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 사람을 안다~아, 심지어 친하다아.


신종 SNS 심리 사기 중 '인맥 사기'라는 것이 있다.

(지금 방금 생겼다.)

(인맥 사기,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 블로그에 와서 용어가 되었다)

사기이기에 물론 해악이 있다.

타인보다는 자신에게 지속적이고 치명적인 해를 입힌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단 유명인과 SNS 친구맺기를 한다.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자꾸 댓글 말을 걸다보면 친근해진다.

어느 시점 형님, 언니, 친구로 호칭을 바꾸고 말을 놓는 게 어떠냐고 찌른다.

그 즈음 어떻게든 오프라인에서 만나 인증샷을 찍고 태그해서 올린다.

지나던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 유명인과 언니 오빠 하는 걸 보니 같은 급이구나.

이 방식으로 차곡차곡 인맥의 외연을 넓혀 나간다.

'이 사람 안다, 이 사람이랑 친하다'

이 메시지를 여기 저기 흘리면서 유명세 급이 올라가는 것이다.

비슷한 공법을 사용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형님-아우가 되면

그간 각각 쌓은 인맥탑이 합체하면서 한 번에 확 레벨 업 되기도 한다.


이 신종 사기를 어떻게 잡아냈냐고?

뭘 어떻게 잡았겠나, 내 속에 있으니까 알았지.

그런 유혹이 있다.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자아를 과대포장 하는 것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나 자신임을 알기에

애써 피하는 일이다.

그러고 싶은데 애써 피하다 보니 남들이 그러면 더 못봐주고 있는 현실이다.


암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막막 인맥 자랑 하나 하련다.

성공한 교회, 성공한 목회, 성공한 선교에서 '성공한'의 함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안다.

모두들 목을 매는 그 '성공' 말이다.

바로 그 성공을 차곡차곡 쌓아갈 기회가 하나씩 앞으로 오는데.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멈추고 재고하고 기다리다

흔한 성공의 길과 반대되는 선택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젊은 선교사 부부이다.


한참 젊은 이 부부에게 만날 때마다 한 수 배우는 느낌이다.

한 번씩 만나 이들이 걷는 길과 교차하는 우리의 길을 점검한다.

태훈이 맑은 눈과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 뒤에 윤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윤선이가 예쁜 네팔 노트를 선물로 가져왔다.

마침 일기장이 몇 장 남지 않아서 찾고 있는 중이었다.

고급진 노트에 나의 시시콜콜한 마음을 끄적이는 것이 민망스럽기도 하지만.

이 가을, 윤선을 위한 기도로 기쁘게 첫장을 채우며 시작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선교 일상을 살아내면 늘 크고 작은 걱정들이 있겠지만

여전히 선택과 선택의 연속이지만 그 긴장을 잘 살아내주길 기도한다.

볼 때마다 몸과 마음이 쑥 커진 이안이와 현이가 믿음의 증거이고 열매이다.

큰 틀에서 좋은 엄마로, 좋은 아내로, 좋은 사역자로 잘 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크게 믿어주는 믿음을 위해서 기도한다.   


나의 인맥 자랑이 되는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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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소국이 거실에 한가득이다.

가을이란 계절이 존재하기나 할까,

이제 지구에서 가을이란 계절은 사라졌다는 듯,

여름보다 뜨거운 날인데 말이다.

가을이란 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건만

'때 이른'이란 웬 말인가.


그래도 때 이른 소국이다.

내가 소국 좋아하는 걸 알고 가끔씩 내게 이걸 안기는,

내게는 영원히 초등학교 4학년 같은데 두 딸의 엄마가 된 J와 H가 왔다.

기도의 용사 H, 찬양의 천사 J라 부르면 딱 좋을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었다.

여름보다 뜨거운 날에 여름 휴가를 받고는 하루를 내어 찾아와줬다.

두 딸과 함께 넷이 있는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돌쟁이, 그리고 삼십몇 개월 아가들 뫼시고 하는 대화란.

몇 마디 나누다 뚝뚝 끊어지는 건 기본. (쉬쉬, 쉬 마려워!)

언제던가, 이들과 공동체, 소명..... 이런 주제로 끝도 없는 얘길 나눴던 건.

이 와중에 젊은 부부들 목장모임에서 목자로 이끄는 J&H이다.

그네들 또래의 근황도 한 가지인데.

"청년 때는 결혼, 진로 같은 절실한 것들로 얘기 나누고 기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결혼하고 직장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직장에선 힘들고요.

아이들 태어나 정신없고..... 모여도 제대로 고민을 나누거나 하지 못해요"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결혼하고, 직장을 정하면 인생의 고민이 다 해결될 것으로 꿈꾸던 시절도.

외식 한 번 우아하게 해봤으면, 하면서 두 아이 쫓아다니던 시절도.

그래도 그 시절 내내 부부 모임에서 책읽기 모임을 멈추지 않았고,

부부 됨, 부모 됨을 고민하고 배우는 것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갓난쟁인 현승이 맡겨놓고 어린 채윤이 손잡고 광화문에 집회에도 다니고.


이 시절은 그냥 버티는 거야.

버텨내는 거야.

하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기특한 우리의 젊은 날이다.


경황이 없어서 말은 못해줬지만 이들도 잘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생전 안 해본 엄마 아빠 노릇에 코가 석자라도 '나 됨'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몰아치는 일상 가운데에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됨의 끈을 아예 놓지는 말고.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약한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고이 가꿔가면서.

육아의 터널을 빠져 나왔을 때 텅 비어있지 않기를.

기도한다.


