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5
언젠가 최 선생님과 치매에 관해 얘길 나눈 적이 있다. 지금처럼 편한 사이도 아니었고, 여러모로 민망했던 기억이다. 내가 선생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죄송한 마음, 당황한 마음으로 ‘아무말 대잔치’로 사과드리던 끝에 툭 나온 말로 선생님께서 정색을 하셨었다. 화내시는 모습을 처음 뵈었었다. 돌아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선생님을 몰랐다. 몰라도 한참 몰랐고, 무엇보다 노인과 편하게 대화할 태도가 되어있지 않았다. 존경심도 있었지만, ‘노화’를 주제로 노인과 대화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었다. 건망증, 치매 이런 얘기를 하던 끝이었는데, 어설픈 배려를 하려다 노인에 대한 선입견이 들통나 혼이 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한 솔직한 대화로 당시 부쩍 심해진 건망증으로 높아졌던 내 불안감은 해소되었고 선생님과는 한결 가까워졌다. 댁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께서 갑자기 그날을 기억하느냐 하셨다. 당연히 기억한다고 했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으셨다. 아니, 현관문을 열어주시던 때부터 표정은 이미 난감 그 이상이었다. 왜 갑자기 그날이 소환된 것일까? 무슨 일이 있으신 게 분명한데, 여쭙기도 어려운 무거움이어서 그저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만에 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여셨다.
내 친구가 치매에 걸렸다면?
사람 입이 그렇게 가벼워서야... 그래, 입이 문제겠는고, 마음이 가벼운 것이지. 내가 그때 치매에 대해 어쩌구저쩌구 아는 척을 하며 입방아를 찧어 댔지.
아, 아니요... 선생님. 가볍다니요... 전혀...
뭐라고 했는지 정 선생 기억하우?
제 건망증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책도 빌려주셨었죠. 다 생각나진 않지만, 긍정적인 얘길 해주셨어요. 그래서 그날 이후로 저 건망증에 대한 걱정 별로 안 하게 되었는데요.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하아, 참나. 내 친구가 치매예요. 치매 진단을 받았어. 그것도 많이 진행된 상태라오.
아...
문제는 내가 벌써 감지한 게 있는데, 무심했어요. 가벼운 건망증이려니 하고 지나친 일이 여러 차례라고. 아마 내가 그때 정 선생한테 했던 말들이 화근이었을 거야. 지나친 자기 확신이었지. (끌끌 혀를 차신다.)
화근이라니요? 어떤 말씀이 화근이었다는 건지...
코로나 직전이었을 거예요. 친구가 약속을 까맣게 잊고 모임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있었거든. 가볍게 생각했어요. 단기기억 저하는 어쩔 수 없는 노인네들의 뇌의 문제다, 하면서. 한 번이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러다 다른 친구와 다툼을 하기도 했지. 자기만 빼고 약속을 잡았다는 둥 우기는 바람에.
그러면 그때 이미 증상이...
그렇지. 그러고는 바로 코로나 터져서 모임이고 뭐고 문 닫았고, 연락도 서로 거의 못했어. 코로나 기간에 진행이 빠르게 된 것 같아요. 딸한테서 전화가 왔네. 요양병원으로 갔다고... 휴우... 참... 내가 자만에 빠져서 내 친구도 못 지켰어.
선생님, 무슨 말씀이요! 선생님께서 무슨 수로 친구분을 지키세요?
그래, 맞다. 내가 무슨 수로 지켜? 그래도 빨리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말이야.
치매가 치료되는 병이 아니라는 것, 조금 빨리 발견했다고 해서 더 나은 치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 아닐 것이다. 그 아쉬움과 자책감은 짐작이 가기에 뭐라 드릴 말씀이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님의 치매는 차라리 받아들이기가 나을지 모르겠다. 내 친구가 치매에 걸렸다면?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어. 지나친 것에 항상 무엇인가 숨겨져 있지. 안 보고 싶었던 거야. 65세 이상 치매 확률이 5%다, 뭐다 하면서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아니 내 친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처럼 말이야.
선생니~임, 그때 말씀해 주신 감사 요법이 제게도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데요.
감사 요법?
네, 치매가 걸리더라도 예쁜 치매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기억을 많이 쌓아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인간의 뇌가 나쁜 경험, 아팠던 경험을 더 오래 기억한다고요. 억울한 것, 섭섭한 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환상을 잘라내는 것이 감사라고요. 그건 지나친 낙관이 아니에요. 선생님의 그 낙관, 지나치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 맞아. 허허, 울겠네, 이 사람! 내가 상심이 돼서 그래. 알았어, 알았어.
아니, 그게... 제가 왜 갑자기 울컥하는 거죠? 죄송해요. 제가 선생님을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아, 진짜 이 부적절한 감정...
