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온 걸 환영한다니! 내가 로마에 왔구나! 순례 일정 중 분명 로마가 끼어 있는데 얼마나 안중에 없었는지,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하여 "Welcom to Rome"이란 전광판 글씨를 보고 "아, 나 로마에 온 거지... 로마행 비행기였어..." 싶었다. 이탈리아 독일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이다. '수도원'과 '베네딕토'에만 온통 집중하고 있어서 로마 일정은 보고도 본 게 아니었다. 
 
남편의 안식월과 결혼 25주년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는 긴 여행을 잡기 딱 좋은 시기였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온전히 3개월 '홀로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어떤 여행이든 굳이 같이 갈 필요가 있겠는가 싶(은 쿨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 25년 만에)었다. 실은 그 와중에 내겐  '수도원 순례 여행' 씨앗이 떨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 수도원에서 주관하는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였으니.
 
남편의 마음을 움직여 '수도원 순례 여행'에 함께 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렉시오 디비나'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수도원 전통에 따른 렉시오 디비나'이다. 단순히 영성사가 아니라 말씀 묵상의 역사를 따라 올라가도 결국 이 수도원 전통과 닿아 있다는 것. 아마도 그것이 남편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렇게 결혼 25주년 기념 여행은 '베네딕토 수도원 순례 여행'으로 정해졌고, 나는 지금 로마에 와 있다.
 
누르시아의 베네딕토는 "서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라 불린다. 물론 베네딕토 수도회의 창설자이다. 무엇보다 오늘 날 많은 수도회들이 따르고 있는 <베네딕토의 규칙서>를 지어 문서로 남긴 것이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 규칙서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6세기에 쓰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동체로 사는 삶과 관계에 대해 주는 지침이 놀랍도록 섬세하다. 긴 여행에는 여러 권의 책을 심혈을 기울여 선택해서 가져오곤 하는데, 이번엔 거의 <베네딕토 규칙서> 한 권, 원 픽이다.
 
3년의 은수생활로 성 베네딕토는 오히려 유명해졌는데(은수, 숨어서 혼자 지내는 데 유명해지다니 말이다.) 은수생활 이전의 로마 유학 생활이 있었다는 것이 내게는 인상적이다. 학업을 위해 로마로 갔던 베네딕토 성인은 타락한 정치와 교회, 환락과 퇴폐로 물든 로마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그곳을 떠나 수비아코(Subiaco) 계곡의 동굴에서 은수생활을 하고, 거기서 하나님 체험을 하게 된다.
 
베네딕토의 여정에 몰입한 탓일까. 로마에 끌리지 않았다. 어서 몬테카시노(Montecassino) 수도원으로 날아가 그 회랑과 정원을 걸으며, 성당에 오래 앉아 기도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로마가 환영한단다. 은수처의 기도 이전에 학업의 꿈을 품고 갔던 로마가 있었고, 화려하고 풍요롭고 타락한 로마를 살았기에 환멸을 느끼기도 하였고, 떠나기도 하여 <베네딕도 수도규칙>을 오늘 내 손에 남겨주신 베네딕토 성인이 되었다.
 
Welcome to Rome!
로마가 환영한단다. 나도 로마를 환영하기로 한다. 7시 30분 로마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내려 어두워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어느 호텔에서 순례 여행 첫밤을 맞는다. 하루가 공중에 붕 떠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르겠는 몸으로 로마의 밤을 맞았다. 물론 잠은 오지 않고. 덕분에 1일 차 순례기를 썼고, 두어 시간이라도 잘 수 있으면 좋겠는데.   

 

 

"당신도 이렇게 멀리 어디를 갈 때 그런 생각 들어?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아니, 전혀! 가는 곳을 생각하느라 그럴 겨를 없는데." 의외였다. 남편이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에 오는 길, 급성 게실염으로 응급실로 가서 바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입원실 침대 밑에 놓인 구두를 보고 "어느 날은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와 다시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지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며 성찰한 내용을 설교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까지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느낌은 있을 줄 알았다. 전혀!란다. 순간 이 며칠, 아니 어디 떠날 때마다 무거워지는 내 마음이 새롭게 알아차려졌다.
 