때 이른 소국에 눈을 맞추며

그들의 40대를 위해 한 발 앞선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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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명


어제, 그러니까 금요일 새벽에 돌아왔습니다. 헤롱헤롱 어질어질한 상태로 이틀 보내고 이제야 몸과 마음이 조금 맑아졌습니다. 흐릿한 몸과 정신으로 바로 전 포스팅(서점에 나왔습니다:나의 성소 싱크대 앞←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도 썼고, 중간중간 정신을 잃고 잤다가, 메일함의 밀린 답신도 했고, 장을 보고 반찬도 만들고, 청소도 빨래도 했습니다. 그 순간은 정신을 똑띠했다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난 이틀 반수면 상태였군요. 결혼하고 가장 긴 시간 집을 비운 게 되었네요. 돌아와 가장 놀란 것은 싱크대 앞의 고구마순이었습니다. 출발하기 전날에 애매하게 남은 고구마 두 개를 물에 담궜는데 어머머, 한 녀석이 저렇게 쑥 자라버린 것입니다. 나머지 한 놈은 밑둥부터 썪고 있네요. 나란히 섰는 둘을 비교하니 쑥 자란 생명력이 유난히 돋보입니다. 한편 쑥쑥 자라는 친구 옆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왼쪽 고구마군은 애잔하게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2. 만남


남편이 놀립니다. 츤데레 기질있는 걸 고려하면 놀림을 가장한 걱정인 것도 같습니다. '초딩 4학년 몸'이 되어 돌아왔으니 무슨 일이냐고, 그 며칠 사이에 이렇게 될 수도 있냐고 합니다. 코스타 기간 동안 월요일 채윤이와 함께 느긋하게 식사한 것은 일장춘몽이었습니다. 이후로는 밥이 대체로 코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코스타의 꽃은 조별모임이라고 하는데 코스타 세미나 강사 사역의 꽃은 '식사시간의 조별 상담'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체 집회나 여타 프로그램을 피해서 남은 식사시간은 끊임없는 만남의 시간입니다. 확실히 코스타는(아니 인생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말씀에의 목마름보다는 만남에의 갈급함이 미주 각지의 청년들을 휘튼 캠퍼스로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실은 이 멀리서 고비용을 지불하고 시카고까지 날아가는 저를 이끄는 힘도 '만남'입니다. 때문에 만남이 시작되기 전 월요일, 화요일 오전까지는 마음이 무척 힘듭니다. 시차도 시차지만 '내가 뭐하러 여기까지 왔을까' 어리석은 질문을 되뇌게 됩니다. 막상 강의를 시작하고, 강의 후 줄을 서는 질문과 상담을 맞닥뜨리면 어리석은 질문은 흩어지고 맙니다.


3. 사람


만남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 다시 다시. 만남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만남의 차원이 있습니다. 기간 중에 '브릿지'라는 호를 가진 황병구 본부장님이 동갑내기 자매 하나를 소개해주었습니다. 잠시 커피타임을 가지며 소설같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탄성이 절로 나는 간증적 삶이었습니다. 충분히 감동이었고,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상담하기로한 청년 하나와 시간이 어긋나는 바람에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동갑내기 자매를 다시 만났습니다. 한 20분 짧은 시간 동안 간증적 삶 이면을 들었습니다. struggle. 20여 분 동안 그녀가 반복해서 발화한 말입니다. 그렇게나 번듯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삶에도 남모르는 분투가 있습니다. 겉보기에 번듯할수록 분투는 더 치열할 것이며 갈등은 극심할 것입니다.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진짜 모습입니다. 나도 모르게 손을 잡게 만들고,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만드는 것은 이같은 나눔이 있을 때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렇듯 가슴에 숨은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내 안에서 나온 것이 흘러 들어갈 때 아니겠습니까.


4. 은혜


3년 전 처음 코스타에 갔을 때 생각이 납니다. 다녀와서 쓴 몇 편의 후기 중에 '은혜 to 더 은혜'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때 만났던 은혜 자매를 우연히 다시 만났습니다. 코스타 마친 그 주일에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교회에서 강의가 있었습니다. 3년 전 그 은혜 자매를 바로 그 교회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녀는 저를 잊었을지라도 저는 가끔 떠올리며 기도하곤 했습니다. 내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가 몰라도 좋은 기도, 얼마나 행복한 기도입니까. 같이 저녁을 먹고 역시 짧은 시간 어떻게 지내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텍사스에 살고 있는 은슬이 엄마 송은혜와도 기간 내내 자주 톡을 주고받게 되었습니다. 카톡의 대화창에는 두 명의 'grace'가 나란히 줄을 서있는 형국이었습니다. 결국 이것은 그분으로부터 다시 오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은혜로다, 은혜로다, 한량없는 은혜로다. 모든 오늘, 모든 만남은 은혜이고 선물이라고요.


5. 생명


살아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발성과 예측불가능성입니다. 입력된대로 같은 답이 나오는 것, 충분히 예상되는 건조한 정답이 출력되는 것은 기계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자발적이고 예측불가능이기에 자유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예측불허 struggle의 연속이지만, 미끈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하나 없지만 생명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코스타에 강사로 가서 번지르르한 강의만 하고 왔다면 누릴 수 없는 은혜입니다. 첫 강의 망치고, 가져간 책은 잘 안 팔리고, 화장실 갈 틈도 없는 일정이 돌아가고, 몸은 바닥으로 꺼지고, 집회 시간에는 끊임없이 졸고.... 그 와중에도 살아 있는 만남이 있었기에 소생케 되는 것입니다. 돌아와보니 창가의 화분 몇 개는 주인 엄마가 자리를 비우고 물을 챙겨주지 못한 탓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흠뻑 물을 주고 아침에 보니 힘이 들어가 꼿꼿해졌습니다. 생명은 잠시 시드는 것 같으나 살아납니다. 오나가나 생명있는 사람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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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시죠?

