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케 선영이에게서 생일 선물이 왔다. 쿠팡으로 아침 일찍 총알배송으로 온 택배라, 먹을 것인가 했는데 화장품이다. 왜 이리 비싼 걸 보냈냐, 얼마 전 현승이한테도 무리를 한 것 같은데, 쪼들리는 살림에 왜 이리 돈을 많이 써? 카톡에 떠들어 대고 가만 보니 노인네, 어디서 많이 본 노인네 말이네. (우씨, 우리 엄마 잖아...) 

 

동생한테 들으니  '언니한테 받기만 해서 좀 드리고 싶다. 내 돈 주고 못 사는 화장품이다.'라고 했단다. 나는 니네 돈이 더 아까운데... 계속 말하다가는 (짜증 유발하던) 우리 엄마 될 것 같아서 고맙다, 잘 쓰겠다 하고 입을 닫았다. 내가 동생네 뭘 해준 게 있다면 늘 미안해서였는데. 엄마 모시고 사는 선영에게 미안해서, 가끔은 뇌물이었다. '엄마 모시는 거 힘들지? 우리 엄마 힘든 사람이야.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말고, 잘 봐줘...' 

 

엄마가 딱 이 즈음에 낙상을 하고 병원에 격리되었던 터라, 엄마가 떠난 이후 내 생일은 전 같은 생일이 아니다. 3년 거리를 두고 다시 바라보면, 엄마 인생 마지막이 참으로 부럽도록 편안했고 아름다웠다. 이러고저러고 해도 동생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였는데. 그러느라 동생 부부가 질 수밖에 없는 일상의 짐이 있었다. 미안했던 엄마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고맙다, 복 받어라"였는데. 동생네가 복을 많이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선물로는 몇 번 사 본, 내돈내산은 못해 본, 선영이도 지돈지산은 못 해봤을 비싼 화장품을 복잡한 고마움으로 받는다. 이 화장품 이름이 참 마음에 들더라. 雪花秀. 雪花. 눈꽃. 눈꽃을 받았다. 雪花秀 말고 雪花受. 눈 속에 피는 꽃을 받았다. 말 나온 김에 루이즈 글릭의 [눈풀꽃] 한 번 꺼내 읽고 간다.

 

 

눈풀꽃(snowdrops), 루이즈 글릭​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
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
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
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

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
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이른 봄의
차가운 빛 속에서
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
기억해 내면서.

​나는 지금 두려운가.
그렇다, 하지만
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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