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좋아한다. 사람의 손을 사람 인격 보듯 한다. 손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사람의 손을 자세히 보지 않는다. 덥석덥석 손을 잡지도 못한다. 남편의 손을 좋아하고, 약간 집착도 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몸을 통해 얻는 위로 중 최상급일 것이다. 남편이 손을 잡아주는 것. 특이한 손을 가져서 손이 늘 부끄러웠다. 늘 손을 감췄다. 언제 어디서든 손을 감추던 젊을 날에 성가대 지휘는 어떻게 했나 몰라. 그때 성가대 했던 아이들이 특이하게 생긴 내 손을 기억하고, 달랑거리던 반지를 기억한단 얘길 해오면 낯이 뜨거워진다. 엄마 손을 따뜻하게 잡아본 기억이 없다. 엄마 손이 싫었다. 엄마와의 스킨십은 어쩐지 조금 소름 끼쳤었다. 손을 잡는 것보다 사진으로 담아 들여다보는 것이 더 좋았다. 이제야 뒤늦게 잡을 수 없는 엄마 손이 그리워 허공을 잡아보곤 한다. 유튜브에서 나문희 선생이 노래하는 무대를 봤는데, 손 때문에 울었다. 얇은 피부, 튀어나온 혈관... 우리 엄마 손과 비슷한 정도로 나이 들어 있었다. 한 인생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손이었다. 손에서 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세월을 담고, 인생을 새긴 손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손만 봤다. 손의 소리만 들렸다.

* 손에 대해 글을 쓰려했더니, 작년 생일에 이미 구구절절 충분히 징징거려 놓은 게 있네.

껍데기 없는 생일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다. 딸 채윤이가 전날 밤 11시가 넘어 끓이기 시작했다. 11시 넘어 줌 강의를 마치고 "그럼 엄마 먼저 잘게" 하고 누웠다. 딸이 끓이는 미역국, 참기름 냄새에 취해 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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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발길 닿는 대로 걷다 '소년 김대중의 공부방'을 만났다.
여행의 마지막 꿀같은 몇 시간은 소년 김대중을 만나는 시간여행이었다.
하의도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가족이 목포로 나왔다고 한다.
매일 저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무르익었을
섬소년의 생각과 감수성이 조국 민주주의의 지성과 행동이 되었다.
그로 인해 겪을 고초들...
저 방 주인 소년 김대중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킹메이커>를 본 여운이 남아 있어서
벽에 걸린 포스터가 복잡하게 다가왔다.
지적이며 맑고 촉촉한 눈빛을 한참 바라보았다.

디지털 방명록이 있어서 흔적을 남겼다.
마침 대선 일주일 전이다.
간절한 기도를 적었다.

지난 토요일,
줄이 아무리 길어도 기쁘게 기다려 사전투표해야지,
하며 오전 강의를 마쳤는데.
사전투표하러 갈 시간에 PCR 검사 대기 줄에 서는 사태가 발생했다.
며칠 가슴에 품어 더욱 뜨거운 한 표가 되었다.
확진자는 6시 이후에 투표할 수 있다니,
간절한 마음 담아 미리 내놓으려 했던 한 표를
오늘 투표의 마침표로 찍겠다.
마침기도로 쓰겠다.

두렵고 떨리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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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어렸을 적, 아마도 현승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당시 교회 가정교회 카페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부러움 가득 안고 바라본 기억이 있다. 안갯속에 싸인 미시령의 어느 길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와하, 나는 언제쯤? 우리는 언제쯤?"이 내가 붙인 사진 제목이었다. 그 당시 가정교회 목짠님이셨던 서쉐석 목짠님이 가족 여행 중 올려주신 사진이었고. 둘째 출산으로 다시 시작한 밤중 수유로 인간답게 사는 날이 아득하게 여겨졌던 시절이니.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다다를 수 없는 행복처럼 느껴졌다. 그랬었다. 서목짠님 부부와 미사 강변을 걸었다. 살짝 비가 뿌리는 날씨였지만, 비 따위가 우리의 '걷기 사랑'을 막을 수 없지! 우산을 쓰고 이 얘기 저 얘기 천천히 걷는 길에 만난 안개 싸인 예봉산 풍경이다. 여기서 그때 그 미시령 사진이 생각났다. 꼽아보니 벌써 20년 전이다. 

 

서목짠님 부부는 20년 넘게 우리 부부 앞에서 서너 걸음을 사이에 두고 걸어주셨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도 제 발로 걷는 두 아이 데리고 미시령을 넘어 가족 여행을 갔고. 졸졸졸 뒤를 따라 생의 고개들을 넘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대학을 준비하고, 성인이 되어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을 딱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와 겪는 갈등을, 중년에 오는 마음의 어려움을,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일의 지난함을, 그러다 떠나보내드리는 것을... 딱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딱 그 길을 따라 살고 있다. 강변을 걷고 댁으로 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모처럼 g와 g의 동생 G(쥐쥐쥐지 베이베...) 두 아이(가 아니라 성인인데...)가 다 집에 있었다. 아직 내게는 초등학생 중학생 같기도, 대학생 같기도 한 g와 G 남매가 새삼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각각 자기 빛깔로 자기다움을 살아내는 것이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수영을 배우면서 돌파되지 않는 지점을 뚫어주는 가르침은 코치가 아니라 늘 한 레인 위의 형님이 주셨다. 그저 자기 수영을 열심히 하시는 어느 형님. 인생길 수많은 만남으로 배우고 사랑받으며 걷고 있다. 서너 걸음 앞의 서목짠님 부부는 묵묵히 자기 수영을 하시는, 그러다 가끔 만나 우리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시는, 그러다 다시 우리 앞에서 서너 걸음 앞의 삶을 살며 가르침 주는 윗 레인 형님같은 분들이다. 갈수록 더 감사한 만남이다. 성인 초입에 들어선 채윤이와 현승이를 키우는 일은(이젠 키워지지도 않지만) 밤중 수유 때와는 또 다른 막막함이다. g와 G 남매가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참 좋아 보였는데, 우리 집에서도 익숙한 남매의 뒤태였다. 채윤과 현승의 서너 걸음 앞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g와 G를 보고 와서 어떤 좋은 마음이 무르익고 있다. 그 좋은 마음이 조금씩 염려를 먹어 치우고 있다. 이날 먹은 g가 제주에서 산지 직배송으로 주문한 대방어는 최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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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부 설교를 했다. 한 20여 년 만이다. 한때 유치부 설교자였던 적이 있었다. 유치원 유치부 아이들의 성샘미, 어린이 성가대 선생님이었던 때는 순간순간 꿈틀대는 생명을 살았던 때다. 장애 비장애 아이들과 함께 했던 젊을 날이 없었다면 내적 여정 안내자로 사는 오늘 또한 없었을 것이다. 하늘 나라 같은 아이들의 세계를 맛보아 알기에 내적 여정에서 'Wonderful child'과 '상처 받은 내면 아이' 강의를 뜨겁게 전할 수 있다. 에니어그램 내적 여정은 리처드 로어 신부님 말씀처럼 "사랑 안의 성장에 관한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사랑의 안의 성장'을 가장 생생하게 체험하는 '체험, 사랑의 현장'이다.

돌아보면 20여 년 전 유치부는 '기-승-전-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였다. 울고 짜증내고 장난치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선물을 안 줄지 몰라도 하나님은 다르단다. 이번에도 내가 하고픈 얘기는 그거였다. 설교 준비는 다이소에서 했다. 다이소 돌아다니며 하트 모양 스티커를 , 하트로 된 장난감을 전수조사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하트 반지를 발견! 이건 뭐, 다이소에서 주운 다이아 반지. 내일 설교는 끝났네! 끝났어! 내가 이겼어!


은재야, 사모님은 은재 사랑하는데 은재는 어때?
(당연히) 나도 사모님 사랑해요!
그러면 은재는 누구를 제일로 사랑해?
은재를 제일 사랑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야?
와아, 진짜? 엄마가 언제 은재를 사랑해?
어... 말 잘 들을 때.
(걸려 들었쓰!)

