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에 입소문으로 알려진
목요강좌라는 문화강좌가 있다. 인문학자, 정치인, 시인, 종교인 등 다양한 강사들이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하다. 늘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데 최근에는 그룹 산울림의 리더였던 김창완 씨의 강의가 있었나 보다. 강의 제목이 마음을 확 낚아챘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될까.’ 그러게나 말이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 부른다고, 누가 노래 한 자락 들려준다고 쓰라린 마음에 위로가 될까? 김창완 씨가 그렇게 밝혔다고 한다. ‘아무리, 노래 한 자락이 위로가 될까.’에 물음표를 떼어버린 이유는 과연 그러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라고.

오직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한 일념 하나로 고가의 장비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있다. 엄마 몰래 예약 주문을 걸어놓은 샤이니의 새 앨범 배송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중딩이 있다. 오늘도 오디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는 아저씨와 샤이니를 기다리는 마음에 하굣길 발걸음이 빨라지는 중딩의 열정은 다르지만 비슷한 게 아닐까. ‘음악 한 자락의 위로를 얻는 나름의 방식이라는 점에서는 말이다. 음악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다양한 방식의 위로가 되기도 하고, 에너지가 되기도 하는 것일까? 약사가 약의 전문가이듯 음악치료사는 음악을 사용하는 것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약처럼 소화가 안 될 때는 바흐의 음악, 우울감이 밀려올 때는 모차르트의 교향곡처럼 조제의 공식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음악이 무엇인가?’에서부터 시작하여 그 음악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먼저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이란 소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시간의 예술이다.’이라고 짧게 정의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음악의 기회는 지금, 여기에서 단 한 번이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더라도 무대 위 연주에서 실수했다면 그것은 한 번의 실수가 아니라 단 한 번의 연주를 실패한 것이 된다. 매정하게도 청중은 연주자가 얼마나 열정을 다해 연습했는지, 리허설 무대가 얼마나 완벽했는지 등의 정상참작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가혹한 시간의 예술이다. 한 번 놓친 박자는 그야말로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음악은 결국 사람을 지금&여기에 존재하도록 붙들어둔다. ‘지금&여기를 사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에게는 물론 정신의 건강을 잃은 사람들에게 지극히 의미 있는 것이다. 지남력(orientation : 시간과 장소, 상황이나 환경 따위를 올바로 인식하는 능력)에 문제를 가진 정신과 환자가 음악치료 그룹에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해보자. 지금, 여기서 자발적으로 노래하는 것은 시간에 기반을 둔 활동이니 만큼 그가 가진 장애를 거스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예술인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리듬, 멜로디, 음색, 다이나믹, 형식)들은 인간의 행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가?

 

리듬

리듬은 음악치료에서 가장 주목하는 음악적인 요소일 것이다. 음악치료의 아버지라 불리는 개스턴(Gaston)은 리듬을 일컬어 조직자(organizer)이며 에너지의 원천이라 하였다. 원시사회의 음악이든 서양의 클래식이든, 현대의 대중음악이든 리듬은 필수 요소이다. 사람에게 신체적인 반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마도 리듬일 것이다. 상상해 보자. CD 플레이어에 쇼팽의 녹턴음반을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흐르는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음악에 빠져들 때 내 감각과 몸의 근육들은 어떤 상태라고 느껴지는가? 그대로 음악에 몸을 맡기고 한참 동안 그 상태를 즐긴다. 그러다 실수로 소파 팔걸이 위에 있던 오디오 리모컨을 건드렸는데 튜너 모드로 전환이 되어버렸다 치자. 바로 93.1에서 내보내는 라데츠키 행진곡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에 살짝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계속 그대로 듣기로 한다. , 조금 전 쇼팽의 피아노곡을 들을 때의 차분한 느낌과 감각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십중팔구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다못해 양말 속 엄지발가락을 까딱일지도 모른다. 뚜렷한 리듬적 진행을 가진 음악은 역동적이기 마련이고 우리 몸은 여지없이 그 역동성에 반응한다. 이제 겨우 혼자 앉을 수 있는 6개월 된, ‘엄마소리도 못하는 아기가 음악 소리에 팔을 흔들고 기저귀 찬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것도 바로 이 리듬이 얼러서 되는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장 조회를 기억하는가. 뙤약볕 아래서 잘 들리지도 않는데다 언제 끝날지 예상도 안 되는 교장 선생님의 훈화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로 애국조회는 끝나곤 했다. ‘교실로 향하여 앞으로 갓!’ 하는 선생님의 고함 같은 구령에 이어 운동장을 빵빵하게 채우는 행진곡의 사운드. 왼발, 왼발, 하는 교감 선생님의 구령까지 더해져 어라, 지친 내 몸이 왜 이리 절도가 있지?’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생각도 하기 전에 몸이 각을 잡는 경험이 있다. 이것 역시 리듬이 시킨 일이다. 이렇듯 에너지원이 되는 리듬은 음악치료에서 걷고 움직이고, 일정한 박에 북을 치는 등의 활동을 통해 치료의 에너지원이 된다.

