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보려고 강에 나갔던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더냐?

봄이 오긴하는 것 같은데 하늘은 무겁고 내려앉았고 바람은 거셉니다. 무엇엔가에 이끌려 다시 강에 나갑니다. 오전에 모임 하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터였습니다. 어지럽게 춤추는 마음의 소리들을 잠재우고자 강을 찾은 것이겠지요.

중학교 영어 시간에 'Look at the bright side' 라는 말을 배우고 거기 한참 꾲혀있었지요. 긍정적인 면을 보자. '물컵에 아직 반 잔이나 남았네. 이러는 게 좋지. 에잇, 반 밖에 안 남았네 하는 게 좋냐?' 이런 선생님의 말씀에도 큰 배움을 얻었지요.
날이 갈수록 진실은 밝은 쪽에만 있지 않고(그렇다고 그 이면에만 있는 것도 아니겠지) 밝은 만큼 어두운 그림자를 함께 바라볼 수 있어야 비로소 찾아진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마음의 여정, 영적인 여정은 특별히 그러합니다.

이렇게 에둘러서 말하는 버릇 고쳐야하는데.... 하고 싶은 얘기는 이런 겁니다.

암튼 오늘 모임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대충 자신을 소개하고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얘기해야 했습니다. '저는 집단여정이라는 걸 하면서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중에 있습니다. 그로 인해 자유도 얻지만 한편 방학 내내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정말 힘들어서 아이들에게 함부로도 하고 상처도 주고 그러다보니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습니다. 내 어린시절 상처 돌아본다 어쩐다 하면서 지금 내 아이들에게 충분히 수용적이지 못하고요. 그리고 저는 다시 일을 찾아야 하는데 이사를 오는 통에 음악치료 할 곳을 적절하게 찾을 지 모르겠습니다. 나이도 많구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서 얘기하시는 분이 이러십니다. '저희 가정은 천국입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매끼 따뜻한 밥 해서 나누고 그렇게 지내는 내내 행복했구요. 제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 오늘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기대를 합니다'

그 분의 나눔이 진실이라는 것도 알고, 내 얘기에 연이어 나왔다 할찌라도 내 얘기와 빗대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들으면서, 듣고나서 내 속에서 이러는 겁니다. '어? 나도 행복하다면 행복한데... 나도 방학동안 애들한테 따순밥 해주고 좋은 때도 있었는데. 그리고 딱히 일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저 분이 저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되게 믿음도 없고 불행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분의 고백이 백 번 진실이어도 저는 그런 나눔이 불편합니다. 일단 정말 본인이 행복해도 그 안에 불행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조심해야 할 것 같고,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복잡성과 다면성을 믿기 때문에 무엇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에는 대체로 신뢰가 잘 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약함을 고백하고 그 약함으로 인해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유독 공동체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에 꽂혀있다고 말하는 게 좋겠습니다. 모여서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고, 그렇게 내보일 때 누구도 판단하거나 섣불리 설교하고 가르치지 않으며 수용해주는 그런 공동체 말이지요. 사로잡혀 있는 만큼 기대가 높고, 기대가 높은 만큼 실망도 많이 합니다. 자신에게 서로에게 '상처입은 치유자'로 다가가고 싶으니, 이것은 얼마나 높은 이상입니까.

남편에게 넋두리 하며서 그랬습니다. '하긴 내가 원하는 공동체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나만 그 자리에서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닐거야. 다들 나처럼 목마르지만 방법을 모르겠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지' 그랬더니 남편이 '맞아. 여보. 당신이 목마른 누군가의 목을 축여주면 당신의 목마름은 하나님이 채워주셔. 그게 답인것 같아'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를 꿈꾸며 삽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부터 나는 가장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 좋은 것 밝은 것만 드러내기 원하는 사람, 우울하고 어둠에만 빠져있는 사람, 가르치기 좋아하는 사람,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듣는 척만 해주는 사람, 지적인 사람, 머리 쓰기 싫어하는 사람, 진지한 사람, 경박한 사람 모이는 곳이 사람 사는 곳일 겁니다. 나 역시 그런 어떤 사람 중 하나이고요. 이미 왔으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처럼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동체는 내가 꿈꾸고 남의 마른 목 축여주는 순간 이미 임하는 걸 볼 것이고, 이렇게 가는 길 끝에서 그 분의 품에 안길 때 아름답게 완성되겠지요.

2012년, 척박한 곳에서 다시 한 번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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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꿈을 다시 살고싶다 2012.03.08 20:23

    세상에 그런 공동체가 어딨겠어
    하지만 꿈꾸면 되지.
    이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모님의 꿈을 응원하고 함께
    꿈꿉니다.^^
    공동체. 너무 요즘은 멀게만 느껴져요.
    지금 돌아보면 지난 2009년이 어쩌면 그 꿈을 살았던 시간 같아요. 제겐.
    소망을 다시 조금씩 품어봅니다..

    그나저나 모님.
    페북보다 블로그에서 모님뵙는게 더 좋아용^^

    • BlogIcon larinari 2012.03.10 09:26 신고

      내겐 첫 목자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그런 것 같애.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같고, 이제는 더 이상 꿈도 꿀 수 없을 것 같을 때 어느 새 새로운 선물은 주어지는 법이니까. 뮨진도 꿈꾸고 나도 꿈꾸고....

  2. BlogIcon 털보 2012.03.09 09:17

    실님 얘기들으니 실제로 행복한 분은 실님 같고.. 그 말할 수 없이 행복한 분은 행복의 덫에 걸린 분 같기도 하고..
    정말 행복한 분들은 행복에 대한 믿음이 워낙 굳건하여 행복한 세상의 경계 바깥으로 넘어가 삶의 어둔 쪽으로 외출도 자주하고... 그러다가 다시 돌아오고 하는 분들같고...
    행복의 덫에 걸린 분들은 사실은 행복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어 행복의 세상 바깥으로 나가면 절대로 돌아오지 못할 듯한 불안 때문에 전혀 생의 어두운 면으로는 발가락 하나도 못내미는 분들 같기도 하고..
    이런 거 보면 실님이야 말로 은근슬쩍 자기 행복을 자랑하는 행복의 깔대기 같기도 하고...
    이거 뭐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실님이..
    고뤠? 그럼 사람 안불러도 되겠다 그지?
    요렇게 나오실 것 같아서 웃음만 실실나오고.. ㅋㅋ

    • BlogIcon larinari 2012.03.10 09:31 신고

      '한 번만 더 말씀해주세요. 받아 적게요'
      하면서 수첩 꺼낼 뻔 했어요.
      털보님의 이런 통찰과 언어적 정리를 해주실 때마다 놀래요. 서쪽에 서서 여기서 바라보는 산의 모양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허우적대고 있을 때 동쪽이든 비행기 타고 위쪽에서든 달리 바라볼 수 있다고 하시며 눈을 열여주시거든요. 그리고 그걸 언어로 길어올리시고요.
      그러고보니, 막연히 저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나봐요. 헌데 바라보는 방법 표현하는 방법이 막혀있었어요.
      이럴 때 다시 감사.^^

  3. forest 2012.03.09 17:52

    래리크랩도 울고 갈 감동적인 글인데 왜 자꾸만 실실 웃음이 나지... 실실...

    우리 집에서 자꾸만 실실 거려서 바늘나오려고 해요.^^

    • BlogIcon larinari 2012.03.10 09:31 신고

      아, 진짜 왜 이러세요. 참을려고 했는데
      동동구루모 동동구루모... 하게 되잖아요.ㅋㅋㅋㅋ





'들어줄께 다섯 시간이라도, 여덟 시간이라도 말해봐'
하면 얼마든 떠들어댈 수 있는 사람?
나! 나!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입 다물고 마음으로라도 얼마든지 떠들 수 있는 사람?'
 나! 나님!



30분 전 도착한 본당에선 이미 꽉 찬 자리에 아주 조용한 열정들이 충만하다.
30분 동안 조용히 그 분 앞에 있기로 마음 먹었으나 그 분과의 대화는 어느덧 어떤 사람과의 대화 아니! 일방적 퍼부음으로 바뀌어 있다. 겉보기엔 조용한 침묵이나 마음은 시끌시끌하다.
아니지. 이거 아니지. 다시 그 분 앞에.....



