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보고 교회 다니는 거 아니라는데, 나는 백퍼 사람 보고 교회 다니는 편이더라. 그런 줄 몰랐는데... 정말 그렇더라.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왜 이리 예배당이 갑갑한가, 환기가 안 되나,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숨이 좀 막히기도 하고 그랬는데. 아, 애기들, 아이들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아이들 보러 교회 다니는구나! 깨달았다. 아이들은 생명이다. 아무것 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생명을 불러일으킨다. 그 앞에 선 사람의 선함을 끌어낸다. "절대 부드러워지지 않을 거야! 어디 나를 감동시켜 보시지!" 힘을 꽉 주고 있던 사람도 방긋 웃는 아기 앞에서 "하이고~오....!" 숨겨둔 선함을 내뱉고 만다. 예수님께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이유가 있었다.
 
작년에 교회에서 "인생의 빛 학교"라는 이름으로 생애 주기 세미나를 진행했는데. 번외 편으로 "육아(育我)하는 조부모" 라는 이름의 세미나를 했다. 젊은 부부 육아 세미나를 지켜보시던 장로님 한 분이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한 육아 세미나도 필요하다는 피력을 하셨다. 현직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신데, 나... 여기까지만 쓰고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가 "1초에 표정이 다섯 번 바뀌는 아기"라고 부르고 있는 아기는 에너지가 콸콸콸이다. 그 손주를 돌보시는 장로님은 내향적인 편에 약간은 샤이하신 느낌인데. 그 활달한 손주를 보시면 당황스러우실 할아버지를 상상하면 벌써 재밌다. 이건 채윤이가 먼저 캐치한 즐거운 상상이다.
 
강의 한 번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냐 싶으면서도 기쁘게 자리를 마련했다. 강의만으로는 얻어지는 것도, 큰 의미도 없을 것 같아서 그다음 순서를 마련했다. 강의 후에 지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부부 커플들을 패널로 내세워 질의 응답 형식의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나름의 목표는 이랬다.
 
- 에릭 에릭슨으로 보는 아이의 발달단계 이해
- 발달의 연속선상 안에서 아이들과 나(할머니 할아버지인 '나')를 성찰하기
- 조부모와 부모 세대 간 "육아의 기쁨과 어려움" 나누기
 
수강자보다는 강의하는 나를 위해 강의 목표를 분명하게 하려는 편이다. 꼭 도달하려는 목표는 아니다. 이런 시간에 함께 했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의미이다. 실제로 오간 이야기는 대단한 내용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 세대 조부모 세대가 아이를 놓고 무슨 얘기는 주고받는 것이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생명이니까. 생명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좋은 일 아닌가. 생명을 키우는 일의 기쁨과 부담과 괴로움을 내어놓는다는 것. 
 
무엇보다 "세대 간"에! 요즘 교회를 다시 생각한다. 다른 세대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심지어 신앙의 컬러도 다른 이들이 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기적이 아닐까. 그리고 이것이 교회의 아름다움 아닌가. 달라서 배제하고, 달라서 편을 가르는 세상 속에서 다른데....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공간 안에서 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차라리 신비라고 말하고 싶다. 성향에 딱 맞는 사람들과 정치적인 입장, 신앙적 좌표, 영성의 색깔을 마음껏 드러내고 공감을 주고받으며 교회 생활하면 어떨까? 행복할까?
 
여러 교회를 두루 다니며 강의하고 가끔 설교도 해보는 영광을 누리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젊은 날 언젠가 대표기도로 정치 선동 하시는 장로님으로 인해 예배 중 뛰쳐나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교회 깃발을 만들어 들고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걸 두고 부러웠던 적도 있었고. 젊은(아, 나는 이제 젊지 않다) 사람들이 많아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의 교회를 그려보기도 하고... 요즘 교회를 다시 생각한다. 균질 집단이 아니어도, 아니어서 좋은 곳이 교회구나! 복음이 원래 그런 것이었지. 여성과 남성, 이방인과 유대인, 종과 주인이 함께 할 수 있는 기적의 공간이 교회였지. 
 
교회 안 "세대 간"의 연결에 의미와 가치를 듬뿍 부여하고 싶다. 성탄절 전날이었던 24일 주일에는 유아 세례식이 있었다. 세례받는 아기를 너무나 예뻐하고 사랑하시는 집사님 부부가 아이 부모 뒤에 기도 후원자로 나란히 서셨다. "기도 할머니, 기도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고 아름답다. 혈육이 아니라 기도와 사랑으로 맺어진 조부모와 손주라니! 이 얼마나 복음적인 호칭인가. 
 
교회를 생각한다.
제도의 교회가 아니라 체험의 교회를.
생각 속 교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내는 교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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