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 노을이 물드는 시간11

(시니어 매일 성경 9,10월호)

 

 

섭섭해, 정 선생. Out of sight out of mind 맞지?” 돌려 말하는 법이 없으시니 말씀하시면 그게 전부인데. 정말 섭섭하시구나! 얼굴 뵌 지 한참이지만 메시지로 안부를 여쭙고 있고, 가끔 꽃 사진도 찍어 보내주시곤 하여 여전히 가까운 마음인데 선생님은 그렇지 않으셨나 보다. 일이 좀 많아지기도 했지만, 내가 관계 맺는데 취약한 지점이기도 하다. 꼭 자주 만나야 하나, 각자 잘 살면 되지, 하는 생각인데 친구들에게 섭섭하단 소릴 듣곤 한다. 최 선생님께도 듣고 마네. 마침 선생님 댁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강의가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고 서프라이즈로 찾아뵈었다. 상담이 있으실지 모르지만 일단 쳐들어가자. 잠깐 뵙고 오더라도 섭섭함은 좀 풀어드려야지.

 

어이구, 이 사람이! 누군가 했네. 연락도 없이 이게 무슨 일이야. 들어와, 들어와. 상담 없어. 있어도 취소할게.

     서프라이즈예요. 선생님! 보고 싶으셨죠? 헤헤.

유붕이 자원방래 하니 불역열호아 외다! 서프라이즈 방문한다고 이렇게 차려입기까지 했어? 이쁘네. 화장하고 차려 입이니 딴 사람 같어. 나 보여주려고 차려입은 것 아닐테고.

     네, 근처에 강의가 있었어요. 상담 있으시거나 댁에 안 계셔도 할 수 없다 하고 왔죠. 과문불입, 과문불입요. 문자 쓰셨으 니까 문자로 답해야지. 히히.

 

혼인 전 순결+혼인 내 순결

 

아이구, 또 받아치기 시작이다. 이렇게 반가울 데가. 삐친 척을 좀 했더니... 섭섭하단 말에 그냥 달려왔구나. 이랬거나 저랬거나 좋네. 그런데 무슨 강의를 했어?

     네, 청년들에게 스킨십, 성에 대한 강의했어요.

그런 강의도 해?

     아유, . 청년들 연애 얘기하다 보면 결국 그런 질문이 나오거든요.

, 성에 대한 강의를 하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혼전순결 뭐 이런 얘긴가?

     하하, 선생님 저 청년에게 먹어주는 강사예요. , 그러니까 말이 먹히는 강사라고요. 혼전 순결보다 더 책임 있게 지켜야 하는 건 혼인 내의 순결 아닌가요? 이렇게 얘기하면 청년들이 좋아해요. 하하. 더 여백을 두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편이에요.

여백이라?

     성과 사랑, 성과 영성에 대해 폭넓게 얘기하고요. 각자에게 자신의 성 생활에 대한 판단을 맡기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혼전순결 지켜라, 말아라 하는 게 의미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혼인 전 순결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잘 지켜야 하는 것이 혼인 내 순결 아닌가요? 결혼한 부부가 서로에게 헌신하는 혼인 안에서의 순결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혼전순결을 지키지 않는 것은 죄다! 이 가르침만 반복하는 것은 안 그래도 어려운 청년들의 등에 짐을 지운다는 느낌이거든요. 기독 청년이 아니면 하지 않을 고민과 고뇌 속에서 어디다 말도 못하고요. 사귀는데 왜 안 자? 그럴 수가 있어? 이게 요즘 연애와 성문화잖아요.

아하! 그렇게 강의하면 청년들이 위로를 받겠는데. 그래, 그러면 청년들이 어떻게 반응해? 그 말을 잘 들어?

     아니, 그런데 선생님 왜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시죠? 하하.

? 노인네는 성에 관심이 없을까 봐? 나도 솔깃하다고! 허허허. 엊그제 손녀딸을 만났잖우. 그 애가 애인이 있잖아. 어렸을 적부터 나한테 와서 속 얘기를 많이 하거든.

     아, 그 아드님이 반대하시는... 둘째 손녀딸 말씀하시는 거죠? 요즘 어때요?

