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적으로 설정된 한계로 어떤 관계는 더는 깊고 진실한 관계로 나아갈 수 없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탓에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지신 시어머님을 돕고 싶어 많은 것을 했다. 한방 양방 가릴 것 없이 어머님이 꽂히신 병원, 상담, 치유 피정 등을 모시고 다녔다. 배우지 못한 결핍감을 안고 살아오신 세월이라 자서전을 내드리면 치유될까 싶어 구술을 기반으로 책을 만들어 드리기도 했다. 거기까지. 거기까지 하고 손을 놓았다. 내가 어떻게 한다고 어머님이 변하시는 것은 아니다! 좌절과 분노도 있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그 사회적 간극. 할만큼 했다 생각하고 거리를 둔 지 몇 년이다.


주일 저녁, 나는 강의로 함께 하지 못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어머님께 다녀왔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는데 한 장 한 장 넘겨보다 울컥했다. 어른처럼 큰 몸이 된 아이들. 고목에 매미처럼 손주 어깨에 매달린 어머님이 너무도 작아 보인다. 아이들 어릴 적 풀타임으로 일할 때 먹이고 씻기고 기저귀 갈아 채우며 키우신 할머니 엄마이다. 세월이 이렇듯 존재의 사이즈를 바꿔 놓았다. “어머니, 애들 막 떠났죠? 저는 사진 봤어요.” 정말 오랜만에 어머님과 편안하게 통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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