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매일성경>에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중년의 영성에 대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3년 연재의 마지막 편 하나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독자 메일을 받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최 선생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쓰신 책이 있는지 물어 오셨어요. 기분 좋은 메일이었습니다. 이 글은 픽션이고, 최 선생님은 만들어진 캐릭터이니까요. 

중년 영성은 노년의 삶에 닿기에 치매, 존엄사 등으로 최근 글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의 주제는 죽음과 애도입니다.  픽션의 장점을 살려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보았습니다. "엄마 방 엄마 침대에서 편안히 돌아가셨다면, 임종을 지켰다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렀다면..."  그대로 써보았는데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쓰는, 내가 바랐던 『슬픔을 쓰는 일』이 된 셈인데...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이 내가 바랐던 방식이었다 해도 그리움과 슬픔의 처절함은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싶네요. 마지막 사랑은 정말 애도인 것 같습니다.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 17

 

 

조앤 디디온(Joan Didion)의 말처럼 모든 재난은, 다른 말로 하면 모든 죽음은, 평범한 순간에 들이닥친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휴대폰을 열었는데, 동생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예배 마치면 바로 전화 줘.” 평범한 순간에 평범하달 수 있는 메시지에 뭔가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누나, 엄마 돌아가셨어.” 평생 가장 두려웠던 그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그리고 다음 상황들은 또렷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일사천리로 장례식이 치러졌고, 그렇다, 치른 것이 아니라 치러진 것이다. 어느 순간 울고, 조문객을 맞아 대화를 나누며 어느 순간 웃기도 하고 그랬다. 호상이라고, 장례예배가 이렇게 은혜로울 수 있냐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입버릇처럼 기도하다 돌아가시면 좋겠다 하셨는데, 주일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중 숨을 거두셨다. 폐렴으로 며칠 입원 후에 퇴원하셔서 한 달여 스르르 생기를 잃으시다 편안히 돌아가셨다. 미리 예행연습이나 해둔 것처럼 일사천리로 장례식을 치르고, 조문객들에게 감사 인사와 메시지를 보내고 유품을 정리하기까지 일주일, 딱 일주일 걸렸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되돌아왔다.

 

엄마가 돌아가셨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서늘하다 싶어 날을 헤아려보니 벌써 두어 달이 지났다. 여름의 뜨거움이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최 선생님을 만나기로 했다. 장례 후 한두 번 메시지를 나누기는 했는데, 만나 뵐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밥 먹게 한 번 오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짬이 나질 않았다. 일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최 선생님뿐 아니라 일 외에 누구를 만난 기억이 아득하다. 정말 지나시는 길인지, 일부러 하신 발걸음인지 모르겠는데 우리 동네 지하철역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일 마치고 집 앞에 주차하고 지하철역을 향해 걸었다. 오랜만에 걷는 동네 가로수 길이다. , 정말 일만 했구나! 초록이 옅어지고 노르스름한 기운이 도는 나뭇잎들이 어쩐지 쓸쓸해 보인다. 금세 단풍이 들겠구나, 싶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지하철 개찰구 앞에 섰다. 이른 퇴근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이 많다. 멍하게 불을 바라보는 불멍, 파도를 바라보는 물멍, 지하철 도착하는 소리 후 밀려 나와 흩어지는 사람들 쳐다보는 사람 멍도 넋깨나 앗아가는 일이다. 선생님이 코앞에 다가오시도록 알아보질 못하고 있었으니.

 

어이구, 이 사람. 왜 이리 말랐어?

      어머나, 선생님. 어디서 오신 거예요? 제가 계속 보고 있었는데...

, 어디서 오긴? 저어~ 올 때부터 날 보고 있던 게 아니었어? 어쩐지... 그나저나 어찌 이리 말랐누! 이 사람... .

     아니에요. 워낙 늘 말라 있어서 오랜만에 보시면 새롭게 그렇게 보이시는 거예요. 일단 나가세요. 선생님 점심 몇 시에 드셨어요? 이른 저녁 하실까요? 평양냉면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나가면 바로 정통 평양냉면집 있는데요.

