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5일, 총선 당일. 청년이 한 명이 집에 왔다. 개인사를 나누러 왔지만 날이 날이니 만큼 총선 투표 얘길 하게 되었다. 피차 스스럼 없이 투표 내용을 공개 했는데 지역구 미통당, 비례는 열린 민주당이란다. 뭐, 뭐라고? 아, 그.... 그래? 이런 선택 가능하다. 기성세대(인정ㅜㅜ)인 우리로서는 당혹스럽지만 그래서 젊은이다! 신앙, 역사관, 시민의식을 떠나 세대의 선택이 있다. 아니, 개인의 선택이다,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충격이긴 하다. 청년 손님이 가자마자 각자 스마트폰 붙들고 다리 떨며 투표율 확인. 아, 60% 넘겠구나. 6시가 가까워지며 심장이 나대기 시작한다. 여러 번 가슴에 손을 대고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가라앉혔다.
 
(중간 생략 : 5시 50분부터 8시 30분까지 난리 부르스는 생략)
 
거실 테이블 노트북 앞에 모였던(집에 TV가 없다) 식구들이 8시 넘어 해산했다. 마지막 결과 보면 되겠다, 하며. 배현진이 되다니, 대구 김부겸 안타깝다.... 나오는 대로 던지다 갑자기 심상정에 머물러 마음이 쓰렸다. 왜지? 개표방송에서 스쳐지나 듯 심상정 의원의 표정을 보았다. 자신의 지역구에서 우세하다는 방송에도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 마음. 그 순간 비례 1번 류호정의 얼굴이 잡혔다. 희색이 만연했다. 나는 됐다, 안도감. 방금 본 심상정의 표정과 오버랩 되면서 마음이 아팠다. 
 
지난 대선 때부터 심상정에게 마음을 접었다. 몹시 낯설었다. 연기하는 것 같기도 하고, 뭔가 불편했다. 내 불편함에 비례하여 인기가 상승했다. 트위터를 보면 바로 그 지점이 읽혀졌다. 누가 심상정을 지지하는지 알 수 있었고, 지지하는 태도를 보는 게 힘들었다. 트위터 앱을 지웠다. 이후로 노회찬 의원이 떠나고, 정의당에 대한 지지는 자연스럽게 접어졌다. 오늘 개표방송을 보며 오랜만에 심상정의 마음에 내 마음을 포갰다. 배현진이 당선되는 것도 열받고, 대구의 김부겸을 생각해도 마음이 쓰리다. 무엇보다 누구보다 심상정으로 인해 마음이 무겁다. 오늘 낮에 온 청년, 딸내미 채윤과 정치현안을 얘기하며 한계(또는 자부심)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세대의 경험이 있다. 논쟁이 길어질 것 같으면 87년 대선의 트라우마 같은 것들을 짧게 얘기하고 만다. 설명할 수 없는 세대의 경험이 있다. 오늘 심상정의 표정에서 그런 나의 한계, 좌절 같은 것이 읽혀 쓸쓸했다. 내 얘기다. 심상정의 마음은 모른다. 
 
정치인 심상정에게는 새로운 열정, 새로운 뜨거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 세대의 한계를 뛰어 넘어야 하는 도전일지도. 비례 1번 류호정 역시 그 뜨거움의 하나, 아니 핵심이었겠지만. 80년대를 젊은이로 살아야 했던, 민주주의에 대한 결핍으로 응어리진 세대의 한계는 어떻게 극복하며 통합하고 있는지.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이제 와 생각하면 신파스럽기도 하지만 촌스럽게 절절했다. 내 절절함과는 비할 수도 없는 절절함이 심상정의 심장에는 살아있을 텐데. 비례 1번 류호정의 감추지 못하는 웃음과는 너무 먼 것이 아닌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간극이지 싶은데. 심상정은 괜찮을까. 정직하게 마주하면 너무 외롭진 않을까, 오늘 이 밤이 괜찮을까 마음이 많이 쓰인다. 
 
심상정과는 다른 결로 마음 쓰이는 인물이 손혜원이다. 지난 총선에서 우리 지역구 후보였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 등록하여 새교우로 인사하던 모습도 인상 깊었고. 내게는 갑툭튀 정치인이지만 여러 모로 신선하고 인상 깊었다. 단 한 번의 의원 생활을 기꺼이 접으며 이번 선거에서 보인 행보, 열정 또한 그러했다. 그의 젊은 날이 어땠는지 알지 못하지만 뒤늦게 정치에 입문하고, 거침없이 자신을 던지는 모습은 배우고 싶었다. 이전의 삶이 어땠든,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가치'(어떤 가치든)를  위해 자신을 쏟아 붓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젊은 한 때 운동권으로 주먹 좀 흔들었다는 전력을 내세우며 망할 길로 가는 자기도취 환자가 얼마나 많은가. 젊은 날의 자신과의 통합, 자기 일관성을 위해 고뇌하며 고군분투 하는 이들의 힘겨운 삶을 생각한다.
 
심상정과 손혜원을 생각한다. 21대 총선 최종 결과를 기다리며. 
 
이 순간 내 바램은 하나. 세월호 6주기를 하루 앞두고 차명진(은 이미 아웃이지만), 김진태에게 천벌이 내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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