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까지 마중 나온 현승이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양손에 짐을 든 현승이를 생각해서 급한 마음으로 층 버튼을 눌렀다. 빠르게 13층 누르고, 그리고 빠르게 11층을 눌렀다. 어, 하고 다시 빠르게 11층을 눌러 취소했다. 그 사이 천천히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짧은 침묵, 그리고 현승이가 말했다.

 

 

엄마, 지금 11층 버튼... 닫힘 버튼이라고 누른 거지?

엄마는 잘못이 없어.

11층 버튼이 닫힘 버튼이었어야지, 11층 버튼인 것이 잘못이지.

엄마가 요즘 막 던지는 말들 있잖아.

그것도 엄마 잘못이 아니야.

그 말이 잘못이야.

엄마가 하고 싶은 그 뜻을 담고 있어야지, 왜 다른 뜻을 담고 있어.

엄마는 잘못이 없어.

 

 

말의 잘못

: 점심으로 라면을 끓이기로 하고 역할 분담을 시킨다. "현승이 아침 올려!" 현승이가 알아듣고 가스레인지에 라면 물을 울린다. 방금 전 채윤이가 "엄마, 나 내일 아침에 일찍 나갈 거야"라고 말해준 덕분이다. 내 말이 요즘 이렇게 나가고 있다. 아침-물 정도의 맥락은 상당히 선명한 편이다. 하는 말과 나온 말 사이의 연관성이 찾을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너무나 흔한 일이라 웃음으로 승화할 수도 없다. 멍청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11 버튼이 닫힘 버튼이 아닌 게 잘못이지.

튀어나온 단어가 엄마가 전하고자 하는 뜻을 담지 않은 게 잘못이고.

 


이것은

지극한 공감과 위로인가,

뼈 때리는 저격과 경고인가.

 

 

아무튼 아들은 잘못이 없다.    

 

 

 

  

  1. 2021.02.04 22:47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2.05 16:21 신고

      현승이랑 비슷한 마음 결을 가진 이모가 그 마음 알아주는구먼! ㅎㅎㅎ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처음 들었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두 번째라 놀랍지 않았다. 둘째 현승이의 말이다. 좋은 분위기였다. 성탄절로부터 연말연시, 그리고 이어진 특새로 네 식구가 뒹굴며 삼 시 세 끼를 하는 중이었다. 성탄으로 시작한 나날이고, 이사하고 정신 차려보니 집 앞에 이마트 트레이더스였다. 이렇게 많은데 이 가격? 여기에 넋이 나가 연일 먹방이었다. 이러다 파탄 나겠다 싶어서 장보기를 멈추고 냉장고 파먹는 중 묵은지 베이스로 꽤 괜찮은 파스타를 만들었다. 다들 정말 맛있게 먹으며 "찬양하라, 엄마를! 정신실을 찬양하라!" 기분 좋은 집회였다. 나는 자비롭고 겸손하기에 한 마디 했다. "별 거 아냐. 아무거나 넣고 한 거야. 당신도 배워. 당신도 혼자 해 먹을 수 있어. 이제부터  좀 배워야지." 

 

 

그 말 끝에 채윤이는  "엄마는 왜 아빠가 엄마보다 더 오래 살 거라고 규정해? 엄마가 혼자 남을 수도 있잖아."라고 오버를 했다. 현승이는 열 술을 더 떴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혼자 사는 아빠에 대해 채윤과 현승이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채윤인 시종일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말하는 쿨한 채윤이다. 현승이는 타고나기를 그렇게 태어나서 말과 행동 너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언젠가부터 잦아진 엄마 아빠의 충돌, 엄마도 이해되고 아빠도 이해되다 엄마한테 화가 나고 아빠로 속상한 현승이는 한 발 더 나간다. 한 발 한 발 나가다 열 발을 나가서 하는 말이 "이혼할 거야?"이다. 작년 가을, 아니다 작년 여름휴가, 아니다 언제부터지? 누나와 아빠, 엄마와 아빠 사이 크고 작은 갈등이 많았다. 페미니즘 때문이기도 하고, 성인이 된 누나가 제 목소리 내는 과정이기도 하고, 갱년기 엄마 아빠의 숨기지 못하는 유치함이기도 했다.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갈등을 드러냈다. 인신공격까진 하지 말자 다짐했고,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불편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분명한 뜻이 있었다. 일단 페미니즘이다. 영 페미니스트 채윤이 앞에서 무뎌진 내 감각이 살아났고, 딸을 더 진화한 페미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포기했던 부분에서 다시 날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제 스스로도 꽤 괜찮은 남자 사람 아빠지만 여전히 달라져야 하는 남자 사람 아빠를 마주하며 분열적으로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 아빠 앞에 거침없이 맞설 수 있는 힘을 실어주고 싶었다. 채윤이를 위해서 부러 채윤이 편에 섰다. 누구보다 진보한 남편이지만 가부장제 안에서 자란 습성을 고스란히 가진 남편에 대해 함께 분노해줬다. 해줬다, 보다는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앞에서 투닥거릴 일이 더 많아졌다.