엄마 아빠는 우리를 제일 많이 사랑하는데, 하나님은 더 많이 사랑한대.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가 말 안 들을 때도 사랑해. 아무 때나 다 사랑해. 오빠랑 싸울 때도 사랑하고, 치카치카할 때도 사랑하고, 치카치카 안 할 때도 사랑하고, 똥 쌀 때도 사랑하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하트 스티커를 손에, 옷에, 얼굴에 막막 붙여준다. 이러다 보면 유치부 아이들 전체가 설교자가 된다. 애들이 정답을 너무 빠르게 파악! 피아노 칠 때 사랑하신대~애. (맞아, 그리고 피아노 안 칠 때도 사랑하신대.) 치과 가서 울 때도 사랑하신대~애. 온갖 고백과 간증이 터져 나온다.

 

그러다 7세 은준이의 총각 같은 한 마디. "죄 지을 때도 사랑하신대" 이 말에 맞장구치며 하트 스티커 붙여주다 울컥하고 말았다. "맞아, 죄 지을 때도 사랑하신다. 그런데 죄 지을 때는 더 많이 사랑하신대. 하나님이 너무 슬퍼서 막막 울면서 사랑하신대." 그리고 그 말이 내게 다시 돌아와 내내 가슴 한 구석을 건드리고 있다. 우리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찬송 '예수 사랑하심은' 3절 가사가 살아온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하트 스티커의 향연이 끝나고, 약속의 반지를 끼워주었다. 잊어버리지 마. 하나님이 매일매일 아무 때나 사랑하셔. 잊어버리면 안 돼. 다이아... 아니 다이소 반지를 소중하게 끼워주었다. 예배 마치고 "은재야, 사모님이 뭐 잊어버리지 말라고 했어?" "어... 음, 반지! 반지 잊어버리면 안 돼!" 아... 반지... 그래, 반지라도 잃어버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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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된 인연처럼 느껴지네요." 생각해보니 참 오래된 인연이 맞다. ⟪이프⟫ 초대 편집장으로 알게 된 박미라 선생이니 말이다. 확인해 보니 ⟪이프⟫는 1997년 창간이다. 그렇게 안면을 트게 된 페미니스트 박미라 선생을 <치유하는 글쓰기>의 저자로 다시 만났을 때 동명이인이 아닐까도 생각했다. 어쨌든 그러니까 내 편에서는 독자로 오래된 인연인 것이 분명하다. 치유 글쓰기 모임을 만들면서 수십 권의 책을 참고했지만 실질적인 안내는 <치유하는 글쓰기>를 통해 얻었다. <슬픔을 쓰는 일>을 쓰고 편집자님과 추천인 논의를 하며 이구동성 게임처럼 '박미라 선생'이 나왔을 때 신기했지만, 결국 선생의 추천사를 싣게 된 것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출간 이후 감사 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받았다.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 이번에 출간하신 두 권의 책을 직접 보내주셨다. (영광입니다!) 앞의 책은 <치유하는 글쓰기>의 개정판이고, 나머지 한 권은 글쓰기 매뉴얼이다. 서문에서 '내가 개발한, 나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피 같은 글쓰기 기법을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을 거야'하면서 전전긍긍하셨단 얘기를 읽었다. 완전 공감이 되고, 책 받기 전 온라인 서점에서 책 소개를 보고 나도 생각했다. 찐득한 경험으로 짜낸 필살기를 이렇듯 공개하다니! 이어지는 글이 이렇다. '욕심으로 노심초사하던 마음에서 해방되려고, 지난 17년 간 모아둔 치유적 글쓰기 방식을 책으로 만들어 여러분과 나누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역시 알 것 같은 마음이다.

 

책을 보내는 정성, 특히 포장하고 우체국을 찾는 노고를 안다. 새삼 '오래된 인연처럼' 느껴지고 감동과 위로가 된다. 오래된 사이라도 마음의 길이 닿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 한 번 보지 않았는데 오랜 인연처럼 깊은 연결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외로운 인생길 예기치 않은 선물이다.   

 

http://aladin.kr/p/vP75I

 

[세트]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 +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 전2권

도서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과 상처 입은 당신에게 글쓰기를 권합니다 세트 상품이다.

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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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침 기도 시간, 마음은 자꾸 저 길 위에 있었다. 8시에 나가 저 길을 걷고 있을까? 전날 친구들과 함께 걸었던 길이다. 다섯 시간 정도 함께 있었을까? 다섯 시간이 번개 같이 지나가니, 저 오솔길을 걸었던 시간은 또 얼마나 짧은가? 그런데도 마음은 자꾸 저 길 위를 걷는다. 오후에 친구가 산책을 나왔다며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사진을 보자마자 가슴이 뜨끈했는데, 어제 함께 걸을 때 우리를 웃겨주던 두 마리 새소리, 그리고 우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메시지와 함께.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셋이 한 마음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흘리지는 않았다고 친구가 말했고. 나도 그렇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이다. 내내.

 

단톡에는 만남 이후 식사 메뉴 사진이 속속 올라오는데. 시골 아지매, 도시 아지매 식단이 바뀌었다고. 도시 아지매 둘은 끼니마다 꿀 같은 묵은지에 밥 먹느라 과식이고. 제천 아지매는 보정동 카페골목 브런치 부럽지 않은 연어 샌드위치다. 바뀐 식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토요일 점심, 나는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에 먹었다. "그려, 이 맛이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애들은 삼겹살과 함께 주었다. 배트맨(얼마만인가, 배트맨. 맛없는 건 넣자마자 뱉어내는 배트맨) 현승이가 "와, 호박잎 맛있다."라고! 바리바리 싸 온 것이 호박잎만이 아니다.

호박잎
상추
겨자채
청경채
비타민
부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애호박
늙은 호박
(vvip에게만 주는)파
(향이 살아있는)풋 아삭이고추
(3년 된) 도라지
대추
묵은지
사과

교회에 붙어 있는 사택 텃밭에 남편 목사님이 키운 것들이다. 농사(지어 나눠주는?) 재미에 빠지신 목사님이 뜯어주고 퍼주고 하셨다. 목사님이 재차 확인해주신 바, 이 농작물 100% 목사님 수고임! 친구는 이 과정에 1도 개입하지 않았고, 나는 아주 마음에 드는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넌 원래 좀 도회적인 여자니까! ㅎㅎ) 친밀한 사람들의 뇌는 서로 연결되고 자연스레 교류한다고 한다.(이건 남편이 짐 와일더 책에서 읽고 했던 말인데, 내 말처럼 한다고 뭐라 하겠지만, 친밀한 뇌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한 번 만나고 와서 세 집의 식탁이 바뀌어 버린 건, 뇌가 연결되고 삶이 연결되어 교차한다는 것의 증거다. 아, 그러면 농사지은 목사님의 뇌와 친구의 뇌도 교차하고 있으니 세 집의 색다른 식탁은 그냥 우리 모두의 것인 걸로!

셋이 참 다른데,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른가 싶다. 50여 년 인생, 각자 다르게 고군분투하며 산다 싶은데, 그 고군분투가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를까 싶기도. 이 긴 세월 서로의 친구로 곁에 있어주는 것, 연결되고 교류하는 뇌라서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는 갈수록 비슷해져 가는 것 아닐까. 말이 쉽지, 30여 년 친구인데.

목사관 화단에 분꽃이 여기저기 많이 피어 있다. 친구가 분꽃이 좋단다. 분꽃은 내게 귀걸이 꽃이다. 꽃을 따서 씨방 쪽과 꽃을 살짝 떼어 쭉 빼고, 귀에 꽂으면 달랑달랑 귀걸이가 된다. 어릴 적에 저러고 참 많이 놀았는데... 얘네들이 이걸 모른다. 찐 시골 출신은 나다! 옆에서 도라지 캐서 흙 털고 있을 때 혼자 귀걸이 놀이를 했다. 나는 꼭 내려갈 것이다. 산과 논이 있는 동네로 가서 살려고. 지금은 전셋값 압박에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밀려나고 있지만, 언젠가 주도적으로 아래로 가려고! '은퇴'라는 기회가 우리를 좀 바꿔주면 좋겠다. 도회적인 선은 이제 좀 도시로 나오고, 찐 시골 아이인 나는 내려가고. 도회적인지 시골적인지 잘 모르겠는 정, 너는 그냥 큰집 지어서 언니들 한 집에 살 수 있게 해 주든지. ㅎㅎ 많은 날 홀로 외롭게, 가끔 이렇듯 함께 걸으며 가는 인생길이 새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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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가 있다. 나 포함 셋이 1년에 한두 번 만난다. 친구 J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일을 하는 덕에 자주 보게 된다. 그렇다. 아프리카에 있어서 자주 본다. 미국이나 캐나다가 아니라 아프리카니까. 한 번 들어올 때면 꼭 봐야 할 것 같은 이심전심이다. 실은 아프리카가 아니어도 만남을 도모하는 친구는 꼭 J였다. 어릴 적 친구들 정보도 죄다 꿰고 있다. 여전히 연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친구인데 말이다. 잊지 않고 잇고 마는 역할은 늘 J의 몫이다. 사람을 향한 남다른 감각, 따스한 마음이 탁월한 친구이다. 고마운 친구다.

