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벅에서 좋아하던 샌드위치가 있었는데. 루꼴라 치아바타... 이런 재료와 이름이었다. 어느 날 없어졌더라고. 동네에 하나로마트가 생겼는데, 로컬푸드 코너에 가니 루꼴라 한 묶음이 1500원이었다. 양이 적지도 않아. 일단 덥석 사서는 떡볶이 위에 한 번 얹어 먹고도 한 주먹이 남았다. 어느 아침, 냉동실에 있던 치아바타를 꺼내어 바질페스토 발라주고 방토 잘라 올려주고, 냉장고에굴러다니던 치즈에 루꼴라 넣어서 와플기계에 파니니 팬으로 구웠더니... 와, 스벅 루꼴라 치아바타를 무덤에서 불러낸 것이 되었다. 요즘 썩 기분이 좋지 않아 자고 일어나 뚱하고 나온 채윤이 아침으로 해주었다. 맛있다 어떻다 말하지 않지만, 표정만 봐도 안다. 얘 지금 맛있어서 행곡하다! 채윤이 어렸을 적에 내가 불러줬던 노래, 그걸 따라 부르던 우리 채윤이 특유의 발음, “아, 행곡해!"
물고기 둘 떡 다섯 개 작은 도시락
예수님이 기도하고 나눠주셨네
주고 주고 또 주어도 그대로 있네
먹는 사람 즐거워해 아 행곡해!
채윤이는 행복할 때 행곡하다고 말한다. 채윤이가 행곡하면 내가 참 행복하다. 오천 명의 사람들이 둘러 앉아 물고기와 떡으로 밥을 먹을 때, 행곡했을 것이다. 가련한 그들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더욱 행곡하셨을 것이다.
-------
나이를 먹어서 좋은 것이 있다. 좋은 것 안에 안 좋은 것, 안 좋은 것 안에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 안의 안 좋은 면, 안 좋은 사람이라고 치웠던 이에게서 발견하는 좋은 면이 있으니... 내 안에도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이 있고, 둘 다 나라고 여기니 편안해지는 것이다.
약간 부작용인데. 안전한 곳이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위험한 곳이 의외로 안전한 곳일 수 있다는 것도 좋으면서...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다소 위험한 곳이라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현시욕 넘치는 닝겐으로서 너무 표현하고 살았지... 싶어서 반성도 하는데. 그러다 보니 블로그가 자주 개점휴업 상태이다. 아예 닫아버릴까, 생각도 했었으나 방법도 잘 모르겠고...
그래도 시시각각 불끈거리는 드러내고 싶은 욕구는 늘 '요리'이다. 비공개 요리 포스팅이 쌓여간다. 이렇게 하고 싶을 때는 해보는 거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주 사적인 캄보디아, 장작불 떡볶이 (0) | 2025.03.05 |
---|---|
초록 충전 (2) | 2025.01.18 |
알맘마 (1) | 2025.01.03 |
보이지 않는-보이는 시간과 마음 (0) | 2024.12.12 |
K 오믈렛 (0) | 2024.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