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

집사님과 함께 찬양했던 사진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어요. 집사님 찬양하시는 모습이 크게 잡힌 사진을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찾다 찾다 예전 싸이클럽까지 가서 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 사진이 흐릿하지만 집사님 옆 모습 딱 보여요. 제 마음의 사진첩 샬롬찬양대 폴더에는 수백 장의 사진과 MP3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 중에 집사님이 솔로로 부르셨던 노래도 있지요. 6/8 박자로 편곡된 곡이었어요. 싱코페이션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라 많이 어려워 하셨었죠.

 

이와 같은 때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께

이와 같은 때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저 오래 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할 때부터 솔리스트를 선정할 때의 음악보다는 가사를 봤어요. 찬양의 가사를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려 고백할 수 있겠다 싶은 분께 솔로 부탁하곤 했어요. 그 때문인지 제가 지휘했던 그 많은 곡들의 솔리스트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20년 전 어린이 성가대 때부터요. 그 많은 곡들 중  찬양을 부르셨던  집사님의 비음 많이 섞에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어요. 제가 윤복희 목소리 닮았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성가대 지휘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일 중의 하나였고, 지휘자 가운은 그 어느 때보다 저 다워지게 만드는 옷인 것 같아요. 그 어떤 성가대보다 더욱 기쁘게 찬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샬롬찬양대는요. 파트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틀리고 또 틀리시고, 어떻게 틀리는지 흉내내 드리면 깔깔깔 웃으시다 시작되는 농담 따먹기는 끝이 없고, 그래도 안 되면 노래 중간에 넋을 놓고 쉬시던 어르신들 생각이 나요.  제가 가진 얕은 음악성과 근성있는 유머본능이 대원들의 착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솔까말) 엉망진창 음악성과 조화를 이루며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아요.

 

집사님은 늘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히 다니셨죠. 지휘하다 집사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 마음이 막 쓰리곤 했었어요. 제가 청년이었을 적에 지휘하던 어린이 성가대에 집사님의 둘째 G가 있었잖아요. 장난꾸러기라 저한테 혼이 많이 났죠. G에게 야단을 많이 친 죄로 집사님을 뵈면 괜히 죄송했어요. 얼마 후에 남편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시작하셨고 끝내 천국으로 가셨어요. 저는 그때 먼발치에서 주보 광고로만 소식을 접했어요. 그러나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신 제 엄마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그 이후 교회에서 집사님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두 아이가 성인이 되고, 집사님과 샬롬찬양대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늘 모이면 왁자지껄 즐거운 찬양대에서 집사님은 말이 없으셨어요.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니셨죠.  저 찬양의 '이와 같은 때'에는 부르는 사람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게 '이와 같은 때'는 모든 최악의 순간인데요. 제 마음의 '이와 같은 때'를 집사님의 상황에 투사한 것 같아요. 솔로를 부탁드렸을 때 한사코 마다하셨고, 앞에 앉으신 분을 방패삼아 몸을 자꾸 숨기시던 기억이 나요. 박자가 너무 어렵다고 하셨고, 결국 주일 찬양에서 긴장하셔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셨죠. ^^ 그래도 집사님이 부르셨던 그 찬양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어요.

 

지난 목요일 밤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만 집사님을 뵈며 작별 인사를 나눴어요. 남겨진 남매를 만나고 많이 울었어요. 이제 둘 다 듬직한 성인이 되어 안심이라고 애써 생각해 보기도 해요. 더욱 어른스러워진 D의 말에 감정의 둑이 무너져 버렸어요. "엄마가 선생님 많이 좋아한 거 아시죠?" 그러고 보면 그 세월 같이 찬양을 하면서도 집사님과 길게 얘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집사님 얘길 하니까 '아, 그 던킨도넛 집사님!'이라고 해요. 맞아요. 제가 언젠가 연습시간에 저희 아이들 얘길 하면서 던킨도넛 얘길 했어요. 그 후 크리스마스에 집사님께서 던킨도넛 한 아름을 현승이에게 안겨 주셨죠. 저희가 집사님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언젠가 한 번은 저희 현관에 던킨도넛을 걸어두고 가셨었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도넛상자에 담긴 집사님의 마음이 더욱 가까이 느껴져요. 집사님, 저도 사실 집사님 많이 좋아했는데요.....

 

장례식에서 집사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온 밤에 강의 준비를 핑계 삼아 새벽까지 앉아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암에게 뺏겨버린 D와 G를 위해 기도를 드린 것도 같고, 잠깐씩 눈물을 훔치다가  집사님께 마음으로 무슨 말씀인가를 드린 것도 같아요. 강의 준비는 영 못했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나갈 준비하는데 마음에서 찬양 하나가 올라왔어요.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올 줄 고대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집사님,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픈 몸을 벗으시고 그렇게 그립던 남편을 만나셔서 사랑하는 주님 품에 잘 계실 것을 믿어요. 음... 집사님 저 장래희망 하나 더 생겼어요. 장래 천국에 가서 집사님과 함께 '이와 같은 때엔' 찬양을 부르겠어요. 샬롬찬양대 좋은 분들 함께 모여서 '여호와는 위대하다'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부르겠어요. 그때는 모두들 악보를 잘 보시겠죠? 무엇보다 집사님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찬양하셔야 해요. 그런 날을 소망해요. 

집사님, 저............ 집사님 참 좋아했어요. 

 

 

 

 

 

 

 

 

 

 

 

어릴 적에 '어른이 되기까지 남은 날'을 헤아려 본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최소 12년은 죽어라고 공부하는 나날.

그리고 대학가면 어른이 되나? 그때는 자유가 생기나?

다시 생각해보면 어른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지긋지긋한 공부 지옥 벗어날 날을 헤아렸던 것입니다.

일단 대학 갈 때까지는 죽어도 벗어나지 못할 학교 감옥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우리 채윤이, 예중 입학을 결정한 5학년 때부터 고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까지는

숨막히게 달려오고 있습니다.

내가 채윤이만 할 때 그랬던 것처럼 '이 감옥에서 언제 벗어나나' 할 것입니다.

그런 채윤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늘 안타깝기만 합니다.

저 푸르른 나날을 꽉 막히 연습실에 갇혀서 지내는 것, 

틈이 나면 죽도록 영어 단어를 외우며 기계 같은 시간을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한 텀 쉬고 가면 안 되나?

이런 신선한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을 바로 실천해버린 가족이 있습니다.

애정하는 이수진, 황병구 님 부부와 그 딸 은율이가 그랬습니다.

안식학년.

(이라고 쓰고)

중학교 졸업하고 1년 동안 그냥 학교 안 다니고 쉬고 멍때린다.(라고 읽는다)

그렇게 보내서 뭘 얻었다, 가 아니라 그  멍때리는 시간 자체가 의미인 것 같고,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앞만 보고 달리라고 채찍질 하는 것을 교육이라 부르는 미친 세상에서 말입니다.

