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한 20여 년 전, 전에 하던 기도로는 신앙을 부지할 수 없어서 방황하던 때 <영혼의 성>을 만나 읽었습니다. 어려운 말은 아닌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가슴 깊은 곳을 울리며 뭔가 있는 느낌이고가톨릭 책이라 생각하니 금서 읽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그 책을 혼자 읽고 또 읽고 필사하며 긴 외로운 시간 보냈습니다. 어느새 함께 나눌 벗들이 하나둘 곁으로 모이더니, 연결된 자매들의 힘을 받아서 논문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높은뜻정의교회 중보기도 세미나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 시작 전 기도생활의 어려움을 나눴는데, 제가 겪었던 부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청원기도로 어제와 다르지 않은 기도 제목을 반복하며 오는 공허감, 무엇보다 더 깊은 기도에 대한 갈망은 강의 들으시는 눈빛으로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타락한 권력으로 교회가 무너져가던 시기, 남자 사제 루터가 말씀을 들고 그 교회를 나오는 개혁을 했다면, 비슷한 시기를 살던 데레사는 자신의 자리에서 기도를 통해 자신을 개혁하고 공동체를 개혁했습니다. 그 기도의 기록이 <영혼의 성>입니다. 진입장벽이 높긴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의 독서법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며, 마치 보석을 채굴하는 것처럼-사실이 그렇다-접근해야 한다.”

 

그러나 저는 어제 강의에서 체험적으로 알아듣는 집사님, 권사님, 형제님들의 눈을 보았습니다. 정재상 목사님의 목회가 참 고맙습니다. 몰랐던 이 오랜 영성의 샘물들을 오늘에 잇대는 목회를 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영성, 영성 목회를 거창하게 표방하지 않고도, 가만히 필요한 일을 하시는 목사님의 행보가 부럽고 감사합니다. 응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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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유다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보편적으로 곡해되는 것은 아닌가. 며칠 전 묵상하다 그런 생각을 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너만 태어나지 않았어도 내가 팔리지 않았을 텐데..."라는 뜻이라거나. 누군가는 예수님을 배신해야 십자가 사건이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걱정. 그렇다면 차라리 유다는 악역일지언정 구원사역에 기여한 것이네, 하는 논평 등. 적어도 내가 아는 예수님의 마음은 그렇게 흘러갈 수 없다. 내가 아는 예수님이 오해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인자가 배반당하는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이것이 전혀 뜻밖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인자를 배반하여 넘겨줄 그 사람은, 이 일을 하느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때, 이미 배반자로 돌아선 유다가 말했다. “랍비님, 저는 아니겠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유다야,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마 25:24, 메시지성경)

 
당신의 운명, 아니 소명이 유다 한 사람으로 인함이 아님을 아신다. (우리도 알지 않나?) 성경에 예언되었고, 전혀 뜻밖의 일이 아니다.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당신 자신도 그 운명을 거스르고 싶어서 겟세마네에서 그렇게 간구하셨지만 결국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실 것을 아신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다의 영혼을 향한 절절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예수님의 길이 있고 유다의 길이 있다. 너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차라리 좋았겠다는 것은, 결코 돌이키지 않는 유다의 영혼, 마지막까지 돌이킬 기회를 제공하시나 끝까지 완고한 유다의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이다. 그렇게 가까이서 예수님과 함께 하고도 결국 천국을 거절하고 마는 그 영혼을 향한 예수님의 절절한 마음이다. ‘이미 배반자로 돌아선 유다’. 돌아선 ‘마음’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지 못하신다. '마음'은 어떻게 못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무능하기로 선택한 사랑이다. 세상 모든 것 다 할 수 있어도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할 수는 없다. 그것이 사랑이다. 우격다짐으로, 강압으로 얻어내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다.

 

이렇듯 완고한 영혼이라니, 그 완고한 영혼에 갇혀 고립되어 있다니... 그러느니 유다야,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시며마음을 열어 당신께 돌아서길 기다리신다그렇게 사랑하신다
 
속는 생각, 속일 생각
 
예수님의 발에 비싼 옥합을 붓는 여인에 분개한 유다가 말했다. “저렇게 한심한 일을 하다니! 이것을 큰돈을 받고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유다는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꿈과 야망을 사랑한다. 그 마음이 사랑이었다면, 존재 자체가 사랑이신 예수님을 몰라볼 수 없다. 3년 내내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그분의 '능력'을 보면서 "자기 꿈"을 키웠을 것이다. 그렇다 유다는 자기 꿈, 자기 이상을 사랑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고 조국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유다야,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라고 하신다. 무력하게 말씀하신다. 이 무력한 사랑은 아픈 사랑이다. 가장 큰 사랑이다.
 

