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이 네 명!" 4기 동반자 과정 준비하면서 내 마음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던 말이다. 연구소 선생님 셋이 모두 소장이다. 책임감, 자발성, 내면화된 연구소의 정신까지 모두 소장이다. 그 마음으로 일을 하니, 소장인 내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싶게 4기를 개강 준비를 하고, 개강 첫날을 지냈다. 연구소 선생님 셋, 듣고 배우고 연결되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함께 해준 일곱 분의 동반자 선생님들은 선물이다. 오늘이라는 그릇에 담긴 선물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중히 받고자 한다. 이분들의 지도자 아닌 동반자로 지낼 시간을 참된 지도자이신 그분께 맡긴다. 페이스북에 쓴 글 가져다 놓는다.

 

네 번째, 상처 입은 치유자들

4기 동반자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지도자 과정이라 불렀는데, 한 해 쉬면서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마음의 여정, 영적인 여정에 지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함께 걷는 친구, 동반자죠.

시간과 엄청난 마음의 에너지와 돈을 들여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일곱 분 선생님들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말과?” 글과 손으로 드러내 주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소중해서 차마 몇 둘로 정리가 안 됩니다.

각자 상담과 공부로 쉴 틈 없는 연구소 식구 넷은 4기 동반자 선생님들을 동반하기 위해 '기쁨과 설렘의 초긴장' 상태로 두어 달을 보냈습니다. 개강날 지내고 모두 하아~~~ 기쁨과 안도와 설렘의 긴 숨을 내쉬었고, 떡실신의 밤을 보내고, 여독을 푸는 사람들처럼 하루를 보냈고요. 늘 그렇지만, 최고의 수혜자는 동반하는 저희들입니다. 저 자신입니다.

에니어그램 강사로, 영적 여정의 동반자로 구비시켜 드리기 위해 부드러운 채찍과 쓰디쓴 당근을 적절히 드리겠습니다. 강사이며 동반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수련과 여정 잘 동반하겠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수선해야 하는 자아' 때문이 아니라 '끊어진 연결' 때문이니, 서로 연결되고, 나 자신과 연결되어 나를 만드신 분과 연결되는 시간이 되도록 기도하며 함께 걷겠습니다. 치유적이고 아름다운 이 말.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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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산 중턱에서 바라본 예루살렘 성전 터(2016년11월 JP 찍음)

 

안식월 중인 남편이 전에 하던 대로(전에 하던 것보다 더 자유롭고 간절하게) 아침마다 말씀 묵상 글을 올리고 있다. 약속한 것처럼 아침에 둘이서 말씀으로 만난다. 가끔은 같은 구절을 선택하고 비슷한 묵상으로 겹칠 때가 있다. 남성, 조직신학 등을 공부한 T 목회자의 언어와 여성, 영성을 공부한  F 비목회자의 언어가 대비되는 것이 즐겁다. 두 배로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지난 한 주 동안 인상 깊었던 묵상이다. 나란히 걸어두고 싶다. 

 

마태복음 24:1-14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걸어가시는데, 제자들이 다가와서, 성전 건물을 그에게 가리켜 보였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모든 것을 보고 있지 않느냐?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3 예수께서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실 때에,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다가와서 말하였다. "이런 일들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다시 오시는 때와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말하기를 '내가 그리스도이다' 하면서,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다. 6 또 너희는 여기저기서 전쟁이 일어난 소식과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소문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당황하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은 아니다. 7 민족이 민족을 거슬러 일어나고, 나라가 나라를 거슬러 일어날 것이며, 여기저기서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다. 8 그러나 이런 모든 일은 진통의 시작이다.“
9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줄 것이며, 너희를 죽일 것이다. 또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10 또 많은 사람이 걸려서 넘어질 것이요, 서로 넘겨주고, 서로 미워할 것이다. 11 또 거짓 예언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홀릴 것이다. 12 그리고 불법이 성하여,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을 것이다. 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14 이 하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될 것이다. 그 때에야 끝이 올 것이다."

