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에 두세 번은 아침부터 출근을 한다. 출근 거리 1미터. 긴 테이블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 자리로 도보로 옮겨가 zoom 사무실에 출근카드 찍기. zoom 강의가 있는 날에 늦잠 자는 아이들 아침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찌뿌둥한 기분으로 나와서 이걸 발견하고 기분이 막 좋아졌다나 뭐라나. 그래? 그러면 또 참을 수 없지! 다음 날 또 zoom 사무실 출근 전에 샌드위치 밥상을 차려 놓았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건 참 좋은 거라... 좋아하는 걸 해주는 게 그렇게 좋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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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오전 줌강의를 마치면 배가 고플 대로 고프다. 자장면을 시켜 먹을까? 생각했는데 모처럼 네 식구가 다 있네! 뭐라도 만들어야지 생각하며 애호박과 두부를 꺼냈다. 현승이가 "된장찌개 끓이게?" 한다. "왜애? 된장찌개 먹고 싶어?" 하니 "아니, 재료가 딱 된장찌개잖아." "오~ 그러네! 그런데 된장찌개 아니야. 잔칫집 분위기 만들 예정이야...."
 
호박전과 김치전과 두부부침을 했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다. 기름칠이 필요한 영혼이다. 왁자지껄한 냄새로 영혼의 흥을 돋구고 싶었던 것 같다. 생애 가장 고군분투하며 지낸 7년을 마무리하는 JP를 격려하고 싶은데 냉장고에 준비된 재료가 없고, 나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JP 만큼이나 내 영혼도 버석버석하다. 그래서 그의 영혼 나의 영혼에 다다르길 바라며 지글지글 전을 부쳤다.
 

 

오징어채 무침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할 걸!  JP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프라이팬에는 전을 부치고 한 손으로는 오징어채를 무쳤다. 몰아서 반찬 만드는 줄 알았겠지만, 뜻이 담겨 있다. 오징어채는 늘 JP를 위한 나의 마음이다. 당신 훌륭해, 당신 멋져, 당신 유능해! 이런 뜻을 오징어채에 담았다. 
 

 

또다시 줌 강의를 앞둔 저녁에는 떡볶이를 했다. 약속이 있는 채윤이는 나가고, 주기적으로 맥도날드를 복용해야 하는 현승이는 현승이 대로 저녁을 해결하고. 떡볶이라면 언제라도 좋아하는 JP만을 위해서 만들었다. 사순기간 탄소금식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도 담아서 냉장고 털기 떡볶이. 한 줌 남은 배추와 한 조각 남은 곤약을 넣어 만든 국물 떡볶이로 JP는 다시 감동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작고 확실한 격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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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자꾸 읊조리고 다녔더니 예상치 못한 봄 같은 선물이 찾아들었다. 그럼에도 다시 봄은 아직 먼 것 같아 답답한  마음으로 저녁 산책을 나섰는데 "이래도 못 믿겠느냐!"면서 코 앞에 봄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움트는 저 생명을 "봄" 아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탄천으로 내려가자마자 예쁜 새소리가 귀를 잡아 끄는데,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더듬고 더듬어 찾아보니 한 녀석이 앉아 노래를 해댔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네 마음이 어떠하든, 지금 하는 그 생각 그대로 일지라도 사랑하신다!" 새는 늘 그렇게 운다. 한참 서서 듣다 다시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대편 경부고속도로 바로 옆길을 선택했다. 아까 그 녀석이 따라왔나? 그런데 조금 더 요란하다. 멈춰서 보니 동네 친구들 죄 불러 모아 합창을 부르고 있다. "봄이 오고 있다! 이제 봄이다!"
 

 
종일 하늘이 흐렸다. 돌아오는 길 하늘 저쪽에 요만큼의 노을이 보일락말락 한다. 그렇지, 흐려도 하늘이고, 흐린 하늘 너머에 해는 떠오르고 지는 것이지. 보이지 않아도 저기 해가 떠 있어... 조금 더 걷다 보니 "나, 여깄지!" 가드레일 틈새로 붉은 존재감!

 

연구소 카페의 읽는 기도는 토머스 머튼의 영적 여정에 이정표가 되었던 책과 인물 이야기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오늘은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리는 리지외의 테레사의 저작과 이야기이다.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이라 여겼다고 하는 소화 데레사이다. 작고 확실한 절망을 절망으로 마주하고, 작고 확실한 기쁨을 기쁨으로 마주하는 것이 "살아서 사는 것"이라고 일깨워주는 것 같다. 마음을 일으켜 나가 걷기 시작하면 금방 알아지는 진리이다.
 
오늘 아침 연구소 카페 "읽는 기도"에 붙인 댓글이다.

