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사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박광혜 권사님 떠나신 지 벌써 일 년이다. 1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헤아려 보면 권사님과의 만남이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구나! 그러나 어쩐지 권사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다. 운을 떼어 놓고 보니 일 년 내내 그랬던 것 같다. 3년 여의 시간, 함께 한 시간이 권사님의 70년 넘는 이 땅의 시간의 마지막 시간이었다니.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처음 뵈었을 때는 이렇게 빨리 이별이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사님은 떠나셨지만, 그래서 생긴 텅 빈 자리로부터 새로운 권사님을 만난다. 엄마 애도일기를 쓰고 마무리하며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배웠다. 누군가에 대해 쓰는 것은 그분의 아니라 나를, 그분의 삶에 비친 나를 해석하는 것이다. 떠난 이가 남긴 존재의 빈 자리를 응시하며 보이는 것은 그분이 내게 남긴 사랑이며 가르침이다. 그것을 알기에 쓰려고 한다. 무엇이든 쓰려고 한다. 쓰고 싶다. 써서 알아내고 싶다. 내게 남기신 권사님의 흔적을.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이라는 부제를 단 김영봉 목사님의 책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제목과 같다.

 

추도예배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던 중, 권사님 며느님께서 "어머님이 사모님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했다. 남편이 거들면서 "맞습니다. 권사님이 저보다 제 아내를 더 좋아하셨어요."라고 했다. 나도 안다. 아니 돌아보니 확실히 알겠다. 권사님이 나를 참 좋아하셨다. 내 커피를 좋아하셨고, 내가 꾸며놓은 거실을 '북카페 같다'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시며 칭찬하셨다. 아이들 키우는 것을 보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 가정이 있구나! 실제로 이렇게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라고 하셨다. 교회에 처음 오던 날,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까지 어깨가 움츠러들어 내내 긴장이었다. 그날이 한참 지나고 권사님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니, 잘 모르는 학생인데 내가 뒤따라 들어가는 걸 알고는 교회 출입문을 한참을 붙들고 있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착한가 봤더니 현승이였어. 마음 씀씀이가 보통이 아니에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말씀하셨다. 현승이는 이 말씀을 듣고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 "엄마, 봤지? 나 그런 사람이야." 추운 날의 따뜻한 기억이다. 

 

채윤이에게 특별히 마음을 쓰셨다. 한창 대입 실기 시험 중이었다. 1차 발표가 속속 나고 있었고. 시험을 잘보기도 하고, 못 보기도 했다. 한두 번 실수한 것으로 크게 낙심하고 있는데, 기대했던 학교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망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재수를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채윤이 모르게 남편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권사님께서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으셨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권사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사모님. 우리 채윤이 꼭 합격할 거예요. 하나님이 꼭 붙여 주실 거예요!" 정말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다. 교회 처음 부임했을 때, 권사님이 사랑하는 손녀딸이 한창 입시 중이었다. 권사님이 어렸을 적부터 혼신을 다해 뒷바라지하신 손녀이고,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손녀딸을 위해 기도하시던 절절함과 비슷하며 다른 절절함 같았다. 결국 채윤이는 원하던 학교에 합격을 했고, 그 소식을 들으신 권사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그러셨다. "사모님, 내가 된다고 했죠? 하나님이 채윤이 같은 아이를 안 붙여주시면 누구를 붙여주시겠어요?" 눈물이 왈칵났다. 그리고 손녀딸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요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 색깔이라며 화장품을 사서 선물로 주셨다. 곱고 고운 필체로 정성스레 쓰신 카드와 함께.

 

돌아보면 이렇게 따뜻한 기억이다. 실은 돌아보니 비로소 이렇듯 따뜻한 것이다. 권사님은 사실 '칼같음, 철저함' 같은 형용사가 어울리는 분이다. 완벽하고 빈틈이 없으며 모든 것을 다 가진(갖춘) 분 같았고, 특유의 자부심도 충만하셨다. 아나운서 같은 낭랑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우아한 말투셨다. 그런 말투로 돌려 말하기보다 직설로 꽂으셨다. 실은 그래서 권사님이 조금 무서웠다. 부임한 첫 해,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길게 진행했는데 쉽지 않은 동반이었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내적 여정 참여자들은 자발성 100%에 목마름 200% 정도를 장착하고 온다. 톡 건들면 그저 마음을 활짝 여는 분이 대부분이다. 교회 내적 여정은 자발성보다는 관성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면을 깊이 돌아보는 것이 여정의 목표인데, 웬만큼 준비되지 않으면 마음의 여정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동반하고 이끄는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권사님은 교회 에니어그램 포함, 내가 이끈 내적 여정 집단을 통틀어 최고령 수강자이시다. 정말 열심히 듣고 필기하셨고, 매주 철저하게 복습하셨다. 그리고 매 시간 "너무 어렵다."라고 하셨다. 가장 열심히 하시면서 가장 어려워하시는 모범생이었다. 상담이나 마음의 여정에서 "모르겠다"는 반응은 "마주하기 힘들다"로 받아들이곤 한다. 내적인 부침이 있다는 뜻이다. '저항'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상담자 또는 여정 동반자로서 분별이 필요하고, 버티는 힘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질문이 많으시고, 그만큼 어려워하셨다. 왜 아니겠는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정직하게 내면을 마주하는 작업인데. 아무튼 권사님 뿐 아니라 전통 교회 신앙생활에 익숙한 분들과의 여정은 내게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시간 소감문을 써 제출하시도록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권사님스럽게, 활자 같은 필체의 소감문을 반듯하게 접어 깨끗한 봉투에 담아 스티커로 밀봉해 건네주셨다. 역시나 권사님스러운 정직한 소감문이었다. 여정에 참여하며 겪으신 내적 갈등을 그대로 고백하셨다. 그럼에도 여정이 지향하는 지점을 명확히 알고 계셨다. 마지막 문장 '쿵쿵 울림'이란 두 단어는 내 마음에 남아 아직도 쿵쿵, 울리고 있다. 그 연세에 살아오신 세월을 돌아보며 '잘못 살았구나' 하신다. 권사님 정말 오롯이 에고의 그림자를 마주하셨었구나! 누구보다 내적 여정을 진실하게 걸으셨구나! 이제와 다시 보인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삶과 신앙을 '고민하고 후회하며 다시 부끄러움'으로 마주하며 성찰하셨던 시간은 어떠했을까. 더 헤아려드릴 걸, 아쉽고 아쉽다. 쓰다 보니 더욱 아쉽고 텅 빈 마음에 아픈 바람이 스친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을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워낙 나의 뇌세포는 더 이상 지식이나 감정이 들어갈 틈이 없이 평생 쓸데없는 것까지 차곡차곡 싸여 있었기에. 슬프고도 부끄러운 1강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중에 어떤 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뭔지 모를 충만함에 2강이 듣고 싶어서 '기도하며, 고민하며 후회하며 다시 부끄러움에...... 여기 저기 다 있는 나. 아직도 정확한 내 유형을 못 찾고 있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됨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여전히 난 잘못 살았구나 하는 자책감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십자가, 예수님의 와전한 사랑이 나를 회복시키심을 믿는다. 있는 그대로. 모든 학습에서 낙제였지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정말 그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 기울이고 싶다. 