 

 

실은 더 아픈 뜻이 있다. 남편과 함께 쓴 결혼에 관한 책 제목이 '와우결혼 :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이다. 자신감이 지나쳐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제목은 나름대로 해학을 담은 것이었다. 와서 보라는 것은 우리 부부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싸우는지'였다. 말하자면 대놓고 부부싸움, 지면에서 하는 부부싸움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낼 때만 해도 부끄러움이 없었다. 잘 살고 행복하다는 게 아니라 얼마나 싸우고 있다는 얘기라니까요! 이런 자부심이었다. 세월이 지나 중년이 되고 부부 관계로 어려운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것조차 얼마나 폭력적인 자랑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 이렇게 안 싸워요,나 우리 이렇게 잘 싸워요, 나 결국 우리 부부 잘 났어요, 하는 자랑이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우리 같은 부부가 사회와 교회에 끼치는 해악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젊은 부부의 위기 상담을 하면서 확인하는 바, 좋은 부부에 대한 환상이 갈등 해결에 장벽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 부모님은 가정에 대해 모범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교회 목사님 부부, JP&SS 부부, 션-정혜영 부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가정을 꿈꾸고 결혼했고, 기도하면 그런 가정 될 것이라는 '환상'이다. 환상은 현실이 될 수 없다.  환상이 신앙과 만나 신경증이 되는 것을 아프게 지켜보았다. 기도하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집착이다. 현실 부부 사이에서 직면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기도로 도피하고 말하서 결국 해결점에서는 비켜나고 마는 것을. 책을 쓰고 청년들 앞에서 강의에서 했던 말들을 아프게 되짚어 보게 된다. 나름 최선을 다하지만 결국 건널 수 없는 다리를 사이에 두고 이혼을 꿈꾸거나, 심정적으로 이혼의 상태로 사는 이들을 보면서 회개한다. 좋은 부부, 건강한 관계, 행복한 가정 같은 것에 대해 함부로 나불대던 입을. 내 삶은 the way가 아니라 a way라고 힘주어 말했어야 하는데.

 

 

이런 성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티격태격 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유치하고 부끄럽지만 그대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다. 두 아이 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판단능력이 생겼다는 확신도 있다. 코로나로 너무 붙어 있다 보니 제어가 안 되는 것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면도 있다. 싸움이 없는 부부가 아니라 잘 싸우고 잘 성장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줘야지 하는 또 하나의 환상을 만들고 있는지도. 그런데 여하튼 현승이의 질문, "엄마 아빠 이혼할 거야?" 이건 나름대로 심각했다. 현승인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두렵다고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승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 아니, 부모 앞의 아이들은 평생 어릴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서 조금 아프고, 조금 미안하고, 조금 막막하다. 

 

 

월요일에 남편과 강릉에 다녀왔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내가 가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길, 먹고 싶은 것에 맞춘다. 우리 사이에 그런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남편은 '나'에게 맞추기 때문이다. 정말 별 것 없는 하루였다. 강릉에 갔고, 검색한 순두부 맛집에 갔는데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해서 그냥 차선을 선택했고, 그럭저럭 괜찮았고, 커피도 좋아하지만 기분에 따라 카페를 선택했고, 많이 아쉽지만 우리가 원했던 건 그저 바다를 보며 커피 마시는 거였으니 대충 만족했고. 채윤 현승 기쁘게 해 주려고 회를 포장했고, 저녁으로 집에 와 맛있게 먹었고. 이게 전부다. 이게 일상이다.

