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 주일 예배는 빈자리가 많았다. 아름다운 일이다. 예배 시작 인사처럼, 노인들만 계시던 시골의 어느 작은 교회의 주일예배가 꽉 차서 풍성할 것이니까. J&W 목사님 부부가 기습적으로 우리 교회에 예배에 함께 했다. 교인이 주로 젊은 사람들이어서 설날 예배를 아예 흩어지는 예배로 정했다고. 형님네 찾아온 동생 가족이다. 내적여정과 오랜 꿈여정으로 W 선생님과 함께 하고, 작년에는 남편 J 목사님까지 내적여정, 꿈여정의 벗이 되었다. 이 만남은 남편에까지 닿아 JP과 함께 <마음의 혁신> 책모임도 하시고, 신소희 수녀님의 기도 강의를 함께 들으며 여정의 동반자가 되었다. 내적여정 동생 가족과 예배 마치고 명절 식사로 파스타를 먹었다. 설날 한 나절 짧은 만남이었다. 어쩐지 진짜 가족을 만난 명절인 듯 마음의 여운이 길다. 보이지 않는 갈등을 감추고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포장된, 흔히 떠올리는 정상 가족, 정상 명절의 모습은 아니지만. 아니어서 더욱 찐인!

종갓집 며느리 우리 어머니는 '명절 루틴'으로 평생 고생을 하셨다. 명절이면 어마어마한 식구가 모이고, 어마어마한 음식을 해야 하고... 한 번쯤 안 모여도 될 텐데, 꼬박꼬박 모여서, 하던 걸 해야 하는 명절 루틴이 어머니께는 고통이었다. 그런 명절이 끝난 지 10 년이 넘었다. 어머니의 며느리인 나의 명절은 '루틴이 없는 것'이 고통이다. 이렇게 모일지, 저렇게 모일지, 누가 모일지, 어디서 모일지... 명절 루틴을 가질 수 없는 아픈 여러 이유가 어머니의 '명절 루틴'에 닿아 있고, 어머니의 전 인생에 닿아 있고, 어머니가 일군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것은 남편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우리 아이들의 인생과 닿게 되니 아플 뿐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니 그 불행의 이유를 명절마다 확인할 뿐이다.  

 

"엄마, 괜찮아? 이따 저녁 준비하는 거랑... 마음이 괜찮아?"

"응, 괜찮은데... 왜?"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야."

안 괜찮을 수 있는 상황인 걸 아는 채윤이의 걱정이 고맙고, 또 안 괜찮지 않은 내 마음이라 나도 다행이다. 내 시작은 '안 괜찮았'으나, 나중은 심히 '괜찮은' 명절이 되어 다행이다. 힘 들이지 않은, 루틴 없는 명절음식은 국적불명이 되고 말았다. 감자 토마토 치즈 구워 먹는 라끌렛 팬에 명절 덕에 생긴 재료를 더했다. 보기 드문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다. 우리가 뭘라고... 목사라고, 선생이라고 명절을 챙겨준 손길에 감사할 뿐이다. 편하게 준비했는데 식탁은 이렇듯 풍성하고 아름답고 말았다. 

 

빠르게 전을 부쳤다. 호박전, 동태전, 육전을 남편, 채윤, 나 셋이 달려들어 빠르게 부쳤다. 어제 아침 현관문을 여는데 앞집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동안 잠시 혼자 명절을 느꼈다. 어머니의 명절을 느꼈고, 우리 엄마의 명절을 느꼈고, 엄마랑 같이 전 부치던 기억에 닿았다. 루틴도 전통도 사라졌지만 몸의 기억이 만들어낸 명절 음식이 되었다. 하길 잘했다. 팬에 데워 먹으니 따뜻한 게 맛있고, 라끌렛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명절.

서로 닮은 모든 행복한 가정들은 그대로 행복하길,

제 각각의 이유로 불행한 가정들, 그 안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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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
이토록 마음에 드는 꼭지 이름, 으로 두 달에 한 번 글을 쓴다.

