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유니온 출판사에서 기획하신 북토크 안내와 <복음과 상황>에 실린 책 소개입니다.

 

[#노을이물드는시간 출간기념 북토크]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도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生의 오후를 건너고 계신 분들과 함께
중년 이후의 삶과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초여름 저녁, 노을빛 대화의 장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일시: 2024년 6월 13일(목) 저녁 7시-9시

* 장소: 커피식구 성수 (성동구 아차산로13길 31 1층)
- 성수역 2번 출구에서 600m
- 주차 공간이 협소하니 대중교통 이용을 부탁드립니다.

* 안내: 참가비 무료 (선착순 30명, 다과 제공)
- 저자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청서에 남겨 주세요. (선정된 분께 성서유니온 도서 선물)
- 사전등록자 중에서도 추첨을 통해 성서유니온 도서를 선물로 드립니다.
- 북토크 후 사인회가 있습니다.
- 행사 당일 현장에서도 도서 구매가 가능합니다.

*신청: https://forms.gle/RNdLwDfroFeTh62T7

 

『노을이 물드는 시간』  출간기념 북토크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도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生의 오후를 건너고 계신 분들과 함께 중년 이후의 삶과 영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초여름 저녁, 노을빛 대화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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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물드는 시간》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 복음과상황

인생의 후반을 잘 살아보려는 중년 구도자의 이야기.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를 운영하는 정신실 작가가 썼다. 오랫동안 음악심리치료와 문화영성을 공부하고, 현장에 접목해온 저자의 노하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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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자리
                                                        구상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나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고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고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묶여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두어 주 낯선 곳을 돌아다니다 오니 이 자리가 꽃자리임을 더 잘 알겠다. 집에는 엄마가 없어도 잘 해서 먹고, 제 할 일을 잘하고 지낸 남매가 있고. 소장이 없어도 강의와 나눔 준비를 잘 하여 모임을 동반하는 연구소 선생님들이 있고, 각자 자기 발로 든든히 서가는 동반자 과정 벗들이 있으니 고맙다. 기도로 기도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말 잘 듣는 학생들이다. 여기에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 있다. 에니어그램 3유형의 긴장과 거짓과 기만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새롭게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 배우는 일은 끝이 없구나,
사람의 마음을 배우는 일은 하나님 사람을 배우는 일이니 끝이 없겠구나!
여기가 꽃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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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메르틴(mamertium) 감옥터 앞

 

갑자기 남편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이리 와 봐, 해서 보면 남편은 벌써 저기 멀리 걷고 있다. 빨라진 남편의 발걸음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몸이 정직하다. 때로 몸이 가장 정직하다. 그의 영혼이 뛰고 있는 것이다. 말년의 사도바울이 갇혀 있었던 감옥터, 마메르틴(mamertium)이다. 이 앞에서 남편은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수도원 순례에 오른 후 처음으로 말이다.
 
2015년 남편이 성지 순례단을 이끈 적이 있었다. 남편과 참여자들의 후일담에 비추어 좋은 순례였던 것 같고,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성지순례 모델이기도 하다. 순례 전에 여러 번 만나 다양한 방식으로 공부하고, 여정 중에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가는 곳마다 드리는 예배와 기도에 그 이야기를 반영하고. 남편에게 터키 그리스 순례지의 각 스폿은 참여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신앙 이야기로 자리하고 있다. 모르긴 해도 작은 공동체 안에서 잘 묻고, 잘 듣고, 그것을 말씀과 기도에 반영하는 남편의 장점이 극대화되어 발휘되었을 것이다. 그 기억으로 남편은 성지순례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때 만난 사도바울로 인해 언젠가 로마에 꼭 가보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고 한다. 드디어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몸과 영혼이 기뻐 뛰놀지 않겠는가. 남편의 글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2015년도에 바울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 터키-그리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가 걸었던 길을 걷고, 그가 설교했던 아레오바고를 오르고, 그가 세례를 줬던 빌립보 강기테스 강가에 앉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은총이 쏟아져 내렸다. 순례의 참 의미를 알았다. 그때 비로소 로마가 가고 싶어졌다. 다른 이유는 없다. 바울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은 것이 제일 큰 이유다. ❞ (남편 JP의 블로그에서 가져옴)