예수님, 오늘도 제게 말씀하십니다. 신실아,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천국의 언어로 포장한 저의 마음을 꿰뚫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제 자존심을 세우고, 저의 에고를 드높이는 일을 두고
당신을 사랑하여 하는 일이라고 착각하는 제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하시면서 저 자신에게 속고 있는 저를 일깨우십니다.
제 꿈과 이상을 사랑하면서
당신을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제 마음을 정조준하여 말씀하십니다.
신실아, 나를 속일 생각을 마라.
무력하게 온유하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알아보는 순한 마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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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네 명!" 4기 동반자 과정 준비하면서 내 마음에 자주 오르락내리락했던 말이다. 연구소 선생님 셋이 모두 소장이다. 책임감, 자발성, 내면화된 연구소의 정신까지 모두 소장이다. 그 마음으로 일을 하니, 소장인 내가 "이렇게 가벼워도 되나?" 싶게 4기를 개강 준비를 하고, 개강 첫날을 지냈다. 연구소 선생님 셋, 듣고 배우고 연결되려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함께 해준 일곱 분의 동반자 선생님들은 선물이다. 오늘이라는 그릇에 담긴 선물이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소중히 받고자 한다. 이분들의 지도자 아닌 동반자로 지낼 시간을 참된 지도자이신 그분께 맡긴다. 페이스북에 쓴 글 가져다 놓는다.

 

네 번째, 상처 입은 치유자들

4기 동반자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지도자 과정이라 불렀는데, 한 해 쉬면서 제 이름을 찾았습니다. 마음의 여정, 영적인 여정에 지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함께 걷는 친구, 동반자죠.

시간과 엄청난 마음의 에너지와 돈을 들여 나는 왜 여기 있는 것일까? 일곱 분 선생님들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를 말과?” 글과 손으로 드러내 주셨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소중해서 차마 몇 둘로 정리가 안 됩니다.

각자 상담과 공부로 쉴 틈 없는 연구소 식구 넷은 4기 동반자 선생님들을 동반하기 위해 '기쁨과 설렘의 초긴장' 상태로 두어 달을 보냈습니다. 개강날 지내고 모두 하아~~~ 기쁨과 안도와 설렘의 긴 숨을 내쉬었고, 떡실신의 밤을 보내고, 여독을 푸는 사람들처럼 하루를 보냈고요. 늘 그렇지만, 최고의 수혜자는 동반하는 저희들입니다. 저 자신입니다.

에니어그램 강사로, 영적 여정의 동반자로 구비시켜 드리기 위해 부드러운 채찍과 쓰디쓴 당근을 적절히 드리겠습니다. 강사이며 동반자,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수련과 여정 잘 동반하겠습니다! 우리의 고통은 '수선해야 하는 자아' 때문이 아니라 '끊어진 연결' 때문이니, 서로 연결되고, 나 자신과 연결되어 나를 만드신 분과 연결되는 시간이 되도록 기도하며 함께 걷겠습니다. 치유적이고 아름다운 이 말.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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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새, 새소리는 내게 현존하라는 메시지이고 현존은 다름 아닌 그분을 향한 깨어남이다. 어느 순간, 어디에서나.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일도 비슷한 표상이다. 이제 침묵의 새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저 잔에 커피를 내려 마시면 커피 향에 새소리, 그리고 가만하고 착한 아름다운 사람까지 떠오르니... 이건 잔이 아니라 하나의 마음이다. 

 

저 잔에 커피를 마시고 산책을 나갔다. 새들의 서식지도 아닌데 귀를 사로잡는, 박새로 추정되는 새의 소리이다.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오래오래 올려다보며 들었다. 한참 듣다 폰카메라를 들어서 촬영을 하고, 그리고도 한참 서서 듣는데도 그 자리에 앉아 긴 노래를 불렀다. 작고, 가만하고 착한 새이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독수리가 그리 강한 새가 아니라고 한다. 힘과 권위를 표상하기 때문에 여러 나라와 지도자들이 문장으로 삼는 것이 독수리인데. 실제로 독수리의 울음 소리는 귀엽다고 할 정도로 작은 소리에다 그 멋진 비상 역시 힘찬 날갯짓이 아니라 최대한 바람에 몸을 실어 나는 게으른 방식이라는 것이다. 강한 부리와 발톱 때문에 먹이를 포획하는 데는 빠르지만 제 영역을 지키는 데는 그리 신통치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작은 새들이 더 강하다고 한다. 

 

우리 인간은 너무나 자주 힘과 용기를, 그리고 권력과 용맹함을 혼동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다. 새를 관찰해보면 오히려 작은 새들이 자신보다 훨씬 큰 상대에게 용기 있게 대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은 큰 소리와 함께, 깃털을 최대한 부풀리고, 강하게 날갯짓을 함으로써 누가 봐도 더 강해 보이는 적을 뒷걸음치게 만든다. 제비갈매기가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자신의 영역 위로 날아오는 갈매기를 어떻게 내쫓는지 보자(제비갈매기는 갈매기보다 몸집이 작다). 부리로 어찌나 맹렬하게 공격을 하며 달려드는지, 갈매기는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 또 주목할 점은 전혀 화려하지 않은 깃털을 가진 새들이 자신의 영역과 새끼를 잘 지켜낸다는 점이다. 반면 멋진 깃털을 뽐내는 수컷은 위험이 닥치면 몸을 숨기기에 바쁘다.  《새들에 관한 짧은 철학》 66쪽

