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어렸을 적, 아마도 현승이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당시 교회 가정교회 카페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부러움 가득 안고 바라본 기억이 있다. 안갯속에 싸인 미시령의 어느 길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와하, 나는 언제쯤? 우리는 언제쯤?"이 내가 붙인 사진 제목이었다. 그 당시 가정교회 목짠님이셨던 서쉐석 목짠님이 가족 여행 중 올려주신 사진이었고. 둘째 출산으로 다시 시작한 밤중 수유로 인간답게 사는 날이 아득하게 여겨졌던 시절이니. 아이들 데리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다다를 수 없는 행복처럼 느껴졌다. 그랬었다. 서목짠님 부부와 미사 강변을 걸었다. 살짝 비가 뿌리는 날씨였지만, 비 따위가 우리의 '걷기 사랑'을 막을 수 없지! 우산을 쓰고 이 얘기 저 얘기 천천히 걷는 길에 만난 안개 싸인 예봉산 풍경이다. 여기서 그때 그 미시령 사진이 생각났다. 꼽아보니 벌써 20년 전이다. 

 

서목짠님 부부는 20년 넘게 우리 부부 앞에서 서너 걸음을 사이에 두고 걸어주셨다. 몇 년 지나지 않아 우리도 제 발로 걷는 두 아이 데리고 미시령을 넘어 가족 여행을 갔고. 졸졸졸 뒤를 따라 생의 고개들을 넘었다.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고, 대학을 준비하고, 성인이 되어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을 딱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자라는 아이들이 부모와 겪는 갈등을, 중년에 오는 마음의 어려움을, 연로한 부모님을 돌보는 일의 지난함을, 그러다 떠나보내드리는 것을... 딱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며, 딱 그 길을 따라 살고 있다. 강변을 걷고 댁으로 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모처럼 g와 g의 동생 G(쥐쥐쥐지 베이베...) 두 아이(가 아니라 성인인데...)가 다 집에 있었다. 아직 내게는 초등학생 중학생 같기도, 대학생 같기도 한 g와 G 남매가 새삼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웠다. 각각 자기 빛깔로 자기다움을 살아내는 것이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수영을 배우면서 돌파되지 않는 지점을 뚫어주는 가르침은 코치가 아니라 늘 한 레인 위의 형님이 주셨다. 그저 자기 수영을 열심히 하시는 어느 형님. 인생길 수많은 만남으로 배우고 사랑받으며 걷고 있다. 서너 걸음 앞의 서목짠님 부부는 묵묵히 자기 수영을 하시는, 그러다 가끔 만나 우리 이야기를 하염없이 들어주시는, 그러다 다시 우리 앞에서 서너 걸음 앞의 삶을 살며 가르침 주는 윗 레인 형님같은 분들이다. 갈수록 더 감사한 만남이다. 성인 초입에 들어선 채윤이와 현승이를 키우는 일은(이젠 키워지지도 않지만) 밤중 수유 때와는 또 다른 막막함이다. g와 G 남매가 나란히 서서 설거지하는 뒷모습을 참 좋아 보였는데, 우리 집에서도 익숙한 남매의 뒤태였다. 채윤과 현승의 서너 걸음 앞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는 g와 G를 보고 와서 어떤 좋은 마음이 무르익고 있다. 그 좋은 마음이 조금씩 염려를 먹어 치우고 있다. 이날 먹은 g가 제주에서 산지 직배송으로 주문한 대방어는 최고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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