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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294

작고 낮은 것 3월31일, 3월의 마지막 주일은 봄이다!개나리가 피었다.봄이구나! 가볍게 옷을 입고 나갔더니 찬바람이 품을 파고든다.봄이지만 춥구나! 일주일 전인 3월 24일, 3월 셋째 주일에는 확신이 없었다.봄인가? 아닌가?예배를 마치고 나와 채윤이가"봄인데, 날씨가 이런데 집으로 그냥 못 가. 엄마, 어디든 가자."중앙공원으로 갔다. 봄이라는 느낌 없이 집을 나왔던 건데, 봄이었고 따뜻했다! ​ 중앙공원에 온 봄은 미미하고 작았다.들여다 봐야 보이는 봄이었다.노란 산수유만이 파란 하늘 배경 삼아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봄이었다."엄마가 좋아하는 꽃이야. 제비꽃. 어렸을 적엔 '앉은뱅이꽃'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그런 말을 안 써.""엄만 어떻게 이렇게 작은 게 보여?""노안이지만 좋아하는 건 다 보여. 엄마가 이 꽃을.. 2019. 4. 1.
100시간의 인내 "바쁘시죠?"라는 인사 참 듣기 거북한데안녕하세요?라는 말 대신 듣는 인사가 되었다."바쁘다기보다는....... 미주알고주알 메추리알 타조알......."설명하고 싶은데 다들 바빠서 길게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늘 조금 억울한 느낌으로"아, 네...... 그렇죠. 뭐"라고 얼버무릴 뿐. 바쁘냐고 묻는 말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우리 한 번 놀아야지, 로 들리는 경우가 많다.직장 다니는 사람이, 월화수목금 출근하는 사람이 아무 시간이나 약속 잡을 수 없는 정도.그 정도로만 바쁘다.그 정도가 바쁜 거라면, 내가 바쁜 게 맞다. 여유가 없다, 빡빡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강의, 음악치료, 상담,이 없는 시간엔 읽어야 할 것, 써야 할 것들이 번호표 뽑고 기다리고 있다. 바쁘진 않지만 여유는 없는 시간에서 10.. 2019. 3. 1.
여든까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 ​ “현실 부정을 통한 격려는, 아무리 선의가 있어도, 역효과가 난다!” 말, 특히 격려의 말에 관심이 많은 터라. 아니,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다. 말을 들어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러하듯 나를 보는 그들도 그러하겠기에 내 말의 돌아봄에 생의 에너지 절반은 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내게 말은 또한 글이다. 말이 부드럽고 달달하다 하여 속까지 그러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예의 없고 날카로운 말이 성숙한 인격와 날카로운 지성의 지표인 것도 아니지만. 정색하고 농담하고, 진담은 가볍게 해버리는 습관이 있다. 이 분열적인 말로 여러 사람 헛갈리게 한다는 것을 인식해가는 중이다. 농담하다 정색하고 찬물을 끼얹기도 한다. 나는 별의별 선을 다 넘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어떤 선을 넘어.. 2019. 2. 19.
첫 마지막 성경 신앙 사춘기.서른 여덟 쯤 시작한 그 알 수 없는, 낯선 시간을 한 마디로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온전히 내가 창작한 용어는 아니지만 뉴스앤조이 연재글로 많은 공감을 얻었으니정서적, 경험적 저작권은 내게 있는 것으로 하자. 신앙 사춘기 시간 동안 나름대로 말씀과 기도에 전념했다.설교, 예배, 기도. 이런 것들이 죄 의미 없게 느껴져 신앙 사춘기였지만돌아보면 기특하게도 다른 언어를 찾아 말씀과 기도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었다.언어를 놓아 버리는 기도, 향심기도를 했다.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보았던 개역개정이 아니라 메시지 성경을 읽었다.메시지 성경으로 읽는 예수님, 바울의 편지는 하나님께로부터 내게로 직접 오는 계시와도 같았다.당시 교회 수요예배에선 로마서 강해를 했었는데 같은 본문 정반대의 메시지였다.로마서.. 2019. 2. 10.
혼차, 혼독 # 혼차 "엄마 요즘도 커피 열심히 하시니?""어, 차로 갈아타신 것 같은데요. 차를 많이 드세요."라고 채윤이가 어느 바리스타 님을 만나 얘기 나누었다는데.사실이다.낮 하루 지내며 몸과 마음에 쌓인 미세먼지를 저녁마다 차로 씻어내고 있다.남편은 설교 준비로, 아이들은 주일학교 캠프로(아, 하나는 학생, 하나는 선생님으로 갔다!)가족을 모두 교회에 바친 토요일엔 심지어 혼차다. # 혼공 "그만큼 배웠으면 많이 배웠지, 여자가 뭘 더 배운다고!"엄마의 목소리가 마음의 귀에 늘 쟁쟁함에도, 쟁쟁하기 때문에 참으로 열심히 배우러 다녔다.더는 배우러 다닐 일이 없겠지 싶었는데,가장 시간이 없는 때, 100시간 짜리로 뭔가 또 배우러 다닌다.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인데, 가 앉아 있지면 조금 한심하다.연구소 열어놓고.. 2019. 1. 19.