그런데 여기는 우리 순례 일정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앞에서 사진 정도 찍고 지나치게 되어 있는 곳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빠르게 들뜬 남편을 보고 따로 입장료 내고 들어가보자 했지만, 단체 여정 중이니 그리 할 수 없었다. 안타까웠다. 합리적인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더 안타깝고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내일 '사도바울 참수터'와 거기 세워진 '세 분수 수도원(TRE FONTANE)' 일정이 있으니까. 그리고 성 바울 성당이 있으니까. 아쉬움을 기대로 달랬다. 그러나 다음 날 예상치 못한 일로 그 앞까지 가서 버스를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끝끝내 여기는 밟아보지 못하고 로마를 떠나왔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남편의 들뜬 모습을 보았는데, 여차저차 사도바울의 흔적과는 결국 교차하지 못한 순례가 되었다. 쉬 달래 지지 않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차곡차곡 쌓인 로마의 시간이었다. 감정은 에너지와 같아서 열역학의 법칙을 따른다.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 꾹꾹 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쌓인 감정들은 무질서하고 맥락 없는 것이 되어 엄한 곳에서 터지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사도바울 참수터 입구

 
로마의 첫날인 어제, 카타콤베로 가는 일정을 앞두고 인솔자 신부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신지는 알려지지 않은 채로 신부님은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카타콤베 안에서 미사가 있을 예정이었는데, 당장 그것부터 문제가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카타콤베 안에서의 미사는 로마 일정 중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2000여 년 전 숨어서 기도하던 신앙의 선조들의 호흡이 배어 있을 것만 같은 그 공간에서의 전례라니. 그 자체로 신비 아니겠는가. 예배라면 더 좋겠지만, 미사 형식이어도 얼마든지 좋을 것이기에 기대가 컸다. 기대는 아쉬움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부부를 제외한 가톨릭 신자들의 그것과 비할 수 없을 것이니 내 아쉬움 따위는 넣어 두어야 한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순례 여정 중 특히 '매일 미사'가 중요한 분들에게는 아쉬움 너머 충격이었을 것이다. 한나절 푹 쉬시고 회복되기를 바라며, 신부님을 위한 이심전심 기도의 마음으로 순례단은 모두 입을 닫았다. 그렇게 로마의 첫날밤을 보내고 이튿날이 된 것이다.

 

신부님이 몸은 조금 나아지셨지만 순례여정을 동반할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이 순례는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막막한 마음이 되어 인솔자 없이 가이드만 의지한 채로 바울 참수터로 향했다. 차에서 내리니 키 큰 나무들이 도열을 하고 맞이하였다. 순간 마음이 넓어지고 커지며 부풀어 올랐다. 나는 누구보다 먼저 뛰어 앞으로 나갔고, 그 순간 뒤에서 남편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사도바울 참수터'와 '세 분수 수도원' 순례의 전부가 되고 말 줄이야. 모두 내려 그 길을 걷는데 심각해진 가이드가 다시 버스에 타라고 했다. 숙소에 있던 신부님 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채, 타라면 타고 내리라면 내리고 기다리라면 기다리면서 로마 이튿날 오전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한나절의 순례 일정, 그것도 남편에겐 간절한 것이 이렇게 날아가는 것인가. 마음엔 폭풍이 몰아치려 하는데, "느끼면 안 돼, 느끼지 마!" 꾹꾹 누르게 되었다. 신부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과, 일정이 틀어진 것에의 실망감은 별개의 문제인데. 당장은 두 개의 감정을 함께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텅 빈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위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나긋나긋하고 매끄러운 가이드의 말이 마이크를 타고 쾅쾅 울렸다. 자신이 어떻게 조치를 잘 취했는지 자분자분 보고했다. 아울러 무척 당황스럽지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그러니 여러분도 그리하고, 신부님을 위해 기도하라며 특유의 설교조로 마무리했다. 뱃속이 부글거리기 시작했다. 

성 바오로 대성당

 
썩 내켜하지 않는 남편을 설득하여 데려온 순례이다. 사도바울의 흔적 앞에서 생기가 도는 남편을 보고 덩달아 기뻤던 것은 찰나로 지나가고 말았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며 한 마디를 할까말까 엉덩이 들썩이고 있는데 앞에 앉은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이드에게 갔다. 웬만하면 나서지 않는 남편인데, 가이드에게 가서 식사를 못해도 좋으니 오전에 가지 못했던 곳을 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다행히 받아들여졌다. 오후 순례 일정 서두르기로 했다. 그러나 (역시 별다른 설명 없이) 오전 일정 중 성바울 성당만 채택되었고, 결국 참수터와 세 분수 성당은 가지 못했다. 이쯤 되면 그분의 메시지로 알아들어야 할 듯하다. 좋은 뜻을 가지고 바라는 것이라도 연거푸 좌절된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맞다. "충분하다. 연연하지 말아라" 하시는 그분의 말씀으로 들어야겠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다. "네, 주님! 알겠습니다. 여기까지로 만족하겠습니다." 가슴이 뛰었다는 그것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고 나를 설득한다. 