 

작고 화려하지 않은 새같은 사람이 있는데, 세상을 위험하고 무서운 곳이라 여겨 도망치고 숨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꿈이 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속일 수 없는 진실인데. 그의 꿈이 그렇게 말한다. 허둥지둥 도망치는 것 같지만, 이래라저래라 훈수 두며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에게 당하고 말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들어주고 당해주는 것 같지만 가만히 바라보면 빈틈을 찾아내고 적시에, 정확하게 찌르는 힘과 판단력이 있다. 그 힘을 막무가내로 공격적으로 쓰지 않는다. 상대가 누구라도, 행여 대적해야 할 상황이더라도  가만히 공격하여 꽃봉오리 지듯 떨어트린다. 이제 그가 자신의 힘을 믿을 때가 되었다.(꿈의 내용이다) 자신의 가만한 힘을 믿어줄 때가 되었다고 꿈이 말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면서 들었다는 노래의 가사가 이렇다. 저 잔에 커피를 마시고 나가서 만난 새가 오래도록 불렀던 노래의 가사가 아마도 이랬던 것 같기도. 

 

나의 은총을 입은 이여 너를 아노라 
너의 마음을 내가 아노라
나의 사랑을 아는 이여 함께 가노라
내가 친히 함께 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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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보름달-그믐달로 여성의 영적 발달을 설명하는 박정은 수녀님의 사려 깊은 수다를 길잡이 삼아 달빛학교라는 이름의 여성 영성 모임을 진행했다. 30대 비혼 청년부터 60대 권사님까지, 삶의 배경과 신앙의 컬러까지 다양한 일곱 명의 여성과 함께했다. 연구소나 상담소의 프로그램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집단이다. 교회니까, 교회라서 가능한 비균질 집단인 것 같다. 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는 생애 주기에 따른 일상영성 세미나 인생의 빛 학교중 하나다.

 

6회기라는 짧은 만남으로 대단한 무엇이 손에 잡힐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다양한 분들이 교회 언어를 잠시 내려놓고, 일상의 언어로 여성적 삶을 나누면서 순간이라도 성령의 숨결을 체험한다면 그것으로 족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사려 깊은 수다를 텍스트로 내걸기는 했지만, 책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수다, 사려 깊은 수다였다. 커리큘럼도 미리 확정하지 않고 한 주 지나며 그다음 주제를 고민해서 나누는 식으로 준비했다.

 

마지막 모임은 그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여성, 상징, 리추얼이 주제어였다. 세미나 기간 중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다녀오신 벗님 한 분은 미술사를 전공하신 전문가였다. 달빛학교에서 나누고 떠올린 이야기를 품고 여행을 떠나셨고, 빈 미술관에서 만난 피터 브뤼헐의 깊은 영성적 체험을 안고 돌아오셨다. 그림과 함께 그 체험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드렸고, 기꺼이 나눠주신 나눔과 함께 여성, 영성, 연결을 주제로 한 리추얼로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었다.

 

매시간 먹을 것, 나눌 것이 풍성한 모임이었다. 여성들 모임에서 자발적인 나눔으로 흘러넘치는 생명력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본설정이다. 좋기만 했다는 뜻은 아니다. 세대, 신앙의 컬러, 경험의 차이는 순간순간 긴장의 요인이 되었고,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으로 인해 나는 더욱 낮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끌게 되었다. 고민 끝에 영적 전통 안의 기도를 일상의 기도로 단순화하여 가르치고 배우면서 마쳤고, 결국 좋았다.

 

작고 실제적인 체험의 신비와 영성은 하찮게 여기는 풍조, 껍데기와 종교적 포장지만 남은 것 같은 제도교회에 대한 기대가 시들해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못난 울 엄마같은 교회를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 또한 진실이다. 그 마음 사이를 오가며 기도하고 공부하는 중 영성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제도교회와 남성적 신학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 면도 있다. 교회는 영성을 담아주는 제도적 그릇이 되고, 영성은 교회의 제도적 측면이 생명력으로 풍성해지도록 보완하며 함께 가야 하는 것으로.

