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리 마음에 힘이 들어가질 않고 자꾸 푹푹 꺼지는가 했다. 밥도 뭣도 하기 싫고, 장도 보지 않고, 꾸역꾸역 최소한의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고보니 해마다 엄마가 우리집에 와 지내시던 7말8초 동생 휴가 기간이다. 늘 마음 어느 구석에서 맴도는 그리움과 슬픔이 새롭게 불러 일으켜지는 이유였구나 싶다. 그것만도 아닌데... 가만히 귀기울이니 어떤 노래 또한 마음에서 오토리버스로 재생되고 있다.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무궁화 꽃을 피우는 아이... 가자 천리길 굽이굽이 쳐가자...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집에 살던 백구...  김민기 님을 그냥 떠나보낼 수 없는 슬픔이던 것 같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사에서 강론 하나를 접했다. 아름다운 강론이라 깊이 위로가 된다. 읽다 보니,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적에 남편이 청년부에서 이 비슷한 내용의 설교를 했던 기억이 난다. 설교 안에서 아주 짧은 언급했었던 것 기억이다. 그 일로 당회에 불려가 사과를 해야 했었다. 예수님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죽음이 슬프고, 그립고, 새롭게 마음이 아프다. 괴물이거나 괴물과 싸우느라 괴물을 닮아가거나... 그 둘만 보이는 조국교회와 거기 담겨 크게 다를 것 없는 나의 처지에 무력하고 자괴감만 든다. 괴물과 싸우면서도 괴물을 닮지 않고, 유순한 소년의 마음을 유지한 사람... 
 



지난 주일, 7월 21일에 돌아가신 김민기 님은 오늘 아침 8시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장례식을 끝으로 우리 눈에서 사라지셨습니다. 어디로 가셨을까요? 그분처럼 살다 간 모든 분, 그 맨앞에 계신 우리의 주님이 가신 곳으로 가셨지요. 바로 우리 가슴, 우리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수녀원에서 장례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저로서나 수녀님들로서나 이런 장례 미사는 처음입니다. 어떤 수녀님이 물으셨습니다. “그분 신자셨던가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보통 신자보다 훨씬 더 신자이셨습니다.”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는 이방인 백인대장을 두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어떤 이스라엘 사람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마태 8,10)

김민기 님의 한평생은 자신이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분이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분과의 대담에서 사담처럼 한 이야기한 토막을 들어 봅시다.


“서소문에 범진사라고 있었어. 보안사 취조실. 들어가니까 하사관들이 딱 들고 오는 게 사각형 각목이었는데 걔네는 베테랑들이지. (패는 시늉) 다다다닥.... 그때 아, 내가 죽는구나. 그런 느낌을 처음 받았어. 한참 맞다 보니까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패는 놈들 모습이 슬로우비디오로 보이는 거야. 나 죽는 거, 아픈 거는 감각이 멀어지고. 근데 걔네들한테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들더라구.”
“미안했다고?”
“한없이 미안해지는 게,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
“그게, 몇 살 때인가?”
“스물서너 살? 그러고 풀려났는데 그때 한참 해방신학이 뜰 때였지. 누가 그러대. 본회퍼 목사가 ‘히틀러는 총으로 쏴서 죽여야 된다’고 했다고. 근데 나는, 죽어 가면서 나를 고문한 놈들한테 미안하고 죄송했다고 했어. 그래서 본회퍼 식의 해방신학은 아닌 것 같다 그랬지. 나중에 운동권 애들한테도 그랬어. ‘너무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게 되면 걔 닮아 간다.’ 나중에 보니까 박정희 무지하게 미워하던 놈들이 박정희 비슷하게 되더라고. 내 참, 별 얘기까지 다 하네.(웃음)”

그거였을까? 괴물과 싸우면서도 괴물을 닮지 않고, 유순한 소년의 마음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이유가? 문득 가슴에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 얼른 막걸리 잔을 비웠다. ('한겨레와의 대담'에서)

 


김민기 님은 서울 대학로에 ‘학전(學田)’이라는 소극장을 열었는데, 그분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말 그대로 인재를 키워 내는 ‘못자리’를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과연, 오늘 <JTBC> ‘사건 반장’의 표현을 빌자면, 음악계는 물론, “송강호, 최민식, 황정민 등, 요즈음 영화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다 학전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양희은 씨를 비롯해서 대구에 가면 큰 거리에 그 동상이 서 있는 김광석 등 수많은 가수와 다른 연예인들 또한 학전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김민기 님은 그런 인물들을 ‘앞것’들이라 하고, 자신은 ‘뒷것’이라고 했답니다. 사람들 앞에 화려하게 나타나는 일은 그들이 할 수 있게 하고, 자신은 뒤에서 그들을 키우고 돕는 역을 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뜻이랍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생각나는 성서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점점 더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져야 한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의 말입니다.

