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여성의 영적 발달을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사려 깊은 수다를 길잡이 삼아 달빛학교라는 이름의 여성 영성 모임을 진행했다. 30대 비혼 청년부터 60대 권사님까지, 삶의 배경과 신앙의 컬러까지 다양한 일곱 명의 여성과 함께했다. 연구소나 상담소의 프로그램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집단이다. 교회니까, 교회라서 가능한 비균질 집단인 것 같다.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애 주기에 따른 일상영성 세미나 인생의 빛 학교중 하나다.

 

6회기라는 짧은 만남으로 대단한 무엇이 손에 잡힐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다양한 분들이 교회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일상의 언어로 여성적 삶을 나누면서 순간이라도 성령의 숨결을 체험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사려 깊은 수다를 텍스트로 내걸기는 했지만, 책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수다, 사려 깊은 수다였다. 커리큘럼도 미리 확정하지 않고 한 주 지나며 그다음 주제를 고민해서 나누는 식으로 준비했다.

 

마지막 모임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여성, 상징, 리추얼이 주제어였다. 세미나 기간 중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다녀오신 벗님 한 분은 미술사를 전공하신 전문가였다. 달빛학교에서 나누고 떠올린 이야기를 품고 여행을 떠나셨고, 빈 미술관에서 만난 피터 브뤼헐의 깊은 영성적 체험을 안고 돌아오셨다. 그림과 함께 그 체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기꺼이 나눠주신 나눔과 함께 여성, 영성, 연결을 주제로 한 리추얼로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매시간 먹을 것, 나눌 것이 풍성한 모임이었다. 여성들 모임에서 자발적인 나눔으로 흘러넘치는 생명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본설정이다. 좋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세대, 신앙의 컬러, 경험의 차이는 순간순간 긴장의 요인이 되었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으로 인해 나는 더욱 낮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끌게 되었다. 고민 끝에 영적 전통 안의 기도를 일상의 기도로 단순화하여 가르치고 배우면서 마쳤고, 결국 좋았다.

 

작고 실제적인 체험의 신비와 영성은 하찮게 여기는 풍조, 껍데기와 종교적 포장지만 남은 것 같은 제도교회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못난 울 엄마같은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 또한 진실이다. 그 마음 사이를 오가며 기도하고 공부하는 중 영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제도교회와 남성적 신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면도 있다. 교회는 영성을 담아주는 제도적 그릇이 되고, 영성은 교회의 제도적 측면이 생명력으로 풍성해지도록 보완하며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달빛학교, 이 체험적이고 여성적인 교회가 내게는 일종의 교회를 향한 희망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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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다. 엄마 기일보다 내 생일에 엄마 생각이 더 나는 걸 보면 엄마는 생명이다. 내 생명의 시작이 담긴 곳, 담긴 몸, 담긴 존재가 엄마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식구들이 누구도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지 않아서 섭섭했다. 점심으로 나가서 미역국을 먹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사실 나와 채윤이, 연이은 졸업식에 생일 이벤트에 신경 쓸 수도 없는 남편의 상황이라 이렇게 지나가도 좋을 생일이다. 

 

 

오전에 운동 다녀 길에 선물을 받았다. 천국의 엄마가 보낸 선물 같기도 하고, 엄마를 소유하고 계신 그분이 직접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저 소리로 노래하는 새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어느 가지 사이에 숨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나, 뒷목 아프도록 고개 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새가 목청껏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엄마를, 하나님을 느꼈다.

 

 

교회에서 진행한 "달빛학교"라는 여성 영성 세미나의 마지막 날이다. 늘 준비하는 리추얼의 탁자에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을 담았다. 연구소에 있는 "여인들"이라는 상징물인데, 큰 사람, 큰 여인을 내가 강의하는 테이블에 세웠다. 여성의 영적발달을 달의 변화로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따와서 6주간 나눔을 해왔다. 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이어지는 여성의 발달이다. 초승달 시기의 끝에 아버지를 잃었고, 보름달의 시기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 떠난 지 4년이 된 지금은 그믐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딸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 더  큰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라고 초대하시는 그분의 메시지가 삶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것 같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이 민망해서 "내년엔 지워야지" 했었는데. 어쩐지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두었다.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가 소중하여 밤늦게 돌아와 진심의 감사를 드렸다. 독일에 있는 다슬샘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오면서 세상에나! 황금 나리 사진을 보내왔다. "나리"라는 별칭을 쓰는 덕에 나리꽃 사진을 보내오는 벗이 많다. 별별 나리꽃 사진을 보다보다 황금 나리 사진을 보다니! 베를린 어느 성당에서 계단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황금 나리라고 한다. 야생의 들꽃 나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강하고 빛나는 황금 나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달빛학교 세미나 하러 가는 길에 뱃속에 힘이 빡 들어왔다. 황금 같은 55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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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가 즐거움의 한 잔일 때도,
즐거워 떠드는 수다의 한 잔일 때도,
우울감 한 잔일 때도,
우울과 무기력으로 말없는 한 잔일 때도 있는데.
 
