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래 본 김에 콩나물밥 함. 달래, 냉이, 쑥... 이런 걸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것은 어릴 적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산책하다 만나는 쑥이나 냉이를 그냥 두고 오는 게 그렇게 아깝다. 마트에서 만나면 일단은 카트에 담고 본다. 초록 잎이 있는 '달래'와 흰색 대가리만 있는 '은달래'가 나란히 있었다. 차이는 모르겠지만, 비싼 놈이 뭔가 낫겠지 싶어 천 원 더 비싼 은달래를 골랐다. 집에 와 검색해 보니, 예감대로 은달래는 노지 달래라 향이 더 진하단다. 콩나물밥 해서 비벼 먹고, 도토리묵에 끼얹어 먹고, 찐 양배추 찍어 먹고 있다.

 

현승이가 맛있다고 자꾸 달랜다. 점심에도 콩나물밥 달래, 저녁에도 콩나물밥 달래. 자꾸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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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편력은 곧 나의 나다움의 산물, 또는 근거이며 동시에 외로움의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사람들과 이런 책을 얘기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들과 저런 책을 공감할 수 있는데. 이런 책과 저런 책을 동시에 펴들고 만날 사람이 없다. 이건 '내 맘 같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겠다. 어느 때 무슨 책을 읽었는지는 그대로 나의 인생 역정이다. 신앙 역정이기도 하고. 눈물 없이 떠올릴 수 없는 어느 시기 어떤 독서도 있다. 진짜로. 주변 사람 아무도 모르는 책을 금서인 양, 숨어 읽던 시절도 있었다. 누가 친절히 소개한 책이면, 길이면 그렇게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혼자 더듬어 만난 낯선 저자들이 내 영혼을 뒤흔드는데, 어디다 말할 곳이 있어야지! 10여 년이 훌쩍 지나고, 그때의 나처럼 무엇인가 찾는 이들을 만나 함께 읽고 쓰는 오늘이다. 연구소의 상처 입은 입은 치유자 과정 2기의 필독서를 선정하며 심장이 벌렁거린다. 달라스 윌라드와 리처드 로어를, 아빌라의 테레사와 제랄드 메이를, 이런 책과 저런 책을 동시에 펴들고 만날 사람들이 있다니! 

(아래는 연구소 SNS에 올린 글이다.)

 


2기 상처 입은 치유자 과정이 곧 시작됩니다.

새 술만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사람 역시 새집에 모셔야겠습니다. 1기 때와 같은 커리큘럼이지만 담기는 것은 새로워질 예감입니다. 함께 하게 될 2기 수강자 대부분이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 또는 선교 현장에 계시면서 특유의 영성적 목마름을 갖고 계십니다. 무엇보다 제도권 교회 내에서 내적 여정의 영성을 일구는 것에 사명감을 느끼고 계시고요. 2기 여정은 보다 깊은 기독교 영성에 천착해 볼 예정입니다. 1기 때 함께 읽었던 필독서가 딱 알맞았다는 자체 평가를 하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2기의 필요는 새로운 교재를 고민하게 하였습니다. 2기 만의 필독서 네 권이 선정되었습니다.

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달라스 윌라드의 <마음의 혁신>으로 복음주의 신학 안에서 내적 변화에 대해 정리해 볼 것이고요. 내적 여정 세미나에서 자주 언급되는 아빌라의 테레사 <영혼의 성>을 통해 중세 신비주의 영성에 에니어그램을 비춰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영성가 제랄드 메이의 <영혼의 어두운 밤>은 아빌라의 테레사, 십자가의 성 요한 두 분의 영성을 오늘의 언어로 안내해 줍니다. 남성 목사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남성과 영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리처드 로어 신부님이 쓴 남성성과 영성에 관한 책 <야생에서 아름다운 어른으로(Wild Man to Wise Man)>입니다.