뭐 그렇죠.

강의 많이 하느라 바쁘신 거 아녜요?

강의로 바쁜 적은 없어요.


힘드시죠?

힘들긴요.

글 쓰고 일이 많으시잖아요.

글 쓰느라 (마음이) 힘든 경우는 없어요.


강의보다 강의 사이사이 구역장 업무로 마음이 바쁘구요.

원고 쓰며 아이디어를 쥐어 짠다지만

아이들에게 문제 생겨 해결하는라 고심하는 에너지에 비할 바가 아니죠.


구역 소풍 다녀오는 거사를 치루고,

사고 아닌 사고를 친 중딩 아들 건사하는 일이 겹친 날이었습니다.

강의가 아니라 이런 일정을 두고 바쁘다 하는 것이고,

원고가 아니라 예민한 아들 놈 케어하는 일이 힘들다 하는 것이지요.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취침, 기절, 좌절의 증상으로 소파에 고꾸라진 저녁.

부재중 전화 두 통이 신호탄이 되어 꽃을 든 남자, 아니고 제자들 등장했습니다.

고맙다. 고마워.

카네이션 꽃이 아니라 사람 꽃이로구나!


며칠 드글드글 속을 태우며

'어디 한 번 저를 일으켜 보시라구요. 저는 낙심하여 소파를 뚫고 들어갈테니까요.'

기도 시위를 했더니 이렇게 협상을 해주시는군요.

사람을 꽃보다 아름답게 만드신 당신, 좋아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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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쌀 한 자루가 배송되어 온다.

충청도에 사시는 이모가 보내주시는 것.

엄마랑 이모, 자매간의 우애가 각별하다.

우리 엄마 생신 때마다 빼놓지 않고 올라오셔서는 늘 그러신다.

"야야, 느이 엄마, 우리 언니는 나한티 언니가 아녀. 엄마여, 엄마"

90 다 된 이모가 90 넘은 엄마한테 '언니, 언니'하는 거 보면 정말 재밌는데.

언니 챙기는 마음으로 언니 딸에게까지 쌀을 보내시는 것인가.

과연 그것 뿐인가? 아니다!

언니의 사위, JP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신다.







허허허허허. 김종필 목사님, 악수 좀 혀.

나는 우리 조카사위가 참 좋아.

내가 원래 김종필 씨를 젊었을 때버텀(부터) 좋아하거든.

그른 디다가 우리 김종필 목사가 너머 착혀. 너머 좋아.

충청남도가 낳은 영원한 2 인자 김종필 총재는

충청도 출신 정치에 관심 많은 할머니에겐 갓종필이다.

내가 어렸을 적 충청도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리얼 그렇다.

택배를 맡아 보내주신 충청도 아주머니가 전화를 걸어오셨다.

"거기 김종필 씨 댁이쥬?"

그 한 마디를 듣고도 알 수 있었다.

갓종필 님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우리 이모 못지 않으신 분이다!

택배 발송을 부탁하시며

"김종필이가 내 이질 사윈디.... 목사여. 얼매나 착헌지 나를 볼 때마다 용돈을 주는디

내가 쌀이라도 보내야지" 하셨단다.  

귀하신 김종필 님, 이름값이 쌀 한 자루나 된다. ㅎㅎ


(말이 나왔으니, 전에 했던 얘기 같지만 잊을 만 하니 한 번 더 우려먹기로 하자.

'김종필' 이름에 관한 에피소드를 동생이 전에 페북에 올린 적이 있다.

여러분과 함께 크게 웃는 걸로!)





김종필. JP.
나의 매형 이름이다. 지금 백주년기념교회에서 전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얼마 전 네이버 지식IN에 매형 관련 질문이 떴다는 제보(?)를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사위인 김종필이 다니는 교회를 알고 싶어요.

제가 다니는 교회 주보에 예배 인도자가 김종필 목사로 되어있는데

이 사람이 그 김종필인가요?"

우울한 시대에 큰 웃음을 주는 질문이었다.

덕분에 떠오른 웃기는 기억 하나.
예전에 오세택 목사님에게 매형을 소개했다.

같은 교단 선후배 사이니 좋은 분들끼리 서로 교제하면 좋겠다는 의도였다.

두 분이 만나던 날. 오세택 목사님이 현장에 늦게 도착하시며 매형에게 전화했단다.
"아~ 김대중 목사님, 제가 좀 늦습니다."
-..-;
"저는 김종필입니다."
"어, 내 휴대폰에 김대중이라고 저장이 되어있는데..."

추리해보니 이렇다. 나는 분명 '김종필 목사'라고 소개했다.

오 목사님은 내 얘길 듣고 저장을 하시며, '정 목사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 설마 김종필일 리가 없다.'며 무의식중에 김대중으로 입력을 하셨을 터.


- 동생 페북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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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샘밈, 배슈민이 나를 싫어해요."

오늘 내 귀를 정화시킨 이 한 마디.

입이 쭉 나와서는 제 담임 선생님에게 하는 고자질이었다.

으흐흐흐흐흐흐.

나를 싫어해요! 나를 싫어해요! 나를 싫어해요!

이 고자질 너무 맘에 들어.

나도 고자질 하고 싶다.

하난님, 쟤가 나를 싫어해요.

우띠, 쟤가 나를 싫어해요.

그리고 입을 쭉 내밀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고 싶다.

너어어, 우리 하난님한테 다 일러줄꺼야. 너.

빨리 나를 좋아해. 좋아하라규!

싫어?

싫으면 시집 가서 시아버지 구두 닦아라! 퉤퉤퉤.

 

췻!

너는 나를 싫어할 자유가 있지만

나는 니가 나를 싫어하는 걸 싫어할 자유가 있어!

