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던가.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길이었다. 초저녁,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걷는 길. 걷는 건 참 좋은 일이라, 아파트 큰 나무 사이를 걸으니 절로 마음의 생기가 차올랐다. 놀이터 옆을 지나는데, 지나는데... 아하, 말랑말랑한 생명체들 귀여운 만행의 현장 발견. 슬슬 차오르던 생기의 포텐이 터짐! 오동통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르고 만지고 주무르고 했을, 재잘거렸을 것들이 보이고 들리는 것 같은 잔여물이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아름다운 작품인가. 발을 뗄 수 없었다.

어느 큰 교회 강의에 갔다. 소개하신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이들이 본당 저 끝에 앉았다. 엄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더니 강의 마치고 나오는데 이 그림카드를 건네주었다. 사모님 "한테" 쓴 것이고. 의상이 포인트다. 내 여름 강의복이라 할 수 있는 검정 원피스에 흰 재킷을 그대로 살렸고. 내 트레이드마크인 '열정'을 그대로 담아냈다. 어찌나 열정이 넘치는지, 강의하는데 겨드랑이에서 하트가 뿜어져 나온다. '사모' '느낌표' '감사'는 쫌 중요하니 별표. "드림"의 디귿을 뒤집어써주는 미적 감각! 발을 뗄 수 없었다. 다시 돌이켜 이 아름다운 존재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오후에 있었던 지도자 과정에서 들은 아픈 이야기로 마음에 고인 슬픔이, 밤에 유튜브 강의라 1500명 본당에 청중 몇 명 앉아 계신 어려운 환경에서 강의하느라 경직된 몸과 마음이, 늦은 밤 빗길 운전하느라 쌓인 피로가 한 방에 풀렸다. 이 얼마나 가슴 떨리게 귀엽고 아름다운 작품인가.

참 아름다우신 분들, 참 고마우신 분들.
아이들 여러분들.
아이들이 있는 세상,
아이들이 있어서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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