필독서를 미리 공개하는 것은 2기 수강자들께 이미 시작된 우리의 여정을 기대와 기도로 기다려 주십사 하는 것이고요. 한 자리 정도 비어 있습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현재 인원으로 족하다는 생각도 하고 있지만) 2기 만의 이러한 여정에 마음이 움직이시는 분을 초대하기 위함입니다.

| ‘상처 입은 치유자 : 내적 여정 지도자’ 과정

✔ 2020년 4월8일(목) ~ 11월25(목) 오후1시~4시
11월 25일(목) ~ 26일(금) 1박2일 마침 피정
✔ 인원 : 5 ~ 7명
✔ 장소 : 미사 나음터(5호선 미사역 5분, 주차 가능)
✔ 대상 : 내적 여정 1단계부터 영성과정까지 수강하신 분
(지도자 과정 중에 전 과정 재수강 필수)
✔ 문의, 접수 : 전화로만 받습니다. (010-7242-8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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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에 두 개의 집단 여정이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둘 모두 취소되어...

룰루랄라!

원고 마감 주간이기도 한데,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시간 부자, 에너지 부자가 되었다.

 

 

쓰던 원고 잠시 덮고 탄천으로 나갔다. 

그새 봄이 와있었구나!

 

 

오고 가고, 가고 오는 계절의 어느 때인들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 있더냐만은.

이 계절의 움트는 생명력은 독보적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일깨우는 계절이다.

 

 

발길 닫는 어느 곳에서든 마주하는 연둣빛, 너 참 오랜만이다! 싶었더니.

작년 봄이 없다. 4월까지도 목에 두르고 있던 목도리 생각만 난다. 작년엔 봄이 없었다. 

이 동네엔 이질적인 여러 산책길이 공존한다.

그리 잘 다듬어지지 않은 탄천이 있고, 꽤나 잘 조성된 아파트 산책길도 있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너가면 시골길 느낌을 걸을 수도 있고, 조금 더 가면 얕은 산을 탈 수도 있다. 중요한 것! 몇 번 다니며 익숙해지자 새들의 아고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아파트 숲 사이, 시골길 덤불 아래에 상시로 열리는 새들의 토론장이 있다. 그곳엔 늘 그 친구들이 모여 떠들고 있다. 휴대폰 들고 영상 촬영 해봐야 새 한 마리 제대로 담을 수 없지만. 아, 실은 이게 얘네들의 매력이다. 찰나의 만남만 허락하는 친구. 

 

 

봄의 간지럽힘을 견딜 수 없어서 저녁엔 쑥국을 끓였다. 엄마가 없는 두번 째 봄, 몸의 감각이 다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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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란 게, 한 시라도 머물러 있어야 말이지. 한 나절 사이 마음은 수십 번 바뀌고 뒤집어진다. 이른 아침의 마음은 무거웠다. 새로 시작하는 일(일이 단지 일인가? 일은 항상 사람이지!)이 잘 되려나 싶고, 그만두고 싶고. 그 일(이 아니라 사람이라니까!)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무게가 줄어들고 걱정은 기도로 바뀌었다. 포스트잇에 몇 마디 끄적여 노트북에 붙이고 기도했다. 걱정이 기도로 바뀐 것이지 그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일의 실행을 위해 단톡에서 말을 주고받다가 번쩍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거기에 맞장구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오, 마음의 날씨가 급 설렘으로 바뀌었다. 설렘은 생기가 되고 에너지가 되었다. 

 

혼자 먹는 점심이고, 원고에 매진해야 할 시간이기도 해서 대충 때워야지 싶었는데. 에너지가 충천하니 식욕 또한 상승하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김치소 같은 걸 다져서 만든 김치전이 아니라 배추전처럼 통으로 깔아서 부치는 통김치전을 만들었다. 말이 필요 없지! 혼자라도, 혼자라서 더 맛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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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이제야 나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몸을 입고 인간이 된 이유를 알았다. 죽음으로, 가장 극적인 죽음, 극형으로 '몸'을 버리신 이유를 알겠다. 아주 잠깐 인간으로 사시다 그 몸을 버리고 돌아가신 이유를 알겠다. 함께 먹고 자고, 몸으로 부대끼던 당신의 제자들 앞에서 무력하게 끌려가신 이유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유를 알겠다. 두려움과 호기로움 사이 좌충우돌하던 베드로의 인격이 변형되었다. 선생님의 죽음을 수치스럽게 통과한 베드로가 그 새벽 자기혐오 속에 헛 그물질을 하는 그 심정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불을 피우고 아침을 준비하며 따뜻하게 맞아주신 선생님.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할 그 수치스러운 지점을 짚어내시더니 용서 너머 부탁을 하시는 선생님. 그리고 나서 떠나신 선생님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선생님의 부재 속에서 베드로는 비로소 가르침을 새록새록 알아듣고 그분의 못다한 삶을 대신 살 수 있게 되었다. 있다 없어진 몸, 그 물성이 사라진 공간은 얼마나 큰지! 있다 없어진 그 빈자리가 드러내는 존재는 얼마나 또렷한지. 그 가르침은 또한 얼마나 명료한지. 2021년 사순기간에 나는 몸과 영혼을 새롭게 알아듣는다. 