 

이 부부와 은율이의 선택이 부럽고, 따라해볼까, 하던 차에

이분들이 제대로 일을 만들어서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합니다.

꽃다운 친구들, 일명 꽃친!

저도 요즘 여기 꽃친에 꽂혀 있습니다. 

그 옆에 얼쩡거리면서 자원봉사자 컨셉으로 흥미롭게 지켜보며 응원 중입니다.

아래, 설명회 안내를 그대로 복사해 왔구요.

블로그( http://kochin.tistory.com) 에 가시면 더 많은 이야기들 보실 수 있습니다. 

 

 

 

*************

 

 

 

[꽃다운친구들] 관심가족 설명회 


 “ 방학이 일년이라면 ” 


드디어 [꽃다운친구들]이 유쾌한 사고를 치기로 결정하고,  
관심가족들을 모셔서 공개설명회를 개최합니다. 

또 하나의 독특한 학교를 경험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1년 짜리 긴 방학을 함께 누린다는에 방점을 두고 설명회를 기획했습니다. 

[꽃다운친구들]의 기획단계부터 여러 도움을 주신 악동뮤지션 부모님의
특별한 초청 강연도 마련했습니다. 

자녀들에게 넉넉한 시간을 제공하면서
부모들이 함께 인생을 설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돌아보고 내다보는
진지하고도 산뜻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관심있는 가족들을 넉넉히 초청합니다. 

무엇보다 아빠들이 함께 오시면 참 좋겠습니다. 


 

<설명회 개요>

 

- 일시: 2015년 9월 7일(월) 18:30 ~ 21:00 

- 장소: 서울시 NPO 지원센터 이벤트홀 [품다]

(시청역 도보 5분 거리 -약도 링크 연결)

- 대상: 청소년 하프타임에 관심있는 중학생 자녀가 있는 가족 

- 신청: 구글독스 링크에서 (클릭)

- 회비: 가족당 1만원 (최대 3명, 신청자에게 입금계좌 개별안내) 

- 특전: 사전접수 가족에게 관련 서적 1권 증정, 아빠동반 가족 우대 

- 문의: friend@kochin.kr 

- 정보: www.kochin.kr 

 


 

< 주요 프로그램 >

 

1부: 초청 특강 “오늘 행복, 내일 더 행복”  

     강사: 이성근, 주세희 선교사(악동뮤지션 부모님, 꽃친 자문위원) 


2부:방학 12개월 프로그램 설명회 

     사례 소개 

       1. 참을 수 없는 범생이의 미래 

       2. 말할 수 없는 멍때림의 비밀 


     방학생활 제안 

       1. 자녀가 꿈꾸는 방학 

       2. 부모가 가꾸는 방학 


3부 : 자유간담회

     무엇이든 자유롭게 묻고 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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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 카페바인에서는 [에니어그램 세미나]만 열리는 게 아니네요.

협동조합 카페 '바인'에서 조합원 대상 강의가 있답니다.

피가 되고 살이 될 찌개백반 같은 강의가 줄을 서 있군요.

특히 김근주 교수님과 황병구 교회 오빠는 개인적으로 많이 좋아합니다.

자신 있게 추천하고요.

 

맨 아래 링크 따라 가시면 자세한 안내가 있는데요.

카페바인의 조합원이 되시면 좋은 정신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무료 강의와 카페 메뉴와 원두 할인 등 진짜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혜택이 많습니다.

 

저는 한참 전에 <오우연애>를 내고 북토크 장소로 인연을 맺었었는데요.

더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되었네요.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바인'에서 지속할 것이구요.

잘 보시면 9월 조합원 강의에 제 이름도 있어요.

저는 '잃어버린 길, 마음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믿음과 인격이 따로 노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저나 여러분의 이야기? ㅎㅎㅎㅎ 아니고 여러분 말고 저의 이야기요!

'20 년 동안 새벽기도 빠지지 않는 장로님이 교회와 가정에서 고통의 원인이 되는 이유에 대한 영성심리학적 고찰'이라는 부제를 달아 약을 팔아보려고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오세요.(참가비 만 원, 조합원은 월 2회 강의 무료 수강및 30% 할인)

 

9월 강의는 물론 8월 강의와 조합 신청에 관한 자세한 안내는 링크를 따라가 보세요.

 

https://t.co/MqhhEj3VBL

 

폰에서는 신청 접수가 잘 되지 않던데요.

계속 안 되시면 이곳에 댓글 남겨주세요.

 

 

 

 

 

 

 

 

 

 

 

 

지난 토요일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손바닥과 무릎을 시멘트 바닥에 쓱싹 갈아버렸지요. 상처부위에 드레싱 밴드를 떡허니 붙이고 수업에 가는데 채윤이 현승이가 '오늘 엄마 애기들이 으막션샘미 손 왜 그래요? 막 물어보겠네' 합니다. 오, 애기들한테 가서 엄살 좀 떨어줘야겠는 걸!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보자마자 '션샘미, 왜 그래요?' 걱정포텐 터지는 반응 나올 줄 기대했으나..... 어느 아가도 아야야 내 손을 주목하지 않습니다. 기타코드 옮기며 일부러 손바닥을 펴곤 했는데도.... 흑흑. '얘들아, 선생님 아야했어' 결국 내 입으로 불었습니다. 물론 그 다음 반응은 '션샘미, 안 아파요? 엉엉.... 우리 으막션샘미가 다쳤어' 이럴 줄 알았습죠.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저마다 여기 저기 코딱지만 한 상처를 찾아내며 '나도 아파요. 나도 아야했어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급기야 상처를 보여주기 위해 앞으로 돌진. (실패다) 물러설 수 없다. 실로폰 계단을 오르고 싶은 사람은 션샘미 아픈 손에 호~오 해줘야 한다고 근엄하게 선언했습니다. 모두들 경건한 자세로 호~오를 했습니다. 히히히. 딱지 떼지 마세요~ 상처엔 실로폰계단에 눈먼 아가들의 호~오를 발라주세요! 오늘도 음악수업을 빙자한 힐링캠프였습니다.

 

어제에 대한 후회도, 내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오직 지금 여기를 사는 아가들.