 

 

남편이 쉬는 월요일 하루 일정으로 속초, 양양, 강릉에 다녀오는 날이 많다. 그게 그것인 일상이지만 돌아오는 길의 풍경은 늘 새롭게 아름답다.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가지만 남은 겨울 나무가 석양과 함께 빚어내는 풍경은 예술이다. 이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내 마음의 여정은 더 예술이다. 아버지 돌아가신 39년 전 그 겨울 이후, 눈 똑바로 뜨고 겨울나무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나다. 수묵화 같은 겨울 산이 아름답다고 말하던 남편에게 화내던 나다. 이젠 안다. 그 아름다움을. 상실이 빚은 풍요의 예술을 나는 안다.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DJ가 되었다. 싱어게인 가수들 한 바퀴 돌고, 그 노래들이 끌고 나오는 추억의 노래를 다시 듣고....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나는 왜 이리 좋은지 모르겠다. 그 청승맞음이 좋다. 청승 떠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인데 희한하다. 청승으로 시작해서 청승으로 끝나는 이 노래가 좋아서 리메이크하는 모든 가수들의 노래를 듣는다. 오늘은 황치열이다.

 

 

내 존재에 깊이 박힌 청승을 안다. 치명적인 상실, 존재에 뿌리 박힌 '잃어버림'에 대한 감각 또는 통증이다. 그것은 내 마음의 텅 빈 공간이다. 아버지 죽음에서 기인한다고 믿었는데 그 이전이다. 그 이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전, 이전이다. 이전의 근원은 아직 잘 모르겠다. 강릉 가던 길인지, 강릉에서 오던 길이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생각해보니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늘 무언가 그리웠어. 그리운 그 무엇을 잡으면 놓칠 것 같았고 빼앗길 것 같았고 실제로 경험적으로 그랬어. 그런데 당신 만나고부터 무언가를 그리던 텅 빈 공간이 채워졌어. 물론 그 이후로 외롭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고, 실존적 슬픔이 없어졌다는 뜻도 아닌데, 당신 만나고 무언가 치명적인 그리움이 치유됐어."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 완벽하다는 뜻도 아니고, 더 바랄 게 없다는 뜻도 아닌데 이 사람은 내 청승을 거둬갔다. 청승맞은 노래를 부끄럼 없이 부르고 들을 수 있게 해 줬다. 

 

 

현승인 늘 엄마 아빠의 대화에 귀가 커진다. 내용엔 관심이 없다. 감정적 대결이 있을까 없을까, 그로 인해 엄마 아빠가 아플까, 이것이 관건이다. 현승이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 우리가 요즘 너무 서로를 막대하나, 특히 내가...  그런 면이 없지 않다. 어쩔 수 없기도 하고, 부러 그러기도 하고. 분명한 건, 더는 나를 포장할 수 없게 된 갱년기 탓도 있다. 더욱 분명한 건... 이대로 나를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이 사람뿐인 걸. 내 인생의 청승을 거둬간 이 사람은 포장을 모르는 사람이다. 책 쓰고 방송에 나가고, 잘 나가는 아내를 포장지로 이용할 줄 모르는 답답한 사람이다. 온 몸이 포장지 투성이인 나는 "니도 좀 포장을 해라고!!!! 세련되게 포장을 해보라고!!!!!" 하며 자해를 하고 몸부림을 하다 제 풀에 포장지가 벗겨져 버리는 형국이다. 이랬든 저랬든, 와서 보라 우리의 결혼을! 이런 말은 다시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한다. 보여주는 결혼 말고, 다만 아프게 사는 결혼으로 만족해 보려고 한다.  "엄마, 아빠랑 이혼할 거야?" 아들에게 이런 말 들으며 꿋꿋하게 잘 살아보려고.   

 

 

 

 

  1. BlogIcon 겨자씨한알의꿈 2021.02.08 22:36 신고

    선생님.. 글 읽으며 눈물 찔끔.나올락말락.
    어디 읽어주고 싶은글.
    위로받고 갑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2.11 10:01 신고

      선생님의 공감에 저도 위로 받아요.
      명절 잘 보내세요 :)

  2. 2021.02.09 13:06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2.11 10:04 신고

      저도 글 올리면서 '잘 쓰지 못한 글'이라는 부끄러움이 항상 있다는 거, 모르시죠? 늘 그런데.... ^^ 가끔 이런 흔적으로 늘 읽어주시고 함께 해주심 느끼고 있어요. 곧 다시 새 그룹 시작하려고요. 바로 블로그에 알릴게요. 요일은 변경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혹시 거기서 참석하시기 좋은 시간대, 또는 요일을 비밀댓글로 좀 남겨봐 주시겠어요?

