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모든 찻잔 총출동 하는 거실 모임이 있었다. 전통적으로 우리 거실의 시그니처인 커피, 떡볶이, 수다 삼합이 어우러진 좋은 날이었다. 무슨 사골국물 우리 듯 어묵탕용 멸치 육수를 아침부터 불에 올리고 커피잔 꺼내어 식탁에 깔고 보니, "이런 모임 참 좋아하지, 내가..." 설레고 들뜨기 시작한다. 

 

커피, 떡볶이, 수다만 있어도 좋았겠으나. 여기에 더하여 기도가 있었다. 올해는 교회 중보기도 모임에 함께 하고자 마음 먹었다. 남편은 무엇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래라저래라"를 입에 달고 사는 나와 다르다.  교회에서 써먹기 좋은 많은 걸 갖춘 나를 자기 목회를 위한 수단 삼지 않는다. 그런 남편이 교회 일과 관련해 뭘 좀 해보라 할 때는 들으려 하는 편이다. "한나 기도회에서 강의 한 번 할래?" 작년에 이 말을 여러 번 했지만 반응하지 않았다. 내가 아빌라의 데레사로 논문을 썼고, 연구소에서는 침묵 기도, 향심기도를 안내하고 있는데. 중보 기도팀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나?
 
마음의 변화는 다른 곳에서 왔다. 논문으로 쓴 <영혼의 성>으로 타 교회 중보 기도팀에서 강의할 기회가 생겼고, 이후로도 몇 번의 경험이 생겼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통성기도와 침묵기도, 중보기도와 성찰기도가 내 안에서 화해한 지는 오래다. 그런 내 마음을  나보다 먼저 알아차렸을 수도 있는 남편의 제안이었다. 교회 중보기도 모임에는 마음에 진 빚도 많다. 기도의 빚이라 해두자. 기쁘게 이 기도모임에 함께 하기로 했다. 이사도 했고, 사모님 집에서 집들이로 모이자는 제안이 있어서 날짜 잡고 추진되었다. 

 

떡볶이도 해야 하고, 간단하나마 기도회 준비도 해야 하는데... 집에서 모이는 건데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놀게 되면 놀고, 기도하게 되면 기도하자! 몇 가지 준비만 해두었다. 흘러가는 대로 찬양도 하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늘 하던 개인 기도 시간도 가졌다. 할까 말까, 하던 기도가 있었다. 조금 넘치는 일인가 싶어서 주저하다, 치즈 떡볶이 만드는 오븐 돌아가는 시간이 남았다는 핑계로 제안했다. 오랜 시간 남편과 친정어머니와 손주를 돌시던 집사님께서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생명이 다 빠져나간 몸을 하신 어머니를 요양병원 침대에 눕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심정을 알기에... 심장이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나뿐이랴! 거기 모인 모든 집사님들이 겪으셨던, 겪으신 일이고. 결국 그 어머니의 길은 우리의 길이 될 것이다. 가족들의 병시중을 위해 한동안 교회 봉사에서 멀어져 그것도 힘드셨을 집사님을 위로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었다. 여성들이 모여 몸으로 연결되어하는 기도의 힘을 알기에, 그렇게 제안하고 기도했다. 
 
음식 준비를 돕고, 사이사이 사진을 찍어주던 채윤이가 그랬다. "오, 이상한 분위기였어. 일반 가정 집에서 그렇게 기도하고 주술행위 같은 걸 해도 되는 거야?" 좋아서 하는 얘기다. 나도 좋았다. 거실이 눈물의 기도로 가득 채워진 것이 좋았다. 기도의 길을 찾아 헤맬 때 좋은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김영봉 목사님의 <사귐의 기도>를 다시 읽어 보았다. 아, 이렇게 좋은 책이었구나! 머리로 이해한 것을 몸으로 배우는 17, 18년의 세월이었네! 이 책을 함께 읽으며 "한나들"(중보기도팀 이름이 "한나 기도회")과 기도하려고 한다. 주문한 책이 교회에 도착했다며, 저러고 예쁘게 사진을 찍어 남편이 공유해 주었다. 기도는 언제나 옳다. 기도하는 사람에겐 언제나 소망이 있는 사람이다. 커피와 떡볶이와 수다와 함께... 사귀며 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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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에서 새로 시작하는 따뜻한 모임 안내입니다. 이렇게 예쁜 스카프를 내 손으로 뜹니다. 안전한 공간에 둘러 앉아 조곤조곤 뜨개질 이야기, 아무 이야기 나누는 것은 덤.