친구 W는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싸개에 싸여서 만났을 것이다. 엄마 등에 업혀서 같은 예배를 드렸을 테고. 아버지 목회하던 교회의 젊은 집사님의 아들이었다. 대여섯 살 즈음에는 장로님 딸 의정이까지 해서 어린 삼총사였다. W의 부모님이 의상실을 하셨는데 거기서 셋이 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마네킹 보관해둔 곳에서 숨바꼭질하며 무서워하며 동시에 깔깔거렸던 기억들. W의 아버지는 빼어난 테너 목소리셨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잘하셨고, 이번에 만나고 문득 떠올랐는데 우리 아버지 장례 예배 때 특별 찬송을 부르셨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영원히 쉬일 곳 아주 없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찬송을 부르고 예배당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으셨던 모습이 인생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셋이 친구가 된 건 고등학교 때이다. 서울의 교회에서 만났다. 한 교회를 다니게 된 건 엄마와 W 부모님의 친분이다. J는 고등학교 때 전도되어 온 친구이고. 대학에 가서 함께 중창단을 만들고 죽이 맞아 같이 돌아다녔다. J가 군대 가기 며칠 전, 모란시장의 겨울이 생각난다. J가 모란시장의 순대국밥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난생처음 모란시장이란 곳에 갔고, 난생처음 순대국밥도 먹어봤다. 눈발도 날렸던 것 같다. 하나 씩 떠올려보니 강렬한 감정은 없지만 함께 한 소소한 것들이 잊히지 않는 이미지들로 남아 있다. 이 소소함이 어쩐지 새롭게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서 참 좋구나!

만나도 별 것 없다. 르완다에서 가져온 커피를 건네고, 또 "이거 원두야? 어떻게 먹어?" 매번 물었던 걸 또 묻고. 그러면 나와 J가 동시에 "커터기에 갈아도 돼"라고 말하고. "아, 사무실에 기계 있어." 비슷한 얘기를 다시 하는 것 같다. 부모님 안부를 묻고, 그 사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음에도 곱창을 먹자, 다른 맛집을 찾자, 하고. 바람 좋은 야외 카페에 앉아 오가는 그 맹맹한 대화가 편하고 좋았다. 친구라서 참 좋구나!

지하철 역까지 가는 길에 내가 물었다. "너희는 나이 드는 게 어때?" 마주 앉아서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나이를 많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얼굴이 내 얼굴 아닌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나는 어떠냐고 내게 되물어 와서 "나는 나이 드는 게 참 좋아"라고 했다. "너는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럴 거야." 하더니 W는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젊을 때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 음악을 하고 싶냐 물었다. 아버지에게서 온 것일 텐데 W도 음악에 관한 탁월성을 타고난 친구이다. 대학가요제 나갈 준비를 했었는데, 하지 못했던 것 아쉽다고 했다. 대학 졸업하고 입사하여 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이다. 약한 몸으로 태어난 아이를 묵묵히 키우고 돌보는 일을 한결같이 해 온 세월이기도 하다. 친구의 한결같은 인생이, 아니 어떻게 인생이 한결같겠나. 질곡 많은 인생을 한결같이 살아온 친구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60이면 은퇴니,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이후의 삶이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돌아오는 길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다. 음악이든 무엇이든 젊은 시절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하고 남을 인생 후반을 살기를.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취향을 존중하는 시간을 살 수 있기를. 그런 기도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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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편도 전도 잡채도 없는 추석을 보냈다.

어머님 모시고 와 점심식사하고 율동공원 한 바퀴 돌았다. 

걷는데 힘들단 소리도 안 하고, 

할머니 어설픈 농담에 맞장구 쳐드리고,

와하하하 웃어 드리는 아이들이 참 예뻤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많이 드시지도 못하고, 소화력은 약하신지라

샤브샤브 하나 딱 준비했다.

야채 많이 드시고, 국물 뜨뜻한 것 드시면 딱이다.

우리 식구는 남은 국물에 칼국수, 또 남은 국물에 죽까지 가야 딱이고.

뜨뜻한 국물에 녹으셨는지, 분위기에 취하셨는지

허밍으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부르신다.

 

그렇게 노래 자아에 불이 들어오셔서는,

공원까지 가는 차 안에서 무반주로 몇 곡을 뽑으셨다.

아, 그런데!

음정이 좋으심, 아주 좋으심. 

같이 노래방도 갔었고, 예배도 많이 드렸는데 처음 발견이다.

아름답다, 어머니 목소리.

 

결혼 생활 22년은 어머니와 함께 한 세월이기도 하다.

여기도 또 책 한 권인데,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닌 건 분명하다.

착한 며느리 안 하기로 선언하고 벌써 몇 년이다.

예전이 그리운 어머니는 이렇게 찌르고 저렇게 어르고 하시지만

되돌릴 수 없는 날들이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새롭게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작지만 큰 발견,

어머니의 음악성이다.

남편에게도 채윤이에게도 흘러왔겠구나 싶다.

몇 년 만에 어머니와 둘이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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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회상'이라니!
'지금'의 김성호라니!
지금 김성호가 부르는 '회상'이라니!


내 첫 차 티코의 사물함엔 보물처럼, 유물처럼 카세트 테이프가 한가득이었다. 김성호의 앨범은 베스트 탑 5 안에 들었다. 그 차, 사물함의 카세트 테이프에 젊은 날의 꿈과 사랑과 고민과 외로움이 다 담겨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거기 담겼던 곡들을 이제 다시 들어도 살아오는 것들이 있다.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그 시절의 장소, 시간, 사람, 감정이 그대로 떠오른다. 티코가 가고, 여러 차들이 가고, 테이프와 CD가 지나갔다. 육아와 시가 살이 시간 동안 서서히 잊히기도 하였다. 벅스를 알고부터 잃어버린 음악이 살아 돌아왔다. 벅스에 없으면 유튜브를 뒤졌고, 웬만한 곡을 다 찾아졌다. 그런 방법으로 아무리 뒤져도 전곡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쉬운 김성호였다. 아쉬움에 사람 검색으로 뒤져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좋은, 아껴서 듣는 곡이다. 그냥 회상이 아니라 '김성호의 회상'이라니. 김성호의 회상을 회상하는 정신실의 회상이다.

남편이 유투브 영상을 하나 보내왔는데, 지금의 김성호가 부르는 '김성호의 회상'이었다. 찾아보니 출연한 방송이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목소리도 얼굴도 '그대로'라 할 수는 없지만... 참 좋았다. 아니 좋았단 말 대신 고맙다 하고 싶다. 무엇보다 얼굴이 참 좋았다. 오스카 와일드가 했다는 "나이 마흔이면 누구나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는데. 단지 얼굴이 아니라 내면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같은 친절한 표정이라도, 같은 무뚝뚝한 표정이라도 내면의 얼굴과 괴리가 크지 않아야 편안하다. 드러나는 표정이 어떻든 머물러 바라보고 싶은 얼굴은 그런 얼굴이다. 김성호의 얼굴이 그랬다. 목소리도 물론 아직(?) 팽팽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과는 조금 달랐다. 가만 서서 노래하는 걸 여러 번 돌려보니, 느슨해진 성대의 긴장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팔로우잉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페친 한 분이 김성호에 대해 쓴 글을 보았다. 짧은 글이 생각과 감성을 함께 자극했다. 공감하며 읽다보니 김성호가 좋았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기독교인인 것 같은데, 그래서 가스펠도 꽤 작곡했다. 신앙이 뜨거워져 가스펠을 만들었어도 가사가 적나라한 게토 언어가 아니었음이 좋았었지.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시인과 촌장 노래의 이런 가사가 있다.