이런 요한을 두고 우리는 선구자(先驅者)라고 하지요. ‘선구자’라는 노래도 있지만, 이 말은 본래 하느님의 아들, 인류의 구원자 ‘앞에’ 와서, 그분의 길을 닦아 놓을 사명을 띤 세례자 요한에게만 해당하는 말이었지요. 옛날 임금님의 행차 때, “물렀거라!” 하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길을 비키게 하는 이를 생각나게 하는 말로,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대부분의 사람이 남을 제치고라도 자신이 앞에 나서고 싶어 하고, 남이 이룬 공적까지 제 것으로 돌리려는 경향을 보이는 세상에, 자신이 양성한 사람들을 앞에 내세우고 자신은 뒤로 물러서 있는 삶을 끝까지 살아 내신 이분은, 어떤 분의 표현대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세례자 요한이 선구자였다면, 이분은 후구자(後軀者)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 세상의 구원자 ‘앞에’ 온 이가 선구자라면, 그분 ‘뒤에’ 온 김민기 님은 후구자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후구자가 왜 필요한가? 김지하 씨가 쓴 연극 '금관의 예수'에 김민기 씨가 작사 작곡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에서 우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금관을 쓴 예수'라니 무슨 뜻이겠습니까? 가시로 엮은 관을 쓰고 거기에 찔려 피를 철철 흘리는 것이 본래 예수님의 참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누가 그분의 머리에 금관을 씌워, 옛날 로마 군사들보다도 더 지독하게 그분을 모욕하고 있다는 말입니까? 가시관을 못 견뎌 하는 내가, 금관을 씌워야 마음이 편해지는 모든 이가 한 일입니다. ‘준주성범’, ‘주님을 닮는다’라는 뜻이지요.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5)  당시 동족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비록 그가 종이라 해도 시킬 수 없을 만큼 비천한 일을 하시는 스승의 행동을 보고, 베드로가 깜짝 놀라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며 보인 반응은 너무 당연했지만, 바로 다음 날, 그분은 대야에 담긴 물이 아니라, 당신 몸속에 있었던 피와 물을 모두 쏟아 그들과 우리를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이 아니라, 당신의 살점으로 닦아 주셨지요.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분을 닮고 싶지 않은 우리는, 황금을 좋아하는 우리의 모습에 따라 그분의 머리 위에 황금관을 씌우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분의 모습에 따라 자신을 바꾸는 대신, 내 모습을 따라 그분을 바꾼 것입니다. 하느님과 황금은 한꺼번에 섬길 수는 없는 일이어서, 한쪽을 종으로 섬기면 다른 쪽은 종으로 부려 먹게 되는 것은, 천 길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수밖에 없는 중력 법칙만큼이나 확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가시관을 쓰고 사는 무지렁이들에게로 가시려는 그분의 발길을 막아서 있는 형국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다시 가시관을 쓰고, 보실 때마다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루가 15,20)을 느끼셨던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 ‘얼굴 여윈 이들’에게로 언제나 다시 오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김민기님이 작사 작곡한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의 노랫말을 들어 봅시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눈 저 메마른 손길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소서
고향도 없다네 지쳐 몸 눕힐 무덤도 없이
겨울 한복판 버림받았네 버림받았네

아 거리여 외로운 거리여
거절당한 손길들의 아 캄캄한 저 곤욕의 거리
어디에 있을까 천국은 어디에
죽음 저편 푸른 숲에 아 거기에 있을까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여기에 우리와 함께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우리와 함께하소서

가리라 죽어 그리로 가리라
고된 삶을 버리고 죽어 그리로 가리라
끝없는 겨울, 밑 모를 어둠 못 견디겠네
이 서러운 세월 못 견디겠네
이 기나긴 가난 못 견디겠네
이 차디찬 세상 더는 못 견디겠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분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어디 계실까?



사람들이 이렇게 간절히 찾는 그분은 정말 어디 계시는 것일까?

우리 믿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뼈아픈 말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머리에 금관을 씌웠고, 금관을 쓴 예수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 가신 그분이 아닙니다.

첫 자리, 사람들의 박수와 각광을 받는 곳만 좋아하는 우리의 비뚤어진 경향에 김민기 님은 앞으로도 계속 외칠 것입니다.

"어디 계실까 주님은 어디
우리 구원하실 그 분
어디 계실까"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에 젊었을 때부터 놀랍도록 충실하셨던 김민기 님은 우리 마음속에 오래 남아 우리와 온 세상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를 일으킬 것입니다.

인간 세상과 모든 생명의 어머니 지구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듯한 오늘날, 후구자로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신 김민기 님을 주께서 “나를 참으로 닮았구나!” 하며 안아 주시고, 이 뒷것의 목소리와 모습이 우리 가슴에 언제까지나 남아 메아리를 일으키게 해 주시라고 구합시다.

이병호 주교(빈첸시오)
전 전주교구장
 
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후구자의 목소리와 모습, 언제까지나 남아 있길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이 글은 이병호 주교가 지난 24일 전주 인보성체수도회 총원에서 봉헌한 김민기 장례 미사 강론 전문입니다. 지난 주일, 7월 21일에 돌아가신 김민기 님은 오늘 아침 8시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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