 

저녁식사 시간, 옆에 앉은 젊은 순례자 하나가 "저, 신부님 일로 멘붕이에요."라고 했다. "저도요!" 그리고는 꾹꾹 눌러 담았던 몇 마디를 꺼내 놓았다. 충분치는 않았지만 꺼내 놓은 몇 마디의 여백으로 종일 부글거렸던 마음과 꽉 조였던 가슴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멘붕이라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쉽고, 불편한 감정들을 느끼지 말자, 느끼자 말자, 하며 억압하니 어떤 울분이 되었다. 가톨릭 신자들은 '순명'이라는 말과 덕에 익숙한 듯하다. "이 또한 주님께서 허락하셨다"는 표현을 순례 중에 많이 들었다. 순명의 미덕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 미덕의 빛 앞에서 마땅히 느껴야 할 감정조차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순례단을 이끄는 영적 지도자(베네딕도 수도원이라면 '아빠스' 아닌가)가 갑자기 증발한 상황에서 그분의 상태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무엇하나 명확하게 알려지는 것이 없어도, 예정된 일정이 없어지고, 심지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미사를 드릴 수 없게 되었는데도 모두 순순하다. 

성 바오로 대성당


신부님의 건강 상태가 베일에 싸이고, 대번에 남편과 나는 혹시 우리 존재가 불편하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다. 가만 보니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니다. 가이드도 같은 생각을 했단다. 흔히 부부간의 갈등과 불화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아이들은 그것을 제 탓으로 가져간다. 학대 가정의 아이들이 학대의 원인을 자기에게로 돌리는 것과 비슷하다. 맞을 이유가 있었다거나, 부모님이 나 잘 되라고 때렸다는 식으로 학대 가해자의 죄를 피해자가 뒤집어쓰게 된다. 힘의 차이가 있을 때, 약자가 자기를 설득하는 방식이다.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선을 가장하여 죄를 숨길 때, 아이들은 부모의 죄를 자기 잘못으로 가져가서 수치심의 존재가 된다. 엄마 아빠의 문제야,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명확한 표현과 설명이 필요하다.  
 
저녁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남편과 나는 말다툼을 했다. 늘 그렇듯 시작은 사소한 한두 마디였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갈수록 창대해져서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쌓이고 쌓인 울분이 터져버린 것이다. 서로를 향한 울분인가, 아니다. 참수터를 보지 못한 아쉬움인가, 아니다. 잘못 선택한 순례라는 자괴감인가, 그것도 아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 소식이 전해져 온다. 병원에 계신 어머니 상태가 갈수록 악화일로다. 어머니 거취의 중요한 결정을 남편이 해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남편은 막내인데 말이다. 여기도 저기도 책임질 사람이 없다. 명확하게 길을 제시할 어른이 없다. 결국 부부 다툼으로 끝난 하루는 아빠스 없이 헤쳐나가야 할 수도원 순례, 아니 일상 순례에의 울분인지 모르겠다. 우리에겐 아빠스가 필요하다.

프랑크슈테텐 수도원 지하 경당 벽에 그려진 성 베네딕도


<베네딕도 수도규칙>의 중요한 특징은 '탁월한 분별력'과 '명쾌한 문체'라고 한다. 과연 읽어보면 그렇다. 그렇다. 탁월한 분별력으로 분별해주는, 그리고 그것을 명쾌하게 제시해 줄 아빠스가 필요하다. 영적 어른이 필요하다. 누가 나의 아빠스가 되어줄 것인가.  "주님, 저의 아빠스는 누구니이까?" 맥락 없는 질문이 떠올랐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에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했던 어떤 율법사의 말에 빗대어졌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들려주신 예수님께서 되물으셨다. "네 생각에는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리고 내 질문에도 되물으시는 것 같다. "네 생각에는 누가 아빠스가 되어야 할 것 같으냐, 가서 네가 그와 같이 되어라." 아빠스를 찾지 말고 네가 아빠스가 되어라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울분을 거두고 네 발로 서서, 어른이 되어 너의 순례 여정을 가라고 하신다. 분별력과 명쾌한 말을 '어느 아빠스'에게 구하지 말고 네 안에서 찾아라고 말이다.  