 



침묵 기도를 위해 자리에 앉으면 '침묵'이란 말이 무색하게 온갖 마음의 비디오가 끝도 없이 돌아가는데요. 희한하게 뜨개질을 하면 모든 생각이 사라진다네요. 그렇게 뜨개질로 '현존 연습'을 하신 뜨개 강사님, 뜨개질로 중보기도 하는 '나무 선생님'의 뜨개 공방을 엽니다.  

"뜨개 깊은 수다"

"깊다"고 해봐야 예쁜 스카프 만드는 뜨개질이고, "수다"라고 하지만 뜨개질 하며 마음 따뜻한 언니들과 잔잔히 나누는 한두 마디 이야기일 것입니다.

간절기에 꼭 어울리는 예쁜 뜨개 스카프를 만듭니다. 똥손도 가능다고 합니다.

일시: 2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5시
장소: 미사 나음터
인원 : 6명(선착순)
수강료: 3만원 (재료비 12,000원 별도_털실과 대바늘)
동반자: <숙희의 실 이야기>의 나무 샘
신청 링크 : https://bit.ly/4hBvwje
문의 : 010-7242-8624 연구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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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잡지 계간 <평신도>  (1) 2025.01.05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꿈꾸며 기도하는 Big Family Day이다. 벌써 가졌어야 할 시간이지만, 특새와 나의 수도원 피정, 그리고 JP의 독감과 후유증으로 늦어졌다. 결국 음력 2024년의 마지막 날에야 마음먹고 모여 앉았다. 처음으로 넷이 아니라 셋이 보내는 Big Family Day이다. 어쩌면 내년에는 셋도 아니고 둘이 될 전망이니... 우리의 Big Family Day도 생의 강물을 따라 흐르며 변하고 있다.
 
2024년 마인드 맵을 그리고, 작년에 쓴 각자의 카드를 읽는다. 2024년을 시작하던 마음과 함께, 살아온 1년을 돌아보며 감사의 기도를 적는다. 2025년을 시작하는 마음과 기도를 적는다. 마인드 맵 한쪽을 현승이 자리로 비웠는데, 여기는 채워질 것 같지 않다. 카톡으로 기도제목만 보내왔다. 
 
그 어느 해보다 조촐하다. 넷 중 하나의 자리가 비었으니 1/4 만큼 허전해야 할 일인데. 온통 허전하고 텅 빈 것 같으니... 존재의 크기란, 영혼의 크기란 무엇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임이 분명하다. 어느 해보다 굵직한 일이 많았던 2024년이다. 현승이는 군대에 갔고, 채윤이는 그렇게 바라던 미국 B 대학의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남편은 생애 처음 안식월을 누렸고, 나는... 나는...  나는 어땠지?
 
넷이 함께 하는 Big Family Day가 다시 올까? 오겠지. 다른 모양으로 오겠지. 가족의 이름으로 넷이 꽁꽁 묶여 지낸 시간이 끝났다. 마땅히 겪어야 할 아쉬움과 슬픔은 일단 받고! (우리 채윤이가 인생의 변곡점에서 남긴 띵언이 있지. "뭘 선택하든 아쉬움을 피할 수는 없어. 선택했으면, 아쉬운 건 아쉬워야지!" 그렇지, 아쉬운 것은 아쉬워하면 되는 거지.) 말할 수 없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두 아이는 나와 남편에게서 나왔고, 우리의 세계에 가둬 키웠는데... 어쩌면 나와 남편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어 있다. 우리보다 크고 우리보다 깊다. (모든 부모들의 존재론적 미안함일 테지만) "해 준 것도 없는데..." 참 멋진 어른이 되었다. 
 
이렇게 자기 인생 길로 떠날 테지만, 부재로 더 깊이 연결되는 가족이 될 것을 믿는다. 현승이의 빈자리가 크고 넓어서 가족이 앉은 자리가 저 삼척의 어느 막사까지  확장시되는 느낌처럼. 부부는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더 큰 가족이 될 것이다.  "호모 코넥투스"라고 이름 지어봤다. 연결된 존재, 영혼으로 더 깊이 연결되어 사랑하고 기도하는 일이 남았다. 
 