어제 채윤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당신도 이렇게 멀리 어디를 갈 때 그런 생각들어?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생각..." "아니, 전혀! 가는 곳을 생각하느라 그럴 겨를 없는데." 의외였다. 남편이 금요기도회를 인도하고 집에 오는 길, 급성 게실염으로 응급실로 가서 바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입원실 침대 밑에 놓인 구두를 보고 "어느 날은 신발을 신고 집에서 나와 다시 현관으로 걸어 들어가지지 못하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며 성찰한 내용을 설교에서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까지는 아니어도, 엇비슷한 느낌은 있을 줄 알았다. 전혀!란다. 이 며칠, 아니 어디 떠날 때마다 무거워지는 내 마음이 새롭게 보인다. 내가 그러면 남도 다 그런 줄 아는 게 인간이구나.
 
좋은 여행을 앞두고 설레는 적이 거의 없다. 꿈에 그리던 수도원 성지 순례이고, 그저 짐만 싸면 되는, 난생처음 해보는 패키지여행이다.. 가서 해야 할 강의도 없고, 마지막까지 붙들고 끙끙거릴 원고도 없었다. 마침 집단여정 네 그룹도 모두 종강을 하고 여행 전 한 주는 헐렁한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떠날 날이 다가오면 마음에 먹구름 한 장이 드리워 일상이 묵직해진다. 오래도록 내 몸에 딱 붙어 있던 느낌이라 새롭지도 않다. 그런데 내 것이었구나. 나만의 것이었구나. 여행 출발은 고사하고 달력의 빨간 날만 봐도 설렌다는 연구소 은경샘의 말이 동화 속 대사처럼 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채윤이와 작은 다툼이 있었다. 다툼이랄 것도 없다. 내가 괜히 아이 마음을 상하게 했다. 아빠 생일 선물로 아이들이 바지를 하나 사주기로 했는데, 미리 봐둔 바지를 사러 아빠와 딸이 나갔다. 채윤이가 거기 어울리는 남방을 골라 사주고는 둘이 기분 좋게 들어왔다. 내 눈엔 사이즈가 커 보이는데 오버사이즈로 입는 거란다. 내가 볼 때는 아빠 스타일이 아니라는 둥, 불필요한 말을 해댔다. 아이 표정이 안 좋아지는 걸 보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채윤이 엄마는 늘 이런 식이지!) “엄마 눈이 문제야. 미안해.” 뒤늦은 사과와 수습을 했고, 잠들기 전 채윤이도 “엄마 내가 아까 과했어.”라고도 했지만,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까지, 아니 지금까지 마음이 썩 개운하지 않았다.
 
공항에서 모든 수속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러 앉았는데,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면 채윤이와의 마지막 시간은 이 감정일 텐데, 하는 생각에 미쳐 남편에게 물은 것이다. 지나친 상상이며 비합리적 걱정인 것을 알기에 질문이 나왔겠지.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흐릿하지만 또렷하다고나 할까. 흐릿한데 마음에서 지워진 적은 없는 느낌이다. 서울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밥을 드시고 나갔던 그 겨울의 밤 같은 새벽. 밖이 아직 캄캄했었다. 나갔던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 모자를 달라고 했다. 현관으로 다시 들어선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버지의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 멀리 떠나는 아버지나 엄마는,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란 상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버릇이 있(었구나를 이제 다시 알겠)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처럼 흐릿하지만 지워진 적은 없는 상상이다.
 
남편이 말했던 '내 구두를 신고 집에 돌아가지 못할 날이 있겠구나!' 하고 깨달은 것은 어른의 기억이며 의식적 성찰이고, 멀리 갔다 집에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는 존재의 흠처럼 남은 정서적 기억이다. 거기로부터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야말로 무의식적으로 흘러나온다.. 무의식적 신념은 힘이 세다. 이름을 붙이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좋은 여행을 앞두고 좋아하고 즐거워하지 못하게 하는 힘이다. 준비할 것이 많네, 가기 전에 처리할 일이 수두룩 하네, 징징거리며 투덜대며 두려움의 버튼만 눌러대는 것이다.
 
공항이다. 먹구름에 이름을 붙이고 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익숙한 슬픔이 다시 밀려온다. 이것 그대로 가지고 떠난다. 이탈리아나 독일 수도원 어느 곳에 두고 집으로 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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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 그린 새와 새, 올 봄 나의 내게 어린 시절 여행과 함께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 군산 이미지의 카드이다.

 
스승의 날을 기억하고 챙기는 간절한 감사의 마음을 안다. 선물이든 메시지든 말 한 마디든, 표현하지 못한 마음 가득 안고 지내는 시간이든… 일 년이 금방 다시 돌아와 “올해는 무슨 선물을 하지?” 하는 고민조차도 스승님에 대한 곡진한 감사이다. 챙기는 마음은 편하고 행복한데, 챙김 받는 일은 조금 무겁다. 예수님께서 “선생이 되지 말라”고 하셨으니 더욱 그렇다.

