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화분 선반은 내게는 설교단이다. 언제 어디서 와서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 같은 성령의 목소리 또는 마음이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성인의 말로 하면 "창조(자연)의 책"이다. 작년 여름 무엇인가를 심었던 긴 네모 화분이 겨우내 바깥 선반에서 노숙을 했다.  가끔 새를 유인하는 먹이 담는 먹이통이 되어주기도 했고. 그러다 날아든 직박구리로 반가운 날도 있었지.

 

1층 산딸나무를 내려다보려고 베란다 창에 매달렸다 화분 가득 수북한 괭이밥을 발견했다. 큰 감흥 없이 지나쳤는데... 며칠 후 별처럼 피어난 두 송이 괭이밥꽃이 피어있는 것 아닌가! 예쁘고 뭉클하여 잠시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이 되었다. JP을 불러 감동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한참을 들였다보고, 딴 일 하다 또 들여다 또 들여다 보고... 그러자 마음에서 올라오는 한 말씀이 있었으니...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마 6:28)

 

들꽃이 들꽃 되어 그저 피어 있는 아름다움.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그저 자기로 피어있는 자유를 생각하게 된다.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이 되어 핀 괭이밥꽃은 제 할 일을 온전히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제 할 일을 할 뿐인데, 저를 지으신 하나님의 질서에 복종할 뿐인데, 오늘 내게 큰 선물이 되고 있다. "되어야 할 내가 되는 것"이 자신을 위해, 나와 관계 맺는 사람들을 위해, 인류를 위해, 하나님을 위해 가장 훌륭하게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말을 위해 굳이 Carl Jung을 끌어오지 않겠다.

 

괭이밥꽃이 저렇듯 자기로 피어나 인류에 이바지하듯, "너도 너 아닌 다른 것이 되고자 허튼 힘을 쓰지 말라"라고, 베란다 화분 선반 위에 설교 한 편이 내려와 있었다.    

 

 

 

 

 

 

 

 

어느 새

모든 새는 어떤 새다. 산책길마다 깜빡이 없이 난입하여 내 정신을 높은 곳으로 끌고 갔다 사라지는 새가 있는데. 오늘 그 새는 며칠 전 그 새가 아니고, 며칠 전 나를 만나줬던 그 새는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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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아든 어느 새

오전 줌 강의를 마치고 혼자 유유자적 점심을 먹고, 양치질을 하는 중이었다. 어떤 소리를 들었다. "대추 맛집, 대추 맛집, 여기가 대추 맛집." 영혼으로 들었다. 눈에 보이는 아이패드를 들고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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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례

대추 말리던 바구니가 텅 빈 지 오래다. 한 바구니 가득했던 대추를 새 친구들이 죄 먹어 치웠다. 씨 하나 남기지 않았다. 빈 바구니는 어쩐지 치우고 싶지가 않아 그대로 두었다. 곡물을 좀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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