이런 영혼들이 자라서 어쩌다 어른이 되는 것일까요? 이런 모든 흔한 고집불통에 돈이 전부인 줄 알고 자기 유익을 위해 사람 죽어나갈 거짓말과 망언을 서슴치 않는 어른 말입니다. 내 생각만이 맞다며 결코 마음의 꼬리를 내릴 줄 모르는 뻣뻣한 어른들 말입니다. 실로폰 계단 한 번 올라 보자고 아빠다리에 손무릎, 반짝이는 눈으로 선생님 바라보기, 차렷! 그 상태로 얼음이 되는 작은 사람들. 물론 딱 10초 정도만. 아, 이런 사람들, 이 작은 사람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정희 시인의 시 일부가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고정희

 

 

보시오

그리움의 태에서 미래의 아기들이 태어나네

그들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딸과 아들로 어우러진 아기들이여

우리 아기에게 해가 되라 하게, 해로 솟을 것이네

별이 되라 하게, 별로 빛날 것이네

우리 아기에게 희망이 되라 하게, 희망으로 떠오를 것이네

그러나 우리 아기에게 폭군이 되라 하면 폭군이 되고

인형이 되라 하면 인형이 되고

절망이 되라 하면 절망이 될 것이네,

우리들의 아기는 살아 있는 기도라네

 

길이 되라 하면 길이 되고

감옥이 되라 하면 감옥이 되고

노리개가 되라 하면 노리개가 되기까지

무럭무럭 자라는 아기들이여

 

 

 

 

 

 

 

 

아침에 거실에 비치는 햇살 한 줄기가 화분의 초록 잎에 비춰 만들어내는 투명한 빛에도 그분의 사랑을 느낍니다. 저녁에 강가에 나가 맞는 바람 한 줄기에도 그분의 뜻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당하는 어려움으로 힘들어할 때도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찾습니다. 하물며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는 메르스 전염사태 같은 일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지 않을 리 없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그분은 크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아무리 제가 묻고 또 물어도 당신의 뜻을 속시원히 알려주시지 않던데요. 서른 살 믿음 좋고 성실한 청년, 누구보다 존경할 만한 부모님의 아들로 자라서 교회와 사회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려는 젊은이가 암으로 인해 천국에 간 일, 평생 자식들 잘 키우는 것과 가족들 전도를 목표로 몸과 마음 부서져라 살아오신 어머님이 인생 노년 친구와 가족들에게 외면당하며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일. 아직도 이런 일에 담긴 그분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제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뜻이 내 얕은 사랑과 이기적인 지성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요!

 

긴급 기도제목이라며 카톡에 올라오는 내용을 보니 우리나라가 메르스 위험국가가 된 것은 퀴어 축제 개최를 막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랍니다. 털썩! 늘 하던 대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가, 입원하신 부모님 간호를 하던 아들과 며느리가, 심지어 친구 부모님 병문안을 갔던 사람들이 졸지에 메르스에 걸려 이름도 잃어버린 채 전염자 14, 26번이 되어있습니다. 가장이고 아이의 엄마일 것입니다. 격리된 병실에서 살아나갈 수는 있을까? 갑작스레 엄마와 떨어진 아이들이 제대로 밥이나 먹고 있을까? 얼마나 두려울까요? 그러다 돌아가신 분이 이미 다섯 분입니다. 퀴어 축제를 막자고 나처럼 살아가던 이웃이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되었다고요? 그것을 하나님의 뜻과 단순하게 연관 짓는 것이 저는 메르스보다 더 두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방식으로 대하질 않으셨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일하시는지 알수록 신비일 뿐이지만 적어도 제 삶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약하고 악한 백성들을 일깨우기 위해서,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간절한 뜻을 보여주시기 위한 방법은 바로 자신의 몸을 찢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기적이고 어리석어 하나님보다 나, 나의 아이들과 나를 드러내는 모든 것을 숭배하며 매일 불신의 늪을 헤매는, 누구보다 악한 저를 기다리고 인내하시는 사랑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단톡으로 받은 긴급 기도제목을 보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가, 분노했다가, 이런 무정한 세상에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무기력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정하고 잔인하며 독선적인 말의 폭력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트위터에 지인이 공유하신 글에서 다음 문장을 보고는 가슴이 아프도록 동의하며 잡글이라도 끄적일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 세상에 타인을 위해 이용될 수 있는 죽음이 있다면 그것은 단 하나, 예수의 생명이다

 

 메르스로 인해서 격리 조치된 무고한 60여 명의 사람들, 그들의 가족, 불안과 공포로 떨면서도 든든히 기댈 국가와 지도자가 없는 가련한 백성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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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문

 

 

꽃잎 흩날리는 늦봄에... 기룬 것이 어디
논길을 달려가던 자전거뿐이랴
님의 운명을 닮아서 늘 푸른 애창곡 <상록수>뿐이랴
논두렁에 걸터앉은 양은 막걸리 술잔
'사람 사는 세상'의 감빛 밀짚모자뿐이랴?

"사람이 먼저다, 무릇 사람이 먼저다"
그러나 원칙과 상식이 마른 풀잎처럼 쓰러져버린 
험상궂은 반칙사회의 벼랑 끝에서
짓밟힌 풀포기(民草)를 뜨겁게 끌어안은 <변호인>
거꾸로 선 역사를 곧추세운 청문회 의인(義人)

팔레스타인 소년처럼 돌멩이 들었던 아스팔트 투사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괴물군단의 저승사자
야트막한 마을, 어둔 골목길로 걸어갔던 듬직한 맏형
주름진 얼굴의 눈물 닦아준 바보 성자(聖者)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지켜준 '내 마음의 대통령'

올해도, 시드니 물항의 맹그로브 숲을 떠나서
열흘 밤낮 태평양을 건너간 그리움은
기어이 봉하마을 논배미에 내린 큰뒷부리도요새
빼앗긴 봄이 어느새 다섯 번인데
여태도 풀리지 않는 명치끝의 멍울이구나

오랜 슬픔이 하늘끝에 이르면 흰구름이 되는 걸까
자전거 타고 떠도는 낯익은 밀짚모자
"기다리시오, 함께 아팠던 처음처럼 기다려 주시오
오오! 마침내 그날이 오면, 꺼져가는
촛불의 심지를 돋우고 상한 갈대도 일으켜 세웁시다"

무심한 듯 봄날은 오고 가지만 차마 꿈엔들 잊겠는가
촛불 밝히면, 오금이 저린 비리사회의 악령들
탐욕스런 자본과 그 앞에 넙죽 엎드린 마름 종자들
검은 돈에 볼모 잡힌 벼슬아치와 정치모리배들
스스로 거세당하여 명토 박을 펜대조차 없는 기자들

아직은 빼앗긴 봄날... 설운 것이 어디
바닷 속에 잠겨버린, 반칙 모르는 앳된 목숨들뿐이랴
흑백사진으로 남은 노무현의 눈물뿐이랴
차마 떠나가지 못하여
검은 자전거 타고 떠도는 밀짚모자뿐이랴?

 

 

시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9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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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살아온 삶을 돌이켜보며 사랑성장을 체험했던 기억(좋았던 때든지 어려웠던 때든지)을 돌아보십시오. 내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고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을 떠올려보고 나눠보겠습니다."