한 잔을 다 마셔가는데 띠용!
스타워즈 쓰리피오의 눈이 나타났다.
커피잔 가득했던 감정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쓰리피오의 사랑스러운 인격(?)의 향기가 빈 잔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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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작업이든 말씀 묵상이든 같은 텍스트를 읽고 제각각의 감동을 받는 것이 참으로 아름답다. 그 다른 묵상과 감동을 듣는 것 자체가 '배움'이다. 여럿이 함께 하는 아름다움이다.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있었던 꿈작업에서 "남편과 함께 있다"라는 문장에 머무르며 남편과 함께 하는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함께하지만 독립하고 싶고, 외롭기에 함께하고 싶은 갈망을 보게 되었고. 남편의 인생여정과 맞물려 돌아가는 나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 말씀 묵상 본문은 마태복음 13:10-17인데. 같은 본문을 읽고 같은 메시지를 듣는 것이 신비롭다.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감동과 깨달음인 것을 느낄 수 있다. 샬롬이 깨진 두 마음에 말씀으로 주시는 그분의 위로와 소망이다. 

JP

인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들을 세우시고 보내십니다. 그런데 마귀도 이 세상에 같은 일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뒤섞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금세 수긍이 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좀 불편하기도 합니다. 역사를 생각해보면 정말 가라지 같은 인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의 샬롬을 깨뜨리고 찢으며 끊임없이 훼방했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부디 그들은 그 악행에 대한 정의로운 댓가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직 한 사람의 전인생이 끝나지 않은 현시점에 그가 밀인지 가라지인지 우리는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대체로 선한 사람인데, 후에 큰 악행을 저질렀음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지금은 대체로 나쁜 사람인데, 회개하여 개과천선하여 공익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정의를 위해 힘쓰고, 불의와 싸워야 하는 것은 언제라도 당연히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은 최후까지 좀 미뤄두는 것이 지혜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비유 해석이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만, 붙들고 싶은 구절은 이렇습니다.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43)

주님, 영원하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거든 빛나는 존재들과 더불어 제 영혼 빛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얼굴빛을 반영하고, 믿음의 조상들의 얼굴빛을 반영하여, 제 얼굴 제 영혼이 영원히 영광스러운 빛을 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어두움, 모든 죄, 모든 악행, 모든 상처, 모든 눈물,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다 말끔히 사라지고, 생명과 진리, 사랑과 신뢰의 빛 속에서 빛나고 또 빛나기를 원합니다. 그 나라 가기까지 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 살게 하소서.

 
 

SS

"엉겅퀴를 묶어서 불사르는 장면은 마지막 막에 나온다.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나라에서 엉겅퀴를 뽑아 쓰레기장에 던지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높은 하늘에 대고 불평하겠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은 성숙하게 자라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메시지 성경 40-43절)

끝이 있다, 는 말씀에 소망과 두려움이 교차합니다. 끝이 있기에 그 끝을 믿고 오늘을 소망으로 견뎌야 합니다. 끝을 향해가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과정'으로서의 오늘이기에 판단을 유보하고 오늘 분량의 샬롬을 살아야겠습니다. 그 끝의 심판은 맥락없이 뚝 떨어지는 판결이 아니라 제 인생의 과정으로서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지 성경의 표현이 마음 깊이 다가옵니다. "거룩하게 무르익은 삶들은 성숙하게 자라서, 자기 아버지의 나라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그 아름다운 끝을 향해, 그 끝을 믿고, 내적 외적인 상황이 어떠하든지 오늘 하루의 샬롬을 간절하게 지키고 살겠습니다.

