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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일기

나무는 저리 푸르른데

by larinari 2026. 7. 14.

 

여름 이맘때면 늘 요셉 수도원 피정이었는데. 수도원이 변화 중에 있어서 피정자를 받지 못한다고 한다. 당장의 이유는 공사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앞으로는 개신교인의 경우 가톨릭 신자가 동반하지 않으면 피정이 불가하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셨느냐고, 개신교인에게도 수도원 영성이 필요하다고, 안타깝다고 했더니 사정이 있다고 하신다. 애초 지도 교수님인 신부님의 안내로 다니기 시작했던 나에게, 언제든 신부님 이름을 대고 오라 하셨지만. 그 '사정'이라는 게 경험적으로 추측되는 것이 있어서 마음이 쓰리다.

 

어제 한나절 잠시 다녀왔다. 저녁기도 시작 전, 넉넉한 시간에 도착했다. 기도 자리에 앉았는데 온통 마음이 수술, 수술, 수술이어서. 내 몸이 차가운 수술대 위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늘 심정적으로 따스한, 어제는 다소 덥기까지 한 성당에 앉아 있는데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가 자꾸 몸을 감싸는 느낌...이라 수술을 위한 기도만 드려야 했다.

 

오늘 아침 8시에 교회 L 장로님이 수술하셨다.
연구소 E 샘이 오늘 오후에 수술하셨고,
내일은 연구소 길벗 C 목사님의 수술이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저 나무는 푸르기만 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와 늘 내게 그렇게나 위안을 주는 메타세콰이어 길을 걷는데 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푸르른 나무 아래 피어 있는 흰색 나리꽃도 쓸쓸해 보였다. 나가사키 소토메 마을의 '침묵의 비'에 친필로 쓰인 엔도 슈사쿠의 기도가 떠올랐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는 푸르기만 합니다." 마음이 수술실로 수술실로 향하던 오늘 하루가 끝나고 있다. 내일도 눈을 뜨면 또 수술의 하루다. 기도의 하루가 저물고 기도의 새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믿는다. 기도는 낭비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