 

에니어그램 집단여정 중에 나눔을 위해 던지는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가 살아가며 '혼자'라는 외로움에 자주 빠져들곤 하지만 대개는 결정적인 사람 한 둘은 가지고 있다. 상황이 좋을 때 함께 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지금 지속되는 만남일 수도, 과거의 만남일 수도 있다. 이 질문을 던지며 내가 기대하는 바는 자신의 인생여정에서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되는 것이다. 상처만 받고 살았다고 여기지만 잘 생각해보면 받아들여진 경험이 있다.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예외없이 바로 그 사람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사람씩 그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절로 가슴이 뭉클해진다. 뭉클하여 울컥하다 또 다른 질문에 다다르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인 적이 있는가?' 그리고 소망한다.'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고 싶다'

 

사랑을 일깨워줬던 그 사람들을 찾아 일일이 인터뷰 해보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수혜자와 수여자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랑을 받았다고 사람은 기억하는데 대개 준 사람은 '내가 그때 그런 말을 했어? 기억이 잘 안나는 거 보니 깊이 생각했던 것 같진 않은데... 내가 그때 밥을 사줬어?' 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 세미나에선 함께 참석한 두 분이 저 대사를 딱 읊어주셨다. 이 질문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사랑은 받는 사람이 '사랑'으로 느껴야 사랑이다. 준 사람이 '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라고 울부짖어 봐야 소용이 없다. 대체로 '어떻게 해줬는데!!!!' 하며 준 것들은 공포의 배려이기 마련이다. 사랑과 배려로 '통제'하겠다는 (본인도 모르는)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자연스럽게 흘러 넘쳐서 가 닿는 것이지 쥐어 짜내서 주는 것일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온전히 자기 자신일 때의 이타심, 또는 융의 '자발적 희생' 원형에 대한 지상 강의를 늘어놓고 싶으나 일단 꾹 참고!)

 

글이나 강의, 대화를 통해 남다른 통찰력을 발휘하고 싶었고, 그것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고 말겠다는 꿈(도 야무져!)이 있었다. 그 꿈에 대한 집착이 클수록 불안했다. 누가 나보다 더 통찰력 있는 강의를 하나, 글을 쓰나 이글거리는 경쟁심과 질투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한다). 집착인데, 집착인 줄 아는데 잘 내려놓지 못했었다(못하고 있다). 다행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어 야무진 꿈은 자주 아작나고 있다. 강의든 글이든 상담이든 사랑이든 그렇게 힘이 빡 들어간 채로 제공하는 것은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을 아프게 배우는 중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선생이 되고 싶은 욕망은 은밀히 꿈틀댄다. 사랑이든, 가르침이든 내 그릇에 가득차서 넘쳐 흘러 넘치는 것만이 진정한 영향력이 될 수 있다고 내 입으로 강의하면서 내 마음은 그 반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억압된 욕망은 과도한 자기비판의 칼날로 대체되어 이중 삼중으로 나를 괴롭힌다. '나만이 답을 알고 있는 태도로 강의한  건 아닐까. 내가 말하는 것을 다 살아내고 있는 체 하지는 않았나' '적게 듣고 많이 말한 것은 아닐까. 들어주면 될 것을, 너무 가르친 것은 아닌가' '고도의 교만을 겸손과 솔직함으로 위장하는 글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닐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날 건져내랴.  

 

지나친 겸손도 아니고 과도한 자기확신도 아닌 절묘하여 아름다운 지점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금요일 우리 동네를 경유해서 출퇴근 하는 D와 아예 동네 주민인 Y가 지나가 들른 느낌으로 집에 왔다. 얘들이 손에 뭘 하나 씩 들고 왔다. 떡볶이 앞에 놓고 수다수다를 했다. 돌아가고 나서 들고 온 예쁜 꽃바구니를 들여다보다 생각하니 작년 이맘 때도 만나서 꽃다발을 받았었다. 아, 얘들이 스승의 날을 생각하고 온 거구나. 작년에도 올해도 우연히 그냥 놀러온 게 아니었구나. 선생이고픈 욕망을 용케도 잘 누르고 있는데 떡하니 받은 꽃바구니에 대놓고 뭉클했다. 마주앉아 수다를 떨다보니 몇 년 전 주일 파리바게뜨에서 딱 이 멤버로 앉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요원한, 또는 어려운 연애 얘길 했었다. 허허. 어느 새 그녀들은 예비엄마, 예비신부가 되어 있다. 어쩌다 이젠 아이를 키우는 얘기를 하염없이 늘어 놓았다. 역시나 가르치는 영이 충만한 나는 (게다가 기분까지 들떠서) 적게 듣고 많이 주절거렸다. 몇 년 전 파리바게뜨에서 커피를 마시던 날 우리가 우연히 만났었단다. 둘이 걸어가는데 내가 차 타고 지나가다 '야, 타!' 했단다. 그런 거다. 애쓰지 않고 만나고 그렇게 만나서는 그때 그때 살아가는 얘기를 하는 거다. 만남의 기회가 주어질 때 반갑게 마음을 나누는 거다. 그게 가르침이고 배움이고 사랑이다. 암튼, 고맙다.

 

(질투의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은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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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오우연애>는 '내 책 내는 거 맞찌? 내 이름의 책이 나오는 거 진짜 맞찌?' 황홀함에 들떠서 뭐가 뭔지 모르는 채로 허둥대다보니 나와 있었다. 두 번째 책 <와우결혼>을 내기 위해서 만난 편집자 L 님의 첫 메일을 받고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길지도 않은 인사 메일이었다. 사람에 대한 촉이 필요 이상으로 발달한 나, 정신실이 아닌가.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 의존적이기 때문에 누구와 만나서 대화하고 일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는 나다. 첫 메일에서 프로의 냄새를 맡았다. 적응력도 있는 나는 프로 편집자님께 프로 저자가 되기로 정해버렸다. 이것은 1층에 있던 저자가 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타는 순간이었다.


메일을 보아하니 디게 깐깐한 분이다. 오타는 애교, 맞춤법 틀리는 건 살짝 부끄러운 거~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쓰던 자세를 고쳐 앉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신경 안 쓴 척, 원래 꼼꼼한 척 깨알 같은 답신을 썼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얼마 후에 출판사에 가서 대면했는데... 뭐야? 왤케 부드러우심? 그 부드러움은 다름 아닌 저자에 대한 존중의 태도였다. 그 존중의 태도는 다름 아닌 책을 편집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지였다. 아, 그냥 완벽주의 편집자가 아니구나,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와우결혼>을 만들면서 L 님의 완벽주의는 수시로 확인이 되었지만,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설렁설렁 하려는 내 태도를 돌아보며 컴터 앞에 앉은 내 태도를 고쳐 앉게 하였다.


