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358 연결된 고통, 연결하는 고통 여행 짐을 꾸리면 책 두어 권을 꼭 들고 가는데... 돌아와 짐을 풀다 보면 두 권의 책이 세 권, 네 권이 되어 있는 일이 허다하다. 그러니까 현지 독립서점에 들러 꼭 또 사고야 마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한 책을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10% 할인을 받는데다, 총알배송으로 여행에서 돌아가는 나보다 먼저 현관에 도착해 있겠지만. 꼭 그 자리에서 정가를 주고 사는 것이다. 이런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어떤 책은 그때 그 여행의 기분을 그대로 담고 있다. 채윤이 미국 가기 전 네 식구가 한 마지막 여행은 부산이었다. 그렇게 더울 수 없었다. 날씨를 비롯해 뭔가 다 조금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숙소도, 음식도, 일정을 결정하는 네 사람의 마음도... 더위 탓이기도 했고. 뭐든 마음에 들어 기분 좋게 누릴 상황이 .. 2026. 3. 23. 엄마가 가르쳐 준 당근 라페 페시피 당근 라페를 만들어 호밀빵 위에 (JP는) 크림치즈, (나는) 그릭요구르트 바르고, 그 위에 쌓아서 먹었다. 간이 아주 딱 맞아서 맛있었는데... 이게 유투버들이 알려주는 비율 그대로 하는 것도 좋지만. 모든 요리 간의 '비법'은 역시 우리 엄마 비법이 최고다. 엄마가 전수해 주었지. 모든 맛있는 요리의 비밀 비율. 적당히! "엄마, 오징어초무침에 식초 얼만큼 넣어?""이이... 맛 봐감서 새코롬허게 적당허게 늫어..." 올리브유, 레몬즙, 화이트발사믹식초, 소금, 홀그레인머스터드... 모두 다 적당히, 맛봐가면서 넣었더니만 아주 간이 딱이다! 맛있다! (우리 엄마가 가르쳐준 당근 라페 레시피) 2026. 3. 17. 죽음이라는 선물_마태 수난곡 # 고른 음악, 초대받은 음악 취향 껏 골라 듣는 음악이 있고, 때로 어떤 음악에 선택받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매해 사순 시기마다 BGM으로 깔고 듣는 Bach의 은 골라 듣는 음악이다. '콜레기움 보칼리제 서울'의 정기 연주회에서 듣는 은 음악 자체가 나를 선택하여 끌어당겨 앉힌 것이었다. 세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났다. 바흐의 모든 곡, 특히 칸타타 감상 때마다 아쉬운 것은 언어의 한계이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갖고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바흐의 칸타타 가사가 바로 들린다면... 그 생각을 하면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언어는 독일어이다. 복음사가, 예수님, 베드로, 빌라도의 노래, 무엇보다 코랄의 가사를 자막으로 보면서 듣는 수난곡은 그대로 Lectio Divina였다. 수난의 현존체험이라 .. 2026. 3. 15. 빈 둥지 대파구이 상가에 무인 채소 가게가 생겼다. 와하, 별다무!(별 걸 다 무인판매) 전에 율동공원 산책하는 재미 중 하나가 할머님들의 노상 좌판 채소 쇼핑하는 거였는데.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 사 갖고 와서 재료에 맞춰 요리를 하는 식으로다가 먹곤 했지. 마트가 아니라, 채소 가게가 아니라, 할머니 한 분의 정겨운 판매가 좋았었다. 냉이 한 무더기, 가지 두 개, 애호박 하나... 아니, 그런데 무인 채소 판매라니! 궁금한 건 또 못 참지. 냅다 들어가서 굵기가 내 종아리만 한(ㅎㅎ) 대파 한 단, 언제 봐도 사랑스러운 봄동 한 다발을 사 왔다. 하도 굵어서 몽둥이 같은 대파로 뭘 해야 할 것만 같아서 통째로 오븐에 구워봤다. 