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있다. 나 포함 셋이 1년에 한두 번 만난다. 친구 J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일을 하는 덕에 자주 보게 된다. 그렇다. 아프리카에 있어서 자주 본다. 미국이나 캐나다가 아니라 아프리카니까. 한 번 들어올 때면 꼭 봐야 할 것 같은 이심전심이다. 실은 아프리카가 아니어도 만남을 도모하는 친구는 꼭 J였다. 어릴 적 친구들 정보도 죄다 꿰고 있다. 여전히 연락하고 있다는 뜻이다. 조용하고 내향적인 친구인데 말이다. 잊지 않고 잇고 마는 역할은 늘 J의 몫이다. 사람을 향한 남다른 감각, 따스한 마음이 탁월한 친구이다. 고마운 친구다.

친구 W는 생각해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싸개에 싸여서 만났을 것이다. 엄마 등에 업혀서 같은 예배를 드렸을 테고. 아버지 목회하던 교회의 젊은 집사님의 아들이었다. 대여섯 살 즈음에는 장로님 딸 의정이까지 해서 어린 삼총사였다. W의 부모님이 의상실을 하셨는데 거기서 셋이 놀던 기억이 아련하다. 마네킹 보관해둔 곳에서 숨바꼭질하며 무서워하며 동시에 깔깔거렸던 기억들. W의 아버지는 빼어난 테너 목소리셨다. 성가대에서 노래를 잘하셨고, 이번에 만나고 문득 떠올랐는데 우리 아버지 장례 예배 때 특별 찬송을 부르셨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영원히 쉬일 곳 아주 없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찬송을 부르고 예배당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으셨던 모습이 인생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셋이 친구가 된 건 고등학교 때이다. 서울의 교회에서 만났다. 한 교회를 다니게 된 건 엄마와 W 부모님의 친분이다. J는 고등학교 때 전도되어 온 친구이고. 대학에 가서 함께 중창단을 만들고 죽이 맞아 같이 돌아다녔다. J가 군대 가기 며칠 전, 모란시장의 겨울이 생각난다. J가 모란시장의 순대국밥이 먹고 싶다고 했던 것 같다. 난생처음 모란시장이란 곳에 갔고, 난생처음 순대국밥도 먹어봤다. 눈발도 날렸던 것 같다. 하나 씩 떠올려보니 강렬한 감정은 없지만 함께 한 소소한 것들이 잊히지 않는 이미지들로 남아 있다. 이 소소함이 어쩐지 새롭게 소중하게 느껴진다. 연인이 아니라 친구라서 참 좋구나!

만나도 별 것 없다. 르완다에서 가져온 커피를 건네고, 또 "이거 원두야? 어떻게 먹어?" 매번 물었던 걸 또 묻고. 그러면 나와 J가 동시에 "커터기에 갈아도 돼"라고 말하고. "아, 사무실에 기계 있어." 비슷한 얘기를 다시 하는 것 같다. 부모님 안부를 묻고, 그 사이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음에도 곱창을 먹자, 다른 맛집을 찾자, 하고. 바람 좋은 야외 카페에 앉아 오가는 그 맹맹한 대화가 편하고 좋았다. 친구라서 참 좋구나!

지하철 역까지 가는 길에 내가 물었다. "너희는 나이 드는 게 어때?" 마주 앉아서 친구의 얼굴을 보며 나이를 많이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 얼굴이 내 얼굴 아닌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나는 어떠냐고 내게 되물어 와서 "나는 나이 드는 게 참 좋아"라고 했다. "너는 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럴 거야." 하더니 W는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젊을 때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냐, 음악을 하고 싶냐 물었다. 아버지에게서 온 것일 텐데 W도 음악에 관한 탁월성을 타고난 친구이다. 대학가요제 나갈 준비를 했었는데, 하지 못했던 것 아쉽다고 했다. 대학 졸업하고 입사하여 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이다. 약한 몸으로 태어난 아이를 묵묵히 키우고 돌보는 일을 한결같이 해 온 세월이기도 하다. 친구의 한결같은 인생이, 아니 어떻게 인생이 한결같겠나. 질곡 많은 인생을 한결같이 살아온 친구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60이면 은퇴니,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이후의 삶이 걱정이라고 했다. 걱정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돌아오는 길 친구를 위해서 기도했다. 음악이든 무엇이든 젊은 시절 아쉬움을 충분히 보상하고 남을 인생 후반을 살기를. 무엇이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기 취향을 존중하는 시간을 살 수 있기를. 그런 기도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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