 

달빛학교, 이 체험적이고 여성적인 교회가 내게는 일종의 교회를 향한 희망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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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사무엘 기도했어요 나도 할래요 나도 할래요
어린 사무엘 교회 갔어요 나도 갈래요 나도 갈래요
 
어릴 적 배운 이 찬송이 아주 또렷하게 마음에 남아 있고 가끔 울리고 있다는 것을 기도 중에 깨달은 적이 있다. 아, 내 평생 가장 잘하고 싶었던 것은 글쓰기도 아니고, 강의도 아니고, 엄마 노릇도 아니고... 기도였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다. 이 논문은 머리로 정리해낸 기도이다. 논문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우리 모두 기도를 갈망하는 존재라는 것. 기도 제목으로 무엇을 구하고, 응답받는 데 만족할 수 없는 목마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그랬던 많은 분들이 있었고, 우리는 어쩌다 그 소중한 유산들과 단절되었다는 것이다. (아, 종교개혁의 득과 실이여!) 도서관 어느 구석에 꽂혀 먼지나 뒤집어 쓰고 있지 않도록, 좀 알려야겠다. 논문의 구조, 문장, 내용의 깊이… 모든 것이 많이 부끄럽기는 하다. 논문이라기보다는  『영혼의 성』에 대한 긴 서평이라 하는 편이 낫겠다. 논문을 통해 알리고 싶은 것은 『영혼의 성』이다. 기도하며 행동하던 한 멋진, 매력있는 여성이다. 아래는 논문 일부, 그리고 논문도 공유한다.
 

『영혼의 성』은 기도 체험 안에서의 심리적 변화, 즉 자기인식과 자기 획득, 그리고 자기 초월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에 도달하는 과정이 잘 드러나는 저작이다. 탈혼이나 환시 같은 신비체험을 기도 안에서의 자기 초월 현상으로 본다면, 『영혼의 성』에서 자기 초월은 6 궁방에서 비로소 등장한다. 그 이전의 궁방들에서는 물론이고 초자연적 경험이 드러나는 6 궁방, 그리고 하나님과의 연합이 일어나는 7 궁방에서도 ‘기도하는 자아’인 데레사 자신의 자기인식이 한결같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자기인식의 끈을 놓지 않고 내면으로 향하는 『영혼의 성』의 기도가 영적 전환기를 맞은 개신교회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을 기대한다. 현대 개신교의 대표적인 영적 거장이라 할 수 있는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 1935-2013)와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 1932-2018)은 자신들의 영성생활에서 새로운 길을 내준 기도작가로 공히 아빌라의 데레사를 꼽는다. 데레사의 기도체험 자체는 물론이고 그 체험을 정직하게 분별력 있게 다루고 남긴 글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진지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안내한다는 것이다.

 

* 달라스 윌라드는 저서『잊혀진 제자도』에서 부록으로 붙여 『영혼의 성』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내가 아빌라의 데레사(Teresa of Avila)의 『영혼의 성』을 처음 공부한 것은 20여 년 전, 성경에 나타난 영적인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이해하고 실천하고 전달하려 다년간 노력한 후였다. (…) 이 책과 저자는 즉시 내 삶에서 하나님의 독특한 임재가 되었다. 이 책에는 하나님과의 살아 있는 관계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는데, 내가 전에 어디서도 보지 못한 내용이었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십중팔구 나처럼 신선한 충격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 당신은 데레사가 영적인 삶의 확실한 거장이며 그 영성 신학이 놀랍도록 깊고 풍부함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는 답답함이나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전혀 없다. (…) 이 책의 독서법에 대해서 한마디 하고 싶다.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으로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며, 마치 보석을 채굴하는 것처럼-사실이 그렇다-접근해야 한다.” Dallas Willard, The Great Omission: Reclaiming Jesus's Essential Teachings on Discipleship,『잊혀진 제자도』, 윤종석 역 (서울: 복있는사람, 2021), 287쪽.

 

* 유진 피터슨은 『내 영혼의 방들-영적 성숙의 일곱 단계』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루터와 칼뱅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성경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가르쳐주었다. 그들에게 신앙개혁이란 기본적으로(전적으로가 아니라) 올바른 사고와 교리, 바른 성경 해석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레사와 성 요한은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다. 그들은 영혼의 문제에 집중해 진지한 기도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회복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삶을 개혁하고자 노력했다. (…) 루터와 칼뱅이 산지에 사는 사람으로서 산 위에서 넓은 지평선을 바라보았다면, 테레사와 요한은 마을 사람으로서 밭을 갈고 시장에 다니며 요리를 했다. 그들은 나로 하여금 주위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을 존귀하게 여기고, 매일의 삶에서 기도의 감미로운 신비에 빠져들도록 도와주었다.” R. Thomas Ashbrok, 박동건, 『내 영혼의 방들-영적 성숙의 일곱 단계』(서울: 항상기도, 2009),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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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특출한 은사를 열망해 보십시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그리고 당신 자신이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한 하나의 독방이 되십시오. 당신의 두 독방 중 하나는 외적 독방이 되고, 다른 하나는 내적 독방이 되도록 해 보십시오. 외적 독방은 당신의 영혼이 육신과 함께 거처하는 집이고, 내적 독방은 당신의 양심이 있는 곳인데, 그곳은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보다 더 깊은 내적 독방으로서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혼과 함께 사시는 장소입니다.