당신의 눈썹처럼 여윈 초승달 숲 사이로 지고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높은 벽 밑둥아리애 붙어서 밤새워 새벽

시인이 믿음 뜨거워져 집사님으로 많이 불리면서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 "GNP가 오르고 당신의 아이들이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이 거리를 달려도... 당신의 마음속에 사랑이 없다면 허무할 거예요"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아쉽고 아까웠다. 저 '새벽' 노래를 함께 좋아하던 친구에게 뭔가 부끄러웠다. 기독교인인 것이 부끄러워졌었다. 전도지에 인쇄된 글귀처럼 보이는 가사를 보면서 좋아하던 가수를 잃을 상실감에 슬펐던 기억. 김성호가 좋았던 건, (몇 곡 알지도 못하지만) 가스펠도 시처럼 다가와서였다.

이 모든 것, 내 취향에 불과한 것을 알지만 소중히 여기고 싶다. 나를 존중하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니다. 내 사소한 취향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래서 김성호의 회상을 좋아하는 나를 새롭게 회상해보는 중이다. 방송을 다 보고나니, 내 사소한 취향들이 멋지게 느껴진다. 그렇게 느끼게 해준 김성호 님에게 고맙다. 한때 좋아하고, 존경했던 내 취향들이 부끄럽게 되는 일이, 심지어 혐오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마음 편히 이런 말 할 나이는 아니다만. 누군가의 취향의 대상이 되어 실망시킬 일이 더 많은 나이가 되어 앉아 있으니) 여하튼 마흔이 훨씬 넘은 김성호 님의 얼굴, 목소리가 좋아서 고마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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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던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초저녁,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걷는 길. 걷는 건 참 좋은 일이라, 아파트 큰 나무 사이를 걸으니 절로 마음의 생기가 차올랐다. 놀이터 옆을 지나는데, 지나는데... 아하, 말랑말랑한 생명체들 귀여운 만행의 현장 발견. 슬슬 차오르던 생기의 포텐이 터짐! 오동통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르고 만지고 주무르고 했을, 재잘거렸을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것 같은 잔여물이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 작품인가. 발을 뗄 수 없었다.

어느 큰 교회 강의에 갔다. 소개하신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이들이 본당 저 끝에 앉았다. 엄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더니 강의 마치고 나오는데 이 그림카드를 건네주었다. 사모님 "한테" 쓴 것이고. 의상이 포인트다. 내 여름 강의복이라 할 수 있는 검정 원피스에 흰 재킷을 그대로 살렸고. 내 트레이드마크인 '열정'을 그대로 담아냈다. 어찌나 열정이 넘치는지, 강의하는데 겨드랑이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온다. '사모' '느낌표' '감사'는 쫌 중요하니 별표. "드림"의 디귿을 뒤집어써주는 미적 감각! 발을 뗄 수 없었다. 다시 돌이켜 이 아름다운 존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오후에 있었던 지도자 과정에서 들은 아픈 이야기로 마음에 고인 슬픔이, 밤에 유튜브 강의라 1500명 본당에 청중 몇 명 앉아 계신 어려운 환경에서 강의하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이, 늦은 밤 빗길 운전하느라 쌓인 피로가 한 방에 풀렸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귀엽고 아름다운 작품인가.

참 아름다우신 분들, 참 고마우신 분들.
아이들 여러분들.
아이들이 있는 세상,
아이들이 있어서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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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을 등지고 앉은 내게 채윤이가 말했다. "엄마, 해가 나오고 있는 거 알아?" 채윤이는 주방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환해진다. 해가 질 시간인데 환해진다. "밥 먹고 한 바퀴 돌고 올까?" "그래" 잠깐 얼굴을 보여준 해가 이내 지고 어두워졌다. 늦은 밤 산책을 나갔다.

일명 '남의 아파트 돌아다니기'로 밤 산책 콘셉트를 정했다. 이 동네, 오래된 여러 단지가 모여 있어서 좋은 점이 있다. 키가 큰 나무들이 많고, 나무 사이사이 새가 많고, 그 나무 아래를 걷는 즐거움이다. 온종일 내린 비에 젖은 큰 나무 사이를 걷는다. 개코 채윤이가 그런다. "아, 이 냄새! 수련회에서 집회 마치고 나왔을 때 나는 냄새. 이 냄새 맡으며 숙소로 가서 치킨 먹을 시간이야! " 나도 아는 그 냄새를 채윤이가 느낀다니! "글치, 글치. 수련회 중에 하루는 꼭 비가 오지. 비가 그친 다음에 나는 숲의 냄새!" 남의 아파트 캄캄한 둘레길을 스마트폰 조명을 의지해서 걷는데 "어, 이건 천로역정 마지막 코스 느낌인데!" 한다.

수련회의 추억을 걷다 넓은 길로 나왔는데, "엄마, 나 쫑알쫑알거려도 돼?" 하더니 대답 필요없는 말을 쏟아낸다. 친구 이야기,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것이 이렇게 어렵고 저렇게 어렵다는 이야기. 문득 내 친구가 떠오른다. 요즘 자꾸 꿈에 등장하는 친구다. 중 3때 만나서 결혼 전까지 심하게 붙어 다녔던 친구. 친구는 엄마가 없고 나는 아버지가 없었다. 나는 그것 하나로 이 친구가 좋았는데, 돌아보면 정말 좋은 친구를 얻은 것이었다. 요즘 꿈에 자꾸 나와 다시 생각하게 되는데, 그 친구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아니겠구나, 싶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가만히 들어주었고, 머리가 무척 좋았고(천재일지도 모른다. 한때 서로를 천재라고 생각했고,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며 KFC에서 치킨을 먹다 운 적도 있었네.), 시, 음악, 소설... 나보다 아는 것이 많았고, 무엇보다 나와 치명적으로 다른 것이 자기 과시를 몰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십 대 중반부터 20대 가장 많은 얘기를 나눈 사람이다. 수련회 가서 뜨거워져 돌아와서도 이 친구와 후기를 나눴다. 교회 안에서 어려운 얘기도 죄다 이 친구에게 쏟아냈다. 교회 안의 언어로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래서 얻은 유익이 컸겠다. 말이 많지 않은 친구지만, 말의 영향력이 컸다. 둘만의 표현법이 있었고, 둘만의 언어 세계가 있었다. 친구와 끝없는 대화, 주고받는 편지가 준 가장 큰 선물은 교회 죽순이였던 나를 기독교 게토 언어에서 구원한 것 아닐까 싶네. 시험이 끝나는 날이면 광화문 교보문고, 종로서적, 청계천 헌 책방에 가고. 고등학교 때 학교가 갈라졌는데 야자 끝나고 10시 반에 되어 잠깐이라도 얼굴 보고, 호떡 먹고 헤어졌다. 친구가 재수하던 시절에도 재수학원 앞 분식점에서, 음악다방에서 꼬박꼬박 만나 놀았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학교가 달랐는데 시간표를 같이 짰다. 교양과목 시간표를 서로 잘 짜서 걔네 학교 우리 학교 오가며 같이 강의를 들었다. 직장 다닐 때도 일주일에 몇 번씩 만났다. 내가 기타 치고 노래하면 그걸 가만히 앉아서 들어주었다. 같이 옷을 사서 바꿔 입기도 했다. 같이 하지 않은 게 없었던 것 같다. 싸울 법도 한데, 크고 작은 갈등의 기억이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기억이 없는 것은 정말 특별한 그 친구의 성품 탓이다.

친구네 집에 자주 가서 자곤 했는데.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가 계셨다. 친구가 알려주길 그 아주머니는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는다고. 나이가 한참 많았는데... 40 정도 되었나? 멋지다! 우리도 그렇게 하자! 40에 편지를 주고받자! 그런 말 했었는데... 40이면 많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그 40보다 한참 지난 나이가 되었다. 친구가 왜 자꾸 꿈에 나오는지 알 듯하다.