아니야, 아니야, 고마워요!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이지. 뭐가 부적절해? 오늘 정 선생이 잘 왔다. 슬프고 우울한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 뻔했는데, 감사 요법이 아니라 정 선생이 딱 끊어줬네. 뭘 좀 먹읍시다. 사람 오자마자 붙들고 자책에 한탄을 하고 앉아서 물 한 잔도 안 내주고 있었네.
이게 최 선생님이다. 화가 날 때 그것을 숨기지 않으시고 솔직하게 표현하시고, 금세 풀고 웃으시는 분. 감정이 물 흐르듯 한달까? 유연한 마음의 소유자라고나 할까? 뵈면 뵐수록 이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마음이 뇌에 있다면 선생님의 뇌는 이렇듯 말랑할 텐데, 선생님 같은 분이 치매에 걸리실까?
이렇게 큰 딸기 봤수? 킹스베리라나 뭐라나? 무슨 딸기가 이렇게나 크냐 말이야.
와아, 저 보기는 봤는데요, 처음 먹어봐요.
두어 개 먹으니 배가 부르더라고. 상담 종결한 청년 내담자가 가져왔어요. 처음 왔을 때 비하면 내면도 외적 환경도 많이 좋아져서 내가 보람이 있어. 오랜 구직생활 끝에 취업을 했거든. 첫 월급 받았다고 통 크게 썼다는 거야. 그리고 가면서 하는 말이 힘들 때 또 상담하러 올 거니까 꼭 살아있으래. 하하.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주 맹랑하다구.
선생님, 선생님은 치매는 절대 안 걸리실 것 같아요.
응?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선생님 같은 분은요...
이 사람도 맹랑하네. 하하. 왜? 치매 걸리는 사람이 따로 있나?
매사 긍정적이시잖아요. 유연하시고요.
장담할 수 없어. 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고 하는 게 그런 말이야. 나는 사실 치매 걸려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거든. 치매 안 걸리고 맑은 정신으로 사는 여생은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지만, 걸린 후의 삶은 내 통제 밖에 있는 것 아니유? 걸리면 걸려야지 어떡하겠나.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하는 것도 있었어. 정 선생이 약속을 잊었던 날 말이야.
네, 그날로 제가 선생님께 완전히 빠져들었는데요. ‘단짠단짠’ 다 해주셨잖아요. 처음으로 제게 화도 내시고, 건망증에 대한 제 염려를 합리적으로 딱 설명해주셔서 안심도 시켜주시고... 그 유연함과 긍정성이요.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야. 건망증도, 치매 초기 증상인 경도인지장애도 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이거든. 오는 치매 어쩔 수 없다. 지나친 민감함과 거부가 더 문제라고 말이야.
네,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그 교만 때문에 내가 불을 보듯 훤한 내 친구의 치매 증상을 캐치하지 못한 거야. 전문가라고 하는 내가 말이야. 친구를 도울 골든 타임을 놓쳤다고.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라우.
선생님, 치매에도 골든 타임이 있나요?
음... 뭐, 완치가 없으니까 치료의 골든 타임은 말할 수 없겠지. 진행을 늦추는 약이 있을 뿐이니까. 그래, 얘기가 다시 원점으로 왔구만. 자책은 그만 하겠수다. 아무튼 친구가 약속을 잊고, 자기만 몰랐다고 우기면서 다른 친구들과 대거리하는 게 듣기 싫어서 귀를 닫고 있었거든. 그것이 치매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았으면 조금 다르게 대했을 텐데 말이야. 그렇게 친구와는 소통이 끊어진 거잖우. 차라리 민감하게 의심이라도 했으면 오가는 마음이 있었을 것 아니유. 이제 요양병원으로 갔으니... 이승에서는 끝났지.
아... 그런 마음이시군요.
치매는 무능하기만 한 질환이 아니다.
정 선생 혹시 <더 파더>라는 영화 봤어요? 안소니 홉킨스가 나오는.
영화는 알아요. 보지는 못했고요. 주변에서들 많이 추천하던데, 저는 어쩐지 선뜻 보게 되질 않더라고요. 안소니 홉킨스가 치매 환자 연기를 그렇게 잘했다고요?
그래, 나도 참 보기가 힘들었어. 이제 와 얘기지만 보고 나서 며칠 우울해서 괜히 봤다 싶기도 했어. 그래도 한 번 봐요. 심리 치료하는 사람이니 꼭 봐야 할 영화야.
그렇군요. 영화가 왜 힘드셨는지 여쭤보면 맹랑한 거죠?
이런! 오늘은 또 맹랑하기로 작정을 하셨구만! 스포일링 해도 되겠소?