시간 시간 마음으로 쿵쿵 울림이 있었던 내 평생 처음 경험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권사님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멀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멀다고 생각했기에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권사님이 나를 참 좋아하셨는데 바싹 다가가 "권사님, 내면 마주하는 일이 참 힘드시죠? 권사님, 여기까지 정말 잘 살아오셨어요."라고 말씀 드릴 용기가 없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사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얘기를 가끔 들려주셨다. 아들들 시험기간에는 열심히 하던 에어로빅도 쉬셨다고 했다. 엄마가 몸을 흔들고 있으면 공부하는 아이 정신 산란할까 봐 그랬다며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쓸쓸하게 말씀하셨다. 이런 면에서 나는 권사님의 반대쪽 끝에 있는 엄마가 아닌가. 내 또래 엄마가 같은 말을 했다면 단칼에 정죄하고 말았을 텐데. 권사님께는 조심스러웠다. 내 소신이 권사님을 아프게 할까, 회한 가득한 권사님의 눈동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곳에 처음 이사오고 며칠 안 지나서였다. 며칠이 지나도 집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오래된 집의 좁은 주방은 많지도 않은 그릇을 다 받아내질 못했고, 대충 지어지고 무성의하게 증축되어 생긴 방과 구조에는 아귀가 맞게 들어가는 가구가 없었다. 쓰던 가스오븐레인지는 들어올 수 없었고, 휴대용 버너로 최소한의 식사를 하며 지냈다. 춥기는 또 왜 그리 추웠는지. 바닥에 앉아 배달음식 먹으며 두 아이 중 누군가가 말했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아. 아빠가 망해서 이사 온 집 같아."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아직 가스 연결이 안 됐다는 소식을 들으신 권사님이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뭘 해도 완벽하게 하시는 분이다. 손수 만드신 듣도 보도 못한 맛있는 음식을 네 식구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미술을 전공하신 권사님의 동양자수 작품이 갤러리처럼 걸려 있는 거실과 칼같이 정리된 주방 서랍까지. 머나먼 세계 같았다. 맛있게 먹고 돌아와 우리의 새집에 앉아 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누구나 자기 세계, 자기 우주를 산다. 사람 사람 지문이 다르듯, 살아온, 살아가는, 살아갈 세계가 다르다. 두 세계를 각각의 고유함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려면 갈등이 불가피하다. 갈등을 피하기 좋은 방법은 마주하는 세계를 없는 것처럼 지우는 것이다. 마주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먹고 사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차피 내가 알 수 없으니 환상으로 치부하면 불편할 것이 없다. 나는 조금 그렇게 차단했다. 그래서 권사님께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돌아보면 권사님은 그 세계의 경계를 넘어 내 세계로 들어오셨다. 채윤이 대입 즈음에 보여주셨던 확신은 내 가슴에 와닿은 진정성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키운 권사님의 손녀딸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키워진 채윤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망해서 이사 온 집 같은 우리 집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그 와중에 북카페처럼 꾸며놓은 거실을 그렇게나 좋아하셨다. "어떻게든 살겠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마음을 쓰며 나의 세계에 침투하셨다.

 

1, 2학기에 걸쳐 내적 여정을 마친 늦가을. 권사님께서 몇 번 입지 않았다면 빨간색 트렌치 코트를 주셨다. 이름만 들어본 다른 세계의 브랜드였다. 내 몸에 꼭 맞게 수선을 해야 한다시며 수선비용까지 내셨다. 다시 새로운 세계였다. 수선비가 내가 몇 년째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 가격보다 훨씬 더 비쌌다. 장롱 안에 그 코트가 있다. 권사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입고 나갔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입지 못했다. 그 코트의 가격이 대충 어떻다는 것을 알고는 입어지지가 않는다. '나 이거 입는 사람이야' 보여주기 위해 명품을 입는 마음이나 그것을 입지 못하는 나나 옷을 돈으로 보며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기는 매 한 가지다. 암튼, 그 코트를 입고 권사님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단풍 끝자락의 남한산성에 모시고 가서 내 최애 점심과 커피로 함께 했다. 오가는 차 안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길게 들려주셨다. 참 좋아하셨다. 봄에 한 번 또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스치듯 하셨던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아 있다. "미안해요. 목사님과 사모님께 참 미안해요.” 개인적 관계에서 미안함은 아니었다.  그 순간엔 몰랐는데, 복기할수록 그 한 마디가 내 깊은 어떤 것을 건드렸다. 그때 당시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어쩌면 하나님께 꼭 듣고 싶은 말이었다. 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한 마디 들으면 훨씬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던 바로 그 말이었다. 바로 그 말을 권사님이 해주셨다.

 

권사님 장례식을 마친 자리에서 하신 아드님의 부탁이 있었다. 1년 후 추도예배를 꼭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남편에게 하셨다고 한다. 권사님 사셨던, 흐드러지는 벚꽃이 뵈는 창이 있는 집을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그 거실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1년을 기다린 것이다. 추도예배를 드리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권사님께 하고픈 말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많은 것이 감사했다. '우리 사모님'의 커피를 특별하게 여겨주셨던 것, 나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와 주셨던 것. 무엇보다 권사님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3년을 함께 하게 해 주신 것. 인생 마지막 인사, 장례예배 집례를 남편 김종필 목사가 해드릴 수 있었다는 것. 완벽한 자기 관리로 일궈내신 삶과 신앙이 생애 마지막 10여 년, '교회 사태'라는 이름의 풍랑을 겪으시며 어떻게 흔들렸는지 잘 알고 있다. 울며 울며 걸으셨다는 탄천 길을 내가 함께 걸었던 느낌으로 생생하게 여러 번 들었다. 교회와 목회자로 인해 겪은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치지 않으셨다는 것에 깊이 안도하며 감사한다. 권사님 투병 중에 '목사'라는 사람과 쉬지 않고 소통하며 두려움을 내비치시고 거침없이 기도 부탁을 하실 수 있으셔서 감사하다. 권사님은 당신 큰 아들과 나이가 같은 데다, 청빙위원에 소속되어 있었던 책임감으로 김종필 목사를 안타깝게 바라보셨다. 열정을 뿜어내며 선동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흠결 많아 마음 놓이지 않은 김종필 목사가 투병 기간 내내, 임종 직전까지 권사님의 손을 잡아드릴 수 있어서 나는 감사했다.

 

남편이 목사인 것이 나는 늘 부끄럽다. 목사가 쓸모 없는 시대에 목사로 사는 것이 안쓰럽다. '목사의 쓸모없음'을 전제로 세워진 교회에서 목사 노릇하는 것이 안타깝고 민망하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늘 의문하고, 기준도 높은 사람이라 더욱 그렇다. 박광혜 권사님의 투병기간과 장례식, 그 이후 일 년을 지내고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이 목사여서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목사의 아름다운 권위로, 거기에 권사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 그 시간을 함께 해드리는 것이 좋았다. 목사들에게 받은 치명적인 상처로 아직 분노와 슬픔이 가시지 않은 권사님 곁에 그저 조용히 손잡아 드리는 목사로 함께 해드릴 수 있어서. 카리스마는 없지만 대신 속 깊은 진심을 가진 사람인 걸 권사님도 아시겠지. 추도예배를 마치고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에서 아드님들과 대화하는 남편이 참 보기 좋았다. 처음으로 목사의 쓸모를 생각했다. 쓸모없음으로 깊이 좌절하고 자주 흔들리는 남편이(내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것, 이 역시 권사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뭔가 쓰고 싶은 마음으로 일 년을 보냈다. 권사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쓰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기나긴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쓰다보니 죄송함과 감사함, 그리움과 슬픔으로 마음이 쿵쿵 울린다.

 

사랑하는 권사님, 세계와 세계의 마주침에서 한 발 더 다가가지 못한 것 죄송해요. 감사해요, 권사님. 정말 다른 세계에 계셔서 제가 사는 삶은 알지도 못하고 안중에도 없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경계를 허물고 들어와 주시고,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늦게 권사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죄송해요. 권사님이 주신 빨간 트렌치코트, 평생 간직하면서 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새길게요. 구분하고 나누고 벽을 세우는 것 없는 나라, 두려움 없이 만나고 거침 없이 연결될 좋은 나라에서 곧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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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위문공연이다. 무료하고 때로 무력하거나 우울한 내 일상의 위문공연이다. 서원이가, 작년 어느 날부터 음악수업에 나타나 내게 기쁨이 되었던 서원이가 동네로 찾아왔다. 첫 수업이 잊히지 않는다. "이거 해볼 사람? 서원이가 해볼래?" 하니 고개를 천천히 저으면 몸을 뒤로 뺐다. 눈으로는 "네넵! 해볼래요, 하고 싶어요, 저 잘해요. 뭐든지 잘해요."라고 말하면서. 눈으로 하는 말을 듣고, 살살 달래서 결국 하게 만드는 게 으막션샘미 특기인지라. 뒤로 뺀 몸 이내 앞으로 나와 연주를 했다. 그리고는 음악시간마다 기대에 찬 눈으로 앉아서 나를 맞아주곤 했었다.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시간, 무거운 키보드를 질질 끌다시피 들고 찾아간 교실에서 만나는 비타민C 레모나였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수업이 중단되고 학기가 마쳐버려서 굿바이도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서원이 엄마의 제보로 음악수업 있는 목요일을 그렇게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모나 서원이와 OO님이 엄마와 아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놀랐었지)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아이들의 '추구'는 늘 그 자체에 가깝다. 그러니 아이들은 지금 추구하는 것을 얻으면 그냥 행복인 것이다. 다른 목적 없이, 아무 헤아림 없이,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줄 때, 아이들이 행복한 만큼 나도 행복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뿐, 목적할 뿐이기 때문이다. 수단 아닌 목적의 존재가 된다는 것, 얼마나 감동적인 것인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서원이를 만나게 되었다. 집 교도소에서 출옥하여 '기쁨' 그 자체를 만나다니.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밝은 색 니트를 입고, 귀걸이도 했다. 심장박동이 기쁨의 박자로 빨라지는 것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 일찍 집을 나서서 태재고개를 넘어 걸어가는 길, 발걸음이 이리 가벼울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공원에 잠깐 갈까? 요 앞에 길을 건너면 공원인데... 했더니. 나는요, 차를 타고 가는 공원으로 가고 싶은데요. 이 계시같은 한 마디에 율동공원으로 향했고, 걸으며 큰 소리로 카쥬를 불고, 30초 그림자 밟기, 30초 얼음땡 놀이도 했다.