 

"리지외의 데레사가 걸어간 영성의 '작은 길'은,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진 영혼은 일상생활에서 신실한 행실로 그 사랑에 부응하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게 보여주었다."_토머스 머튼

토머스 머튼이 만난 또 하나의 이정표인 리지외의 데레사는 '소화 데레사'라고도 불립니다. 24세로 일찍 생을 마감한 19세기의 성인입니다. 스스로를 "작은 꽃"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작은 꽃으로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모래 한 알로 살고자 했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들, 만남들, 작은 모욕 등에 사랑으로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탁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이유의 끝에는 말 한 마디, 작은 사건 하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건 별 것 아니라고 하나 씩 외면해버리면  삶은 텅 비어버립니다. 리지외의 데레사는 그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를 사랑으로 응답하는 길. 내 일상의 작은 기쁨과 작은 모욕 하나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일.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닙니다. 너무 작고 미미해서 하나님과는 상관없고 영성의 삶과는 무관하다 여길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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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에반스의 "You Must Believe In Spring"을 들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책과 음악이 위로가 되긴 하지만, 어쩐지 일으켜 세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봄을 믿을 수 있을까? 오지 않을 것 같은 봄을 믿게 해 달라는 기도의 마음이다. 그래서 고른 음악이다.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고, 세상에나...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책을 쓰신 신부님의 메시지이다. 선물 같은 메시지를 받고 그분의 책을 다시 꺼냈다. 서문을 읽었다. 두 번 반복해서 읽고 나서 이대귀의 <내겐 봄과 같아서>를 플레이 리스트에 걸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손짓하시는데... 봄을 믿어야 한다. 나는 봄을 믿어야 한다. 당신도 봄을 믿어야 한다. "내밀리고 밀리고 휘둘려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대신에, 먼저 자유로이 광야를 품을" 결심을 늘 이 자리에서 새롭게 해야 한다.

 

봄을 믿는 사람은 희망을 가진 사람입니다.
희망은 믿고 의탁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희망과 믿음은 수원(水源)처럼, 소실점처럼
사랑에서 시작하고 사랑으로 향합니다.
봄을 믿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사랑으로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희망이
황량한 대지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사랑의 흔적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이제는 분명히 알겠습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말은
하느님이 들려주신 것이라는 것을
 
이 말을 벗들에게,
터널과도 같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이웃들에게,
무엇보다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 말을
내게 들려주시기를 청합니다.
당신의 이웃에게 들려주기를 청합니다.
우리가 서로 지치지 않고 이렇게 속삭이기를
하느님은 바라십니다.
"그래요,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혹독한 광야와도 같은 시간이 우리에게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봄을 믿는다면, 광야의 시간은 축복의 때가 될 것입니다. 스스로 '도시의 광야'를 마음에 품고자 합니다. 내밀리고 휘둘려서 마음이 황량해지는 대신에, 먼저 자유로이 광야를 품기로 결심한 사람의 내면은 깨끗해지고 풍성해집니다. 그는 이웃을 향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며, 기뻐하는 것을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겨울 풍경을 눈에 담습니다. 두려워하고 움츠러드는 마음을 내려놓고, 흰 눈이 뺨에 닿는 감각에 깜짝 놀라 기뻐하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씩씩하게 겨울의 숲을 걸어갑시다. 겨울의 시간이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배웅합니다. 벌써 자라난 초록빛 새싹을 맞이합니다. 봄의 기운을 몸에 담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봄과 함께 찾아온 사순절의 시간 속으로 자유로이 들어섭니다. 그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꼭꼭 씹듯이 살아가고 싶습니다. 생각과 마음과 삶이 변화하기를 갈망합니다. 마른나무에서 다시 잎이 나고 꽃이 돋는 자연의 기적이 나의 삶에서도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봄을 믿어야 해요> 최대환, 파람북, 들어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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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여성의 영적 발달을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사려 깊은 수다를 길잡이 삼아 달빛학교라는 이름의 여성 영성 모임을 진행했다. 30대 비혼 청년부터 60대 권사님까지, 삶의 배경과 신앙의 컬러까지 다양한 일곱 명의 여성과 함께했다. 연구소나 상담소의 프로그램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집단이다. 교회니까, 교회라서 가능한 비균질 집단인 것 같다.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애 주기에 따른 일상영성 세미나 인생의 빛 학교중 하나다.

 

6회기라는 짧은 만남으로 대단한 무엇이 손에 잡힐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다양한 분들이 교회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일상의 언어로 여성적 삶을 나누면서 순간이라도 성령의 숨결을 체험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사려 깊은 수다를 텍스트로 내걸기는 했지만, 책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수다, 사려 깊은 수다였다. 커리큘럼도 미리 확정하지 않고 한 주 지나며 그다음 주제를 고민해서 나누는 식으로 준비했다.