2025년 1월 28일, Big Family Day 날에 저무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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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예배에서 미국 성공회 워싱턴교구 마리안 에드거 버드(Mariann Edgar Budde) 주교가 한 설교다. 자비를 촉구하는 용감하고 아름다운 설교,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이다. 

 

마지막으로 간청 드리겠습니다, 대통령님. 수백만 명이 당신을 신뢰해왔고, 어제 당신은 선서를 통해 말했듯 당신은 사랑 많으신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청합니다. 이 나라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민주당원, 공화당원, 무당파 가족들 속에 있는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자녀들 중 일부는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농작물을 수확하고, 사무실을 청소하며, 가금류 농장과 육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식사한 뒤 설거지를 하고 병원의 야간 근무를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시민권이 없거나 적법한 서류를 갖고 있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이민자들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세금을 내고 훌륭한 이웃이며, 우리의 교회, 모스크(이슬람 사원),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구르드와라(시크교 사원), 그리고 절에서 신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간청합니다, 대통령님. 부모가 추방될까 두려워하는 어린이들, 전쟁터와 박해로부터 도망쳐 온 사람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자비와 환대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낯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또한 이 땅에서 한때는 낯선 이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존엄을 존중하며,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고, 서로와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나라와 세상 모든 사람들의 선을 위해서 말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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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실내악(室內樂) / 김현승

잘 익은 스토브가에서
몇 권의 낡은 책과 온종일
이야기를 나눈다

겨울이 다정해지는
두꺼운 벽의 고마움이여
과거의 집을 가진
나의 고요한 기쁨이여

깨끗한 불길이여
죄를 다시는 저지를 수 없는
나의 마른 손이여

마음에 깊이 간직한
아름다운 보석들을 온종일 태우며

내 영혼이 호올로 남아 사는
슬픔을 더 부르지 않을
나의 집이여

 

하염없이 눈이 내리니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이 시간을 덮어버려 명절이 사라졌다. 갑자기 주어진 두둑해진 시간으로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원고와 여러 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근심과 기도를 하면 될 텐데... 갑자기 진공상태가 된 듯하다. 모니터 앞에 앉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키스 자렛의 피아노 소리로 충분한 것 같기도 하고. 뭐든 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클레어 키건의 소설 두 권을 클리어한 남편이 "클레어 키건의 다른 소설도 사면 안 돼?"  하면서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뒤적이는 모습이 보기 좋다. 영상이라도 남겨 볼까? 어... 이 남편, 그새 사라졌네.

 

김현승의 시 <겨울 실내악>에 이 모든 것, 그리고 그 이상이 담겨 있어서 자꾸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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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는 그렇게 많은 야채와 식재료들이 있는데, 장을 볼 때마다 눈에 걸리는 것들은 늘 그게 그거다. 손으로 집어 들기 전에 눈으로 들었다 놨다 하는 것 중 하나가 이 즈음엔 냉이이다. 벌써 맛있겠고, 벌써 향기롭지만... 다듬고 씻는 일이 얼마나 귀찮을까 눈길 몇 번 주다 돌아서곤 한다. 그래도 집어 들게 하는 건 "채윤이가 좋아하니까!"이다. 그런데 솔직히 채윤이만 좋아한다면 사지도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 엄마라면 "신실이가 좋아함"이 어떤 귀찮음을 감수하고라도 음식을 만드는 충분조건이 되겠지만, 채윤이 엄마 신실은 신실이 엄마와 다르다. 채윤이가 좋아하지만 제가 좋아하니까 결국 집어 드는 것이다. 그래서 냉이 두 팩을 사서, 초록초록하게 데쳐서 심심하고 상큼하게 무쳐서 잘 먹었다. 채윤이도 신실이도, 무엇이든 무덤덤한 종필까지 맛있게 먹었다. 이 정도 초록이 맛있게 몸에 들어가면 바로 몸과 마음이 푸르게 피어나면 좋으련만... 독감 후유증 종필, 이틀 연속으로 공연하는 채윤, 이유 없이 마음을 시름시름 앓는 신실 모두 맛있게 먹고는 각자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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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란 신비하다. 침묵 속에서 만나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서도 고유한 성품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말이 아니라 침묵 속 만남이라 더 또렷해지는 존재의 향기일지 모르겠다.  봉쇄수도원의 침묵 속에서, 마음에 한 여인을 품고 왔다. 피정자 돕는 문지기 수녀님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을 하고 "아, 알죠. 개신교인이신 것" 하고 맞아주셨다. 며칠 째였던가, 수도복 아닌 작업복에 장화를 신으시고 털모자를 쓰고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밝고 맑은 얼굴과 목소리로 "식사하세요!"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안아버릴 뻔했다. 식사를 해라 말아라, 기도를 해라 말아라 간섭이 있는 곳이 아니다. 새벽에 있었던 열쇠 해프닝(매뉴얼을 따르지 않는 피정자로 인해 다른 피정자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에 대한 사과 또는 도움 요청은 담당 수녀님들 몫인 것이 안타까운, 그런 일이었다.)에 대한 미안함 또는 고마움을 전하려 함인가?