산책 길 끝에 종일 내린 비에 흠뻑 젖은 넝쿨 장미를 만났다. 쫑알쫑알 떠드는 채윤이의 친구들 같다고 느껴졌다. 찬란하다. 제 딴에는 구질구질하다고 느끼겠지만 20대 찬란한 날들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친구들 이야기. 나의 20대도 찬란했었지. 그 친구가 있어서 특별히 찬란했다는 것이 문득 깨달아진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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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 할머니가 되어 교회 아기들을 찾았다. 깜짝 방문이었다. 성탄절 이브 계획이었는데 이사로 정신이 없는 데다 '5인 이하 모임 금지' 지침에 주춤했다. 교회 성탄예배를 영상으로 드리는데 아가들이 등장했다. 영상으로 짧게 만나니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고, 뒤늦은 성탄 선물을 전하기로 했다. 실은 무엇보다 질투심의 발로! 영상 예배 드리면서 갑자기 남편이 아기들에게 스타가 되었다.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녀석이 "목사님 보고싶다"라고 하질 않나, 자기 아빠가 양복을 입고 나서면 "아빠 멋있다, 목사님 같아."라고 한다니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러다 사모님은 잊히고 말겠네, 위기감이 드는 것. 아가들 꼭 닮은 케이크를 찾아 주문하고, 한 명 한 명에게 카드를 썼다. 한 카드에 남편과 번갈아 한 줄씩 써서 완성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이렇게 신이 날까. 

 

예고 없이 들이닥쳐 깜짝 놀라게 하는 맛은 또 얼마나 짜릿한가. 주소만 들고 찾아간 집이라, 제대로 찾은 건가, 현관 앞에서 초인종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긴장하며 눌렀는데 안에서 들리는 소리 "누구세요?.... 어머, 목사님이야!" 우당탕탕탕. 엄마 아빠 어른들은 놀라고 당황하고 "아니, 웬일이세요.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는데 아가들은 어안이 벙벙. 목욕하러 들어갔다 얼른 내복 한 벌 다시 빼입고 현관으로 달려나온 친구도 있다. ㅎㅎ 사모님 손에 든 케이크에 눈이 간다. 자꾸 눈이 간다. 백일이 안 된 아기와 엄마 뱃속에서 태명으로 존재하는 아기까지 만나고 1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성탄절은 며칠 지났지만 새벽송을 돈 것 같다. 집집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찍고 돌아다닌 터라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남편 말마따나 나는 아기들만 만나면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현관에서 짧게 만나고 나오는데 심장이 콩콩 뛴다. 엔돌핀 주사를 한 대 맞고 나오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그렇다. 그냥 생명의 에너지를 흘린다. 20여 년 아이들 음악치료를 했지만, 돌아보면 내가 치유되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오래 함께 한 시간 덕에 사람들이 치유되고 성장하여 온전해질 때 어떤 모습을 띠게 되는지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아이의 모습니다. 영성치유에서는 wonderful child, 신성한 내면 아이라고 한다.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아이들은 그냥 생명과 신성의 존재이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자라 가며, 지구별에서 사는 날이 길어질수록 흐릿해져 갈 뿐이다. 나도, 연구소를 찾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런 생명 덩어리였다. 그것이 치유 가능성이다. 생명이고 신비인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따스한 돌봄을 박탈당하는 세상, 얼마나 아픈가. 아기들은 정말 내게 기쁨이고, 가능성이고 아픔이다. 곁에 이렇게 귀여운 아기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명의 신비를, 세상에 대한 책무감을 일깨우니 말이다. 하룻 저녁 이벤트로 많이 행복했다. 행복한 만큼 기도한다. 우리 아가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안으로 오시되 서른 살의 성인이 아니라 아기로 오신 것. 얼마나 심장 뛰는 경이로움인가. 성탄절 찬송 중 '그 어린 주 예수'가 어릴 적부터 참 좋았다. 특히 3절은.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주 품 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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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고가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라(같은 말이군) 남의 말을 잘 믿거나 듣지 않는 편이다. 이런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오류이긴 하지만 믿고자 하는 사람, 또는 상황은 거침없이 무한신뢰를 보내기도 한다. 운동이라곤 수영밖에 모르는 바보가 그나마 어렵게 친해진 수영도 연을 끊은 지 몇 년이 되어 남의 말 듣고 필라테스를 하게 된 얘기다. 누가 뭘 하라고 해서 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이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말하면 그냥 무조건 들으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남편 김종필 류의 사람들이다. 아무리 좋은 것도 쉽게 추천하지 않는 사람, 강요는 더더욱 못하는 사람, 웬만해서는 두 번 이상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두 번 정도 말하거나, 한 번 하는 말인데 힘이 들어가 있다면 가급적 듣는 편이 좋다. 동의가 되지 않아도 듣는 편이다.  

 

H가 허리 통증 달랠 요량으로 수개월 전,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허리 통증이 나아졌을뿐 아니라 몸과 가까워지는 좋은 운동이라고 했다. 요통은 아니지만 일찍 오십견에 테니스 엘보 같은 갱년기 질환을 겪은 내게 "언니도 해 봐"라고 했다. 한 번 아니고 여러 번 말했다. H가 같은 말을 두 번 이상 하면 그냥 이유 묻지 않고 듣는 게 좋다, 여기기 때문에 꼭 해봐야지 싶었다. 시간, 비용, 무엇보다 몸치로서 새로운 운동에 대한 두려움으로 백 번 생각만 하고 있었다. 집 근처에 생긴 대형 헬스클럽에서 오픈 행사로 저렴하게 회원 모집하는 데 힘입어 등록을 했다.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기!"용으로 시험 삼아 해보기 딱 좋은 시간과 비용의 3개월 도전이었다. 

 

수영을 제대로 즐기기 전까지 내 몸은 정말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었다. 정신만 가지고 살지, 몸은 왜 데리고 살까 싶었다. 학창 시절 체육은 내 몸을 혐오하라고 주어진 시간이었다. 체육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몸, 실기 성적 안 나오는 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래서일 것이다. 몸이 그렇게 멀게 느껴졌던 것은. 어쩐지 수영만큼은 꼭 해보고 싶어서 젊은 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역시 어려웠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뭘 해도 우습기만 한 부적절한 몸의 재확인이다. 자유형 호흡에서 막혀 번번이 포기하고 말았다. 채윤이를 품고 임산부 수영교실을 다니며 다시 시도.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까지 진도를 빼고 출산했다. 한 생명이 들어서서 두 생명의 에너지가 된 것인지, 그저 부풀어가는 포궁의 부력 때문인지 수영이 잘 배워졌다. 그렇게 극복하고, 채윤이 낳고 현승이 낳고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 다니던 즈음부터 꾸준히 하여 수영人으로 거듭났다. 수영은 내게 영적 훈련이었다. 내 몸에 가까워지고, 조금씩 화해하며, 믿어주게 되었으니.

 

내 인생 운동은 수영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H의 간증에 힘입어 시작한 필라테스다. "뭘 해도 웃긴 몸"으로 새로운 운동을 하면 또 얼마나 웃긴 몸이 될까, 시작도 하기 전에 수치심이 올라오지만 그냥 열심히 했다. 전자동으로 "어떻게 보일까, 얼마나 웃기게 보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그럴수록 더욱 내 몸에 집중했다. 다행히 편안한 선생님을 만났다. 분명 잘 못 따라가고 있는데 기다려주는 마음이 느껴졌다. 갈수록 재미가 붙어 50분이 어떻게 지나갔나 싶게 끝나곤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멈추고 몸인 나로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 참말로 좋았다. 어떻게 보일까, 하는 걱정은 저 너머로. 