 

 

장소는 바꿀 수 있을지 모르나 영혼은 바꿀 수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자기 자신은 변함없이 끌고 다니며, 옮겨 다니는 자체가 더 악화시킵니다. 마치 병자를 이리저리 끌고 다녀서 흔들어 놓으면 병세가 더 악화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내적 독방을 사랑하십시오. 물론 외적 독방도 사랑하고, 그에 합당한 보살핌을 해 주어야겠지요. 외적 독방은 당신을 숨겨 주지는 않더라도 보호해 줍니다. 당신이 남몰래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좀 더 안전한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경험이 없는 독방의 주인이여, 당신은 모릅니다. 당신이 독방을 얼마나 고맙게 여겨야 하는지!

 

 

먼저 자신의 몸을 확고하게 한곳에 정주시키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의 대상에게 집중시키는 게 불가능합니다. 누가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영혼의 병을 피하려 한다면, 그런 사람은 자기 몸의 그림자를 피하려는 사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오히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마음을 쓰고,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여러분을 모방하려고 거룩한 결심을 하고 후대에 오게 될 사람들까지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 인용문은 모두 생 티에르 윌리엄의  <황금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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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닮게 창조된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우리 영혼의 재료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설정이고 하나님 닮음의 증거입니다. 12세기 영성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단계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나를 위하여 나 자신을 사랑한다.”
두 번째,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
세 번째,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
네 번째, “하나님을 위하여 나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의 시작, 유아적인 사랑의 단계에서는 오직 나를 위한 사랑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신앙은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될지 모르겠습니다. 나를 돕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 누구시고 내가 누구인지 체험이 깊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어떠하심 때문이 아니라 그분 그 자체로 사랑합니다. 그리고는... 죄인 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봅니다.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신뢰하기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합니다.
 
에니어그램은 사랑 안의 성장에 관한 것입니다. 자기 사랑이 자기 함몰에서 끝나지 않고, 하나님 사랑에 닿아 자기 개방과 자기 증여로 이어지는 여정이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입니다. 2024년도 상반기 내적 여정에 초대합니다.
 

[대면 과정 일정과 신청]

 
✔ 일정 : 대면, 단계별 1회 6시간
✔ 장소 : 미사 나음터(하남시 아리수로 570 101동 824호)
✔ 인원 : 6명
✔ 비용 : 13만 원(점심과 커피 제공) / 단계별
✔ 문의 : 010-7242-8624
 
기본 1 : 2월 16일(금) 10:00-17:00
신청 http://bit.ly/47hVPoY
기본 2 : 3월 8일(금) 10:00-17:00
신청 http://bit.ly/48Dhmte
심화1 : 4월 12일(금) 10:00-17:00
신청 http://bit.ly/3NMqsfl
심화2 : 5월 10일(금) 10:00-17:00
신청 http://bit.ly/48pQWvl
영성 : 6월 7일(금) 10:00-17:00
신청 https://bit.ly/3rm7qib
 

[온라인 과정 일정과 신청]

 
✔ 일정 : 비대면, 단계별 2회 총 6시간
✔ 장소 : 온라인 Zoom
✔ 인원 : 12명
✔ 비용 : 12만 원 / 단계별
✔ 문의 : 010-2771-4445
 
기본 1 : 2월 3일, 17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6BEoTi
기본 2 : 3월 2일, 9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amjgSC
심화 1 : 4월 6일, 13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YAzYbe
심화 2 : 5월 4일, 11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2NMwOz2
영성 : 6월 1일, 8일(토) 10:00-13:00
신청 https://bit.ly/3q8Go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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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Lectio Divina와 함께 한 꿈여정 5주를 마쳤습니다.
제국의 포로였으나, 그 정체성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존귀한 백성이라는 영적 신분을 잊지 않았던,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노라 뜻을 정했던 다니엘. 그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뛰어난 지혜에 더하여 꿈을 해석하는 지혜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한 벗님의 말씀처럼 다니엘은 바벨론의 “책상은 받지만, 밥상은 거부하는” 선택으로 경계에서 자신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에고의 포로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우리도 꿈여정에 초대받았습니다. 꿈을 통해 모르는 내 마음을 알고, 내 마음에 거하시는 성령의 메시지에 귀 기울이려는 우리도 다니엘과 한마음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밥상과 책상,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다 가지겠노라 애쓰며 꽉 쥔 손의 힘을 빼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니엘서 묵상과 함께 벗들의 꿈을 나누는 특별한 5주간의 여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마치면서 우리는... 임금의 법과 하나님의 법 사이에 끼어서, 조서에 임금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늘 하던 대로! 기도의 다락방으로 가는 다니엘처럼 내면의 방으로 들어가 기도함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잘 살겠다’ 가만히 다짐했습니다. 잘 사는 것은 나답게 꽃피우고, 하나님 형상의 거룩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적여정은 기도의 여정입니다.
영성이란 언제나 사랑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랑 안에서의 성장입니다.