아, 저 스포일링 된 상태로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반전, 소름, 이런 거 잘 못 즐겨요. 다 얘기해 주셔도 돼요.
특이한 것이 치매 환자 자신의 시점으로 그린 영화예요. 그렇게 보지 않으면 스릴러 같기도 하고 스토리 전개가 무척 혼란스럽다고. 치매를 앓는 이의 눈에 보이는 공간과 일상의 일들이 어떻게 혼란스러운지가 생생하게 그려진다우. 지식적으로는 모르던 바가 아니었지만, 다소 충격이었어.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치매, 그러면 가족들이 겪는 고통이 먼저 떠오르지 환자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미 정신이 와해 된 상태이실 테니 이해 불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바로 그 점이야. 내가 지금 친구가 했던 말들이 하나하나 살아오면서, 단지 늙은이의 고집이나 어깃장이 아니었는데 싶은 거라우. 모르지도 않았던 내가 말이외다. 참... 휴우...
결국, 고집과 어깃장인 건 맞잖아요. 그래서 주변이 힘든 거고요.
아, 그렇지않아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무작정 억지를 부리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이 단순한 치매 증상이라고 할 수는 없어.
무슨 말씀이신지?
이러려고 그랬는지, 칼 융(Carl Jung)이 말하는 동시성인지, 내가 얼마 전에 좋은 책을 하나 만났어요. 뇌과학자가 쓴 치매에 관한 책인데, 흥미롭게도 학술서적이나 논문이 아니야. 뇌과학자 자신의 어머니가 치매에 걸린 거예요. 과학자이며 딸로 2년 반 동안 치매 걸린 어머니의 변화를 일기 쓰듯 기록하고 깨달은 내용을 쓴 거예요.
오, 특별한 치매 서적이겠네요. 과학자이며 딸로서 쓴 책이라니.
그러니까 말이유. 그간 읽었던 어떤 논문보다 알츠하이머 치매에 대해 명쾌했고, 나는 감동적이기도 했어요. 치매로 전혀 다른 인격이 된 어머니에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지 않은 ‘그 어머니다움’을 찾으려는 노력과 결국 찾아내는 눈이 감동이 되더라고.
그 책으로 선생님 친구분에 대한 이해를 다르게 하신 거군요.
아, 참! 그 얘기 하다 말았지. 치매 환자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느끼느냐 하는 건데. 치매는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하기만 한 질환이 아니라는 거야. 치매로 인해서 여러 어려움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치매 환자들 스스로 곤란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전략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그게 제삼자가 봤을 때는 이상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나름 자신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거지.
아, 영화 <더 파더>의 관점처럼 치매 환자 자신의 입장을 헤아린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지. 특히 초기에는 자신도 혼란스럽고, 실수하거나 이상하다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워 뭔가를 하려고 애쓴다는 거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는 것도 단지 인지능력 저하 때문만은 아니라, 나름의 자구책인 거예요.
아아...
내 친구가 약속을 잊고는 우기고 거짓말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나름의 노력이었단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선생님. 친정어머니가 치매이신 친구가 있어요. 요양병원에 계신지 오랜데요. 처음엔 그 사실도 몰랐어요. 어쩌다 그 사실을 알게 됐는데, 친구가 너무도 의연한 거예요. 워낙 밝은 성격이기도 하지만요. 심지어 그렇게 말해요. 어머니가 다른 병 아닌 치매라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고요. 딸조차 못 알아보신대요. 당신 자신도 모르시고, 아무것도 모르시니 차라리 행복하지 않겠느냐고요. 그래도 되나 싶으면서도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자기의식이 없으실 테니 고통도 없으시겠구나 싶고요. 그 부분에 대해선 두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렇군요.
진행이 많이 되었을 때야 또 모르겠지요. 적어도 그 뇌과학자는 그래요. 증상이 심해져서 이전 어머니의 모습이 다 지워졌음에도 자기 어머니다움의 본질은 남아 있더라고요. 특별한 모녀 관계니 가능한 발견이긴 하겠지. 뇌과학자이며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았던 딸을 둔 치매 환자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수.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대화를 이끌며 생기를 찾으시더니 그새 다시 침울한 얼굴이 되셨다. 그렇지! 최 선생님이시니까 이런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지 어느 노인이 치매를 가벼이 마주할 수 있을까. 게다가 가까운 친구분의 일이 되었으니... 다시 민망해진 마음이다. 뚝 끊어진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느새 뉘엿뉘엿 저녁 해가 넘어가고 있다. 역시 선생님이 먼저 힘을 내셨다.
끝까지 남는 건 감정 기억
어헛, 오늘 정 선생이 귀인이다. 치료사는 치료사야. 주거니 받거니 얘기하다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 뭐야. 상담비 내야겠다. 저녁 뭐 사줄까?
