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다. 엄마 기일보다 내 생일에 엄마 생각이 더 나는 걸 보면 엄마는 생명이다. 내 생명의 시작이 담긴 곳, 담긴 몸, 담긴 존재가 엄마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식구들이 누구도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지 않아서 섭섭했다. 점심으로 나가서 미역국을 먹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사실 나와 채윤이, 연이은 졸업식에 생일 이벤트에 신경 쓸 수도 없는 남편의 상황이라 이렇게 지나가도 좋을 생일이다.
오전에 운동 다녀 길에 선물을 받았다. 천국의 엄마가 보낸 선물 같기도 하고, 엄마를 소유하고 계신 그분이 직접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저 소리로 노래하는 새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어느 가지 사이에 숨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나, 뒷목 아프도록 고개 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새가 목청껏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엄마를, 하나님을 느꼈다.
교회에서 진행한 "달빛학교"라는 여성 영성 세미나의 마지막 날이다. 늘 준비하는 리추얼의 탁자에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을 담았다. 연구소에 있는 "여인들"이라는 상징물인데, 큰 사람, 큰 여인을 내가 강의하는 테이블에 세웠다. 여성의 영적발달을 달의 변화로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따와서 6주간 나눔을 해왔다. 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이어지는 여성의 발달이다. 초승달 시기의 끝에 아버지를 잃었고, 보름달의 시기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 떠난 지 4년이 된 지금은 그믐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딸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 더 큰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라고 초대하시는 그분의 메시지가 삶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것 같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이 민망해서 "내년엔 지워야지" 했었는데. 어쩐지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두었다.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가 소중하여 밤늦게 돌아와 진심의 감사를 드렸다. 독일에 있는 다슬샘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오면서 세상에나! 황금 나리 사진을 보내왔다. "나리"라는 별칭을 쓰는 덕에 나리꽃 사진을 보내오는 벗이 많다. 별별 나리꽃 사진을 보다보다 황금 나리 사진을 보다니! 베를린 어느 성당에서 계단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황금 나리라고 한다. 야생의 들꽃 나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강하고 빛나는 황금 나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달빛학교 세미나 하러 가는 길에 뱃속에 힘이 빡 들어왔다. 황금 같은 55세 생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