나는 오랜 기간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까칠하고 예민하다는 평에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 했다. 까칠함이 나쁜 것이라고(엄마가 늘 말했기 때문에) 나쁜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다 오타가 나는 것도 '에이, 뭐 그런 거지. 오타도 보이고 그래야 인간적이지' 하곤 했다. 내가 까칠하지 않다는 것을 그런 것으로 증명하려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와우결혼>을 만들며 교정본을 받고 다시 보내고 하는 과정에서 오타와 비문, 정확한 인용에 대해서 화들짝 눈을 뜬 면이 있다. (또 다른 전문가적 완벽주의자 남편과 함께 한 작업인 탓도 있다.) 어쨌든  한 번도 내게 다그치지 않았지만, L님의 일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나를 가르치고 있었다. (자랑인데, 내가 잘 하는 것 중 하나가 사람에게 빨리 배우는 것이다. 내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을 심하게 부러워하면서 그 부러워하던 덕목을 배우고야 마는 그런 근성이 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헤헤) L님은 정말 내게 '와우~ 편집자님!'


그러나 어떤 면에서 <와우결혼>은 내게 결정적인 아쉬움을 남기고 세상에 나왔다. 그 아쉬움을 통해서 책이 나와서 마냥 좋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수준이란 게 있구나'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수더분한 사람이 아니구나) 세 번째 책 <커피 한 잔과 함께 하는 에니어그램>은 L 님의 아내님의 손에 넘어갔다. 두 사람은 부부 편집단. <와우결혼> 출간 즈음에 결혼을 하셨으니 이건 또 무슨 즐거운 인연인가?  아무튼 에니어그램 책을 맡으신 아내 간사님 역시 일러스트를 찾는 것부터 내 기대치를 웃돈다. 아내 L 편집자님은 여자 김종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우리 남편과 비슷한 캐릭터. 그래서 그런지 책을 만드는 과정이 물 흐르듯 졸졸졸이다. 그리고 책 패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표지에 나의 '와우~ 편집자님'이 적극 참여하시며 짧은 저자 인생에서 얻은 작은 트라우마 하나를 치유해 주셨다. <커피 에니어그램>은 여러모로 내게 치유적인 책이 되었다.


토요일 저녁, 두 L 편집자님과 식사를 하고 커피를 나누고 풍성한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저 막연히 두 분의 편집자가 내게는 큰 선물이며 복이다, 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때는 희미하게 보였으나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니 그분들이 나를 알고 계시듯 나도 그분들을 알겠고, 선물이라 생각했던 심증은 확증이 되었다. 저자라고 누구나 좋은 편집자를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내 마음이 한층 자라고 글에 대한 겸허함을 배우게 되었으니 복과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랴. 오늘 대화 중에 남편 L 편집자님이 던진 '게으름'이라는 화두가 긴 울림으로 가슴에 남는다. 어떤 소명의 자리로 부름 받은 사람,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 자극에 둔감하고 자신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게으름이고 '죄'다. '변화'는 늘 하던 것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어제의 방식을 부정하는 것이니 고통의 선택을 통해 가능한 것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자 한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고, 소명을 받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게으름이고 동시에 죄이다.


네 번째 책, '육아'에 관련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글을 선별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자로서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새삼스레 반성하게 된다. 저자의 무책임은 무책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편집자의 짐이 된다는 것도 이제는 분명히 알겠다. 느슨한 탈고를 하면서 구멍을 남기는 것이 인간적이라며 가볍게 굴었던 것도. 게다가 그런 걸 가지고 '나 까칠하지 않다니까' 합리화를 일삼았다. 저자와 편집자 관계에서 그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책임을 다하는 일이 늘 미끈하고 뽀대나는 일이 아니라 까칠해 보이고 주변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까칠함의 미덕을 새롭게 배운다. 저자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까칠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착하단 소리 못 듣고, 잃고 가는 것이 많아지더라도 저자의 저자됨, 나의 나됨을 위해서 용기있게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실은 요즘 나의 까칠함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원고 하나를 매만지면서 배신 때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를 더 빛내줄 출판사에서 내야지 하는 마음으로 눈알을 굴리고 있었으나 회개하는 마음으로 한껏 치솟은 안압을 낮추기로 한다. 팔리는 책이 아니라 저자의 빛깔이 살아 있는 책을 만들려는 편집자,  저자를 빛나게 해  책 많이 팔기를 도모하지 않고 오히려 저자의 빛이 커져서 긴 그림자가 드리워질 때 어떻게 책임을 나눠서 질까를 미리 고민하는 편집자가 있다. 그분이 내 편집자이다. 때문에 나의 글 선생님이기도 하다.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까칠해서 더 좋은 편집자, 그 곁의 공평하며 중심 있는 짝지 편집자. 까칠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겠노라 결심한 저자, 그 곁의 공평하며 중심이 흔들리지 않는 짝지 남편(이며 약간은 저자)과 대화가 무르익어가는데 대~애박, 창밖으로 무지개가 떴다. 갑자기 나타난 무지개를 보며 탄성을 지르게 되는 것처럼 삶은 갑작스런 만남으로 인해, 그로 인한 인한 깨달음을 통해 깊은 탄성을 지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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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샘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36:9)


어느 새 한솔이 3주기가 되었다.
작년에 와서 심어놓은 꽃들이 다시 피어있어 반갑고 신기하다.
올핸 활짝 핀 수국을 한솔이 옆에 나란히 심어주었다.

문득 한영교회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난다. 
한솔이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고파  함께 울며 기도하던,
한솔이 형, 한솔이 오빠의 생명을 붙들기 위해 누구보다 뜨겁게 기도하던,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노래하며 지낸 한솔이의  마지막 나날을 들었던,

눈물로 떠나보내면서 새로운 삶을 다짐했던,


그 TNTer들.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명의 샘에 잇대어 생명을 소중히 가꾸며 살고 있을까?


한솔이를 만나고 올라오며 우리 모두의 생명의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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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이금미 부부가 파릇한 신혼일 때 매주 한 번씩 '가정교회'로 만나 밥을 먹고 일상을 나눴었습니다. 우리 둘째 현승이가 생애 처음 그린 그림(또는 멋대로 그은 선 몇 개)을 보고 뭘 그린 거냐 물으니 "이슈삼츈"이라고 했더랬지요. 여섯 살이던 큰 애 채윤이는 이슈삼촌 성대모사를 제대로 했었죠. "워우~ 종피리형!" 엠티 가서 각 부부 첫키스 얘기 들으며 뒹굴며 웃던 그 밤도 생각납니다. 아, 이슈삼촌이 '와이프, 와이프' 하는 소릴 듣고 채윤인 "엄마, 나 나중에 커서 수민이의 와.이.퍼가 될래" 이러면서 어록을 남기기도 했었네요.