 

사라짐

 

바쁠 때는 한 달 정도는 엄마랑 통화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한 달이 뭐야. 김포 현대프라임빌 1층 그 방 그 침대에 엄마가 여전히 누워 졸고, 가끔 일어나 기도하고, 다시 졸고 있을 거라면 1년 동안 통화하지 않고 지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지냈다. 전화가 좀 뜸하면 바로 태클 들어오는 시어머니는 신경이 쓰였지만, 이제는 늙어서 섭섭해 하지도 않는 엄마다. 괜히 허하고 마음 둘 곳 없어 전화하면 "얼라, 우리 딸이네. 바쁜디 전화를 혔네." 하는 순진이 무궁한 엄마. 연세가 드셔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이틀 사흘의 시간 개념이 모호해진 것도 무심한 딸로서는 감사한 일이다. 그러니 크게 죄책감이 들지도 않았다. 엄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고, 끊을 수 없는 것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이었을까. 

 

존재함

 

엄마와 함께 한 하늘 아래 살던 52년인데. 그냥 공기처럼 존재하던, 아니 공기처럼은 아니다. 가끔 좋고, 자주 성가신 그런 존재니까 공기나 하늘 같은 존재는 아니다. 어쨌든 엄마는 52년 동안 있었던 엄마다. 없는 엄마와 1년을 보냈는데, 52년보다 더 많이 엄마 생각하며 지냈다. 없어진 엄마 때문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엄마가 없어져서 세상이 이렇게 됐는지도 몰라. "있을 때 잘할 걸." 이런 말은 떠올리고 싶지도 않다. 엄마가 다시 살아와도 잘할 자신은 없다. 예수님이 딱 33년, 그것도 30년은 숨소리도 안 내고 계시다 3년 반짝하고 떠나셨다. 그래서 기독교가 잘 되는 거다. 몸을 너머 다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아들은 거다. 그분과 함께 했던 제자들이 알아들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분께 배운 걸 전했고, 그러다 그분처럼 조롱당하고 버려지고 죽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거다. 나도 엄마의 부재를 절절하게 느끼며 몸 너머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무덤

 

엄마 무덤은 가난하다. 시립추모공원 안에 있고, 딱 한 줌으로 남은 몸을 담은 한 주먹의 땅을 차지한다. 엄마 떠난 지 1년이 된 날에 엄마 무덤에 갔다. 주말에 이미 추도예배를 드렸다. 2월부터 내내 동생과 통화하며 울고불고했던 터라 '당일'을 기념하는 것도 벌쭘하다. 그래도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아니 3월 11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엄마 무덤에 다녀왔다. 혼.자. 라는 말에 왜 이리 에너지가 들끓는지. 남편이든 동생이든 함께 해주길 기대하면서도 혼자 가고 싶기도 했다. 아이들이 "엄마, 같이 갈까?" 하는 말에 솔깃하기도 했지만 혼자 가야 했다. 실컷 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하얀 꽃

 