주일 예배를 축으로 일주일이 돌고, 내적여정과 대학원 학기를 따라서 반년이 돌고, 지도자과정으로 일 년이 굴러가고... 크로노스의 시간을 의미 시간으로 구획 짓는 일들이다. 그중 특별한 주기가 두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원고 마감의 시간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이 즈음 며칠은 수도자 같은 마음이 된다. 일단 원고를 위해 두어 권의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을 읽고, 북마크 포스트잇을 붙이고, 메모하는데 시간을 많이 보낸다. 중요한 글을 위해서 사전에 조금 읽지 않으면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효율을 고려하면 굳이 새로 읽지 않아도 된다. 이미 쓰고자 하는 내용이며 구조는 나와 있어서, 사실 쓰자면 그냥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쓰기 위해서는 읽기 의례를 통과해야만 한다. 주제에 닿고 마음에 드는 신간을 찾아 읽노라면 주객이 전도되기도 한다. 쓰기 위해 읽는 것인데,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원고는 까맣게 잊고 빠져들기도 한다. 2년 여 기고글을 쓰면서 중년, 노년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기획 단계에서 이미 나온 틀이 있고 쓸 말도 내 안에 다 있는데 말이다. 쓰기 전에 읽기, 최 신간 찾아 읽기에의 집착으로 이미 나온 틀이 세분화되고 약간의 깊이까지 생겼다. 원고 쓰고 돈 벌고, 공부하고, 이 모든 과정이 즐겁(기만한 것은 아니지만)고... 일석 몇 조인지 모르겠다.

원고 마감 즈음이 되면 남편을 위시하여 아이들까지 조심 모드를 자처해준다. 그러니 나는 더욱 수도자 코스프레를 하게 된다. 코스프레는 아니다. 정말 마음이 차분해지고, 오직 원고 주제만 생각한다. 책을 읽고, 해 질 녘엔 산책을 하고, 글이 써지면 새벽까지 앉아 있고, 오늘 글렀다 싶으면 어느 때보다 일찍 잠에 든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무덤덤해지면서 일상에서 한 발 물러선다. 그렇다고 글에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에 몇 개씩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든가(요 며칠 그랬다.), 연구소의 자잘한 일을 몰아서 하기도 한다. 연구소 단톡에 한 마디 올라오면 득달같이 답톡을 보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한 방향을 향하는 수도자의 그것이다. 이런 시간이 고통스러운데 즐겁다. 전에는 탈고하는 그 순간을 즐겼다면, 갈수록 이 고통스러운 과정으로서의 시간이 소중하고 좋다. 심지어 아깝다. 고통스러운데 아깝다. 작년 연말에 했던 송년 글쓰기에서 자기를 소개하는 시간에 "글쓰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이렇게 소개하는 게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내가 참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을 쓸 때 가장 나답다 여겨지며, 글을 쓸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삶의 모든 시름을 글로 다스린다. 쓰기 위해 읽고, 읽다 보니 또 쓰고 싶어지고... 끝나지 않을 탈고와 알라딘 주문 넣기와 독서를 오가는 시간을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엄마, 왜 잔소리 안 해?
응?
운동화 치우라고 잔소리 할 때가 됐는데 안 해서.
해도 어차피 안 들을 거니까.
오오, 성장했는데!

엄마는 성장하고 있쪄요... 우쭈쭈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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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는 노래 영상이다. 교회 주일 예배에서 젊은 부부들이 드린 찬양이다. 작년 하반기에 했던  '육아 세미나'를 마친 후 일종의 간증 또는 종강 감사의 의식이었다. 이런 맑은 목소리, 남녀 두 파트 화음의 조화로 듣기 좋은 특송이 오랜만이다. 맑고 조화로운 목소리보다 더 좋은 것은 가사에 담긴 이들의 마음이다. 지난 몇 개월 느슨하고 진솔하게 함께 걸으며 발견한 이들 안에 있는 빛이다. 무엇보다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BGM으로 깔고 등장하는 아기들 얼굴이다. 보고 또 돌려보고, 듣고 또다시 듣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간질거리고 내 안의 좋은 것이 꿈틀거린다.

