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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잡지 계간 <평신도> 가톨릭 매체에 기고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싶은데. 지도교수님 추천으로 학생(졸업생) 신분으로 쓴 짧은 글입니다."주는 평화 막힌 담을 모두 허셨네, 주는 평화 우리의 평화" 청년 때 이 찬양 참 좋아했는데... 담 앞에 서 본 사람은 압니다. 성벽이든, 허술한 벽돌 몇 개의 담이든, 담을 허무는 일이 얼마나 피눈물 나는 일인지 말이죠. 이 매체의 독자들에게는 한 특이한 개신교인의 고백이겠으나, 하찮은 이 글이 무엇이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개신교인은 죄다 통성기도만 한다든지 하는 선입견을 깨는 작은 구멍이라도요. 선입견의 담이 얼마나 견고한지 모르겠어요. 광화문에 모여 전광훈 목사에게 열광하며 통성기도 하는 분들이 개신교를 대표하지 않는 것처럼, 가톨릭 신자들도 마리아교를 섬기는 이단이 .. 2025. 1. 5.
알맘마 계란볶음밥, 이라고 했으면 큰 호응을 못 얻었을 것이다. 계란볶음밥이라고 했으면 그리 따뜻한 음식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알맘마 해줄까? 하는 순간 "알맘마" 해주겠다는 사람이나, 먹을 사람이나, 저녁을 안 먹겠다고 했던 사람까지 음식 너머의 따스함에 감싸였다. 장을 보러 나갈 수도 없고, 무엇이 꽉 들어찬 냉장고에 실속이 없는 저녁이었다. 실속이란, 오직 계란... 계란을 풀어 익히고 밥을 비벼 양념하는 이 단순한 밥을 아버님께서 "알맘마"라 부르며 해주셨었다. 채윤이 현승이에게 해주셨지만, 알맘마라는 말에 반색하는 것을 보면 JP의 기억에도 "있는" 음식이다. 파를 듬뿍 넣어 파기름을 내고 알맘마를 만드는 동안 우리 아버님의 착한 따스함이 생각났다. 당신의 아들, 손주들, 그리고 둘째 딸이라 하시던 .. 2025. 1. 3.
감사한 연결, 기다리는 연결 후원금이 절실한데, 절실한 일을 위해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해 건너뛰고 드리는 편지입니다. 진심의 감사, 절실한 필요와 요청을 편지 한 장에 담기가 어려워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며 시간을 보낸 탓이고. 안팎의 어려움으로 더 힘을 내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감사와 함께 죄송한 마음도 담아서 보내드립니다. 연구소의 소중한 벗인 “숙희의 실 이야기” 숙희 님께서 치유의 기도를 담아 그야말로 한 땀 한 땀 엮으신 마음을 작은 선물로 동봉했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에 매월 일정 정도의 금액을 기도처럼 흘려 보내고 싶으시다면 연결되어 주세요. 상담이나 내적 여정, 기도를 배우는 일, 영적인 길의 동반자로 연결될 필요가 있는 분들의 손을 잡는 일에 값있게 쓰겠습니다.  ♥ 후원 신청_https://forms.. 2025. 1. 3.
나의 길 새로운 길 이사 오기 전, 동네를 걸으면서 하루하루 아쉽고 슬펐다. 나만 아는 비밀 같은 길과 장소가 있었는데, 거기 핀 달맞이꽃과 꽃마리와의 비밀 이야기가 있었는데. 두고 떠나와야 하는 것이 아쉬워 한 번 한 번의 산책이 소중했다. 물론 새로운 길을 걷게 될 것이지만, "현재 지금 여기"의 길이 늘 가장 소중하니까. 이사한 새 집에는 새로운 풍경이 보이는 창이 있고, 걸어야 할 새길이 있다. 경안천, 겨울의 메마른 경안천 길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지! 매끈하게 조성되지 않은 넓은 천에 겨울 새들이 머무르고 그 위로 해가 진다. 해 질 녘 경안천 따라는 걷는 기쁨을 놓치지 않으리!      이삿짐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지만, 참을 수 없어서 나가 걸었다. 이런 선물이 숨겨져 있었다고? 와, 주님 감사합니다! .. 2025. 1. 2.