 

이사가 결정되고 가장 아쉬운 것은 앞산이 아니라 모처럼 적응한 필라테스였다. 어디든 가서 다시 할 수 있겠지만,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이끌어주는 선생님이었다. 3개월 수강권이 끝나고 이사까지 애매하게 한 달 정도가 남았다. 원래 한 달 수강권이 있지도 않지만 굳이 등록하자면 할인된 3개월 비용과 비슷하다니, 그렇게까진 할 수 없어서 마음을 접었다. 이사 때문에 그만둔다고 하니 선생님도 많이 아쉬워했다. "어, 저 이제 오전 수업 허전해서 어떻게 해요? 신실님 늦게 오시면 막 기다리는데..." 채윤이보다 몇 살쯤 더 보이는 앳된 선생님의 말이 슬프게 들렸다. 그저 하는 말이려니 했지만, 슬픈 만큼 따뜻하기도 했고. 마지막 수업 마쳤는데 선생님이 내 팔을 잡아끌어 라커룸으로 가더니 선물 봉투 하나를 내밀어 깜짝 놀랐다. "신실님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 너무 아쉬워요. 처음부터 영상을 찍어 놓았을 걸... 했어요." 학생이 선생에게 고맙다고 선물 주는 것은 흔하지만, 선생이 학생에게, 그것도 필라테스 강사가 3개월 반짝 운동하고 그만두는 학생에게 선물이라니! 실은 나도 선생님에게 줄 기프트 카드를 준비해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선생님, 실은 저도요...." 하고 내미는데 주책맞게 안구에 습기가 차올랐다. 

 

남편이 "셀카라도 하나 찍지 그랬어?" 했다. 그러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연락처도 없고, 사진 한 장 남지 않은, 3개월의 만남이다. 기억에만 남은 따뜻한 만남이다. 아쉬울 것은 없다. 몸에 남은 기억은 스마트폰의 사진 한 장보다 더 선명하다. 간간이 그 시간에 배운 스트레칭을 한다. 앳되고 차분한 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짧고 흐릿하여 더 선명한 만남, 따뜻한 만남의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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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사님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옴

 

 

박광혜 권사님 떠나신 지 벌써 일 년이다. 1주기 추도예배를 드렸다. 헤아려 보면 권사님과의 만남이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리 길지 않구나! 그러나 어쩐지 권사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다. 운을 떼어 놓고 보니 일 년 내내 그랬던 것 같다. 3년 여의 시간, 함께 한 시간이 권사님의 70년 넘는 이 땅의 시간의 마지막 시간이었다니.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게 된다. 처음 뵈었을 때는 이렇게 빨리 이별이 있을 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사님은 떠나셨지만, 그래서 생긴 텅 빈 자리로부터 새로운 권사님을 만난다. 엄마 애도일기를 쓰고 마무리하며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배웠다. 누군가에 대해 쓰는 것은 그분의 아니라 나를, 그분의 삶에 비친 나를 해석하는 것이다. 떠난 이가 남긴 존재의 빈 자리를 응시하며 보이는 것은 그분이 내게 남긴 사랑이며 가르침이다. 그것을 알기에 쓰려고 한다. 무엇이든 쓰려고 한다. 쓰고 싶다. 써서 알아내고 싶다. 내게 남기신 권사님의 흔적을. 삶과 죽음에 관한 설교 묵상이라는 부제를 단 김영봉 목사님의 책 <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제목과 같다.

 

추도예배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던 중, 권사님 며느님께서 "어머님이 사모님을 너무 좋아하셨어요." 했다. 남편이 거들면서 "맞습니다. 권사님이 저보다 제 아내를 더 좋아하셨어요."라고 했다. 나도 안다. 아니 돌아보니 확실히 알겠다. 권사님이 나를 참 좋아하셨다. 내 커피를 좋아하셨고, 내가 꾸며놓은 거실을 '북카페 같다'라고 여기저기 소문을 내시며 칭찬하셨다. 아이들 키우는 것을 보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 가정이 있구나! 실제로 이렇게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처음 봤다."라고 하셨다. 교회에 처음 오던 날,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그렇게 추울 수가 없었다. 아이들까지 어깨가 움츠러들어 내내 긴장이었다. 그날이 한참 지나고 권사님이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아니, 잘 모르는 학생인데 내가 뒤따라 들어가는 걸 알고는 교회 출입문을 한참을 붙들고 있는 거예요. 누가 이렇게 착한가 봤더니 현승이였어. 마음 씀씀이가 보통이 아니에요."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말씀하셨다. 현승이는 이 말씀을 듣고 좋아서 콧구멍이 벌렁벌렁. "엄마, 봤지? 나 그런 사람이야." 추운 날의 따뜻한 기억이다. 

 

채윤이에게 특별히 마음을 쓰셨다. 한창 대입 실기 시험 중이었다. 1차 발표가 속속 나고 있었고. 시험을 잘보기도 하고, 못 보기도 했다. 한두 번 실수한 것으로 크게 낙심하고 있는데, 기대했던 학교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망이 좋지 않았다. 어쩌면 재수를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채윤이 모르게 남편과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권사님께서 어떻게 되고 있냐고 물으셨다.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씀드렸다. 권사님께서 고개를 저으시며 힘주어 말씀하셨다. "아니에요. 사모님. 우리 채윤이 꼭 합격할 거예요. 하나님이 꼭 붙여 주실 거예요!" 정말 확신에 차서 말씀하셨다. 교회 처음 부임했을 때, 권사님이 사랑하는 손녀딸이 한창 입시 중이었다. 권사님이 어렸을 적부터 혼신을 다해 뒷바라지하신 손녀이고, 서울대에 합격을 했다. 손녀딸을 위해 기도하시던 절절함과 비슷하며 다른 절절함 같았다. 결국 채윤이는 원하던 학교에 합격을 했고, 그 소식을 들으신 권사님이 환하게 웃으시며 그러셨다. "사모님, 내가 된다고 했죠? 하나님이 채윤이 같은 아이를 안 붙여주시면 누구를 붙여주시겠어요?" 눈물이 왈칵났다. 그리고 손녀딸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요즘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 색깔이라며 화장품을 사서 선물로 주셨다. 곱고 고운 필체로 정성스레 쓰신 카드와 함께.

 

돌아보면 이렇게 따뜻한 기억이다. 실은 돌아보니 비로소 이렇듯 따뜻한 것이다. 권사님은 사실 '칼같음, 철저함' 같은 형용사가 어울리는 분이다. 완벽하고 빈틈이 없으며 모든 것을 다 가진(갖춘) 분 같았고, 특유의 자부심도 충만하셨다. 아나운서 같은 낭랑하고 또렷한 발음으로 우아한 말투셨다. 그런 말투로 돌려 말하기보다 직설로 꽂으셨다. 실은 그래서 권사님이 조금 무서웠다. 부임한 첫 해, 내적 여정 세미나를 길게 진행했는데 쉽지 않은 동반이었다.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내적 여정 참여자들은 자발성 100%에 목마름 200% 정도를 장착하고 온다. 톡 건들면 그저 마음을 활짝 여는 분이 대부분이다. 교회 내적 여정은 자발성보다는 관성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면을 깊이 돌아보는 것이 여정의 목표인데, 웬만큼 준비되지 않으면 마음의 여정에 들어서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동반하고 이끄는데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권사님은 교회 에니어그램 포함, 내가 이끈 내적 여정 집단을 통틀어 최고령 수강자이시다. 정말 열심히 듣고 필기하셨고, 매주 철저하게 복습하셨다. 그리고 매 시간 "너무 어렵다."라고 하셨다. 가장 열심히 하시면서 가장 어려워하시는 모범생이었다. 상담이나 마음의 여정에서 "모르겠다"는 반응은 "마주하기 힘들다"로 받아들이곤 한다. 내적인 부침이 있다는 뜻이다. '저항'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상담자 또는 여정 동반자로서 분별이 필요하고, 버티는 힘이 필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질문이 많으시고, 그만큼 어려워하셨다. 왜 아니겠는가? 머리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정직하게 내면을 마주하는 작업인데. 아무튼 권사님 뿐 아니라 전통 교회 신앙생활에 익숙한 분들과의 여정은 내게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마지막 시간 소감문을 써 제출하시도록 했다. 어쩌면 그렇게도 권사님스럽게, 활자 같은 필체의 소감문을 반듯하게 접어 깨끗한 봉투에 담아 스티커로 밀봉해 건네주셨다. 역시나 권사님스러운 정직한 소감문이었다. 여정에 참여하며 겪으신 내적 갈등을 그대로 고백하셨다. 그럼에도 여정이 지향하는 지점을 명확히 알고 계셨다. 마지막 문장 '쿵쿵 울림'이란 두 단어는 내 마음에 남아 아직도 쿵쿵, 울리고 있다. 그 연세에 살아오신 세월을 돌아보며 '잘못 살았구나' 하신다. 권사님 정말 오롯이 에고의 그림자를 마주하셨었구나! 누구보다 내적 여정을 진실하게 걸으셨구나! 이제와 다시 보인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삶과 신앙을 '고민하고 후회하며 다시 부끄러움'으로 마주하며 성찰하셨던 시간은 어떠했을까. 더 헤아려드릴 걸, 아쉽고 아쉽다. 쓰다 보니 더욱 아쉽고 텅 빈 마음에 아픈 바람이 스친다. 