 

JP 묵상

성전,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때가 올 것인가? 예수께서 그런 날아 올 것이라 하셨다. 그날은 세상 마지막 날일 거라고 제자들은 생각했다. 마지막은 또한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면 그날은 언제인가? 거짓 메시아들의 등장, 전쟁의 소문. 이는 진통의 시작이다성도의 박해, 내부 고발과 갈등, 거짓 예언자들, 서로 분열시키는 식은 사랑...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끝까지 견딘다는 것은 무엇인가첫째, 진짜와 거짓을 잘 분별하는 것이다. 가짜들의 혀에 현혹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분별력이 중요하다. 둘째, 세상 흉흉한 소식이 들려오더라도 담대해야 한다. 전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지역갈등을 부추기고, 편을 가르며, 공포를 조장하여 원수의 낙인을 찍는 행위는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신을 믿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들이 적지 않다. 셋째,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무수한 회유와 협박의 목소리가 우리를 안에서부터 무너지게 한다. 기복신앙인들부터 먼저 무너질 것이다. 신자는 바르게 믿을수록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참 평화를 얻는 것이다넷째, 사랑을 붙잡고 끝까지 사랑편에 서는 것이다. 미워할 일이 많다. 미워할 이유가 많다. 미워해도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최대한, 최선의 사랑을 지키자

 

주님,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바르게 분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두려움에 쫓기는 신앙이 아니라 담대하게 포용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고난 중에 불평이 아니라 감사하는 자가 되고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머무르게 하소서.

 

 

SS 묵상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13)

그대로 견뎌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다. 끝까지 견뎌라. 그러면 너희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구원을 받을 것이다.”(13, 메시지성경)

 

복음이시고,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인데, “디스토피아 선언같다. 한 조각의 희망도 남기지 않고,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허튼 희망이나 긍정성 따위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이것이 진실이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대로 견뎌라고 하신다.

 

토마시 할리크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의 서문이 생각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신앙과 무신론의 가장 큰 차이는 인내다. 무신론과 종교 근본주의와 손쉬운 광적 신앙의 공통점은 우리가 하느님이라 부르는 신비를 너무나 성급하게 함부로 다룬다는 점이다.”

 

전쟁, 기근, 지진... 이 모든 것들을 쉽게 함부로 성급하게 논평하고 속단하며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이들은 무신론자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빠르게 속단하고자 하여 내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두려움이 거짓 지도자들에의 의존을 낳는다. 거짓 지도자들은 오직 자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사람들의 두려움을 담보삼아 자신의 성경해석 능력을 자랑한다. 내 유익을 위해 사람을 반복과 갈등으로 밀어 넣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불법이 성하고 사람들 사이 사랑이 메마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예수님께서 이미 예언하신 일이다. 눈앞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올 것이 왔구나! 여기며 끝까지 견디는믿음을 견지해야 한다.

 

주님, 벌써 이렇게 알려주신 일인데, 제 방식대로 이 땅의 유토피아를 꿈꿉니다. 그저 잘 되고, 좋고, 행복하기만 한 환상을 꿈꾸기에 자주 우울에 빠집니다. 무너질 것이 무너지는 일에 놀라지 않고, 고통당하는 일에 호들갑 떨지 않으며 인내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오늘 하루 살면서 순간순간 성령님 의지하여 참된 인내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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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4주기 추도예배를 뉴질랜드 다녀온 주일에 조금 늦게 드렸다. 엄마 얘기 그만 하려고 했는데, 4주기에 맞춰 글을 쓰게 되었으니 좋은 핑계로 당당하게 다시! 거기 쓴 말을 그대로 다시 경험하는 일이 생겼다. 4주기에 엄마가 여러 모양으로 다시 말을 걸어온다. 나는 매일 엄마를 새롭게 만나가고 있다. 이제는 더 조금씩 알아듣고 있다. 엄마가 나에게 하려고 했던 말을.