 
 
라고 연구소 SNS에 후기를 올렸다. 꿈작업, 그 어떤 집단상담보다 좋고! 마음으로 읽고 새기는 하나님 말씀 Lectio Divina, 그 어느 때보다 달고 오묘한데! 꿈작업과 말씀 묵상을 함께 하니 말로 할 수 없이 좋았다. 심층심리학과 영성이 내 안에서 깊이 연결되고 하나 되는 느낌이다. 마침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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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말고 살자는 것이 나름 정한 실천적 신앙 덕목이다. 주께로부터 온 모든 것은 사람을 경유한다는 것을 안다. 고마운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것이 악을 이기는 능력임을 살수록 깨닫는다. 선한 힘이 이긴다.

 

논문 쓰느라 힘들었지만,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었다. '감사의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이 논문은 기도에의 갈망에서 온 것이고, 기도는 엄마가 물려준 유산이다.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은 감사의 마음이다. 어디 이 분들 뿐이랴... 어디 논문에 관한 일 뿐이랴... 지금 누리는 이 평화를 위해 하나님께서 곁에 두신 사람들, 그 모든 이들을 인해 감사하는 새해 아침이다.  

 

감사의 글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어머니의 찬송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기도의 유산을 남겨주신 나의 어머니 이옥금 권사님의 영전에 이 논문을 바칩니다.

 

오래전, 향심기도와 함께 『영혼의 성』을 소개해주신 이대근 신부님 감사합니다. 그때 심긴 씨앗이 열매가 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연구하는 여성의 본을 보여주시는 신소희 수녀님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정태영 신부님께서 지도 교수님이 아니셨다면 쓰지 못했을 논문입니다. 겸손하게 지적하시고, 고요하게 재촉해주셔서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며 쓸 수 있도록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영적인 벗들, 최은경 선생님, 김하정 선생님, 민다슬 선생님. 학업과 연구가 벽에 부딪힐 때마다 한마음으로 기도해주고 때로 읽어주고 들어 주셔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담을 넘어 가톨릭학교에서 영성을 공부하겠노라는 뜻을 기꺼이 수용하고 응원해준 남편 김종필, 좋은 남편이며 착한 목사인 당신 덕에 오늘의 제가 있습니다. 우리 채윤이 현승이, 공부하는 엄마를 좋아해 주고 배려해줘서 고마워. 너희가 너희답게 살아가는 게 엄마에게 가장 큰 힘이야.

 

사랑하는 나의 주님, 이 모든 이들로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셨습니다. 데레사 수녀님처럼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Sólo Dios Basta)’ 인생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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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해서 하는 포스팅이다. 논문을 썼다. 다 썼다. 다 쓴 지가 한참이다. 쓴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논문심사를 필두로 여전히 논문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사연은 구구절절이다. 탓을 하려면 나를 탓해야 한다. 영성 공부를 위해 굳이 가톨릭학교로 가야 하는 나, 내 탓을 해야지. 책임전가를 할 곳은 언제나 있다. 굳이 거기까지 보내시는 그분.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끼워둔 그분을 탓하면 딱 좋은데...  "니가 갔잖아??!!" 하시면 딱히 할 말도 없고.

 

지금은 제출, 반송, 재제출, 반송, 재제출... 논문 온라인 제출 단순노동 놀이를 하고 있는데. 할수록 우울해지는 놀이이다.

 

논문 탓이 아닐 수도 있다. 해마다 이때면 아무 일 없어도 우울해지고, 억울해지고, 슬퍼지고, 텅 비고... 좀 그런 때니까. 12월 16일은 아버지 추도식 날이다. 인생 "치명적 잃어버림의 날". 42년 전 놓친 아버지의 손을 찾아 여기까지 왔다. 그 잃어버림이 이제 낯설지도 않고... 심지어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다. 오늘의 나를 만들고 만 '상실'이니까. 아버지 손을 찾다, 기도의 길을 찾다 여기 이 끼인 자리까지 왔으니까. 

 

논문 초록 붙여본다. 우울해서. 이거 읽고 누가 "논문 기대된다!"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사진은 논문을 가지고 했던 연구소 5주년 특강 장면이다. 진행 상시간이 부족해서 하려던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그것도 우울한 이유 중 하나. 아빌라의 데레사와 내가 닮았다고, 남편이 논문 쓰는 내내 말했다. 이 사진은 뭔가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초록

 

