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 모음88 JP&SS의 중년 이야기 2024년 9월호 의 커버스토리가 ‘중년의 영성’이었다. 여기에 나란히 실린 내 글과 남편의 글이다. ‘JP&SS의 사랑과 책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함께 기고했던 일이 벌써 20여 년 전이다. 신혼일기를 썼던 지면에 중년일기를 썼다. JP&SS의 사랑과 책과 중년 이야기 정신실 “누나도 같이 가시는 거잖아요. 제가 마음에 담아서 갈 거니까, 지리산에 같이 있는 거예요.” 이런 말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교회 청년들과 지리산 종주를 떠나던 후배 JP가 잘 다녀오라는 내 말을 이렇게 받아쳤다. 말이 없는 친구인데, 했다 하면 이렇구나! 평생 이렇듯 달달한 세레나데를 듣고 살겠구나, 하며 결혼했다. 환상이 깨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기나긴 인생 여정 중 에로스 에너지가 폭발하는 짧은 순간이.. 2024. 10. 30. 외향형 하나님? 내향형 하나님? QT MBTI3 안녕, Jung 쌤이야. 너는 네 MBTI 유형이 어때? 마음에 들어? 혹시 되고 싶은 유형이 있어? Jung 쌤은 되고 싶은 유형이 있었어. 내 유형 ESFP가 대략 마음에 드는데, 마지막 P만 J였음 좋겠더라고. 그래서 ESFJ를 선망했어. 시작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를 하고, 처음 세운 계획을 바꾸지 않고 하나에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J들이 그래 보였거든. “내 이 재능과 성격에 J이기만 했으면 인생 성공인데!” 싶었던. 재미 추구, 긍정적인 것에만 꽂히는 ESFP의 환상 같은 자아팽창이었어. 암튼 부러운 유형이 있지 않아? 부러운 유형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우월한 것으로 보이는 유형도 있어. 그런가 하면 나쁜 유형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거 없다.. 2024. 5. 1. 그리움을 일깨우는 그리움 엄마, 거긴 날씨가 어때요? 여긴 엄마가 아는 그 날씨예요. 자주 흐려요. 가득한 미세먼지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흐린 날인 건지 하늘이 늘 뿌예요. 봄이 오는 길목이 험난한 것 같네요. 엄마가 보낸 이 땅의 마지막 시간, 그때처럼 막막한 날씨의 연속이에요. 거긴 날씨가 좋죠? “햇빛보다 더 밝은 곳 내 집 있네” 어렸을 적에 많이 부른 노래 탓인가, 밝고 찬란한 날씨가 연일 계속되고 있으려니 싶어요. 날씨만 상상해도 좋아요. 엄마가 얼마나 싱싱하고 생생하고 행복할까 싶어요. 요며칠 내 마음은 비가 쏟아지기 일보 직전이에요. 누구든 툭 건드리기만 해라, 울어버릴 테니, 하는 심정으로 눈물을 장착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전 엄마, 라고 부르는 순간 깨달았어요. 아, 엄마와 보낸 마지막 시간, 그 애달팠던.. 2024. 4. 18. 나 E 아니라고오! QT MBTI_2 안녕? Jung 쌤이야. 내 유형 기억나? 지난 호 첫 만남에 유형 먼저 밝히고 시작했었는데. 교회 청년부에서 처음으로 MBTI 검사를 했던 때가 생각나네. INFP가 나왔어. 정말 내 유형 같았어. 어쩌면 이렇게 나를 잘 설명하지 싶었고. 그런데 친구가 그러는 거야. “네가 어째서 내향형이야? 넌 E야!” 이 말에 어찌나 화가 나고 흥분이 되는지.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검사결과도 그렇고, 유형 설명을 읽어봐도 나는 확실히! I였거든. 문제는 I이면 I였지, E라는 말 한마디에 뭐 그렇게 분노 버튼이 눌리고 그러냐는 거지.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 며칠 동안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지낸 적이 있어.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하고 묻고 또 묻고 그랬지. 그럴수록.. 2024. 3. 1. 끝나지 않은 이별 지난 주일에 교회 청년부를 섬기던 목사님의 '고별설교'가 있었다. 예배 마치고 인사를 나누며 툭 나온 말이 "목사님, 부러워요."였다. 말을 내놓고도 조금 당황했는데. 설교 시간에 잠시 남편의 '고별설교'를 상상했던 것 같다. 늘 생각하기에, 아무 때나 상상이 된다. 고별설교를 하고 교회를 떠나는 목사님은 그나마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고별설교는커녕, 더는 없을 빌런이 되어 강단을 떠난다. 빌런 프레임이 씌워진 것인지, 자기 권력과 욕망을 위해 빌런 되기를 자처한 것인지, 그럭저럭 겉모양은 유지하며 빌런인듯 빌런 아닌 빌런 같은 애매한 빌런이 된 것인지.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의 슬픈 이별이 남기는 상처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보이지 않게 깊다. 부교역자라 불리는 분들은 애초 없는 존재였기에 .. 2023. 12. 31. Jung 쌤과 함께하는 QT MBTI 2024년부터 에 연재합니다. 