 

멜로디

음의 높낮이 변화가 리듬과 연결되어 통합적인 흐름이 나타날 때 우리는 멜로디를 듣는다. 기분 좋게 설거지하시는 엄마의 뒷모습과 겹쳐서 들리는 흥얼거리는 콧노래. 가사는 들리지 않지만 무슨 노래인지는 알겠는 그 느슨하고 기분 좋은 소리가 바로 멜로디이다. 보다 신체적인 행동을 끌어내는 리듬과 달리 멜로디는 감정과 무드와 연관이 있다. 음악적인 능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감미로운 선율은 부드럽게 사람의 정서를 이끌어낸다. 좋은 멜로디와 잘 부르는 노래는 음악을 잘 안다고 하는 비장애 성인 클래식 마니아에게 뿐 아니라 중증 장애아이에게도 어필한다.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멜로디의 진행, 순차적으로 진행하거나 도약하는 진행 역시 클라이언트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비발디의 <사계>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특징이 드러난 사진과 함께 아이들에게 들려주곤 한다.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상동행동(발달장애 아동 등에게서 관찰되는 비정상적인 반복 행동)에 빠져 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겨울2악장의 멜로디를 들으면서 눈 쌓인 겨울 사진에 눈을 맞출 때. 그것은 꽤 감동이다. 언어조차 없는 아이가 단지 멜로디를 통해서 (정확히 인지적 의미로 계절과 매칭을 시켰다고 볼 수는 없지만) 최소한 겨울 그림을 떠올렸다는 것만으로도 소통의 가능성을 크게 보여준 것이니까.

 

음색

음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청각적 질감인 음색은 악기 소리며 여러 환경적 소리를 구별하게 하는 요소이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호세 카레라스의 테너 목소리가 전혀 다른 느낌과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음색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두 테너 가수의 노래를 다른 감동으로 들을 수 있는 음색구별의 능력은 음악을 풍성하게 듣고 감상하게 해준다. 청각인지 능력이 잘 발달되지 않은, 또는 어떤 이유로 상실한 사람들에게 둥둥둔탁하게 울리는 북소리와 땡땡높은 곳에서 들리는 듯한 핑거심벌즈(아주 작은 심벌즈로 손가락으로 잡고 끝을 부딪치면 맑은 트라이앵글 같은 소리가 난다.)를 구별하는 것은 치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음악회에 가 앉았는데 잘 모르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지루하게 연주된다. 협주 부분이 끝나고 한 대의 바이올린이 가녀린 소리로 치고 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귀를 열어 듣게 된다.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던 잡념이 뚝 끊어지고 연주자에게 몰입하게 되지 않았던가? 음악치료 장면에서 강박적으로 드럼을 쳐대는 클라이언트의 자기자극 행동이 반주도 없이 부르기 시작한 치료사의 노래로 멈춰지는 경우가 있다. ‘이건 뭐지? 이 색다른 소리는 뭐야?’ 하면서 주의가 전환되는 것이다. 둘 다 음색의 변화가 귀를 잡아끌어서 얻은 유익이다.

 

다이내믹과 형식

짝짝짝 짝짝짝 짝짝짝짝짝짝짝, ~’ 삼삼칠 박수를 치며 응원을 할 때 수많은 사람의 박수가 딱딱 맞는 느낌, 마지막에 함성의 크기를 조절하면서 힘을 한 군데로 몰아가는 느낌. 이것은 리듬으로 만들어진 다이내믹이 눈에 보이는 듯한 경험이다. 음악 속에서 만들어지는 다이내믹은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바로 에너지로 전환되어 투여되는 것만 같다. 이런 역동적인 에너지가 치료 상황에서 표출되었다면 그것은 바로 치료적 에너지로 전환되었을 것이다.

반짝반짝 작을 별 아름답게 비치!’하고 종결음 직전에 노래를 멈추면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하고 소리를 내서 노래를 완성하곤 한다. 비록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내성으로 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적 해결을 지향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기에 장애아동에게도 자주 관찰된다. 반복과 대조로 이루어진 음악의 형식을 인지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식했을 때는 주의 집중력, 순서를 기다리는 인내력이 자연스럽게 향상된다. 힘을 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음악의 흐름 속에서 클라이언트의 산만한 주의력과 행동을 구조화시키는데 마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음악의 형식이다.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얻거나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은 이렇듯 음악적 요소들이 내게 다가와 무엇인가를 일으키는 과정이다
. 노래 한 자락에 위로받는 순간에도 숨을 쉬듯 인식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런 음악적 작용이 끊임없이 있었을 터. 음악치료사는 이 과정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분석하여 자신의 클라이언트에게 건넬 위로 한 자락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  International Piano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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