헤어지는 분위기가 되자 놀이터에 가고 싶다, 집에는 장난감이 하나도 없다, 우리집은 15층이라 뛸 수가 없다, 1층에 살면 좋겠는데 1층은 집이 안 나온다.... 어설픈 (그러나 뭔가 부동산 판도를 읽고 있는 듯한 ㅎㅎㅎ 웃긴)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길거리 스탠딩 톡킹 어바웃'이 길어지고 깊어져 속내 털어놓기 타임이 되었다.

다음에 날씨 따뜻해지고 코로나도 끝나면 다시 와서 놀자. 코로나가 끝나면 좋겠다.

나는요, 코로나가 끝나는 게 좋지 않아요. 나는요 재택근무를 좋아한다구요. (6세 입에서 재택근무! ㅎㅎㅎ 코로나로 재택근무 하는 엄마랑 함께 있어서 좋다는 뜻) 

(갑자기 아빠의 일상 공개) 아빠는 새벽에 가면 늦게 오거든요. $*&^@#$%^!#$ (이 부분 깨알 재밌는데... 사생활... 큐큐)

(스물한 살 누나 체벌하는 문제를 상담까지 해줌) 어, 옷걸이로 때리지 말고요. 패트병으로 엉덩이를 때리세요. 그게 아파요. (실은 스물한 살 누나가 선생님보다 커서 때리는 게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더니 그때부터 너무 길게 자세하게 설명) 누나가 스물할 살이 될 때, 한 살이 더 먹을 때 말예요. 선생님도 또 한 살을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같이 나이를 먹으니까 선생님이 나이가 더 많은 거예요. 선생님이 더 작아도 나이는 더 많은 거니까... 때릴 수 있어요. (아, 그러면 집에 가서 누나가 또 방을 안 치우고 있으면 막 패트병으로 때려야지! 의지를 보여줬더니) 아니, 처음부터 때리는 게 아니라 일단 말로 하세요.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패트병으로 때리세요. (너무 친절한 체벌 상담 ㅎㅎㅎ)

다 옮겨 적을 수 없어서 아쉬운, 녹음하지 않아서 아쉬운 긴긴 대화였다.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간질거린다. 아이들은 지금 여기를 산다. 그리고 초대한다. 우리 역시 지금 여기에 머물도록. 그 무엇도 목적하지 않고 목적한다. 나를 목적한다. 존재를 목적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선물을 준다. 길에 서서 나눈 그 대화, 잊지 못할 것 같다. 좋았던 과거도 아니고, 더 좋아질 미래 어느 날도 아닌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린 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없고, 손잡고 악수를 나눌 수 없는 나날이지만. 그 순간만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행복감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말로 내 어두웠던 과거와, 으막션샘미로 행복한 현재와, 새로운 창작의 꿈꾸는 미래를 한 줄에 꿰면서 내 일상으로 다가와 깜짝 놀래킨 사람이 서원이 엄마였다. 언어로 기록하기 어려운 그런 신비이다. 그러고 보면 '신비' 역시 무엇을 목적하지 않는, 그냥 그것, 그냥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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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먹기 좋은 겉절이 김치와 함께 편지 한 장을 받았다. 시어머님이 주신 것이다. 처음 받아보는 편지이다.

 

글쓰기의 치유력을 익히 알고 있다. 그 힘을 삶으로 경험했고,  함께 쓰고 읽는 사람들의 글과 말로 확인했다. 수년 전에 시어머님의 자서전을 써드렸었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님, 어린 시절부터 겪은 고난을 몸이 그대로 기억하고 있어서 여러 증상을 앓으셨다. 여러 곳 병원에 모시고 다니고, 상담과 영성 피정 등에도 보내드렸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신체적 심리적으로 더 허약해지셨고, 나로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낸 것이 자서전 쓰기였다. 배움에 결핍감을 가지고 계시지만 타고난 '활자 지향형'이신 어머님께 좋은 기회가 될 거라 믿었다. 한 발 물러서서 당신의 인생을 바라보고, 삶을 구술하시는 동안 새로운 관점이 생길 거라 믿었다. 이현주 목사님의 책 제목처럼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 고백하시겠지! 치유의 글쓰기의 진수를 경험하실 거라고!! 야심찬 계획이었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원고를 완성하고, 책으로 편집해주시던 언니가 말했다. "자기야, 이 책의 주제는 세상의 나쁜 년들아!야. 이 책에 등장하는 분들이 읽으시면 어머니 더 힘들어지실 것 같아. 자기가 서문 격으로 해명하는 글을 하나 써라" 아닌 게 아니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억울함과 자기 연민의 독백이었다. 어머님 자신이 얼마나 의로웠고, 헌신했는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몰라줬고, 오히려 배은망덕했는지. 얼마나 억울하고 또 억울하신지. 결국 서문 하나를 써서 집어넣고 책을 찍었다. 어머니 예상과 달리 흥행에 실패했다. 흥행은 커녕 읽는 이마다 말을 잃고 묘한 표정을 지은 것이었다.

 

내 좌절이 더 컸다. 책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어머님의 태도 때문이었다. 책 작업을 하는 동안 이미 지쳐있었다. 성찰을 위한, 치유를 위한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것을 알았다. 성찰이 아니라 자아팽창에 일조한 것 같았다. '여기까지가 끝이구나' 이때로부터 어머님 치유를 위해 애쓰던 노력을 그만두었다. 전 같지 않은 내게 대놓고 섭섭함을 표현하시고, 수시로 돌려까기 하셨지만 더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데 어제 받은 편지이다. 어머님이 자발적으로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시는데, 편지 내용이 감사와 사랑이다. 전에 자서전의 그 어머니 글이 아니다. 내게 하시는 감사와 사랑의 말씀에 감동이지만 관점의 변화! 이것이 더욱 놀라운 것이다. 자기 연민과 억울함의 호소가 아니라 감사와 연민이다. 자서전 작업을 통해 꿈꿨던 바로 그것!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몇 년 전 쓰신 글에서 당신 안의 어둠을 토해내길 잘하신 거다. 감사와 사랑의 진실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억울함과 분노의 늪을 정직하게 통과해야 하는 것이었다. 의지만으로 쉽게 초월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이나 감정의 정화, 내적 성장이라는 것이. 빛으로 가는 길은 그림자에 있다. 거리를 두고 나쁜 며느리를 무릅쓴 시간 동안, 에라 모르겠다, 어머니를 포기하고 지낸 시간 동안 어머니는 어머니의 여정을 걸으신 것이다. 각자 자기만 아는 자기 길을 가고 있다. 나도 내 길을 비틀비틀 걷고 있다. 

 

 

자서전 <혹덩이에서 복덩이로>에 붙인 서문

 

“내 얘길 다 하려면 책 열 권을 써도 모자란다.” 황혼 어르신들께 자주 듣는 말입니다. 어느 인생인들 책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없을까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륜이 쌓인다는 것은 인생의 이야기 분량이 쌓여간다는 뜻일 겁니다.

 

저의 어머니도 당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열 권, 스무 권으로 다 담아내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몇 날 몇 일 밤을 지새워도 끝나지 않을 70 평생의 이야기를 이 작은 책 하나에 담았습니다. 어머님이 쓰셨습니다.