그것은 안다.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선망하는 그 마음은 이미 자기 것이라는 걸. 그분들 안에 있는 것을 비추어 드리는 것이라면 기꺼이 감당할 만한 일이다. 다만 그것이 투사라 하여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고, 가벼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받는 만큼의 무거움을 잊지 않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감사한 선생님들을 떠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받으며 존 헨리 뉴먼의 기도를 떠올리고 간절하게 드린다.
 
“진리의 빛을 구하는 기도”

 
사랑하는 주님,
제가 가는 곳마다 당신 향기를 퍼뜨리도록 도와주소서.
제 영혼에 당신 영과 생명이 흘러넘치게 하소서.
저의 삶 전부가 오직 당신의 찬란한 빛이 되도록 저의 온 존재에 속속들이 스며드소서.
저를 통해 빛을 비추시고 저를 만나는 이들은 누구나 제 영혼 안에서 당신 현존을 느끼도록 제 안에 머무소서.
오, 주님, 그들이 눈을 들어 볼 때 더 이상 제가 아니라 오로지 당신만을 보게 하소서.
저와 함께 머무시면 저는 당신처럼 환해지리다.
주님, 그 빛은 오로지 당신한테서 나오며
제 빛은 조금도 없나이다.
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빛을 주시는 분은 당신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둘러싼 이들에게 빛을 비추심으로써
가장 큰 사랑을 주시는 것처럼 당신을 찬미하게 하소서.
설교하지 않고 당신을 전하게 하소서.
말이 아니라 모범으로,
전염시키는 힘으로,
제가 하는 일에 공감하는 영향력으로,
당신을 향한 제 사랑의 명백한 충만함으로
당신을 보여주게 하소서. 아멘.

카내이션이 두 송이라 잘못 넣었나 싶었는데, 하나는 소장님, 또 하나는 온라인 예배 드리며 감사했던 목사님 것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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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하여 잠시 성북천을 걸었다. 길 오른쪽에는 심긴 꽃들이, 왼쪽에는 자라난 꽃들이 피어있다. 산책길을 화려하게 하며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개종된 품종의 작은 장미이지만 나는 왼쪽이다. 오늘은 이 친구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할 수 있었다. 콩다닥냉이. 어쩌면 이렇게 이름도 귀여운 것이냐. 길에서 꽃마리를 찾을 수 있다면 모든 들꽃과 눈을 맞출 수 있다. 꽃마리는 들꽃 중에 아주 작은 들꽃이기 때문이다.

내게 꽃마리를 발견하는 눈을 뜨게 해 준 사람은 '꽃마리'이다. 꽃마리라는 별칭을 쓰는 나음터 벗 순연 샘이다. 어느 날 홀연히 내적 여정에 나타나 꾸미지 않고 자기를 보여주더니, 글쓰기 여정을 두 번 반복해서 듣더니, 꿈여정까지 깊이 들어왔다. 평생 "그러니까 너도 써라,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를 주문처럼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 말을 듣고 어떤 사람은 쓴다. 어떤 사람만 쓴다. 꽃마리는 쓰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멈추지 않고 손에 모터를 단 듯 써 내려가는 글은 길이 되었다. 꿈을 꾸고, 꿈을 적고, 꿈을 나누고, 다시 글을 쓰고... 기도하고, 향심기도 하고... 기도로 깨달은 바를 실행하고... 그렇게 글이 낸 길을 따라가다 아버지를 만나 화해하고, 화해한 상태로 천국에 보내드린 꽃마리의 시간이 내겐 잊을 수 없는 카이로스이다. 
 

옛날 집 개조한 카페 작은 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와 함께 나온 게 쿠키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딸기였다! 이런 조합이라니! 커피와 딸기, 뭔가 순연샘스러운 느낌 같기도 하고.

 

이번 텀 꿈여정 끝나면 데이트 신청을 하려 했다는 말에 반가웠다. 글이 낸 길을 따라 '걷는' 사람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옳고 그른 행동은 없다. 직장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행동일 수도, 그만두는 행동일 수도 있다. 꽃마리가 여차저차 교회를 옮겼다는데, 가만 들어보니 내가 아는 교회이다. "커피, 에니어그램, 향심기도, 이 모든 것을 일상 안에서!" 내가 교회를 한다면 이런 게 어우러질 텐데, 바로 그런 교회였다. 물론 나는 교회를 할 수도 없고, 이런 교회를 꿈꾸지도 않는다. 다만, 있다면 반갑고, 이런 교회 하나 쯤은 있어야지 생각한다. 남편 안식월 찬스를 쓰는 중이니, 어느 교회나 갈 수 있다. 주일에 꽃마리와 만나 데이트를 하고 데이트의 끝은 예배로 하기로 정했다. 
 