 

이탈리아 여정을 떠올리며 점심으로 바질페스토 파스타를 만들었다. 근래 보기 드문 '폭망 요리'였다. 제대로 삶아지지 않은 파스타에 간도 맞지 않고, 총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실패였다. 무거운 몸으로 요리하느라 진을 뺐는데, 맛없는 걸 먹으면서 진이 더 빠졌다. "와하!" "오오!' 첫 입에 나오는 이 감탄사, 맛있게 먹는 즐거움이 요리하는 노고를 한 번에 씻어내는 법인데. 셋이 머리를 박고 맛없는 걸 꾸역꾸역 먹자니 피로와 졸음이 막 밀려왔다. 숟가락 놓고 바로 잠에 들어버렸다.
 
먼 여행에서 돌아오면 김치찌개 끓여 놓고 기다려주는 우리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늘 하지만. 엄마가 한 요리 먹어본 때는 10년도 더 전의 일이고, 심지어 집에는 김치 한 톨이 없다. 독일 출국 전날 자다 일어나서 묵은지 포함 김치 3종을 주문했다. 점심의 실패를 극복하자는 의미로 저녁에 김치찜을 했다. 와, 실패할 수 없는 요리가 김치찜인데 이걸 실패했다. 착한 현승이가 김치 때문이라고 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맛있게 만들어진 요리는 기쁨이고 활력인데.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꾸역꾸역 먹었더니 하릴없이 배만 부르고. 해가 넘어가고 곧 어두워질 텐데 다짜고짜 집을 나섰다. 걸어야겠다. 탄천의 들꽃 친구들에게 아직 귀국 인사를 못했지. 탄천은 온통 금계국 세상이 되었다. 작은 봄의 들꽃들이 사라지고 뜨거운 여름을 견뎌줄 금계국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옆은 모내기를 끝낸 논이다. 걷다 보니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산뜻해진다.  

 
아카시아 향이 가고 밤꽃 향기가 왔다. 이렇듯 성실하게 계절이 제 일을 하고 있다. 두어 주 사이 달라진 탄천 풍경을 느끼자니 무거웠던 몸이 발걸음과 함께 더욱 가벼워진다. 

"JESUS LOVES YOU"
저 간판도 성실하다.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요즘 대세 금계국 개망초와 함께 여전하게 서 있다. 헤롱헤롱 메롱메롱 시차 적응을 응원한다며 나 하나를 두고 피켓팅 중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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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왔다. 공항버스가 익숙한 우리 동네로 들어설 때, 둘이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복잡한 모든 것을 담아 내가 말했다. "긴 꿈을 꾼 것 같다." 상투적이지만 이보다 좋은 표현이 없다. 일상의 풍경에 몸이 담기고 보니 질곡의 12박 13일은 꿈이었나 싶다. 꿈인가 싶지만 꿈이 아니다. 휴대폰 카메라에 수백 장의 사진이 남아 있고, 몸이 감각하고 체험한 것들이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어 있다. 다만 사유와 성찰이 그 체험의 속도를 따르지 못할 뿐이다. 그 속도의 차이 또는 간극으로 인한 고통으로 글이 나오질 않았다. 시차로 인해 일찍 깨어난 새벽마다 글을 쓰곤 했다. 남편과 내가 각자의 노트북을 마주하고 앉아 쓰는 기도를 드린 것이다. 로마 이후로 나는 더 나가지 못했다. 고마운 것은 남편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순례일기 쓰기를 완주했다는 것이다. 힘도 들이지 않았다. 그냥 투닥투닥 쓰더니 '일일일포(하루에 하나의 포스팅)'가 되었다. 나는 변비이지만 아침마다 황금색 변을 보는 건강한 아이처럼 글을 낳는 남편 덕에 숨을 쉴 수 있었다. 글은 숨이고 쉼이다. 이제 집에 돌아와 내 자리에 앉았으니 피할 수 없는 내 차례이다. 
 
수도원 순례, 안식월을 보내는 남편과 함께 하는 수도원 순례, 내 생애 가장 큰 '지름'이었다. 한 권의 책을 목표로 하고 글을 시작했다. 수도원 영성이 일상 영성과 다르지 않음을 나는 벌써 느끼고 있었고 그 느낌이 이끄는 더 깊은 갈망으로 오른(또는 지른) 순례였다. "일하고 기도하라"는 모토가 구체적 규범으로 구현된 <베네딕도 수도 규칙>을 "오늘 여기"의 눈으로 읽어내는 순례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순례 시작부터 기대와 달랐지만 이끄신 그분의 뜻이라 믿으며 이탈리아 순례를 마치고 로마을 경유하다 글이 멈추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네 식구 모여 앉아 남편의 생일축하 촛불을 켜고 끄며 시끌벅적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이제 혼자의 시간이다. 수도원 성물방에서 산 검정색 초에 불을 붙였다. 촛불멍, 검은 초를 가만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 읽고 쓰고 기도하는 내 자리에 앉으니 좋다. 살아야 할 내 자리, 계속 써야 할 내 자리이다. 쓰지 않으면 발굴할 수 없는 보석이 일상에 가득하다. 그렇다, 가득하다. 하물며 낯선 나라의 낯선 수도원을 돌며 보낸 짧았던 순례 일상은 오죽하랴. 쓰고 싶고 써야 할 이야기가 부지기수이다. 검은 초를 밝히고 기도한다.
 