 

열 권 분량의 사연이 있다고 해서 모두 책을 쓰지는 못합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70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은 결국 이렇게 인생을 써내셨습니다. 게다가 어머니의 고백처럼 평생 ‘배우지 못한 한’을 아프게 품고 살아오신 분입니다. 결국 이렇게 써내신 어머니께 박수를 드립니다. 어머님이기에 가능하신 일이었습니다.

 

상담을 하고 나면 ‘이렇게라도 털어놓으니 후련하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습니다. 혼자 붙들고 아파하던 것을 어디에든 쏟아내기만 해도 견딜만해지고 가벼워집니다. 이 작은 책은 어머님의 ‘털어놓음’입니다. 어린 시절을 혹덩이로 기억하시는 어머니는 오랜 세월 마음의 병을 앓아오셨고 두통과 불면증으로 고생하셨습니다. 부디 이 털어놓음으로 인해 남은 인생에 더 밝은 이야기들이 쌓여 가기를 기도드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일을 함께 경험하신 분들은 어머님과 다른 기억을 가지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기억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개인에 의해 ‘경험’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자 자기 인생 이야기가 지어져가는 것일 겁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내면아이 치유’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어린 시절의 치유는 다름 아닌 ‘기억의 치유’라고 합니다. 각자 기억이 다르고, 어머니의 기억 또한 세상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어머님의 내면아이 치유, 기억의 치유를 위한 아픈 고백임을 기억해주시고, 따스하게 바라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표지사진을 찍던 날 어머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고 표정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셨습니다. 발그레 상기된 볼하며, 20여 년 가까이 어머님을 곁에서 뵈며 그렇게 예쁜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났습니다. 스스로 혹덩이라 여기며 춥고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님이, 오직 당신만을 사랑스럽게 따스하게 바라봐주는 눈길을 얼마나 얼마나 바라셨을까 싶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험한 세월을 약하디 약한 몸으로 견뎌 오신 것은 분명 어머니 마음속엔 ‘사랑의 눈길’에 대한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의 다른 이름은 ‘믿음’일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의 눈길을 거두지 않으시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 하나로 혹덩이 어머님이 복덩이가 되셨습니다.

 

어머님 남은 생애, 그 따스한 주님의 눈길을 더 많이 느끼고 발견해가시며 행복한 황혼을 보내시길 기도드립니다.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더욱 주님을 붙드시는 믿음의 길은 사랑의 길임을 믿습니다. 혹덩이 어머님, 복덩이 어머님을 사랑합니다.

 

막내며느리, 정신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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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테이블에 놓인 핸드북을 보고 현승가 빵 터졌다.  "으헛, 사모대학? 이건 무슨 대학이야?" 지난 학기에 이어 사모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강사로서 가장 복잡한 자리'라고 표현하곤 한다. 꼬맹이 장애 아이부터, 비장애 아이들, 신자와 비신자, 부모와 아이, 청년과 노인, 무신론자와 가톨릭 신자, 또는 불교신자까지. 다양한 분들 앞에 마이크 들고 서는데 사모님들 앞에서 강의는 마음이 복잡한다. 여러 의미로 복잡한다. 얼마나 복잡했으면 엊그제 있었던 이번 학기 2회차 강의는 전날까지도 강의안을 확정하지 못했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나를 주장할 언어를 가진 내게 ‘사모’는 여느 사모님들과 다르다. ‘글쓰기’라는 일종의 권력을 가진 나는, 글은 커녕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사모님들이 호칭되는 ‘사모’와 다르다는 걸 안다. 아프도록 다르다. 나는 '사모'라고 부르며 나를 통제하려는 후배에게 '사모라고 부르지 마라!' 할 수도 있다. '저 분이 책을 낸 작간데 왜 사모라고 부르고 그래요?' 하며 '사모라 부르지 않는 것'으로 자기 주장을 위해 나를 대상화 할 때는 '사모라 불리든 작가라 불리든 부르는 사람과 나와의 관계다. 낄끼빠빠 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겐 이제 그런 힘이 생겼다. 


사모님들이 여러 면에서 힘들지만 목소리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소수자 스탠스가 그러하듯. 목소리는 낼 수 없지만 은근한 주목(이라 쓰고 '감시'라 읽는다.) 엄청나게 받는다. ‘사모’라는 존재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만큼 사모님을 돕는 것도 없다.  사랑해서 결혼한 남자가 목사니, 그의 삶의 동반자로 함께 걸으며 자기 삶을 살도록 신경 꺼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여자가 남편의 직업 때문에 그렇듯 무거운 짐을 지고 산단 말인가.

(자주 했던 얘기지만) 주부수영반에 들었던 적이 있다. 거기선 일반적 호칭이 ‘형님’이고, 1번 형님, 3번 형님 등으로 불린다. (번호는 수영 잘하는 순서, 말하자면 줄번호이다.) 수영 마치고 오래오래 시우나 하고, 맛집 가고 하는 형님들의 에프터엔 나도 함께 하지 못했지만. 유독 혼자 다니는 한 분이 계셨다. 어느 날 2번 정도 되는 형님께서 내게 엄청난 비밀 공유하신단 태도로 귓속말을 주셨다. “야, 저기 지금 나가는 평영 잘하는 여자 있지? 걔 목사 사모래” 헉! 목사 사모가 왜요? 나도 커밍아웃 해야 하나, 잠시 심장이 쫄깃 했다.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까지도 목사 사모에 알 수 없는 무엇을 덧씌우고 바라본다. 그러니 사모님들께 당장 ‘자기 자신이 되세요! 사람들의 기대에 휘둘리지 마세요!’라 말할 수 없다. 마치 그런 주문 같이 느껴져서다. 신혼 초에 시어머니의 과한 요구에 거절하지 못하고 돌아와 괴로워 하는 내게 남편이 하던 말이 있다. “그렇게 싫으면 어머니한테 싫다고 하지 그랬어?” 내가 그 말 할 힘이 있었으면 이제 와 이러겠냐고! (그 힘을 기르기 위해 20년 수련을 해왔다.)

사모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 자체가 사모를 어떤 프레임에 가두는 것이라 여겨 불편하지만 이것조차 힘이 되는 분들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런 곳에 찾아올 수 있은 분은 그나마 여건이 나은 분들이다. 이 지난한 사모의 일상을 한 방에 뚫어줄 무엇을 기대하셨을지 모르나 내겐 그런 것도 없다. 강의란 이름으로 아내, 엄마, 사모로서 흠결 많은 나를 보여 드리는 것. 그나마 목회자 아내로서 형편이 나은 나,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는 분들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가도 그나마 이렇듯 연결되는 것이 어딘가, 하기도 한다.




사모대학 강의 다음 날엔 사모인 친구를 만나러 다녀왔다. 주어진 몇 시간, 시간 가는 것 아까워 마음 졸이며 수다를 떤다. 명목은 김치 가지러. 젊어서부터 사모란 이름으로 제 교회에 엄마 노릇에 지친 친구의 김치를 나는 또 얻어다 먹는다. 김치는 맛있다. (그 맛있는 김치에 먹으려고 일찍부터 무국을 끓여 놓고 가는 부지런한 나) 가족들도 M이모 김치야? 와와!! 겨우내 김치찜 하고 김치찌개 끓일 때마다 친구를 생각하고, 친구의 삶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올라오는 길에 우리들의 20대를 얘기했다. 고속도로 옆 산들은 안개에 휩싸여 묘한 분위기였다. "우리의 20대 안개 속 같았어" 그렇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 같았지. 보이지 않는 한 발 앞이 나름 희망이기도 했는데. 제각각  이런 모양의 구부러진 길을 걷고 있다. M과 나, 그리고 사모가 된 두 언니들 생각에 늘 부채감 지고 있는 H. 우리의 노년이 지금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기를 마음으로 빌며 운전했다. 이번 주 만난 사모님들의 나름대로 구부러진(曲) 길 위에도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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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Jung은 '동시성'이라 하고 우리 동네에너 '성령의 인도하심'이라고 한다. 도모한 일이 흘러가다 누군가의 도모를 만나 내 통제 밖의 일이 되는 것. 그리고 일을 도모한 각각의 사람에겐 계획과 다른 생의 선물이나 배움을 얻게 되는 것. 말을 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전처럼 '거침없이 블로깅!' 생활이었다면 신비주의자의 블로그가 되었을 것이다. 연구소를 통해 본격적으로 치유와 성장의 동반자로 많은 이들과 연결되면서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10월 마지막주에 단회 글쓰기 강의를 했다. [나찾수다:나를 찾는 수다]라는 이름으로 비정기적 사려 깊은 수다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갑작스레 결정되고 진행되었다. 내적여정이든 강의든 많은 10여 명 정도의 신청을 받는다. 공지를 올리자 금세 마감이 된다. 강의는 거의 재능기부이고, 주최하는 연구소 입장에선 비효율적인 프로그램들이다. 그래서 그래야 할 이유가 100개이기에 기쁘게 고집하는 방식이다. 공지 올리면 금방 마감이 되는 인기에 연연하는 나로서는 기분은 참 좋다.