 

마지막 모임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여성, 상징, 리추얼이 주제어였다. 세미나 기간 중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다녀오신 벗님 한 분은 미술사를 전공하신 전문가였다. 달빛학교에서 나누고 떠올린 이야기를 품고 여행을 떠나셨고, 빈 미술관에서 만난 피터 브뤼헐의 깊은 영성적 체험을 안고 돌아오셨다. 그림과 함께 그 체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기꺼이 나눠주신 나눔과 함께 여성, 영성, 연결을 주제로 한 리추얼로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매시간 먹을 것, 나눌 것이 풍성한 모임이었다. 여성들 모임에서 자발적인 나눔으로 흘러넘치는 생명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본설정이다. 좋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세대, 신앙의 컬러, 경험의 차이는 순간순간 긴장의 요인이 되었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으로 인해 나는 더욱 낮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끌게 되었다. 고민 끝에 영적 전통 안의 기도를 일상의 기도로 단순화하여 가르치고 배우면서 마쳤고, 결국 좋았다.

 

작고 실제적인 체험의 신비와 영성은 하찮게 여기는 풍조, 껍데기와 종교적 포장지만 남은 것 같은 제도교회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못난 울 엄마같은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 또한 진실이다. 그 마음 사이를 오가며 기도하고 공부하는 중 영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제도교회와 남성적 신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면도 있다. 교회는 영성을 담아주는 제도적 그릇이 되고, 영성은 교회의 제도적 측면이 생명력으로 풍성해지도록 보완하며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달빛학교, 이 체험적이고 여성적인 교회가 내게는 일종의 교회를 향한 희망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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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다. 엄마 기일보다 내 생일에 엄마 생각이 더 나는 걸 보면 엄마는 생명이다. 내 생명의 시작이 담긴 곳, 담긴 몸, 담긴 존재가 엄마이다. 우울하고 슬프고 가라앉는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마주한 식구들이 누구도 "생일 축하해!"라고 말하지 않아서 섭섭했다. 점심으로 나가서 미역국을 먹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사실 나와 채윤이, 연이은 졸업식에 생일 이벤트에 신경 쓸 수도 없는 남편의 상황이라 이렇게 지나가도 좋을 생일이다. 

 

 

오전에 운동 다녀 길에 선물을 받았다. 천국의 엄마가 보낸 선물 같기도 하고, 엄마를 소유하고 계신 그분이 직접 보낸 것 같기도 하고. 저 소리로 노래하는 새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어느 가지 사이에 숨어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나, 뒷목 아프도록 고개 들고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새가 목청껏 불러주는 생일축하 노래에 엄마를, 하나님을 느꼈다.

 

 

교회에서 진행한 "달빛학교"라는 여성 영성 세미나의 마지막 날이다. 늘 준비하는 리추얼의 탁자에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을 담았다. 연구소에 있는 "여인들"이라는 상징물인데, 큰 사람, 큰 여인을 내가 강의하는 테이블에 세웠다. 여성의 영적발달을 달의 변화로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따와서 6주간 나눔을 해왔다. 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이어지는 여성의 발달이다. 초승달 시기의 끝에 아버지를 잃었고, 보름달의 시기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 떠난 지 4년이 된 지금은 그믐달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엄마의 딸이었던 내가 엄마가 되었고, 이제 더  큰 엄마가 되어야 하는 시기이다. 그러라고 초대하시는 그분의 메시지가 삶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것 같다.

 

카카오톡 생일 알림이 민망해서 "내년엔 지워야지" 했었는데. 어쩐지 축하를 많이 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냥 두었다. 축하 메시지 하나하나가 소중하여 밤늦게 돌아와 진심의 감사를 드렸다. 독일에 있는 다슬샘이 축하 메시지를 전해오면서 세상에나! 황금 나리 사진을 보내왔다. "나리"라는 별칭을 쓰는 덕에 나리꽃 사진을 보내오는 벗이 많다. 별별 나리꽃 사진을 보다보다 황금 나리 사진을 보다니! 베를린 어느 성당에서 계단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황금 나리라고 한다. 야생의 들꽃 나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너는 오늘 강하고 빛나는 황금 나리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달빛학교 세미나 하러 가는 길에 뱃속에 힘이 빡 들어왔다. 황금 같은 55세 생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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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커피가 즐거움의 한 잔일 때도,
즐거워 떠드는 수다의 한 잔일 때도,
우울감 한 잔일 때도,
우울과 무기력으로 말없는 한 잔일 때도 있는데.
 
한 잔을 다 마셔가는데 띠용!
스타워즈 쓰리피오의 눈이 나타났다.
커피잔 가득했던 감정이 온데간데 없어지고
쓰리피오의 사랑스러운 인격(?)의 향기가 빈 잔과 마음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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