우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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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음악션샘미가 되지 않았다면

이 메말라 갈라져 고름 새어 나오는 영혼을 무엇으로 치유받으리!

견고한 안면근육이 무엇으로 구원받으리!

나의 말랑한 선생님, 말랑한 친구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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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친구를 소개하며 '20년 지기'라는 말을 쓴다면 내가 읽어내는 것은 '나이 많으신 분들인가보다' 정도. 이 흔한 '~년 지기' 사람들이 어떤 의미일지 달리 생각해본 적이 없다. 20년 된 친구들'과의 사진이다. 들여다 보자니 그게 아니었구나. 나이가 많다는 뜻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암튼 앞으로 주의하도록 하겠다. 사람들이 20년 지기 친구를 소개할 때는 자기가 늙었단 얘길 하고 싶은 게 아닌 것임.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무지하게 잘 하는 딸내미를 가진 친구. 돈 잘 버는데 성실하기까지한 남편. 이건 뭐, 이런 친구들과 일박 여행을 다녀 왔다는 건 거의 한 달 견적의 우울과 바가지 긁기 감인데 다행히 그렇지가 않다. 부럽지 않은 건 아닌데 부러움보다 더 큰, 더 깊은, 더 아름다운 것이 우리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네 딸 내 딸이 없고, 네 남편 내 남편이 없.... 이건 좀 그러네. 암튼.  칼같이 긋는 선 따위가 없다고 볼 수 있겠다. 서로를 바라보는 마음이 늘 그렇다. 잘 되는 일이 더 잘 되고, 힘든 일은 잘 해결되고 극복해가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이런 관계가 말처럼 쉬운 줄 아는가. 자기가 가진 것 중에 좋은 것, 그럴 듯한 것만 보여주는 사이엔 20년 아니라 200년이 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년 전, 한 청년부에서 만나 '저 언니들 시집도 못 가면서 지들끼리 뭉쳐 다니고...' 질시를 받으며 권사님 노릇하던 시절부터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때도 그랬다. '잘 되는 나'를 보여주기보다 '안 되는 나'를 드러내며 찔찔거리곤 했었다. 블루투스 스피커가 20년 지기 친구들의 여행에 따라와서 역할을 잘 해주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들었던 안단테 칸타빌레를 잊을 수 없는데 오랜만에 함께 듣자니 마음이 마구 일렁였다. 마침 함께 있는 시간 동안 내게 무척 좋은 일(?)이 하나 생겼다. 그 연락을 받고 와! 잠깐 좋아하다 보니 이건 좋은 일이 좋은 일이 아닌 거다.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좋은 일이 가져온 골치 아픈 고민들을 하나 씩 다 펼쳐놓아 보았다. 펼쳐놓고 이바구 하다 보니 어느 새 마음이 가벼워졌다. '좋은 일'이 단순히 좋은 일을 넘어 선하고 아름다운 일이 될 기세이다.

 

누구를 만나도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덕규의 노래 <좋은 나라> 가사처럼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가면을 쓰고 말의 이면을 자꾸 헤아리게 되는 만남이라면 최대한 피하며 살고 싶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적당히 사회적인 얼굴을 하고 만나는 만남이 없을 수 없다. '오늘 내가 커피 살게. 어~ 우리 애가 또 1등 했잖아' 이렇듯 금세 드러나는 자랑 또는 과시욕망은 차라리 귀엽지 않은가. 고전적으로는 이런 게 있지. (갑자기 의기양양하게 편 손가락을 관자놀이 쪽으로 가져간다.'어우, 머리야. 오늘 왜 이리 머리가 아프지?' -> 짜잔, 가운데 손가락에 다이아 반지. 이런 정도는 귀엽다. 드물게 학교 엄마들을 만나면 겉으로는 다 뺀들뺀들 광이 나지만 알고보면  그 뒤에 숨은 욕망과 두려움이 느껴져 마음이 어지럽다. 이런 모임을 하고 돌아오면 차라리 깊은 연민이 느껴진다. 이미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고만. 뭘 더 보내고, 시키고, 닦달을 해야한다며 저렇듯 강박적으로 애쓰는 것일까. 아이를 닦달하기 전에 자기를 먼저 볶고 있는 엄마들 말이다.

 