언젠가 어디선가 본 레시피인데. 사이사이 치즈 끼우고 올리브유 췩췩 뿌려서 구웠다. 와하,.. 2026. 3. 10. 이건 망고 요거트, 건... 망고 건망고는 이렇게 먹는 게 맛있다. 자기 전에 잘게 잘라 요거트에 쑤셔 박아 놓는다. 다음 날 아침에 꺼내면 부들부들 쫄깃한 식감으로 변하여 정말 맛있는 망고 요거트가 된다. 캄보디아 선교여행 갔던 JP가 사 왔다. 일정 중 찍은 사진 한 장이 참 좋다. 건망고 요거트만큼이나 보드랍고 쫄깃하고 아름다운 한 장면이다. 2026. 3. 5. 잃어버린 날의 기도 이 영원한 지금(the eternal now) 2 잃어버리고 못 찾아 아쉬운 것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끼던 샤프펜슬이 있었습니다. 흔한 원통 모양이 아닌 삼각기둥 모양의 샤프가 손에 착 붙었습니다. 애착 연필이었습니다. 어쩐지 이 샤프를 들고 있으면 수학 문제도 잘 풀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가는 “너무 좋은 이 샤프가 망가지거나 이걸 잃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했답니다. 쓸데없는 ‘슬픈 예감’은 또 틀리는 적이 없죠. 어느 날 그 샤프를 잃어버렸습니다. 몇 날 며칠 집, 학교, 독서실을 뒤졌습니다. 샤프에 발이 달렸나? 늘 쓰던 애가 어디로 간 거야? 괜히 옆자리 친구의 필통을 의심의 눈초리로 살피던 기억도 납니다.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수학 문제 풀다 안 풀리면.. 2026. 3. 1. 외로워서 짬뽕을 끓였어 토요일, 혼자 먹는 점심으로 냉이 짬뽕을 끓여봤다. 제목을 달고 기분이 좋은데... '우울해서 빵을 샀어' 오마주이고 실제로 외롭진 않다. 줌 강의가 있는 토요일 점심은 짜장 짬뽕인데 말이다. 강의로 여유 없는 나, 설교 준비로 각박해진 남편, 늦잠 자고 뒹굴거리는 아이들과 먹는 짜장 짬뽕 탕수육의 토요일 점심 바이브가 있는데... 남편은 캄보디아 선교여행에 갔다. 지난 주일 저녁에 모처럼 식사 초대를 했었다. 교회 새로 등록한 신혼부부인데. 대화 주제가 한참 동안 '요리'였다. (그날 준비한 요리가 셀프로 만족스러워서 내가 자꾸 대화 주제를 몰아간 것도 같고...) "사모님도 결혼 전에는 요리 거의 안 하셨죠?" 하는 질문에. 아니요! 제가 먹고 싶은 걸 혼자 만들어 먹었어요! 했다. 답하고 보니, 엄.. 2026. 2. 28. 생일 present is 선물 present! 생일 아침 이른 시간.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세요? 김채윤 씨요. 네?! 꽃배달이다. 아이구야... 김채윤! 꽃을 받고 눈물이 터져버렸다. Winter Storm으로 휴교 중에 혼자 감기 앓고 있는 채윤이가 싱그러운 꽃을 보낸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 생일 축하해!" 눈 폭풍 속을 뚫고 온 꽃다발을 받고 폭풍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엄마... 제대를 앞두고 말년 휴가를 나온 현승이가 "엄마, 생일 선물로 좋은 청바지를 사주고 싶어." 했다. 난생처음 백화점에서 정가를 주고 청바지를 샀다. 그렇게 부드럽고 따뜻하던 티슈남 아들은 어디로 가고. 사랑한다느니 보고싶다느니 이런 말을 할 줄을 모른다. 군대 월급을 모아 자취 원룸 보증금을 보태더니 무심하게 백화점 정가 청바지를 사주는 무뚝뚝한 남자 청년이 되.. 2026. 2. 27. 초록 요리사 본래 초록 요리사였다.타고난 색은 초록이다.초록빛 잔디, 숲을 보면 주체할 수 없는 평화가 밀려온다. 초록 요리사로서삶과 세상을 요리하는 게 제일 편하고 익숙한데.어쩐지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초록에 연연하여다른 색은 느끼지도 누리지도 못하니 말이다.특히 어떤 색은 쳐다보지도 못했다.