 

엄마 없는 하늘, 코로나바이러스 공포와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쓰기’로 숨을 쉬었어요. 그리고 소중한 것을 배웠어요. 슬픔을 드러내면 누군가는 같이 울어준다는 것을요. 물론 위험한 일이었어요. 그만 잊어라, 장수하시고 좋은 곳 가셨는데 뭘 그리 유별나게 구느냐, 믿음의 사람이 천국을 소망해야지... 그런 소리가 이미 들리는 듯했고요. 슬픔 앞에서, 아니 모든 감정 앞에서 다들 어쩔 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허둥지둥 내놓는 위로의 말이 많이들 어설퍼요. 어설픈 말은 ‘아무 말’이 되어 티슈같이 얇아진 슬픈 마음을 찢어내곤 하고요. 엄마, 그래도 내놓기 잘했어요. 상처투성이 알몸을 내보이는 것 같아 부끄러웠는데, 말없이 함께 벗어주는 이들이 있더라고요. 어설픈 말 대신 조용히 자기 흉터를 내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 드문 공감과 연결에 힘을 얻었어요. 슬픔을 쓰고, 슬픔을 내놓고, 몰래 눈물 훔치던 손들을 맞잡고 보니 내놓길 잘했구나 싶어요. 그래서 엄마, 나는 엄마를 잃고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까지는 아니더라도 엄마의 딸로서는 달라졌어요. 무엇보다 이렇게 새롭게 엄마를 만나고 있잖아요. 엄마도 이미 알고 있죠? <복음과 상황> 4월호 기고글 "그리움을 일깨우는 그리움" 중에서

 

연구소 개인상담 신청을 통해 연락해 온 《슬픔을 쓰는 일》 독자 한 분을 만났다.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했지만 어쩐지 만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끌리는 경우가 있다. 그냥 만났다. 별과 같은 이야기와 함께책 표지를 담은 케잌을 가져오셨다. 감동인 것은, 이것 하나를 가져오기 위한 노고와 마음 씀이다. 슬픔으로 가득찬 그 벗님의 눈과 마음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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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쏟아지듯 빛나는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펠로우십교회 리더십 수련회로 시작한 뉴질랜드의 여행이었는데. 첫새벽에 '일단' 보고 말았다. 캠핑장이라 외부에 있는 화장실에 가느라 잠든 남편을 깨워서 나갔다. 혹시, 하고 무심코 하늘을 봤는데 안경도 끼지 않은 눈인데 이미 반짝반짝...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는 남섬 여행 둘째 날에 테카포 호수에서 본 밤하늘! 작은 성공회 교회 하늘 위로 사진에서나 보던 별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남섬 여행 정보를 이렇게저렇게 주워들으면서 존 맥클린의 <Vincent>를 흥얼거리게 되었었다. 엄마 4주기와 맞물려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꾸 흥얼거리다 보니 가사 한 문장만 결국 남았는데, 최대환 신부님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제는 알겠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들(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존 맥클린이 노래한 이 가시 역시 단지 고흐의 이야기이기만 할까. 누군가 떠난 빈자리에서 그 사람의 존재가 더욱 커지고 투명해져, 비로소 우리는 그 존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별 보러 나간 테카포 호숫가에서 꿈같은 저녁식사, 꿈같은 별구경을 하고 돌아온 숙소. 숙소 앞 하늘도 별이 한가득이었다. 그러고 보니 뉴질랜드 도착한 다음 날 밤에 엄마 꿈을 꿨는데. 엄마가 서 있는 곳에 숙소 앞의 벌판 같았었다. 고개를 젖히고 목이 빠져라 바라보다 툭 말이 나왔다.  "엄마, 이젠 알겠어요. 엄마가 나에게 말하려 했던 것을..." 오늘 보는 별빛은 과어의 빛이라고 한다. 별과 별 사이 먼 거리 때문에 이제야 여기에 다다른 오래전 별빛이란다. 심지어 이 순간엔 이미 우주에서는  사라진 별도 있다고. 얼마나 신비로운가, 별빛은... 별은... 영혼은... 엄마와 나의 만남은...