아니야, 고기 먹읍시다. 내가 정 선생 몸보신시키러 왔어. 소고기 먹을까? 삼계탕? 그래 삼계탕 좋겠다. 어때? 이 동네 삼계탕집이 있겠지?

     아, ... 저는 뭐든지.

 

미리 식당을 좀 생각해둘걸. 모처럼 뵌 것이고, 처음으로 우리 동네에 오셨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 마치고 그럴 여유가 없었다. 늘 여유 있는 시간에 느긋하게 뵙던 터라 좀 낯선 분위기이기도 하다. 게다가 선생님께서 평소답지 않게 적극적이시니 죄송한 마음 주저앉히고 삼계탕으로 식사를 하고, 조금 번잡한 대형 카페에 가 앉았다.

 

     선생님,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엄마 장례식 때 마음 표해주셨는데, 뵙고 인사한다는 게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네요. 제가 가서 뵈어야 하는데, 직접 오시고.

죄송은 무슨! 메시지도 주고 통화도 했잖우. 그래, 몸은 좀 괜찮아? 밥은 잘 먹고?

     그럼요. 밥 잘 먹고요. 잘 지내고 있어요. 일이 좀 많아져서요. 정신없이 지내고 있네요. 선생님도 별일 없으시죠? .... 그 개정판 책은 잘 나가고 있나요?

그거야 뭐, 교과선데. . 늘 나가는 만큼 나가겠지. 정 선생 덕에 죽기 전에 옷 잘 갈아입혀 나와서 고마울 뿐이고. 아니, 무슨 일이 그렇게 많아졌어?

     어쩌다 그렇게 됐네요. 기고하는 글도 마침 끝났고. 글이 통 써지질 않아서요, 대신 치료를 좀 늘렸어요. 아이들 대상 치료라는 게 몸을 많이 쓰게 되잖아요. 일 마치고 집에 오면 몸이 녹초가 되어 저녁 먹으면 금세 자고... 뭐 그렇게 지냈네요. 시간이 이렇게 간 줄도 몰랐어요.

그렇구만. 49제가 지났나? , 선생님 네는 그런 거 안 따지지?

     네, 그럼요. 두어 달 지났네요. 한창 더워지기 시작할 때였는데... 아까 집에 차 두고 걸어오는데 가을바람이 느껴지더라고요. 더위가 언제 갔나 싶어요.

그래, 마음은 좀 어때?

     (마음, 마음이라... 마음이 뭐지?) 마음이요? 음 그냥 뭐... 질문이 낯설게 느껴지네요. 그러게요. 왜 이러죠? , 죄송해요. (난데없는 눈물에 당황스럽다.)

죄송하긴. 괜찮아요. 괜찮아.

 

예상했던 것 같다. 선생님을 만나면 이런 질문을 하실 거라는 것을. 그래서 만나고 싶지만 피하고 싶기도 했고. 선생님을 마주하면, 뭔가 불편한 것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었다. 불편하지만 중요한 것을. 식사하면서는 부러 음식에 집중했고, 선생님을 똑바로 바라보고 눈을 맞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특유의 낮고 진중한 목소리, 흐릿한 눈으로 힘없이 바라보면서 동시에 어딘가를 꿰뚫는 눈빛에 자꾸 무언가 무너져내렸다. 금이 간 항아리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느낌의 눈물이 자꾸 조금씩 흘러나왔다. 애써 막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막아두고 잘 지내고 있었는데... 이러고 바라봐주시는 선생님 앞에 계속 앉아 있으면 눈물의 항아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다. 왁자지껄한 대형 카페에서 터지면 대형사고가 될 테니 일단 밖으로 나왔다. 바로 옆에 있는 교회에 공원 같은 선교사 묘원이 있다. 늘비한 비석이 바라뵈는 벤치에 가 앉았다. 저녁이 되어 더 서늘해진 바람이 금이 간 마음, 그 틈 사이로 불어드는 것 같았다.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선생님. 저 잘 지내고 있어요. ... 아니 잘 지내고 있었어요.

?

     걱정하셨죠? 엄마 돌아가시고 생각보다 잘 지내요. 거의 울지도 않았고요, 열심히 일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아니... 있었어요.