예배가 시작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보시는 목사님의 절제된 언어가 나를 이끌어간다.
얕고 경박한 내 신앙과 신학이 조용하고 강요란 없는 설교 앞에 고개를 떨군다. 그리고....



설교의 끝자락에서 나의 그 분은 십자가 그늘 밑으로 다시 나를 초대한다. 기꺼이 자발적으로 하늘의 권리를 포기한 그 선택만이 진리이고 생명이었노라고. 나눌 것이 없다고 단정지은 삶이 바로 지옥이고, 기꺼이 포기하기를 선택하는 삶이 생명이라고. 그렇게 살으라고 하신다.
생각해 보아라. 네가 언제 가장 행복했는지? 언제 자유로왔는지? 라고 하신다.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청년들에게, 치료로 만난 아이들에게, 엄마와 동생과 시어머니와 사람들에게 기꺼이 나의 시간과 가진 것을 줄 때 자유롭고 행복하지 않았던가?
슬픈 헤아림을 멈추고 기꺼이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힘이 진짜 믿음이도 생명이다.



마음까지 조용해져 내 말을 멈추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내게는 안식이다.
그 안식의 시간 동안 진짜 나를 만나고 나의 주님을 만난다.
오늘도 본당을 사수하길 잘했다.



맛있는 레몬티라미스와 커피로 조용한 안식일을 즐겁게 안식할 날로 채색한다.
밝은 찻잔처럼 마음이 밝다. 한 시간 두 시간 공허한 말을 떠들어대지 않아도 충만하다.



침묵 속에 잠잠히, 즐겁게 안식하는 날.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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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5 00:59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2.03.06 17:08 신고

      잘 지내지?^^
      나도 그립네.ㅠㅠㅠㅠ
      그래, 자주 와. 앞으로는 여기서 주절거릴테니까.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화려한 유혹 속에서 웃고 있지만 모든 것이 낯설기만해.
언제나 선택이란 둘 중에 하나 연인 또는 타인 뿐인걸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나의 슬픔을 무심하게 바라만 보는 너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았던 어린 시절에 건달에 제비 한석규에게 꽂혀서 열혈 시청했던

<서울의 달>이라고 주말 연속극이 있었어요. 그 드라마의 주제곡인데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 가사가 참 많이 생각났어요. 페북하는 내내....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게지요.
어디로?
페북하지 않던 시절로? 블로그로?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면 딱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어딘가....
내게 허튼 욕망도 그로 인한 상처도 없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일 거예요.
그 곳은 어쩌면 엄마의 자궁 속일런지도 몰라요.
암튼 즐겁게 페북을 했지만 늘 마음에서 저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나는 돌아가야겠어. 이 곳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멋도 모르고 트위터나 페북의 매력에 빨려들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알았어요.
블로그와 달리 나를, 나 자신을 발.행. 하는 곳이라는 것을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는 친구들의, 친구들은 나의 지금을 봐.야.만 하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일인지 깨닫는데 시간이 필요했지요.


어차피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누군가에게 어떤 이미지로 보여질 것을 염두에 두고,  때로는 겨냥해서 이런 저런 (너무 나쁘진 않은) 가면을 쓰고 살기 마련이지만 나는 끊임없이 내가 정해놓은 하나의 이미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누군가 나보다 더 적절하다 싶으면 질투가 나기도 했어요.


하다보니 내지르는 말마다 먹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하고는 친한 척만 해도 내 주가가 올라가는 듯 싶었어요. 내놓고는 못했지만 은근히 그런 인사들과의 친분을 자랑하고 드러내고 싶었어요. 타고나길 눈치 안 채게 '척'하는 걸 잘해서 것두 꽤 잘 됐어요.


적절하게 진실하거나 자기고백도 있어야 했어요. 망가지는 것 두려워하는 편이 아니라서 것두 꽤 잘 먹혀요. 망가지며 오픈할수록 좋아요 갯수는 막 올라가는 거예요. 이거 되는 일이다 싶어요. 좋아요 갯수와 댓글 갯수에 신경을 안 쓰는 척 하면서 신경쓰는 내 자신은 더 누추해요.
어디서 들은 얘기를 가지고 내 얘기처럼 쓰는 수단도 좋아졌어요. 이럴수록 진짜 나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요.


개인적으로 의도를 가지고 나를 비토하고 괴롭히는 사람도 있었어요. 맞아요. 난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고, 오버하다 튀고, 튀다보면 질투하고 싫어하는 사람도 생겨났어요. 그런데 오버만 할 줄 알았지 뒷심은 없는 거예요. 늘 그랬듯 견디기 힘들면 도망 나와요.


'나를 지지하라'는 강요도 받아요. 딱히 동의하지도 않으면서 두려움 때문에 지지하는 액션도 해요. 좋지 않은데 '댓글다는 것보단 낫다'며 좋아요를 누르고, 좋지 않은데 나중에 내 글에 좋아요 눌러주겠지 하면서 또 좋아요를 눌러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자유로운 나와 거리가 멀어져가요.


어! 내가 혹시 유명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은 욕구도 고개를 들어요. 신앙생활을 저렇게 하면 안되지. 지성인이며 젊은 크리스챤이라면 더더욱 저러면 안돼. 의식이 있다면서 저런 글을 써? 안 되겠는데..... 하면서 은근히 가르치고 은근히 나의 선함을 드러내요. 인기가 나를 죽이고 있어요.


따르고 바라봐주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교묘한 자기관리를 해요. 웬만한 일에 정직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사태가 진정이 되면 어디서 가장 잘 쓴 칼럼 하나 링크해서는 '이게 내 생각하고 꼭 같애' 하면서 뒷북을 날려요. 그런 사람을 보면서 분노가 끓어오르는 건 내게 그러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다는 반증이라는 것. 그건 나만 아는 비밀이예요.



곧 책이 나올건데 조금만 기다렸다 책 나오면 홍보를 해야지. 하는 생각에 기다리고 버티자는 마음이 충천해요. 아무래도 책과 더불어 나를 알리면 주가가 확 올라갈텐데 조금만 더 기다리자 싶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페북과 트윗질을 통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의 책과 자신이 하는 글쓰기 강의 홍보만 하는 사람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들어요. 이러다 저자로만 살고 진짜 나는 땅 속에 묻어버리겠구나.


나는 무엇을 위해서 나를 알리고,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행.하려는 걸까요?
나를 발행해서 나는 행복해졌을까요?
생각해보니 나를 발행해서 가끔씩 '나 글 잘 쓰나봐. 나 좀 괜찮은 사람인가봐. 나 좀 웃기나봐'를 확인하는 짧은 순간 짜릿했던 건 같아요. 하지만 행복하진 않았어요.
페북을 탈퇴했어요.



한 동안 뭔가를 빼앗긴 느낌이었어요. 누군가에게 뭔가를 빼앗긴 듯 했어요.
페북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나를 비토하던 사람,
은근히 자신을 지지하라던 강요,
아무 생각없이 내 글에 좋아요 누르며 내 안의 욕망을 자극하던 사람들을 원망하고 분노했어요.


모든 것이 내 안에 있었던 것임을 점점 더 명확하게 알게 돼요.
페북의 인정과 칭찬과 격려가,
주는 사람에겐 때로 진실이었을지언정 내게는 허상이었음을 알게 돼요.
여전히 내가 얼마나 사람의 인정과 칭찬에 목말라 사는 사람인지만이 또렷하게 보일 뿐이예요.



태어나는 순간 나는 세상에 나를 발.행.했어요.

그러니, 발행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아요.
요즘 나는 알게 됐어요. 나의 발행은 블로그에서 그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요.
것두 찾는 이가 적고 댓글이 적은 요즘 같은 블로그에 나를 발행하는 것이 내 영혼을 위해서 가장 적절하고 아름다운 지점이라고요.


아주 작은 진리를 깨달으니
아주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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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3클럽짱마더 2012.03.03 12:43

    아이폰과 스마트폰이 뭐가 달라??? 묻는 1인으로......암튼 환영합니다!!!!
    맞는거지? ㅎㅎㅎ

    • larinari 2012.03.03 22:40

      ㅋㅋㅋㅋ 아이폰과 스마트폰은 대췌 뭐가 다른걸까?
      격하게 애정한다. 33짱 마더!
      아, 이 참에 종규씨 카톡에서 연우 '스똬~일' 보고 쓰러졌음을 밝힌다.