  3. 2021.03.04 16:12

    비밀댓글입니다

 

 

 

 

여보, 이거 하나 남겨줘. 나 이따 갔다 와서 먹을 거야.

 

온라인 주일 예배 설교하러 가는 목사가 남긴 말이라고 하기엔...... 참으로 사랑스럽다. 목사가 된 후, 한 교회를 책임 맡은 목사가 된 후 토요일 아침부터 주일 예배 마치고 돌아오기까지 가족들 숨도 못 쉬게 하는 사람이다.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존재 자체로 눈치를 보게 하는 것이, 그냥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이, 설교 준비는 '산소'로 하는 건가 싶다. 설교 준비는 광합성하는 식물이 밤을 보내는 메커니즘인가? 집안의 산소란 산소는 다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만 내놓는 존재인가. 설교자는. (그렇다고 설교를 잘하면 말이나 안 하지, 하는 말을 하지 않으련다.) 토요일에 아빠가 사무실에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도 긴장이다. 토요일엔 빨래도 안 돌리고(빨래 너는 건 아빠 몫이라) 안방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다. 공평하게 분배된 설거지도 당연히 열외이다. 때로 (아마 설교가 안 풀리는 날이겠지) 음악을 크게 틀거나 셋이서 재밌는 얘기 하다 낄낄거리는 소리가 안방 문을 타고 넘는 것도 곤란하다. 까다롭다, 정말.  그리고 주일 아침에는 모두 잠든 시간 혼자 일찍 일어나 정장에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간다. 나가는 모습을 본 적은 거의 없다. 1부, 1부, 3부 통틀어 드리는 온라인 예배 덕에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교회 아기들이 그렇게 선망하는, 제 아빠가 결혼식 가려고 차려입으면 "하아, 아빠 멋있다. 목사님 같아!" 한다는 비주얼로 나가면서 말했다.

 

이거 하나 남겨 놔. 갔다 와서 먹을 거야.

 

"보장 못해. 사수할 거면 냉장고에 숨겨 놔." 그 말 듣고 냉장고 안에 고이 숨겨 두고 나갔다. 그렇게 까칠하게 굴며 준비하던 설.교, 예.배.인.도, 하러 나갔다. 유투브 예배 영상 보면서 팬이 된 아가가 가져온 마카롱이다. 그런데 나는 저 말이 더 은혜가 된다. 설교자 남편보다 나이 쉰이 된 남자가 "이거 하나 남겨 줘"라고 하는 마카롱을 들여다보는 게 더 감동이다. 쉰이 된 그 남자는 평생 자기 욕구를 잘 모르고, 욕구를 모르니 표현은 더욱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 아니다, 이 사람은 자기 내면을 모를 수 없는 사람이다. 젊은 날부터 밥 먹고 하는 일이 내면 성찰이었다. 자기 안의 있는 욕구 중 맛있는 무엇을 먹고 싶다거나, 더 많이 먹고 싶다거나 하는 것은 (알아도) 그냥 무시해 온 사람이다. "아빠는 그냥 넘길 줄 알아. 아빠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불편한 것이 있어도 그냥 받아줄 줄 알아" 약간의 존경과 안타까움을 담아 아들 현승이가 말했다. 사실 나는 갈수록 남편이 그냥 넘길 줄 아는 것이 불편하다.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으면 좋겠다. 오십이나 된 남자에겐 그냥 넘기는 것이 더는 미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넘기고 흘려보낼 수 있는 의지는 젊을 때나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점점 말을 듣지 않는 생의 오후에는 불편한 것을 느끼고 때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힘이다. 절실한 영성 훈련이다. 그래서 마카롱 하나를 지키려는 그 말이 좋다. 식구들이 다 먹어 치운 후에 "마카롱 어딨어? 내 꺼는?" 하거나. 아니 그 말도 못 하고 삐쳐서 속으로 쌓아두지 않고 그냥 "남겨 둬"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중년 이후의 숙제는 늘 하던 말만 하고, 생각하던 방식대로 생각하는 것에서 단 1mm라도 빗나가는 것이다. 중년 이후 엄마 아빠의 말은 아이들이 백발백중 예측한다. 그것이 위험신호이다. 아이들은 예측하며 동시에 지겨워하고, 지겨움이란 귀를 틀어막는 전자동 귀마개니까. 별 말 아니라도 안해 본 말을 하는 것은 치매 예방에도 좋고 무엇보다 고귀한 영성훈련이 된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렇게는 안 한다 하는 것을 해보는 용기는 나이 들어가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아름다움인지. 마카롱 하나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남편의 설교를 더 귀 기울여 듣게 하는 유혹이다.  