그래. 대견하네. 그런데 갑자기 잘 못 지내게 됐어?

     그러니까요. 선생님을 뵈니까 갑자기 잘 못 지내게 된 것 같아요.

어이쿠, 내가 잘못했네. 이런! 노인네가 잘못했구만.

     와, 빠른 인정! 바로 인정하시기예요? 하하, 이러시면 재미 없는데...

우리 정 선생 웃었네! 울다 웃었네... 이거. 허허.

     저 정말 안 울고 잘 버텼는데, 어떻게 선생님을 뵙자마자 이러죠? 선생님 정말 묘한 분이세요.

, 묘하기는... 정 선생이 내가 믿을만 한가 보네. 고맙네.

     그런가요? 선생님, 그럼 저 울리러 오셨어요?

몸 보신시키러 왔다니까. 울어야 할 명목이 필요했다면 얼마든지 이유가 되어 드리리다. 허허. 울고 싶으면 울어, 정 선생. 괜찮아.

     하이고, 울라고 하시니까 눈물이 쏙 들어가는데요! 헤헤.

허허허, 이제야 내가 아는 정 선생 같네 그려.

     지난 두어 달이 없었던 시간처럼 느껴지네요. 가끔 무심코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할 때가 있는데. , 엄마가 안 계시지, 하는 현실 자각이 오자마자 바로 생각을 멈춰 세웠던 것 같아요. 엄마 돌아가신 게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다 이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않았어요. 그게 무엇이든 떠올리지 않기 위해, 오직 덤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나 봐요.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만나줘야 한다는 이론을 너무 잘 알면서 말이에요.

그럴 필요가 있었을 거야.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으시며) 정 선생, 혹시 어머니 얘기를 하고 싶어요?

     아... 엄마 얘기요? 엄마 돌아가신 얘기요? 정말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는데, 믿어지지 않게 말 그대로 예배드리다 돌아가셨죠.

그렇다고 했지? 기도를 많이 하셔서 그런가 보다. ... 어머니 돌아가신 얘기만 말고, 그냥 어머니 얘기, 말이야. 하고 싶어요? 정 선생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

     엄마요? 그냥... 엄마... 이야기요?

 

다시 눈물이 솟구쳐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하고 싶은가? 그렇다.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말 듣고 싶은 질문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시던 며칠에 대해선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해 수십 차례 말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공식 장례 기간이 끝나고, 며칠 감사 인사를 하고 나니 더는 할 얘기가 없어졌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물어주시니 엄마의 부재가 아니라 존재했던 엄마가 떠올랐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엄마 이야기를 했다. 내 어릴 적 엄마와 관련된 장면, 노인이 된 엄마, 대학입학 시험 치던 날의 에피소드, 그러다 갑자기 중고등학교 시절 사춘기 얘기로 가기도 하고. 무슨 얘길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는데 간간이 선생님께서 질문해 주시고, 고개를 끄덕여주시고, 같이 울어주시기도 했다. 그새 해가 지고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말인지 울음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쏟아놓음이 그치고 조용해졌다. 엉엉 울진 않았는데, 한참 제대로 통곡하고 난 느낌으로 뭔가 개운해지고 믿어지지 않게 말짱해졌다. 날이 어두워져 시야가 함께 흐릿해져 다행이었다. 말짱해진 마음과 고요가 덜 민망해졌으니.

 

개와 늑대의 시간이네. 알아요? 개와 늑대의 시간.

     아... 알죠. 개늑시요. 어둠이 내려와 개와 늑대가 구별되지 않는 시간, 낮과 밤이 교차하는 애매한... 지금 시간을 말하는 거죠.

그래, 애매하게 젊을 때는 이 시간이 싫었는데, 이제는 좋더라고.

     저는 애매하게 젊어서 이런 시간 별론데요. 헤헤. 지금은 좋네요, 울어서 팅팅 부은 얼굴도 안 보이고... 민망하고 창피한 것도 좀 숨겨주는 것 같고요. 죄송해요, 선생님.

뭐가 이렇게 자꾸 죄송해?