  2. myjay 2012.03.03 17:52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예상도 했습니다.(다만 비토당했다는 사실은 몰랐네요.ㅠㅠ) 이런 얘길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신실언니 글 읽으면서 속으로 '내가 페북에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하고 있었군. 후훗'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전 페북에 제 일상이 상당히 많이 공개되고 그로 인해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솔직히 내면을 돌아보기 보다는, 아직은 제가 덜 된 사람인 관계로 사생활이 지나치게 오픈되는 부분에서 우려를 하는 편이죠. 얼마전부터 아내와 팟캐스트도 시작했습니다. 재밌게 시작했는데 페북도 그렇고 트윗도 그렇고, 저는 재미없어질 때 털고 나올 생각입니다. 재밌는데 사생활이 오픈이 너무 부담스러워도 털고 나올 거구요. 올만에 블로그에 주저리주저리 남깁니다.^^

    • larinari 2012.03.03 22:48

      제이님이 페북에서 털고 나오시면 파장이 클거라는 건 예상하시죠?^^ 지금 대한민국 정통 개신교 복음주의 분파는 페북을 통해서 제이님을 중심으로 한 축을 이루며 돌아가고 있습니다. ㅎㅎㅎ 저도 그 자기권 안에서 돌다 나왔구요.

      진심 제이님처럼 페북을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보이기 위함이 아닌 내적인 자기확신이 가장 필요한 것 같아요. 누구든 거기서 온전할 수 없겠지만 저는 '자기확신'부분에서 점수가 너무 낮은 것 같아요. 그래서 보이지 않게 갈팡질팡을 많이 하죠. 그러다 이 나이에 부끄럽게도 탈퇴... 이런 걸 하기도 하구요.
      포스팅을 해놓고 다시 읽어보면 결국 누군가를 향한 비판이예요. 이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반면교사로 삼으면 되는거지' 하면서도 마음 안에서 돌아가는 부정적 에너지는 어쩔 수 없더라구요.
      하이튼, 센스쟁인님들과 농담 따먹기 못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예요. 그나저나 팟캐스트를 시작하셨다는 건 뭐래요? 부부나꼼수 이런 걸 하신다는 말씀이신가요? 트윗, 페북에 이어 이번엔 글루 전도 당해야 할까요?ㅎㅎㅎㅎ

  3. 우쭈꿈 2012.03.03 22:41

    모님글이 그리워 블로그에 다시 방문했습니당:) 보고파용\(//∇//)\

    • larinari 2012.03.03 22:49

      쭈꿈! 실시간~^^
      나도 쭈굼이 솔직해서 빵빵 터지는 담벼락은 그립다.
      잘 지내지?

  4. g 2012.03.04 05:13

    모님은 블로그가 어울리셔요-!
    상대적인 성격들을 가진 각 미디어에서 페북의 유저 보다는 블로그 주인장이 더 잘 어울린다. 비교우위에서 블로그가 우위다. 이런건 아니구요 ...*_* 모님 포스팅을 보면 그 어느 것보다 옆에서 얘길 '듣는' 느낌이 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베스트!ㅋㅋ

    아참, 전화건은 들으셨죠 크크크
    그 즈음이 제 멘탈에 빛을 좀 쬐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였는데...
    뭐 한마디로 나보다는 좀 된사람 한테 투정하고 싶을 때 였는데
    4번의 전화를 안(못) 받으시는걸 보니까 알아서 털고 일어나라는
    메세지인거 같았어요 ㅡ_ㅡ 그래서인지 지금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헷헷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모님~ 저 종종 들릴께요!

    • BlogIcon larinari 2012.03.04 13:29 신고

      조국의 SNS의 내일을 책임질 꿈나무가 그렇다 하니 정말 그론 것 같애. 맞어 맞어. 난 불로그 쥔장이 딱이야!ㅎㅎ
      일주일에 한 번 꿀같은 그 시간이구나.

      엄마님께 얘기 듣고 감덩이었어. 감덩으로 치면 통화한 것 보다 스팸같이 생긴 번호 네 번 남아있었던 게 더 감동. 게다가 티슈남 동생님 얘기 들었어? ㅎㅎㅎ 나도 슬슬 내 블로그 여러 이웃님 블로그 챙기는 모드로 전환할테니 일주일 한 번 미쿡생활 얘기 업댓해줘.

  5. BlogIcon 털보 2012.03.05 11:34

    저는 트위터와 블로그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사는데 아무래도 무게중심은 블로그에 있는 듯 싶다는.
    트위터나 페북의 폐단은 시간을 너무 잡아먹는다는 거 같고..
    그래도 나름대로 쓸모가 있는 듯 싶어요.
    갑자기 짧은 생각이 날 때가 있는데 그냥 메모삼아 적어두면 나중에 좋더라는.
    근데 수다떨다 죽이는 시간이 너무 많아 그게 좀 문제더라는.

    • BlogIcon larinari 2012.03.06 17:11 신고

      그럼요. 블로그 다단계의 대부님으로서 밑으로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셨는데 블로그에 중심을 콱 두셔야죠.ㅎㅎㅎ
      트윗은 아예 들어가지도 않다가 페북 끊고나서 허전한 마음에 기웃거리고 있어요. SNS부부님의 트윗대화 훔쳐보는 재미로요....ㅋㅋ
      블로그도 흔적은 못 남기지만 매일 출석도장 찍고 있습니다.





1.
나는 누구보다 권위자에 매여 있는 사람이다.
최근 몇 년 잘 풀리지 않는 마음의 문제를 다루면서 또렷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쉽게 권위자를 믿고, 믿을 뿐 아니라 많은 판단들을 권위자의 판단에 무분별하게 의존한다.
그래서 어렸을 적부터 어느 공동체에서나 대체로 윗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는 그런 삶은 살았다(나꼼수 효과. 여러 표현들에 돌아가면서 꽂혀서 자꾸 쓰게 됨)


내 마음에 권위자로 모셔들이면 그 사람을 이상화 하기 일쑤다. 당연히 실망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 권위자는 내가 내 마음에 무의식적으로 씌워놓은 감투이기 때문에 혼자 기대를 높여놨다가 지나치게 실망하는 건 결국 나를 괴롭히는 일이 된다. 그게 싫어서 권위자의 부족함을 똑바로 보지 않으려고 애써 어리석은 자가 되어 생각을 차단하거나 눈을 감아 버린 적도 있다.


2.
나는 정치에 그닥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다. 애써 정치기사를 챙겨보지 않고 주로 남편을 통해서 정치에 관한 뉴스며 논평을 듣는다(이 면에서는 남편이 권위자 ㅠㅠ) 다만 분명한 정치색깔은 있다. 근현대사를 아우리는 조국의 역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적이 있고 그러면서 생긴 역사의식이 있다. 정치적 입장이라는 게 아주 똑같은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지금은 그저 MB를 대척점에 두고 함께 분노하는 때라서 조금 명확하게 나눠지는 지점이 있기는 하지만. 얼굴 생김생김의 차이 만큼이나 정치적 입장도 다를 것이며, 다른 게 당연하며,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나는 설교에서 정치를 예화로 들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제발.... 제발.... 
아, 나는 교회의 설교와 대표기도 속에서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천명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던가. 쓰레기 언론이 전한 뉴스를 그대로 설교와 기도로 가져와서 인용될 때마다 나 자신이 비난받는 것처럼 얼마나 심장이 쿵쿵 뛰었던가.
그래서 민감하다. 정치적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그 다름으로 인해서 설교자의 권위를 가지고 말도 안되는 강요를 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니 그럴 수 있지 않겠는가.


3.
그런 나를 아는 남편이 '작은 표현 하나에 흔들리지 마' 라고 했고 '응'이라고 했지만.....마음을 다잡아 먹고 있었음에도 나는 오늘 도입부분의 사소한 예증에 걸려서 설교 내내 온전히 집중하질 못했다.
목사님의 예증은 상식적이었다. 거기 앉은 정치적 입장이 다른 누구를 비난하는 뉘앙스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눈 길 위의 자동차 발자국 처럼 선명한 안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상처받은 부족한 신앙인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하자가 없는 말씀에도 흔들리는 감정을 어쩔 수 없었다.
전두환을 향해서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시험에 드는 믿음이 연약한 자이다. 전두환 이명박을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과 동급취급하는(그저 그 네 사람 모두 한 나라 최고의 권력자였다는 얘길 하기 위해서라도) 표현에 순간 이성을 잃기도 한다.
느낌으로 알고 있다. 목회자와 설교자로서 존경하는 우리 교회 목사님의 정치적 입장이 나와 다를 것이라는 걸. 그리고 같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 모든 전제 하에 설교를 들었어도 오늘은 도통 집중이 잘 되질 않았다.