네? 네! 상담비요? 그러면 저녁으로 상담비 퉁 치시면 안 되고요. 상담비는 따로 청구 들어갑니다. 헤헤.
그리 하구려. 백지수표 줄게. 허허.
네, 백지수표 접수합니다. 하하하.
고맙네. 친구 딸이 전화해서는 한참을 우는데 내 심장이 다 흔들리더라고. 천지분간 못하는 것 같은 제 엄마를 병원에 데려다 놓고는 마음이 추슬러지질 않는대. 왜 아니겠어?
저희 엄만 저를 늦게 낳으셨어요. 지금 아흔이 넘으셨거든요. 연세가 무색하게 정정하시고 특히 정신이 좋으셔서 치매 걱정은 해보지 않았는데요. 상상만 해도 막막하고 가슴이 쪼여오네요. 내가 아는 엄마가 사라지고 다른 엄마가 되었을 때,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 다른 엄마가 된다... 아까 말한 책에서 말야. 저자가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어. 인지기능이 만든 ‘그 사람다움’과 근본적인 감정이 만든 ‘그 사람다움’이 따로 있다는 거야. 쉽게 말하면 뇌 기능의 문제로 기억의 손실과 정보 입력의 혼란으로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만, 감정적으론 자기 엄마 그대로이더라는 거야.
아, 감정이요? 엄마의 감정이요...
그래, 알츠하이머성 치매의 뇌에서 가장 먼저 세포사가 진행되는 곳이 기억 중추라고 하는 ‘해마’야. 기억 장애가 제일 먼저 일어나지. 그런데 끝까지 남는 것은 감정 기억이야. 내 친구도 말이야, 인지적으론 문제가 생겼지만, 느낌은 손상되지 않았던 거야. 평소보다 더 우기고 고집을 부렸던 건 자존심을 지키려는 발로였을 거야. 그랬을 것 같아.
선생님, 왜 노인치료에서는 ‘느낌’을 존중하라고 하잖아요. 노인 음악치료에서도 환자의 느낌에 대한 믿음으로 치료 디자인을 하라고 하거든요.
맞아, 치매 환자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으려면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으려는 불필요한 입씨름은 하지 않아야 해. 사실 모든 노인질환자, 아니 모든 노인을 대하는 태도일 거야.
아, 불필요한 입씨름... 그러네요. 이성적인 잣대를 들이대며 설득하려는 것이 의미가 없죠. 왜 박완서 선생의 소설에 노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 기억이 나요. 뱃속에서 뭐가 잡힌다, 분명히 뭐가 잡힌다는 어머니가 있어요. 의학적으로 아무 문제 없는데 억지를 부린다며 자식들에게 타박 들으며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이 아프게 남아 있거든요.
그렇구만! 어디 노인네들 뿐이겠소? 결국 사람이 관계 안에서 원하는 건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남녀노소 모두 같애. 그 흔한 공감이라는 말을 왜 다들 좋아하겠소? 상담까지 오는 이들이 찾는 건 공감이야. 결국 감정이라고! 평생 사람 속내 들어주는 일을 하고 살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감정이야. 감정의 소통! 그러니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진짜 감정을 아는 사람이고. 치매에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사람이 있겠어? 치매 예방을 위해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정보가 많지만,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야. 내 친구만 해도 교장으로 은퇴하기까지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었고, 누구보다 신앙심도 깊었다고. 내게는 정말 남의 일이 아니야. 당장 내일부터 내게 치매 증상이 와도 이상한 일이 아닐 거예요.
아오, 선생니임...
아니, 끝까지 들으라고. 그러니까 치매에 걸릴까 두려운 사람이 할 일은 투명한 감정으로 사는 거야. 정직한 감정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고, 하나님께도 그렇게 나아가야 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그거예요. 그리고 치매 걸린 노인을 도우려는 사람이라면, 보이는 행동이 어떠하든 그의 존엄을 지켜주고 싶다면 느낌을 믿어주고 귀 기울여주어야 하고!
아, 네. 알겠습니다! 저도 정리가 아주 딱 잘 되었어요. 지금 제 감정은 배고픔으로 인하여 살짝 짜증으로 가고 있사옵니다. 더 해주실 말씀은 식당으로 가서 하시면 안될까요?
그럽시다. 하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선생님처럼 말랑한 마음, 투명한 감정의 소유자가 어디 있겠냐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치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다고 입바른 소리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마음으로 기도했다. 주님, 우리 선생님 적어도 치매로부터는 지켜주세요. 더 오래 이런 맛있는 대화 나누며 배우고 싶어요.
<시니어 매일성경> 5, 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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