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 어느 날. 팔당대교 아래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고 있었다. 세 여인이 나란히 걷는데, 좌 엄마, 우 딸이다. 그러니까 내 위치는 모녀 사이이고, 나는 엄마와도 친구이고 딸과도 친구이다. 뭔가 몹시 자랑스러운 관계이다. 저 앞에는 두 남자가 걷고 있다. 한 사람은 JP, 또 한 분은 엄마 님의 남편이며 따님의 아버님. 풍경 사진을 찍던 엄마 님께서 앞의 두 남자 뒷모습을 앵글에 잡더니 말씀하셨다.

저기, 두 신부 같지 않아?(60대)
두 신부요?
그 영화 있잖아. 그거...
두 교황?
어, 그래. 두 교황.
푸하하하하... 두 신부...
느낌이 비슷하네요. 두 분 옷 색깔도 좀 그렇고. JP는 모르겠는데, 목짠님은 정말 그 라칭거 같아요. 그 배우 누구죠? 그 배우랑 느낌이 비슷한데....(50대)
아, 그 배우... 거 있잖아... 뭐지 이름이?(60대)
뭐였더라요? 생각이 안 나지?(30대)
알... 뭐 아냐? 알칸소....도 아니고, 알퐁스 도데도 아니고...(50대)
아, 거시기 있잖아.(60대)
안소니 홉킨스요!(30대, 검색해서 찾아냄)
맞아. 맞아. 앤서니 홉킨스!

이 에피소드 포스팅 하고 싶었었는데 바쁜 가을 지내느라 잊고 말았었다. 지난주 뉴질랜드에서 보내오는 사진을 보다 다시 떠올랐다. 두 신부 아니고 두 교황 아니고...

두 강사님으로 뉴질랜드 코스타에 함께 가셨다. 컨퍼런스 전에 한 교회의 극진한 환대를 받는 행복한 사진이 막막 날아왔는데, 앤서니 홉킨스 강사님 인맥 덕이었다. 어쩌면 그날 메타세쿼이아 길에서 입었던 옷과 같은 옷들을 입고 두 신부, 두 교황, 두 강사... 영화를 계속 찍고 계셨다.

채윤이는 두 사진을 보고 "오, 두 명의 아굴라! 그런데 엄마, 아굴라가 무슨 뜻이야? 옛날에 그렇게 불렀던 것 기억나는데..." (이 아이의 기억력을 사랑하고, 청순한 뇌를 사랑한다.) 20년 전 일이다. 가정교회 목짠님으로 만나서 참 행복한 교회를 경험했었는데... 거기서 분가라는 것을 하고, 또 분가라는 것을 하며 우리가 목짜가 되었을 때이다. 한 작명하시는, 서쉐석목짠님이라고도 (채윤에게) 불리셨던, 앤서니 홉킨스 목짜님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목장'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 줄여서 AP목장이라고 불렀고, 목장 시절도 내 인생 어떤 '교회'를 누렸던 때이다.

세월을 두고 만남을 이어가고, 나이를 너머 친구가 되어가는 것이 좋다. 신형철의 책 제목 『인생의 역사』처럼.
인생의 역사, 만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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