기억하네. 막을 장사가 있겠소. 그렇다고 깔끔하게 허락한 것도 아니지만. 아들이 전처럼 완강하지는 않아요. 자식 이기는 장사 없어. 그런데 엊그제 손녀딸하고 이런저런 얘기 하다가 그러는 거야. “할머니, 나 애기를 만들까? 그러면 아빠가 바로 결혼 허락해주지 않을까?” 내가 기겁을 했어. 결혼허락을 위한 수단으로 아기를 갖는다니 말이나 되냐? 임신은 안 된다, 했더니 농담을 다큐로 받는대나 뭐래나 하면서 깔깔거리더라고. 나는 옛날 사람이라... 게다가 우리 손녀딸은 신앙도 없으니까. 마음이 복잡한 중에 마침 정 선생이 성에 대한 강의를 했다니까 귀가 번쩍 뜨이네. 뭐라고 해줘야 해? 내가.

     선생님 잘 아시면서요. (최 선생님 말투 흉내 내면서) 다 큰 애가 뭐라고 말한다고 듣겠수?

어허... 이 사람이 참! 하이고, 흉내도 잘 내. 허허허허. 그러면 정 선생은 어떻게 여백을 두고 무슨 얘기를 해요? 청년들에게.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또는 한 사람과 오랜

 

어려워요. 선생님. 그런 어려움이죠. 성에 대한 관심도 많고, 크리스천 청년으로서 고민도 많은데, 일단 교회 안에서 성에 관한 발화 자체가 금기 아닌 금기잖아요. 일부러 저는 일단 섹스, 자위, 오르가즘... 이런 표현을 써봐요. 자연스러운 일을 자연스럽게 말하자는 뜻에서요. 은밀한 곳으로 숨어들 때, 무엇이든 그 파괴력이 커지잖아요. 입에 올리지 못하고 쉬쉬하지만, 에로스 에너지가 치솟는 시절이고요. 그런데 강의는 고사하고 이런 말만 꺼내놓아도 분위가 얼어붙는 느낌이죠. 문제는 교회 밖의 문화는 교회와는 딴 세상이라는 거고요. 그러니 성에 관한 한 혼자 끙끙거리다 되는대로 대처하게 되니, 신앙과 성은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되고 말아요. 하긴 뭐 청년들만의 문제인가요.

     그러네. 나만 해도 성과 정신 건강까지는 어떻게 연결시켜 이해하겠는데 신앙과 접점은 못 찾겠어요. 섹스리스를 비롯한 성적인 문제로 부부 상담을 오는 경우가 꽤 있거든. 생각해보니 신앙인은 거의 없어요. 아니다. 부부 갈등 안에는 분명 성적인 단절이 포함되어 있을 텐데, 교인들은 그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 같아. 성은 거룩하지 못하다 여겨서 그건가? 그렇구만. 실은 성과 영성은 아주 밀접한 것인데 말이야.

그러니까요, 선생님. 참 중요한데, 잘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청년들은 성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지만, 실제로 성 경험을 자유롭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강의를 들어도 이론에 그치고 마는 것이죠.

     허허허허. 그러네. 이론이네. 지식만 쌓는 게 되는구나. 실전편은 나중 일이고. 그러면 그 강의는 실전이 가능한 결혼한 부부가 들어야겠구만.

그런데 실전이 가능한 오래된 부부는 또 말이죠. 제 주변 친구들 말이에요. 섹스리스 부부가 흔하고요. 그걸 대단한 문제로 여기지도 않아요. 단지 성적인 단절이 아니라 관계 전반의 단절이 고착되어 있으니까요. 그 상태에서 이론을 배운다고 몸이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고요.

     아하! 그렇긴 하지. 알랭 드 보통이 섹스는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라고 했다고.

딱이네요. 성을 대단한 것으로 여겨서 어려운 청년 시기, 애써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여 문제해결이 안 되는 중년의 부부. 그렇군요.

     그러니까 정 선생은 청년들에게 뭐라고 강의를 한다는 거요? 나한테도 좀 강의해줘 봐.

에잇, 선생님. 다 아시는 얘기예요. 상담하고 강의하시면서 다 다루시잖아요.

     나야 뭐 심리학이지. 성 심리 정도 아는 거지. 그것도 강의실 용이라우. 무림에선 어떻게 가르칩니까? 무림의 고수한테 한 수 배웁시다.