주님, 함께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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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면 제일 먼저 베란다 앞에 서서 하늘을 본다.  이름을 잘 지어야 하는 것이, 하늘을 보면 "하늘"이라 불리는 연구소 연구원 선생님이 생각나곤 한다. 그리고 바로 글쓰기 모임에서 한 벗이 썼던 문장이 따라 나온다. "하늘이라고 늘 맑으라는 법이 있나." 오늘 하늘은 이 연상작용이 줄줄줄 제대로 맞아 떨어지는 그런 하늘이다. 아, 연구원 하늘이 유럽 여행을 가서 여기 없구나, 하늘이라고 맑으라는 법이 없으니... 하늘의 주인께서 오늘은 흐리기로 작정하신 날이구나. 베란다 앞 십자가는 무겁고 슬프구나. 입원 첫날을 보내셨을 어머니 생각, 안팎의 짐들의 무게가 저 십자가에 투영되었나? 어젯밤 늦은 시간까지 있었던 꿈모임에서의 문장들이 가슴 언저리에서 맴돈다. "상처에 피흘리며 기절하듯 고개를 떨군 여자"  "원래는 하늘로 솟구쳐야 하는데 건물 안이라..." "그냥 두면 안 되겠다, 나의 힘을 보여준다." 
 
이 마음 그대로 가지고 영적 독서와 말씀 묵상의 창들을 열었다. 말씀 묵상 밴드에 JP가 마태복음 12:22-32에 붙인 묵상이 마음을 울렸다.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 12:30)

이 세상의 역사가 흘러가는 동안, 가라지(원수가 뿌려 놓은 것, 악)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발본색원하여 이상사회를 만들려는 모든 시도는 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인간 존재의 이중성 때문일 것입니다. 악은 사라지고 선한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한 순간, 어느새 마귀는 그 선한 사람들의 선한 행위가 누군가에게 악한 행위가 되도록 만들어 버리곤 합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 로마 권력을 내몰고, 유대 권력을 붕괴시켜, 새로운 메시아 시대를 혁명적 방식으로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겨자 씨와 같이 지극히 작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이 동네 저 동네 뿌리시고 다니셨습니다. 그 일은 지극히 작은 운동이겠지만, 언젠가 나무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가루 서 말 누룩에 불과하지만, 언젠가 부풀어 올라 큰 빵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서서히 전진하게 됩니다. 사랑과 용서와 진리와 생명으로 변화된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면 눈물을 흘려 씨를 뿌리게 될 때, 하나님의 나라는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주님, 새들이 깃들이는 세상을 꿈꿉니다. 풍성한 나눔의 잔치가 일어나는 세상을 꿈꿉니다.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고 소망하며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말씀과 사랑의 씨앗을 심게 하소서.

 
나도 댓글로 묵상을 남겼다. 
 

" 내버려 두어라."

"주님, 뽑아 버릴까요?" "주님, 말씀만 하세요. 제가 뽑아 버릴게요!" 의협심의 옷을 입은 이 열정이 주님을 향한 마음인지, 내 유익과 의를 지키기 위한 발로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저의 태도입니다. 제가 가라지라 규정한 것들이 진정 가라지인지, 어쩌면 내가 가라지인지도 모를 텐데요.

"내버려 두어라", 추수하는 날, 그 끝날까지 내버려 두어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이 저를 향한 인내와 자비의 마음이신 것을 알겠습니다. 제가 저 아닌 존재를 향한 태도로 주님께서 저를 대하신다면 벌써 뽑혀 버려졌을 텐데... 내버려 두시는 사랑, 내버려 두고 기다리시는 사랑으로 오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그러하시듯 저도 때로 내버려 두고 인내할 수 있게 하옵소서. 비록 열매를 보지 못하더라도 오늘 뿌릴 씨앗을 뿌리며 살게 하옵소서. 가려내지고 불태워질 마지막 추수의 날이 있음을 두려움으로 소망하며 오늘 순간순간 사랑을 선택하며 살겠습니다.

