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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일상

계속 걷기: 네 발로

by larinari 2025. 5. 21.

 
목발 생활, 할만하네! 약속된 강의만 어떻게 해결하면 한 달은 얼마든지 살겠네!... 싶었지. 목요일 밤에 다쳤고, 금요일 오전에 가서 깁스했고, 그리고는 주말이었다. 월요일은 원고 마감 날이었고. 그러니까 금, 토, 일, 월 내내 원고에 붙들려 있었다는 것이다. 화요일 아침 원고를 보내고 나니 그야말로 '현타'가 왔다. 냅다 밖으로 나가 걸어야 하는 시간이었다. 경안천이든, 앞산이든 어디든! 아, 원고가 끝났고 할 일이 없는데 걸을 수가 없다. 목발 생활은 할 만한 게 아니었다. 책이랑 넷플릭스랑 노는 것도 한계가 있지. 
 
열어둔 창문으로 솔솔 바람이 들어오는데 참을 수가 없다. 백팩에 책 몇 권과 커피를 담아 넣고 따아~악 짊어지고 삐걱삐걱 목발을 짚고 나섰다. 멀리는 못 가지만, 동 앞이 바로 예쁜 정원인 걸!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 다리가 아니라 겨드랑이가 아파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가서 앉았다. 얇은 책 한 권을 떼고 들어오는 게 목표였으나, 바람이 속삭이고 멀리 새들이 말을 거는데 책은 무슨! 들어오는 길 힘을 내서 조금 걸었다. 내 발 두 개, 목발 두 개, 네 발로. 
 
쭈그리고 앉아 눈을 맞출 수는 없지만, 다 보였다. 봄맞이꽃, 꽃마리, 민들레, 콩제비꽃. 언제 이런 힘겨운 산책을 해보겠나 싶어서 이 친구들과 인증샷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1층 어린이집 앞에서 귀여워 죽을 장면을 보았다. 나란히 주차된 세단 씽씽카들이라니! 유아차 몇 대도 함께. 
 
네 발 기기... 아니 아니 네 발 걷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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