고수는요? 일단 솔직하게 제 얘기해요. 제가 청년 시절에 오한숙희 씨의 칼럼을 읽고 슬픈 충격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아마 이혼 직전의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남편의 일기장에서 아내는 더 이상 섹시하지 않다.”라는 문장을 본 거예요. 네네, 오한숙희씨가요. 앞뒤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네요. 아무튼 그걸 보고, 생각했어요. 결혼했는데 배우자가 더 이상 섹시하지 않은 삶은 얼마나 불행한가? 그런데 웬걸요! 결혼하고 몇 년 지났는데, 제 일이 된 거예요. , 데이트 할 때는 어떻게 뽀뽀 한 번 더 해볼까, 영화관에서 팝콘 먹다 손만 스쳐도 찌릿찌릿하고 그랬는데요. 어느 날 보니 덤덤해도 그렇게 덤덤할 수가 없는 거죠. 알랭 드 보통의 말대로라면 대단했던 성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죠.

     페니레틸라민 호르몬! 사랑 호르몬이라도 하지. 17개월이면 자연 감소!

역시! 그러니까요. 선생님. 그게 끝이 아닌 거잖아요. 그 짜릿함, 에로스의 폭발은 수많은 사람 중에 내 짝을 고를 때 유효한 사인이었고요. 어쩌면 그때부터가 진짜 성의 가치와 의미를 아는 때라고 말해요. 청년들이 알아들을까 싶지만요. 지금 못 알아들어도, 나중에 결혼해서 기억이 나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여요. 한 사람과 오래도록, 질리도록 섹스해봐야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된다고요.

     와하하하하, 재밌네. 실전 경험에서 터득한 거야? 질리도록이라...

흐헤헤헤, 그렇죠. 오래도록 질리도록... 그렇게 터득한 거죠. 글로 배운 성, 글로 배운 성과 영성이 결혼생활 15? 나이 사십 훌쩍 넘으니 알아들어지더라고요. 니체가 그런 말을 했다죠. 지상과 천상을 통틀어 절대적인 사실은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 있어야만 하며, 그때에만 인생의 살 만한 가치가 발견될 거라고요. 그러니까 한 사람과의 오랜 성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때 성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강의해요. 아우, 그거 지난한 헌신이며 자기희생이며 영성수련이에요.

     오호라,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라. 니체의 말을 거기다 갖다 붙인다? 일리가 있네. 문제는 결혼 관계 안에서 섹스를 지속하는 부부가 많지 않다는 거지. 몇 년 전인가 통계였는데. 50대 이상 부부 중 반은 섹스리스라고 했던 것 같아. 사실 섹스리스는 친밀감 리스의 문제야.

선생님 늘 말씀하시잖아요. 신심일여(身心一如)라고요. 성관계가 몸의 대화라면, 마음의 대화 없이 지속하기 어려운 거죠. 성이 아니라 관계에 방점을 찍어야 하는데 말이에요. 50% 안에는 크리스천 부부가 있을 거고요. 어쩌면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어쩌면 심지어 좋은 부부의 모델로 살아갈지도 모르겠어요. , K 선생님 부부 생각이 나네요. 요즘 어떠신가요?

     그러게 요즘 통 소식이 없네. 맞아. 그 부부가 평생 아무 문제 없는 듯 살아왔지만, 결국 K 선생 몸에 이상이 생기면서 표면화됐지 않우? 몸과 마음은 하나야. 그런 의미에서 부부의 성은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고. 마음 가는 곳에 몸이 간다니까.

그런 연구 결과 흔하잖아요. 예전에 공부할 때 그런 연구 본 적이 있어요. 감기에 대한 면역력이 강한 집단에 대한 연구였는데요. 다양한 연령, 직업 포함해서 조사했는데 감기 면역력이 가장 강한 사람들은 신혼부부였어요. 안고, 입 맞추고, 즐겁게 섹스하며 몸으로 나누는 친밀감의 결과라는 거죠. 그때 본 표현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입맞춤하면서 균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균을 죽이게 된다고요.

     정설이지. 프레데릭 살드만이라는 프랑스 심장 전문의가 있어요. 건강에 관한 대중적인 책을 많이 썼지. 섹스가 건강에 직결된다고 했어. 정확한 기억은 가물가물한데, 한 달 몇 번 이상의 섹스면 심혈관 질환이 반으로 준다고. 그것뿐이요? 정 선생이 말한 면역력이며 노화 방지나 남성들 비뇨기과 질환까지... 이런 좋은 효과를 몰라서가 아니야. 면역력 강화를 위해서 비타민을 많이 먹는 게 쉽지 말이야. 이미 멀어진 부부관계를 회복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 성관계에서 성이 아니라 관계에 방점 찍어야 한다는 정 선생 말이 맞아요. 건강에 주는 효과도 단지 섹스이겠어요? 충족되는 친밀감의 욕구겠지.