민주주의의 딸 2024년 12월 14일 오후 4시, 간절한 마음 보태려고 먼 길을 갔다. 탄핵 표결이 진행되는 역사적 장소에 가장 가까이 있었는데, 인터넷 불통으로 정작 감감무소식의 시간이 되었다. 소원을 말해 봐, 다시 만난 세상… 노래 맞춰 구호를 외치며 기다렸다. 침묵, 그리고 이백 네 표! 기쁨의 함성! 이 순간을 예견하고 카메라를 높이 들고 있던 아빠가 찍은 영상에 불쑥 올라와 담긴 2000년 생 20대 채윤이의 주먹이다. 2002년 경선과 대선 승리, 2003년 탄핵 반대 시위, 2014년 이후 세월호 집회, 2016년 촛불… 등 엄마 아빠 따라다니며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아이이다. 저 주먹, 볼수록 감동이다. 말로만 듣던 계엄이 내 현실로 일어났고, 이 와중에 아들은 군대에 가 있다. 불의, 이 명백.. 2024. 12. 29.
선물 성탄절을 앞두고 내 무의식을 아는 유튜브 알고리즘 귀신이 영상을 하나 띄웠다. 성탄 파티에서 선물 뽑기 하는 것이었는데, 이거다! 올해 성탄절엔 이거야! 교회의 아기들에게 성탄절에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릉드릉하고 있었다. 젊은 부부 모임에서는 해마다 마니또를 하고, 알뜰 바자회로 파티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일 수가 없다. 헤아려보니 이들 중에 여럿은 결혼도 하지 않았던 때, "결혼 학교"라는 이름으로 만났었다. 그 사이 결혼들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고. 매 주일 교회 가는 기쁨은 이 아이들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탄절 앞두고 이사도 있고, 써야 할 글에 치어 있는 상황이라 무의식에서만 드릉거리고 있었는데, 이 영상을 보는 순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4. 12. 27.
나의 열네 번 째 창 이사했다. 또 이사를 했다. 제목에 '결혼 후 열네 번째 집'이라고 썼다가 사진을 고르며 바꿨다. 집을 고르는 기준, 내게 이 집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창'이다. 창으로 보이는 바깥세상이다. 생각해 보니, 내 마음에 남은 열세 집은 모두 창이다. 창이 있으나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집. 바람이 불면 덜컹덜컹 유리가 깨져 날아갈 것 같았던 집, 가장 춥고 서러운 집이었는데 말도 안 되게 좁은 주방 한켠의 창과 거기서 보이는 나무 한 그루로 위로받았던 집.  "이제 이사의 달인이 되셨겠네요." 또 이사했다고 말하면 이런 말을 듣지만. 그렇지 않다. 이사는 달인이 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사와 관련된 모든 겪어내야 할 것들은 웬만해서는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다. 집을 구하는 일, 집을 구하.. 2024. 12. 23.
보이지 않는-보이는 시간과 마음 금요기도회나 화요일 책모임을 마치고 들어오는 남편의 손에 곶감이 들려 있는 때가 있다. 많이도 아니고 네 개 정도. 집 처마에 곶감을 말리고 있는 집사님께서 아마도 익을 때마다 몇 개씩 챙겨 가져오시는 것이다. 앙증맞고 정겹다. 하나하나 익어가는 곶감을 하나하나 챙기는 손길, 아니 그전에 하나하나 일일이 따고 깎고 매다는 손길이 느껴진다. 제 속도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곶감이 되어가는 그 고유한 시간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간과 손길을 느껴지니 마음이 보인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희한하게도 보이는 것이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 차거운 마음은 스쳐 지나면서도 느껴진다. 하물며 곶감이라는 物이 눈앞에 있으니 보이지 않는 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게다가 곶감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니 몇 배로 크.. 2024. 12. 12.
