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한산면 성외리 한산제일교회, 목사관. 내 고향집... 번짓수... 도 알았는데 생각이 안 나네. 군산은 한산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여서 가장 먼 곳이었다.군산은 배를 타야 가는 곳이었다. 장항으로 가서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넜다. 그릇을 새로 산다고 엄마 아버지가 군산에 가야 했었고, 늘 입이 헐곤 했던 아버지가 입에 바르는 약을 사러 군산에 갔다. 그 먼 군산에 나는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 적도 있다. 초등학교 중학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배를 타고 피아노를 배우러 다녔다. 한산에서 자란 내게 군산은 가깝고도 멀고, 꽤 중요한 곳이었는데... 그저 복성루 짬뽕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중요한 조각이었는데. 

 운전하고 내려오느라 힘드셨겠다는 목사님의 인사에 괜찮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툭 나온 말이다.  '제가 자가 운전으로 내려올 수 있는 남방 한계선이 군산이에요. 적절한 운전 시간이었어요.' 2시간 30분 정도 걸리니 정말 그렇다. 첫날 집회를 앞두고 식사하면서 목사님께서 "군산이 전라도이지만 충청도 인접이라서요. 충청도 정서와 매우..."라는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알아들었다. 아! 우리 엄마 사투리는 참말로 충청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그 무엇이었지! 순간 많은 기억과 생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충청남도 아래쪽 끝의 한산, 전라북도 위쪽 끝의 군산. 군산은 한산에서 도 경계를 넘어가야 닿는 곳이었구나! 

 실은 작년 여름 교회 전교인 수련회를 거의 한산이라 할 수 있는 '서천'에서 했었다. 수련회에서 맡은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서 꽃을 사러 군산에 갔었다. 차로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정말 가까운 곳이었다. 배를 타지 않아도 되었다. 충청도와 전라도를 갈랐던 금강에 다리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군산은 그냥 복성루 짬뽕의 군산이었지 내 어릴 적 군산이 아니었다. 첫날 강단에 올라 교우들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어떤 지점에서 내 눈에 들어오는 어떤 표정들에서 익숙한 무엇을 느꼈다. 아, 여기 한산과 멀지 않은 곳이야! 그 순간 엄마와 아버지와 내 어린 시절과 한산의 교회와 목사관이 마음에서 살아나기 시작했다. 

 군산에서 사경회 강사로 며칠을 보내면서 어릴 적 한산에서의 부흥회 생각이 났다. 부흥강사는 늘 우리집에 머물곤 했는데, 끼니때마다 잔치도 그런 잔치가 없었다. 부흥회는 엄마와 집사님 권사님에게는 요리실력 부흥회였다. 끼니마다 산해진미였다. 우리 집은 바로 호텔이 되었다.  말썽꾸러기 동생은 부흥회 때마다 외갓집이나 이모집으로 유배되어 갔고. 참으로 극진했었다. 부흥강사, 목사를 향한 극진함이 그리 위험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돌아보면, 목사였던 아버지를 향한 극진함이 목사가 늦게 얻은 딸인 내게로 흘러왔고, 생애 초기에 나는 큰 사랑을 받았던 것 같다. 목사의 딸인 것이 부끄러움도 결핍감도 아니었다. 신앙 사춘기로 온갖 반항의 가슴앓이를 했지만 결국, 더욱, 오히려 더욱 교회의 딸인 나를 확인하는 자리로 돌아온 것은 어릴 적 받은 극진한 사랑 때문인지 모르겠다.

 사경회 강사로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극진함은 세심함이었다.  호수 뷰의 호텔 숙소며, 부러 하루 오전 시간을 텅 비워 잡아주신 일정은 세심한 극진함이었다.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느긋하게 호숫가 산책을 하고(주일 아침에도 6시 전에 일어나 느긋하진 않아도 여유는 있는 이른 아침 산책을 했다) 볕 좋은 창가에서 강의 숙지와 독서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은파호수공원 산책길은 다양하기도 했다. 호수 바로 옆으로 걷노라면, 어느새 오솔길, 오솔길을 걷노라면 늪지대를 지나는 듯한 길. 걸으면 무조건 행복해지는 내게 최적의 쉼이었다. 숙소 공간도, 텅 비워진 시간도 목사님의 세심한 배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딜 가든 목회자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으로 내상을 입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분들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전하게 된다. 한때 존경의 대상이었으나 어느 순간, 아니 서서히 빌런이 되어간 그 목사들은 원래 그런 존재였을까. 잘 위장하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더는 정체를 숨기지 못하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으나 어쩌다 보니 그런 존재가 된 것일까. 그냥 '고산병'이라고, 높은 산에 올라가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 병과 같다고 진단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권력이 생기고 자리가 높아지면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라고. 나는 그것을 '황금투사'라고 이름 붙이곤 하는데. 이번에도 여지없이 그 이야기를 해야 했다. 
 
목회자에 대한 극진한 대접이 고산병을 낳고, 황금투사의 드라마가 된다. 위험하다.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시절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사람, 지도자, 특히나 영적 지도자를 향한 극진함은 배우는 사람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나를 추앙해요!"라고 말하는 염미정의 말에 알콜중독자 구씨는 치유의 실마리를 발견한다. 염미정을 추앙하는 일은 염미정이 아니라 구씨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다. 진심으로 추앙하는 순간 자기혐오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앤 율라노프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더 큰 권위에 연결되어 존중하며 성장하고픈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나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로 향하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닿는 가교가 된다. 기꺼이 두려움 없이 존경하고 극진하게 대할 대상이 없어 슬픈 시절이다. 그런 대상 따위 필요 없다는 상처 입은 자의식이 더욱 슬픈 것인지 모르겠다. 
 
한산과 군산의 사랑을 생각하고,
어느 산 정상 근처에서 혼미한 정신으로 헤매고 있는 고산병 환자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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