그나마 잘 나가지도 않지만 학교 엄마들 모임은 견딜만 하다. 은혜, 축복, 사랑, 감사....로 점철된 아니, 포장된 교회 엄마들의 모임보다는 훨씬 낫다.  여기서 '낫다'는 건 더 좋은 모임 덜 좋은 모임이란 뜻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내가 견딜 수 있음의 레벨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친한 것보다 더더더 친한 것으로 표현되어야 하고, 걱정을 나누는 것보다 더더더 따뜻하게 눈물을 그렁거리며 '기도할게요. 기도합시다'가 되어야 하는 모임을 갈수록 못하겠으니! (이것은 진정 신앙의 퇴보인가) 빛이 강한 만큼 그림자가 짙은 법이다. 형제님, 자매님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교회 안에 그렇게나 관계 문제가 복잡한 이유일터. 모든 관계 안에는 좋은 것이 있고 불편한 것이 있으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상처 주고 상처 받는 것이 인간 대 인간의 일이다. 사랑하고 축복하고 감사하고 기도할게요. 오직 빛의 언어만을 가지고 소통을 하고 돌아서는 일이 반복될 때, 십중팔구 비합리적 뒷담화와 부정적인 상상력의 그림자에 압도당 할 수 밖에 없다. 이런 경우 포장지 자체가 아름답고 거룩하여 딱 속기 좋은 것이다. 그 속임수의 치명적인 피해자는 자기 자신이다. 높은 점수나 승진을 위해 옆 사람을 밟는 대놓고 이기적인 사회보다, 사랑이라는 포장지로 이기심과 욕망과 두려움을 가장한 종교인의 모임이 더 악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경험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영어는 어느 학원 다녀요?' 하고 묻는 루이비똥 든 학교 엄마보다 손 꽉 잡고 기도제목 묻는 자매님이 더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그리는 천국은 하덕규의 <좋은 나라>에 나오는 그런 곳에 가깝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푸른 강가에서 만난다면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들은 까맣게 잊고 다시 인사할지도 몰라요. 그 고운 무지개 속 물방울들처럼 행복한 거기로 들어가 아무 눈물 없이 슬픈 헤아림도 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다면' 슬픈 헤아림에 에너지를 쏟지 않겠다. 신앙의 이름으로 그런 것을 조장하는 것에는 '신앙 아냐 종교놀이야'라고 말해주겠다. 이렇게 단호하게 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20년 지기 마음 맞는 친구들만 만나고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내게 이 친구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만난 지 2년 만에 20년. 200년 짜리 공감을 함께 나누는 친구도 있다.(이건 완전 2년 된 여친 삐질까 염려하여 힘주어 써놓은 말.ㅋ) 딱 한 번 만나도 존재로 만나는 만남도 있다. 처음 만나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서로 마음 속 깊은 두려움을 내보일 수 있다. 요즘 내게는 흔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으로 나는 사람 안에 있는 선함을 믿게 된다. 사랑을 믿게 되고, 심지어 하나님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좋은 만남만을 찾아 다닐 수는 없다. 내가 그들로 인해 생명의 기운을 얻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두고 슬픈 헤아림을 하지 않는 까닭이다. 나 역시 계산기 들이밀 생각이 들지 않는 것. 결국 상호 무장해제란 말이다. 그런데 훨씬 많은 경우 나는 헤아림의 주판알 격렬하게 튕기며 살아간다. 상대의 슬픈 헤아림을 알아챌 수 있는 이유는 나도 같은 짓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 무엇이랴. 마음이 곤고하다.

  

'그래도 언니들과 이렇게 만나는 게 내게는 제2의 고향인 것 같아' 새벽까지 수다를 떨며 20년 지기 친구가 말했다. 이 말로 돌아가 지친 마음, 피폐해진 마음을 쉰다. 지금 내겐 고향이 되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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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엔 온 식구가 <복면가왕>을 잊고

<불후의 명곡>과 <히든 싱어>에 빠져서  보냈습니다.

여파로 저녁마다 거실을 채우는 노래는 거의 신해철.

장래희망이 '옛날 가수'인 '노소년' 또는 '소노년' 현승이의 선곡입니다.

 

신해철 1주기를 맞아 그를 기억하는 노래가 여기 저기서 많이 들립니다.

눈물이 날 것 같아도 그냥 참고 듣거나 보는데 가끔 화면에 그의 가족들이 보이면

여지없이 터져버립니다.

참 좋은 아빠를 너무 어려서 잃은 아이들에게 유난히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이 내 아픔에, 내 상처가 그 슬픔에 잇대어지기 때문이겠지요.

저 예쁘고 해맑은 딸내미가 살아갈 날을 지레 짐작해보는 탓입니다.

생의 길목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올 그리움,

그 그리움에 압도되어 잠못 이룰 밤들,

애초 제 몸에 붙어 있던 것처럼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겠지요.

 

또 신해철 노래의 가사는 여전히 내게 질문를 던집니다.

그는 왜 그리 살고 죽는 것, 의미에 대한 고뇌가 많았을까요?

 

세월이 흘러가고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그대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나 지나간 세월에
후횐 없노라고 그대여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 민물장어의 꿈-

 

 

채윤이가 카톡으로 저 그림을 보내왔습니다.

픽, 웃으면 고개를 듭니다.

신해철의 노래에 취해 오랜 시간 고개를 숙이고 있었나봅니다. 

뒷목이 뻐근합니다.

킥킥, 웃다가 비온 뒤에 더 깨끗해진 하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아, 누구야!

저렇듯 따뜻한 상상력과 유머를 가진 사람은.

 

저 그림을 그린 분,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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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

집사님과 함께 찬양했던 사진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어요. 집사님 찬양하시는 모습이 크게 잡힌 사진을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찾다 찾다 예전 싸이클럽까지 가서 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 사진이 흐릿하지만 집사님 옆 모습 딱 보여요. 제 마음의 사진첩 샬롬찬양대 폴더에는 수백 장의 사진과 MP3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 중에 집사님이 솔로로 부르셨던 노래도 있지요. 6/8 박자로 편곡된 곡이었어요. 싱코페이션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라 많이 어려워 하셨었죠.

 

이와 같은 때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께

이와 같은 때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저 오래 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할 때부터 솔리스트를 선정할 때의 음악보다는 가사를 봤어요. 찬양의 가사를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려 고백할 수 있겠다 싶은 분께 솔로 부탁하곤 했어요. 그 때문인지 제가 지휘했던 그 많은 곡들의 솔리스트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20년 전 어린이 성가대 때부터요. 그 많은 곡들 중  찬양을 부르셨던  집사님의 비음 많이 섞에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어요. 제가 윤복희 목소리 닮았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성가대 지휘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일 중의 하나였고, 지휘자 가운은 그 어느 때보다 저 다워지게 만드는 옷인 것 같아요. 그 어떤 성가대보다 더욱 기쁘게 찬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샬롬찬양대는요. 파트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틀리고 또 틀리시고, 어떻게 틀리는지 흉내내 드리면 깔깔깔 웃으시다 시작되는 농담 따먹기는 끝이 없고, 그래도 안 되면 노래 중간에 넋을 놓고 쉬시던 어르신들 생각이 나요.  제가 가진 얕은 음악성과 근성있는 유머본능이 대원들의 착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솔까말) 엉망진창 음악성과 조화를 이루며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아요.