4.
어떤 면에서 잘 된 일이다. 나는 주일에 평일에 목사님의 설교와 성경공부를 들으면서 내 마음의 권위자로 서서히 모시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이제껏 내가 권위자로 모셔들이고, 그 권위자의 기대를 찾아 애쓰던 그 자리는 바로 하나님 자리였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껏 만난 어떤 목사님보다 정직하고, 세상의 길에서 유턴하여 그리스도의 길로 사는 모범을 보이고, 탁월한 통찰력으로 설교하고 가르쳐주시지만 그 분 역시 내게 참된 권위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 참된 권위자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의 음성, '성령님' 그 분이어야 하니까.


5.
결국 오늘 설교의 결론으로 돌아가게 되는구나.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 합류한 실라는 무엇 때문에 그 고난의 자리에 콜링받아 기꺼이 따라갔는가? 바울이 줄 수 있는 것은 권력도 명예도 즐거움도 아니었을텐데....
실라는 '선지자'라고 하였다. 선지자는 말씀을 맡은 자이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예수님이다. 실라는 예수님을 품은 사람이다. 바울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맺어진 관계들은 그 불완전한 것들이 사라질 때 함께 사라지고마는 관계이다. 권력이든 돈이든 로맨틱한 사랑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함석헌 선생님이 말하는 '그 한 사람'은 사실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맞다!
예수님을 배제한 채 사람이 내 마음의 권위자 될 수 없고, 사람이 내 마음의 참된 벗 될 수 없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참된 권위자, 참된 벗 되기 원한다면 예수님의 심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오늘도 설교를 통해 누린 은혜가 있는 거구나.(이것은 은혜의 깔대기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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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름하여 본당사수!
교회가 크다봉께 주일날 교회 가서 남편 얼굴 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교회 가는 길 남편과 메세지를 주고받다가 마지막은 보통 '본당사수'로 끝납니다.
본당에 세이~잎! 이런 뜻입니다.


주일에 본당에서 예배드리려면 적어도 30분 전에는 도착을 해야합니다.
본당사수에 실패할 경우 3층, 교육관,  제1별관, 제2별관....  이런 식으로 밀려서 영상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본당은 아주 작고 예배 드리러 오는 사람들은 많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입니다.


개척한 지 7년이 채 안되는 교회가 7000여 명의 인원을 육박하고 있으니 1년에 천 명씩 교인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수평이동이다. 영상예배가 예배의 본질에서 어긋난다. 는 등의 비판의 목소리가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일 년 천 명이 모여드는 일은 주목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 달 있는 새교회 환영회를 통해서 각각 다른  천 명의 사람들을 아우르는 동질성 같은 것을 저는 금방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과 눈물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더 빨리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본당사수를 하고 예배를 드리면서 새교우 환영노래를 부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너지도록 아프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앞 쪽에 일어나 서신 중년을 훨씬 넘기신 남자분들의 넓은 등과 엄마들의 등, 젊은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눈물이 납니다.  오죽하면 저 연세에 수평이동이라는 오명을 쓴 채로 새로운 교회를 찾아나섰을까? 집에서는 멀고 주차는 복잡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교회에 등록도 안하고 1년 여를 다니다가 마음을 정한 그 사연들이 다 다르겠지만, 이 시대 이 땅의 교회 속에서 다 공감하는 무엇이 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복음에는 상식도 없고 합리성도 없는 것처럼 가르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교회와 이 교회의 가르침은 복음이 얼마나 넓고 깊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인지 상식도 합리성 아우른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이 이야기를 써나가고 싶습니다. 매 주일 가능한 본당을 사수하며 드리는 예배를 적어나가겠습니다. 그러다 어쩌다 내가 그려놓은 이상과 빗나가는 것이 있더라고 괜찮습니다. 그 때는 그대로 정직하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한 때 정말 놓아버리고 싶었던 한국 교회에 대한 한 줄기 소망의 빛을 다시 붙들며 저와 하나님과 교회의 이야기를 풀어내보고 싶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 제목이기도한 이 한 마디가 지금 가슴에 막 울립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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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12.02.22 21:18 신고

    정말 작고 옹색한 본당이지만 멋지게 찍고 싶었는데....ㅠㅠ
    오늘 오전 성경공부 갔다가 빛의 속도로 찍어 담아온 사진 걸어둡니다.

  2. 카타콤 2012.02.25 20:07

    함께 예배 드리는 교우로서
    복음의 메아리가 아름답게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JP전임교역자님도 따뜻하신데...
    모님의 글에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 BlogIcon larinari 2012.02.26 00:25 신고

      카타콤님, 감사합니다.
      저는 카타콤님을 모르는데 제게 너무도 정겨운 호칭 '모님'이라 불러주시니 괜시리 울컥하네요.^^

      본당사수하고 예배드릴 때 카타콤님이 마음 한 켠에 계실 것만 같아요. 내일 한 공동체, 한 예배로 마음으로 만나뵐께요.

  3. 대밭 2013.09.18 16:37

    저는 개신교 모태신앙이지만 결국 천주교로 바꿔탔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지겨운 서울 떠나 귀농이랍시고 산골로 들어갔는데 거기 고개 몇 개 넘어 교회를 세 군데를 찾아 다녀도 그저 앉아 있을 수만 있는 교회조차 찾을수가 없었어요. 새까맣게 그을은 할매 할배들 앞에 젊은 목사님이 양복입고 반지르르한얼굴로 하시는 섥교가 왜 우리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지 않느냐,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새벽 두 세시에도 교회당이 차고 넘치더라는. 그런. 젊은 사람들이 왔다고 좋아하시는 목사님 설교 중에 세 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는 결국 읍내 성당을 갔는데 아이고, 농사 짓는다고 한 주일도 힘드셨지여. 신부님의 이 한 마디에 사십 년을 지켜온 신앙의 형식을 바꿨다는.

    • BlogIcon larinari 2013.09.19 00:40 신고

      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저도 비슷한 느낌으로 예배당에 앉아 제 가슴만 쥐어 뜯고 있던 적이 있었어요.
      교회든 성당이든 대밭님 계신 바로 그 곳에서 사랑이신 그 분을 마음으로 만나시길 잠시 기도드립니다.


 
모태 바리새인인 내게 주일 성수는 엄청난 율법 덕목이다. 팔순을 훌쩍 넘기신 나의 모태, 즉 우리 엄마는 주일에는 절대 매매행위를 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목숨처럼 지키신다. '예수 믿고 딱 한 번! 할머니 생신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서 외상으로 원피스 한 벌 사고 다음 날 갚았다'는 말씀은 계시록 마지막 절에 기록될 우리 엄마 행전이다. 지금도 자녀들이 모일 때마다 천국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유언처럼 힘주어 말씀하시는 것이 ‘주일성수 혀라. 절대 주일날이는 뭐 사고 팔믄 안된다. 끔(껌) 하나도 사믄 안된다’라 하신다. 모태가 이러하니 내가 모태 바리새인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이 주일을 껴서 가게 됐었다. 나는 단칼에 수학여행 안 가고 학교에 남아서 자습하는 걸 선택했고, 담임선생...님의 온갖 설득과 핍박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온전히 기쁘게 여겼으니... 과연 나는 엄마의 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 무슨 행사 하나를 주일날에 하겠다는 원장선생님 말씀에 장문의 편지와 함께 사직서를 내던지기도 하였다. 당시 나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가장(아니라 처녀가장인가?)이었으니... 역시 나는 엄마의 딸이었다. 결국 이직을 하는 과정에서 주일 워크샵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첫 출근도 못하고 스스로 짤려서 백수가 되기도 했었다.

