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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정294

노란 초록 하동 일박 여행 중. 아침 식사를 마치고 숙소 앞 대나무 숲 산책에 나섰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내 옆구리 쪽 어딘가를 맴돌았다. 이리저리 움직이며 한참 발길을 붙들었다. 언제부턴가 노랑, 나비, 노랑나비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들이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님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생각난다. 그냥 아쉽고 안타깝고 그리운 모든 존재들이다. 한참을 놀다 헤어졌다. 섬진강가에 서서 화장실 간 남편을 기다리는데 다시 나타났다. 작은 노랑나비가 "안녕, 여기 있었네" 하는 것처럼 다가와 팔락거렸다. 한 걸음 두 걸음, 나비 따라 옮겨 다니며 한참을 놀았다. 차밭 사이를 걷는데 또 그 노랑나비다. 이쯤 되니 예사 나비가 아니지 싶다. 자꾸 따라오는 걸 보니 나비 쪽에서도 영 발.. 2020. 9. 2.
초록은 생명, 생명은 사랑이죠 나만 그럴까? 각자 집에 유배되어 하는 일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밀린 독서, 밀린 빨래, 밀린 냉장고 정리, 밀린 화분 정리.... 나는 그렇다. 그 어떤 일보다 보람찬 일이 화분들 매만져준 일이다. 시들어 죽은 아이들 퇴출시키고, 훌쩍 자란 아이들 분갈이. 한 놈 한 놈 다 사연 있는 녀석들이라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그냥 화분인 것이 하나도 없다. 성질머리도 다 다르다. 까칠한 놈, 무던한 놈, 예쁜 놈, 듬직한 놈. 생일 선물로 채윤 현승에게 받은 화분이 들어오는 바람에 급 일제정리기간을 맞게 된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던 날, 처음 집, 엄마 자궁에서 나오던 그 새벽에 많이 울었겠지. 그 첫 생일 이후로 가장 많이 운 생일이 아닌가 싶다. 점심으로 미역국 전문 식당에 가서 근사한 생일상을 받.. 2020. 2. 27.
눈빛 상담이든 집단여정을 마치고나면 이미지로 남는 것이 눈빛인 경우가 많다. 눈빛보다 더 동적인 표현이 있으면 좋겠는데. 대화 도중 수시로 변하는 눈의 언어 같은 것이다.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아도 이미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대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이미 젖은 눈도 있다. 집단여정에서 내 눈의 초점을 비켜가는 눈도 본다. 부러 초점을 다른 곳에 두어 마주침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실은 나는 입으로 나오는 말보다 눈가에 고인 말을 진실에 가까운 것으로 믿는다. 복음서를 메시지 성경으로 읽으면 예수님의 눈길, 눈빛이 아주 가까이 느껴진다. 어제 마가복음 3장을 읽다 심장 쿵, 그분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인간 예수님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팔레스타인의 흔한 남자 얼굴이었.. 2020. 1. 19.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몇몇 길을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돌이켜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여기까지 온 것이다한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씁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그 어떤 쓰라린 길도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파여 있는 길이라며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지금 내 속에 나를 이루고 .. 2020. 1. 1.
기다림의 선인장 대림 2주간이 시작된 날,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 '크리스마스 선인장'이라 불리는 녀석이다. 정말 이름이 그렇다. 해마다 이 즈음, 핀다고 하여 그리 불린단다. 우리 집에선 '대림 선인장'이라 부른다. 대림절 끝이 성탄절이니 그 말이 그 말이다. 일 년 내내 시들시들 맥아리 없이 보여 꽃 볼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딱 한 송이가 슬쩍 피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웃음이 난다. 아, 진짜 이 주님.... 진짜. 오실 주님, 오시는 주님,오신 주님, 딱 한 송이면 족하다 하시는 거지요? 2년 전 이때, 크리스마스 선인장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어느 날 화분에서 붉은 꽃이 만발 했는데, 너무 놀라 신비체험인 줄 알았다. 대림절 기간이었다. 추운 거실, 노트북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발견했다. 어머, 어머.. 2019. 12. 9.