     자꾸 울어서요. 모처럼 뵀는데, 선생님까지 우울하시게... 그런데 저 정말 엄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봐요. 누군가 물어주길 기다렸던 것 같아요. 감사해요, 선생님. 울어보니 알겠네요. 울지 않으려고, 엄마 생각 안 하려고 얼마나 힘을 주고 버텼는지... 이제야 알아져요.

죄송한 일 아닌 거 알면서! 이거 봐, 울고 나니 정 선생다운 표정도 말투도 나오잖아. 얼마나 힘을 주고 버티고 있는지 아까 지하철에서 만났을 때 그냥 느껴지더라.

     엄마 돌아가시는 상상을 수십 수백 번 했거든요. 아마 아버지 돌아가신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이렇게 갑자기 덮치는 거야. 어린 마음에 두렵기도 하고. 내가 자꾸 상상하고 마음으로 대비하면 이 두려운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엄마가 어디 가서 조금만 늦어도 최악을 상상했어요.

그랬구나.

     결국, 장수하셨죠. 그래도 그 두려움은 늘 있었던 것 같아요. 밤에 잘 때도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놓지 못했어요. 혹시 엄마 어떻게 되셨다는 전화가 올까 봐요. 그렇게 준비하고 있던 이별이니 슬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 정 선생이 한 말 중에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는 말이 있는데. 치료실에 오는 사람들은 죄다 울러 오는 것이라며? 언젠가 충분히 울지 못했던 그것이 오늘의 고통으로 돌아온 것이라며? 감정은 충분히 느끼고 흘려보내면 더는 없는 것이 된다고 우리가 자주 하던 얘기잖아.

     네... 그러니까요. 말만 번지르르했어요. 막상 닥치니 감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허락한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슬픔을 보이는 것이 정말 부끄러워요.

아아... 슬픔을 내보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러게요. 어떻게 될까요? 그냥 저를 싫어할 것 같아요. 아니, 가엾게 여길 것 같은데... 그런 취급당하는 것이 싫은가 봐요. 그러네요. 아버지 돌아가시던 때가 생각나요. 장례 치르고 첫 등교한 날 장면이 늘 마음에 남아 있거든요. 제가 워낙 까부는 아이였는데, 그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교실로 들어갔어요. 친구들이 저를 가엾게 여길까 봐요. 자라면서도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슬프거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 없는 아이라서 저래’, 하는 소리 들을까 봐요. 그래서 애써 더 밝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것 같고요.

그렇구나...

     

애도에는 완성이나 종결은 없다

 

     선생님, 그런데요... 선생님의 그렇구나에 무슨 마법이 있나 봐요. 자꾸 묻지 않으신 얘기까지 하게 되네요. 후후.

어이구, 그랬으면 좋겠네. 마법이라도 있으면. 정 선생, 이제 마음을 풀어놔 줘. 울고 싶을 때 울고, 엄마 생각해요. 죽음으로 관계가 끝나는 것 아니잖우? 어머니와 새롭게 만나야지.

     네? 새롭게요? 천국에서 만날 거란 말씀이세요?

물론! 천국에서 만나겠지. 여기서도 다시 만나고. 계속 더 깊이 사랑하고.

     아... 무슨 말씀인지... 여기서 만난다니요?

마지막 사랑은 애도가 아닐까 싶어. 떠난 부모님 사랑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애도라고. 아다시피 내가 남편과 어머니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천국에 보내드렸잖우. 그 덕에 신앙을 가지게 됐고.

     그러시죠. .

벌써 20년이 된 일인데... 그게 아직도 슬퍼요. 살다 보니 떠난 남편과 부모님과 지금의 나를 연결하는 것은 다름 아닌 슬픔이야. 사랑이라고. 자칫 그래서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면 슬픔이 그저 피해야만 하는 것이 아님을 이론이 아니라 체험으로 알게 됐어.

     아, 그렇죠. 슬픔과 그리움이 사라지진 않죠. 저 역시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이 다 사라져서 이렇게 살아온 건 아니니까요. 그러네요.