이런 주일성수에 대한 전설적이 경험담을 가지고 '주일성수도 안하는 것들이!' 하면서 자고했으니 모름지가 바리새인의 풍모는 다 갖춘 '나' 였다. 다행히 엄청난 상실의 고통과 그 끝에서 만난 선물같은 만남들로 내가 바리새인이었음을, 지금도 여전히 바리새인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부작용이 따라오는 것이다. '내가 바리새인 해봐서 아는데...'하면서 조금이라도 가식적이거나, 어떤 형식으로 신앙의 본질을 대치하려는 시도들에 대해서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 역시 여전히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인 나를 드러내주는 것일테다.ㅠㅠ)

그런 이유로 한 동안 내게 그렇게도 소중한 주일예배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설레는 맘으로 예배에 가 앉았는데 '하나님이 좋아하실 태도와 표정을 지어라. 앤드 이제부터 예배시작 이다.' 이런 논조의 예배로의 초대에 바로 뒤집어져서 예배 시간 내내 씩씩거리며 죄만 짓고 앉아 있어야 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완화시킬 방법으로 설교를 통해 성도들을 통제하고 은근히 하나님의 상과 벌을 강조하면서 죄책감을 유도하는 행태들이 그냥 넘어가지질 않았다. 그렇다고 교회를 안 갈 처지는 아니었기에 몸은 가야했고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갈수록 치열해질 뿐이었다. 급기야 주일 아침이면 갑작스런 복통일 일어나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식은 땀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야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하면서 몸이 마음을 끌어당기며 나 좀 살리라 아우성 치기도 하였다. 답도 없는 소리없는 전쟁을 치뤘다.

(조명 밝아지고...^^)

좌충우돌 방황하던 모태 바리새인이 요즘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설레임 속에 주일을 기다린다.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예배하러 가는 길 아침의 햇살이 그리도 따스할 수가 없다. 주일 날 들은 설교로 일주일간 넉넉히 먹고 남는 영의 양식이 되니 내가 다시 이렇게 될 수 있으리라 꿈이라도 꾸었던가? 신앙의 삶 조차도 직선 위에 줄을 세우고 나 몇등, 너 몇등 하면서 우월감 속에 빠지고 그 보다 더 깊은 열등감과 죄책감을 오락가락 하던 날들을 살며 고통스러웠는데.... 일상에서 그리도 또렷했던 사랑의 하나님이 예배의 자라만 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었는데... 이런 예배를 드리게 되다니.

좋은 지도자 만난 걸 자랑하고 싶으나 조심스럽다. 아직 허니문 효과 충만한 기간이기도 하거니와, 이 땅 그리스도인들 중 최소 몇 % 만이 누리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서이다. 무엇보다 오늘도 예배의 자리에 나갔다가 수고와 무거운 짐을 두 배로 얹어서 다시 짊어지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지 모를 벗들의 얼굴이 떠올라서이다.
좋아도 좋은 게 아니고 웃어도 웃는 게 아니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모태 바리새인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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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에 나갔다. 볼을 스치는 공기가 날카롭지 않다.
양지 쪽을 걷다보면 오히려 따사롭기까지 하다.
엊그제 칼바람을 머금었던 그 강변 길이 아니다.

강물은 진도가 늦고 있다. 아직 엊그제의 차거움을 그대로 안고 얼어 있었다.
강과 내가 느끼는 온도차와 시간 차가 있다. 강은 엊그제의 혹한을 이제야 살고 있다.

나는 어쩌면 강보다 훨씬 더 먼 과거를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과거의 일과 관계와 감정을 곱씹으며 다시 새롭게 분노하고 한 번 더 좌절하면서 말이다.
그 뿐인가?
오지 않은 미래까지 살아버리려 한다.
내일을 오늘로 끌어들여 미리 앞당겨 희망하고, 실패하고, 두려워한다.

포근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얼어붙어 있는 강물이 묻는다.

너는 지금 여기를 체.감. 하며 살고 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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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엔 인생이 또렷했었다.
계획을 세워놓고 계획대로 되기를 간절히 바랐고, 되면 기뻤고 안되면 속상했다.

그렇게 또렷했던 인생이 갈수록 모호하고 때로 신비하기 까지 하다 느껴진다.
어릴 적에도 인생은 모호했을 것이다.
어릴 적이니까 아직 어려서 '또렷하다' 규정하고 또렷한 것만 인식하고 살았는 지도 모른다.



교회가 서 있는 양화진 공원의 저녁이다.
하늘의 빛깔이 신비하다.
위쪽의 푸르스름한 곳은 진짜 하늘 같은데 내가 섰는 땅과 가까운 하늘일수록 신비하다.
요 며칠 나는 딱 저 하늘처럼 신비로움에 서 있다. 조금 얼떨떨하게...







작년 연말부터 손에 든 두 권의 책이다.
두 책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힐 만한 연관성 같은 게 없는 책이다.
그저 우연히 같이 읽게 되었다.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 김훈 소설은 나올 때마다 아껴서 읽는다.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해서 미루다 주문하고 손에 잡은 <흑산>이다.
사실 사전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책을 펼치기 시작하니 조선말 천주교 신도들의 박해에 관한 이야기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양화진, 잠두봉, 마포나루가 무대를 이루고 있어서 내심 놀랐다.
게다가 정약전을 비롯한 정씨 일가가 자리잡은 두물머리 마재는 또 얼마 전 까지 강동에 살면서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 아닌가?








어제는 한 달이면 수십 명의 새교우가 몰려드는 이 곳 교회에서 새교우 환영회가 있는 날이었다. 환영회 겸 교회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의 자리이기에 교역자 가족으로 인사하러 나간 자리였지만 나 역시 오리엔테이션을 제대로 받는 자리이기도 했다.
개신교 백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교회.
교회의 존립 목적이 양화진의 선교사묘원과 용인의 순교자 기념관을 관리하면서 이 땅 기독교 역사 속에서의 정체성을 또렷하게 인식하고 가는 교회의 비젼에 자연스레 내 삶을 싣게 되었다. 한국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 그래서 더욱 철저하게 교회의 교회다움에 존재해야만 하는 교회.
양화진 소개 영상을 보면서 교회소개를 들으면서 다시 <흑산>의 소설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갑.자.기.
난 왜 초기 기독교의 역사 속으로 이렇게 빨려들고 있는 것일까?




 




흑산으로 유배되어 내려간 정약전이 소설의 말미에 섬 이름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부르겠노라 하면서 말한다. 둘 다 같은 뜻이 아니냐며 묻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답한다.

-같지 안다. 자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흑은 너무 캄캄하다. 자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바꾸시는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것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이 바다의 물고기는 모두 자산의 물고기다. 나는 그렇게 여긴다.


이건 또 무슨 일일까?
지금 정약전이 말하는 내용은 십자가의 성요한이 말하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 나오는 말과 흡사하다.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할 때 밤음 무섭고 불길함이 아니라,
단순히 컴컴함, 가리워짐, 뭔가 신비롭고 미지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 영혼의 밤은 메마르고 비어서 비로소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자리다.


지난 몇 년 나는 멀쩡히 밥하고,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커피를 배우며 볶고 살아왔지만 내면에서 끊임없이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여겨진 시간을 보냈다. 끝도 없는 어둠 같았다.

하나님의 신비를 다 벗겨내는 듯한 종교적 행위에,
기도로 하나님을 통제하여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열심을 보이라는 기독교에,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뻔한 두려움을 은페하고 서로 서로 은폐해주는 행태에,
삶을 풍요롭게 하고 위대한 영적목표의 실현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길 권하는 욕망을 가장한 기도에,

그렇게 부추기는 위선과 악에 대해서 견딜 수 없어서 영혼의 어두운 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두운 밤에서 한 줄기 빛을 찾게 된 것은 가톨릭의 영성을 배우고 지도받으면서였다. 사랑이라는 것 외에는 신비에 싸인 하나님을 이제야 비로소 조금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만나고 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서 있다.
어설픈 언어로 엮어내기엔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다.
어쩌면 이렇게 언어로 발설해 낸 것이 나의 가벼움이런지 모르겠다.
오늘 매섭게 차거운 바람을 맞으며 처음으로 강변에 나갔다.
강변에 나가 잠두봉을 바라보고,
백 몇십 여 년 전, 여기서 참수당해 버려졌을 인간의 몸을 떠올리며,
그들과 여기 서 있는 나를 잇는 끈을 생각해봤다.


다시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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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은 정서적 영적 성장을 위한 보물창고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에니어그램을 공부하고 강의하기 전에도 어렴풋이 모르지 않았었다.
엄마와의 복잡다단한 애증이 해결되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엄마와의 그것은 그대로 어린시절 부터 있어왔던 피해의식과 분노이기도 했었다.