일본에서 선교하시다 오랜만에 들어오셨는데 제 강의를 들으러 와주셨고, 장소가 마침 우리 교회 사회봉사관이었던 덕에 넷이 이렇게 기념사진 남겼어요. 두 가정 다 그 시절로선 상상하지 못했던 자리에 와 있네요. 돋보기 들이대고 보면 두려움과 기대, 눈물 또는 기쁨으로 굴곡진 몇 년이었지만 이렇게 만나 돌이켜보니 은총의 손길이 변함 없이 함께 하셨구나. 싶어 뭉클합니다.


반가웠어요. 몸은 멀리 있지만 함께 밥 먹고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찬양하던 그때처럼 마음만은 함께 해요. 네팔에 있는 진태훈, 오윤선 부부도 많이 보고싶어지네요.

 

오랜된 앨범 폴더에서 찾았네요.
현승이의 첫 그림, 이슈삼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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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여기서 쉬 싸는 사람이 누군 줄 알어?
야, 얘들아~ 여기 움악션샘미 있어.
화장실 문 앞에 팬들이 모여 있어서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 아시는가?
일주일에 한 번 믿어지지 않을 세상에 들어갔다 나온다.
4,5세 아기들의 음악 수업인데,
뜨거운 호응과 열렬한 지지에 자존감이 높아진 나 감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훔..... 이제 내 경쟁상대는 뽀로로 뿐이군. 







새해 첫 수업일에는 의도적으로 이런 헬로송을 부른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즐거운 음악시간, 안녕 네 살 꼬뜰반~
물론 네 살에 액센트 넣어준다.
그러면 '안녕 선생님' 대답하려다 말고 애들이 눈에 확 불이 붙어가지고,
다셧 쌸이예요. 시현이 다셨 쌸이예요. 소율이 이렇게 이렇게 다셧 쌸예요.
손가락 다 펼쳐 보이고 난리도 아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런 표정 연기가 중요하다. 우막션샘미는 사실 여자 짐캐리였다.)
무슨 소리야. 니네 네 살인데. 니네 접때 네 살이었잖아. 하면

완전 목에 핏대 세우고,
아니예요~오. 다셧 쌸이예요. 이제 다셧 쌸 댔쎠요~오.
그래? 갑자기 왜 다섯 살이 됐어? 어떻게 다섯 살이 된 거야?
순간, 멍. '그러게, 내가 왜 갑자기 다섯 살이 됐지?' 하는 표정
(나이가 더 드신 애들은 바로 떡국 얘기가 나온다.)
그때 한 아이.
엄마가 이제부터 다섯 쌸이래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머지 녀석들도
다시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엄마가 다셧 쌀이라고 했어요~오. 우리 엄마가 나 이제 다섯 쌸이래요.
그 와중에 한 녀석이벌떡 일어나 까치발을 들어보이며,
이봐요. 이렇게 키가 커져쎠요. 란다.

이런 순간, 내 몸 속에서 믿어지지 않을 양의 엔돌핀이 방출된다.
행복이나 기쁨이란 단어도 무색하다.
그저, 뭐 이렇게 귀엽고 말랑말랑한 세상이 있을까 싶다.



 

작년 마지막 주 수업에서는 색깔종 연주를 준비해 갔는데
수업을 시작하려니 종 하나가  없는 것이다.
주황색 종을 다른 요일에 치료하는 곳에 흘리고 온 것.
음이 하나 빠지면 당연 연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난감한이긴 했지만
20년 차 우막션샘미는 결코 당황하지는 않는다.
아~나, 어떡하지?
 약간 오버를 해주니 역시 아이들 반응이 뜨겁다.

왜요? 왜요?
아니, 너희 주황마녀 알아? 주황마녀가 선생님 주황색 종을 가져갔어.
그래서 우리가 오늘 종소리 울려라 연주를 할 수가 없어. 어떡하지?
이 한 마디에 의외로 아이들 몰입. 바로 뜨거운 리액션들이 나오는 바람에 
바로 '1인 즉흥 모노 동화'를 만들어서 열연을 했다. 

선생님이 주황마녀 집으로 가서 주황색 종을 찾아올 거야
.
그런데 사실 선생님 디게 무섭다. 주황마녀가 마술을 부릴 수도 있거든. 
이 지점에서 다시 아이들 흥분해서 나름의 필살기를 내놓는다.
내가 로봇을 빌려줄테니까 가져가서 싸워라. 발로 탁 차라. 칼로 찔러라... 기타 등등.


(이제 수업 돌입)
고마운데 다 필요없다. 선생님은 음악 선생님이라서 노래의 힘이 필요하다.
너희가 한 명 씩 노래를 아주 큰 소리를 불러주면 선생님한테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면 힘을 받아가지고 선생님이 주황마녀를 찾아가 싸우고, 다음 주에 종을 찾아오겠다.
라면서 아이들 독창을 시켰다.
내향적이고 부끄럼이 많아서 절대 혼자 뭘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노래를 시킨다.
물론 일단 뒤로 뺀다.
"야, 그러면 음악 선생님이 힘이 없어서 주황마녀한테 질 지도 몰라."
우막션샘미를 지켜야한다는 의협심이 내향적 에너지를 이긴다.
일어나서 기타 반주에 무려 독창을 하는 아이! 꺄울!!!
다시 한 번 우막션샘미 몸에 엔돌핀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이렇게 수업은 예상치 못한 쾌거를 거두며 마친다.


엊그제 수업을 가서 어느 반에 들어 갔는데,
한 녀석이 내 발에 뽀뽀를 했다. 처음엔 뽀뽀를 했는지도 몰랐다.
한 번 더 뽀뽀를 하더니,
"좋아서요. 우막션새미가 좋아서 그래요."란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말랑한 영혼으로부터 우막션샘미 마음에 치유의 광선이 비춰졌다.


나, 이토록 믿을 수 없는 세상을 은밀히 드나들고 있다는 것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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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미용실이 하나 새로 생겼다. 내 또래의 말이 없는 여자분이  미용사인데 솜씨가 그럭저럭 괜찮다. 현승이 한 번 가고, 이후에 남편도 그곳으로 보내고 있다. 앞을 지날 때마다 들여다보게 되는데 거의 손님이 없다. 미용사분 혼자 조그만 난로 가까이에 손을 대고 불을 쬐며 TV를 보는 모습이 늘 똑같다. 아효, 오늘도 손님이 없네. 걱정을 하면 아이들이 엄마는 왜 그리 남의 집 장사에 신경을 써? 한다. 머리 잘 자르는데 장사 안 되서 문 닫을까봐 그러지. 라고 대답하고 만다.