엄마와 나 사이, 우리 둘만의 끈이 있다. 평생 엄마와 사이가 더 좋았던 건 동생이었고, 엄마는 나보다 동생을 더 착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여기긴 했지만. 동생이 엄마를 헤아리는 마음이 나보다 깊고, 내가 넘볼 수 없는 동생과 엄마 사이 끈끈함이 있지만... 나와 엄마 사이 그 무엇이 있다. 엄마의 초라한 무덤가에 가만 혼자 앉아 있으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나와 엄마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내 몸과 영혼의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엄마 떠난 이후로 이렇듯 삶이 텅 빈 느낌인 것은 내가 엄마고, 엄마가 나라서, 내 삶이 엄마의 94년 삶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쩐지 엄마의 삶 그 이상을 살지 못할 것 같다. 엄마 만큼만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생, 아니 한때 치우고 싶지만 치울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끄러운 존재였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나이, 45세 쯤 되었을 때, 깨달았다. 엄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엄마에 대한 부끄러움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것. 엄마는 걸림돌이 아니라 내 인생 디딤돌이었다는 것. "엄마, 내가 엄마야. 엄마가 살지 못한 삶을 잘 살게. 말끝마다 예수님을 달고 살았지? 말만 그렇게 하면서 삶은 그렇지 못하다고 내가 무시하고 조롱도 많이 했어. 엄마 정말 무시 당하기 딱 좋은, 푼수 같은 사람이야. 그래도 착한 마음 포기하지 않고 나름의 생을 감사하며 마지막까지 유머를 잃지 않았어. 엄마처럼 살래.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처럼 있는 그대로, 분수를 따라 살래. 엄마처럼." 

 

엄마 돌아가시고 익히 알던 '영혼'의 존재를 더욱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그 느낌을 믿기로 했다. 거부하지 않고 순간순간 감동하기로 했다. 몸과 말, 말과 행동, 행동과 생각 너머 사람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순간순간 빛나는지 더 적극적으로 발견하기로 했다. 아빌라의 테레사 말씀처럼 "영혼이 지니고 있는 좋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 위대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말이다. 그건 엄마가 남긴 자리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 때문이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작년 2월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엄마를 걸어두고 "빛나는 영혼"이란 상태 메시지를 적어 두었었다. 아, 그때도 알고 있었다. 망가진 몸 때문에 더욱 찬란하게 돋보이는 엄마의 영혼을. 

 

작년 장례식날엔 그렇게 추웠는데. 비석을 하러 갔던 날도 차겁고 거센 바람에 머리가 쪼여 두통이 올 정도였다. 추모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도는데 쑥이며 냉이가 군데군데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날은 따뜻하고 메마른 잔디 사이 손톱만 한 초록이들은 보잘것 없이 예뻤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볼펜심 정도나 되는 하얀 꽃 한 무더기가 피어 있었다. 냉이 비슷한데, 이름을 알 수 없다. 우리 엄마 무덤가의 하얀 꽃. 이름 없는 하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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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larinari 2021.03.15 09:03 신고

    연구소 카페에서 아침마다 나누는 헨리 나우웬의 묵상에서 오늘 분량의 글이 이렇다. 헨리 신부님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남다른 아픔, 성찰의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묵상 글이 마치 내 이 글에 답해주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연약함과 단점을 알고 계셨습니다. 깊은 기도로 사신 어머니의 긴 인생은 하나님의 위대하심뿐 아니라 어머니의 연약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애로우심뿐 아니라 어머니의 두려움을, 하나님의 은혜뿐 아니라 어머니의 죄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그토록 괴로운 사건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일생에 걸친 어머니와 하나님의 대화였던 것 같습니다. 죽음의 순간에는 모든 것이 믿음이 됩니다. 우리의 온 몸과 마음을 아시고,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이어 주는 좁은 문입니다. "

 

 

연구소 지도자 과정을 1박 2일 마침 피정과 함께 마쳤다. 작년 11월 말의 계획이 방역 상황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모두 하루 이틀 전에 무증상자 검사를 받고 코로나 바이러스 음성 확인을 받고 모였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 번거로움과 불편함조차 기도라 여기며 실행했다. 딱 일주일 전 주말의 일이다. 그러고는 무기력하게 한 주를 보냈다. 안 자던 낮잠까지 자면서 나른하고 몽롱한 시간이었다. 약간의 우울감까지 있어서 몸과 마음이 바닥에 딱 붙어 있었던 것 같다. 