과연 어린시절은 보물창고다.

그러나 이런 표현과 접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반감으로 더 거리를 두게 한다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에니어그램과 내적여정 강의를 할 때도 '어린시절'을 다룰 때 매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다.






'어린시절 작업'(이라고 부른다. 보통) 을 하면서 맨 처음 나는 '행복하고 사랑 많이 받은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과연 그랬다. 늙은 목사님에게서 태어난 딸이었다. '이삭'이라 불리며 엄마 아버지는 안아볼 새도 없이 여기서 저기 예쁘다고 데리고 다녔다고 했다. 개구장이 동생이랑 늙은 엄마 아버지를 놀리고 재롱을 떨면서 재밌고 소중한 추억이 얼마나 많은 지 모른다. 그러나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충격으로 분명 내상을 크게 입었다는 정도였다.


(갑자기 딴 얘기, 그러나 같은 얘기)


정말 용서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 수 년 전에 만난 사람이다. 우리 교회에 부임한 어느 부교역자의 사모님이었고, 나는 '사모님'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남다른 마음이 있기에 참 반갑게 따스하게 대하고 싶었다. 헌데 처음 대면부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느낌이더니 대체로 나를 받아주질 않았다. 딱히 자주 마주치는 관계도 아니었기에 '나같은 스타일 별론가보다' 했었다.(그 때 난 평신도였었다)
나중에 이 사모님이 청년시절 후배의 친구라는 걸 알았다. 그 후배는 그야말로 뭔가 나랑 잘 맞지 않는 아이였고 여차저차한 일로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아이다. 그 애 역시 그럴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확인된 바는 없지만 친구로부터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얘길 들었고 그 정보를 가지고 처음부터 나라는 사람을 제꼈다고 생각하니..... 난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용서할 수가 없다.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그 분의 자서전을 읽으며 전율하는 부분이다. 한 두 사람이 아닌 국민 대다수로부터 그저 그냥 무조건 '김대중'이란 이름이 '빨갱이'라는 등식으로 가는 이 하늘 무너지는 억울한 오해를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리고 돌아가시고 난 후 알았다. 이 분이 정말 예수님을 만난 참 신앙인이셨구나.
김대중 대통령께서 전두환을 용서했을 망정 나는그 사모님에 대한 마음을 해결할 길이 없다고 느낀다. 이 한 마디를 그 마음에 꽂아주고 싶다. '성경에 있습니다. 엄히 말하노니 편견을 버리라' 당신의 편견으로 제 영혼을 한 순간 말라비틀어졌었습니다.








3학년, 6학년 때 두 번 왕따를 당했다. 6학년 때는 정말 심했던 것 같다. 이 왕따 이야기가 가끔씩 가볍에 떠올리며 했던 작업이기에 그리 어렵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를 겪어보지도 않고 어디서 들은 편견을 가지고 나를 거절해버린 그 분에 대한 과.도.한 분노가 어디서 오는가? 분명 과.도.하다. 얼마나 과도하면 일생에 용서할 수 없는 일로 표현을 하겠는가? 내 안의 어딘가에서 오는 과도함인 걸 안다.
왕따를 시켰던 아이가 그랬다. '넌 나보다 이쁘지 않아. 내가 제일 예쁘고 그 다음이 너야' 그러면서 어떨 때 자신의 그룹에 넣어주고 잘해주다가 나를 왕따시키기 시작하면 무서웠다. 반에서 어떤 아이도 나하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나는 죽어버릴까 생각도 했었다.

위 사진을 꺼내 보면서 왕따가 한창이었던 6학년 때의 내가 어땠나를 생각해봤다. 대체로 나는 까불고 밝은 아이였다. 사진들이 그렇다. 6학년 때 사진은 확실히 다르다. 함께 사진을 찍은 친구가 울면서 나에게 말했었다. '너랑 얘기하면 안 돼'  그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 가서 잘 지내다가 2학년 때 전학을 왔는데 그 때 헤어지면서 저 친구가 많이 울고 미안하다고 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날 찍은 사진이다. 어쩌다 공부좀 한다는 여자애들이 통틀어 모여서 찍게 되었다. 이 날 나는 독감으로 무지 아팠다. 여기서 한복을 입은 아이들은 나를 왕따시킨 아이와 그 일에 앞장섰던 아이들이다. 세월이 지나고 다시 만나서 잘 지내고 있지만 이 사진의 나 역시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마음에 상처받은 아이가 울고 있다고 한다. 사실 그런 표현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다만 , 누구나 마음에 큰 결핍이 있고 상실감이 있다. 대체로 어린시절의 경험과 맞닿아 있고 그걸 다루는 것, 특히 하나님의 사랑에 빛에 그 결핍과 상처를 비춰보는 것은 꼭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왕따로 인해서 나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왕따로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나를 위해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담임선생님이 알게 되고 반의 남자 애들이 알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늘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좋은 편이었는데 어쩌면 그 왕따 사건으로 인기가 더 좋아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나한테 자꾸만 '넌 나보다 예쁘지 않다'고 말했던 그 친구가 내 인기가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왕따를 당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엄마가 심어준 치명적인 마음의 습관이 있다. '니가 모가 나서 그러는 거다. 교만하면 안된다. 하나님을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를 찾으신다' 이런 훈계였다. 그래서

사랑은 사랑은 둥근거예요.
나만이 잘났다 하지 않고요.
모지고 외톨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웃으며 사이 좋지요.

이 노래는 딱 나의 노래가 되었다. 모지고 외톨이 되는 건 나다. 왜냐면 나만이 잘났다 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상을 받아와도, 누가 날 이쁘다 한다해도, 내가 어디서 뭘 잘했다고 해도 일단 이렇게 말했다. '교만허지마. 교만허믄 안 돼. 그게 다 니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녀'






몇 학년 때인지 모르겠다. 어린시절에 기억하는 나는 저 아이다. 밝은 아이다. 늙은 엄마가 브로치 꿈을 태몽으로 꾸고나서 브로치처럼 이쁘지만 약한 아이여서 애지중지 키웠을 것이다. 목사 사모이면서 생계를 위해서 비단장사를 했기 때문에 나름 패션 감각이 있어서 장에서 이쁘다는 옷은 다 사다 입히면서 이쁘게 키웠다고 했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하고 시골 애 같이 안 생기고 이뻤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걸 인정하면 교만한 아이기 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왕따 당하거나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건 역시 내가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것이 이유다.


 




얼마 전 왕따 당하는 채윤이를 보면서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
그리고 어떤 계기로 올라온 감정과 그 감정을 따라 내려가면서 '왕따'를 다시 맞닥뜨린다.
내 속에 왕따 당한 어린 아이가 울고 있는 게 맞는 것 같다.
이미 다뤘던 작업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울고 있는 것 같다. 울다가 분노하고, 울다가 수치심에 웅크리고, 울다가 지치기도 하면서 어른이 된 오늘의 관계를 좌지우지 하는 것 같다.
다시 직면하려고 한다.
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랑스러운 아이(사란)이라 생각하며 동시에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느낀다. 내 실체를 알며 모두 날 싫어할 거라 느낀다. 나는 뭣도 잘 하고 뭣도 잘 하고 사람들에게 호감형이라고 생각하며 동시에 관계의 실패자라 여긴다. 언젠가는 관계가 틀어지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나를 질투하여 왕따시키는 타인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내가 교만하고 모가 난 탓이라 여긴다. 그 사이에 늘 끼어있다.
답을 어디서 찾을 지, 그 아이를 어떻게 다시 만나 달래주고 보듬어 줄 지, 늘 그렇듯 공식같은 해법은 없지만 어떤 모양으로든 그 분의 사랑의 빛 앞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사진의 저 아이처럼 도도하고 교만해 보이는 아이와 왕따 당해 울고 있는 아이가 통합되고 아직도 과거를 살고 있는 내 마음에 그 덫에서 조금 자유로와지는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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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s 2012.01.16 14:55

    무슨 그런 일이....ㅠ
    그 사모님이 누군지 궁금해지네요.

    왕따~!
    요즘에 나라를 온통 흔들어 놓는 그런 일이 ....
    우리 아이들이 자라니까 그런 일이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고 조금 걱정이 됩니다.
    어서 그런 나쁜 문화가 학교에서 없어져야 할텐데요.