 
하늘이라고 늘 맑으라는 법이 있겠는가. 오늘 내게 주어진 하늘이 흐린 저 하늘이라면 오늘은 오늘의 하늘을 살아야지. 이 악물고 버티지 않으려고 한다. 흐린 하늘이라고 해서 하늘이 아닌 것은 아니니 오늘은 기꺼이 저 하늘을 살고, 저 하늘에 안기기로 한다. 하루의 끝이 올 것이고, 반드시 끝을 주시는 주님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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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좋아서 한 일인데, 벗들의 축하를 막 받자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졸업 축하 선물로 소고기를 받아서 비 오는 월요일 점심에
오랜만에 다 모인 네 식구가 김치우동 곁들여서 맛있게 먹었다.
논문 하나 더 쓰고, 졸업 한 번 더 할까?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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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날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큰 의미를 부여한 졸업식은 아니었고, 사진이나 예쁘게 찍자! 싶었는데. 캠퍼스를 누비며 사진 찍는 즐거움마저 없겠으니... 글렀군! 가족 총출동의 졸업식이 어쩐지 시시할 것 같은 느낌으로 기분이 우중충했다. 학교 가는 길, 비 사이에 눈이 섞여 떨어졌다. 가지가지한다... 제대로 글렀군! 일찍 도착하여 방황하며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 밖에서 사진 찍어! 지금 눈이 엄청 와." 하는 소리에 튀어나가 인생 샷을 건졌다. 축복처럼 눈이 쏟아졌고, 예쁜 사진을 건졌다.
 

 
임의로 부는 바람처럼 좋은 사진은 우연의 렌즈에 걸려 얻는다. 눈 감은 이 사진이 어쩐지 너무나 마음에 드는데...  갑자기 쏟아진 눈처럼 그냥 주어진, 얻어 걸린 선물이다.
 

 
반백의 머리칼로 눈 맞으며 찍은 중년 부부의 사진이 뭐로 보나 포토제닉 감이지만. 조명도 별로 안 좋은 실내에서 찍은 이 사진은 영광스러운 아름다움으로 또 하나의 포토제닉이다. 이 멋진 청년들을 딸 아들의 이름으로 옆에 세우고 찍은 사진이라니.

 

가톨릭 신자 속 혼자 개신교인이라는 괜한 자격지심으로 스스로 왕따 된 면이 없지 않은데. 졸업, 마지막 날에 원우회에서 준비한 축하식에 참석하고 이리저리 몰려 사진도 찍고 보니 기쁘고 행복했다. 돌아보니 역시 사람을 얻은 시간이었구나! 수녀님, 수사님, 신부님. 좋은 벗들을 얻었다. 학위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시간이 남아돌았던 것도 아닌데. 굳이, 꼭 와야 했던 학교일까? 괜한 생각으로 마음의 에너지 많이 소비했는데. 마침표를 찍고 보니 굳이, 꼭, 바로 이때 있어야 할 곳이었다.  종교의 담을 넘어가 '사람'을 얻었고, 사람을 얻은 덕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음에도 다른 내가 되었다. '인맥'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궂은날을 예상치 못했듯, 졸업식 하루가 어떨지 예상치 못했다. 안팎으로(외적으로 내면적으로) 이렇게 풍성한 축하를 받게 될 줄 생각지 못했다. 실은 은밀히 다닌 학교인데 말이다. 내 교회와 가톨릭 교회, 이쪽에서는 저쪽 말을 못 하고, 저쪽에서는 이쪽 말을 못 하며 공부를 했다. 축하식이 졸업생 나눔 시간에 이런 취지의 말을 되었다. "원없이 공부했다.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에 교회도 하나이구나, 깨달았고. 하나인 교회가 또 얼마나 갈라져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지도 느꼈다. 원없이 사랑했고, 원없이 아파했다." 

 

여러 개의 꽃다발, (그 지루한) 졸업식 자체도 기쁜 축제였다. 아프고 기쁜 체험이 참으로 소중하다. 그 체험은 오롯이 나의 것이다. 석사과정 자체, 가톨릭 학교라는 조금 무모한 선택 자체가 체험을 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매한 정체성을 가지고 좋은 선생님, 좋은 공부에 몰입하여 매진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다. 
 
아래 바실 패닝턴 신부님의 말에 동의한다. 나라면 "생활" 대신 "삶"이라고 번역했겠으나, 여하튼 깊이 동의한다. 쉽지 않았던 대학원 생활, 무지 어려웠던 논문 기간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가장 자비롭고 은혜로운 초대였기에 말이다.  

 

❝저는 사람들에게 만약 제가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누군가가 제게 수도생활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려 주었더라면 빨리 진로를 바꿨을 것이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수도원 그 자체는 제가 찾는 사랑 체험을 결코 저에게 전달해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체험은 오직 생활 안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체험을 한 후로 저는 단 하루도, 한 시도, 한 순간도 하느님의 가장 자비롭고 은혜로운 초대에 응한 것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 _ 바실 패닝턴 『향심기도』, 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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