K 오믈렛 나는 분식을 좋아하는 거 같아.나도 그래. 우리는 분식을 참 좋아해. 주일 저녁, 남편 혼자 있는 집에 채윤이와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빠 저녁 어떡하지? 하다, 우리가 뭘 주문해 줄까? 하다 배민으로 떡볶이를 시키고 돌아오니 너무나 행복한 얼굴로 먹고 있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 있는 날에는 김밥으로 식사를 하는데. 남은 김밥을 챙겨 올 때가 있다. 냉장고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에 계란물에 적셔 부쳐서 먹으면 좋은 한 끼가 된다. 미니 계란에 푹 담가 프라이팬에 부쳐서 내주었더니 "오, 좋아 좋아! 코리안 오믈렛인가?" 하고 작명을 해주었다. 일주일에 한 번 아파트에 곱창볶음 트럭이 온다. 곱창볶음은 냄새가 조금 나고, 순대볶음은 먹을만하다. 나는 또 순대와 순대볶음을 좀 좋아해야 말이지. 순대볶음 사 오.. 2024. 12. 11.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 지난 몇 달 이사야서를 묵상하며 "철저하게 절망하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이사야의 예언은 "너희는 망했다! 이미 망했고, 계속 망할 것이다. 오늘 하루 마음의 안정을 위해 이집트를 의지하며 희망을 말하지 말아라. 너희는 망했다." 온전한 절망에 구원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래서 저 그림을 (언젠가 남편이 설교 제목으로 붙인 이름)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라 부르며 자주 떠올리곤 한다. 무력한 아기의 몸으로 평화를 가져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시기. 대림시기를 계엄 선포와 함께 맞았다. 이 무슨 믿기지 않는 아이러니란 말인가. 무력한 아기의 시간에 실탄 장착한 무력의 국민을 향한 난입이라니... 어제 하루는, 아니 이 며칠, 아니 몇 달 몇 년… “절망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란 이 말을 머금고 산다.. 2024. 12. 8.
오늘처럼 우리 함께 있음이 우리 채윤이가 스물네 살 청년이라니, 매일 마주하면서도 믿어지지 않는다. 이 청년의 힘과 성장하는 에너지, 푸르른 생기와 함께 살면서도 말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채윤이 태명이 "푸름이"였다. 지난 토요일에 함께 영화 를 보고 밥을 먹으면서 이 영화와, 전신인 뮤지컬, 또 그 전신인 까지 세계관과 음악 이야기를 끝없이 쏟아내는 채윤일 보고 내가 탄성을 질렀다. 오늘 아침에는 영화에서 들었던, 음악을 자기 빛깔로 연주하고 녹음해서 바로 들여주었다. "주님, 과연 이 아이를 제가 낳았단 말입니까!" 과장이 아니다. 내가 낳았지만, 이 아이 존재의 크기와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다. 한 마디로 너무나 마음에 드는 청년이다. 동생 군대 보내고 외동 체험 중인 덕에 한 달을 생일 축하로 지냈다. 유학을 .. 2024. 12. 2.
요리 바꿔 먹은 창의성 채윤이는 사랑니 발치 후 제 손으로 죽을 사들고 들어오기로 했다. 저녁은 패스하겠다며 빈손으로 들어오더니 "아, 약! 약 먹으려면 뭘 먹어야 하는데..." 한다. 돌발상황이 나를 일으켜 세운다. 누룽지만 끓여주는 건 그렇고... 누룽지에 계란을 풀어볼까? 이상한가? 생각하다... 채윤이 '최애 죽'이 생각났다. 그러니까 샤브샤브나 전골을 먹고 남은 국물에 끓이는 죽을 우리 채윤이가 엄청나게 좋아하지! 그것 뭐 맛만 비슷하면 되는 거지. 꼭 전골을 먹어야 하나?! 쯔유와 새우분말, 표고버섯 분말 같을 것을 때려 넣고 육수를 만들어서 누룽지 부숴서 끓였다. 그리고 계란을 풀었다. 성공적이다! 싱크로율 100%에 가깝다! 아깝다! 마취가 덜 풀려서 맛을 못 느끼는 김채윤이라니... 내 기분만 좋았다. 게다가 .. 2024.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