주님, 살 자리와 쓸 자리가 분리되지 않게 해주세요. 쓰는 일은 단지 쓰고 마는 일이 아니라 써서 새롭게 간직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거기 계시죠? 저 여기 있습니다. 제 일상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순례 여정 무수한 이야기들을 오늘 여기 제 책상에서 글로 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 몸이 끝낸 순례를 몇 걸음 뒤에서 허둥지둥 따라가는 생각의 길이지만, 포기하지는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살 자리에서 살고 쓸 자리에서 쓰겠습니다. 살 자리와 쓸 자리는 언제나 같은 자리, 꽃자리입니다. 지금 여기를 살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일하고 기도하는(ora et labora) 삶입니다. 물심양면의 도움을 구합니다, 주님.   



❝너는 있는 그대로 사랑받는 자다.❞(마 3:17)

꿈을 보는 눈을 닦는 강의와 함께
매주 한 분의 꿈을 나누며 나를 알아가고,
사랑의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며,
이웃을 향한 연결로 나아가는
꿈과 영성 생활 강의와 나눔 안내입니다.

기존 꿈 여정 벗들에게 우선권을 드리고 있어서 꿈 나눔으로 진행되는 화요 오후반과 저녁반은 마감입니다. 수요일 오전 진행되는 [강의와 꿈나눔 기본반]에 몇 자리가 남아있습니다.

꿈 작업 원하시는 분은 대기 문자 남겨 주세요. 빈 자리가 생기거나 다음 회기 열릴 때 미리 연락드리겠습니다.

[강의와 꿈 나눔이 있는 기본 과정_12주]

✓ 일시 : 6월 12일(수) ~ 8월 28일(수)
    오전 10:00~오후 1:00
✓ 인원 : 6명
✓ 수강료 : 28만원
✓ 장소 : 온라인 Zoom
✓ 신청 링크 : https://bit.ly/376udH2

꿈과 영성생활 12주 과정

‘꿈과 영성생활’ [강의와 꿈 나눔이 함께 있는 기본 과정] 12주 과정 신청양식입니다.

docs.google.com

✓ 문의 : 010-6209-0635

[꿈 나눔 모임_12주]

✓ 일시
1. 화요 오후반 6월 11일(화) ~ 8월 27일(화) : 마감
오후 2:00~오후 4:30
2. 화요 저녁반 6월 11일(화) ~ 8월 27일(화 : 마감
저녁 8:00~저녁 10:30

✓ 인원 : 6명
✓ 수강료 : 20만원
✓ 장소 : 온라인 Zoom
✓ 문의 및 신청 : 010-6209-0635

* 12주 기본과정 수강하신 분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 신청은 문자 메시지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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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피정집이나 수도원은 밥이 참 좋습니다. 소박하며 동시에 풍성한 식탁이고 그것을 누리는 행복감이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도하러 간 건지 밥 먹으러 간 건지 헛갈리는 정도. 침묵의 생활이기에 이 좋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 참으로 미묘하게 좋은 곳입니다. 그저 천천히 맛과 식감을 느끼며 먹는 수 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밥은 먹는 자체가 기도입니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소리만 나는데도 영혼이 기뻐 아우성 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런 맛있는 시간입니다.
 
여기 수도원 순례에 와서는 정작 그런 식사는 없습니다. 예상과 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이조차 주어지는 대로 누리자니 벌써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순례기는 안 나올 것 같고 수도원 음식 사진 염장질로 대신합니다. 한국 시간 밤 10시 쯤, 야식 땡기는 시간에 올리려고 비장하게 품고 있었는데 시차 때문에 도저히 그걸 못 맞춰서 아쉬울 뿐....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 식사, 빵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의 아침 식사, 창을 바라보는 좋은 자리 앉았음.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식사, 자세히 보면 이러함.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식사, Tea들

 

압테이 슈바이클베르크 수도원(Abtei Schweiklberg) 아침식사, 디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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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크슈텐 수도원(Kloster Plankstertten) 점심식사, 느끼한 중에 블랙 콜라 마시고 좋아하는 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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