    어릴 적 모습이 참 예쁩니다.
    그래서 시기,질투심에 아이들로 부터 왕따를 당했었나 봐요.

    • BlogIcon larinari 2012.01.17 19:37 신고

      마지막에 하신 그 말씀 듣고 싶어서 사진을 막막 올렸나봐요.ㅎㅎㅎ

      저도 당했고, 채윤이도 살짝 당했고...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메마른 지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져요.

      아, 위에 채윤이 자기에게 쓴 편지는 댓글 남겨주셨는데 비공개로 바꿨어요. 채윤이 프라이버시를 너무 침해한 것 같아서요.^^

  2. BlogIcon 采Young 2012.01.17 22:17 신고

    뭐가 생각 나는 말이 있어 긁적긁적 하다가 결국 정리를 못하고 흔적만 남기고 가요.
    (정말 페북, 트위터로 140자 제한된 뇌가 되버렸나봐요. 으헉 ㅠ)

    쌤~ 근데 마지막 사진 엣지있고 느낌 있어요 ^^

    • BlogIcon larinari 2012.12.07 17:59 신고

      언제 쓴 댓글을 이제야 보네.
      이렇게 보니 새롭다.ㅎㅎㅎㅎ
      우리가 블로그에서 댓글놀이 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말이다.

    • BlogIcon 采Young 2012.12.10 21:50 신고

      ㅋㅎㅎ 그루게요 벌써 3년 전이에요

  3. 임승혜 2012.12.07 10:12

    어릴적 참 이쁘네요 저처럼 서울한복판 살면서도 방금 얼음판에서 팽이치다온것같은 얼굴이면 왕따안당하는데,,,,어렸을적에는 이쁘고 잘난애들은 미음받았지요 나같은 경우는 그런 미움받는애들도 부러웠어요^^ 무관심이 얼마나 슬픈지 모르시지요^^

    • BlogIcon larinari 2012.12.07 18:01 신고

      댓글이 달려서 다시 몸글을 읽어보니 아마 집사님 하신 말씀을 듣고 싶어서 썼지 싶어요.
      어렸을 적 사진 중에서 이쁜 사진 다 골라서 올려놨으니 말이예요.
      왕따든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든, 왕따를 시키던 아이든 아마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조금은 아름답고 한편으론 어쨌든 힘들고 아프기도 한 것 같아요.
      우야튼지 예쁘다는 말씀 들어서 기분은 날아가구요.^^




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인 나의 40여년을 돌아본다.
태어날 때 부터 지금까지 교회생활은
주목받고, 박수받고, 칭찬받기 위해 다녔다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물론 단 한 번도 교회가면서 그걸 또렷하게 인식한 적은 없다.


어렸을 때는 노래 잘하고 똑똑한 목사님 딸로,
자라서는 찬양 율동 선생님,
찬양 인도자,
리더,
지휘자,
커피 내려주는 사모님...
의도하지 않은 것 같지만 결국 늘 주목받는 자리를 놓치지 않았었다.


새로운 교회에서 육 천 여명 성도 중에 제대로 아는 사람이 남편 밖에 없다.
누구도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 존재를 주목해주지 않는다.
잠깐 한 번 들렀다 가는 교회처럼 지난 한 달을 다녔다.
낯섦으로 인한 위축, 그리움, 상실감 같은 것도 살짝 지나가곤 했었다.
새해의 선물처럼 오늘 아침 나도 모르는 새 마음이 생겼다.
일찍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회 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차를 한 잔 마시고 예배를 드렸다.


외부에서 날 지켜보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늘 내 마음에 세워두고 다니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관객조차 의식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래서 ‘어떻게 보일까?’ 하는 어리석은 질문과 애쓰는 걸 접어두려 했다.
어떤 모습도 애써 만들지 않고 그저 ‘신 앞에 정직하게!’ 예배드리려 했다.
마음 한 구석에 새털 같은 자유로움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며 목을 매던 것을 놓거나 잃고 상실감이 찾아올 때,
바로 그 때 자유가 선물처럼 오는 것일가?


차분한 기쁨이 마음을 가득 메우는 날이다.



* 위는 100주년 기념교회 로고. 볼수록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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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이별로 얼룩진 한 해가 집니다.

해가 지는 이 시점에 비통한 죽음의 소식이 전해져 다시 마음을 후벼팝니다.


젊은 시절 가혹한 고문으로,

그 고문의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으로 평생을 고문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생명과 죽음을 생각합니다.






지난 여행 중 매일매일 서해의 장관이라는 낙조를 기다렸습니다.

마지막 날 땅끝마을에 도착하여 비로소 지는 해를 만났습니다.

땅의 시작이 아니라 땅끝을,

일출이 아니라 일몰을 향해 여행기을 달렸지요.

우리 인생도 그러하겠지요.

기쁘고 슬픈 여행 끝에 해가 지며 하루가 끝나 듯 끝을 맺을 겁니다.

그것이 깊게 삶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이지요.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진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이후 너무 많은 아픈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아픈 김근태님 죽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 합니다.

죽음을 짊어진 인생을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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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의피리 2011.12.31 14:21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예수님의 죽음을 어깨에 짊어지면,
    죽음이 부활과 소망과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라는 것이 느껴져.
    모든 죽음을 이긴 한 죽음을 어깨에 짊어지면,
    죽음이 좀 덜 두려워지고.
    교계 안 사람들의 죽음보다,
    치열하게 현대사를 살아간 이들의 죽음 소식 앞에
    왜 이렇게 숙연해지고, 부끄러운지 모르겠다.

    • BlogIcon larinari 2012.01.01 17:48 신고

      말을 잃게 만드는 삶과 죽음들 앞에 그저 하염없이 머리를 조아릴 뿐.
      그러며 마음 한 구석 꿈틀대는 분노는 어떻게 내 삶의 선한 에너지로 바꿔야 하는건지...

  2. hs 2011.12.31 17:15

    요즘에 즐겨 보는 드라마가 하나 생겼어요.
    빛과 그림자라는 70년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인데 자신에게 주어 진 권력을 이용해서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고문을 하다가 결국은 사망케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얼마나 분통이 터지던지요.
    어느 시대나 그런 일이 있어 왔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ㅠ

    한해의 마지막 날 포스팅이 너무 무겁네요.

    새로 다가오는 새해에는 밝은 소식들만 오가는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BlogIcon larinari 2012.01.01 17:50 신고

      고문으로 사람의 정신을 좌지우지 하겠다는 건 하나님의 형상을 근본부터 짓밟는 일이지요.ㅠㅠㅠㅠ

      올 해는 어깨가 한결 무거워지시죠?
      해송님을 위해서,
      사랑하는 한영교회를 위해서 늘 기도하겠습니다.



1.

수 년 전 어느 휴가 주일이었습니다.
도통 다른 교회 예배를 경험할 수 없는 목회자에게는 금쪽 같은 날이라
심사숙고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교회 몇을 물망에 올렸다가 최종 선택한 곳이 양화진에 있는
100주년 기념교회였습니다.
시간이 그닥 늦지도 않았는데 본당에는 못들어가고
어느 별관에서 스크린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쉬워서 이재철목사님 설교 CD를 몇 장 사왔습니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교회 옆 성당을 한 두 장 찍었습니다.



2.

많은 이유로 예배가 기쁨의 자리가 아니라
일주일 중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가 된 지가 오래였습니다.

주일이 아닌 날에 기도와 일상 속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아주 또렷이 보이는데
예배의 자리에만 가면 하나님은 먹구름 뒤 푸른 하늘처럼 숨으시고
도통 하늘 향기를 느낄 수 없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아버지 앞에 안기라는 사랑의 메세지 대신에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실 태도를 만들라. 긍정적이 돼라.
의심하지 말라'는 메세지가 귀에 쟁쟁합니다.

더욱이 내 안의 참소하는 자의 목소리는
'니 탓이다! 니 탓이다! 니 탓이다!'를 외치면 더욱 옥죕니다.

그런 날 집에 돌아오면 질식하여 쓰러질 것 같은 메마른 영혼으로
이재철목사님의 사도행전 강해를
들었습니다.
창세기 강해를 들었습니다.