자크 데리다(Jackie Derrida)는 애도에는 완성이나 종결은 없으며, 애도는 실패해야, 그것도 잘 실패해야 성공이라고 하는군. 내 인생은 그때, 20여 년 전 죽음의 경험 전과 후로 나뉘는데. 그 시절 지나고는 죽음, 애도, 같은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서 선생님 논문들이...

맞아. 그때 후로는 내내 사별 상담과 애도 상담에 대해서만 연구했어요. 언젠가 파리 여행 중 어느 미술관에서 외젠 뷔르낭(Eugene Bumand)무덤으로 달려가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란 그림을 본 적이 있어.

     저 알아요. 그 그림 알아요. ? 선생님 책상에 작은 액자로 놓여 있는 것 아닌가요?

허허, 맞아. 눈썰미도 좋아. 그때 사 온 거예요. 암튼 베드로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 그림을 보는 순간 애도라는 말이 딱 떠오르더라고. 놀람과 슬픔이 가득한 눈동자, 때가 꼬질꼬질한 손과 손톱은 물론 검은 옷까지요. 부활의 아침, 그 순간을 맞기까지 예수님 사후 사흘을 어떻게 보냈을까 상상이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선생님이 돌아가셨어. 수제자로서 마지막 임종과 장례식을 지키지도 못했을뿐더러 오히려 배신자로 끝이 났죠. 그 얼마나 혼란스러운 슬픔일까!

     아... 그런 상상은 해보지 못했네요. 수난과 부활 사이의 시간을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그렇지? 내가 철없는 신자라 성경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력을 펼쳐서 그런가 봐. 암튼, 그 그림 앞에서 그냥 눈물이 나더라고. 많이 울었어. 몸의 부활을 확인시키고 다시 떠나신 그 선생님의 부재가 오히려 더 생생한 가르침으로 남았을 것 같아. 3년을 몸으로 함께 하며 들은 선생님의 목소리, 표정을 떠올리며 미치도록 그리웠겠구나 싶어. 그럴수록 복음 전하는 일에 담대하게 매진하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재에서 베드로의 사랑은 더 깊어진 것이야.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깨달음 또한! 빈 무덤을 향해 달려가는 베드로가 그렇게 읽히더군.

     아! 선생님이 떠나신 빈자리에서 제대로 수제자가 되었군요. 베드로는.

나는 그렇게 읽히더라고. 애도는 완성이나 종결이 없다는 말도, 그분의 못다 이룬 삶과 사랑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으로 알아들어요. 어머니의 빈 자리에서 온전히 슬퍼하며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엄마에 대한 사랑이군요. 애도는... 마지막 사랑은 애도라니...

그래, 그러니 슬픔을 틀어막지 말구려. 한 번 울면 멈추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도 있어요. 우리가 머리로 아는 것보다 우리는 훨씬 더 눈물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다니까. 하긴 뭐, 문화가 그런 문화니까. 상담하는 우리 자신도 정작 내 눈물에 대해서는 이렇듯 미숙하니 말이에요. 애도 전문가 퀴블로 로스(Elisabeth Kübler-Ross) 여사가 그랬다고. 흘리지 못한 눈물은 슬픔의 샘을 더 깊게 채운다고. 30분 동안 울어야 할 울음을 20분 만에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이 다 빠져나오면 스스로 멈춰. 정 선생, 어머니와의 마지막 사랑을 잘 해나가. 나는 우리 아들과 손녀들이 내가 떠난 자리에서 충분히 울어주길 바래요.

     네, 선생님 그럴게요. 베드로의 이야기가 크게 위로가 되네요. 감사해요, 저 이제 힘을 내서 울 만큼 울게요. 더는 울 필요가 없을 때까지 용감하게 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과 헤어져 다시 집으로 걷는 길, 뭔가 마음이 묵직하고도 홀가분하다. 엄마를, 아니 엄마를 향한 마음을 느껴본다. 아직 어떻게도 말할 수 없는 띵하고 얼얼한 아픔이다. 메멘토 모리! 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이지.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더는 관념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엄마를 기억하는 것이고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마지막 사랑이다.

 

<시니어매일성경> 9,10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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