 

그렇게 기분좋게 마감이 된 후 연구소 카페로 쪽지가 하나 날아왔다다. 미국 뉴저지 사시는 독자였다. 언니와 함께 십몇 년 만에 고국을 방문하신다며, 연구소의 에니어그램 강의 듣는 것이 한국 가면 꼭 하고 싶은 버킷 리스트라고 했다. 에니어그램 세미나 일정은 맞지 않아 포기하였는데 마침 나찾수다와 시간이 맞는다며 꼭 참석하고 싶다고. 고국 떠난지 20년 넘었는데 처음으로 방문하는 엄마 같은 큰언니께 선물로 선사하고 싶다고. 


이런 부분에서 원칙을 지키는 편이지만 뒷구멍 자리를 만들었다. 이미 내 글쓰기 강의 들으신 믿을만 한 벗에게 자진 취소를 종용했고, 기꺼이 취소당해주었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몰랐다. 누구에겐 가까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두 분께는 여행 속 특별한 경험이 되셨으니. 물론 내게도 마찬가지이다. 마침 연구소에서 급하게 글쓰기 강의를 계획했고, 마침 두분이 한국 여행을 오셨고, 마침 강의 안내를 보시고, 마침 용기를 내어 쪽지를 보내셔서 성사된 '동시성'이 만든 만남이다.


신비하게 교차된 만남을 한 번으로 흘려 보낼 수가 없어서 여행 일정을 여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느슨하게 즐기는 여행이라니 차로 어디든 좀 모시고 가고 싶었다. 서울 외곽 드라이브 데이트 신청을 했고 성사되었다. 양평이냐, 양수리냐, 남한산성이냐.... 식사도 경치도 놓칠 수 없다, 고민했다. 언니께서 좋아하시는 메뉴를 고려하여 당첨된 곳이 남한산성. 


정말 멋진 고국의 가을 하늘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주 그냥 미세먼지가 뿌옇다. 속상해도 너무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아이고, 파란 하늘에 단풍 보여 드리고 싶었는데....' 말끝마다 후렴구로 반복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 남한산성 도착하여 식사 하고 나왔는데 하늘이 저렇다. '사모님이 하도 파란 하늘 아쉬워 하시니 하나님이 저리 해주셨나봐요' 라고 하신다. 나도 그렇다고 믿는다.


 

큰언니께서 두부 좋아하신다 하여 손두부집에 갔는데 성공! 두부찜은 물론 들기름에 구워져 나온 두부 스테이크를 맛있게 드셨다. 여행 최고의 메뉴라고 하시니, 보람이 돋아서 어깨도 치솟고 기분도 막막 좋아졌다.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동안 길지 않은 시간 두 분의 인생, 생의 이면을 듣는 영광을. 두분은 나의 일상 하루에 함께 하신 것을, 나는 두분의 의미있는 여행에 동참한 것을 서로 감사감사 하였다.

 

<커피 에니어그램>을 보시고 커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뉴욕 커피 맛집을 찾아 원두를 사오시고, 쿠키를 사오신 마음과 정성. 어쩌다 작가 되어 써서 내놓은 글에 부끄러움도 많지만, 쓰길 얼마나 잘했나. 글쓰기 강의 하길 잘했고, 두분을 초대한 것은 또 얼마나 잘한 일인가. 나는 좋은 사람이기도 나쁜 사람이기도, 따뜻한 사람이기도 차거운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를 좋은 사람 만들어 주는 이 만남이 얼마나 고마운가. Juug의 동시성 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나를 잠시 좋은 사람 만들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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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막 떤댕님, 바깐놀이 가치 가자.


예쁜미소반 음악치료가 끝나고 "바깥놀이 가자"라는 담임샘의 말에 H이가 대뜸 초대했다. 평소 그리 살갑지도 않으면서. 음악치료 시간에는 부끄러워 제대로 뭘 하지도 않으면서. 넷 중에 나이도, 발달도 제일 앞섰지만 어쩐지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않으면서. 악기 챙겨 나오는 으막 떤댕님 바짓가랭이를 뭉클하게 잡는다. 악기를 싣고 주차장을 빠져 나오는데 바깥놀이 가는 시크한 네 친구. 인사한다.


안녀엉, 안녕! 다음 시간에 만나아~ 안녕.


오늘도 행복해 하셨습니다. ^-^


치료 마치고, 다음 일정 마치고 집에 왔을 때 예쁜미소반 담임샘, 특수교사인 뮨진샘에게서 사진과 함께 메시지가 왔다. 아닌 게 아니라 행복했지. 임상 뛸 나이도 경력도 아닌데, 뮨진의 아이들이라 간다. 치료사와 특수교사가 신뢰 속 빠른 감각으로 손발이 착착 맞아서 치료할 맛이 난다. 20여 년 전, 처음 음악치료를 할 때는 수치와 기록에 목숨을 걸었었다. 이제는 치료 시간 30분의 행복에만 마음을 쏟는다. 그 때는 의욕 넘치는 젊은 엄마처럼 치료 했다면 요즘은 손주 보는 할머니 마음 같다. 특수교사로 준비하고, 되고, 성장하는 뮨진을 알고, 그의 아이들이라서일까. 그저 할머니 나이가 되어가기 때문일까. 손주 돌보는 할머니처럼 어깨, 허리, 목 안 아픈 데가 없지만 '오늘도 행복'했던 것은 맞다.





치료를 마치면 '수업'이 있다. 어린이집에 음악수업을 하러 간다. 젊을 때는 치료와 교육의 목표가 달랐고, 욕심도 달랐고, 접근도 달랐는데 갈수록 그 차이를 모르겠다. 장애/비장애, 교육/치료의 차이가 뭐란 말인가. 굿바이송을 부르려 치면,


끝났어요? 다 끝났어요? 음막션샘미 집에 갈 거예요? 가지 마요.


아우성이다. 악기 정리하는데 터프한 남자 아이 S가 뚜벅뚜벅 걸어나왔다. 내 목을 꼬옥 끌어 안더니 볼에 쪼옥 뽀뽀를 한다. 귀에 대고 한 마디 "사랑해요" 그걸 본 사랑쟁이들이 가만 있을 리 없지. 우르르 몰려 나와 둘러싸고 안고 뽀뽀한다. 이렇듯 사랑받는 사람, 음막션샘미! 이러니, 내가 나르시시즘, 자아팽창 병, 병세가 나아지질 않지.  


류 근 시인이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어머님 강인옥 여사님 장례식 사진에 붙인 글에 영국의 시인 존 키츠의 묘비병을 인용했다. 