 

어떤 물질이, 자연이, 만물이, 사람이, 말랑하고 연할 때가 있다. 사람이든 무엇이든 그 말랑한 때는 일종의 골튼타임이다. 모양과 틀을 잘 잡고 싶다면 아직 말랑할 때, 딱딱하게 굳기 전에 매만져야 한다.  막 시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배움과 나눔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시작' 앞에 서면 존재가 말랑해진다. 심지어 귀여워지는 것 같다. 초6이었을 때는 왕초 의식으로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뻣뻣하다가 한 살 더 먹어 중1이 되면 그렇게 귀여워지는 그 신비! 신혼부부와 결혼에 대해 공부하고, 갓 부모가 된 이들과 육아를 배우는 것이 보람이 되고 즐겁다. 몇 년 전에 신혼부부 세미나를 함께 했었고, 이번에 다시 육아 세미나로 만나니 내겐 얼마나 큰 즐거움이었는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러니까 한 존재를 영적여정으로 초대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떠남으로 시작한다. 영적인 여정, 내적인 여정은 고향, 친척,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어머니와 아버지, 가족으로 형성된 나를 떠나서 하나나님 형상을 더듬어 가는 길이 내적 여정이다. 결국 인간 성장의 모든 여정은 여기에 준한다. 부모됨은 말할 것도 없다. 좋은 부모 되기 위해서는 내 부모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배운 것들을 인식해야 하고 털어내야 하고 때로는 사력을 다해 벗어나야 하는 일이다. 때문에 이 역시 내적 여정, 영적 여정이다. 그 마음으로 육아 세미나를 동반했다. 육아의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제의 나로부터 떠나, 내 부모와의 관계로 만들어진 나로부터 떠나 하나님께서 보여주는 땅으로 가는 것이다. 결국은 신앙 여정이다. 

 

어린 시절의 나를 새롭게 만나고, 어머니 아버지와의 관계를 떠올리는 것은 심리적 작업이 아니다. 그로 인해 생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풀어가는 것은 영적 여정이기 때문이다. 남성인 하나님, 우리 부모와 닮아서 매정하거나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하나님을 떠나고 또 떠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품에 다다르는 것 말이다. 한 가정 한 가정, 한 커플 한 커플을 기도의 마음 안에 품었다. 좋은 부모가 아니라, 먼저 좋은 부부가 되길, 좋은 부부가 되기 위해서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에 너그러워지기를. 무엇보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 맺기를.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말랑한 영혼으로 영롱한 목소리로 부른 저 노래대로 되기를. 아이를 통해 투사된 욕망과 두려움을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하지 않고, 갈대상자에 태워 기꺼이 떠나보낼 수 있는 부모들이 되기를. 그 떠나보냄이 아이 삶의 참 주인,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무엇보다 부모들 자신이 자기 부모로부터 떠나 참 부모이신 하나님 품을 향해 성장하기를.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이 영롱한 노래의 반주는 우리 채윤이가 맡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 깊은 곳이 흔들린다. 저들의 노래에 나를 맡겨 나도 우리 채윤이와 현승이를 떠나보내고 또 떠나보내고 그분의 손에 더욱 맡겨야 하겠기에.

 

 

시금치된장국을 끓였는데

새우깡 맛이 난다.

자꾸만 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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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뭇국을 이따만큼 끓여놓고 어딜 갔다 왔더니… 국물은 다 먹어 치웠는데 고명 고기가 반은 남아 있다. 국과 고명, 양 조절 하나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

떡볶이에 그 고기를 다 때려 넣고 내친김에 구운 계란까지 올려서 단백질 폭탄으로 제조했다. 단호박도 잘라 넣었으니, 5대 영양소가 다 들어간 완전식품이 된 것인가?

떡볶이로 여기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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