교회 옮긴 이야기를 들려주며 "나리(순연 샘이 꽃마리일 때 나는 나리이다.) 를 통해 여성적 리더십을 경험한 이후에 설교나 교회의 어떤 것들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라고 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말이다. <신앙 사춘기> 출간이 남긴 책무감 비슷한 트라우마 같은 것이다. 단지 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를 혐오하고, 하나님께 대들자는 선동이 아니었는데. 글이 그렇게 소비되는 면이 있었다. 사춘기는 필요하다, 사춘기를 통과하며 어른이 된다, 신앙 여정에서 열정이 식을 때도 있고 삐뚤어지는 마음이 될 때도 있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때 삐딱함은 믿음 없음도 아니고... 무엇보다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려던 것이었다. 교회를 비판하고 목회자를 혐오하며 평생 신앙 사춘기로 살기로 작정한 이들에게 괜한 무기를 공급한 것은 아닌지 싶을 때가 있다. 
 
꽃마리와 함께 예배 드리며 "여기는 꽃마리를 위한 교회구나!" 싶었다. 안심이 되었다. 단지 교회가 꽃마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 같아서가 아니다. 꽃마리의 마음에 이미 어떤 교회가 잘 세워지고 있음을 보았다. 그 교회가 추구하는 영성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고 알아듣는 사람이 꽃마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만 알까? 꽃마리 자신이 알아야 하는데... 자신이 걸어온 길, 여태껏 해왔던 선택들이 선하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아름답다는 것을 믿어줘야 하는데... 또 한 번의 자기 다운 삶을 위해 떠나고 안착할 8월의 꽃마리를 응원하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예배 중 여러 번 떼제 찬양을 불렀다. 떼제 찬양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부른 찬송가 221장에 받은 은혜가 크다. 구절구절이 마음에 박혀 눈물이 났다.
 

주 믿는 형제들 사랑의 사귐은
천국의 교제 같으니 참 좋은 친교라

하나님 보좌 앞 다 기도 드리니
우리의 믿음 소망이 주 안에 하나라

피차에 슬픔과 수고를 나누고
늘 동고동락 하면서 참 사랑 나누네

또 이별할 때에 맘 비록 슬퍼도
주 안에 교제하면서 또다시 만나리

 

꽃마리와 함께 보낸 주일 한 나절의 식사와 커피, 예배가 천국의 교제 같은 참 좋은 친교였다. 믿음과 소망, 교회와 공동체가 일치하는 '하나'인 시간이었다. 체험의 교회였다. 반짝 빛나는 체험의 교회가 우리 사이에 세워졌었다. 마지막 절을 부르는데 더욱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이별은 참 슬프지. 오늘 우리가 체험한 이 교회는 다시 카피할 수는 없지. 각자의 교회를 잘 살기를. 교회가 내게 주는 것 때문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이신 그분께서 주시는 힘으로 때로 교회보다 큰 존재로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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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윤이가 주일에 교회 점심으로 나온 꼬마 김밥 남은 걸 챙겨 왔는데... 

아무도 안 먹고 굴러다니고 말 것이었는데...

계란말이로 만들어 맛있게 한 끼 했다!

이럴 때 보람, 어디에 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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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저녁 영애 부부에게 초대를 받았다. 일본 가정식 식당에서나 먹어볼 것 같은 카이센동을 해주었다. 카이센동은 비싸서 못 사 먹는 것이지,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 메뉴인가. 영애 신랑 일혁은 타고난 요리사이다.  일혁이 만들어준 것이다. JP가 맛있는 것 먹을 때 내는 영혼의 소리 "어... 어... 밥이 자꾸 줄어..."인데, 그 말을 왜 하는지 알 것 같은 느낌으로 아껴서 음미하며 맛있게 먹었다. 영애네 집은 일본 가정식 식당이었다.
 