 

작년 피정에서는 80을 넘기신 노 수녀님을 선물처럼 만났다. 대학원 지도교수님이 쓰신 박사논문이 12세기의 작품인 <황금서간>이고, 그 책을 번역하신 수녀님이시다. 누군지 알 수는 없지만, 같은 공간에서 매일 일곱 번 함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던 차. 선물처럼 면담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봉쇄수도원이니,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만남이었고 내 마음 속에 아직도 생생한 향기로 남아 있다.  <황금서간>, 그 깊고 어려운 고서를 번역하셨기에 다소 젊고 지적인 수녀님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봉쇄수도원에 들어가신지 50년이 넘었다는, 80을 넘기신 할머니 수녀님이셨다. 그때 나눈 몇 마디 대화가 내 어떤 부분을 바꿨고, 여전히 바꾸고 있음이 신기하다. 
 
매 시간 기도하면서 수녀님들은 멀리 앉아 계시고, 모두 같은 옷을 입고 계시고, 나는 안경도 안 끼고 있어서 도통 누가 누군지 가늠이 되지 않으니... 수녀님, 잘 지내셨어요? 1년 만에 또 왔어요. 감사합니다, 수녀님. 여기 계셔주셔서... 마음으로 인사하고 기도할 뿐이었다. 이렇듯 침묵 속에서 마음으로 건네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때로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다. 동그란 얼굴의 귀여운 젊은 수녀님께는 참지 못하고 이름을 땄다. "수녀님, 성함이...?(속닥속닥)" "저희는 세례명이라고 해요. 사라 수녀예요.(속닥속닥)" 사라 수녀님... 기도 자리도 바깥쪽 끝자리여서 잘 보인다. 수녀님들이 들고나고 하실 때마다 축복하며 기도하게 되는데, 특별한 만남의 특별한 수녀님을 위해 특별히 기도했다.  "사라 수녀님의 몸과 영혼이 당신 안에서 행복하게 해 주세요."
 
떠나오는 날 아침에 사라 수녀님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이런 시도 자체가 기도에 분심을 더하는 일이 될까 싶었지만, 일단 쓰기는 했다. 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편지를 전하기는커녕 인사도 못하고 올라왔다. 나타나주지 않으면 만날 도리가 없으니, 이 수녀님도 새를 닮았다. 그대로 집에 가져온 편지이다. 전하지 못한 감사편지는 오래도록  감사의 기도가 될 예정이다.  

 

우울은 사랑이 지닌 결함이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우울은 그 절망의 심리 기제다. 

 

앤드루 솔로몬 <한낮의 우울>을 시작하는 첫 문장이다. 경미한 우울감이 몇 개월 째 이어지고 있다. 피정에 들어갈 때도 여전히 다소 우울했고, 마치고 나올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울감 속에서도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만남과 일들이 반짝이고 있다. 사라 수녀님에게 전하지 못한 감사 편지처럼, 편지보다 더 깊고 큰 감사의 마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낀다. 소장님 보고 싶다는 말이 생각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깜짝 영상을 찍어 전송했다. 모든 감사 인사, 모든 그리움의 인사는 사랑의 인사다. 부치지 못한 감사 편지는 두고두고 긴 감사의 마음이 된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잃은 것에 대해 절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절망의 마음이 우울이라면, 오늘의 이 우울은 내일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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