 

여행 출발 직전까지 붙들고 있던 원고가 있었다. "내가 그리은 얼굴"이라는 주제의 <복음과 상황> 4월호 커버스토리 기고글이다. 돌아오니 인쇄된 글이 도착해 있다. 낯선 느낌으로 내 글을 다시 읽었다. 이런 내용을 썼었네... 별은 그리움이다. 그립고 그리운, 그 그리움의 끝이 어디에 닿는지 나는 이제 안다. 

 

엄마와 함께 예원이가 그립고, 예원이와 함께 오래전 천국으로 간 아름다운 청년 한솔이도 그리워요. 한솔이도 잘 지내죠? 엄마,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천국을 그릴 때가 있어요. 그리움은 내 존재에 딱 달라붙어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어요. 그리운 얼굴들을 가까이 느끼는 방법은 그리운 얼굴을 그리워하는 길밖에 없어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한 구절이 자주 생각나요.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엄마를 그리고, 엄마보다 한참 먼저 천국에 가신 아버지를 그리고, 예원이를 그리고, 한솔이를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던 마음이 이제 모든 것을 그리는 마음이 되고 말아요. 그리움이 이끄는 길을 끝까지 가보면 거기엔 늘 나의 하나님이 계셔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천국에 볼모로 잡고 계시는 하나님이었어요. 그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것이 나의 신앙이었는데. 어느 때부턴가 그 하나님이 아니에요. 그리운 모든 영혼들을 가장 빛난 모습으로 품고 계시는 것을 알겠어요. 떠난 모든 이를 향한 그리움은 그분을 향한 그리움에 닿아요. 엄마, 나는 하나님이 그리워요. <복음과 상황> 4월호 "그리움을 일깨우는 그리움" 중에서

 

 

이 노래, 아끼고 사랑하는 버전이 많지만... 오늘은 박정현이 부릅니다.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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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돌아와 일주일이 지나고 보니 뉴질랜드 남섬을 꿈에 봤던가 싶다. 탄성이 절로 터져나오는 大,  大, 大자연에 압도되었었는데, 이제 와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장면은 이 장면들이다. 사진은 대브분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찍은 것이다. 달리면 본 풍경이라는 뜻이다. 저런 장면을 보고 싶었고, 시시각각 옆으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가만히 바라보던 저 풍경, 평화로이 풀을 뜯는 양떼의 풍경이 정말 좋았다.
 
여행에서 각자 역할 분담을 했는데, 유흥담당 '오락부장'으로서 음악에 심혈을 기울였다. 아침 음악, 저녁 음악, 달리는 차 안에서의 음악. 저 풍경 때마다 바흐의 칸타타 BWV 208 "양들을 평화로이 풀을 뜯고"를 듣고 싶었는데. 희한하게 그때마다 인터넷 연결이 좋지 않아서 결국 듣지 못했다. 저 풍경을 바라보면서 꼭 들었어야 하는데...
 
오늘은 비도 오고 하니 목소리 대신 피아노 듀오로 듣는 이 음악이 적절하다. 나의 하루, 그의 하루, 우리의 하루가 평화로운 시간이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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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을 위해 집을 떠나는 남편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 바로 집으로 올 수 없었다. 짧은 안식을 위해 남편과 함께 찾곤 하던 카페에 가서 얇은 책 한 권을 끝내고 돌아왔다. 나는 점심으로 동네에 국수 먹으러 가면서도 가방을 챙긴다. 남편은 늘 어이없어 하며 놀린다. 국수 먹으러 가는데 가방은 왜? 가방 안에 책은 또 뭐야? “아니이… 국수 먹고 카페에 갈 수도 있잖아…” (갈 일 없고, 가능성 제로!)“그냥 애착인형 정도로 생각해줘. 몸 근처에 책이 없으면 불안해서 그래ㅋㅋ"라고 이실직고. ㅜㅜ

책 중독이다. 중독은 늘 어떤 고통스러운 느낌을 피하고자 하는 선택이다. 감정과 영성을 강의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면서, 이렇듯 감정을 피해 책으로 도망치는 짓을 한다. 자주 한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인데 말이다.
 