‘탈종교’라는 시대적 물결과 함께 교회 ‘안 나가’기로 작정한 그리스도인, 일명 ‘가나안’ 교인이라는 언표가 통용된 지 10여 년이 되었다. ‘영적이긴 하지만 종교적이진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은 2023년의 한국 기독교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주요 용어 중 하나이다. 가나안 교인 현상의 내적인 면을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외적으로는 부패한 교회와 타락한 목회자에 대한 실망으로 교회를 떠나지만, 내적으로는 제도 교회 너머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으로 ‘영적인 감각’에 민감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시대적 영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영성의 전통 안에서 기도의 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다. 아빌라의 데레사가 쓴 『영혼의 성』을 영적 위기의 시대를 살았던 ‘한 여성의 기도체험 기록’으로 바라보고, 기도 안에서 일어나는 자아의 변화, 그로 인한 영성생활의 변화를 탐구하였다. 『영혼의 성』에서의 기도는 내면 중심에 계신 하나님을 향한 여정이며 동시에 내적 자아를 만나가는 과정이다. 『영혼의 성』의 일곱 개의 궁방에서 기도하는 자아는 여러 어려움과 고통을 겪는다. 이 고통과 어려움은 극적 신비체험으로 일거에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7 궁방에 이르기까지, 기도하는 사람 데레사는 자아 인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즉, 기도 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마주하고 기록한다. 그 여정에서 자아 인식은 변화되고 새로워지는데, 궁극적으로 삶의 정향이 달라지는 회개(metanoia)의 체험이다. 『영혼의 성』의 기도가 오늘에 주는 교훈은 첫째, 기도의 내면성과 자기인식의 중요성이다. 통성기도, 즉 밖으로 크게 소리 내어 드리는 기도는 개신교의 자랑이며 동시에 한계이다. 시대의 영적 요청을 받는 개신교회의 기도는 『영혼의 성』을 통해서 밖을 향해 부르짖는 기도에서 침묵을 통한 내면성의 기도로 안내받을 수 있다. 또 기도를 통한 영적 성장은 투명한 자기인식의 길과 함께 가야 한다는 점이다.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지금 여기서 마주하는 고통과 인간적 욕망이 영혼을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명확하게 바라보고 성찰하는 것 또한 오늘에 필요한 기도라 할 수 있다. 둘째, 내면을 향하여 깊어진 기도는 도덕적 영적 삶의 열매로 드러나고, 기도 안에서 내내 놓치지 않은 자기인식은 자기함몰이 아니라 이타적 사랑이 되어 이웃을 향한 자기 개방이 된다. 셋째, 기도하는 사람들의 교회 일치에 대한 소명에의 확인이다. 데레사가 살았던 16세기 스페인의 시대적·영적 상황은 오늘의 시대, 특히 개신교의 영적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회와 종교권력자들은 타락했고, 그럴수록 대중의 영적 갈망은 깊어져 간다. 30여 년 차이로 동시대를 살았던 마틴 루터와 아빌라의 데레사, 이 두 사람의 외적 행보는 달랐다. 하지만 무너져가는 교회와 혼탁한 영성의 시대에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영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선조들의 기도로부터 배울 때, 오늘 여기의 기도는 교회 일치라는 자연스러운 열매로 맺히게 될 것이다.

 

논문 제목 : 기도 안에서의 자기인식과 영적 변화에 대한 연구:『영혼의 성』을 중심으로

 

그리고 데레사 성녀의 자작 기도문, Sólo Dios basta

 

그 무엇에도 너 마음 설레지 말라(Nada te turbe)
그 무엇에도 너 무서워하지 말라(nada te espante)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todo se pasa)
님만이 가시지 않나니(Dios no se muda)
인내함이 모두를 얻느니라(la paciencia todo lo alcanza)
님을 모시는 이(Quien a Dios tiene)
아쉬울 무엇이 없나니(nada le falta)
님 하나시면 흐뭇할 따름이니라(Sólo Dios basta)

 



송구영신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관성대로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입니다. 카이로스(Kairos)는 의미의 시간입니다. 멈춰 성찰하여 의미를 건져 올리는 시간, 그분의 시간일 것입니다.

송년회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들과 송년 파티, 선물교환, 맛있는 음식과 와인파티 같은 걸 그려보게 되네요. 해마다 나음터가 여는 송년회는, 글로 하는 송년회입니다.

바쁘거나 귀찮아서 돌아보지 않았던 ‘나’에 고요히 머무르면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누려봅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분과 함께요. 우주를 운행하는데 바빠서 도통 나 같은 사람에겐 신경을 못 쓰시는 하나님, 송구영신 예배 말씀 뽑기 시간에 잠깐 오셔서 ‘내년의 말씀’ 하나를 점지하고 떠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날 모든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나와 떨어진 적 없으신 분을 글로 더듬어 찾아봅시다.

온라인에서 만나 함께, 그러나 홀로,
글로 나를 돌아보는 송년회에 초대합니다.
글 잘 쓰는 사람 못 쓰는 사람 모두 환영입니다.
일 년 동안 일기 한 줄 안 쓰시는 분, 특별히 환영합니다.

