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창너머 산 위에 보이는, 호텔 수영장에 비쳐서 보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 찾기!

 
베네딕토 성인이 정착하여 살다가 묻힌 곳, 베네딕토회의 모체이며 서방 수도회의 모델이 되는 수도원인 몬테카시노 수도원이다. 글로만 보던 베네딕토 성인의 삶과 영성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처음 순례지 카사마리 수도원에서의 감흥이 가시지 않은 채로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향했다. 지도책에서 본 것을 눈앞에서 바로바로 찾아내는 JP가 산꼭대기를 가리켰다. 거기 산꼭대기에 몬테카시노 수도원이 보였다. 와아, 저기로 올라가는 거야! 저기야, 저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식상한 말은 꼭 이렇게 튀어나오곤 한다니까. 글로 보면서 한참 가까워진 베네딕토 성인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몬테카시노 수도원에는 없었다.

 

로마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은 책은 <베메딕토 수도 규칙>이었다. 비행기 독서는 집중력과 이해력이 덜 필요한 소설 정도가 적당한데 무려 ‘교부 분헌 총서’로 발간된 책을 읽은 것이다. 읽힌다는 뜻이다. 술술 읽힌다는 뜻이다. 6세기에 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분명 성인이 이루고자 하는 수도 공동체의 이상은 높은데, 실천할 것들은 구체적이고 섬세하다. 숲과 함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런 식이다.

식탐이 있거나 식사량이 많지도 않는 남편인데 나이가 들면서 전 같지 않다. 가만 두면 계속 먹는 아저씨가 되어간다. 남기기 아까우니 먹어 치우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뜻인기 싶고. 아무튼 비행기 안에서 나오는 식사, 간식을 남기지 않아도 탈탈 털어먹는 것이다. 거기 엮여 이건 남겨라, 저것만 먹어라, 잔소리하는 나도 싫고. 그런데 마침 읽고 있던 <수도 규칙>에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다. 옆구리 쿡쿡 찔리서 보여주었다. 큭큭거리며 알겠단다. 말이 필요 없는 가르침이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식을 피해 수도승이 결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과식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주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다. ‘여러분의 마음이 과식으로 무뎌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수도 규칙> 39장 '음식의 분량'

성화에서 베네딕토 성인을 찾는 방법은 손에 든 규칙서이다.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은 써서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3년의 은수생활, 수도원 창설, 기도 생활… 그 모든 것보다, 아니  모든 것을 담은 규칙서를 만들고 문서로 남겼기에 베네딕토 성인이 베네딕토 성인 된 것 아닌가. 왜 굳이 그는 수도승들을 위한 규칙서를 만들었을까?

베네딕도의 명성이 널리 퍼져나갔을 때 비꼬바꼬( Vicovaro) 수도원으로부터 수도원장으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엔 사양했지만 거듭되는 요청에 못 이겨 수락하게 되었다. 수도생활을 바로잡고자 하는 원장 베네딕토의 엄격함이 지나치다는 불만이 생기기 시작하고, 불만은 불만에 그치지 않았다. 베네딕토를 독살하려는 음모가 꾸며진 것이다. 성인전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암살을 위해 독이 든 포도주가 만들어졌고, 베네딕토 성인이 포도주에 강복하자 그 잔이 깨졌다는 것이다. <수도 규칙>을 번역 주해한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비꼬바로에서의 이 사건은 앞으로 자신의 공동체를 지도하게 될 베네딕도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수도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회심의 노력이 없는 한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후에 그의 규칙서 여러 여러 곳에서 개인적인 수덕 노력과 형제들의 상호 교정을 강조하면서 악습을 고치는 일과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말이 그렇지 얼마나 큰 충격이겠는가. 청운의 꿈을 안고 로마로 갔던 일, 거기서 느낀 환멸과 그로 인해 선택한 은수생활, 그로 인한 하나님 체험을 가르치고 나눌 공동체라 여겼을 텐데. 여러 이유로 거절했지만 결국 가야 했던 그 자리에서 이루고 싶은, 이룰 수 있다 여긴 수도 공동체였을 것이다. 배우고 따르기는커녕 뒤에서 독살 계획을 도모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았을 충격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방 수도원 영성의 아버지'가 된 베네딕토는 깨달은 것이다. " 아무리 훌륭한 수도 이상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 구성원들의 근본적인 회심의 노력이 없는 한 이상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덕에 지금 우리 손에 <수도 규칙>이 들려져 있는 것 아닌가. 그로 인해 '서방 수도원 영성'의 아버지로 우뚝 서 있는 것 아닌가. 뼈아픈 체험 속에서 숲과 함께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까지 보여주는 <수도 규칙>이 나왔구나 싶다.  

몬테카시노 수도원은 이후 역사 속에서 네 번의 큰 시련을 겪었다고 한다. 첫 번째는 577년 롱고바르도족의 침입으로, 두 번째는 883년 사라센의 침입으로, 세 번째는 1349년 대지진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2차 대전이 끝나가던 1944년 2월 18일 연합군의 리더인 미군이 당시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저항하는 독일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1250톤의 폭탄을 투하하여 수도원의 거의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예전의 모습으로 복원된 상태이다. 

 

사람의 손으로 지어놓은 수도원 건물의 스러짐을 막을 방법이 있겠는가. 세월의 흐름으로 부식되고, 전쟁으로 파괴된다. 마음에 지어진 성전만이 무엇으로도 파괴되지 않는다. 몬테카시노에서 <수도 규칙>을 쓰던 성 베네딕토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대했는데 없었기에 내 마음에 더욱 농익혀 그분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공동체에 대한 열정을, 좌절을, 물러남을, 나아가고 실패하는 여정을. 그 모든 것이 담겨 지금 내 손에 주어진 <수도 규칙> 한 권이다. 6세기, 여기 몬테카시노에서 규칙서를 만들고, 고치고, 썼을 성 베네딕토를 생각한다.  

 

* 순례 일정 중 순례기 쓰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는 수도원 호텔이라 와이파이도 안 됨) 그럼에도 결국 써서 남겨주신 6세기 성인의 열정을 이어받아 어떻게든 이어가 보기로 한다. (이 연재 재밌는 분? 응원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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