예를 들면, 갈색...나름의 서사는 있다.열세 살, 이제 막 틔운 새잎 같은 인생을 통째로 흔든죽음의 사건 때문이다.1981년 12월 16일, 겨울의 재난.갈색 겨울나무, 겨울의 풍경은 무작정 싫었다.초록에 집착했다.나이 육십을 바라보며 갈색도 좋아졌고, 기쁘게 갈색 요리사로 산다.그래도 내 바탕색은 초록이다.초록은 얼마나 싱그럽고 풍성한가.초록은 '성장'의 색이다. 성장하는 초록이들의 아름다움이내게 얼마나 큰 위로인가.갈색.. 2026. 2. 26. Sabbath Diary48: 새 연인 독감에 걸려 교회에 가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렸던 몇 주 전 주일 오후. 예배와 회의와 모든 일정을 마치고 들어온 남편이 늙은 얼굴로 돌아왔다. 모처럼 보는 주일 오후 낯빛이다. 예전에는 '공허와 무기력'의 얼굴이었는데, 같은 시간의 같은 감정이 이젠 '늙음'으로 읽힌다. 무기력의 얼굴일 때는, 그대로 양복을 벗고 침대로 들어가 얼굴까지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자곤 했다. 그렇게 잠으로 잊거나 떨치고 나와 일주일 중 가장 풍성한 저녁 식사를 하며 본래 얼굴빛을 되찾곤 했다. (그래서 늘 주일 저녁에 뭐든 맛있는 걸 만들거나 주문 배달하곤 했었나 보다.) 그러고 보니 그 낮잠이 없어졌다. 낮잠 없이도 본래의 JP로 빨리 되돌아왔다. 늙은 얼굴을 하고 돌아와 양복을 벗더니 바로 아저씨 등산바지를 착장하고 나.. 2026. 2. 26. 『나목』: 미치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인데, 모르는 내 마음이 있다. 내 것이지만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어떤' 내 마음이기도 하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모르고 싶은 것이다. '모르고 싶은 나'를 알아버리면 그대로 치유이며 성장이 되기도 한다. 마주하고 극복하여 그 너머로 가게 된다. 그런데 제일 어려운 것이 그것이다. "내 마음 나도 몰라"는 만고의 진리이다. 내 사랑인데, 내가 모르는 사랑이 있다. 내 마음을 모르기에 그 마음 안에 담긴 사랑도 미움도 모른다. 마음이란 묘한 것이어서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다. 내 눈이 세상 모든 것을 보지만, 내 눈만큼은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니 칼 융의 통찰은 얼마나 천재적인가. "거울"이 필요하다. 모르는 내 마음(그러나 나 말고 남들은 다 아는 나의 이면인) 무의식은 "투사"를 통해서.. 2026. 2. 22.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의 흔적 필체를 아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체를 아는 그 대상과 친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 왜 어렸을 적에 누군가 대신 내 숙제를 해줬으면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우리 선생님이 내 글씨 알아..." 아닌가?(아, 너무도 사랑스러운 어린이 마음!) 커피를 내리려는데 로스터의 필체가 눈에 들어와 커피 향보다 사람의 향이 먼저 느껴진다. "여보, 이거 봐. 못 쓴 글씨 때문에 전문적인 커피로 느껴지지 않아? 글씨는 못 쓰지만 커피를 잘 볶을 것 같은 느낌?" 했더니. "아니야, 알바생이 썼을 수도 있어. 현승이처럼 글씨 못 쓰는 알바 애가..." 이러나저러나 필체를 보니 사람이 느껴지지 않는가. 또 마침 고른 커피잔은 그립고 사랑스러운 필체가 새겨진 잔이네... 2026. 2. 18. 이전 1 2 3 4 ··· 28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