반복해서 외울 만큼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나의 하나님이 보이고
묵은 땅 처럼 딱딱해지 마음이 보드라워지기도 했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 늦게 어렵사리 목회의 길에 들어선 이상 이재철 목사님 같은 설교를 하고, 이재철목사님 같은 목사님이 돼. 난 그렇게 기도할거야'



3.

10월말로 교회 사임만 결정됐을 뿐 앞으로의 행보가 정해진 것이 없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대책없이 그만두는 젊은 사역자 부부를 애정어린 걱정으로 바라보셨고,
여러 억측이 난무했습니다.
뒤흔들고 또 뒤흔들어대는 여러 일들에도
남편의 선택이 일신의 편안함, 성공, 높은 자리와는 반대 쪽이라는 걸 알기에
깊은 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우리 부부처럼 까칠한 사람들이 부교역자로 갈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두렵기도 서럽기도하여 비로소 꽉 쥔 주먹을 풀고 어린 아이처럼 울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앞은 광야였습니다.



4.

우연인지 필연이지 젊은 시절 신앙과 인생의 큰 길을 안내해주신 스승님께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사역자를 구한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구구절절 설명하기도 어려운 3주 정도의 시간을 보내고 한영교회 마지막 인사하기 전 날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같은 교단도 아니고,
한 번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교회였습니다.



5.

100주년 기념교회에서 예배드린 지 3주째.
매우 예전적이고 조용하게 진행되는 예배의 형식에 몸이 적응을 해갑니다.
아, 예배에서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근거립니다. 언젠가 나는 늘 예배에서 하나님을 만나곤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다 좌절하고 절망하여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습니다' 라고 외치기도 했었습니다.
예배에서 하나님이 보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아무 헤아림 없이 나의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지난 몇 년 간의 눈물에 대한 위로입니다.




6.

합정동에 이사와서 생각보다  좋은 일이 많아서 감사합니다. 
걱정했던 것보다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지내줘서서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새로 온 교회 안에 상식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 상식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아, 이게 상식이었지!
교회를 가면 나를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지만 참 좋습니다. 이게 상식이니까요.
몇 년 전 어느 휴가 주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오늘의 조용하지만, 그렇게 잘 나는 눈물 한 방울 없었지만,
나의 하나님이 아주 가까이 느껴졌던 그 예배를 다시 생각해봅니다.



이것은 반전일까요?
몇 년 전 어느 주일에 깔렸던 복선 결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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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yjay 2011.12.19 09:27

    특전입니다.^^

  2. 한나작업실 2011.12.19 13:17

    네...복이지요~~~~^^ 저도 매주 100주년 기념교회 말씀을 들었었지요~
    ^^ 이재철 목사님 안계신동안 정한조 목사님의 말씀에 어느새 귀가 익고 잔자히 울리는 감동에..^^
    모님~~~~~~합정동의 공기를 한번 맡고프네요~ 지영이랑 함 나들이 기획하려하는데요...
    모님을 뵐수있을런지요~^^

    • BlogIcon larinari 2011.12.19 16:48 신고

      우와, 정한조목사님까지!
      한나님 진정한 100 church 매니아로 임명합니다.^^
      오세요. 오세요!
      오시기만 하면 환영이죠.
      저 일 안하는 날 맞춰 올라오세요.^_^


 
친정엄마랑 통화하며 정줄 놓고 시어머니에 대한 콤플레인을 별 여과없이 쏟아내고 난 후였다.

채윤이가 옆에 와서는
엄마, 내가 들을려고 그런 건 아닌데 들었어. 난 엄마가 할머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쫌.... 너무 그래서 피아노 치는데 자꾸 그 생각이 나.

... 추.... 충격받았어?

그런 거 비슷해. 할머니가 엄마를 좋아하시잖아. 그리고 우리가 멀리 이사가니까 섭섭해 하기는 거 같고, 요즘도 매일 우리한테 잘해주려고 애쓰시는 것 같은데... 엄마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아시면...

맞어. 할머니가 밥도 해놓으시고 잘 해주시지. 엄만 근데 할머니가 몸도 약하시고 요리도 힘들어하시는데 그렇게 안하셨으면 좋겠어. 애써 해놓으시고 우리가 많이 고마워 안하면 화가 나시는 거 같거든.

그냥 그건 엄마! 난 그럴 때 그냥 그건 그 사람의 성격이라고 생각해. 나도 내 성격이 있는거고.. 그건 바꾸라고 할 수도 없는 거잖아(똬아~ F 엄마 열등감 고조시키는 T 딸의 쿨한 정리)

그것보다 좀 더 복잡해 채윤아. 할머니가 머리랑 많이 아프신 게 그런 거랑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래. 엄마가 저녁에 가서 하겠다고 해도 자꾸 하시거든. 엄마는 할머니가 진짜 원하시는 것만 하시고 마음이 편하셨으면 좋겠어.

(근심이 더 많아진 표정으로) 엄마 언제부터 할머니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했어? 할머니가 엄나한테 태우러 오라고 하시고 막 그럴 때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고모도 있고 큰엄마도 있는데 엄마한테 그렇게 하시는 건 그래도... 음... 그게 어... 좋은 거 아냐? 그 전에 엄마가 우리한테 할머니를 많이 사랑해드리라고도 했잖아. 그래야 머리 아픈 거 나신다고 했잖아.

어떻게? 나쁘게 생각하는 거 같애? 채윤아, 엄마가 지금 할머니가 힘들고 조금 밉기도 한 게 사실인데 걱정하지마. 엄마가 할머닐 사랑해. 어떨 땐 사랑해서 밉고, 밉다가 더 사랑하게 되기도 하는거야. 채윤이가 크면서 더 잘 알게 될거야.

(왜 아니겠어? 이 엄마가 할머니를 모시면서 처음에 두려워서 하는 공경과 사랑으로 하는 공경을 구분도 못한 채 질퍽거렸고... 시간이 지나며 할머니의 남모르는 상처와 고통을 보며 얼마나 울었는데... 함께 울어드리는 것이 치유임을 알고 그저 들어 드렸고, 그러면서 진짜 사랑한다는 게 뭔질 배웠는데...
걱정마. 채윤아! 엄마란 여자 하늘의 보물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포기하진 않아. 다만, 지금은조금 더 어려울 뿐이야.)

* 딸과의 긴 대화로 내 마음이 더 잘 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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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아가들하고 유리드믹스(라 이름하는 음악수업)으로 일주일에 한 번 만난다. 오늘 달뜰반 수업 들어갔는데 어린이집 오기 싫다고 울다울다 등원한 아이가 계속 울고 있었다.

헬로송을 부르면서 '안녕 별뜰반~(실은 달뜰반)' 이러면 애들 답답해서 가슴을 치며 '아아~니예~에요. 달.뜰.반이예요'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어, 미안 미안... 안녕 달.... 빛반' 이러면서 완전 멍청한 표정 지어주면 답답해 돌아버리겠다는 표정으로 웃겨서 쓰러진다. 어느 새 울던 녀석도 깔깔거리며 뒤로 나자빠진다.

한 감정에 오래 매여있지 않고 지금 지금 이 순간 새로 오는 자극에 기민하게 반응하며 누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원래 우리의 지어진 모습에 가까울 것이다. 감정과 나를 분리시키지 못하고 감정이 나라고 믿으며 사는 어리석은 어른은 오늘도 아이에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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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수요예배 갔다 왔더니 현승이가 발바닥에 뭐가 들어가 아프다며 보란다. 들여다보니 어디에 살짝 베인 것 같았다. 그 와중에 현승이가 '우리집 바닥에 이렇게 거칠거칠한 게 많잖아. 그래서 그랬나보다' 한다. 순간 '얌마! 우리집 바닥에 부스러기 젤 많이 떨어뜨리는 놈이 누군데!'하는 말이 올라왔으나 기회를 놓쳐 못했다.
오늘 아침 청소하며 생각해보니 현승인 그저 '바닥에 모가 있다'는 얘기였는데 나는 '엄마가 청소를 성실히 하지 않았다'로 들은 것이다.
난 현승이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현승이 말에 비춘 내 마음을 듣는다. 문제는 내 마음의 많은 부분은 크고 작은 콤플렉스, 꾸겨 넣은 분노, 자기연민....으로 채워져 있다는데 있다.

오늘도 창조의 첫 날 처럼 그 분의 손에 의해 내 속에 정한 마음이 새롭게 지어져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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