차 안에서 남편이 묻지도 않은 마음을 꺼내 놓았다. 자신의 감정을 알겠다고.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느끼고 체험하고 있노라고. 수치심, 설교자로 목회자로 살면서 느끼는 수치심을. 죄책감, 마음이 무너진 어머니를 어떻게도 잘 도울 수 없는 것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어떤 분노, 막막한 내일과 함께 오는 불안. 그 모든 감정들을 '느낀다'라고 했다. 안식월을 맞아 쉬러 가는데, 왜 그런 부정적 감정이냐 할 수 없다. 안식이 시작되어 비로소 마주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이다. 반갑고 고맙다. 그 모든 감정 꾹꾹 누르며 역할에 충실했던 시간, 잘 버텼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여기에 더해 나와 아이들을 두고 집을 떠나려니 또 다른 힘든 마음이 된다고 했다. 전에 신대원 다닐 때 월요일마다 느끼던 그 감정이라고. "그건 슬픔이야..."라고 이름 붙여주었다.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실은 나도 그렇다. 채윤이가 일곱 살이었던 그때. 월요일마다 기숙사로 보내고 울면서 음악치료 다니던 그때 그 감정이 문득 살아났다. 슬픔과 함께 그리움이었다. 감정을 만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없는 셈 치고 일에 매진하거나, 무엇에든 몰입하여 산다. 하지만 감정을 만나지 않으면 진실한 나로 살 수가 없다. 50이 된 남자 사람 목사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감정을 만나고, 이름 붙이고, 표현할 수 있다니. 자랑스럽고 고맙다.
 
남편 블로그 제목은 '아픈 바람'이다. "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라는 홍순관 노래의 가사가 대문에 걸려 있다. 거기서 '바람'은 실은 감정이라고 말했다. 맞다. 감정은 끊임없이 바뀌고 스쳐 지나가는 것이다. 내가 붙들지만 않으면, 감정은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흘러간다. 나는 늘 감정을 강물로 표현하곤 하는데, 남편에겐 바람이었구나! 감정을 모른다고, 그래서 공감을 못한다고 평생 구박해왔는데. 남편은 원래 감정의 결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생애 후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자발적 광야에 들어간 남편은 살아서 돌아올 것이다.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수치심에 죄책감에 불안에 분노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그 감정을 만나고 글을 쓰고 성찰하면서 살아 돌아올 것이다. 
 
남편을 보내고 카페에 가서 책 한 권을 뚝딱 하고 온 것은 어떤 감정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였다. 슬픔, 그리움, 연민, 분노, 불안... 이런 복합적인 것들인데. 실은 이 감정들을 피하지 않고 파고, 파고, 파고, 파보면... 그 뿌리는 모두 사랑에 닿아 있다. 그러니 이 불편한 감정들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기도 하다. 불편해서 피하고자 하면 사랑도 잃게 되니, 아픈 바람을 나도 피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헨리 나우웬 신부님이 말하는 것이다. 감정은 영혼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뉴질랜드 남섬, 마운틴 쿡을 향해 가는 후커 밸리 트래킹 중. 그늘 없는 길을 걸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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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월을 맞은 목사의 부활주일 아침 식사...

(귀인이 함께 하는 식사라 풍성해진 것임)

맛있고, 느긋한 베이글연어샌드위치와 제각각의 마실 것...

 

한 달, 고독한 시간으로 떠나는 안식월 맞은 목사의 부활을 기도하며...

(귀인 덕분에 풍성하게 차려주게 되어 다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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