그리고는 즉석 사인회가 열렸다. 영애가 엄마 김명순 권사님께  <노을이 물드는 시간>을 선사해 드리면서 권사님이 나누고 싶은 분들 몫까지 일곱 권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곱 분 모두 젊은 시절 교회의 추억과 함께 얼굴이 떠오르는 분이었다. 최근에 겪으신 교회 갈등으로 상하셨을 마음이 떠올라 몇 글자 끄적이는데 마음에 울컥울컥 했다. 사인회장은 또 갑자기 ‘인생 네 컷’ 사진관으로 변신했다. 동윤아빠 일혁이 전문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이 집 거실 배경이 바로 포토존이어서 찍는 대로 화보가 되었다. 일본 가정식 식당이 사인회장이 되었고, 사인회장은 또 바로 사진관이 되었다.

 
맛있고 고맙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뭉클한 시간이었다.
 

은준이네 가족이 함께 초대되었는데, 목사님의 안식월 동안 시간이 너무 안 간다던 은준 엄빠이다. 같이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렜는데... 우리가 현관에 들어서자 은준 은재 동윤 세 아이가 환호를 지르며 뛰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세 녀석이 다짜고짜 품에 안긴다. 눈물이 났다. 초딩 형아가 되었다고 시크해진 은준이까지 헤어질 때도 자꾸 다가와 안겼다. 아이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애정이 영혼 깊은 곳에 위로로 다가왔다. 
 
스승의 날을 지나치는 법이 없는 영애가 겸사겸사 만든 저녁식사 자리이다. 스승의 날 기념, 저자 사인회, 안식월 끝자락을 보내는 목사의 주일 저녁 식사 초대. 맥락이 닿지 않는 것들의 조합인데, 이 모든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면 끄덕끄덕이다. 사랑둥이 일곱을 갑자기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식당, 사인회장, 사진관으로 장면 바꾸기를 연출하신 분이 그분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이 이해되고 알아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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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은 사람 풍경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풍경이라도 사람이 담겨야 내게는 비로소 의미가 된다. 내 평생 뉴질랜드 남섬 여행만큼 멋진 풍경을 몰아서 마주한 적이 없었는데. 그래도 결국 마음에 남는 것은 그 배경의 사람이다. 남편과 둘이 여행하면 좋은 풍경에 내 독사진, 몇 장 안 되는 JP 사진, 각도 참 안 좋은 셀카 정도인데. 이번 여행에선 커플 사진을 많이 건졌다. 그 모든 사진 중 참 좋은 사진은 넷 단체사진인데,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페이스북에 공개했었다. 사진마다 표정이 좋고, 표정보다 더 좋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있다. 그중에서도 최애는 후커 밸리 트래킹 끝에서 만난 마운틴 쿡 배경의 빙하호수 배경의 네 인물이 담긴 사진이다.

 

고고씽 뉴질, 남섬 원정대 담당 업무 : JS 대장 / YS 회계 및 실세 / JP 총무 / SS 서기 및 유흥
 

남섬 여행을 위한 공식 첫 회의에서 업무분장이 있었다. 참으로 적절한 업무분장이었고, SS를 제외한 나머지 원정대는 정말 감동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주셨다. 벌써 두어 달 전의 기억이 된 이 여행의 제목은 내게 "얹혀간 여행"이다. '기록'에 관한 한 각자의 방식으로 타고난 네 사람이라 내가 담당한 '서기'의 의무는 의미가 없었다. 여행 계획과 여정과 회계에 관한 정확한 기록, 여행 후 디테일한 기억의 기록에 얹혀서 여행을 누리고, 다녀와서는 힘들이지 않고 추억을 복기한다. 이렇게 여행하면 한 번쯤 싸워야 하는데... 우리 왜 안 싸워? 이런 심정. 심지어 돌아와 해단식 같은 지난 주일 모임에서도 한 번쯤 싸웠어야지, 우리 왜 안 싸웠어? 서로에게 물었다.  그러게요? 우리 왜 안 싸웠을까요?

 