 

집사님은 늘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히 다니셨죠. 지휘하다 집사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 마음이 막 쓰리곤 했었어요. 제가 청년이었을 적에 지휘하던 어린이 성가대에 집사님의 둘째 G가 있었잖아요. 장난꾸러기라 저한테 혼이 많이 났죠. G에게 야단을 많이 친 죄로 집사님을 뵈면 괜히 죄송했어요. 얼마 후에 남편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시작하셨고 끝내 천국으로 가셨어요. 저는 그때 먼발치에서 주보 광고로만 소식을 접했어요. 그러나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신 제 엄마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그 이후 교회에서 집사님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두 아이가 성인이 되고, 집사님과 샬롬찬양대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늘 모이면 왁자지껄 즐거운 찬양대에서 집사님은 말이 없으셨어요.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니셨죠.  저 찬양의 '이와 같은 때'에는 부르는 사람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게 '이와 같은 때'는 모든 최악의 순간인데요. 제 마음의 '이와 같은 때'를 집사님의 상황에 투사한 것 같아요. 솔로를 부탁드렸을 때 한사코 마다하셨고, 앞에 앉으신 분을 방패삼아 몸을 자꾸 숨기시던 기억이 나요. 박자가 너무 어렵다고 하셨고, 결국 주일 찬양에서 긴장하셔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셨죠. ^^ 그래도 집사님이 부르셨던 그 찬양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어요.

 

지난 목요일 밤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만 집사님을 뵈며 작별 인사를 나눴어요. 남겨진 남매를 만나고 많이 울었어요. 이제 둘 다 듬직한 성인이 되어 안심이라고 애써 생각해 보기도 해요. 더욱 어른스러워진 D의 말에 감정의 둑이 무너져 버렸어요. "엄마가 선생님 많이 좋아한 거 아시죠?" 그러고 보면 그 세월 같이 찬양을 하면서도 집사님과 길게 얘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집사님 얘길 하니까 '아, 그 던킨도넛 집사님!'이라고 해요. 맞아요. 제가 언젠가 연습시간에 저희 아이들 얘길 하면서 던킨도넛 얘길 했어요. 그 후 크리스마스에 집사님께서 던킨도넛 한 아름을 현승이에게 안겨 주셨죠. 저희가 집사님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언젠가 한 번은 저희 현관에 던킨도넛을 걸어두고 가셨었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도넛상자에 담긴 집사님의 마음이 더욱 가까이 느껴져요. 집사님, 저도 사실 집사님 많이 좋아했는데요.....

 

장례식에서 집사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온 밤에 강의 준비를 핑계 삼아 새벽까지 앉아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암에게 뺏겨버린 D와 G를 위해 기도를 드린 것도 같고, 잠깐씩 눈물을 훔치다가  집사님께 마음으로 무슨 말씀인가를 드린 것도 같아요. 강의 준비는 영 못했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나갈 준비하는데 마음에서 찬양 하나가 올라왔어요.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올 줄 고대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집사님,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픈 몸을 벗으시고 그렇게 그립던 남편을 만나셔서 사랑하는 주님 품에 잘 계실 것을 믿어요. 음... 집사님 저 장래희망 하나 더 생겼어요. 장래 천국에 가서 집사님과 함께 '이와 같은 때엔' 찬양을 부르겠어요. 샬롬찬양대 좋은 분들 함께 모여서 '여호와는 위대하다'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부르겠어요. 그때는 모두들 악보를 잘 보시겠죠? 무엇보다 집사님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찬양하셔야 해요. 그런 날을 소망해요. 

집사님, 저............ 집사님 참 좋아했어요. 

 

 

 

 

 

 

 

 

 

 

 

어릴 적에 '어른이 되기까지 남은 날'을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최소 12년은 죽어라고 공부하는 나날.

그리고 대학가면 어른이 되나? 그때는 자유가 생기나?

다시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공부 지옥 벗어날 날을 헤아렸던 것입니다.

일단 대학 갈 때까지는 죽어도 벗어나지 못할 학교 감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 채윤이, 예중 입학을 결정한 5학년 때부터 고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는

숨막히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내가 채윤이만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이 감옥에서 언제 벗어나나' 할 것입니다.

그런 채윤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늘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 푸르른 나날을 꽉 막히 연습실에 갇혀서 지내는 것, 

틈이 나면 죽도록 영어 단어를 외우며 기계 같은 시간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한 텀 쉬고 가면 안 되나?

이런 신선한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을 바로 실천해버린 가족이 있습니다.

애정하는 이수진, 황병구 님 부부와 그 딸 은율이가 그랬습니다.

안식학년.

(이라고 쓰고)

중학교 졸업하고 1년 동안 그냥 학교 안 다니고 쉬고 멍때린다.(라고 읽는다)

그렇게 보내서 뭘 얻었다, 가 아니라 그  멍때리는 시간 자체가 의미인 것 같고,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앞만 보고 달리라고 채찍질 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르는 미친 세상에서 말입니다.

 

이 부부와 은율이의 선택이 부럽고, 따라해볼까, 하던 차에

이분들이 제대로 일을 만들어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꽃다운 친구들, 일명 꽃친!

저도 요즘 여기 꽃친에 꽂혀 있습니다. 

그 옆에 얼쩡거리면서 자원봉사자 컨셉으로 흥미롭게 지켜보며 응원 중입니다.

아래, 설명회 안내를 그대로 복사해 왔구요.

블로그( http://kochin.tistory.com) 에 가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 보실 수 있습니다. 