✔ 일시 : 12월 26일(화) / 27일(수) / 29일(금) 오후 8시~10
✔ 인원 : 각 10명(선착순)   ✔ 장소 : 온라인(zoom)
✔ 수강료 : 2만 원  
✔ 동반자 : 정신실 소장
✔ 문의 : 010-2771-4445
✔ 신청 링크 : https://bit.ly/2TAwI0C 

 

* 2021년에는 한 번, 2022년에는 두 번에 나눠서 했는데, 올해는 세 번을 계획했습니다. 편한 날짜에 신청하시면 됩니다. 말 그대로  "함께, 그리고 혼자" 하는 시간이라, 나눔은 많지 않고 홀로 돌아보면 쓰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2023 홀로 글로 송구영신

2023년 나음터 '글로 하는 송년회' 신청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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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야 할 원고가 있어서 산책은 미루고 있는데, 고맙게도 직박구리가 찾아와 주었다. 만나야 할 사람이 약속 장소에 나오질 않으니, 이 열정 넘치는 애인은 집까지 찾아온 것이다. 요리조리 고개를 돌리고 자리를 옮겨 앉으며 마음을 전하다 후루룩 또 날아가 버린다. 이 애인은 항상 더 소중한 애인의 메시지를 끌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베란다 화분 걸이에 먹을 것도 없는데 자주 새가 날아든다. 여름에는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조심조심 맞아야 하고. 이즈음엔 좀 요란을 떨며 사진을 찍고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다. 날아든 새을 바라보는 나를 바라보는 JP가 새와 나를 함께 찍는다. 바보! 날 보지 말고 새를 봐야지. 정신실 밖에 모르는 바보... ㅎㅎ
 

 

하루 종일 집에 있는다고 그분의 메시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서쪽으로 난 창 앞에 서서 저녁 준비를 하다 보면 붉은 노을이 하늘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다. 주께서 사랑하신다,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러면 그 앞에서 멈추고 바라보며 편지를 읽어야 하고. JP는 또 그런 나를 찍는다. 전방 후방이 사랑이다. 시편 104편이 우리 집 앞뒤에 펼쳐져 있다.
 
윌리엄 배리 신부의 말이 백 번 옳다. 느껴서 인정하는 옳음이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이렇게 하늘이 내게로 온다. 
 

모두가 시인이 될 수는 없으나 거의 모든 사람이 가을 단풍잎에 내리쬐는 햇살에 황홀해하고 석양이나 일출에 깊은 경이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만든 작품에 관심을 보이며 그것을 바라봄으로써 그 예술가와 관계를 맺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관상함으로써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예술가들은 사람들이 그들이 만든 작품에 관심 가지기를 바라며, 그들이 작품을 바라보는 것을 즐기고, 그 작품 앞에서 웃거나 한숨짓거나 기쁨을 표현하면서 흥미를 보이는 것을 즐긴다. 예술가가 하느님이실 때 그 의사전달은 찬미의 기도라 불리어지며 찬미의 기도는 "기도 용어"로 가다듬어질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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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음터 5주년 영성 특강에 초대합니다.

탈종교 시대,

제도교회로는 목마른 영적인 사람들이 영성의 길을 묻습니다.

영성의 길은 기도의 길이기에, 영성의 전통 안에서 기도의 길을 찾습니다.

연구소 5년의 소중한 결실이라 할 수 있는, 내적 여정의 고민과 성찰을 담은 두 개의 논문을 기반한 강의입니다.

탈기독교 시대와 관련하여 부각되는 용어가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는 뜻의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입니다. SBNR을 키워드로 탈기독교 시대 중년을 위한 교회 교육에 관해 논문을 쓰신 김동준 목사님(동반자과정 2기)의 강의와, 아빌라의 데레사 『영혼의 성』의 기도로 논문을 쓴 정신실 소장의 강의입니다.


1강, 시대가 영성을 묻다
    : 탈종교 시대 SBNR의 신앙 여정(김동준 목사)
2강, 기도의 길, 오래된 새 길
    : 『영혼의 성』에서 배우는 기도(정신실 소장)

 


+ 강사 : 김동준 목사, 정신실 소장
+ 일시 : 2023년 12월 8일(금) 오후 2:00~4:00
+ 인원 : 30명(선착순)
+ 장소 : 처치 브릿지, 서울숲역 5분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포레 지하 3층 B328-2)
+ 참가비 : 이만 원(후원자, 내적 여정 참가자 만 원)
+ 문의 : 010-7242-8624
+ 신청 링크 : https://bit.ly/3kDbLfR

 

기도, 시대가 묻고 전통이 답하다

나음터 영성 특강 강의 신청 양식입니다. + 강사 : 김동준 목사, 정신실 소장 + 일시 : 2023년 12월 8일(금) 오후 2:00 ~ 4:00 + 인원 : 30명 + 장소 : 리프레임 처치(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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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을 일차 완성한 후에 베란다 화초 정리부터 했다.
시든 잎들 잘라내고, 말라 죽은 애들은 장례 치르고, 분갈이도 했다. 
베란다가 훤하다! 
아침마다 들여다 보며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식물 키우는 맛!
 

 
이차 완성이 된 후에는 책상을 정리했다.
쌓이고, 쌓이고, 쌓인 책들을 책꽂이에 꽂았다.
테이블이 훤해졌다.
 

 
식물을 키우고, 논문을 낳고, 논문을 쓰고, 식물을 키우고...
키우는 일, 배우는 일, 성장하는 일... 참 좋아해. 
 
아무튼, 내일 논문 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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