그 옆에는 여름엔가 봄인가 오픈을 한 카페가 있다. 훈남 청년이 하는 건데 손쉽게 원두를 살 수 있어서 좋다. 블랜딩한 원두가 꽤 맛있었는데... 갈수록 조금 아니다 싶다. 동네 카페들과 달리 특별히 로스팅을 잘 하는 곳에서 원두를 받아온다고 했었다. 장사가 잘 안 되니까 단가가 낮은 원두로 바꾼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도 지날 때마다 들여다보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여름엔 장사가 좀 되더니 날이 추워지니 손님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왜 이리 신경을 쓰고 그래? 엄마~아! 하는 아이들에게 '생각을 해 봐. 사람들이 장사를 할 때는 준비도 많이 하고 돈도 많이 쓰며 시작한다구. 어쩌면 돈을 은행에서 빌렸을 지도 모르고, 가진 돈을 다 썼을 지도 몰라. 그러면서 얼마나 기대를 했겠어? 그런데 막상 손님은 없고 매일 저렇게 앉아 있으려면 정말 속상하겠잖아. 그러다 정말 문을 닫기라도 하면 희망이 무너지지 않겠냐? 그런 게 마음이 아파서 그래. 엄마도 카페 하고 싶어 하잖아. 엄마가 저렇게 되면 어떻게 하겠니? 마음이 아파.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서 '엄마, 미용실에 사람 하나 있더라.' 하며 (지들이 되려) 신경을 쓰고 그런다. 지난 12월 28일. 채윤이는 그 미용실에서 방학 기념 매직 퍼머를 했다. 점심 때를 넘기고 있었다. 카페에서 라떼 한 잔과 코코아 한 잔을 사서 가져다 주었다. 괜히 뿌듯해진다. 늘 마음에 쓰이던 양쪽 집을 한 번에 챙긴 느낌. 그리고 채윤이를 미용실에 두고 현승이 손을 잡고 시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별다른 일도 없고, 무력하고, 슬픈 성탄절을 보내고 난 후였다. 성탄절 이브에는 집에서 혼자 따뜻한 전기장판 켜고 낮잠을 잤다. 25일 성탄 예배에 가서는 정말 영혼의 잠을 자고만 싶었다. 이렇게 등 따시고 배부른 내가 더럽고 천한 마굿간에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맞고 모실 수 있을까? 페북을 통해서 접하는 이웃의 탄식은 하늘에 닿아 있는데 참된 '안녕'은 천국에가 가야 이뤄지는 것, 여기서 아둥바둥 할 게 뭐 있냐며 그저 내 일신의 안위만 붙들고 사는 하루하루다. 무력해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느낌으로 잠이나 처자고 싶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28일 시청 앞 집회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한 번 나가자 나가자 하면서도 남편 시간이 날 때를 기다린다는 핑계를 붙들고 있었는데 그저 가기로 했다. 하필 이 날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잡혀가면 어떡하냐, 물대포 쏘면 어떡하냐며 엄마 가지마 가지마 하는 현승이를 설득해서 손잡고 나갔다. 얼마 전 새로 사귄 형아를 만날 수 있다고 꼬셨다. 시청역 출구에서부터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잠시 일행을 잃고, 추위에 동동거리고.... 그러다 빠져나와 일행과 함께 코코아 한 잔 하고 돌아온 것이 전부이다.

 

 


 

 


현승이가 '나는 안 갈 거야. 엄마도 가지 마. 잡혀가면 어떡해?' 라며 걱정에 걱정을 하고 있을 때 채윤이가 그랬다. '현승아, 엄마랑 같이 가. 안 잡혀가. 그리고 가면 재밌어. 누나도 깁스만 안 했으면 가고 싶어.' 현승이가 겁이 많고 기질적으로 새로운 자극에 대해 기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탓이라고만 생각했었다. 문득 채윤이랑 했던 2004년 광화문 촛불집회가 생각났다. 채윤인 그 경험을 아주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것 역시 채윤이 기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그때와 다르다. 2004년의 광화문에는 기가 막히는 적반하장에 어이없는 한숨은 있었지만 이렇게나 절망적이지 않았다. 수십 년 뒤로 물러난
민주주의 시계를 감지하면 삼엄함에 압도될 수 밖에 없다.

 

 


2002년은 현승이를 가진 해이다. 돌이켜보니 현승이를 품고 민주당 경선을 지켜보며 인생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감동과 희망을 경험했다. 임산부의 몸으로 한 끼 금식기도를 하기도 했다. 문성근씨의 연설을 들으며 남편과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대선 당일, TV가 없어서 친구 집에서 대선 개표방송을 보고 당선 확정 결과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 추운 겨울 춥지가 않았다. 세 살 우리 채윤이가 앞서서 춤추며 걸어갔다. 내 마음도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말을 알아듣을 만큼 커서 그 시절을 보낸 채윤이에겐 시위도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었으니 '현승아, 괜찮아. 가. 가면 재밌어.'라고 말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 현승이가 가진 좋은 성품에 깜짝 놀라 때가 있다. 어쩌면 이렇게 마음결이 고울까? 특별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2002년 대선과 함께 한 그 드라마 같은 경험이 정말 좋은 태교가 되었겠다. 그랬겠다. 시편의 기자가 그렇게나 목놓아 하나님께 울부짖는 것이 왜 악인이 잘 되고 의인이 고통받습니까? 정의가 어디 있습니까? 정직한 사람은 왜 늘 약자이고 폭압 아래 있어야 합니까? 어찌 악인은 높아지고 승리합니까? 이다. 몇 천 년 후를 사는 나 역시 그렇게 하나님께 묻고 싶다. 그런데 2002 그때. 힘없고 빽없고 정직한 정의가 이길 수 있구나를 경험한 것이다. 그 기막힌 경험을 하는 엄마의 몸 속에서 나온 좋은 에너지가 어찌 현승이 성품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동생이 살고 있는 집이 매매가 되어 본의 아니게 이사를 해야할 상황이었다. 우리집 역시 계약기간이 끝나서 대출이 늘어나는 것으로 결론이 난지 얼마 안 됐다. 엄마랑 동생네 걱정을 하며 얘기하다 "엄마, 우리 나라에서 집 없는 사람들은 아무리 성실하게
절약하고 착하게 살아도 2년만 지나면 그냥 빚이 늘어'나. 그런 세상이야." 했더니 공감을 하시며 "그르니께 애들 잘 켜(키워), 공부 잘 혀서 성공허라고 혀." 라고 하셨다. 90 노모 앞에 무슨 말 할 수 있을까. 헛웃음을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 안녕이라는 고지를 점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 오시기 전까지 안녕하지 못할 이 세상에서 안녕하지 못한 자리를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사람으로 말이다. 무엇보다  천국을 진짜로 믿고 사는 사람, 하필 가장 더럽고 천한 마굿간으로 오셨다 가신 예수님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고 따라가는 사람. 이웃의 안녕하지 못함을 담보한 나의 안녕과 부와 힘은 허상일 뿐인 샬롬이다. 앞으로도 할 수 있다면 더 자주 아이들과 함께 현장에 가려고 한다. 이 아이들에게만은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한다거나,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서도 아니다. 역사가 지속되는 한 늘 안녕하지 못할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를 가르쳐주고 싶다. 안녕하지 못한 이웃의 곁,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자리가 예수님 자리 아닌가.