 

 

 

*************

 

 

 

[꽃다운친구들] 관심가족 설명회 


 “ 방학이 일년이라면 ” 


드디어 [꽃다운친구들]이 유쾌한 사고를 치기로 결정하고,  
관심가족들을 모셔서 공개설명회를 개최합니다. 

또 하나의 독특한 학교를 경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1년 짜리 긴 방학을 함께 누린다는에 방점을 두고 설명회를 기획했습니다. 

[꽃다운친구들]의 기획단계부터 여러 도움을 주신 악동뮤지션 부모님의
특별한 초청 강연도 마련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넉넉한 시간을 제공하면서
부모들이 함께 인생을 설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내다보는
진지하고도 산뜻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가족들을 넉넉히 초청합니다. 

무엇보다 아빠들이 함께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설명회 개요>

 

- 일시: 2015년 9월 7일(월) 18:30 ~ 21:00 

- 장소: 서울시 NPO 지원센터 이벤트홀 [품다]

(시청역 도보 5분 거리 -약도 링크 연결)

- 대상: 청소년 하프타임에 관심있는 중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 

- 신청: 구글독스 링크에서 (클릭)

- 회비: 가족당 1만원 (최대 3명, 신청자에게 입금계좌 개별안내) 

- 특전: 사전접수 가족에게 관련 서적 1권 증정, 아빠동반 가족 우대 

- 문의: friend@kochin.kr 

- 정보: www.kochin.kr 

 


 

< 주요 프로그램 >

 

1부: 초청 특강 “오늘 행복, 내일 더 행복”  

     강사: 이성근, 주세희 선교사(악동뮤지션 부모님, 꽃친 자문위원) 


2부:방학 12개월 프로그램 설명회 

     사례 소개 

       1. 참을 수 없는 범생이의 미래 

       2. 말할 수 없는 멍때림의 비밀 


     방학생활 제안 

       1. 자녀가 꿈꾸는 방학 

       2. 부모가 가꾸는 방학 


3부 : 자유간담회

     무엇이든 자유롭게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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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카페바인에서는 [에니어그램 세미나]만 열리는 게 아니네요.

협동조합 카페 '바인'에서 조합원 대상 강의가 있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될 찌개백반 같은 강의가 줄을 서 있군요.

특히 김근주 교수님과 황병구 교회 오빠는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합니다.

자신 있게 추천하고요.

 

맨 아래 링크 따라 가시면 자세한 안내가 있는데요.

카페바인의 조합원이 되시면 좋은 정신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료 강의와 카페 메뉴와 원두 할인 등 진짜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혜택이 많습니다.

 

저는 한참 전에 <오우연애>를 내고 북토크 장소로 인연을 맺었었는데요.

더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되었네요.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바인'에서 지속할 것이구요.

잘 보시면 9월 조합원 강의에 제 이름도 있어요.

저는 '잃어버린 길, 마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믿음과 인격이 따로 노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의 이야기? ㅎㅎㅎㅎ 아니고 여러분 말고 저의 이야기요!

'20 년 동안 새벽기도 빠지지 않는 장로님이 교회와 가정에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이유에 대한 영성심리학적 고찰'이라는 부제를 달아 약을 팔아보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오세요.(참가비 만 원, 조합원은 월 2회 강의 무료 수강및 30% 할인)

 

9월 강의는 물론 8월 강의와 조합 신청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링크를 따라가 보세요.

 

https://t.co/MqhhEj3VBL

 

폰에서는 신청 접수가 잘 되지 않던데요.

계속 안 되시면 이곳에 댓글 남겨주세요.

 

 

 

 

 

 

 

 

 

 

 

 

지난 토요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손바닥과 무릎을 시멘트 바닥에 쓱싹 갈아버렸지요. 상처부위에 드레싱 밴드를 떡허니 붙이고 수업에 가는데 채윤이 현승이가 '오늘 엄마 애기들이 으막션샘미 손 왜 그래요? 막 물어보겠네' 합니다. 오, 애기들한테 가서 엄살 좀 떨어줘야겠는 걸!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보자마자 '션샘미, 왜 그래요?' 걱정포텐 터지는 반응 나올 줄 기대했으나..... 어느 아가도 아야야 내 손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기타코드 옮기며 일부러 손바닥을 펴곤 했는데도.... 흑흑. '얘들아, 선생님 아야했어' 결국 내 입으로 불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 반응은 '션샘미, 안 아파요? 엉엉.... 우리 으막션샘미가 다쳤어' 이럴 줄 알았습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저마다 여기 저기 코딱지만 한 상처를 찾아내며 '나도 아파요. 나도 아야했어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급기야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 돌진. (실패다) 물러설 수 없다. 실로폰 계단을 오르고 싶은 사람은 션샘미 아픈 손에 호~오 해줘야 한다고 근엄하게 선언했습니다. 모두들 경건한 자세로 호~오를 했습니다. 히히히. 딱지 떼지 마세요~ 상처엔 실로폰계단에 눈먼 아가들의 호~오를 발라주세요! 오늘도 음악수업을 빙자한 힐링캠프였습니다.

 

어제에 대한 후회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오직 지금 여기를 사는 아가들.