 

연구소 단톡에 마음을 나누다 보니 괜한 무기력과 우울이 아니었다. 지도자 과정 1년을 위해서 전력질주 했던 것이다. 결승 테이프를 끊고 나서는 운동장 바닥에 드러누워 꼼짝 못 하는 시간 같은 것이었다. 집중하여 다 쏟아붓고 숨을 고르는 시간. 오늘 아침에야 몸과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지도자 과정 1년을 1박 2일 여정에 담아 나름대로 진한 시간을 보냈다. 본질을 생각하는 의미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했고, 재미와 즐거움 역시 포기하지 않으려 돈과 에너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 행위 자체가 목적인 것, 지금 하는 행위 그것 외에 목적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가 맞다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연구소 2년은 공동체, 성장하는 공동체, 여성 공동체 가능성의 실험이다. 연구원 다섯 명은 5벤저스다, 어벤저스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로 어제의 생각이 헌 것이 되는 게 내 장점이자 병인데. 그 새로운 생각을 구현해내는 사람들이 네 명의 연구원이다. 연구소와 연결된 사람들을 물질이든 영적으로든 꼭 필요한 방법으로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이디어가 샘솟고, 아이디어는 금세 프로그램이 되고 작품이 된다. 1박 2일 피정은 그 결정체였다. 그래서 누린 순간순간의 기쁨과 감동은 말로 풀어낼 수 없다. 그 순간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충분히 누린 것으로 족하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인 앤 윌슨 섀프는 우리가 사는 사회에 이름 붙이기를 '중독 사회'라 하였다. 개별 알코올 중독자나 여타 중독 행위자가 드러내는 과정과 특성을 고스란히 지닌다는 뜻이다. 지금 이 시스템 속에서 권력이나 영향력이 주로 (백인) 남성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 '백인 남성 시스템'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배워왔고, 동참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가부장적 시스템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규칙과 답을 정하는 더 높은 힘과 권력이 있다. 완벽하게 논리적으로 합리적이며 객관적인 것은 가능하며 백인 남성 시스템은 그것을 알고 있다는 신화가 전제된다. 모든 중독이 동반 의존자라는 가동력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백인 남성 시스템도 '반동 여성 시스템'과 함께 간다. 앤의 제시하는 대안은 백인 남성 - 반동 여성이 아닌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이라는 제3의 길이다. 답이 있고, 설명하고 가르치는 자가 있으며, 통제가 가능한 개인과 사회가 아닌 '과정'을 사는 개인과 사회이다.

 

처음 책으로 읽으면서 아하, 참 좋구나! 했지만, 구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소와 지도자 과정 여정 속에서 가능성을 보게된 것이다. 백인 남성 시스템에 대항하는 방식이 아니다.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을 '신생 여성 시스템'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저 '전혀 새로운 접근'이라고 읽는다. 주류가 되지 못한 여성적인 것, 여성적인 방식 말이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 정통과 이단, 나와 너를 가르고, 잘하고 못함을 서열화하는 기존의 방식이 아니니 얼마나 생소한가. 생소하여 설명 또한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을 경험한 것만은 분명하다.

 

역설적이게도 가능성 만큼이나 불가능성도 체감했다. 경험해보지 않은 방식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만 믿기 위해서도 최소한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프게 마주한다. 답을 정하는 사람이 있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 통제 가능한 방식은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 자본주의와 성과주의, 아니 그냥 백인 남성 시스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기 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나님 형상을 담은 나, 이미 수용되었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인지.

 

지도자 과정은 '상처 입은 치유자' 양성 과정이다. '상처 입은 치유자란, 자기 치유와 성장 여정을 이웃을 위해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라고 정의하고 시작했었다. 결과가 아닌 과정, 즉 여정을 내어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갈수록 새롭게 체험한다. 메이크업 끝낸 얼굴이 아니라 시작도 하기 전의 맨 얼굴을, 짝짝이 눈썹이 조화로와지는 것과 생기 없던 피부가 물광이 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과정' 말이다. 그래서 상처 입은 치유자는 상처 위에 또 새로운 상처를 더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도 시작할 사람이 누구랴.  

