larinari 2013.10.16 19:26 신고

      댓글 보고 마지막 문장 다시 봄.
      내가 쓴 문장을 재해석 해서 은혜받음.ㅋㅋㅋㅋ

  2. 신의피리 2013.10.17 10:11

    고마워요. 짧은 듯 긴 듯한 세월, 아픔을 잘 견뎌줘서 고마워요.

  3. 생명이 움트는 사랑.

  4. 맑음 2013.10.18 00:05

    사모님. 늘 스마트폰으로만 블로그를 보다가 오늘 처음으로 컴퓨터로 들어와 보니 블로그가 훨씬 예쁘네요^^ 그래서 컴퓨터 첫 방문기념으로다가~~ 댓글 부끄럽고 소심하게 남기고 갑니다.
    높아만가는 가을하늘만큼, 깊어져가는 사람들의 눈빛 만큼
    잔향이 깊게 남는 글 마음에 담아갑니다.
    좋은 가을이 가기 전에 얼른 사모님의 커피를 맛보고 싶어요. 곧 뵈어요^^

    • BlogIcon larinari 2013.10.18 10:14 신고

      '맑음' 이 별칭을 보는 순간 1년 전 가을의 양수리 그 멋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지네요. 신기하다.ㅎㅎㅎ
      1년 만의 커밍아웃, 환영하고 감사해요.
      주저하지 말고 두 분 맞춰 연락주세요.
      남편 시간이 관건이니까 직접 시간 정하셔도 되고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노인 음악치료에 관한 글을 쓰느라고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꺼내 읽었다. 얼 마만인가. 결혼하기 전에 읽은 책이니. 생각해보니 20대 때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과 글을 열심히 찾아 읽었었다. 그것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그분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렇게 잊고 있었음에도 내가 원하던 소설을 정확하게 한 방에 찾아낸 것이 신기했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머리로는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 반대이다. 진심으로 나를 믿어주지 못하고, 진심으로 스스로 칭찬하지는 못한다. 그런 내가 작년  맘때의 나에 대해서는 꽤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진심으로 내가 참 잘 했다 생각하고 있다.


작년 이맘 때 친정엄마가 고관절 골절로 수술하시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 하기도 했다. 두 군데 요양병원을 거쳐 집으로 지팡이 짚고 돌아오시기까지 말로 하기 어려운 절망과 슬픔의 시간이었다. 그 기간  내가 참 잘 지냈다. 엄마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 엄마의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어른스러웠다고 자부한다. 동생 부부를 비롯해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가장 아픈 것들은 내 마음에 묻어두고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엄마에게 엄마처럼 잘 행동했다. 위기의 순간에도 잘 벼텼다고 생각한다. 그즈음 <크로스로>에 엄마에 관해 쓴 두 개의 글이 증거자료이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그러하듯 작은 외면적으로는 자뻑이 과대하기 때문에 그 일을 생각하며 두고두고 나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의연했지?' 하면서. 그런데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으면서 깜놀했다. 중단편의 소설 속에 여러 '노인'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작년에 내가 맞닥뜨린 유사한 상황이 많았다. 그리고 전에 내가 그걸 읽으면서 유난히 공감하고, 쓸쓸해하고, 오래도록 여운으로 간직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작년에 엄마 문제를 그렇게 잘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순간 내 안에서 생성된 힘이나 지혜가 아니었다. 20여 년 전에 읽었던 소설 속에서 미리 체험했던 감정이고 그 간접경험으로 인해서 예행연습 된 일을 제대로 겪은 것이다. 아, 그랬구나. 현승이의 얼마 전 일기 '사실이 아닌 사실'이 떠올랐다. 스스로 알아낸 것 같지만 새로운 것을 알아낸 것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라는 것.


조금 충격이었다. 늘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다음 페이지 넘어가면 그 앞 페이지가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냐? 머리가 이렇게 나쁜가?' 생각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읽었던 책인데 다시 읽으며 너무 새로와서 화가 난 적도 많다. 도대체 책을 어디로 읽는 것이야! 그런데 이렇게 어디로 날아가지 않고 내 머린지 가슴인지 어딘가에 있다가 필요한 순간에 튀어나오는 지혜도 있구나.


내 것으로 생각하는 통찰들, 지식의 조각들이 언젠가 어디서 배웠고 읽었고 들었던 것이라는 (남편이 주야장천 말해오던) 것을 가슴으로 알아들었다. 겸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진심이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다 잊어버린 것 같아 속상하더라도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야겠다. 20년 후 어느 날 딱 필요한 순간에 툭 튀어나올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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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orest 2013.10.15 08:50

    하두 오래전에 읽은 것이라 나도 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시어머님에 관한 글에서 진심으로 동감했었던 적이 있는데...^^

    요즘 내가 느끼는 건 말이 그냥 말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
    생각의 종합체가 말이 되어 나온다는 것,
    그 사람의 진심과 거짓이 말로 드러난다는 것...

    오래전 내가 울 털보랑 싸울 때 <말이 곧 생각>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좌절해서 죽어 없어지는 줄 알았잖아. 그 느낌~~~ (쪽팔려~~~ㅋㅋㅋ)

    • mary 2013.10.15 09:29

      뭣땜에 얼마나 쪽팔렸나가 왜 이리 궁금하다냐 ㅋ
      나 저 책 보고 싶다. 쓸쓸한 당신... 빌려달라는.

    • BlogIcon larinari 2013.10.15 17:47 신고

      어제 강의를 듣는데 신부님이 그러셨엉. '몸이 똑바르면 그림자도 똑바르고 몸이 삐딱하면 그림자도 삐딱하다'고요. 그러니까 여기서 '몸'은 내면, 또는 내적자아이고 그림자는 '외적자아', 밖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인 거죠. 언니 말씀이 딱 그 얘기네여. 뭔 일인지 저도 궁금 궁금......

      메리 메리 큰 언니님,
      다음 번 뵐 때 빌려드릴게요.

  2. 신의피리 2013.10.15 09:03

    음... 윷 좋다. (^^)

  3. 대밭 2013.10.16 07:03

    콩나물에 물주기, 이런 말 들어 보셨지요? 물이 지나간 기억, 잠시함께 머무른 흔적만으로 콩나물이 자란다는 거요. 아이들 가르치며 참으로 절망스러울 때마다 혼자 생각해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난 잠시 지나가는 물 같은 거다, 나보다 한참한참 더 큰 무엇들이 늘 있다, 이렇게 잠시 함께 있는 것으로 고맙고 이름다운 거다, 그걸 잊지 말자, 하구요.

    • BlogIcon larinari 2013.10.16 16:39 신고

      대밭님 댓글 감사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시나봐요.
      오늘 아침 제 마음에 대밭님의 댓글이 퐁 하고 떨어지더니 하루 지내며 동심원이 퍼져나가고 있어요.
      그렇군요.
      언젠가 만났던 선생님, 책의 저자, 친구... 잠시 함께 한 흔적으로 사랑과 가르침을 받아 오늘의 제가 되었네요. 제가 기르는 아이들과 치료하는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못 미친다고 미리 좌절하는 날이 많은데... 물이 지나간 흔적이 되어주는 것으로 그 자체로 아름다움이고 고마움인 것이군요. 맑은 가을 하늘처럼 잠시 투명한 평안을 누리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4. 2013.10.26 00:48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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