 

에니어그램 내적여정을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워낙 나의 뇌세포는 더 이상 지식이나 감정이 들어갈 틈이 없이 평생 쓸데없는 것까지 차곡차곡 싸여 있었기에. 슬프고도 부끄러운 1강이었다. 그 혼란스러운 중에 어떤 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뭔지 모를 충만함에 2강이 듣고 싶어서 '기도하며, 고민하며 후회하며 다시 부끄러움에...... 여기 저기 다 있는 나. 아직도 정확한 내 유형을 못 찾고 있긴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얻게 됨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여전히 난 잘못 살았구나 하는 자책감이 나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십자가, 예수님의 와전한 사랑이 나를 회복시키심을 믿는다. 있는 그대로. 모든 학습에서 낙제였지만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정말 그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귀 기울이고 싶다. 

시간 시간 마음으로 쿵쿵 울림이 있었던 내 평생 처음 경험해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권사님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멀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멀다고 생각했기에 더 다가갈 수가 없었다. 권사님이 나를 참 좋아하셨는데 바싹 다가가 "권사님, 내면 마주하는 일이 참 힘드시죠? 권사님, 여기까지 정말 잘 살아오셨어요."라고 말씀 드릴 용기가 없었다.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사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얘기를 가끔 들려주셨다. 아들들 시험기간에는 열심히 하던 에어로빅도 쉬셨다고 했다. 엄마가 몸을 흔들고 있으면 공부하는 아이 정신 산란할까 봐 그랬다며 회한에 잠긴 표정으로 쓸쓸하게 말씀하셨다. 이런 면에서 나는 권사님의 반대쪽 끝에 있는 엄마가 아닌가. 내 또래 엄마가 같은 말을 했다면 단칼에 정죄하고 말았을 텐데. 권사님께는 조심스러웠다. 내 소신이 권사님을 아프게 할까, 회한 가득한 권사님의 눈동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이곳에 처음 이사오고 며칠 안 지나서였다. 며칠이 지나도 집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오래된 집의 좁은 주방은 많지도 않은 그릇을 다 받아내질 못했고, 대충 지어지고 무성의하게 증축되어 생긴 방과 구조에는 아귀가 맞게 들어가는 가구가 없었다. 쓰던 가스오븐레인지는 들어올 수 없었고, 휴대용 버너로 최소한의 식사를 하며 지냈다. 춥기는 또 왜 그리 추웠는지. 바닥에 앉아 배달음식 먹으며 두 아이 중 누군가가 말했다. "꼭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아. 아빠가 망해서 이사 온 집 같아." 그렇게 며칠을 지냈는데 아직 가스 연결이 안 됐다는 소식을 들으신 권사님이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셨다. 뭘 해도 완벽하게 하시는 분이다. 손수 만드신 듣도 보도 못한 맛있는 음식을 네 식구가 정말 맛있게 먹었다. 미술을 전공하신 권사님의 동양자수 작품이 갤러리처럼 걸려 있는 거실과 칼같이 정리된 주방 서랍까지. 머나먼 세계 같았다. 맛있게 먹고 돌아와 우리의 새집에 앉아 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누구나 자기 세계, 자기 우주를 산다. 사람 사람 지문이 다르듯, 살아온, 살아가는, 살아갈 세계가 다르다. 두 세계를 각각의 고유함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려면 갈등이 불가피하다. 갈등을 피하기 좋은 방법은 마주하는 세계를 없는 것처럼 지우는 것이다. 마주하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먹고 사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차피 내가 알 수 없으니 환상으로 치부하면 불편할 것이 없다. 나는 조금 그렇게 차단했다. 그래서 권사님께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 돌아보면 권사님은 그 세계의 경계를 넘어 내 세계로 들어오셨다. 채윤이 대입 즈음에 보여주셨던 확신은 내 가슴에 와닿은 진정성이었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 키운 권사님의 손녀딸과 아주 다른 방식으로 키워진 채윤이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셨다. 망해서 이사 온 집 같은 우리 집을 안타깝게 여기시며, 그 와중에 북카페처럼 꾸며놓은 거실을 그렇게나 좋아하셨다. "어떻게든 살겠지, 내 알 바 아니다." 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마음을 쓰며 나의 세계에 침투하셨다.

 

1, 2학기에 걸쳐 내적 여정을 마친 늦가을. 권사님께서 몇 번 입지 않았다면 빨간색 트렌치 코트를 주셨다. 이름만 들어본 다른 세계의 브랜드였다. 내 몸에 꼭 맞게 수선을 해야 한다시며 수선비용까지 내셨다. 다시 새로운 세계였다. 수선비가 내가 몇 년째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 가격보다 훨씬 더 비쌌다. 장롱 안에 그 코트가 있다. 권사님께 보여드리기 위해 입고 나갔던 그 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입지 못했다. 그 코트의 가격이 대충 어떻다는 것을 알고는 입어지지가 않는다. '나 이거 입는 사람이야' 보여주기 위해 명품을 입는 마음이나 그것을 입지 못하는 나나 옷을 돈으로 보며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기는 매 한 가지다. 암튼, 그 코트를 입고 권사님께 데이트 신청을 했다. 단풍 끝자락의 남한산성에 모시고 가서 내 최애 점심과 커피로 함께 했다. 오가는 차 안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길게 들려주셨다. 참 좋아하셨다. 봄에 한 번 또 모시고 오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스치듯 하셨던 한 마디가 가슴에 남아 있다. "미안해요. 목사님과 사모님께 참 미안해요.” 개인적 관계에서 미안함은 아니었다.  그 순간엔 몰랐는데, 복기할수록 그 한 마디가 내 깊은 어떤 것을 건드렸다. 그때 당시 정말 듣고 싶은 말이었다. 누군가에게, 어쩌면 하나님께 꼭 듣고 싶은 말이었다. 참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 한 마디 들으면 훨씬 잘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던 바로 그 말이었다. 바로 그 말을 권사님이 해주셨다.

 

권사님 장례식을 마친 자리에서 하신 아드님의 부탁이 있었다. 1년 후 추도예배를 꼭 인도해 달라는 부탁을 남편에게 하셨다고 한다. 권사님 사셨던, 흐드러지는 벚꽃이 뵈는 창이 있는 집을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적어도 그 거실에서 추도예배를 드리기 위해 1년을 기다린 것이다. 추도예배를 드리며 마음이 울렁거렸다. 권사님께 하고픈 말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많은 것이 감사했다. '우리 사모님'의 커피를 특별하게 여겨주셨던 것, 나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와 주셨던 것. 무엇보다 권사님 이 땅에서 보내신 마지막 3년을 함께 하게 해 주신 것. 인생 마지막 인사, 장례예배 집례를 남편 김종필 목사가 해드릴 수 있었다는 것. 완벽한 자기 관리로 일궈내신 삶과 신앙이 생애 마지막 10여 년, '교회 사태'라는 이름의 풍랑을 겪으시며 어떻게 흔들렸는지 잘 알고 있다. 울며 울며 걸으셨다는 탄천 길을 내가 함께 걸었던 느낌으로 생생하게 여러 번 들었다. 교회와 목회자로 인해 겪은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생을 마치지 않으셨다는 것에 깊이 안도하며 감사한다. 권사님 투병 중에 '목사'라는 사람과 쉬지 않고 소통하며 두려움을 내비치시고 거침없이 기도 부탁을 하실 수 있으셔서 감사하다. 권사님은 당신 큰 아들과 나이가 같은 데다, 청빙위원에 소속되어 있었던 책임감으로 김종필 목사를 안타깝게 바라보셨다. 열정을 뿜어내며 선동하는 강력한 카리스마가 없는 것을 아쉬워하셨다. 흠결 많아 마음 놓이지 않은 김종필 목사가 투병 기간 내내, 임종 직전까지 권사님의 손을 잡아드릴 수 있어서 나는 감사했다.