 

 

 

 

새벽기도 없는 교회에서 목회하는 남편이 한 번씩 특별 새벽기도를 도모할 때는 나름 의미가 있어서(또는 받은 은혜가 있어서)이다. 신년 새벽기도를 한다고 했다. 전도사님과 단둘이 나가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고. 주제는 "해피 앤딩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란다. 교인 평균 연령이 나보다 딱 10년이 높은 교회이다. 새로 등록한 젊은 부부들을 제외하고 남자 교우 중 남편은 거의 제일 젊은 축이다. 이력으로나 성향으로나 청년 · 젊은 부부 목회에 최적화된 목사라 생각했는데, 인생이 알 수 없듯 목회자의 길도 알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 지금 여기를 받아들인 남편은 은퇴 이후의 삶, 그리고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삶'에 꽂혀 있었다. 남편이 말하는 해피 앤딩은 단순한 죽음이 아님을 안다.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현재이라는 뜻이다. 실존적 신앙은 실존적 죽음을 온전히 믿는 것이라는 것을 남편과 수도 없이 얘기했었다.

 

'해피 앤딩'이란 단어에 마음 머물러 신년 기도회에 끌렸다.  "J 전도사와 둘이만 나가서 할 거야." 이 말도 어쩐지 마음에 걸렸다. 수요 기도회 할 때마다 "당신 와서 찬양 인도할래?" 먹히지 않을 말을 한 번씩 던지던 기억도 나서 "내가 새벽기도 찬양인도할까?" 했다. 옆에 있던 현승이는 작년 신년 새벽기도회 때 ppt를 맡아 개근하고, 아침에 먹던 해장국의 맛, 집에 와 2차로 자는 달콤한 잠의 맛을 떠올리며 "아빠, 나도 갈래." 했다. 채윤이는 우리 교회 교인도 아니지만, 엄마가 오랜만에 하는 찬양인도니 반주자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반주자 말고 일당 쳐주는 반주 알바로 섭외했다. 

 

월, 화, 수 3일 기도회 하고 폭설과 함께 한파였다. 이사한 우리 집은 교회와 꽤 멀어졌고,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있다. 걱정하시던 운영위에서 목, 금, 토 새벽기도를 취소하고 한 주 연기하여 다시 월, 화, 수로 진행하기로. 날수로는 일주일이지만 체감은 2주의 새벽기도였다. 얼마만의 찬양인도인가. 텅 빈 교회당에서 방송용도 아니고 오프라인 용도 아닌 청중을 가늠할 수 없는 찬양을 했다. 음정 틀려, 박자 틀려, 선곡 구려. 채윤 현승에게 구박받으며 하루하루 날짜 지우듯 지나며 새벽 기도를 마쳤다. 

 

좋았다!

 

내 인생 마지막 특새의 기억이 끔찍하다. 그 특새에서 여러 번 불렀던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메마른 땅에 샘물 나게 하시기를" 이 찬양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그 2,3년의 특새, 수요기도회가 혼재되어 고통으로 남아 있다. 방언 기도를 받기 위한 특별 기도회도 있었다. 그때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평신도에서 갑자기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 강요 당하고 감시 당하는 새벽기도는 고통이었다. 공교롭게도 내 인생에서 깊은 기도에 대한 목마름이 가장 절절할 때였기도 하다. 아마 한국 교회에 대한 소망의 마지막 빛이 꺼져버린 나날이었지 싶다. 그렇게 끝인 줄 알았지만, 얼마 안 가서 깨달았다. 내 마음이 캄캄해졌다고, 내 안의 소망이 무너졌다고 그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님을. 내 마음이 가장 캄캄할 때 내 하나님은 가장 환하게 다가오신다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내게 하나님을 보여주던 지도자에게 실망했다고 해서 나의 하나님까지 망하시진 않는다는 것도. 새벽기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심지어 남편이 목회자가 된 탓이 아니라는 것도.