여기, 이름을 물 위에 새긴 사람 잠들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름을 물 위에 새기고 사라지는 존재들이다. 이름 뿐이랴.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것들은 물 위에 새긴 것처럼 흘러가고 사라지고 만다. 20여 년 아이들과 함께 수많은 노래를 불러왔다. 얼마나 많은 노래들이 공기 중에 흩어지고 말았는지. 음악치료 프로그레스 노트나 치료평가서에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와 행복감은 산과 같다. 그러나 다 흩어지고 흘러가고 말았다. 아이들은 으막션샘미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래도 참 좋구나, 그래서 참 좋구나 싶다. 흘러가고 흘러가는 아이들 마음에 불렀던 노래, 다 흩어졌어도 '나는 오늘도 행복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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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10개월 증손자와 95세 할머니가 눈을 맞췄다. 한 세기 가까운 나이 차이가 둘 사이에 존재한다. 사람을 알게 되면 이름부터 물어보고, 그 이름을 성경 안쪽에 적고 굳이 ‘이름’불러 기도하던 할머니.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은 한 번 들으면 외우니 적을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는 손녀 ‘지영이’가 낳은 ‘준우’의 이름은 듣자마자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는 귀도 눈도 어두워 정확히 들을 수 없는데다 글자를 읽을 수 없으니 새로운 단어가 입력되지 않는다. 준! 우! 준우! 주누! 고래고래 알려드려도 입력불가. 자꾸만 ‘아가, 아가~아’ 손을 내밀어 보는데 아가는 엉덩이를 뺀다. 아가는 아가대로 10개월 뇌로는 백발이 규명되지 않는다. 마주하면 무조건 좋은 우리 뭔가 엄마랑 비슷한데, 결정적으로 하얀 저건 뭐지? 못 보던 생물첸데. 아가, 아가, 손! 슬금슬금 엉덩이 빼기. 내내 그런 줄 알았는데 제 엄마 지영이 카메라에 이런 장면이 담겼다. 하얀 할머니 머리, 헤 벌리고 바라보는 준우 눈빛, 감동이다. 백발 할머니의 표정은 안보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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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중에 한 남자 청년이 필기를 무척 열심히 하거나, 또는 낙서를 심하게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필기라 여기기엔 어쩐지 청년의 이미지에 자유분방함이 넘쳤고, 낙서라 여기기엔 진지했다. 물론 잠깐 스친 느낌이었다. 강의 마치고 개인적인 질문도 받고 인사를 나누는데 그 청년이 그렸다며 내민 내 얼굴이다. 강의 들으며 필기 또는 낙서로 열심히 강사를 그려준 것이다. 가끔 이런 선물을 받은 적이 있지만 유난히 좋은 건 '청년'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어쩐지 그냥 편이 되어주고 싶고, 청년이 뭘 하면 그저 좋아 보인다. 특히나 어느 청년이 자발적으로 한 무엇이라면, 좋고 좋고 또 좋은데. 자발적인 작품이라니.



그렇게 바쁜 인기 강사는 아닌데 해마다 이때는 주가상승이다. 8월 15일을 낀 앞뒤 2박3일을 전국의 거의 모든 교회 청년부의 수련회 기간이다. 벌써 강의 약속이 되었는데 몇 차례 섭외 전화가 온다. 일정상 가능하더라도 하루에 두 번 강의를 하진 않기 때문에 맨 처음 인연이 닿은 바로 그 교회 청년부를 만난다. 15, 16, 17 수련회 기간 중 하나 씩, 세 번의 강의를 마친 저녁이다. 전과 달리 세 교회 중 대형교회가 하나도 없고, 어쩐지 느낌이 비슷한 교회들이었다. 두 교회는 이미 강의를 한 번 다녀왔고, 두 번째 만나는 만남이기도 해서 내 교회 청년부를 만난 느낌으로 정겨웠다. 



그래서 삼일 내내 좋았다. 기간 중에는 사랑하는 권사님을 천국에 보내드렸고, 사이사이 위로예배 발인예배를 드렸다. 슬픔과 그리움으로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고 몸은 그 어느 때보다 피곤했지만 강의하고 이들을 만나는 순간 만큼은 생명력과 기쁨이 넘쳤다. 그야말로 생명과 죽음, 기쁨과 슬픔을 오가는 사나흘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발인예배를 드리고, 그렇게 권사님을 보내드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수련회장으로 가 10시부터 3시까지 강의였는데. 운전하고 가는 동안에는 강의를 포기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오후 3시까지 내 몸과 마음이 견뎌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정각 10시,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고,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던지지는 농담 한 마디에 환호성을 지르며 물개박수를 쳐대는 그들의 에너지가 나를 이끌었다. 3시까지 너끈했다.


결혼 첫 해. 결혼해서 너무 좋은데.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은데 그 해 여름 수련회 시즌이 되자 우리 둘 모두에게 병이 생겼다. 수련회 앓이였다. 청년으로 살던 10여 년, 여름마다 수련회에 올인했고, 거기서 얻은 영적 심리적 에너지는 말할 수가 없었던 것. 수련회 금단현상으로 마음을 잡지 못고 뒹굴거리다 에라, 교회 청년부 수련회에 아이스크림이나 사다주자! 하고 일어나 양평의 수련회장으로 갔었다. 그때 사진이 있다. 채윤이 임신하고 긴 입덧으로 몸이 많이 허약해졌었는데 마냥 좋았다. 돌아오는 길, 휴일 저녁 교통체증이 최악이었던 기억.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청년부 수련회에 대한 아련한 마음. 생각난다. 생각난다.


스스로 사유하고, 책 읽는 청년들을 특별히 애정하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청년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이다. 대단한 자발성이나 창조성이 아니다. 수련회 프로그램을 스로 만들고,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더 의미있게 진행할까 애쓰고 참여하는 태도. 그것은 긍정성이다. 자발성과 창의성을 한데 모으는 일이고, 그런 수련회는 거의 대박 재밌고 은혜롭다. 삼일 연속 갔던 청년부의 수련회는 그런 에너지가 넘쳤다. 최근에 별로 접하지 못한 에너지라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울 만큼 좋았다. 두 번은 특히 안면을 튼 청년들이라 내 개그코드도 알고, 스타일로 감지했기에 더 잘 소통할 수 있었다. 오늘 강의는 아예 대형을 바꿔 다같이 원으로 마주고 앉자고 제안을 했다. 감상적인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마주앉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강의하다 카메라 드는 일이 없는데 청년들끼리 얘기하는 시간을 주고, 또 주제활동을 하면서 자꾸 찍게 되었다. 사진을 찍었고 특히 동영상을 찍었다. 와글와글, 와글와글, 그러다 갑자기 와하하하하, 박수소리와 함께 터지는 웃음이 참 듣기 좋았다. 이들이 나눈 이야기, 만든어 낸 이야기며 그림이 참으로 기발하니 발표를 시켜놓곤 와하하하, 내가 웃고 박수를 친다. 청년사역이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청년부 목회자나 선교단체 간사들을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나도 동의한다. 헌데 지난 며칠의 경험으로는 청년가 살아 움직이며 부흥할 것 같은 느낌이다. 코스타나 성서한국에서 만나는 청년들도 참 좋은데. 대단한 시대적 의식이 없어도 그저 청년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함께 모여 있는 지역교회의 청년부의 좋음을 따르지 못한다.


공동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남편과 나를 하나 되게하는 가장 큰 열망 중 하나는 공동체이다. 둘 사이 정직하고 자발적 공동체 되고자 20년 노력해왔고, 그 열매가 깊고 풍성함을 고요히 강렬하게 느끼고 있다. 그리스도의 공동체에 대한 갈망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꿈이다. 우리를 이어준 본 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이 결국 우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난 며칠, 사랑하는 권사님을 천국으로 보내드리며 그 이별을 통해 공동체를 느낀다. 너무도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느낀다. '내 주를 향한 사랑과 그 신뢰가 사그러져 갈 때' 라는 찬양 가사가 적절할 것 같다. 그런 때, 다 사그러졌을 때 '죽음'을 통해서 사그러진 사랑이 되살아나다니! 



채윤이가 굳이 권사님의 장례예배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른 아침 드리는 발인예배까지 가면서 차에서 나눈 이야기가 있다. "엄마, 권사님께 너무 죄송한 게 있어. 권사님이 나한테 써주신 편지에 멋진 실용음악가가 되어라, 고 해주셨는데. 권사님이 내가 하는 음악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 그래서 권사님 아프실 때 찬송가 한 곡 편곡해서 녹음해서 보내드리려 했거든. 실은 녹음도 해놨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하려고 못 보내드렸어. 너무나 아쉬워. 엄마, 권사님과 내가 나이로나 개인적으로 크게 관계가 있는 것 아닌데도. 내가 마음이 이런 것, 이게 공동체인인가봐." 교회에서 누구보다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있는, 자발적이고 생명력 넘치는 청년 공동체를 선망하는 채윤이가 그렇게 말했다. 실은 생기 넘치는 수련회에 가면 청년이 된 채윤이 생각이 많이 난다. 채윤이 대신 내가 부럽다. 


자발적이며 창조적인 사람들, 청년들의 모임. 두어 시간 안에 작품이 하나 뚝딱 나오고, 한 15분 만에 기발한 이야기 하나를 뚝딱 만들어지는, 하하호호 깔깔깔깔. 살아 생기가 느껴지는 공동체, 다시 꿈꿀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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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편 김P는 존대말의 사람이다. 