 

남편이 목사인 것이 나는 늘 부끄럽다. 목사가 쓸모 없는 시대에 목사로 사는 것이 안쓰럽다. '목사의 쓸모없음'을 전제로 세워진 교회에서 목사 노릇하는 것이 안타깝고 민망하다.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늘 의문하고, 기준도 높은 사람이라 더욱 그렇다. 박광혜 권사님의 투병기간과 장례식, 그 이후 일 년을 지내고 추도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이 목사여서 고맙고 자랑스러웠다. 목사의 아름다운 권위로, 거기에 권사님을 향한 사랑을 담아 그 시간을 함께 해드리는 것이 좋았다. 목사들에게 받은 치명적인 상처로 아직 분노와 슬픔이 가시지 않은 권사님 곁에 그저 조용히 손잡아 드리는 목사로 함께 해드릴 수 있어서. 카리스마는 없지만 대신 속 깊은 진심을 가진 사람인 걸 권사님도 아시겠지. 추도예배를 마치고 화기애애한 식사 자리에서 아드님들과 대화하는 남편이 참 보기 좋았다. 처음으로 목사의 쓸모를 생각했다. 쓸모없음으로 깊이 좌절하고 자주 흔들리는 남편이(내가?) 존재의 이유를 확인하게 되는 것, 이 역시 권사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뭔가 쓰고 싶은 마음으로 일 년을 보냈다. 권사님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쓰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런 기나긴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쓰다보니 죄송함과 감사함, 그리움과 슬픔으로 마음이 쿵쿵 울린다.

 

사랑하는 권사님, 세계와 세계의 마주침에서 한 발 더 다가가지 못한 것 죄송해요. 감사해요, 권사님. 정말 다른 세계에 계셔서 제가 사는 삶은 알지도 못하고 안중에도 없으실 거라 생각했는데 경계를 허물고 들어와 주시고, 맞아주셔서 감사해요. 너무 늦게 권사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어 죄송해요. 권사님이 주신 빨간 트렌치코트, 평생 간직하면서 이 미안함과 고마움을 새길게요. 구분하고 나누고 벽을 세우는 것 없는 나라, 두려움 없이 만나고 거침 없이 연결될 좋은 나라에서 곧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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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위문공연이다. 무료하고 때로 무력하거나 우울한 내 일상의 위문공연이다. 서원이가, 작년 어느 날부터 음악수업에 나타나 내게 기쁨이 되었던 서원이가 동네로 찾아왔다. 첫 수업이 잊히지 않는다. "이거 해볼 사람? 서원이가 해볼래?" 하니 고개를 천천히 저으면 몸을 뒤로 뺐다. 눈으로는 "네넵! 해볼래요, 하고 싶어요, 저 잘해요. 뭐든지 잘해요."라고 말하면서. 눈으로 하는 말을 듣고, 살살 달래서 결국 하게 만드는 게 으막션샘미 특기인지라. 뒤로 뺀 몸 이내 앞으로 나와 연주를 했다. 그리고는 음악시간마다 기대에 찬 눈으로 앉아서 나를 맞아주곤 했었다.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시간, 무거운 키보드를 질질 끌다시피 들고 찾아간 교실에서 만나는 비타민C 레모나였다.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수업이 중단되고 학기가 마쳐버려서 굿바이도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다. 

서원이 엄마의 제보로 음악수업 있는 목요일을 그렇게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레모나 서원이와 OO님이 엄마와 아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정말 놀랐었지) 행복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아이들의 '추구'는 늘 그 자체에 가깝다. 그러니 아이들은 지금 추구하는 것을 얻으면 그냥 행복인 것이다. 다른 목적 없이, 아무 헤아림 없이, 좋아서 좋아하는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나를 좋아해줄 때, 아이들이 행복한 만큼 나도 행복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할 뿐, 목적할 뿐이기 때문이다. 수단 아닌 목적의 존재가 된다는 것, 얼마나 감동적인 것인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서원이를 만나게 되었다. 집 교도소에서 출옥하여 '기쁨' 그 자체를 만나다니.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밝은 색 니트를 입고, 귀걸이도 했다. 심장박동이 기쁨의 박자로 빨라지는 것이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 일찍 집을 나서서 태재고개를 넘어 걸어가는 길, 발걸음이 이리 가벼울 수가 없다. 식사를 마치고 공원에 잠깐 갈까? 요 앞에 길을 건너면 공원인데... 했더니. 나는요, 차를 타고 가는 공원으로 가고 싶은데요. 이 계시같은 한 마디에 율동공원으로 향했고, 걸으며 큰 소리로 카쥬를 불고, 30초 그림자 밟기, 30초 얼음땡 놀이도 했다.

헤어지는 분위기가 되자 놀이터에 가고 싶다, 집에는 장난감이 하나도 없다, 우리집은 15층이라 뛸 수가 없다, 1층에 살면 좋겠는데 1층은 집이 안 나온다.... 어설픈 (그러나 뭔가 부동산 판도를 읽고 있는 듯한 ㅎㅎㅎ 웃긴) 트집을 잡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길거리 스탠딩 톡킹 어바웃'이 길어지고 깊어져 속내 털어놓기 타임이 되었다.

다음에 날씨 따뜻해지고 코로나도 끝나면 다시 와서 놀자. 코로나가 끝나면 좋겠다.

나는요, 코로나가 끝나는 게 좋지 않아요. 나는요 재택근무를 좋아한다구요. (6세 입에서 재택근무! ㅎㅎㅎ 코로나로 재택근무 하는 엄마랑 함께 있어서 좋다는 뜻) 

(갑자기 아빠의 일상 공개) 아빠는 새벽에 가면 늦게 오거든요. $*&^@#$%^!#$ (이 부분 깨알 재밌는데... 사생활... 큐큐)

(스물한 살 누나 체벌하는 문제를 상담까지 해줌) 어, 옷걸이로 때리지 말고요. 패트병으로 엉덩이를 때리세요. 그게 아파요. (실은 스물한 살 누나가 선생님보다 커서 때리는 게 부담스럽다고 고백했더니 그때부터 너무 길게 자세하게 설명) 누나가 스물할 살이 될 때, 한 살이 더 먹을 때 말예요. 선생님도 또 한 살을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그렇게 같이 나이를 먹으니까 선생님이 나이가 더 많은 거예요. 선생님이 더 작아도 나이는 더 많은 거니까... 때릴 수 있어요. (아, 그러면 집에 가서 누나가 또 방을 안 치우고 있으면 막 패트병으로 때려야지! 의지를 보여줬더니) 아니, 처음부터 때리는 게 아니라 일단 말로 하세요. 말로 해서 안 들으면 패트병으로 때리세요. (너무 친절한 체벌 상담 ㅎㅎㅎ)

다 옮겨 적을 수 없어서 아쉬운, 녹음하지 않아서 아쉬운 긴긴 대화였다. 다시 생각해도 마음이 간질거린다. 아이들은 지금 여기를 산다. 그리고 초대한다. 우리 역시 지금 여기에 머물도록. 그 무엇도 목적하지 않고 목적한다. 나를 목적한다. 존재를 목적한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선물을 준다. 길에 서서 나눈 그 대화, 잊지 못할 것 같다. 좋았던 과거도 아니고, 더 좋아질 미래 어느 날도 아닌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린 시간이다. 코로나로 인해 마음 놓고 숨을 쉴 수 없고, 손잡고 악수를 나눌 수 없는 나날이지만. 그 순간만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행복감으로 연결되고 말았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라는 말로 내 어두웠던 과거와, 으막션샘미로 행복한 현재와, 새로운 창작의 꿈꾸는 미래를 한 줄에 꿰면서 내 일상으로 다가와 깜짝 놀래킨 사람이 서원이 엄마였다. 언어로 기록하기 어려운 그런 신비이다. 그러고 보면 '신비' 역시 무엇을 목적하지 않는, 그냥 그것, 그냥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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