수치심의 치유_후원의 추억 인생,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음을 알지만.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살다살다 내가 후원 요청하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더 놀라운 것은 이렇듯 떳떳하고 당당하게 요청하게 될 줄이야. 몸에 흐르는 지역감정의 피, 충청도의 피 같다. 굶어 죽어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겠다는 왜곡된 기질 같은 것. 곧 죽어도 수염 쓰다듬으며 팔자걸음 걸으며 내 속의 양반 어디 가고 기쁘고 당당하게 후원 요청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이 말은 이명박이 쓰던 말이라 왠지 코미디 같지만. 확실히 해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후원자 명단을 보며 매번 새롭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후원하시는 분들이 여러 모로 내 예상을 빗나간다는 것, 더불어 적은 금액의 후원일수록 더욱 감동이 되며, 돈이 자본주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 .. 2019. 9. 30.
The impossible dream The Impossible Dream To dream the impossible dream To fight the unbeatable foe To bear with unbearable sorrow To run where the brave dare not go ​To right the unrightable wrong To love pure and chaste from afar To try when your arms are too weary To reach the unreachable star ​This is my quest, to follow that star No matter how hopeless, no matter how far To fight for the right Without question .. 2019. 8. 30.
안팎으로 초록 아침에 눈을 뜨면 창 밖 앞산의 푸르름에 인사를 한다. 그 인사는 짧다. 이내 고개를 숙여 창가의 화분에게 굿모닝! 기나긴 굿모닝 인사다. 한 놈 한 놈 건강을 살핀다. 제 몫의 푸르름을 유지하는지, 잎은 탱탱한지. 그러며 어느 놈이 목이 마른지 알게 된다. 핸드드립 동포트(꼭지 부분 가늘어 천천히 물주기가 딱이다!) 목은 마른 것 같진 않은데 어쩐지 생기를 잃은 것 같은 녀석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원인을 모르니 대응도 할 수 없다. 그저 소성케 되길 기도한다. 앞산 푸르름을 배경으로 잘 자라는 화초들 덕에 아침마다 생명의 기운을 받는다. '바쁘실 텐데 어떻게 이렇게 화분을 잘 키워요' 집에 오신 분들이 빈말인지 아닌지 칭찬을 하신다. 화분이 울고 보채는 것도 아니고, 등원 하원 시간 챙겨야 하.. 2019. 8. 4.
후지게 쓰더라도 쓸 수만 있다면 글을 써서 공적 마당에 내놓는 것은 꽤 위험한 일입니다. 쓰는 사람은 글에 담은 자기 선의만 생각하거든요. 선의와 함께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로 그 뜻을 독자들이 읽어줄 거라 기대하지만 그렇지가 않더군요. 긴 시간 피 흘리며 배웠습니다. 글이 길 때는 끝까지 읽어주는 독자도 많지 않은데, 필자의 뜻까지 헤아리길 바라는 건 과욕이지요. 제목과 저자의 인상만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나만 보기’ 설정의 글이 아닌 다음에야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악플이란 표현도 무게감으로 느껴질 만큼 쉽게 내뱉은 댓글이 가진 폭력성. 글의 맥락과 연관을 찾기 어려운 긴 댓글도 달립니다. 한 번은 기본적 맞춤법도 모르고 공적 글쓰기 하는 사람으로 단정되어 창피를 당한 적도 있습니다. 일단 글이 나가면 댓글이나 .. 2019. 5. 4.
글로 써버릴 당신 자칭타칭 일기 쓰다 된 작가이다.성덕, 성공한 덕질이라고도 한다.글쓰기의 시작은 부조리였다.아버지 돌아가시고 맨몸으로 겨울바람을 맞듯 마주한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계였다.일기 쓰다 작가가 된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일기 쓰다 치유가 되는 일이었다.썼다. 부조리를 느낄 때마다 썼다.목적 없이 썼다.쓰지 않으면 달리 고통을 해소할 방법이 없어서 썼다.달리 할 바가 없어서 선택한 그 일이 바로 고통을 치유하는 명약이 되었다. 다시 시작한 치유 글쓰기 모임이 4회기, 벌써 반이 지나간다. 매력적인 여성을 발견했다.상상 불가의 폭력 속에서 자란 이가 어쩌면 저렇게 빛나고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그 어마어마한 폭력 속에서 자기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저 여인은!한 회기 한 회기 지나며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그.. 2019.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