 

한 주, 아니 두 주간, 오전에 줌 강의 있는 날에 새벽기도 마치고 와서 눈을 붙이지도 못하고 오후 4시까지 달려야 하는 날이 있었다. 몸은 한 없이 피곤했지만 좋았다. 음정 틀려, 박자 놓쳐, 선곡 구린 찬양도 나는 좋았다. 많은 청중 염두에 두지 않았고, 매일 한 분 정도의 교우를 생각했다. 그분이 이 찬양으로 힘내시면 좋겠다, 기도할 용기 내시면 좋겠다, 이 정도의 바람밖에 없었다. 내 마음에 품은 그분이 누군지 그분 자신도 세상 누구도 알 수 없으니 좋았다. '해피 앤딩을 위한 여섯 개의 메모'로 이어지는 남편의 설교도 좋았다. 죽음을 등에 짊어지는 삶이 아니라 앞으로 끌어 안는 삶을 살겠다는 용기는 삶에의 열정이 되었다. 20여 분의 기도 시간이 좋았다. 그 어느 때보다 막막한 2021년을 그 어느 때보다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오래전 그날, 트라우마로 남은 특새며 새벽기도와 화해하고, 그 시절 사람들과 화해하고, 내 하나님과 새롭게 만나는 시간이었다. 자발적으로 하는 게 짱이다!

 

 

 

  1. 2021.02.02 10:55

    비밀댓글입니다

  2. 2021.02.03 03:55

    비밀댓글입니다

    • BlogIcon larinari 2021.02.05 16:26 신고

      뭉클하네요!
      정말 싫고 마음 깊은 곳에서 거부하는데도 그 속으로 사시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요. 그런 울림과 속삭임이 들리신다면 힘을 빼고 이끄심에 따라야 하는 때인가 싶기도 하네요. 맞아요. 들어가보면 알게 될 거예요.

      책은 올 상반기 끝에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예상은 그러한데 모든 게 일단 들.어.가.봐.야. 제대로 알게 되는 거니까요!^^

 

 

걸어서 장 보러 가는 곳이 이마트 트레이더스인 상황. 걸어가서 우유나 콜드쥬스 1+1을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사서 덜렁덜렁 들고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밀리고 밀리고 또 밀리는 주차장 쪽이 아니라 1층 출입구로 슬렁슬렁 걸어 들어가 고기 한 팩 딱 사서 나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건 뭐 올림픽공원이 자기 앞마당이라는 올림픽아파트 사는 친구 안 부러운 일이다. 한 번씩 마음먹고 가서 몰아서 장 봐야 했던 곳, 웬만하면 10만 원 단위로 카드를 긁게 되는 곳 아닌가. 고기 좋아하는, 한참 키가 크는 중(이라고 믿고 싶은)인 현승이 때문이라도 한 번씩 꼭 들러줘야 했던 곳이 코앞에 있다. 

 

등심 안심도 아니고, 척아이롤도 아니고 '탑블레이드'라는 고기가 있다. 트레이더스 매장 통틀어 가장 저렴하다. 생긴 건 부챗살이다. 꼬맹이 적 한때 잠깐 꽂혔던 그 팽이 탑블레이드가 고기로 변신하여 열아홉 현승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잘만 구우면 아주 감동적인 스테이크가 된다. 피가 뚝뚝 떨어져도 좋다!는 식으로 엄마, 레어! 레어! 알지? 노래를 부른다. 올리브유와 소금, 로즈메리나 오레가노 같은 아무 허브에 재웠다가 버터 잔뜩 녹여 막막 구워서 꺼낸다. 그 팬에 양파를 비롯한 야채를 익히고, 익히는 동안 힘줄 부위 잘라내고 고기를 썬다. 야채를 가장자리로 밀어내고 뜨겁게 달군 가운데에 다시 고기를 모셔서 내주면 좋아서 환장을 하신다.

 

 

 

다 좋았는데, 누나 없이 독식하는 것도 좋고, 운동 다녀와서 배고픈 상태도 딱이었고, 다 좋았는데 파프리카가 삐꾸다. 현승이는 음식의 식감과 향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기준은 상당히 개인적이다. 파프리카는 생으로 마요네즈를 찍어 먹기에 적절하지 굽는 것은 안 된다고. 향이 너무 강해서 고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심지어 파프리카 근처에에서 구워진 야채까지도 오염이 되었다고. 먹어보지도 않고 일단 저렇게 한쪽으로 가지런히 몰아놓았다. 다음부턴 안 그럴게. 파프리카 따위를 탑블레이드에 끼워 팔지 않을게. 