 

 

 

같은 재료로 같은 작품을 만들었는데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이것이 생동하는 과정 시스템의 아름다움이다. 내가 내 마음에 심은 단 하나의 씨앗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옳고, 맞고, 선하고, 아름답다. 여섯 사람이 여섯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상처 입은 치유자' 여섯이 여섯 개의 길을 냈다. 우리는 모두 과정 위에 있었다. 과정의 순간순간은 다른 것을 목적하지 않았다. 그러니 행복했다. 여섯 개의 마음에 심긴 씨앗은 전혀 다른 여섯 개의 나무나 꽃으로 자랄 것이다. 그것을 믿는다. 나도, 이분들과의 연결로 또 하나의 씨앗을 심었다. 이 역시 또 하나의 생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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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위한 치유 글쓰기  (1) 2021.01.04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딸 채윤이가 전날 밤 11시가 넘어 끓이기 시작했다. 11시 넘어 줌 강의를 마치고 "그럼 엄마 먼저 잘게" 하고 누웠다. 딸이 끓이는 미역국, 참기름 냄새에 취해 잠이 들었다. 아침으로 먹는 고구마나 현미 떡 대신 심심한 미역국 한 그릇을 먹었다. 아이들은 자고 남편과 나란히 앉아 먹었다. 갑자기 울음이 복받쳤다. 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꺼이꺼이 울음이 터져 나와 국물 마시는 후루룩 소리로도 숨길 수가 없었다. 뜬금없는 울음이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그냥 울었다. 

 

1년을 뛰어 넘은 작년 생일의 여운인가. 작년 생일, 응급실에 있던 엄마가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면회가 안 되던 시간이었다. 가족들과 생일 점심을 먹고, 선물을 사면서도 엄마를 향한 그리움, 슬픔으로 마음이 펴지질 않았다. 보다 못한 남편이 "김포 갈까? 면회가 안 되면 어머니 병원 앞이라도 갔다 오자." 하고 갔다가, 병원장 면회를 하며 울고불고 한 끝에 엄마를 보고 왔다. 호흡기와 콧줄을 끼고, 팔은 묶인 엄마 귀에 대고 "엄마, 오늘 내 생일이야. 낳아줘서 고마워." 하면서 또 울었다. "어머니, 채윤아 엄마 잘 키워줘서 감사해요. 제가 잘할게요.” 김서방이 말했다. 엄마도 울었다. 입도 코도 막힌 엄마는 눈물로 말했다. 

생일 아침 미역국에 터진 눈물은 2월 내내 고여있던 것이었다. 2월이 되고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았다. 동생과 통화하는데 "내일이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진 날이야." 했다. 2월 첫째 토요일, 엄마가 침대에서 떨어져 응급실에 갔다. 그날의 기억이 쓸데없이 생생하다. 병원 가는 길 동생 집 엄마 방에 갔다. 동생이 엄마 방 청소 좀 해달라고, 응급실 가느라 경황없이 나왔다고, 조카들끼리 있는데 무서워한다고... 엄마 침대 밑으로 피가 고여 말라붙어 있었다. 아득한 정신으로 그걸 닦아냈다. 2월이 됐는데 그날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났다. 내 생일이 다가와서인지, 2월의 그날 때문인지 2월은 그렇게 남모르는 슬픔과 우울로 지냈다.

 

생일이 다가오니 더욱 엄마 몸이 그리워졌다. 엄마의 포궁 안에 있었을 나, 45세 엄마의 늙은 포궁 안에서 만들어지고 자란 내 처음 몸은 어땠을까? 엄마의 몸이 미치도록 만지고 싶다. 생일 아침 미역국을 끓인 채윤이가 내 몸 속에서 자라다 나왔듯이, 나보다 더 크고 강한 존재가 되었듯이 나 역시 엄마 몸을 찢고 나와 더 큰 존재로 자랐다. 채윤이 출산하고 6주 만에 풀타임 음악치료사 자리가 생겨 어플라이 하고 입사했다. 아침마다 엄마가 우리 집으로 와 채윤이를 봐줬다.  내 퇴근 시간에 맞춰 채윤일 업고 골목 어귀에 나와 서있는 날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나타나면 뚱한 채윤이보다 더 신이 나서 "하이고, 껍데기 왔네. 우리 채윤이 껍데기 왔다!" 했다.