결코 따로 떨어진 문제가 아닌 동네 미용실과 카페와 동생네와 우리네의 불안한 일상. 내 이웃의 안녕과 우리의 불안한 일상. 때로 기막힌 절망의 일상. 마라나타를 저절로 되뇌이게 되지만 그 주님이 이미 이 낮고 가난하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로 오셨었다. 그 자리를 애써 피하지 말고 내가 살면 되는 것이다. 그렇긴 한데..... 참으로 절절한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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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보다 세심한 편이 아니라서 때에 맞는 인사 챙기는 걸 하지 못합니다.
오늘은 하고 싶네요.^^


블로그에 찾아주시는 분들께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로 인한 귀한 만남들이 많았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일상의 시덥잖은 얘기들을 끄적거리는데 찾아와 읽어주시고,
웃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큰 위로와 힘이 됩니다.
숨어계신 (하나님 아니고) 블로그 친구들이 꽤 계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올리고 댓글 하나 달리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합니다.
보이지 않는 댓글들을 저는 보니까요.^^


무엇보다 여기는 지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요.
드러낸 제 일상과 마음에 대해 공격도 없고,
방어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오랜 세월 확인했지요.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2000 포스팅이 되는 이 블로그의 기록인 것 같아요. 단지 기록만 있는 것이 아니라 따스한 분들과의 만남이 있었기에 말이지요.
늘 감사했지만 올해 더욱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는 댓글이 보이듯 눈팅만 하고 가시는 얼굴도 모르는 여러분의 마음까지
따스함으로 읽어버리겠습니다.
송구영신의 시간, 의미있고 재미있게 보내시고.
날이 갈수록 더욱 안전한 곳에 사시는 여러분이 되시길요.
여러분으로 인해 여러분 주변이 더욱 안전한 곳이 되기를요.


사진은 올해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태평양을 건너가 강의를 하고, 시카고 거리를 누비고 다녔던 시간입니다.
늘 그러하듯,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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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감옥에 갇혀 어둠의 시간을 보낼 때,
힘들지만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의미를 부여하려 애쓰는 것보다,
아이의 눈이 얼마나 천사같으냐며 생의 아름다움을 찾는 것보다,
빵터지는 웃음으로 힘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가 하는 실수 같은 것들에 그저 한 번 웃는 것 말이죠.
유머가 육아에 찌든 엄마를 가끔씩 구원하지요.
아이처럼 귀여운 구석은 없으면서 손이 가기로는 아이 못지 않은 노모.
노모를 모시는 우리 올케 선영이는 유머를 건져올리는 눈이 있습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좀 덜 미안해지고, 무엇보다 고맙고 그렇지요.
올케가 페북에 올린 엄마 이야기 옮겨왔습니다.

 

 


3대 거짓말 하면,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말.
노인이 빨리 죽어야지 하는 말.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말.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빨리 죽어야지."
"내가 오래 살아서 니들이 고상(고생)이 많다."

지난 달, 내가 어머니 가을이불에서 겨울 솜이불로 바꿔 드리려고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야야, 허지마라. 나 얼마 못 산다니께. 겨울까지 안 가."

좀전에 우현이가 발로 찬 탱탱볼이 방 문을 열고 나오시는 어머니 몸에 맞았다.

(깜짝 놀라서 버럭하시며)
"이 놈아~ 나 죽을 뻔 봤잖여. 나 죽으면 어떻게 헐라고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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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고부간 이야기로 썰을 푼다해도 그다지 빠지진 않는다
.
보통의 며느리들이 겪은 '완전 어이 없는' 에피소드도 있고,
보통보다 센 쩌는 에피소드도 있다.


특별한 고부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어머님이 나를 며느리 이상으로 생각하시고,
나 역시 단지 시어머니로 어머니를 대해 오지는 않았다.
한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결심 하나로 오랜 시간 어머니와 관계 맺어왔다.
그러나 사랑이 늘 그렇듯 껌씹으면서 대충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많이 사랑할수록 아픈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사랑이 늘 그렇듯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기로 결심한 나 스스로에게 '자아확장'을 요구해야 하는 일이다. 
어머니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보아야했다.
두려움으로 했던 일들을 사랑이라 우기는 나 자신을 보았다.
내 몸 불사르도록 내어준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결국 '번 아웃' 되어 나가 떨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보통의 고부간에 머물기보다 특별한 고부간으로 지내온 편이다.
'두려움'과 '자기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날이 많았지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내 사랑이 어머니를 구할 줄 알고 애쓰고 노력했지만
결코 어머니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  많이 좌절했다. 포기했다.


오늘 성탄절.
저녁식사 준비를 해서 어머니 댁에 다녀왔다.
어머닌 여전히 그러하시다.
외로움과 오래된 분노로 긴장된 그런 모습이다.

식사를 마치고 "내가 요즘 이걸 여러 번 읽고 외운다." 하시며 성경구절 하나를 꺼내셨다.
어머니의 상처 많은 과거를 돌아보나 지금을 떠올리나
이보다 더 적절한 말씀이 없는 듯하다. 
사실 어머님이 이 말씀을 가슴으로 알아들으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피정도, 상담도 모시고 다녔다.
물론 크고 작은 신경과와 통증 클리닉, 한의원을 전전하던 시간은 더 길었었다. 
상담까지 모시고 가서는 "이젠 됐다. 답을 찾았다!" 했을 때, 그때 어머니가 돌아서셨다. 
내가 애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나 역시 손을 놓았었다.



"전에 성경 읽을 때는 보이지도 않았던 말씀인데 이게 이렇게 눈에 들어오냐."

하시는데 속에서 울컹울컹했다.
하나님께서 어머니가 잉태되시는 그때부터 노인이 되신 지금까지 안고 업고 계신다니까요.
그래요. 어머니. 그렇다니까요.


어머님도 어머님 방식대로 여전히 자라고 계신다.

어머님 방식대로 당신의 하나님을 만나가고 계시며,
그분의 사랑을 배워가고 계신다.
어머님도,
또 나도,
그도,
그녀도,
각자 나름대로 사랑의 여정을 걷고 있다.
진정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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