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들어올 때, 현관 키 누르면서 잠시 고민할 때가 있어. '누나랑 싸웠던가, 화해했던가?' 생각을 해야 해.. 누나한테 재밌는 얘기 할 게 있는데, 싸운 상탠지 친한 상탠지 헷갈려서 생각해보고 콘셉트 잡고 들어와야 하거든."

남매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고백으로 본다. 정말 잘 싸우고 정말 친한 남매다. 싸울 때 보면 어떻게 저렇게 서로에게 잔인하게굴 수 있을까, 싶은데. 친할 때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기타, 키보드를 붙들고 앉아 하염없는 음악활동도 한다.

불국사 다보탑 앞에서 찍은 세 장의 남매 사진이다. 남매 사이 친밀감 발달단계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가족 여행에서 다시 들른 불국사. 일명 '세월 가족사진'을 위한 여행에 다름 아니다. 첨성대, 다보탑, 불국사 앞 정원 등 그때 그 장소를 찾아다니며 찍었다. 예전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똑같이 재현하기! 다보탑 남매 사진을 찍기 위해 넷이서 머리를 맞대고 보라돌이 남매 사진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손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거지? 현승이 손이 어떻게 된 거야?" 하다가 남매 둘이 "아아~~~~!" 하고 뒤로 물러났다. "손 잡고 있어. 어흐, 이건 못 해" 하면서 잡지도 않은 손을 털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얻은 세 번째 사진. 2022년, 성인이 된 남매이다.


가운데 사진은 채윤이 사춘기 때. 저 귀여운 거리... 채윤이는 세상 모든 것에 거리를 두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짜증나고, 삐딱하게만 보였을 시절. 그 옆 현승이의 정신세계는 첫 번째 사진의 보라돌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 같고. 누나랑 손도 잡을 수 있는데... 잡을 손이 없다. 누나 손이 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에라, 나도 그냥 소매 안에 집어넣자, 하지만 뭔가 허전하고 슬프고 어정쩡하다, 이런 느낌.


채윤 현승 남매에게 동생과 나의 관계를 자주 비춰보게 된다. 마흔 다섯 늦은 나이에 나를 낳고, 2년 후에 동생을 낳아준 엄마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채윤 현승 남매 못지않게 싸우고 화해하며 쌓아온 관계이다. 좋은 말 나쁜 말 포함,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동생이다. 동생 덕에 평생 감정 훈련을 제대로 해왔다. 거침없이 좋아하고, 죄책감 없이 싫어하는 것을 해봤다. 그럴 수 있는 사이다.

채윤이 현승이도 그렇다. 기본적으로는 서로 얄미워서 죽을려고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꽤나 싸우곤 하는데. 그 싸움이 싫지가 않다. 내 딸, 내 아들이라도 엄마 아빠로서는 침범할 수 없는 거리를 남매끼리는 수시로 넘나 든다. 저렇게 잔인하게 굴어도 될까, 싶은데 어느새 또 친해져서 하하 낄낄거린다. 치명적인 약점을 거침없이 찌르고, 자존심 상해서 다시는 말도 하지 않겠다 하고, 한 녀석이 먼저 사과하고, 머쓱한 시간 후에 어느새 다시 얄미워 죽고 재밌어 죽는 사이가 된다.

친밀감의 정석 인지도 모른다. 테제 공동체 창시자인 로제 슈츠 수사께서 "갈등에 뛰어드는 것"이 참다운 형제애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화해한 마음으로 싸우기"라는 표현과 함께.

가까웠다 멀어지는 남매의 거리. 수시로 갈등에 뛰어드는 남매의 관계를 본다. 진정한 친밀감으로 가는 아름다운 거리로 보인다.

사랑하며 미워하고,
동의하며 반대하고,
너 때문에 기쁘면서 언짢고,
나는 늘 너와 함께 있다.

'아이가 키우는 엄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의 모든 엄마  (0) 2022.10.13
지브리와 함께  (0) 2022.02.06
꼴찌로 태어난 토마토  (1) 2021.12.27
엄마가 기도할 때  (0) 2018.09.09
딸은 아들, 아들은 며느리  (0) 2017.06.24

+ Recent posts