미융의 남편 남궁P는 반말의 사람이다.


사람들은 김P에게 함부로 많을 놓거나 시덥잖은 농담을 걸지 않는다.

남궁P는 누구보다 먼저 말을 놓고 반말을 유발한다.


우리 결혼식 때, 신랑신부 퇴장길 끝에서 흔한 꽃가루가 뿌려졌다. 

퐁퐁, 작은 폭죽도 터졌다.

폭죽 일발장전 하고 한 방에 땡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남자 집사님이 계셨다.

순간 퇴장하는 신랑 김종필과 눈이 마주쳤다.

진지한 눈빛에 기가 꺾여 차마 당길 수 없었다고, 조용히 폭죽을 내려놓았다고.


작년 말, 오랜 기다림 끝에 남궁P가 결혼을 했다.

우리 현승이를 비롯한 교회 주일하교 아이들이 축가를 불렀다. 

축가 부르러 나온 아이들, 사춘기 어간의 아이들의 표정이란 안 봐도 뻔하다.

축가팀과 마주한 신랑이 바로 스태프 모드로 전환되어 손가락 입가에 대고 웃는 표정을 주문했다.

축가를 부를 때는 아이들보다 더 건들거렸다.


우리 남편 김P와 미융의 남편 낭궁P는 많이 다르다.

미융과 나도 다르다. 나는 한국 여자, 미융은 베트남 여자.

"사모님, 이 책 다 읽었어?" 

우리 말을 꽤 잘하는 미융이지만 이런 신선한 웃음 유발하는 디테일이 있다.

"아내는 매일 책만 봐요. 여기 보면 <책만 보는 바보>라는 제목이 있어요."

남편이 대신 답했다.  

미융은 고개를 절래절래, 책을 싫어한다.


남궁P는 뭐든 잘 먹고, 음식도 눈앞에 있는 재료를 가지고 뚝딱뚝딱 만들지만

특히 떡볶이를 좋아한다. 결혼 전 현승이와 그 일당을 데려다 많이 해먹이셨다.

미융은 떡볶이를 싫어한다. 

한국 와 일하던 직장에서 늘 간식으로 나왔던(떡볶이, 김밥, 라면) 메뉴, 

그 기억 때문에 싫다고 한다.

남궁P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함께 먹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오빠 떡볶이 좋아해. 오빠 떡볶이 먹어! 나 안 좋아해. 안 먹어!"

미융은 이러면 된다고 한다. (와, 인생 띵언!)


남편이 지금 교회에 부임하며 주일학교 사역자로 남궁P를 스카웃 했왔던 건 여러 모로 신의 한 수였다.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 되었지만 주일학교 아이들에겐 큰 선물이었다.

사춘기 남자 아이들 마음을 그렇게 사로잡을 수 있는 선생님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혼과 동시에 이주노동자 사역으로 떠난 남궁P를 아이들은 여전히 좋아하며 찾는다.

사랑의 흔적이 남겨진 탓이다.   


남편과 남궁P는 다르고, 참 많이 다르다.

나와 남편도 다르고, 참 많이 다르다.

남궁P와 미융이 다른 점을 찾아면 헤아릴 수도 없다.


이렇게 다름에도 달달한 일상을 산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한 식탁에 모여 달콤한 쉼의 만남을 가졌다.

라끌렛으로 시작하여 김치말이 국수로 끝난 메뉴는 다국적, 너무 다국적.


다름, 뭐 대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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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적으로 설정된 한계로 어떤 관계는 더는 깊고 진실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지신 시어머님을 돕고 싶어 많은 것을 했다. 한방 양방 가릴 것 없이 어머님이 꽂히신 병원, 상담, 치유 피정 등을 모시고 다녔다. 배우지 못한 결핍감을 안고 살아오신 세월이라 자서전을 내드리면 치유될까 싶어 구술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거기까지. 거기까지 하고 손을 놓았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어머님이 변하시는 것은 아니다! 좌절과 분노도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사회적 간극. 할만큼 했다 생각하고 거리를 둔 지 몇 년이다.


주일 저녁, 나는 강의로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어머님께 다녀왔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울컥했다. 어른처럼 큰 몸이 된 아이들. 고목에 매미처럼 손주 어깨에 매달린 어머님이 너무도 작아 보인다. 아이들 어릴 적 풀타임으로 일할 때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아 채우며 키우신 할머니 엄마이다. 세월이 이렇듯 존재의 사이즈를 바꿔 놓았다. “어머니, 애들 막 떠났죠? 저는 사진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어머님과 편안하게 통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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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이네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날아와 분당까지 와주었다. 남미에서 남서울까지다! 얼굴을 마주하니 상상했던 것보다 더 반갑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 지내고, 행복하여 넉넉해진 세 식구의 마음을 듣는다.  평양면옥을 찍고 바로 옆 카페로 갔는데. 몇 번 찾았던 카페, 그저 커피 참 잘 볶는 집일 뿐이었는데 새로운 장소가 되었다. 카페 벽에 걸린 그림들이 과테말라 식구들 눈엔 익숙한 것들. 과테말라 이야기에 푹 빠지기도록 무엇이 이끌고 등떠밀어 들어간 공간 같았다. 2차도 아쉬워 북카페 같은 우리집 거실로 자리를 옮겨 어른들끼리, 아들들끼리 긴긴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인지. 사람들 만나 나누는 얘기는 힘들고 어려운 얘기가 대부분인데 오랜만에 다른 대화의 즐거움이다. 헤어져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같은 말을 했다. '부럽다. 부러운데 정말 좋다. 잘 지내시는 얘기 듣기만 해도 내 마음이 좋다.' 누군가 잘 되는 것이 부럽고 그 부러움은 곧장 나의 불행이 되는 것이 흔한 감정의 흐름이다. 그러니 부러우면 지는 것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다. 뻔한 이 감정 라인을 심리학의 실험 연구가 하릴 없이 증명을 한다. 나와 겹치는 특성이 적은 사람이 잘 되는 일에는 별로 영향받지 않는데, 특성이 겹칠수록 질투로 인한 고통이 크다는 것이다. A그룹, B그룹, 실험군, 대조군... 실험 내용을 늘어놓을 성의는 없다. 


실험 결과도, 보편 진리를 담지한 속담도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는 있는 것이다. 특성과 처지가 우리와 많이 비슷한데, 내 처지와 영 다른 좋은 것을 가진 이 가족이 뼈저리게 부럽지만 그게 그리 고통스럽지 않다. 늘,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질투와 시기심으로 치자면 금메달까진 아니어도 눈감고 동메달 정도는 딸 수 있는 실력이다. 헌데 한결이네 소식은 어쩐지 부럽고도 좋다. 좋고 좋다 슬퍼지기도 하니 그리 깔끔한 감정은 아니지만 참 좋다. 며칠의 시름을 잊을 만큼 과테말라 이야기가 긍정 에너지를 주니 모처럼 '감사하네요!' 내지는 '하나님 은혜'라는 말이 목에 걸리지 않고 나왔다. 카페의 다른 자리에 앉아서, 집에 와서는 방에 박혀서 소리 안나는 얘길 나누는 아들들도 보기 좋고. (아들들 카페 씬은 도촬)


부럽다고 꼭 지는 건 아니다. 부러워서 함께 이기는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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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얼마 안 된 봄 어머님이 쑥개떡을 직접 해주셨다. 내가 얼마나 반색을 했던지 쑥개떡 이름이 바뀌었다. “에미가 좋아하는 쑥떡” 그리고 해마다 이맘 때면 저렇게 쑥개떡을 만드시고 냉동된 반죽을 여러 덩이 주신다. 쑥개떡 반죽은 치댈수록 찰지고 맛있어지는데 이제 치댈 힘이 없다시며. 장정한테 치대라 해서 조금씩 쪄서 먹어라, 하신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해주시던 떡이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이다. 친정 엄마도 한때 ‘신실이가 좋아하는 개떡’이라며 가끔 해주셨는데. 쑥을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기력도 없으셨다. 이제 친정 엄마는 쑥개떡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딸이 좋아하는 떡인 것도 잊으셨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쑥개떡이며 각종 김치며 곱창전골 같은 걸 얼마나 맛있게 만들었는지, 기억 너머의 기억으로 희미해졌을 터.