독자가 청소년인 것도, 주제가 너도 나도 전문가인 MBTI라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지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MBTI 과몰입 친구들의 '자기만의 MBTI' 때문에 답답해 죽겠는 딸 아들의 도움을 받아 한 번 써보기로요. MBTI 지표 설명보다는 사용법, 태도에 대해 다루려고요. MBTI의 이론적 배경이 되는 Carl Jung의 심리유형론의 관점을 피력하고자 하는데... 이 깊은 영성심리를 청소년들 눈높이에 맞추는 게 관건이네요. 그래서 이름도 Jung 쌤으로 갑니다. 정 쌤이기도 융 쌤이기도. 첫 번째 글입니다. 너, MBTI가 뭐야? 안녕. 나는 Jung 쌤이라고 해. 앞으로 여기서 MBTI를 좀 가르쳐줄 거야. 아, 그런데 QT와 MBTI가 무슨 상관? 그러니까 말이야... 2023. 12. 22. 인생 후반으로 떠나는 여행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8 허무의 강물 위에서 수속을 다 마쳤고, 탑승 시간까지는 넉넉하게 여유가 있다. 공항 탑승구 앞에 앉았던 그 어느 때와도 느낌이 다르다. 어쨌든 떠난다는, 여행 그 자체로 이미 가벼워지고 설레는 그런 마음이 아니다. 들뜨기보다는 가라앉아 있고, 가라앉은 마음은 묵직하다. 뭐라 딱히 이름이 붙여지지 않는, 참 낯선 감정이다. 일 년여의 시간을 네팔에서 보낼 예정이다. 들뜬 설렘은 없지만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은 있다. 이른 퇴직 후에 다른 삶을 구상하겠다는 남편의 결단 뒤에 좋은 우연이 따라왔다. 네팔에서 일하며 선교하는 후배와 닿아 가서 일도 하고 선교도 돕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몇 년 기한으로 남편 혼자 떠나려 했으나, 뒤늦게 급하게 나도 일단 일 년 정도 함께 하기로 했다... 2023. 11. 1. 마지막 사랑, 애도 에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이란 제목으로 중년의 영성에 대해 연재하는 글입니다. 3년 연재의 마지막 편 하나를 남겨 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독자 메일을 받았는데, 여기 등장하는 최 선생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쓰신 책이 있는지 물어 오셨어요. 기분 좋은 메일이었습니다. 이 글은 픽션이고, 최 선생님은 만들어진 캐릭터이니까요. 중년 영성은 노년의 삶에 닿기에 치매, 존엄사 등으로 최근 글을 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번 호의 주제는 죽음과 애도입니다. 픽션의 장점을 살려 상상력을 발휘하여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보았습니다. "엄마 방 엄마 침대에서 편안히 돌아가셨다면, 임종을 지켰다면, 장례식을 제대로 치렀다면..." 그대로 써보았는데 크게 위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쓰는, 내가 바랐던 『슬픔을 쓰는.. 2023. 9. 2. 존엄한 죽음, 그 불가능의 가능성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6 최 선생님은 주변 모든 이들을 위한 상담자 같으시다. 선생님 댁 현관 앞에서 울며 나오는 한 여자분을 만났다. 내담자려니 했는데, 친구분의 며느리란다. 얼마 전 치매 증상으로 요양병원에 가신 선생님 친구분, 그 소식으로 선생님도 한동안 적잖이 힘겨워하셨었다. 듣자 하니 어머니 요양병원 입원 후 자녀들 사이 갈등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친 며느리가 선생님을 찾은 것이다. 집에서 치매 어머니를 모시던 분이다. 스쳤지나 듯 마주쳤지만, 고통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일은 뭔가 남 일 같지가 않다. 선생님, 힘들어 보이세요. 좀 쉬실까요? 그러게. 기력이 없네. 이젠 상담도 접어야 할 때가 됐나 봐. 잠깐 있어 봐. 으읏짜, 내가 뭘 좀 먹어야 한다. 네, 선생님... 2023. 7. 1. 치매, 기억, 감정 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5 언젠가 최 선생님과 치매에 관해 얘길 나눈 적이 있다. 지금처럼 편한 사이도 아니었고, 여러모로 민망했던 기억이다. 내가 선생님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은 것이다. 죄송한 마음, 당황한 마음으로 ‘아무말 대잔치’로 사과드리던 끝에 툭 나온 말로 선생님께서 정색을 하셨었다. 화내시는 모습을 처음 뵈었었다. 돌아보면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선생님을 몰랐다. 몰라도 한참 몰랐고, 무엇보다 노인과 편하게 대화할 태도가 되어있지 않았다. 존경심도 있었지만, ‘노화’를 주제로 노인과 대화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만 했었다. 건망증, 치매 이런 얘기를 하던 끝이었는데, 어설픈 배려를 하려다 노인에 대한 선입견이 들통나 혼이 나고 말았다. 그렇게 시작한 솔직한 대화로 당시 부쩍 심해진 건망증으로 높아.. 2023. 5. 1. 이전 1 2 3 4 ··· 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