그러니까요, 선생님. 섹스는 인간이 몸으로 나누는 최고의 친밀감의 표현이잖아요. 문제는 인간은 몸만 가진 존재가 아니라, 정신적인, 무엇보다 영적인 존재라는 거고요. 정서적인 친밀감, 특히 영적인 친밀감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잖아요. 갈등이 생겼을 때 대화해야 한다, 제가 연애 강의할 때 엄청나게 강조하는데요. 청년들이 그래요. “대화고 뭐고, 오빠는 니가 뽀뽀만 해주면 다 해결 돼.” 이런 식이라고요. 사실 이때야 에로스 에너지가 충만하기 때문에 스키십 한 번으로 웬만한 갈등은 덮어지기도 하죠. 중년 부부 섹스리스는 이미 여기서 예견되는지도 모르겠어요. 결혼한 후에는 그 반대가 되잖아요. 스킨십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해결되고 그 끝에야 섹스가 자연스럽잖아요.

     그렇구먼. 정 선생 청년들한테만 성 강의할 것이 아니라 그 부모들도 앉혀놓고 이런 얘기 해줘야겠다.

아휴, 선생님. 교회에서 성담론을 꺼내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제가 청년들 대상으로 성 강의를 하다가도 교회 어른들 뒤에서 왔다갔다 하시면 얼마나 심장이 쫄리는데요. 단어 하나만 듣고도 딱 경직되시잖아요.

     그래요. 성이 이렇게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서는 물론 교회에서도 이것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어. 성은 더럽고 죄악시해야 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야. 유교 문화에 이원론적 신앙관까지 더해져서 교인들에겐 더 한 것 같아. 그 아까 왜 섹스리스 부부 통계에서 말이에요. 우리나라 50대 부부 섹스리스 비율이 50% 정도라고 했잖아. 세계 평균은 20%대래. 우리나라가 일본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부관계가 적은 나라라는 거 아니야. 중요한 건 그걸 문제 삼지 않는다는 거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러려니 산다는 거지.

그래요, 선생님. 친구들 모임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난 아직도 남편의 몸이 좋다는 말 했다가 욕먹고 맞을 뻔했어요. 하하. 아이들 독립해서 나가며 빈방이 생기고, 그때부터 각방 쓰는 친구가 많아요. 부부관계가 있다 해도 거의 의무방어전이죠.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살아오며 자연스럽게 된 일이니까 사실, 문제라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이게 조금 슬픈 악순환 같이 느껴져요. 전에 제가 트로트 보고 우는 마초 남편 꼴보기 싫다는 친구 말씀드린 적 있죠. 그 남편도 제가 알거든요. 남편은 외로워서 그런다는 거예요. 죽어라 돈 벌고 살아왔는데, 돌아보니 남은 게 없는 거죠. 제 친구가 아이들한테는 정말 좋은 엄마거든요. 엄마와 아이들 사이는 끈끈해요. 마초 남자인 그 아빠는 가족들에게 성질대로 해온 게 있거든요. 엄마따라 아이들도 아빠를 싫어해요. 그 사이에 끼지를 못하는 거예요. 트로트 가사에 눈물 나는 외로움인 거죠. 제 친구는 그 모습이 싫어서 정이 떨어지고, 매력이라곤 안 느껴지는 거죠. 그럴수록 남편은 더 외로워지고, 또 트로트 들으며 울고... 더 싫고.

     그런데 정 선생은 어쩌다 친구들 사이 공공의 적이 됐어?

? 무슨 말씀인지... 공공의 적이라뇨?

     아니, 어떻게 남편과 금슬이 좋으냐고? 친구들한테 욕먹었다며? 부부사이 좋다고 자랑해서.

푸하하, 금슬이라고 하시니 손발이 오글...

    왜애? 금슬(琴瑟)이 어때서? 거문고와 비파 소리가 조화롭게 울리면 얼마나 아름다운 거요? 그러니까 비결이 뭐야? 부부상담 오는 내담자들에게 알려줘야겠다. 오늘은 강사님한테 배울 게 많네.

