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급습당했다.

금요일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마치고

시험 끝난 채윤이를 만나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을 사는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교복 입은 채윤이와 이대 앞을 헤집고 다녔다.

그 오후, 믿어지지 않는 갑작스런 더위가 습격해왔다.

올해 첫 열대야를 보냈다.

다음 날 토요일 최고 기온은 36도라는 예보로 떠들썩하니.

적어도 작전은 세우고 맞설 수 있겠구나.

작전이란 최대한 버티다 가장 더운 시간에는 카페로 피신하기 정도였다.

설거지, 청소, 빨래로 일단 정면돌파 하여 무한대로 땀을 흘렸다.

그 다음부터는 그냥 늘어져 있기.

늘어져 있다 책 한 줄 보다, 책 한 줄 보고 늘어져 있다, 톡 놀이하는데

홍제동 수진 여사가 이 더위에 피케팅을 나가다는 소식을 접수했다.

광화문 세월호 천막 설치 1주년 단체 피케팅이란다.

우와, 이 더위에? 아스팔트가 그대로 불이겠네!

나도 불 받으러 가야겠다.

늘어진 몸을 벌떡 일으켜 세수하고 로션을 바르는데 이미 얼굴이 불이다.

버스 안에 있는 시간은 그나마 피서 타임.

경복궁역에 도착하여 서촌 큰 길가에서 4시 16분부터 한 시간여 서 있었다.

나무 그늘에 서보려 했는데 나무 그늘 밑에는 영락없이 차들이 차지하고 있어 가려지니

뙤약볕에 설 수밖에 없다.

그래, 사실 그렇게 불구덩이 같은 곳에 서서 기도 드리고 싶었다.

세월호 이후 전 국민이 집단적으로 우울증이네 뭐네 하더니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누가 대체?) 떠들어댔다.

그런 건 누가 하라 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 것이다.

모두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갔고(왔고) 나 역시 그러하다.

다만 이렇게나 빠르게 회복한 나의 일상이 늘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워 

머리만큼은 진도 팽목항, 광화문의 노란 리본 아래를 서성거리고 있다.

머리와 입으로만 함께 우는 척하는 것이 미안해서

말 그대로 자학적 고행을 하러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죄책감이 덜어지려나.

작년 4월 16일 이후 한동안 교복 입고 등교하는 채윤이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길에서 교복 차림의 중고생을 보아도 마음이 아득했었다.

이제 덤덤해졌다.

어젠 교복 입은 채윤이와 시시덕거리며 이대 앞을 누비고 다녔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아스팔트와 함께 녹아내리면

이렇듯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사는 죄가 씻어지려나.

그런 속셈도 있었던 것 같다.

일상복귀는 꿈도 못 꾸는 유가족과,

그들과 동일화 되어 일상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봉사자들을 알고 있다.

폭염이 급습하던 금요일 오전에는 그 아픔을 직접 듣고 아득해지는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폭염 속에서 몸을 달구어 한두 시간의 불 기도로 죄책감을 씻고 싶었으나....

피케팅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름이 무거워졌고 심지어 바람까지 불었다.

실패다.

한 두 시간 내 몸을 혹사하는 것으로 모든 걸 퉁쳐버리려 했던 계획은 실패다.

 

블로그에 '리멤버 0416'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일상 깊숙이 가져와 잊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해본다.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통곡하는 엄마 아빠들이

맘 놓고 슬픔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 때까지 어떻게든 함께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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