어제 할머니 댁에서 쑥개떡을 본 딸이 “와, 할머니 쑥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이에요.” 하니까 “채윤이가 에미 닮아서 쑥떡을 좋아해” 하며 좋아하시는 어머니. 오늘은 어버이날 챙기러 친정 엄마에게 간다. 어머님이 주신 반죽으로 쑥개떡을 쪄서 가져가려 한다. 어쩐지 엄마는 “나 쑥떡 싫어혀. 치킨이나 사와” 할 것 같지만. 나와 어머니들, 나와 딸을 이어주는 봄날의 쑥개떡이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떡. 여자들의 떡.

(떡 가운데 박힌 건 나름 어머님의 아티스트 감각. 땅콩으로 화룡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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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유치부의 *준에게 키 크는 비법을 전수 받았다.


나 : 준아, 사모님이 지금 준이 코 파는 거 봤어.

준 : 그래요? 나 코딱지 먹어요.

나 : 갑자기?

준 : 나 코딱지 잘 먹어요. 코딱지는 맛이 짜요.

나 : 으아...... 너 혹시 코딱지 먹어서 요즘 키가 그렇게 크는 거야?

준 : 맞아요. 

나 : 사모님은 키가 안 커서 걱정인데 코딱지를 먹으면 될까?

준 : 그럼요. 코딱지를 먹으면 돼요.

나 : 얼만큼 먹어야 해?

준 : 음...... 아침에 일어나 한 번,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먹으세요.

나 : 그렇게만 먹으면 돼?

준 : 아아아아! 낮잠 자기 전에 한 번 더 먹어야 해요. 하루 세 번 먹어요.

나 : 오케이! 알았어! 이제 나도 키가 클 거야. 코딱지만 먹으면 되는 거지?

준 : 아니요. 밥도 먹어야 해요.

나 : 알았어. 사모님 코딱지 세 번 먹고 밥도 먹고 그럴 거야. 그래도 키가 안 크면 준이가 책임 져야 해.

준 : 응.


집에 오려고 나오면서 멀리 있는 준과 눈이 마주쳤는데 손가락 세 개 펴서 보여주며 '세 번'이라고 확인시켜주었다.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비법을 전했더니 키가 제법 훤칠한 스무 살 딸이 말했다. "그거 확실한 방법이야. 나 보면 알잖아!" 아, 맞다.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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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교회 청년부 생활이 주는 유익 중 하나는 주체적 참여 태도이다. 시스템화 된 성경공부나 훈련의 기회가 적은 대신 스스로 채워야 할 배움의 시간과 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예배 설교 시간에 여기저기서 노트 필기 하는 모습이 갑자기 눈에 많이 띄었다. 옆에 앉은 채윤이도 부지런히 적어대고 있었다. 청년부에서 설교 나눔을 하는데 함께 같은 노트를 구입해서 필기하기로 했다는 것. 스스로 뭐라도 하는 모습이 참 예뻐 보였다.  


올해에는 한 달에 한 번 [이우 청년 신학클럽] [이우 청년 북클럽]이란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신학클럽은 남편이, 북클럽은 내가 이끈다. 목사님 앉혀 놓고 신학과 신앙, 성경......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하는 시간이 신학클럽이다. 북클럽은 말 그대로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인데 내 목표는 어쨌든 읽게 하는 것이다. 한 달에 한 권을 못 읽어도 된다. 한 줄이라도 읽으면 된다. 오늘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본회퍼, 손봉호, 이현주, 존 스토트. 우리 부부 썸의 시작, 연애의 시작과 헤어짐엔 이 네 분이 함께 했다. 이분들의 책이 있었다. 언제 들어도 재미있을 남의 연애 이야기, 목사 부부의 연애 이야기로 시작하니 다들 눈이 초롱초롱. 좀 세게 약을 쳤다. 고등학교까지 나왔는데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죄라고 말했다. 진심 우리 청년들이 읽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읽는 힘으로 스스로 서는 사람, 신앙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읽고 또 읽으면서 자기 확장의 노력을 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로 지금의 관심 주제 키워드를 포스트잇에 적고 나누었다. 크고 작은 고민들이 이미 선정해놓은 책과 잘 맞아 떨어진다. 한 달 넘게 심사숙고 하여 책을 골랐다. 2019년을 사는 청년들의 고민을 다루되 (어떤 의미로든)치우치지 않을 것, 책은 어렵거나 현학적이지 않을 것, 이런 원칙을 가지고. 올해 청년부가 된 채윤에게 일정 부분 읽혀 보기도 하면서 꼭 읽힐 책을 고르려고 했다. 어쨌든 목표는 읽게 만드는 것다. 모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바로 책을 구입했다며 인증샷이 단톡에 올라왔다. 벌써 보람이고, 기대가 된다. 


이우 청년 북클럽 도서 목록 


[헝거]  록산 게이, 사이행성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  백소영, 뉴스앤조이
[세상의 길 그리스도의 길]  헨리 나우웬, IVP
[신도의 공동생활]  디이트리히 본회퍼, 대한기독교서회
[연애의 태도]  정신실, 두란노
[자기 결정]  페터 비에리, 은행나무
[좋은 사람은 드물다]  플래너리 오코너, 현대문학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이기호, 문학동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청아출판사
[세계관 수업]  양희송, 복있는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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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아직 2018년이 끝나지 않았다.

2018 이름으로 쓰고 싶은 것, 써야 할 것이 '비공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니다.

송구영신 예배 전후로 날아든 똑같은 문자와 카카카오 톡들에 답신을 하지 못했다.

그중 연배가 높으신 분이 계셔서 죄송한 마음이 있고,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 하시면 인정! 

그러나 단체로 쏜 메시지에는 답하지 안해도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또 시간의 인위적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기도 하다.


2018년을 마무리 하는 글 세 개를 쓰고 싶었으니 이걸 써야 끝이다.

실은 사진만 걸어둔 채 '비공개'로 오래 묵혀서 조금 질려 버린 건 사실이지만.


'정신실마음성장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시간과 비용을 거룩하게 낭비하고 있는 중이다.

개소식이란 이름으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시간과 비용 낭비를 연거푸 9회를 하고,

마지막 개소식인 10회는 남편들을 초대했다.

와서 밥만 먹는 줄 알았던 벌쭘한 남자들(세상에 벌쭘하지 않은 남자는 몇이나 될 것인가) 넷이 모였다.

앉혀 놓고 개소식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

개소식 프로그램이라 하면, 소장의 세바시(세상을 못 바꾸는 시간 40분) 강의가 주메뉴이다.

밥만 먹겠다는 남편들에게 굳이 이 강의를 들려주어야 할 이유는......

흠, 우리는 순수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서 마음성장연구소인지,

도대체 뭘 하려는 것인지 알려야 할 의미도 권리도 있으니까.


정말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강의를 마치고 남편들이 이심전심으로 알아들었다. 

"여보, 미안! 돈 버는 연구소 아니야"

공부 시키느라 돈 많이 든 여자가 이제나 저제나 좀 벌어 오려나 했는데,

드디어 연구소를 내고 상담을 하고 제대로 강의를 한다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다만 크게 기뻐하진 않았지만 누구도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부부는 닮아간다는데,

우리가 왜 이런 걸 하겠다고 뭉쳤겠어.

당신이 사는 방식이고, 당신이 살고 싶은 방식이지!

말하자면 이런 거다.


연구원 은경 쌤의 짝꿍인 백 이사님(남편들을 강제로 연구소 이사로 추대함)도 이러고 살고 계시니.

직원 '예배'말고 '복지' 챙기는 사장님

시의 적절게 기사가 나왔을 뿐, 

남편 네 사람 모두 '의미 있게' 사는 것에의 고민을 놓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 고민 놓아버리면 마음 편할 것을,

그걸 하지 못해 때로 죄책감과 자기 비판으로 괴로워 하기도 한다.


연구소가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

의미 있는 상담도 하고 만남도 하는 게 분명한데 

지속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곳, 낫고 나아지는 '나음터'가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생각은 분명하다.

함께 하는 네 사람이 안전한 사람들이고,

넷의 삶과 인격을 가장 가까이서 가장 오래 지켜본 사람들의 불편한 지지로 인해

더욱 확증을 얻는 안전함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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