노안, 멀리 보라는 원시 2018년 쉰의 마지막 전날에 돋보기를 했다.드디어 돋보기를 끼게 되었다.이제야 어른이 된 느낌이다. 돋보기를 맞추는데 안경사께서는 '노안이 벌써 왔을 텐데 꽤 오래 버티셨네요'했다.그리고 '가까이 있는 게 안 보이는 건 보지 말라는 뜻이지요.' 라고 했다.몸이 보내는 신호가 진실이라는 것을 안다.그렇구나, 가까이 있는 것은 그만 보라는 뜻으로 노안이 왔구나.멀리 보라는 뜻이구나.고개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생의 종점을 보고,생의 종점 너머 또 다른 세계를 응시하라는 뜻이구나. 인정! 하지만 가슴이 턱 막히기도 한다.마음 먹고 돋보기 하러 간 이유는 책을 보기 위함인데,책 없는 삶, 책 읽을 수 없는 노년은 상상할 수 없는데. 아무튼 깨끗하게 커진 글자들로 독서의 기쁨이 두 배가 되는 날이다.2018년 .. 2018. 12. 31.
나는 누구인가 외삼촌이 돌아가셨고, 장례식에 다녀왔다.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혼란 그 자체이다.짧았던 우리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내 안에서는 더 크고,훨씬 더 긴 세월, 서로 알 수 없는 시간 속의 서로는 잘 모른다. 무슨 직함을 가지고 있는지, 아이는 어느 대학을 다니고 있는지,고3 아이의 엄마는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정보가 속닥속닥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면 괴리가 함께 흘러들어와 자리 잡고 앉는다. 내 마음 속 고운 추억으로 간직된 착하고 좋은 사촌들.어쩐지 지금은 낯설기만 한 것은그들이 나에게 먼 것인지,내가 그들로부터 이탈해 온 것인지 알 수 없다. 슬픔에 겨워 우시던 외숙모가 곁에 있던 어느 분에게 나를 소개하며 말씀하셨다."얘가 정목사님 딸이에요. 얘가 아주 유명해서, 얘가.. 2018. 10. 7.
생의 마지막 인사 '다들 고마웠어' 의 시바타 할머니, 토쿠에 할머니키키 키린이 영화에서처럼 정말로 돌아가셨다. 에서 가장 마음 시린 장면이 가족들의 해변 점프샷이었고그걸 지켜보는 시바타의 시선이었다.시바타가 마음으로 말했다. "다들 고마웠어"영화 속 시바타 생의 마지막 대사였다. 제레미 테일러 선생님이 올해 1월 3일에 돌아가셨다.융 심리학을 바탕으로, 융 심리학을 넘어 꿈의 영성적 의미을 한층 실제적으로 밝혀내고, '온전함'의 깔대기로 꿈 언어를 해석하고,안전하고 강력한 치유 그룹인 '집단 꿈 투사(projection)' 안내하신 분이다. 그분의 제자 고혜경 선생이 밝혔다고 하는 얘긴데.평소 강의 시간에 자주 말했단다.우리 인생의 마지막 기도는 'Thank you!' 하나로 충분하다고.작년 12월 31일 늦은 밤, 스승인 제레미 테일러.. 2018. 9. 26.
Carpe Diem 에어컨 있는 공간만 찾아 다니며 견딘 여름이 갔다.버스라도 타려고 맨몸으로 걸으려면 극기훈련 하는 심정이었지.바로 저 길이 그 극기훈련 코스였다. 맨몸으로 걸어도 겁나지 않는 길,정도가 아니라 높고 푸른 하늘과 딱 좋은 바람이라니. 맑은 날 하루하루가 아까운 시절이다.학교 다녀온 현승이가 노트북 앞에 앉는 나를 보면 혀를 끌끌 찬다.엄마, 오늘 한 번도 밖에 안 나갔어?밖에 날씨 엄청 좋아. ​ (남자 였음) 수염 덥수룩 했을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았다벌떡 일어나 아까운 가을을 붙들러 나간다.책도 안 들고 휴대폰 케이스에 든 카드 하나 덜렁 들고 나간다.한 달 전만 해도 지옥 훈련장이었던 길을 발길 닫는대로 걷고,걷다 반찬 가게 앞에서 물김치 한 봉지 하고,몇 걸음 걷다 옥수수 찌는 냄새가 좋아 한 봉지 .. 2018. 9. 18.
열차 안에서 ​ 고무신 신고 아장아장 느린 걸음 걸을지라도 해바라기 해 따라가듯 나도 예수님 따라갈 테야 ktx 광주송정역에서 광주역 가는 무궁화호 안이다. 어릴 적에 서울 갈 때 타던 장항선 열차를 탄 것 같다. 흔들흔들 앉아 옛 기억 더듬다 소환되어 나온 노래. 서너 살 때부터 불렀던 내 18번이고 인생 첫 노래다. 장항선 열차 안 의자 위에 서서 노래를 부르면 엄마 아버지가, 또 다른 좌석의 어른들이 연양갱을 사주셨다. 건너편 빈 좌석에 네 살 짜리 내가 어른거린다. 먹어도 먹어도 맛있던 연양갱도,엄마도 아버지도. ​ 2018.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