(다 커서 찾아간 교회를 모교회라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모교회에서의 인연이다. 둘 다 이런저런 교회 경험과 환멸 속에 방황하다 찾은 교회였다. 그 청년부에서 만나 결혼했고, 거기서 두 아이를 낳았고, '한영동산'이라 불리던 교회 앞의 동산은 우리 아이들에겐 유년 시절 비밀의 숲이다. 좋았던 교회이다. 어느 순간 교회를 옮길까 고민하던 시점이 있었다. 뭔가 공허하고 채워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고, 교회 문제라기보단 우리 문제가 아닐까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형식적 교회에 만족하지 못했다. 진정한 공동체가 있을 것이고, 우리가 일궈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정말 '공동체'에 목을 매는 커플, 한쌍의 바퀴벌레이다. 공동체를 찾고 싶었다. 그때, 교회를 '가정교회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정교회로의 전환이 급진적이라 판단되었던 것일까. 여성들 위주의 구역모임을  '가정(또는) 부부 중심'의 소그룹으로  실험적으로 운영하는데 우리 구역이 뽑힌 게 신의 한 수(또는 악마의 한 수)였다. 그로부터 시작한 가정교회 시스템이 정말 좋았고, 교회를 옮길 마음이 싹 사라졌다.(아, 그러고보니 남편은 가정교회 주제로 논문을 썼었네!) 그리고 그때가 뉴질 원정대 JS, YS, JP, SS 드림팀 구성의 시작이었다.  

 

실은 이 처음의 이야기들을 잊고 있었다. 뉴질랜드 여행은 '뉴질랜드 펠로우십 교회'를 돕는 일로 시작되었다. JS 대장님의 오랜 Kosta 인연으로 개척부터 도운 교회이다. 개척 후 5년의 세월이 흘렀고, 꾸준히 성장하는 교회의 리더십을 새롭게 하는 일을 돕고자 하는 것이 여행의 주요한 목적이었다. 어... 어... 하다 얼떨결에 합류한 NFC 리더십 수련회를 비롯하여 주일 예배, 무엇보다 수시로 있던 모임에서 나는 적잖이 감동을 받았고, 많이 부러웠다. 인생 가장 치열한 시간을 사는 세대였는데, 교회를 향한 열정으로 그냥 시간과 마음을 내는 사람들이었다. 아, 나도 한때 그랬던 적이 있었지. 내 교회가 내 삶이었던 적이 있었지. 교회가 공동체였고, 공동체가 그냥 교회였지. 그때가 그때였다. 서재석 목짠님, 박영수 목녀님과 함께 했던 드림목장 시절이었다. 
 
수련회도 했고, 주일 예배도 함께 했고, 그리고도 모여서 저녁 먹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월요일 밤에 이들은 또다시 모였다. 소그룹 리더들이 모였다. 바로 그 모임에서 지난 시절 우리의 드림,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꿈이 모두 소환되었던 것 같다. 모임이 좋았다. 와하하하 웃으며 질의응답을 하는 중 소그룹에서는 리더와 함께 리더를 돕는 헬퍼가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중, 남편이 "제가 부구역장이고, 대표님이 구역장이셨다니까요."라고 했는데. 아, 그랬었다. 실험적 부부구역에서 구역장과 부구역장이었었지! 그리고 시작된 가정교회인 '드림목장'에서 공동체의 꿈을 살아봤던 것 같다. 우리 부부로서는 청년부 리더로 살아온 세월이 있었지만, 앞선 세대들과 마음을 나누는 교회를 처음 경험해 본 것이다.

 

그땐 그랬지... 그런데 우리를 그렇게 뜨겁게 달구었던 공동체의 경험, '가정교회'는 '모' 교회로부터 떠나와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시기도 이유도 조금은 달랐지만 결국 두 분과 우리는 그 행복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거기를 떠나왔다. 그리고 '드림목장'의 경험을 기쁘고 아프게 간직한 채 교회를 향한 '드림'을 일정 정도 접고, 접은 만큼의 실망감과 그만큼의 허허로워진 마음으로 각자 낯선 교회 공동체에 어정쩡하게 몸담고 있다. 그래도 만나면 여전히 대화의 주제는 '교회'이다. 뉴질랜드 펠로우십교회, 갈등과 반목으로 상처받아 피 흘리는 모교회, 그리고 여러 교회, 우리들의 교회 이야기들...
 
목짠님, 몽년님. 좀 보편적인 호칭으로 바꿔보고 싶은데 여전히 두 분을 이렇게 부르게 된다. 실험적 공동체, '부부구역' 시절의 구역장과 부구역장의 관계로 시작한 드림목장 시절의 호칭이다. 교회와 공동체가 내 안에서 하나였던, NFC 교회 형제자매들의 열정에서 보았던 그 시절의 호칭이구나 싶다. 좋은 경험일수록 카피되지 않는 것이다. 그 시절로 족하고, 오늘까지 이어지는 만남으로 족하고, 한 번쯤 있어줘야 할 싸움도 없이 풍성한 여행으로 족한 이 여행이 교회이고 공동체이다. 뉴질랜드, 펠로우십, 교회는 우리 넷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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