 

헌신하겠다는 약속, 나를 넘어서겠다는 약속

 

저는, 저의 부부는 운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운이라기보다는 시작이 좋았달까. 일단 실전 이전에 이론 공부를 많이 했죠. 하하. 결혼 전에 아까 말씀드린 오한숙희 선생 글 같은 류의 책을 많이 읽었어요. 남편 역시 결혼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더라고요. 결혼 안에서 사랑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정도는 알았던 것 같아요. 사랑 호르몬이 언젠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도요. 결혼은 사랑 깊은 약속이라는 것을 함께 묵상했어요. 헌신하겠다는 약속이다, 나를 넘어서겠다는 약속이다, 이렇게요. 진정한 뜻은 모르고 했던 말인 것 같아요. 신혼 초에 월간지에 신혼일기를 연재할 기회가 있었어요. 일상의 크고 작은 갈등을 글감 삼으며 대화하고 글을 썼는데, 관계의 기초를 잘 놓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요.

     그래? 어쩐지. 부부사이가 남다르게 교과서적이더라.

교과서적이라뇨? 선생님, 저 범생이 아니에요. 선생님.

     으이그, 칭찬이야. 보기 드문 건강한 부부라고 칭찬하는 거야.

헤헤. 그렇게 알아들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원가정에서 특별히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하게 인식한 결핍감들이 있죠. 사랑 깊은 약속이란 그런 것이었어요. 우리가 다른 모든 것에 실패해도 부부관계,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일에는 실패하지 말자.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없어도 서로를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해보자. 젊은 날 뭘 모르고 한 말인데, 지켜내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아하, 그렇구나! 사랑은 자기증여야. 자기희생이라고. 성이 더럽고 죄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줌으로 하나 되는 것의 표상이 아니겠어? 성경의 아가서나 영성가들의 기도체험에서 온전한 하나님 닮음, 하나님 체험을 영적 결혼으로 상징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그저 욕구나 채우는 감각적인 즐거움 그 너머라는 것이지.

맞아요, 선생님. 성관계에서 절정에 느끼는 그 망아의 순간, 나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아마 타자와 온전히 하나 되는 감각적 경험일 거예요. 단지 몸을 합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담긴 삶을 풍성하게 하고 자아를 넘어서게 하는 경험이 될 때, 영적인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축하해! 축하합니다!

? 축하요? 어어, 또 놀리시는 거예요?

     아니야. 충분히 누리라고. 축복받은 사람이잖아. 얘길 듣다 보니 성이 거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랑 깊은 약속 맞네. 사랑 깊은 약속으로서의 결혼생활과 성 맞아. 나는 혼자 지낸 지가 거의 30년 아니요? 결혼생활을 잘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 성은 더더욱 잘 모르고. 잘 누려요. 결혼생활이 둘이 사는 나날로 끝일 것 같지만, 결혼은 언젠가 혼자 지내는 시간까지 포함해. 그 세월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 중 누군가, 언젠가는 혼자 남을 것 아니유? 그때는 의무방어전이고 뭐고, 성관계 없는 새로운 생활이라고.

, 그렇군요. 누군가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꼭 있겠군요.

     그럼, 그때는 친밀감과 성은 또 다른 지점으로 가. 내가 얼마 전에 영화를 하나 봤잖우. 제인 폰다를 좋아하거든. 상대역은 로버트 레트포드야. 둘 다 많이 늙었대. 참 멋지고 예뻤는데.

무슨 영환데요?

     제목이 뭐였더라? 혼자 사는 늙은 노인네들 얘기야. 노인네들의 밤. , 제목이 <밤에 우리 영혼은>이다.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 5, 60대 때는 할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혼자 살아도 외로운 밤 그런 걸 많이 못 느꼈거든. 이제는 또 달라. 그 영화를 보니, 내 마음이 저렇구나 싶더라고. 암튼, 둘이 함께 있는 오늘을 잘 누리라고.

, 그 영화 궁금하네요. 선생님 저 그 영화 보고 올 테니 다음에 뵐 때 영화 토크 해요.

     그럽시다! 만나서 얼굴 보자고. 카카오톡 백 번보다 몸으로 만나는 게 진짜야! 유붕이 자원방래 하니 좋구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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