이런 영혼들이 자라서 어쩌다 어른이 되는 것일까요? 이런 모든 흔한 고집불통에 돈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 유익을 위해 사람 죽어나갈 거짓말과 망언을 서슴치 않는 어른 말입니다. 내 생각만이 맞다며 결코 마음의 꼬리를 내릴 줄 모르는 뻣뻣한 어른들 말입니다. 실로폰 계단 한 번 올라 보자고 아빠다리에 손무릎,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 바라보기, 차렷! 그 상태로 얼음이 되는 작은 사람들. 물론 딱 10초 정도만. 아, 이런 사람들, 이 작은 사람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정희 시인의 시 일부가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고정희

 

 

보시오

그리움의 태에서 미래의 아기들이 태어나네

그들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딸과 아들로 어우러진 아기들이여

우리 아기에게 해가 되라 하게, 해로 솟을 것이네

별이 되라 하게, 별로 빛날 것이네

우리 아기에게 희망이 되라 하게, 희망으로 떠오를 것이네

그러나 우리 아기에게 폭군이 되라 하면 폭군이 되고

인형이 되라 하면 인형이 되고

절망이 되라 하면 절망이 될 것이네,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길이 되라 하면 길이 되고

감옥이 되라 하면 감옥이 되고

노리개가 되라 하면 노리개가 되기까지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들이여

 

 

 

 

 

 

 

 

아침에 거실에 비치는 햇살 한 줄기가 화분의 초록 잎에 비춰 만들어내는 투명한 빛에도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녁에 강가에 나가 맞는 바람 한 줄기에도 그분의 뜻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당하는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때도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습니다. 하물며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는 메르스 전염사태 같은 일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 리 없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그분은 크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아무리 제가 묻고 또 물어도 당신의 뜻을 속시원히 알려주시지 않던데요. 서른 살 믿음 좋고 성실한 청년, 누구보다 존경할 만한 부모님의 아들로 자라서 교회와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려는 젊은이가 암으로 인해 천국에 간 일, 평생 자식들 잘 키우는 것과 가족들 전도를 목표로 몸과 마음 부서져라 살아오신 어머님이 인생 노년 친구와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일. 아직도 이런 일에 담긴 그분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내 얕은 사랑과 이기적인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긴급 기도제목이라며 카톡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가 메르스 위험국가가 된 것은 퀴어 축제 개최를 막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털썩! 늘 하던 대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입원하신 부모님 간호를 하던 아들과 며느리가, 심지어 친구 부모님 병문안을 갔던 사람들이 졸지에 메르스에 걸려 이름도 잃어버린 채 전염자 14, 26번이 되어있습니다. 가장이고 아이의 엄마일 것입니다. 격리된 병실에서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갑작스레 엄마와 떨어진 아이들이 제대로 밥이나 먹고 있을까? 얼마나 두려울까요? 그러다 돌아가신 분이 이미 다섯 분입니다. 퀴어 축제를 막자고 나처럼 살아가던 이웃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었다고요?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단순하게 연관 짓는 것이 저는 메르스보다 더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방식으로 대하질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수록 신비일 뿐이지만 적어도 제 삶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약하고 악한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간절한 뜻을 보여주시기 위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몸을 찢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어 하나님보다 나, 나의 아이들과 나를 드러내는 모든 것을 숭배하며 매일 불신의 늪을 헤매는, 누구보다 악한 저를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사랑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단톡으로 받은 긴급 기도제목을 보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가, 분노했다가, 이런 무정한 세상에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정하고 잔인하며 독선적인 말의 폭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트위터에 지인이 공유하신 글에서 다음 문장을 보고는 가슴이 아프도록 동의하며 잡글이라도 끄적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 타인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예수의 생명이다

 

 메르스로 인해서 격리 조치된 무고한 60여 명의 사람들, 그들의 가족, 불안과 공포로 떨면서도 든든히 기댈 국가와 지도자가 없는 가련한 백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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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문

 

 

꽃잎 흩날리는 늦봄에... 기룬 것이 어디
논길을 달려가던 자전거뿐이랴
님의 운명을 닮아서 늘 푸른 애창곡 <상록수>뿐이랴
논두렁에 걸터앉은 양은 막걸리 술잔
'사람 사는 세상'의 감빛 밀짚모자뿐이랴?

"사람이 먼저다, 무릇 사람이 먼저다"
그러나 원칙과 상식이 마른 풀잎처럼 쓰러져버린 
험상궂은 반칙사회의 벼랑 끝에서
짓밟힌 풀포기(民草)를 뜨겁게 끌어안은 <변호인>
거꾸로 선 역사를 곧추세운 청문회 의인(義人)

팔레스타인 소년처럼 돌멩이 들었던 아스팔트 투사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괴물군단의 저승사자
야트막한 마을, 어둔 골목길로 걸어갔던 듬직한 맏형
주름진 얼굴의 눈물 닦아준 바보 성자(聖者)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준 '내 마음의 대통령'

올해도, 시드니 물항의 맹그로브 숲을 떠나서
열흘 밤낮 태평양을 건너간 그리움은
기어이 봉하마을 논배미에 내린 큰뒷부리도요새
빼앗긴 봄이 어느새 다섯 번인데
여태도 풀리지 않는 명치끝의 멍울이구나

오랜 슬픔이 하늘끝에 이르면 흰구름이 되는 걸까
자전거 타고 떠도는 낯익은 밀짚모자
"기다리시오, 함께 아팠던 처음처럼 기다려 주시오
오오! 마침내 그날이 오면,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를 돋우고 상한 갈대도 일으켜 세웁시다"

무심한 듯 봄날은 오고 가지만 차마 꿈엔들 잊겠는가
촛불 밝히면, 오금이 저린 비리사회의 악령들
탐욕스런 자본과 그 앞에 넙죽 엎드린 마름 종자들
검은 돈에 볼모 잡힌 벼슬아치와 정치모리배들
스스로 거세당하여 명토 박을 펜대조차 없는 기자들

아직은 빼앗긴 봄날... 설운 것이 어디
바닷 속에 잠겨버린, 반칙 모르는 앳된 목숨들뿐이랴
흑백사진으로 남은 노무현의 눈물뿐이랴
차마 떠나가지 못하여
검은 자전거 타고 떠도는 밀짚모자뿐이랴?

 

 

시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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