 

 

 

반쯤 먹었을 때 김치콩나물국을 내주면 캬아, 캬아, 해장국 먹는 아저씨 소리를 낸다. 엄지 두 개가 척 올라온다.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님이 왕이다  (0) 2021.02.17
봄동 전  (0) 2021.02.05
탑블레이드 스테이크  (0) 2021.01.18
사랑(이)라면, 죄책감(이)라면  (1) 2021.01.10
미미-채윤네-차돌박이 떡볶이  (0) 2020.12.10
미미-채윤네 떡볶이  (3) 2020.12.05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나님을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_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연구소 2년차를 맞던 2020년을 새해 이 기도로 시작했다. 같은 노래를 새 마음 새 부대에 담아 2021년의 다시 불러야겠다 싶었다. 노래 가사에 온전히 마음과 몸을 맞추어 살고 싶다. 개인적인 삶은 물론 연구소를 일궈가는 마음도 딱 이것이다. 연구소 SNS에 올렸던 것 그대로 가져왔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억압하고 위장했던 감정을 만난다는 명목으로 허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내적 여정과 모든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와 벗님들이 진짜 감정을 만나는 일에 정진하여 오직 슬퍼할 것에 슬퍼하고 분노할 것에 분노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며❞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의 환상에 빠지지 않겠습니다. 그 환상의 끝이 내 생각, 내 논리, 내 지성의 우월주의이며 결국 타인과 나를 분리하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지금 여기 하나님의 현존에 머무르는, 치유하는 현존을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제 존재 안에 이미 부어진 사랑을 믿으며 내주하시는 성령과 함께 하는,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겠습니다. 상담과 모든 여정 중에 만나는 벗님들 안에 이미 존재하는 치유의 힘을 믿으며 함께 걷겠습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이름을 얻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연결되는 단 한 분을 소중히 대하겠습니다. 빠른 성장, 눈에 보이는 치유의 열매에 마음 빼앗기지 않고 지금 여기 치유하는 현존으로 계시는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나음터가 되겠습니다.

 

'정신실의 내적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 입은 치유자들 1st  (0) 2021.03.06
소설, 소울  (2) 2021.02.12
아무것도 너를  (0) 2021.01.18
중년을 위한 치유 글쓰기  (1) 2021.01.04
밤에 온 러브레터  (0) 2020.12.23
아래로부터의 영성  (0) 2020.12.10

 

 

 

저녁으로 치킨을 시키기로 했는데, 연습실 갔다 늦는다는 채윤이가 마음에 걸렸다. 다음에 먹을까, 했더니 그냥 셋이 먹어, 했다. "그럼 니 꺼 남겨놓을게. 와서 데워 먹어." 그런데 기프트콘으로 시킨 치킨이 예상과 달리 양이 적었고, 모두 배고팠고, 싹 먹어 치웠다. 먹는 것이 행복인 채윤이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안절부절... 치킨 됐고, 라면 먹겠다는 말에 반색을 해서 '도착 10분 전에 알려줘. 엄마가 딱 끓여 놓을게!' 했다. 콩나물, 대파 팍팍 넣고 정성 다해서 시간 딱 맞춰 끓였다. 뭐라도 더 마음을 담고 싶어 심지어 파슬리 가루를 뿌렸다. (이건 정말 아니었는데... ㅡ.,ㅡ) 밥상을 받은 채윤이가 말했다.

 

"와아... 대박! 죄책감이야? 치킨 안 남긴 죄책감?"

 

"야아, 죄책감인지, 사랑인지 맛으로 느껴봐."

 

 

 

 

 

 

 

 

 

 

'음식, 마음의 환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동 전  (0) 2021.02.05
탑블레이드 스테이크  (0) 2021.01.18
사랑(이)라면, 죄책감(이)라면  (1) 2021.01.10
미미-채윤네-차돌박이 떡볶이  (0) 2020.12.10
미미-채윤네 떡볶이  (3) 2020.12.05
취향 맞춤 점심  (0) 2020.10.07
  1. 라면 맛있겠네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