 

채윤이가 제 껍데기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는데, 생일 미역국을 먹는 나는 껍데기를 잃었다. 내 껍데기, 엄마의 몸이 그립고 그립다. 놀란 토끼 같은 엄마의 눈, 함지박만 한 입, 광대뼈, 혈관이 툭툭 튀어나온 손... 어디에도 없는 엄마의 몸이  또렷하게 살아온다. 이렇듯 생생하게 살아있는 엄마 몸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생일인 수요일 밤에 교회 행사로 강의가 있었다. 북유럽 바로크 미술을 전공하신 교회 집사님이 렘브란트 그림을 읽어주시는 강의이다. 전에 한 번 교회에서 문화 강좌로  17세기 네델란드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셨는데 참 좋았었다. "탕자와 시므온으로 그린 렘브란트의 고백"이란 제목의 강의라 연구소 벗들에게도 알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다. 생일 선물 같았다. 익히 알던 렘브란트의 생애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새롭게 들렸다. 어쩐지 렘브란트가 그린 노인들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탕자의 귀향>의 아버지, <시므온의 노래>, <야고보>, <기도하는 노인> 등. 강의는 손에 주목하도록 이끌었다. 아니, 렘브란트가 그렇게 그렸다. 나이 들어 눈이 흐릿해진 아버지는 손, 손으로 그 아들을 맞는다. 시므온 역시 손으로 아기 예수를 안는다. 기도하는 노인의 손엔 대놓고 조명이 비친다. 강의 그 부분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늙은 엄마의 손이 겹쳐져서다. 주책스럽고 부끄럽지만 이제 나는 나의 눈물을 탓하지 않는다. 화면을 끄고 그냥 울었다. 

 

 

 

엄마의 그 손을 한 번만 더 잡아볼 수 있다면. 천국에서 엄마의 빛나는 영혼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알겠는데, 엄마의 몸이 아닌 엄마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기쁠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엄마와의 스킨십을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엄마 돌아가신 이후 갈수록 나는 몸에 집착하게 된다. 생일을 지내며 내가 이 땅에 처음 왔던 때가 어땠을까 생각하다 보니 내 처음 집, 엄마의 포궁, 엄마 몸이 절절해진다.

 

 

내 생애 첫 사진이다. 태어난 지 5주. 이젠 기억에서도 흐릿해진 아버지는 이렇듯 나에 대한 기록을 남김으로 자신을 남겼다. 사진을 찍고, 사진 뒤에 메모를 남긴 아버지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데 어쩐지 본 듯이 생생하다. 엄마는 내게 남긴 것이 없다. 휴대폰에는 엄마가 담긴 영상이 많지만 엄마가 남긴 건 아니다. 엄마의 모든 것은 엄마의 몸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아, 엄마의 몸이 남긴 것은 나다. 그래서 내 생일이 이렇듯 서럽고 슬픈 것이다. 나는, 사라져 버린 엄마가 남긴 흔적이다. 내가.  

 

여러 차례의 여성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생일 다음 날은 또 한 번의 모임이 끝나는 날이었다. 참가자 한 분의 글 한 문장이 가슴에 남아 있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굼해 지고 그리워지는 날이거든요." 어릴 적 돌아가신 아빠에게 쓴 편지이다. 나는 나의 생일을 가장 싫어해요. 이 문장을 보고 휘청, 존재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참가자들의 많은 글에서 나를 본다. 아니 모든 글에서 나를 본다. 그래서 힘겹고, 그래서 좋은 글쓰기 여정이다. 이 문장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나를 흔들었다. 예언같이 느껴졌다. 앞으로 사는 날 동안 나는 내 생일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 평생 아버지 부재를 끌어안고 살았지만, 내 생일에 아버지를 떠올려본 적이 없다는 것도 신기하다. 글 쓰신 분에게 비춰본다면 더더욱. 그러고 보면 나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관념으로 느끼고 그리워했다. 아버지의 글씨체를, 지성을 선망하며 그리워했다. 무엇보다 신앙으로 승화시켜 숭배하며 그리워했다. 엄마는 다르다. 엄마는 내 껍데기, 내 몸이다. 나다. 

 

아직 생일의 슬픔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리고 오늘은 엄마 떠난 지 일주일이 모자란 일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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